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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

  • : 한국시가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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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6-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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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5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614
한국시가연구
57권0호(2022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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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도흠 ( Do-heum Lee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48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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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에 대한 100여 년에 걸친 연구사를 학문 주체, 학문의 경향, 시대적 맥락에 따라 일제강점기의 1세대의 연구, 해방이후부터 70년대 초반의 2세대의 연구,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사이의 3세대의 연구, 90년대 이후의 4세대의 연구로 나누어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길을 전망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김태준과 조윤제 등 1세대 학자들에 의한 시가연구의 핵심은 '타자의 발견으로서 근대', '식민지적 침탈 대 저항으로서 민족문학 수립', '실증주의와 마르크시즘 연구방법론'이다.
해방 직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구자균과 고정옥, 정병욱 등 2세대 학자들에 의한 시가 연구의 가장 큰 흐름은 '민족 문학의 정립'과 '한국 문학의 내재적 근대성,' '한국문학의 '전후의 복구와 진보적 해석의 타자화/주변화,' '남북한 문학의 분리'다.
최동원, 조동일, 박노준 등 3세대가 주도한 70년대-90년대 시가연구의 큰 흐름은 '역사·실증주의의 압도와 탈주,' '(이에 따른) 시가연구의 화려한 개화'와 '굳건한 연구 토대의 구축'이다. 이들은 실증주의 방법론에 역사주의 비평을 접목하여 작품에 대한 치밀한 고증과 해석을 하였으며, 반면에 몇몇 학자들은 이에서 탈주하여 시가의 형식과 시학적 분석을 하고 미학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치중하였다.
21세기를 맞아 고전시가 연구자들은 형식주의 비평이나 기호학, 자율성의 미학에 맑스주의 비평과 타율성의 미학, 문화연구를 융합하여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이 동일성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차이의 패러다임으로 연구를 수행할 때 창조적 연구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아울러, 연구자들이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배제되거나 경계에 선 이들을 주목하며 서발턴(subaltern)의 입장에서 '결을 거스리는 읽기'를 하면 기존과 다른 해석들이 풍성하게 생산될 것이다.


According to the academic subject, trend, and historical context, the author reflects on and forecasts the 100-year history of the study of Korean classical poetry in four stages: the research of the first gener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second generation of the early 70s after 8.15 liberation, the third generation between the late 70s and the 90s, and the 4th generation after the 90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core of the research by first-generation scholars such as Tae-Jun Kim and Yun-Je Cho was modernity as the discovery of the other, establishment of national literature as resistance against colonial invasion, and positivism and Marxism research methodology.
From the moment of liberation to the early 1970s, the biggest trends in the research by second-generation scholars such as Ja-Kyun Koo, Jung-Ok Ko, and Byung-Wook Jung were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literature, the intrinsic modernity of Korean literature, the restoration after the war, and the otherization of progressive interpretation, and the separation South Korean literature between North Korean literature.
The trends of the research from the 1970s to the 1990s, led by the third generation, including Dong-Won Choi, Dong-Il Cho, and No-Jun Park, were overwhelming and breaking out of historical criticism and positivism, the splendid flowering of poetry research, and building a solid foundation for research. They applied historical criticism to the positivist methodology to conduct a detailed examination and interpretation of the work. However, some scholars escaped beyond this and focused on form and poetic analysis of poetry and revealing the aesthetic value.
In the 21st century, researchers should combine formalist criticism, semiotics, and aesthetics of autonomy with Marxist criticism, the aesthetics of heteronomy, and cultural studies. When researchers depart from the paradigm of identity and conduct research with the paradigm of difference, the horizon of new research should open. In addition, if researchers 'read against the texture' from the standpoint of a subaltern, paying attention to those who are excluded or stand at the borderline, deviate from the dominant discourse, interpretation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ones will be abundantly produ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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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황병익 ( Hwang Byeong-i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9-103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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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부터 현재까지 한 세기 동안, 신라향가 연구는 지속적인 성과를 축적해 왔다. 그 결과, 鄕歌의 명칭과 개념은 보편적 타당성을 얻을 만큼 정리되었고, 향가 연구는 삼국 유사와 함께 국학과 민족문화 연구의 주축을 형성했다. 향가 해독의 보편적 기준 셋이 마련되었고, 향가의 내용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특히 불교와 민속 분야에서 깊은 천착이 이루어졌다. 향가가 생성·발전·소멸의 역사는 사회문화적 배경과 함께 체계적 정리가 이루어졌고, 향가 연구성과는 해외로까지 확장되어가고 있으며, 향가 관련 대중문화콘텐츠는 꾸준히 창작되고 있다.
그러나 향가 연구는 이미 다 완성한 것도, 더 이상 연구 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간 향가는 85%의 해독률을 보이지만, 해독 해석상의 남은 난맥을 제거해야 하고, 국어학과 국문학 연구의 일관된 총합(叢合), 인접 학문 분야와의 통섭과 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어학과 문학을 넘어, 향가가 당시에 어떠한 정치사회문화적 효용성을 가졌었는지를 고찰해야 하고, 삼국유사의 역사적 사실성과 문학적 가공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입시교육의 현실에 맞추어 중등교육을 위한 향가 수업 표준안을 마련하여야 하고, 학술연구와 대중예술의 교류와 소통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분과학문의 프레임과 경계를 넘어, 1980년 이후의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점검하여 현실 교육에 적용하는 일은 이제 매우 시급한 일이 되었다.


For a century from 1918 to the present, the study of Silla hyangga has accumulated steady achievements. As a result, the terms and definitions of hyangga (鄕歌) have been well-defined enough to obtain universal validity, and the study of hyangga, along with the study of Samguk Yusa(Memorabilia of Three Kingdoms), has developed into a mainstay of Korean literature studies and national culture. Three universal standards for hyangga interpretation have been established, and the contents of hyangga have been studied particularly in a deep connection to Buddhism and folklore. The history of the creation, development, and disappearance of hyangga has been systematically arranged based on socio-cultural backgrounds. The research achievements of hyangga have expanded abroad, and pop culture content related to hyangga is constantly being created. However, it is not that the research on hyangga has already been completed, nor does it mean that there are no more research materials. Hyangga has shown an interpretation rate of 85% so far, but the remaining difficulties in interpreting the texts must be removed. It is required to achieve consistent integration of Korean language studies and Korean literature research, as well as consilience and convergence with adjacent academic fields. Beyond linguistics and literature, it is necessary to contemplate what kind of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utility hyangga had at the time, and make it clear how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facts and literary narratives of Samguk Yusa. Exchanges and communication between academic research and pop art should be maintained and the class standards for hyangga for secondary education should be established in consideration of the reality of Korean college entrance exam education. It has now become an urgent task to apply systematically examined research results after 1980 to actual education beyond the frame and boundaries of academic discip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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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임주탁 ( Yim Ju-ta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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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0년 가까운 학문의 역사에서 고려속요는 왜, 어떻게 연구했는지를 분석적으로 진단하고, 향후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하며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가늠해 본 것이다. 고려속요에 대한 학술적 관심과 연구는 그것이 민족문화로서 시조 못지않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유산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고려속요는 그 맥락을 복원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매우 부족했고, 따라서 주석은 물론 작품의 해석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해방 이후 서구의 시학과 미학에 기초한 많은 문예 이론이 도입되어 그 문학적ㆍ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경주되면서 고려속요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었다. 그리고 상당수의 시학적, 미학적 논의는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에 기초한 여러 가설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고려속요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확장되면서 널리 수용되고 있는 가설들은 실제로는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고려속요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생겨날 때부터 제기되었던 것이 고려속요가 본디 있던 자리를 찾는 일이었는데,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이 되레 그 작업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았다. 사회적 소통의 장에서 고려속요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고려속요가 본디 있던 자리를 찾아가는 노력은 한층 더 기울여 나갈 필요가 있다. 글의 문법에 기초해서 텍스트를 읽으며 텍스트의 내외적 맥락을 복원하는 작업은 물론, 고려속요와 관련한 문헌의 맥락을 복원하는 작업도 이전보다 한층 더 세밀하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고려속요가 시가 아니라 노래이고, 가악(歌樂)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던 근대 이전 왕조 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은 우리 안의 자료만으로는 고려속요의 실체에 다가서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1920년대 고려속요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강화되어온 민족주의, 민중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근대 이전의 '세계'의 문화유산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노력을 좀 더 활발하게 기울여야 고려속요가 본디 있던 자리도 복원하고 그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속요가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만한 민족문화유산이라는 판단 또한 이러한 작업이 선행될 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essay tries to elucidate why Goryeo-sokyo 高麗俗謠(Korean song in the period of Goryeo dynasty) have been concerned and how they have been studied in the Korean academic world now, and to examine what is needed and how they are studied from now on.
In the beginning period of Goryeo-sokyo studies, most Korean scholars got started regarding that all the pieces of Goryeo-sokyo were a sort of Korean traditional ethnic culture, thus Korean people should be justly proud of them, and inherit and develop them into forms of modern Korean poetry. These viewpoints based on nationalism and populism have resulted in not a few several hypotheses that has not been confirmed and have seemed to block the way to go near to the reality of it. Most of their inner/external contexts have not been fully explained because of the lack of positive data necessary to reconstruct them. Nevertheless, they have been treated as objects of Western Poetics and Aesthetics for multiplying their value. As a result, Goryeo-sokyo studies have grown distant from the public in Korea and entered scholarly downturn.
Thus, this essay suggests that all the researchers, including me, should reflect on the reason why Goryeo-sokyo has to be studied and the way how it is examined, out of all the hypotheses and ideologies. Only when all the pieces of Goryeo-sokyo go back again, we can seek out their own values and contemporary values as well. For this, Goryeo-sokyo studies need more efforts to get rid of all the prejudices against Sokyo, to restore their real contexts and the contexts of all the literature related to them than before (“contextual study”). In this process, the grammar of the written Korean language and the usages of Korean vernaculars as well are preferentially considered, and the fact Goryeo was not poetry but song which had used for all the rites of court and central or local government and the fact all the music of all the dynasties in the history of the East had been made for a common goal, a peaceful world by changing all the people's personalities into the worm, tender, and generous through it including poetry and song, and the fact that Goryeo-sokyo was the outcome of collaborative intelligence in the period of Goryeo dynasty, considering the very tune of the Saints and the reality of the people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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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영재 ( Young-zae Par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5-17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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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경기체가 연구의 역사와 현황, 과제와 전망을 살핀다. 경기체가 연구사는 발아기(일제강점기~1950년대 중반)와 성장기(1950년대 후반~1970년대), 성숙기(1980 년대~2000년대 초반)로 이어진 변증법적 지양의 과정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다. 제1기에는 경기체가의 개념이 정립되고 텍스트 대다수가 발굴·소개되었으며, 한국어 시가사의 구상 가운데 장르 기원 가설을 위주로 경기체가의 위상이 논의되었다. 제2기에는 형식-기원론이 정교화하고 새로운 텍스트가 발굴되었으며, 문학담당층 관념의 도입을 통한 이론적 심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경기체가는 '신흥사대부의 문학'으로 비정된다. 제3기에는 여러 세대 연구자의 시각이 교차하였는데, 문학담당층 관념에 기댄 장르론·작품론의 심화와 더불어 장르의 변천 또는 향유양상을 결부한 새로운 연구 경향이 본격화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연구 초점이 다각화하고 예각화하는 면모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산출량의 감소 추세는 우려를 품게 한다. 이에 ①문헌고증·어석·주석의 미비, ②내재적 발전론의 약화와 문학담당층 관념의 위기, ③표현론과 수용론의 간극, ④교술성 관념의 평가절하 등 당면과제에 대처함으로써 장르 연구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해 보았다.


The History of Gyeonggichega Studies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Germination period, the Growth period, and the Maturity Period. In the first period, from the 1920s to the mid-1950s, the concept of the genre was established and many Gyeonggichega texts were introduced, basically motivated by the attempts of reconstructing the history of Korean classical poetry. During the second period, from the late-1950s to the 1970s, the ideas about the genre origin were intensified, connected with formalism. Meanwhile, a new trend led by Myung-Koo Lee and Dong-il Cho defined Gyeonggichega as the poetry of 'Shinheung-Sadaebu(新興士大夫)', the Neo-Confucianists who lead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The third period was the time of dialectical sublation. Contrary to a series of theoretical debates by earlier generations, scholars who took initiative in the relatively recent tendency paid attention to the transition or the pragmatics of Gyeonggichega, along the post-modernism. Since the mid-2000s, despite the decrease of the younger generation, the elaboration and diversification of academic criticisms are still proceeding. For the long-term outlook, however, it is requested to face and solve the lack of bibliographic and linguistic analysis, the crisis from the dependency on the historic concept of 'Shinheung-Sadaebu',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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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승우 ( Kim Seung-u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1-23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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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악장(樂章) 연구가 진행되어 온 그간의 내력을 살핀 후 앞으로의 논의에서 좀 더 유념해 볼 필요가 있는 사항들을 몇 가지 제시하였다.
1990년대까지의 악장 연구에서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발견된다. 하나는 악장 갈래 자체보다는 조선초기 시가사의 흐름 속에서 악장이 차지하는 위상을 진단하고자 했던 경향이다. 조선초기 전후의 시가사를 이어주는 역할을 악장이 감당했을 여지를 타진하는 한편, 시조와 가사 갈래의 성립에도 악장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탐문하였다. 반면, 1980년대에 이르러 악장의 성격과 존재 양상을 보다 독립적이고 분석적으로 살핀 성과가 제출되기 시작하였다. 악장의 제작과 향유가 아송이라는 동아시아 보편의 문학적 전통 속에서 배태된 현상이라는 관점이 이들 논의의 바탕을 이룬다. 또한 문면에 드러나는 아유의 면모뿐만 아니라 이면에 개재된 규계의 지향 역시 악장의 중요한 요건이라는 점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1990년대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여기에 새로운 안목과 방법론을 적용한 논저가 다수 발표되었다. 먼저 개별 악장 작품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그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선초 악장 작품의 제작 배경과 지향이 깊이 있게 검토되었으며 악장의 제작자에 대한 연구도 축적되었다. 다음으로 악장 연구의 시각을 확대한 시도가 두드러졌다. 문헌에 대한 탐구를 면밀히 진행한 성과, 악장 연구를 고려와 조선후기로 확장시킨 성과, 여타 갈래와 악장의 연관성을 탐색한 성과 등이 이 부류에 해당된다. 또한 악장에 관련된 종합적 연구서들이 출간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악장의 개념 및 요건, 존재 양식, 작품 창작의 목적과 활용 양상, 악장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각적 측면에서 악장 연구를 총괄한 저술이 근래에 출간되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다음의 네 가지 사항에 특히 유념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첫째로 한문악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선초 악장이 어떤 의도와 세계관 속에서 제작되었는지 면밀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국문 및 현토악장 이외에 주요 한문악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정치사적ㆍ사상사적 맥락에 대한 탐색이 진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맥락에 대한 이해가 확보되어야만 악장이란 누가 언제 짓든 대개 유사한 지향을 띠기 마련이라는 오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 셋째로 시대적 전개와 변모 과정에 유의해야 한다. 악장은 대개 고정적으로 전승되어 왔으나, 시대와 정치적 상황, 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악장을 짓는 방식과 기존 악장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지고는 하였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연행 양상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텍스트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작품의 분단과 구성에 관한 단서를 연행상의 특징을 통해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In this thesis, the history of research on akjang(樂章) poetry has been reviewed and some points to be taken into consideration in future discussions are suggested.
Two major trends are found in the study of akjang until the 1990s. One is the tendency to discuss the status of akjang in the history of poetr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rather than akjang genre itself. In this trend, it is assumed that akjang played the role of connecting the history of poetry before and after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at it had a certain influence on the birth of the sijo(時調) and gasa(歌辭) genres. On the other hand, in the 1980s, researches that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akjang more analytically began to be submitted. The basis of these discussions is the perspective that the production and enjoyment of akjang was a phenomenon conceived in the universal literary tradition of East Asia called asong(雅頌). In addition, it was emphasized that not only the aspect of flattery revealed on the face but also the direction of the discipline intervened in the background is an important requirement for akjang.
After the 2000s, many papers were published based on the achievements up to the 1990s but applying new perspectives and methodologies. First, discussions of many akjang works were activated. The akjang work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hich had not received much attention were reviewed in depth, and studies on the composers of akjang genre were also accumulated. Next, attempts to expand the perspective of research on akjang are noted. This category includes studies that closely search the literature related to akjang, expand the study of akjang to the Goryeo and late Joseon periods, or explore the relevance of akjang with other genres. It is also noteworthy that comprehensive academic books on akjang were published. In recent years, writings have been published that have overseen the study of akjang from various aspects, such as the concept and style of akjang, the purpose of composition, the performance method, and the perception of the people of the time.
In future research, I think that the following four points should be particularly paid attention to. First, it is necessary to review akjang works composed in Chinese characters. In order to thoroughly reveal the intention of akjang, it is important to discuss not only the works written in Korean vernacular but also the work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Second, the search for political and ideological contexts should be advanced. Research in this field is needed to overcome the long-standing prejudice that akjang poetry tends to have similar intentions regardless of who composed them at any time. Third, it should be noted that akjang had also changed with the passage of time. Akjang works had usually been handed down in a fixed manner, but it should not be overlooked that the method of writing akjang poems and the evaluation of previous works had also changed according to changes in the polit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Finally, it is essential to review the performance pattern. By analyz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rformance, it is possible to discover clues about the division and composition of the work that cannot be revealed through tex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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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연호 ( Park Youn-ho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1-26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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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주의식 시조의 전승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주의식의 시조는 『청구영언』을 비롯한 여러 가집에 수록되었다. 주목되는 점은 후대 가집에서 일부 작품이 수정, 첨삭되거나 재배열되었기 때문에 작품의 숫자나 배열순서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문학적, 음악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후대의 가집에서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주의식 시조의 전승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가집에서 주의식 작품은 4개의 모둠[(『청한』 A: 0222-0223. B:0224-0227. C:0228-0231, 『해주』 D : 0270-0272)으로 구분된다.
둘째, 작품의 첨삭이나 재배열은 모둠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이는 모둠별로 작품들의 내용이나 기능이 다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가곡창 編歌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각각의 모둠이 특정한 악곡과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편가에서는 작품 배열 순서에 따라 악곡이 정해지기 때문에 작품의 첨삭이나 재배열은 작품과 결합되는 악곡의 변화를 의미한다.
셋째, 모든 가집에서 일부의 작품(<청한.0222, 0223, 0231)은 순서가 고정되어 있다. 이것 또한 編歌의 특성으로, 편가에서는 전체의 주제를 포괄할 수 있는 작품이 맨 앞의 初數大葉자리에 배치되고, 태평성대를 노래한 작품이 歌畢奏臺로 마지막에 배치되는 전통과 동일하다.
넷째, 『청한』 이후의 가집에서는 B가 새로 추가된 작품으로 구성된 D로 대체되었다. B는 삭제되거나 <청한.0231> 뒤에 배치되었으며, 작품의 순서도 재배열되었다. 즉 A→B→C로 구성된 『청한』의 편가를 후대 가집들에서 A→D→C로 바꾸고, B는 삭제하거나 짧은 편가로 독립시킨 것이다. B와 D는 편가 전체의 주제를 결정하는 모둠이라는 점에서 B를 D로 교체한 것은 편가 전체의 주제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청장』과 『청홍』은 태평성대가 아닌 屈原故事를 노래한 작품(청장.0174, 청홍.0226)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이는 界面二數大葉(數大葉第四)으로 편가를 마무리하는 전통이 적용된 결과로 보인다.


Joo's works are included in several songbooks, including 'Chunggu-yeongeon (CY)'. It is noteworthy that some works have been revised, added, deleted, or rearranged in later songbooks. For this reason, the number and arrangement order of the works are different for each songbook. This phenomenon is also commonly found in the works of other authors. In this paper, the meaning of these changes was examined in literary and musical aspects.
The transmission pattern of his suite found in later songbooks is as follows.
First, Joo's works in all songbooks are divided into four groups [CY A(#222, #223), B(#224-227). C(#228-231), Haedong-gayo(HG); D(#270-272)] Second, additions, deletions, and rearrangements of works only occur within the group. This means that the contents and functions of the works differ from group to group. These characteristics are a phenomenon that appears in the 'Gagok-chang' suite, meaning that each group is combined with a specific tune. Since the tune is determined according to the order in which the works are arranged, addition, deletion, and rearrangement of the works mean changes in the tune combined with the work.
Third, the order of some works (CY. #222, #223, #231) are fixed in all the songbooks. The 'Gagok-chang' suite is started 1st Sakdaeyep(#222) and ended Finale(歌畢奏臺, #231). In the 'Gagok-chang' suite, the 1st Sakdaeyep(#222) that can cover the entire theme of the suite is placed at the front, and the Finale(歌畢奏臺, #231) that sings a peaceful world is placed at the end.
Fourth, group B was replaced with group D, which consisted of newly added works, in later songbooks. And group B was deleted or placed after < CY.#231 >, and the order of the works was rearranged. That is, the suite of CY composed of A+B+C was changed to A+D+C in later songbooks, and B was deleted or made independent as a short suite. B and D are closely related to the theme of the entire suite. Since replacing B with D is to change the theme of the entire suite.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songbook with a work that uses the Gul-Won's(屈原) story at the end. It seems that the tradition of ending the suite with a specific tune(數大葉第四) was ap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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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인숙 ( Jeong In-sook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3-29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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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남편 또는 아내가 편지의 형태로 지은 가사를 '상장가류(上狀歌類) 가사'로 명명하고 이들 작품에 나타난 전통 혼속의 특징과 부부 간 의사소통의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전통시대에 부부 간의 은밀한 감정 표현이 쉽지 않았던 점을 생각할 때 상장가류 가사는 남편과 아내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논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상장가류 가사에는 전통적으로 관행되던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의 특징이 발견된다.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우귀(于歸) 전에 신랑은 처가에서 지내는데 우귀가 늦게 이뤄질 경우 신랑은 본가와 처가를 오고 갔고 부부가 떨어져 지내는 시기에 편지 형태로 가사를 주고받은 것이 바로 상장가류 가사이다. 남편의 재행(再行), 삼행(三行)을 고대하는 모습이 여러 작품에서 포착되고 독수공방하는 아내를 위로하는 남편의 답장도 확인된다. 우귀 전에 신부집에서 종종 신랑집에 옷이나 음식 등을 보내던 풍습이나 혼례 첫날밤의 풍습 등도 작품을 통해 확인된다.
상장가류 가사는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실용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부부 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움, 원망, 불안감, 걱정, 염려, 애증, 억울함 등의 여러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너와 나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부부의 신뢰를 높이고 진심이 통하도록 노력하는 면모도 확인된다. 그런 의미에서 상장가류 가사는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한층 성숙한 부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의미부여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a traditional marital custom and the meaning of communication between husband and wife in sangjangga-type of gasa. It is important as a material that can look into the inner feelings of husbands and wives.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Characteristics of a traditional marital custom that the son-in-law lives in-law's house are found in sangjangga-type of gasa. After marriage, the groom stays with his in-laws. If the time for the bride to enter the in-laws' house is delayed, he goes back and forth between his house and his in-laws. When the couple is apart like this, they send and receive gasa in letter form to each other. The letter shows waiting for her husband's second or third visit. Other customs also appear in the letter.
Sangjangga-type of gasa shows the appearance of practical writing as a letter. The work also serves as a channel for communication expressing various emotions between husbands and wives. Various emotions such as longing, reproach, anxiety, worry, concern, love and hatred, and resentment are expressed in the work. This work can be said to be a work that shows the process of growing up as a couple.

KCI등재

저자 : 송재연 ( Song Jae-yeon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7-32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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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을 살았던 尹濟와 尹挺宇父子의 시조 작품에 주목하여 그들의 시조 창작의 기반인 학문적 원천을 밝히고, 학문적 전통의 계승적 측면에서 父子의 시조 작품을 면밀히 분석하여 시조 창작 양상과 의미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尹濟는 평생 학문에 전념했던 도학자로, 스승이었던 鄭介淸의 정치적 浮沈에 따라 삶의 양태를 달리했는데, 스승이 鄭汝立과 함께 역모를 꾀했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하자 宦路에 나가려는 뜻을 접고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함평으로 移居하였다. 그는, 『周易』, 『皇極經世書』 등을 탐독하며 성리학을 연마했던 스승 鄭介淸의 학문적 영향하에 易學에 진력하면서 시조 5수를 창작했다. 그리고 鄭介淸에게서 배운 易學의 精髓, 즉 象數 중심의 易學사상과 主氣論的경향의 易學사상을 차남인 尹挺宇에게 家學으로 전수했는데, 尹挺宇역시 시조 <奇偶歌> 9수를 남기고 있어 父子가 모두 시조 문학을 향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尹濟, 尹挺宇父子의 시조 향유에 있어서 『周易』에서 비롯된 易學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易學이라는 동일한 학문적 배경 속에서 시조를 창작 및 향유했던 尹濟, 尹挺宇父子의 작품 양상을 검토한 결과, 尹濟는 心性論的관점에서 心의 문제에 주목하여, 心, 德[道], 性의 관계 속에서 心의 본질적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道의 형체인 性을 둘러싼 心의 속성을 啓喩하였고, 또한 <贈神明舍主人翁>, <主人翁答>, <答歌>와 같은 문답 형식의 작품을 통해서는 심성 수양의 방법으로서 居敬을 勸勉하였다. 한편, 尹挺宇는 우주만물의 근원이 되는 본체인 太極에 주목하여, 太極의 요체를 傳述하고 이를 開導하는 연시조 <奇偶歌> 9수를 창작하였다. 『周易』의 요체인 '太極'을 통해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되는 과정과 太極의 속성인 '無極而太極'과 관련된 이치를 성현의 견해에 근거하여 傳言하였고, 시·공간을 초월한, 변화의 근원인 太極의 속성을 부연 설명하였다. 마지막 작품에서는 1658년 11월 동짓날 밤에 天地가 나온지 몇 회나 되었는지를 직접 헤아려보면서 자신의 심정을 술회하였다.
이러한 시조 창작 양상의 차이는 향촌 내에서 작자 자신이 처한 위상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도학적 지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尹濟는 스승인 鄭介淸이 己丑獄事에 휘말려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마음의 동요가 컸고,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도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心]과 관련되는, 경전의 이치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入鄕祖로서 낯선 타지인 함평에서 향촌사족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교유와 교화의 측면에서 심성 또는 심성 수양의 문제가 중요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尹濟는 당대에 요구되는 도학적 이념과 깨달음을 명확하게 일깨우기 위해서 우리말 노래인 '시조'라는 문학 양식이 가진 효용성을 선택했고, 詩意의 명료한 설명과 이해를 위해 발문을 부기하고 문답 형식을 구성하는 표현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한편, 尹挺宇는 유교 경전 『周易』을 비롯하여 周敦頤, 朱子 등의 立言에서 설명되는 道學의 요체, 즉 太極의 본질과 속성을 우리말 노래를 통해 傳述 함으로써 난해한 이치를 쉽게 이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시조로서의 형식미를 온전하게 갖추지는 못했지만, '연시조' 형식을 통해 主旨를 상세화시키며 자신이 체득한 도학의 이치와 깨달음을 충실하게 傳言함으로써 開導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ocus on the Sijo works of Yoon Je and his son Yoon Jungwoo, who lived i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to reveal the academic source of their Sijo creation, and to closely analyze the Sijo works in terms of succession of academic tradition.
Yoon Je was a scholar who devoted his life to study, and under the academic influence of his teacher Jeong Gaecheong, who studied Neo-Confucianism, he devoted himself to Yixue and created Sijo. And this thought of Yixue was passed on to his son Yoon Jungwoo as a family academic tradition, who also created the Sijo Giwooga. In the end, taking these circumstances into account, the meaning of Yixue in the enjoyment of the Sijo of these two artists was very significant.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aspects of the works of Yoon Je and Yoon Jungwoo, who created and enjoyed Sijo in the same academic background, Yoon Je focused on the problem of the mind by emphasizing the essential importance of the mind, or explaining the properties of the mind, and also explained the external form of the mind, ChuChing(居敬) as a method of cultivating the mind, and the problem of learning of the mind and Dotong(道 統). Meanwhile, Yoon Jungwoo created Sijo Giwooga based on the subject of Taegeuk(太極), the main body that is the source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Among the processes of creation and change of all things in the universe, Taegeuk(太極)'s attributes related to “Mugeuk(無極) is Taegeuk(太極)”, Taeguk(太極)'s attributes that transcend time and space, were explained, and finally, he discussed his feelings while calculating how long heaven and earth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end, these differences in the creative aspects of Sijo can be attributed to the differences in the status of the author himself in the village, the historical situation, and the moral orientation. Yoon Je was very upset when his teacher died in exile, and he was very worried about his future life, so he must have paid more attention to the principles of the scriptures related to the human mind. And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issue of mentality or spiritual cultivation was important in terms of education to strengthen his position as a villager in Hampyeong, an unfamiliar land. Meanwhile, Yoon Jungwoo focused on easily explaining the difficult reason by embodying the essence and attributes of Taegeuk(太極) through Sijo, a Korean song.

KCI등재

저자 : 윤병용 ( Yoon Byung-yo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9-36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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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권섭의 연시조 <황강구곡가>의 구성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반영된 작가의식을 규명하는 것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도통의 계승을 위주로 설명되었던 작품 창작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로이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황강구곡가>를 구성하고 있는 10수의 시조는 총가에 해당하는 서사를 제외하면 ①1∼3곡, ②4∼6곡, ③7∼9곡의 세 구간으로 구분된다. ①에서는 선경의 근원이자 권상하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로의 도정(道程)을 구현하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진 도맥을 계승하려는 의식을 보여준다. ②에서는 황강의 비경을 탐승하는 과정에서 구곡 자연과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와의 일체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시적 관심은 대상의 선험적인 가치보다 작가 자신이 인식한 바에 따라 설정된 의미에 집중된다. ③에서는 황강 일대에 복거하며 유유자적하는 만족감과 공간의 영속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종합하여 볼 때 <황강구곡가>는 각 수가 전개됨에 따라 대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내면이 전면화되고 있으며, 과거의 유산에서 현재적인 감흥으로, 다시 미래에의 기대로 작품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유기적 구성은 긴밀한 짜임새를 갖춘 연시조로서의 미학을 구현한 것으로서, 작품의 주요한 문학적 특질로 주목될 필요가 있다.
<황강구곡가>는 권섭이 복거를 시작한 지 30여년 뒤에 지어진 작품으로, 이 시기의 권섭에게 황강은 도통이 계승되어야 할 거점이자 자신이 오래도록 애착을 갖고 생활을 영위해 온 복거지로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황강을 대상으로 한 구곡가의 창작은 해당 공간이 환기하는 가문에 대한 공적인 책무감과 이 공간 속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며 느낀 사적인 만족감을 내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었으며, 한편으로는 황강에서 살아온 지난 삶을 반추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황강구곡가>의 지향점은 가문의 학맥이 황강에 정착한 권섭 자신을 통해 영속화되리라는 기대 내지 자부심을 표현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섭에게 있어 <황강구곡가>의 창작은 황강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가문의 현실과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으로서 의미를 지녔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본고의 논의를 통해 볼 때, <황강구곡가>는 황강을 매개로 권섭 자신의 가문과 생애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일어난 내면의 운동을 연시조 양식에 입각하여 시화(詩化)한 작품으로서 그 의의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organically grasp the composition of Kwon Seop's poem Hwangganggugokga [nine songs about the Hwang river] and to investigate the writer's consciousness reflected in it. Furthermore, this study attempted to reconsider the meaning of the creation of Hwangganggugokga.
Except for the opening sijo, the 10 sijo in Hwangganggugokga is divided into three sections: ① 1-3, ② 4-6, and ③ 7-9. ① It shows the consciousness to continue the academic line that has continued from the past while also realizing the place where Kwon Sang-ha's traces remain. ② In the process of exploring the Hwanggang, the poet forms a special relationship with nature and expresses a sense of unity with it. ③ The poet's satisfaction and permanence of space while living in the Hwanggang area are emphasized. Overall, Hwangganggugokga shifts the focus of the work from past heritage to present emotions, and back again to the expectation of the future as 10 sijo unfolds. The organic composition of Hwangganggugokga is a major literary character of the work in that it has a typical aesthetic of a yeonsijo.
Next, this paper examined the meaning of the creation of Hwangganggugokga. Hwangganggugokga was created more than 30 years after Kwon Seop lived in Hwanggang. For the Kwon Seop of this period, the Hwanggang was the base where the family's succession was inherited and the place he had lived and felt attached to for a long time. Therefore, the creation of Hwangganggugokga was a process of internally integrating responsibility for the family evoked by Hwanggang, as well as personal satisfaction with the space. Hwangganggugokga implies the expectation that the academic line leading to Kwon Sang-ha will continue through Kwon Seop himself, and this process is related to the organic composition of the work. Through the discussion in this paper, Hwangganggugokga should be re-examined as a literary work that embodies the artist's inner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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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대웅 ( Bae Dea-ung )

발행기관 : 한국시가학회 간행물 : 한국시가연구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65-39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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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악부 나손본(건)』 각조음 항목 수록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각조음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악부 나손본(건)』의 가집사적 위상을 보강하고자 했다. 『악부 나손본(건)』에는 이전부터 가곡창으로 불리던 작품이 시조창 형식으로 “각조음” 항목 아래에 나타남을 살펴볼 수 있다. 원래 가곡창으로 불렸던 작품이 시조창으로 불렸던 것은 충분히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긴 하나 『악나(건)』의 시조창 형식 작품들로 가곡창으로 불리던 작품이 시조창으로 불리는 중후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비』의 영향을 받아 『흥비』의 이본이라는 평가를 받는 『악나』에 『흥비』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되고, 그 작품이 각조음이라는 항목 아래에서 시조창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그 작품의 일부가 시조창 가집 『남태』에서, 가곡창 가집『가곡원류』에서 등장한다는 것은 『흥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다른 가집들의 영향관계 안에서, 혹은 『악나』가 산생되던 가창 현장의 영향 하에서 시조창 작품들이 형성된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악나』가 『흥비』의 이본으로서 『흥비』의 영향 하에 있다는 것을 생각 해본다면, 『흥비』 편찬자가 『흥비』의 '각조음' 수록 사설을 어떤 악곡에 맞춰 불러야 하나 고민했던 것처럼 『악나』 편찬자는 『악나』의 '각조음' 항목에는 악곡 선택에 대한 고민을 넘어 당대 가창 현장에서 가곡창과 시조창 중 어떤 것으로 불러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사설들을 수록하여 사설 선택에 대한 자율성의 결과를 담았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악나(건)』 각조음 작품들을 살펴볼 때 『악나(건)』은 19세기 후반, 조금 더 세밀하게는 1860~80년대, 시조창과 가곡창이 각자의 장소에서 유행하고 있을 때, 잡가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의 과도기적 현상을 보여주던 시기에 산생된 가집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works containing the Gakjoeum items in Akbu(Nason version) to figure out the meanings of Gakjoeum and reinforce the status of Akbu(Nason version) in the history of Gajips.
The songs that had been sung in the Gagokchang style in Akbu(Nason version) took the Sijochang style in Akna. There are other materials that show the phenomenon of songs that used to be sung in the Gagokchang style originally being sung in the Sijochang style, but the works in the Sijochang style in Akna help to capture the signs. In Akna which is called a different version of Heungbipu under its influence, there are works not found in Heungbipu. These works are in the Sijochang style under the Gakjoeum item. Some of these works are found in Namtae, a Gajip of Sijochang works, and in Gagogwonryu, a Gajip of Gagokchang works, which leads to an estimation that Sijochang works were created within the influential relations of other Gajips not affected by Heungbipu or under the influence of the Gachang scene where Akna was created. Given that Akna was under the influence of Heungbipu as its different version, the Saseols containing “Gakjoeum” in Akna must have reflected the outcomes of autonomy over the choice of Saseols at the Gachang scene in those days just like the contemplation over which pieces they should follow when singing the item Saseols containing “Gakjoeum” in Heungbipu. In this sense, the Gakjoeum works in Akna suggest that Akna was created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when Sijochang and Gagokchang were in fashion at their respective places in the latter part of the 19th century or, more specifically, in the 1860s~1880s before the beginning of the Japga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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