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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 : 한국시가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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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6-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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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56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604
한국시가연구
56권0호(2022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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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권순회 ( Kwon Soon-hoi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4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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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새로 발굴한 필사본 『불우헌유고(不憂軒遺稿)』의 문헌 특성을 밝히고 <상춘곡(賞春曲)>의 작자 문제를 재론하는 데 있다.
2장에서는 필사본 『불우헌유고』의 서지에 대해 고찰했다. 필사본 『불우헌유고』는 1책, 세로×가로 32.5×21.5cm 총 38장(표지포함) 분량이다. 필사한 인물과 시기는 알 수 없다. 표제는 “不憂軒遺稿”이다. 표지 왼쪽 상단에서 흐릿하게 포착된다. 서발이나 행장, 묘갈명 등이 없고 국문시가와 산문을 한시 앞에 둔 것도 특이하다. 여백에 교정을 본 내용을 적어 놓거나 같은 작품이 둘로 나뉘어 수록되는 등 아직 정리되지 않은 흔적들이 곳곳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초고본에 가까운 판본으로 판단된다.
3장에서는 초간본 『불우헌집』과의 대교를 통해 필사본 『불우헌유고』의 특성을 파악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필사본 『불우헌유고』에 <상춘곡>이 수록되지 않았다. 초간본 『불우헌집』에는 '歌曲'이라는 항목에 <不憂軒歌>, <不憂軒曲>, <賞春曲>이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필사본 『불우헌유고』에는 별도의 항목 구분 없이 권두(卷頭)에 <不憂軒曲>과 <不憂軒短歌二章>만 두었다. 또 필사본 『불우헌유고』는 모두 이두(吏讀)로 표기로 되어 있는 반면에 초간본 『불우헌집』에는 <불우헌곡>은 이두, <불우헌가>와 <상춘곡>은 18세기 근세 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둘째, 산문의 경우 초간본 『불우헌집』에 일실된 대목을 필사본 『불우헌유고』는 온전하게 갖추고 있다. 초간본 『불우헌집』의 <又陳弊疏>에는 '공법(貢法)에서 토지의 품등에 대한 폐단'과 '도적을 다스리는 법이 너그러운 폐단'을 논한 항목의 일부가 일실되었고 '이하의 글은 일실되었다(此下逸)'고 별도로 주석이 붙어 있는데 필사본 『불우헌유고』에는 이 대목이 모두 나온다.
셋째, 한시는 필사본 『불우헌유고』에는 83제 156수, 초간본에는 54제 92수가 수록되어 있다. 필사본 『불우헌유고』에는 초간본에 수록된 작품이 모두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29제 64수가 더 실려 있다. 정극인 작품은 필사본 『불우헌유고』에 60제 106수, 초간본에 36제 58수가 수록되어 있다. 필사본 『불우헌유고』에 24제 48수가 더 많다. 필사본 『불우헌유고』에 새로 등장한 시제 대부분이 정극인 작품이다. 이와 함께 초간본 『불우헌집』과 필사본 『불우헌유고』에 동시에 수록된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같은 시제인데도 불구하고 초간본 『불우헌집』에 수록된 작품의 분량이 적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이상의 대교 결과 필사본 『불우헌유고』와 초간본 『불우헌집』 간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필사본 『불우헌유고』는 초간본 『불우헌집』에 일실된 내용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수나 분량도 훨씬 많다. 이에 본고에서는 필사본 『불우헌유고』를 황윤석이 행장에서 언급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유실되기 이전의 판본으로 보았다.
4장에서는 <상춘곡>의 작자 문제에 대해 재론하였다. 우리가 필사본 『불우헌유고』를 통해 확인한 분명한 사실은 <상춘곡>이 애초 정극인의 유고에는 들어있지 않았고 초간본 『불우헌집』을 간행하면서 문집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본고에서는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정극인이 <상춘곡>을 지었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춘곡>은 후대에 집안 자제나 향리의 누군가가 지은 작품으로 여기에 치사한 후 태인에서 강학에 힘쓰며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했던 정극인의 만년의 삶을 중첩하여 그의 작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작품의 권위를 부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향리를 중심으로 정극인소작으로 널리 유통되었고 문집에까지 포함되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veal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the newly discovered manuscript 『Buluheonyugo』 and to discuss the authorship issue of < Sangchungok > again.
In Chapter 2, the bibliography characteristics of the manuscript 『Buluheonyugo』 were examined. The manuscript 『Buluheonyugo』 is one book, length 32.5×width 21.5cm, and a total of 38 pages. The person who copied it and when it was copied is unknown. The title of the book is “Buluheonyugo(不憂軒遺稿)”. It looks blurry at the top left of the cover. The most basic things that a collection of literature should have, such as prolog and epilog, records of a deceased person's life, and epitaphs put in graves, were omitted. It is also unusual to put Korean poetry and prose before Chinese poetry. It is judged to be a version close to the original edition, as there are still unresolved traces everywhere, such as writing the corrections in the margins or recording the same work in two.
In Chapter 3, the characteristics of manuscripts 『Buluheonyugo』 were identified through comparison with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不憂軒集)』. the results are as follow.
First, < Sangchungok > was not included i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In the first edition 『Buluheonjip』, < Buluheonga(不憂軒歌) >, < Buluheongok (不憂軒曲) >, and < Sangchungok > are included in the item 'Gagok(歌曲)'. On the other hand, the manuscript 『Buluheonyugo』 contains only < Buluheongok > and < Buluheonga > at the beginning of the without a separate item name. In addition, all manuscripts 『Buluheonyugo』 are written in Idu(吏讀), whereas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 Buluheongok > is written in Idu, and < Buluheonga > and < Sangchungok > are written in the modern Korean language of the 18th century.
Second, in the case of prose, the manuscript 『Buluheonyugo』 is wholly equipped with the passages lost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In < Ujinpyeso(又陳弊疏) > of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some of the articles discussing 'the evils of land grades in the tax law' and 'the tolerant evils of the law governing thieves' were lost, and 'the following articles were los(此下逸)' is annotated separately, but all of these passages appear i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Third, Korean poetry contains 83 titles and 156 numbers i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and 54 titles and 92 numbers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The manuscript 『Buluheonyugo』 contains all the works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as well as 29 titles and 64 more. Jeong Geuk-in(丁克仁)'s works contain 60 titles and 106 numbers i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and 36 titles and 58 numbers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There are more 24 titles and 48 numbers i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Most of the titles of the poems newly appearing i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are the works of Jeong Geuk-in. Comparing the works included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and the manuscript 『Buluheonyugo』 at the same time, there are many cases where the number of works included in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is small despite the title of the same poem.
As a result of the above comparison, it was revealed that there was a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the manuscript 『Buluheonyugo』 and the published first edition 『Buluheonjip』. The manuscript not only has the contents completely lost in the published edition 『Buluheonjip』, but also has a much larger number and volume of works. Therefore, in this paper, the manuscript 『Buluheonyugo』 was regarded as the version before it was lost in the process of the Imjin War, as mentioned by Hwang Yun-Seok(黃胤錫).
In Chapter 4, the issue of the author of < Sangchungok > was reconsidered. What we have confirmed through the manuscript 『Buluheonyugo』 is that < Sangchungok > was not originally included in Jeong Geuk-in's remains but was included in the publication of the first edition 『Buluheonjip』. In this paper, by analyzing the reasons from various angles, we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re is little possibility that Jeong Geuk-in wrote < Sangchungok >. < Sangchungok > is thought to be a work that was later written by the children of the family or by someone in their hometown. Here, after resignation, it is judged that the authorship of the work was given by overlapping the life of Jeong Geuk-in, who lived a simple life in Taein(泰仁) and devoted himself to lectures and academics and transformed it into his work. Afterward, it was widely distributed as a work written by Jeong Geuk-in around his hometown and was even included in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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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원 ( Lee Sang-won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3-7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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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옥의 <가자 송실솔전>에 나오는 <취승곡>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집필된 것이다. 이를 위해 취승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정현석의 『교방가요』 잡희 부분에 사당, 풍각, 초란, 산대, 곽독 등과 함께 기록된 것으로 보아 취승은 잡희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사 <남아가>에 산대를 설치하고 펼치는 놀이 중에 취승이 포함된 것을 통해 취승이 산대희의 일종이라는 점, 취승이 만석중과 짝을 이루어 소개되고 있는 것을 통해 산대희에서 만석승희와 취승희가 한 세트로 존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1796년(정조 20년) 10월 16일 화성 성역의 완성을 축하하는 낙성연을 그린 채색화 <낙성연도>를 통해 만석승희는 만석중과 소매(기생)로, 취승희는 취승과 소매(기생)로 구성된 놀이임을 알 수 있다.
만석승희와 취승희가 한 세트로 존재하게 된 것은 이것이 원래는 연결되는 하나의 고사에서 유래한 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송나라 이래 지속적으로 인기를 끈 이야기로서 고사, 잡극,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된 <도류취>라는 것이 있는데 이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 만석승희와 취승희로 추정된다. <도류취>는 옥통선사가 류선교의 계략에 빠져 그가 보낸 기생에게 유혹되어 파계한 후 류선교의 딸 류취로 환생하여 방탕한 삶을 이어가자 옥통선사의 친구였던 월명화상이 류취를 제도하는 이야기다. 이 중 옥통선사가 기생에게 유혹되어 파계하는 과정을 그린 놀이가 만석승희이고, 월명화상이 옥통선사의 환생인 류취를 제도하는 과정을 그린 놀이가 취승희로 보인다.
이렇듯 만석승희와 취승희는 산대희의 일종으로 공연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산대희에서 독립하여 별도의 산대놀이나 탈춤으로 발전해 갔으며, 이 과정에서 놀이의 성격도 종교극(불교도탈극)에서 오락극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취승 캐릭터의 이름도 취바리로 바뀌었는데 여기에는 다소 복잡한 사정이 개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취승은 원래 <도류취>의 월명화상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런데 월명화상의 이미지가 신선도화극에 등장하는 철괴리의 이미지와 겹쳐지게 되면서 취승을 철괴리로 인식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 철괴리가 체과리 → 취과리 → 취바리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취승곡>은 명칭을 고려할 때 취승희에서 불린 노래라 생각하기 쉽지만, 노래의 내용을 고려하면 만석승희에서 불린 노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석승희에서 불린 노래를 <취승곡>이라 한 것은 만석승희와 취승희를 포괄하여 취승희로 통칭하는 관행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석승희와 취승희를 포괄하여 만석승희로 통칭하는 관행도 함께 존재했는데, 이 때문에 일부 기록에서는 <취승곡>을 '만석중 노래'라고 부르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This study was designed to figure out the characteristics of Chuiseunggok in Lee Ok's Gaja Songsilsoljeon. For this purpose, the study set its first goal of examining the identity of Chuiseung.
Chuiseung is recorded along with Sadang, Punggak, Choran, Sandae, and Gwakdok in the Japhee part of Gyobanggayo by Jeong Hyeon-seok, which suggests that Chuiseung is a type of Japhee. The Gasa work Namaga includes Chuiseung in the group of games based on the installation of Sandae, which indicates that Chuiseung is a type of Sandaehee. There are also introductions that pair Chuiseung with Manseokjung, which indicates that Manseokseunghee and Chuiseunghee made a set in Sandaehee. The colored painting Nakseongyeondo, which depicts Nakseongyeon that commemorated the completion of the Hwaseong Fortress zone on October 16, 1796(the 20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shows that Manseokseunghee consisted of Manseokjung and Somae(Gisaeng) and that Chuiseunghee consisted of Chuiseung and Somae(Gisaeng).
Manseokseunghee and Chuiseunghee made a set because they originated from an ancient event and were both connected to it. The ancient event is Doryuchui, which has enjoyed consistent popularity since Song Dynasty in China and had diverse variations, including ancient stories, Japgeuk, and novels. It is estimated that Manseokseunghee and Chuiseunghee were formed under its influence. Doryuchui tells the story of Oktongseonsa, who fell prey to Ryu Seon-gyo's scheme, was enticed by a Gisaeng sent by him, and renounced Buddhism. After his death, he was reincarnated into Ryu Chui, the daughter of Ryu Seong-gyo, and lived in wildlife. Wolmyeonghwasang, one of Oktongseonsa's friends, enlightened Ryu Chui and led her to nirvana. It seems that Manseokseunghee depicts the process of Oktongseonsa being enticed by a Gisaeng and renouncing Buddhism and that Chuiseunghee depicts the process of Wolmyeonghwasang leading Ryu Chui, who was the reincarnation of Oktongseonsa, to nirvana.
Manseokseunghee and Chuiseunghee were performed as a type of Sandaehee, but they got separated from Sandaehee over time and developed into separate Sandae play or mask dance. In this process, their nature was converted from religious drama(Buddhist transcendence drama) to entertainment drama. In addition, the name of the Chuiseung character was changed to Chuibari, which involved rather complicated circumstances. Chuiseung was originally a figure that embodied Wolmyeonghwasang in Doryuchui. The image of Wolmyeonghwasang got to overlap with that of Cheolgoiri in Sinseongdohwa play, which made people perceive Chuiseung as Cheolgoiri. Then a wrong chain action happened from Cheolgoiri through Chegwari and Chuigwari to Chuibari.
Given its name, it is easily estimated that Chuiseunggok was sung at Chuiseunghee, but it is more rational than it was sung at Manseokseunghee based on the content of the song. A song that was sung at Manseokseunghee was called Chuiseunggok because of the practice of designating both Manseokseunghee and Chuiseunghee as Chuiseunghee. There was, of course, a practice to designate both Manseokseunghee and Chuiseunghee as Manseokseunghee. There are thus some records in which Chuiseunggok was called the “Manseokjung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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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승준 ( Lee Seung Jun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9-10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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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단산별곡>의 창작 맥락과 전승 동인을 검토하는 것이다. 오늘날 <단산별곡>의 작가에 대한 이해는 쟁점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신광수 또는 이계원의 소작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신광수의 작품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단산별곡>의 사료를 검토한 결과 이 작품은 이태희의 견해처럼 이계원의 소작으로 판단된다. 이계원은 전주이씨 덕천공파 9대손으로 함열현감과 단양군수를 역임한 인물이다. 단양군수로 재임할 당시 창하정을 중수하였는데, 창하정 중수는 단양 산수 유람 문화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이계원에게 자부심이 되었으며, <단산별곡>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단산별곡>은 읍지·악부를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 전승되고, 작품이 창작된 이후 수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단양 관기에 의해 가창(歌唱)되었다. <단산별곡>이 단양 산수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서 그 위상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에 그 동인에 대한 문제를 작품론적 측면에서 검토한 결과, <단산별곡>은 단양 지역에 대한 당대 사대부의 관념과 현실 인식을 포괄하는 복합적 구성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창하정 중수에 따른 단양 유람 문화에 대한 이계원의 기여와 더불어 작품의 활발한 전승을 가능하게 하였던 동인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This study reviews The Creation and Transmission Context of < Dansanbyeolgok >. Currently, the author of < Dansanbyeolgok > has not been confirmed. Nevertheless, it is understood as Shin Kangsoo. As a result of reviewing the records related to < Dansanbyeolgok >, the author is judged to be Lee Gyewon, as Lee Taehee claims. He worked as Governor of Danyang-gun and repaired Chang Hajung. It became a pride that this helped Danyang's cruise culture. And it also influenced the creation of the < Dansanbyeolgok >.
And < Dansanbyeolgok > was recorded in Eupji, Akbu, etc. And after the work was created, it was sung in Danyang for a long time. This shows that < Dansanbyeolgok > is a representative work of Danyang's cruise culture. Therefore,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cause, it was confirmed that < Dansanbyeolgok > encompasses SaDaebu's conceptual and realistic perception of the Danyang region.
First, < Dansanbyeolgok > expressed the perception of Danyang as the perception of Immortal Land in several ways and represented a realistic perception as a Sadaebu and as Governor of Danang-gun.
Next, < Dansanbyeolgok > reproduces Yi Hwang's cruise culture, which has an absolute influence on Danyang's cruise culture, and Gu-gok cruise culture, representing the Joseon Dynasty, while individual courses specifically reflect the reality of the time. This point needs to be reviewed along with Lee Gyewon's construction of Chang Hajung as the Governor of Daniang-gun. This would have been the reason why the work could be actively transmitted to future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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