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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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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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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54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596
한국시가연구
54권0호(2021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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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득연(金得硏)의 은거(隱居)와 <지수정가(止水亭歌)> 창작(創作)의 의미(意味)

저자 : 박연호 ( Park Youn-ho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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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김득연의 <지수정가> 분석을 통해 그의 은거와 작품 창작 목적 등을 살펴보았다. 김득연 문학에 관한 연구는 시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시조를 대상으로 출사나 정치현실, 강호자연 등을 바라보는 김득연의 태도나 시각 등이 연구되었다. <지수정가>는 시조 논의를 위한 보조 자료로 활용되거나 풍수지리와 관련된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작품의 구조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수정가>는 風水地理의 明堂으로서의 先壟과 이념의 실천 및 도통 계승 공간으로서의 止水亭 園林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이 '洞口못'을 매개로 결합된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는 후손들로 하여금 가문의 번영 및 결속(先壟)과 도통을 계승하고 유가이념을 실천(止水亭 園林)하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키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가문 구성원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陰宅風水의 明堂은 가문 내 구성원들에게만 의미가 있고, 道脈川에서 退溪 학맥의 첫 번째 계승자로 자신의 부친인 金彦璣를 배치한 것은 영남 도학의 계승이 자신의 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가문구성원에게 주지시킴으로써 자부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수정가>는 가문 구성원들로 하여금 先壟과 지수정 원림을 매개로 결속을 강화하고, 도통을 계승하고 출처의리를 실천하는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게 할 목적으로 창작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기존 논의에서는 김득연이 정치현실과 출사에 무관심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수정가>에는 은거한 이유를 時運(亂世)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은거를 결심하고 지수정을 지은(1615) 이후부터 77세까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로 인해 세상에 뜻을 펼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 한시를 지속적으로 창작하였다. 따라서 김득연은 정치현실과 출사에 무관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615년 이후 <지수정가>를 포함한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은거가 治亂에 따라 出處를 결정하는 朱子의 出處義理에 따른 것임을 밝혔다. 이는 김득연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대북정권의 잔혹한 정치행위와 왕실의 폐륜이 자행되던 당대 현실을 亂世로 인식하고 出處義理에 입각하여 은거를 결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60세라는 나이 또한 출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로 작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Research on Kim Deuk-yeon's literature has been focused on Sijo. The issues can be summarized as the reason for the seclusion, the perception of entering a government office or politics, and the meaning of the seclusion space. This is an essential issue in that it is related to the content and creative purpose of < Jisoojeong-ga >.
< Jisoojeong-ga > has a structure in which a family burial ground is a propitious site for a grave of divination based on topography and the Jisoojeong garden as a space for the practice of ideology and Confucian orthodoxy are combined through the 'the village entrance pond'. The family burial ground promotes family prosperity and solidarity, and the Jisoojeong garden is intended to emphasize that his family is the subject and center of ideological practice and Confucian orthodoxy succession. The 'village entrance pond' shares two meanings: the necessity of divination based on topography and the symbol of Neo-Confucian providence. Because of this, it acts as a link between the two disparate things and shifts the focus of the narrative from the geography of feng shui to the discipline of Neo-Confucianism. In other words, < Jisujeongga > was created to unite a family and allow descendants to continue the family tradition of Confucian orthodoxy succession and the practice of Righteousness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through the family burial ground and Jisoojeong garden.
On the other hand, existing discussions believe that Kim Deuk-yeon was hiding because of his hatred of factional politics or indifference to politics and public affairs. However, since 1615, he created some works expressing the regret that he could not express his will due to the absurd reality. Moreover he revealed that his retreat was based on Joo-hee's Righteousness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This means that he recognized the brutal political actions of the Great North clique(大北派) and the abolition of the royal family as a troublous time, therefore decided to retreat based on Righteousness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Moreover the age of 60 must have been an important reason he had to give up his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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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 제가 평으로 살펴본 산운시(山雲詩)의 특징과 의미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6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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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山雲) 이양연(李亮淵, 1771~1856)은 조선 후기에 활약했던 뛰어난 시인이다. 그의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은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료였다.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 뒤에 합철(合綴)되어 있어서 그간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총 181제 207수가 수록되어 있다.
『임연당별집』은 산운 이양연 한 사람의 시와 그 시에 대한 네 사람의 총평(總評)과 세평(細評)을 함께 싣고 있다. 전체 작품평은 크게 5언 절구에 대한 긍정적 평가, 5언 고시(古詩)의 한위고악부(漢魏古樂府) 유사성, 근체시의 성당풍(盛唐風) 성향, 정서적 감염력 등을 주로 이야기했다. 형식면에서는 5언 절구와 5언 고시를 높이 평가하였고, 반면 7언 절구와 7언 율시는 아주 낮게 평가하였다. 근체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산운의 선택과 집중을 함께 보여준다. 내용면에서는 진솔하고 꾸밈없는 정서적 여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감정의 과잉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제시되었다.
개별 작품평은 유흥경(柳興慶)이 11則, 이농인(李農人)이 1則, 성재숭(成載榮)이 8則, 유희(柳僖)가 9則을 각각 남겼다. 형식적으로는 5언 고시 17편, 5언 절구 7편, 5언 율시 3편, 7언 절구와 7언 율시 그리고 6언시 각 1편씩 언급 되고 있다. 이러한 세평의 결과는 총평과 거의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민요풍 한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예상을 벗어난 결과다. 이 시들이 조선풍 한시의 새로운 실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전통 한시의 이완과 붕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운 한시에 대한 평들을 종합해 보면, 5언 고시와 악부시에 대한 높은 관심과 평가를 엿볼 수 있다. 그동안 산운시 연구에서 5언 고시와 악부시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향후 과제로 남겨둔다.


Sanwoon Lee Yang-yeon (1771~1856) is an outstanding poet active in the late Joseon Dynasty. His 『Imyeondang Byeoljip』 was an unknown source. This is because its existence has not been revealed so far. After all, it is integrated behind 『Hangaekgunyeon』. It contains a total of 181 and 207 numbers.
『The Imyeondang Byeoljip』 contains a poem by one Sanwoon Lee Yang-yeon, and four people's general reviews and reviews of the poem. The overall review mainly talked about the positive evaluation of the five-word mortar, the similarity of Hanwi Goakbu in the five-word poetry, the tendency of the cathedral in Geunchesi, and significant emotional infectivity. The five-word and five-word exams were highly evaluated in terms of form, while the seven-word and seven-word poems were very low. The negative evaluation of myopia shows both the choice and concentration of acid luck. In terms of content, while highly appreciating the sincere and unpretentious emotional afterglow, it was also presented on problems that can cause excessive emotions.
Individual reviews were left by Yoo Heung-kyung, Lee Nong-in, Seong Jae-sung, and Yoo Hee, respectively. Formally, 5 Eon-si, 5 Eon-si, 5 Eon-yul-si, 7 Eon-yul-si, and 6 Eon-si are mentioned. The results of these reviews are almost similar to those of the general reviews. However, there is no mention of the "temporary folk style" is beyond expectations. This is because these poems can be seen as a new realization of Joseon-style Chinese poetry, but they can also be seen as relaxation and collapse of traditional Chinese poetry.
If you put together the reviews of Sanwoon Hanxi, you can get a glimpse of the high interest and evaluation of the 5 Eonsi and Akbushi. Unfortunately, until now, research on Sanun City has not paid much attention to the 5 Eon-si and Akbushi. Specific research on this part is left as a future t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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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 후기 가사에서 타자로서 서양의 재현 양상과 근대성의 관계

저자 : 이도흠 ( Lee Do-heum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9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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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후기에 조선 사회가 서양이라는 타자를 만나 이를 가사로 재현한 양상과 근대성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타자를 동일성의 대립자, 자아의 이상, 대대적(待對的) 자아, 낯선 남으로 범주화하고 이에 부합하는 가사 텍스트를 찾아 분석한 후에 양자를 종합하였다.
<병인연행가>의 인용문처럼 조선 문화와 이데올로기 등으로 동일성을 확보하고 서양을 동일성의 대립자로서 간주할 경우, 이에 대해 조선인은 공포, 불안,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된다. 서양을 동일성의 대립자로 재현한 담론을 수용하는 조선인들은 자기긍정의 입장에서 조선의 문화와 사상, 이데올로기를 준수하고 타자를 부정하여 서양의 문화, 사상, 이데올로기 등에 대해서는 배척을 하거나 폭력을 행하려 한다. 이들은 서양문화와 서구적 근대화에 대해 쇄국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셔유견문록>의 인용문처럼 서양을 자아의 이상으로 간주할 경우, 이에 대해 조선인은 동경과 선망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렇게 서양을 자아의 이상으로 재현한 담론을 수용하는 조선인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타자를 지향하여 그를 모방하고 존경하여 타자를 자기화하려 한다. 이들은 유럽중심주의에 빠져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조선을 개화시키려 하였다. 더 나아가 그 중 일부는 서양을 일본으로 대체하였으며, 이는 친일과 매판행위를 근대화와 동일화하는 데로 나아갔다.
<해유가>의 인용문처럼 서양을 자기 안에 품어 대대적 자아로 간주할 경우, 이에 대해 조선인은 반성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렇게 서양을 대대적 자아로 재현한 담론을 수용하는 조선인들은 자기를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고 타자를 품어 연대하거나 자신을 성찰하며 주체를 형성한다. 이들은 서양의 문물을 성찰적으로 수용하였다.
<무자서행록>의 인용문처럼 서양을 낯선 남으로 여길 경우, 이에 대해 조선인은 처음에는 이질감을 갖고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더 만남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호기심과 다가가기로 변화한다. 이렇게 서양을 낯선 남으로 재현한 담론을 수용하는 조선인들은 처음에는 자기방어의 자세를 취하여 타자를 경계하였지만, 접촉이 이어질 경우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다. 접촉이 더 지속적으로 진행될 경우 이는 주체와 타자와 관계에 따라 동일성의 대립자로서 자아, 자아의 이상, 대대적 자아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This study analyzed the aspects and relationship with modernities that Joseon society met with the West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represented it in the Kasa. First, the present writer classified the other into four categories: the opposite of identity, the ideals of the ego, the relation of daedae(待對) of ego, and the stranger. Then, after analyzing the corresponding Kasa texts, both were synthesized.
As in the quotation of Byeongin-yeonhaeng-ga, when identity is composed with only Joseon culture and ideology and the West is regarded as the opposite of identity, Koreans have feelings of fear, anxiety, and anger. Koreans who accept the discourse that represents the West as the opposite of identity, observe the culture, thoughts, and ideology of Joseon from the standpoint of self-affirmation, and deny others, rejecting or committing violence against Western culture, thoughts, and ideologies. They maintained an isolationist attitude toward Western culture and modernization.
As in the quotation of Syeoyu-gyeonmun-rok, when the West is regarded as the ideal of the self, Koreans have feelings of admiration and envy. Koreans who accept the discourse that represents the West as the ideal of the self, deny themselves and aim for others, imitate and respect them, and try to make others themselves. They fell into Eurocentrism and actively embraced Western culture and tried to enlighten the Joseon dynasty. Furthermore, some of them replaced the West with Japan and identified pro-Japanese and comprador acts with modernization.
As in the quotation of Haeyu-ga, when the West is embraced within and regarded as the relation of daedae of ego, Koreans will have feelings of reflection. Koreans who accept the discourse that represents the West as the relation of daedae of ego affirm and deny themselves, embracing others, solidarity, self-reflection, and forming the subject. They reflectively accepted Western culture.
As in the quotation of Muja-seohaeng-rok, when the West is viewed as a stranger, Koreans initially feel alienated and distance themselves from them. However, if more encounters are made, this will change to curiosity and approach. Koreans who accepted the discourse that represents the West as strangers were initially wary of others by adopting a self-defense posture, but if contact continued, they approached with curiosity. If the contact proceeded more continuously, depend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ther, it was transformed into the opposite of identity, the ideals of the ego, the relation of daedae of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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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01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당시의 견문을 수년 후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ee)』이라는 제목의 여행기로 출간했던 프랑스 시인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의 한국시가에 대한 인식과 논평을 검토하였다.
뒤크로는 자신이 관찰한 사항만을 다루려는 지향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국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재구하려는 지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전자는 '관찰자'적 지향이라 칭할 수 있다. 한국을 분석이나 교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한 발치 물러선 위치에서 한국인의 일상 풍경을 글로 옮기려 하였기 때문이다. 후자의 지향은 '직관'에 해당한다. 뒤크로는 자신이 접할 수 없는 한국인의 삶의 심층에도 관심을 두고서 나름의 직관으로 그 내막을 채워 나갔던 것이다. 양자를 종합하면 뒤크로는 '직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또는 '관찰자적 직관'을 발휘하여 자신의 한국 체험을 서술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의 시와 노래에 대한 뒤크로의 인식을 살필 때에도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한국시가에 대해 당시까지 가장 학술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인물은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이다. 그러나 같은 프랑스인이지만, 쿠랑과 뒤크로가 한국시가를 다루는 방식과 목적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쿠랑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한국시가의 존재 양상을 기술하려 한 반면, 뒤크로는 한국시가 자체의 존재상보다는 작품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와 일상 등 내용적 측면을 중시하였고 그 이면의 사정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데 유념하였다. 쿠랑과 뒤크로 사이의 이 같은 편차는 한국시가를 논의했던 영미권 인사들 가운데 제임스 게일(James Gale)과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가 노정했던 편차와 도 유사하다.
뒤크로는 자세한 시적 상황을 번역시에 개재하였던 헐버트의 영역 작업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헐버트의 의역 방식에 따르면서도 뒤크로는 작품 본연의 맥락을 가급적 되살리려는 중용을 택하기도 하였다.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게일의 영역을 취하되, 유사한 주제를 지닌 서너 편의 시조를 하나의 맥락으로 재편함으로써 원작의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서구 독자들이 한국시가의 느낌을 한결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종의 '엮음'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뒤크로는 일부 시구 또는 시행을 누락하거나 원작에는 없는 표현을 삽입하여 시상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가 하면, 시조가 지닌 세 단계의 전개 방식을 번역시에 어떻게든 드러내고자 조처하였다. 아울러 뒤크로는 한국의 속담에서 발견되는 응축적이고 생기발랄한 표현력이 한국문학의 저변을 이룬다고 서술하였는데, 이는 속담과 한국시가의 표현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편, 한국시가에는 고달픈 현실의 문제보다는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정서가 많이 나타난다는 뒤크로의 총평도 주목된다. 그의 언급은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인의 삶에 한국시가가 최적의 가치를 지닌다는 적극적인 평가와 잇닿아 있다.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든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환기함으로써 고난에서 한 발 비껴 설 수 있는 계기를 한국인들은 문학, 특히 시가를 통해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시가 작품을 여러 편 번역하여 프랑스 독자들에게 선보였던 이유도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가를 살펴야만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뒤크로는 한국문학을 논하였던 이 시기의 다른 어떤 서구인에 비하더라도 매우 진지하고 본격적인 탐색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A French poet Georges Ducrocq visited Korea in 1901 and published a travelogue titled Pauvre et douse Coree(Poor and Douce Korea) several years later. This study examined his perception of Korean poetry found in this book.
Ducrocq intended to describe only the things he observed and the intention to depict the lives of Koreans in detail by activating his imagination. The former can be called the orientation as an 'observer' because he did not consider Korea as an object of analysis or edification but tried to write down the daily lives of Koreans from a distance. The latter orientation corresponds to 'intuition'. Ducrocq was interested in the vivid life of Koreans that he could not see and imagined it with his intuition. So, it can be summarized that Ducrocq described his experiences in Korea from the standpoint of an 'intuitive observer' or by demonstrating his 'intuition as an observer'. This point should be considered in depth when examining his perception of Korean poetry.
The person who attempted the most academic approach to Korean poetry up to that time was Maurice Courant. However, although they are both French, there is a clear difference in the way and purpose of discussing Korean poetry between Courant and Ducrocq. While Courant tried to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poetry as objectively as possible, Ducrocq emphasized the contents of Korean poetry, such as Korean emotions and daily life, rather than its literary form, and he was careful to intuitively capture the situations behind the text. Such a difference between Courant and Ducrocq is similar to that of James Gale and Homer Hulbert, the Anglo-American missionaries who discussed Korean poetry.
Ducrocq sympathized with Hulbert's translation, which contained detailed poetic situations not found in the original text. However, while following Hulbert's paraphrase method, Ducrocq chose the middle way to revive the work's original context as much as possible. He used Gale's translation of sijo poems, which reflects the meaning and form of the original work relatively well, but reorganized three or four sijo poems with similar themes into one context. In this way, while utilizing the original work's meaning, Western readers were able to accept the feeling of Korean poetry more easily. Such a method can be called 'weaving'.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he tried to smooth the poem's flow by omitting some phrases and lines or inserting expressions that were not in the original work and to reveal the three stages of development of sijo poetry in his translation. In addition, Ducrocq described that the condensed and lively expressions found in Korean proverbs form the basis of Korean literature, which means that the expression patterns of Korean proverbs and poetry are very similar.
Meanwhile, attention is also paid to his general opinion that universal emotions that transcend time appear more frequently in Korean poetry than the problems of painful reality. His comments are linked to a positive evaluation that Korean poetry has the best value in the lives of struggling Koreans. It is said that Koreans provided an opportunity to step aside from hardship by evoking emotions that can be universally felt in any era or society through literature, especially poetry. Ducrocq translated several works of Korean poetry and presented them to French readers because he decided that to understand the life of Koreans, one had to know their poetry. In this regard, Ducrocq can be evaluated as having carried out a very advanced and full-scale search compared to any other Westerners of this period who discussed Korean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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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두시언해』와 근대시인의 번역시 비교를 통한 한시 번역시의 문학사적 고찰 - 두보의 <등고(登高)>를 중심으로 -

저자 : 정소연 ( Chung So-yeon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4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7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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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문이 처음 존재하기 시작한 15세기와 국문 전용이 공식화된 이후인 20세기 전반기에 한시가 어떻게 번역되고 수용되는지 비교한 것이다. 15세기는 한문과 한시가 중심이면서 국문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20세기는 한문과 한시가 존재하지만 국문과 자유시가 중심이 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대비적이다. 한문과 국문의 위상이 서로 상반되고 시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른 중세와 근대의 한시 번역의 양상을 비교함으로써 한국 시가가 어떻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지 그 문학사적 일면을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5세기 말에 이루어진 『分類杜工部詩諺解』(1481)(이하 『두시언해』로 지칭) 1500여 수의 번역시 중에서 근대 시인들의 두보 시 번역과 겹치는 11수의 작품을 찾고, 이 중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학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표작인 <登高>를 중심으로 『두시언해』와 박종화, 김억, 신석정의 번역시를 비교하였다.
『두시언해』의 번역시는 주석을 없애거나 줄이고, 한시 율시의 대구, 압운, 평측 등의 형식을 살리기보다 우리말로의 번역시 그 자체가 가장 완성도 있는 결과물이 되게 하였다. 이를 통해 한시와 국어시가를 모두 향유하는 지식인층의 시가 향유의 역량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도착어인 우리말로 된 번역시를 통해서 중국 한시를 조선의 시로 향유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반면 근대 시인들의 번역시는 율시의 형식성을 살리고 보존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율시의 형식적 특성을 나타내었고, 내용적으로 미련(尾聯)의 번역은 『두시언해』와 정반대로 번역하였다. 이를 통해 중세 동아시아 문학권의 중심 갈래인 한시를 근대에는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창작 역량으로 바꾸어 근대 자국어로 된 자유시의 중요한 특징이 무엇인지를 대중을 대상으로 보여주었다.


This paper examines how Chinese poems(hansi) were translated and accepted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when free poetry in Korean is the center, after the 15th century, when Korean texts first existed. The late 19th century was officially declared. The 15th century is still a time when Chinese poetry and Chinese characters are centered, but the 20th century is when Chinese and Chinese characters exist, but Korean and Chinese poems are centered. Through the translation aspects of Chinese and Korean literature and the two modern periods of the Middle Ages and the Chinese poetry, which are entirely different in the perception of poetry, we wanted to examine the process of growing up and finding self-identity.
To this end, 11 of the 1,500 translation poems of the late 15th century were found overlapping with those of modern poets. Among them, < Denggao(登高) >'s translation poems of Park Jong-hwa, Kim Eok, and Shin Seok-jeong were compared. Through Chapter 2, we could see that the translation of 『Tushieonhae(杜詩諺解)』 itself became the complete result of Korean language rather than eliminating or reducing the annotation and using the forms of Daegu, rhyme, and intonation. Thus, it can be seen that intellectuals who enjoy both Korean and Korean poetry among intellectuals contribute greatly to the work of enhancing their capabilities and creating Korean and Joseon poems, which are arrival languages. On the other hand, through Chapter 3, modern poets expressed the characteristics of Yulsi in various ways according to their individuality, and the translation of the conclusion was translated oppositely from 『Tushieonhae(杜詩諺解)』. Through this, Hansi, the center of East Asian literature in the Middle Ages, was transformed into individual works and individual creative capability in modern times to show the public what important characteristics of free poetry in the modern vernacular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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