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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 : 한국시가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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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6-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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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5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591
한국시가연구
53권0호(2021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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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남지역 동성마을 가사작품에 나타난 문화지리학 적용 양상 - 장흥 방촌과 영암 구림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수진 ( Park Sujin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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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남지역 동성마을인 장흥 방촌과 영암 구림에서 창작된 18세기 가사작품을 대상으로 문화지리학적 적용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본 논의에서 제시한 문화지리학적 연구 방법은 기존과는 다른 '재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재현되지 못한 혹은 재현되지 않는 문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맥락'에 맞는 문화적 해석으로써의 문화지리학적 연구 방법론으로 논의하고자 한 것이다.
동성마을로 형성된 장흥 방촌과 영암 구림은 장소의 특징들로 각각 두 공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장흥 방촌은 (1) 각별한 공간, 인간세계와 신선세계의 경계: 천관산, (2) 학문의 공간, 유력 성씨로 '하나'라는 결속: 위씨집성촌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그런 반면, 영암 구림은 (1) 신령한 공간, 자연을 중시한 풍수지리의 바탕: 월출산, (2) 사회적 공간, 단합과 결합의 장소의 표본: 구림에 대해 그리고 있다.
위의 두 공간은 이분화하여 뚜렷하게 '장소'의 의미로써 나눌 수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두 지역 차이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관계는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일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많은 유물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취, 표식, 기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는 의미들이 달라진 것처럼 문화지리학적 가치로써 예전과 지금의 의미들이 다름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문화지리학은 지역문화를 만드는 큰 핵심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ultural and geographic application of 18th-century lyrics created in Bangchon and Yeongam Gurim, Dongseong villages in Jeollanam-do. The cultural geographic research method to be discussed in this paper emphasizes 'reproduction', which is different from the previous one. In doing so, it represents a culture that cannot or cannot be reproduced. This is to discuss, above all, as a cultural geographic research methodology as a cultural interpretation that fits in the context.
The characteristics of the place can be examined by dividing the Bangchon of Jangheung and the Gurim of Yeongam, which was formed as Dongseong Village. Jangheung Bangchon intends to clarify (1) a special space, the boundary between the human world and the new world: Cheongwansan, (2) the academic space, the unity of 'one' with the influential surname: Wissi's hometown. On the other hand, Yeongam Gurim is drawing on (1) a spiritual space, the basis of Pungsu geography that emphasizes nature: Wolchulsan, (2) a social space, a sample of a place of unity and unity: Gurim Village.
The two spaces above can be divided into two and divided into the meaning of 'place'. As such, it can be seen that their relationship, which is revealed in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different regions, is to find another meaning. Nature not only reveals nature as it is, but many relics in it have created traces, marks, and symbols according to the passage of time. The meanings are different. However, it can be seen that the meaning of local culture is of great significance to the local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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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리적 경계 넘기와 심리적 좌절의 이야기, <만언사>

저자 : 염은열 ( Eun-Yeul Yeum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6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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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유배가 지리적 경계를 넘고 확장하는 사건이었고 유배가사가 그러한 사건과 관련된 서술이며 결과적으로 지리적 상상력의 확장을 가져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였다. 유배가사 역시 그러한 일대 사건의 주체인 유배죄인들의 장소 이동과 장소 경험 및 인식이 잘 드러나는 문학작품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가정에 따라 인문지리적 관점에서 <만언사> 읽기를 시도하였다.
유배 죄인 안도환은 한양과 한양 바깥을 가르면서 동시에 이어주는 문지방 장소인 한강을 건너 한양 땅을 떠났다. 한강을 건넘으로써 33년 개인사가 새겨진 장소이자 세속적인 욕망 충족의 장소였던 한양 땅을 벗어나 풍문의 장소인 한양 바깥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말로만 듣던 조선의 여러 지역들을 몸으로 겪으면서 해남까지 이르는 동안 점으로 존재했던 경유지들을 선으로 연결하였고 그렇게 지리적 상상력이 확장되었다고 보았다. 땅끝 해남에서 안도환은 두 번째 경계이자 거대한 공간인 바다를 건넜다. 바다는 한양이 있는 육지와 배소가 있는 추자도를 가르고 이어주는 거대한 공간으로, 그 공간을 몸소 겪으면서 넘어감으로써 안도환은 전혀 알지 못했던 추자도에 당도하게 되었다. 무지와 미지의 공간이자 야만의 공간으로까지 경험 공간이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한양을 떠나, 그리고 육지를 떠나 몸은 추자도에 있었지만 안도환의 마음은 한양을 떠나지 못했음을, 그로 인해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추자도라는 장소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언사>를 장소 이동과 인식, 지리적 관념에 주목하여 살펴봄으로써, <만언사>가 인간 실존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소에서의 떠남과 새로운 장소에의 적응이라는 인간의 발달 과업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까지 암시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started from the assumption that exile was an event that crossed and expanded geographic boundaries and that exile poetry was a narrative related to such an event and resulted in an expansion of geographic imagination. And the exile poetry should be researched as a literary work that shows the movement of places, the experience of places, and perceptions of places. Following this point of view, we would like to re-read < Maneonsa(만언사) >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 geography.
Ahn Do-hwan(안도환), a prisoner of exile, left of Hanyang(한양), crossing the Han River(한강), a liminal space that connects and divides Hanyang and the outside of Hanyang at the same time. By crossing the Han River, he moved away from the land of Hanyang, a place where his personal history was engraved in 33 years, and a place to satisfy secular desires, to the wide world outside of Hanyang, a place of rumors. His geographic imagination should have been expanded by connecting dots, various regions of Joseon that were only heard by words, to the line on the map in his mind, while reaching Haenam(해남). At the end of the earth, Do-Hwan Ahn crossed the sea, the second boundary, and huge space. The sea was a huge space that divided and connected the land of Joseon where Hanyang was located, and the island where Chujado(추자도) was located in. Crossing the sea, Ahn Dohwan came to Chujado, finally. The space of experience has been expanded to the space of ignorance and unknown, as well as of barbarism. However, leaving Hanyang and leaving the mainland, his body was in Chujado, but Ahn Do-Hwan's mind was unable to leave Hanyang.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he could not adapt to the place of Chujado by breaking down the boundaries of his mind.
< Maneonsa(만언사) > should be considered by being dealt with the important issues of human existence and life. < Maneonsa(만언사) > has great implications for those of us who always leave the place and adjust to a new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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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정오년기념(始政五年紀念)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1915)가 정재(呈才) 창사(唱詞)에 미친 영향 - <봉래의(鳳來儀)>를 중심으로 -

저자 : 강혜정 ( Hyejung Ka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9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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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개최되었던 始政五年紀念 朝鮮物産共進會(이하, 공진회)에서 연행되었던 <鳳來儀> 창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박람회가 정재 창사에 미친 영향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1910년대 새로운 연행 공간으로 등장한 '박람회(공진회)'의 특성을 살피고, 이 공간에서 연행되었던 다동기생조합과 광교기생 조합의 <봉래의> 창사가 조선 시대, 대한제국기 궁중에서 연행되었던 <봉래의> 창사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논의한 후, 공진회가 정재 창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910년대 가장 규모가 큰 박람회였던 공진회는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1915년 9월 11일부터 51일간 경복궁에서 열렸다. 물산 장려라는 경제적 목적과 더불어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내보이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전체 관람객이 100만 명이 넘었던 대규모 행사였다. 공진회의 관람객 동원을 위해,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 연예관에서 다동 기생조합과 광교기생조합이 매일 번갈아서 정재 공연을 하였다. 공진회의 정재 연행 공간이 경복궁이라는 점에서 볼 때, 전통적으로 정재가 공연되었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왕실의 번영을 송축하며 소수의 왕실 가족을 위해 연행되었던 정재가, 일제의 강점을 미화하기 위한 행사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위해 연행되는 것으로 탈바꿈된 것을 알 수 있다.
<봉래의>는 선초에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삼고 여민락, 치화평 등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정재이다. 『악학궤범』에 관련 기록이 전하고, 고종 때 편찬된 『정재무도홀기』에도 전하고 있다. 반주 음악이나 노랫말의 길이 등 약간의 변화가 보이지만 조선 왕실을 송축하는 작품으로 연행되었다. 이 <봉래의>가 일제 강점기를 맞아 다동조합과 광교조합에 의해 공진회에서 공연되었는데 창사의 의미는 완전히 변질 되었다. 다동조합의 경우는 고종대에 연행했던 <봉래의>의 음악적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되 창사를 간소화하면서 천황을 송축하고 공진회를 칭송하는 것으로 그 내용을 바꾸었다. 광교조합의 경우 전통적인 형태를 수용한 것과, 새로 지은 것 등 두 종류로 공연했는데, 새로 지은 창사는 일제 강점기가 봉황이 올 만큼 태평성세라고 노래하고 있다. 두 기생조합의 창사는 동일하지 않았지만, 모두 가곡 선율에 얹어 불렀다는 점과 노골적인 친일 창사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였다. 이를 통해 공진회에서 공연되었던 두 기생조합의 <봉래의>는 전통 정재의 명칭과 형식과 창사를 토대로 하되, 공진회의 경제적, 정치적 개최 목적에 부합하도록 그 의미를 왜곡시켜서 결국 일제의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his research paper examines the meaning behind the Court Song Lyrics which was performed at the 1915 Expo(始政五年紀念 朝鮮物産共進會) during September 11th to October 30th 1915, a period in which Korea was under Japanese Imperial rule. To do so requires the examinations of the characteristics of 'Expo', a new performance venue that appeared during the 1910s. Furthermore, an in-depth comparison between the Dadong Union(茶洞妓生組合)'s and Kwangyo Union(廣橋妓生組合)'s < Bongraeyi(鳳來儀) > lyrics to the version of < Bongraeyi > lyrics performed in the Chosun Dynasty court will reveal how the Expo influenced the Court Song Lyrics.
The Expo with the largest capacity in the 1910s, was held at the Kyungbok palace(景福宮) from September 11th to October 30th 1915 under the supervision of Japan. By publicly advertising the economic improvements of Korea post-colonization, the Expo was used as political propaganda of justification of Japanese Imperial rule; the Expo was a highly successful event with a total of one million visitors. To stimulate the flow of more visitors to the Expo, the Dadong Union and the Kwangyo Union rotated perform daily at the Expo. Considering that < Bongraeyi > performance space was at Kyungbok palace, an important change of power dynamics can be noted: while the < Bongraeyi > was historically performed at the same location, for the elite few belonging in the royal family. However, with the regime change, < Bongraeyi > was publicly performed at the Expo, thereby allowing an unrestricted quantity of average individuals to also watch the performance.
When < Bongraeyi > was performed during the imperialist rule, the differences in Dadong Union's version versus that of the Kwangyo Union were prominent. Dadong Union maintained < Bongraeyi >'s musical components as used in the Chosun Dynasty but shortened the lyrics; The Kwangyo Union had two versions: there was a version that maintained the traditional performance characteristics as well as the new version. However, the new version increased the imperialist propaganda in that it described the current state of the nation as a paradise. The lyrics of the two versions were contrasting but similar in that both versions were to be sung by a melody and were flagrantly praising the imperialist regime. Therefore, it becomes evident that while < Bongraeyi >'s traditional melody and performance rules were maintained, the lyrics were changed to fit the Expo's purpose of boasting the economic superiority of Korea post-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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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읍사>의 발화 맥락과 화자의 기원(祈願)에 대하여

저자 : 조용호 ( Cho Yong-ho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7-12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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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를 수행하게 된 이유는 <정읍사>를 음란한 노래로 보는 견해들에 대한 의심과 회의 때문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노래 해석을 가로막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구절들을 새롭게 풀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현대어로 옮겨 노랫말의 내적인 진행 논리를 검토하고, 그런 구성 속에서 화자의 정서가 어떻게 변화하며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분석하였다.
내가 시도한 어석은 기존 논의들과 사뭇 다르다. '全 져재'는 '온전히 저자에'로, '노코시라'의 목적어는 '짐'이 아닌 '달빛'으로, '내 가논□'는 '내(我)가 가는 곳'이 아닌 '(낭군께서) 물가를 가는데'로 풀었다. 어석을 할 때는 문법이나 직관에만 의지하지 않고, 발화의 맥락과 백제어에 대한 기왕의 연구 성과도 십분 활용하였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 <정읍사> 해석에 걸림돌이 된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새로운 어석의 결과로, 기원을 핵심으로 하는 화자의 정서적 흐름과 노래의 전체적인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화자의 정서는 2단 구성의 반복을 통해 심화 되고 명료화되고 구체화 되어, 형식적으로 매우 잘 짜인 노래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화자는 떠오르는 달을 향하여 진심을 다해 남편의 안녕을 기원하는 정서로 일관한다. 이를 토대로 보면, <정읍사>가 순수한 사랑 노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The reason for this study was doubts and skepticism about the views of Jeongeupsa as a lewd song. To solve such a problem, first of all, I reinterpreted phrases that hindered the interpretation of the song or caused misunderstandings. I translated the result of the reinterpretation into modern language and then examined the inner logic being progressed in lyrics based on the translation. In addition, I analyzed how the female speaker's emotion changed and how the meaning of lyrics was formed in the logic of composition.
The linguistic analysis I have tried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previous discussions. I regarded '全 져재' as '온전히 저자에(safely in marketplaces)', the object of '노코시라' as '달빛(moonlight)' not '짐(luggage)' and '내 가논□' as '(낭군께서) 물가를 가는데(on the way of passing by stream)' not '내(我)가 가는 곳(where I go)'. In this process of analysis, I did not depend on factors of grammar and intuition but utilized the results of previous research on the context of speech and the language of Baekje. As a result of this analysis, I could solve most of the problems that were obstacles to the interpretation of Jeongeupsa.
As a result of the new linguistic analysis and interpretation, I could understand the overall meaning of the song and the emotional flow of the female speaker, which had the prayer at its core. The emotion of the speaker was clarified and embodied by the dual-two-step composition. From this point of view, I could recognize this song as a very well-formed song. The speaker maintained the emotion of praying for her husband's well-being with all her heart toward the rising moon. Based on this, there was no doubt that Jeongeupsa was a pure love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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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원가(怨歌)>의 재구성 -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 따른 문학적 해석 -

저자 : 고운기 ( Ko Woon-kee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7-15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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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기술의 大綱을 『삼국유사』에 보수적으로 적용하는 狹量은 경계해야 한다. <怨歌> 읽기 또한 그렇다. 信忠의 일은 一然으로부터 무려 600여 년 전이다. 부실한 기록과 오랜 口傳 사이에서 어떤 변이가 일어났는지 측정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일연은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신충과 단속사를 이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의도란 避隱 편에 맞는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 찾기였고, 그래서 이야기는 설화적 원리의 작동 아래 증식되어 간다.
두 가지 점을 새로 해석하였다. 첫째, <원가>의 끝에 붙인 '後句亡'이다. 사라진 후구의 두 줄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원망하여 노래를 지었다'고 하나, 노래가 원망만을 표현했을 리는 없다. 일연은 신충이 만년에 아름다운 은거의 길로 들어섰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이 『삼국사기』의 誤讀이라도 어쩔 수 없다. 오독이라면 분명 흠이 되지만, 오독하지 않았다면 避隱 편의 꽃이라 할 '신충괘관'은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贊을 붙이는 次第에 장년에서 만년까지 신충의 생애를 縱觀하되, 사라진 후구에 대신할 역할까지 부여해 보고 싶었다. 실제 잃어버린 두 줄은 회한의 영탄 정도였겠지만 말이다
둘째, 贊에서 '吾皇'이다. 번역하여 '우리 임'이라 하고, 뜻으로는 '부처님'으로 본다. 벼슬을 놓고 절로 들어간 신충이 임금을 위해 복을 빌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처님에게 비는 것이 당연하다. '祝吾皇'은 '오황의 (복을) 빈다'가 아니라 '오황에게 (복을) 빈다'로 볼 수 있다. 좀 더 부연해 번역하면, “우리 부처님에게 나라와 임금과 백성의 강녕을 빌리.”가 된다. 일연이 생각한 신충의 바른 은거는 이렇다. 그런 신충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원가>의 잃어버린 두 구절을 贊으로 대신해 본 것은 아닐까.
앞에 <원가> 여덟 줄을 놓고 贊의 마지막 두 줄을 “저 편(隔岸), 산 구비는 꿈에 자주 어리니/ 이제부터 길이 향불 피워 부처님께 복 빌리.”와 같이 번역해 이어 보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隔岸은 隔句처럼 들린다. 굳이 '後句亡'이라 밝히면서 두 줄이 사라진 사실을 환기시킨 저변에는 이렇게 補入해 보려는 뜻이 도사려 있는 듯하다. 이것이 '<원가>의 재구성'이다.


Sin-chung(信忠)'s story was over 600 years ago from Il-yon(一然). It is very difficult to measure what variation has occurred between poor records and long-standing transmission. Il-yeon would have wanted to continue Sin-chung and Dansoksa(斷俗寺) with certain intentions. The intention was to find the beautiful protagonist of life on the side of Piun(避隱), so the story multiplied under the operations of the narrative principle.
Two points were interpreted anew. First, it is the 'Lost the back phrase(後句亡)' attached to the end of 'The song of resentment(怨歌)'. What were the two lines of the missing epigram? The song cannot have expressed the only resentment. Il-yeon read an article that Shin-chung entered the beautiful hidden path later in life. Even if it misread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三國遺事). Misreading is flawed, but the story wouldn't have been made without it.
Second, in Chan(贊), it is the 'Our Emperor(吾皇)'. Translated into 'Our Lover', meaning 'Budda'. Shinchung, who entered the temple after leaving his government post, said he would bless the king. Then it is natural to pray to Buddha. Here's what Il-yeon thought of Shin-chung's right secret. Perhaps he replaced the two lost verses of 'The song of resen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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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세보 유배시조에 나타난 '병든 몸'의 표현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정인숙 ( Jeong In-soo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7-19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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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보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사대부 시조 작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본고에서는 이세보가 신지도 유배와 관련하여 지은 작품에 '병든 몸'의 인식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유배일기인 『신도일록』을 병자(病者)의 시선에서 검토하고 일기의 뒤편에 수록된 유배시조에 드러난 '병든 몸'의 표현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논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신(孤臣)의 충절의식의 표출에서 자식의 사친(思親)의 감정 토로로 초점이 이동된 점이다. 이세보의 유배시조 전체를 놓고 볼 때 충절과 강개로 인해 병이 들었다고 표현함으로써 군신 관계의 맥락 안에서 충절의식을 표출하는 데 병든 몸이 언급되었던 것에서 실제 육체적으로 병든 자식의 처지를 드러냄으로써 부자 관계 속에서 병든 몸이 인식되는 방향으로 옮아간 점이 포착된다. 둘째, 육체적으로 불편한 몸을 인식함과 더불어 유배지의 누추한 현실이 감각적으로 환기된 점이다. 병든 탓에 거동도 쉽지 않은 몸으로 불결한 공간에서 온갖 벌레들에게 고통 받는 현실이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통해 포착된다. 셋째, 병든 청춘의 탄식이 드러나고 병자의 고독감이 투영된 점이다. 나이로는 삼십도 안 된 청춘이지만 병든 몸은 그를 탄식하게 했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병자의 고독감은 심각하게 그려진다.
이세보가 병들어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유배지의 열악한 의식주 환경을 견뎌내기란 어려웠을 것이고 게다가 젊은 나이에 그런 처지에 놓였기에 스스로 탄식하고 자기 연민에 젖어들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든 몸으로 유발된 고통은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을 돌아보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게 주목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향후 국문시가 작품을 통해 포괄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Lee Sebo is known as a poet representing the 19th century. His exile works show the importance of awareness of the sick body. This paper aims to review his exile diary(Sindoillok) as a record of a sick person and examine the expression aspects and meaning of the sick body in his exile-sijo.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focus shifts from expressing a sense of loyalty as a servant to expressing his feelings for his parents as a son. It is captured that the sick body has moved from expressing loyalt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and his servant to expressing the mind of parents in the father-son relationship. Second, recognition the physically ill body and the shabby reality of exile is sensibly confirmed. The reality of suffering from all kinds of bugs in a dirty space with a body that is not easy to move due to illness is captured through senses such as sight, hearing, and touch. Third, the sigh of a sick youth is revealed and the solitude of a sick person is projected. Lee Sebo was less than 30 but his sick body let him sigh, and the solitude of a sick person who doesn't care for anyone is portrayed seriously.
Lee Sebo's exile-sijo reveals the self-compassion of a sick youth. The pain caused by the sick body is thought to have caused him to pay more attention to himself and reflect on himself. The attitude of taking care of oneself and reflecting on oneself is very important, this requires comprehensive research on the Korean classical poetry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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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남도잡가 <보렴>의 문학적 연구

저자 : 김기종 ( Kim Ki-jo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1-21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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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렴>은 남도잡가라는 모음곡 양식의 서두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현재에도 꾸준히 불리고 있으며, 여타의 잡가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연구의 초창기부터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보렴>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국악학계의 관련 논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 문학적 연구는 부진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노랫말 분석과 내용 구조의 파악을 통해 <보렴>의 문학적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작품 분석에 앞서, 현재 전하는 여러 이본 가운데 수록 연대와 가사지의 유무를 기준으로 유성기음반·문헌·LP음반에서 한 작품씩을 선정한 뒤, 이들 작품의 노랫말을 비교·검토하였다. 그 결과, 수록연대가 가장 빠르고 노랫말의 표현 및 출처가 상대적으로 다양한 Victor 49053 음반(1930) 소재 작품을 본고의 텍스트로 확정하였다.
<보렴>은 노랫말의 내용 및 출처에 따라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락은 성수만세·국태민안·불법홍포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불교의식집인 『승가일용집』(1869)의 축원문을 노래한 것이다. 이 단락은 선행 연구에서 지적했던 '송도지사'가 아니라, 조선후기 사찰에서 행해지던 '축원'에 해당한다.
둘째·셋째 단락은 『천수경』의 경문 및 <보례게>·<법성게> 등의 摘句·변용과, 민간신앙 신격들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단락에서 화자는 사방의 화주를 청한 뒤, 관세음보살·석가여래 등의 불·보살과 당산·성황 등의 마을 수호신, 그리고 집터의 수호신인 오방지신의 稱名을 통해, 그들에 대한 예경·귀의를 표명하고 있다. 셋째 단락은 화주들과, 화주들이 모인 공간에 대한 엄정·결계를 시도하고 있다.
결국, <보렴>은 '축원→소청·예경·귀의→엄정·결계'라는 비교적 논리적인 전개 양상을 보이고, 이러한 내용 구조를 통해 불교와 민간신앙의 공존·혼융을 지향하고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다.


Boryeom is a work that decorates the beginning of the style of a suite of Namdo Japga. It is steadily sung even today and has a religious color that cannot be found in other choreographers' works. Due to these points, it has been the subject of attention since the early days of research, but the researches on Boryum up to now have been mostly devoted to related discussions in the Korean classical music field, and literary research is in a sluggish situation.
Therefore, in this article, I examined the literary character of Boryeom by analyzing the lyrics and grasping the structure of the contents. Before the analysis of the work, the lyrics of various scripts were compared and reviewed. As a result, the works of voiced albums with relatively different expressions and sources of lyrics were confirmed as the text of this paper.
Boryeom is divided into three paragraphs according to the content and source of the lyrics. The first paragraph prays for the king to live long, for the country to be comfortable, and for the spread of Buddhism. It corresponds to the 'words of blessing' practiced at templ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second and third paragraphs consist of citations and transformations of Buddhist scriptures and listings of folk beliefs. In the second paragraph, the speaker calls for people who give wealth and then calls out the names of the guardians of the Buddha, the Bodhisattva, the village, and the family, expressing their courtesy and devotion to them. The third paragraph attempts to purify and purify the people who give wealth and space where they gather.

KCI등재

8<몽유가>의 작가 및 기록 방식과 몽유의 역할

저자 : 최은숙 ( Choi Eun Soo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1-24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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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몽유가>(1926)의 작가 및 작품 기록 방식을 살피고, '몽유(夢遊)'라는 시적 장치의 역할과 의미를 구명한 글이다. 연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몽유가>의 작가 문제이다. <몽유가>의 작가인 김홍기는 봉화 지역에 살던 안동 김씨 문중의 인물이며, 문필활동으로 지역에 널리 알려진 전통적 지식인이다. 그의 작품을 모은 『낙좌초고』에 지역인들의 행장과 만시가 다수 남아 있다는 것은 그가 문필활동으로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인물이 20대 후반에 쓴 <몽유가>가 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이러한 인물이 일제강점기에 쓴 작품이 전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둘째, 작품 기록 방식이다. <몽유가>는 한 면을 삼단으로 나누어 작품을 기록하고 있는데, 맨 위에 작품 관련 주석이 기록되어 있다. 주석은 작품과 관련한 인물과 지명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작가의 소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주석 자체만으로도 인물, 지명, 역사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주석 처리의 방식은 가사 작품 수록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며, 일반적인 한문 서적에서도 흔하지 않은 사례이다. 가사 작품의 기록 방식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몽유가>의 본문은 국한문혼용으로 표기되어 있고, 한자 옆에 한글이 병서되어 있다. 주석 처리 방식이나 가사의 내용을 보더라도 작품을 쓴 사람은 한문에 더욱 익숙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한글을 병서한 이유는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몽유가>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특별히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가사 음영을 보다 용이하도록 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셋째, <몽유가>는 전대 몽유가사의 전통을 잇고 있는 작품이면서, 몽유라는 시적 장치는 전대와 차별적인 역할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옥경몽유가>나 <길몽가>의 경우 '몽유'는 꿈속에서 개인적 욕망을 성취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몽유가>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인물을 만남으로써 무상감을 확인하거나, 집단 기억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호출함으로써,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대의명분과 의리의 추구가 그것이다. 이는 일면 수구적인 태도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충군에서 애국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상의 연구는 <몽유가>에 관한 본격적인 작품론으로서 의미를 지니면서, 몽유가사의 양식적 의의와 후대적 변모를 살피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향촌지식인의 시대에 대한 응전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닐 것이다.


This article scrutinizes the author of Mongyuga (1926) and how the text was written, and it elucidates the role and meaning of the poetic device of a dream. The research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author of Mongyuga is discussed. As the author of Mongyuga, Kim Hong-ki lived in Bonghwa as a member of the Kim clan based in Andong and was a traditional intellectual who was well known in the region for his literary writings. It is quite interesting that Mongyuga, which was written by a person in his 20s, is extant.
Second, how the work is written is described. The text of Mongyuga is recorded on each of the pages, which are split into three levels, including annotations on the work at the topmost level. The annotations provide knowledge related to the people and places related to the work or provide related knowledge while revealing the grounds of the author's thoughts and feelings. In particular, it is very interesting that the annotations, which are based on the plot, provide ample knowledge and information on the people, places, and history. Such handling of annotations is very rarely involved in the documentation of gasa works and is not common in ordinary academic books.
The body of Mongyuga is a mixture of Korean and Chinese with, both languages are written side by side. The handling of the annotations and the content of Gasa(the poetic genre from the Joseon period) suggests that the author was familiar with the Sino-Korean writing style. That Korean was added right next to Chinese was probably intended to ensure that even those who were unfamiliar with Chinese could easily read Mongyuga, and contemporary people could read it aloud more comfortably.
Third, Mongyuga, which carried on the tradition of the Gasa of somnambulism from the earlier years, sets itself apart from earlier works in the role and meaning of the poetic device used. In the case of Okgyeongmongyuga or Gilmogga, which were created by provincial intellectuals, somnambulism contributed to fulfilling a person's wishes or making a person's presence felt. In contrast, Mongyuga affirms the fleetingness of life through its inclusion of historical facts and figures or by proposing objectives for the community by recalling historical facts as collective memory. These objectives refer to the pursuit of just cause and loyalty. While this may suggest an entrenched resistance to change, this is significant in that it betrays a possible switch from loyalty to the kingship to patriotism, given the contemporary condition under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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