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불교학회> 한국불교학

한국불교학 update

Hanguk Bulkyo Hak ( The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

  • : 한국불교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5-0945
  • : 2734-0163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5)~101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393
한국불교학
101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고구려 승랑의 융합적 사유 - 중가의(中假義)와 이교의(理敎義) -

저자 : 조윤경 ( Cho Yoonky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2 (3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고구려 승랑(僧朗)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상가다. 고구려 출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대부분 중국에서 활동했던 그의 사상을 중국불교이면서 동시에 한국불교로 규정할 수 있는 까닭은 다른 중국 논사들과 구별되는 그의 독창적 사유에 기인한다. 그는 이방인의 비판적 시선으로 당시 중국불교가 당면한 문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해답을 제시했으며, 특정한 학파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사상들을 두루 흡수하고 융합시켜 삼론종이라는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창시했다.
본 논문에서는 삼론종의 핵심 사상인 중가의(中假義)와 이교의(理敎義)에 나타난 승랑의 독창적이고 융합적인 사유를 고찰해 보았다. 승랑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유고 그럼에도 무다[非有非無, 而有而無]'라는 구절로 자신의 중가의, 즉 중도와 가명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했다. 그는 중도와 가명은 걸림 없이 소통한다고 보았는데, 중도를 기반으로 일어난 가명은 대승경전의 자유자재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승랑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은 이치와 가르침의 상관성을 나타내는 이교의다. '이제는 가르침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당시 성실론사의 '약리이제설'(혹은 '약경이제설')과 승량의 '약교이제설'이 지닌 이원대립적 사유를 극복하고, 이제의 가르침이 이치와의 필연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제(於諦)'와 '교제(敎諦)'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가르침을 깨달은 자와 교화대상의 역동적 소통으로 재해석했다.


Seungrang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thinkers of Korean Buddhism. Although he left Goguryeo and spent most of his life in China, his thoughts can be defined not only as Chinese Buddhism but also as Korean Buddhism because his creative ideas are distinguished from those of other Chinese thinkers. He looked at the problems facing Chinese Buddhism from the critical perspective of a stranger and was able to present a new answer based on the cultural background of Goguryeo. Undoubtedly, he created the independent Sanlun thought by absorbing various theories of Chinese Buddhism at the time without being bound by a specific school of thought.
This paper reviews a creative and integrative interpretation of Seungrang, focusing on Zhongjiayi (中假義) and Lijiaoyi (理敎義), the fundamental thoughts of the Sanlun school. Seungrang expressed the inseparable relationship between the middle way and the provisional names, called Zhongjiayi, with the phrase “it is neither existence nor non-existence but there are, nevertheless, existence and non-existence (非有非無, 而有而無).” He thought the middle way and the provisional names interact without any obstacles. The provisional names that occurred based on the middle way also represent the free teachings of the Mahayana scriptures.
Another core thought of Seungrang is Lijiaoyi, which represents the correlation between reason and teachings. He insisted that “two truths are the teachings,” and overcame the dual confrontational thinking of Chengshilunshi's yueli-erdi theory (約理二諦說) and Sengliang's yuejing-erdi theory (約境二諦說). He emphasized that the teachings are in an inevitable relationship with reason. In addition, he created the new concepts of yudi (於諦) and jiaodi (敎諦) and reinterpreted the teachings as dynamic communication between the enlightened and those who are preached to.

KCI등재

2유식논사 대현(大賢)의 성(性)과 상(相)의 이해 - 『성유식론학기』와 『대승기신론내의략탐기』를 중심으로 -

저자 : 이수미 ( Lee Sumi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3-69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신라 대현(大賢, 8세기 경)은 유식논사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유식은 중국의 현장(玄奘, 602-664)의 새로운 번역[新譯]을 바탕으로 수립된 법상종(法相宗)과 그 이전 번역[舊譯]에 근거하여 수립된 지론종(地論宗)과 섭론종(攝論宗)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구분 하에 현장 이후 유식 전통에 속하는 대현은 보통 법상종 논사로 분류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법상종을 가리키는 소위 '상종(相宗)'과 중관 및 여래장 사상으로 대표되는 '성종(性宗)'이 상반되는 사상 체계라고 여겨져 왔고, 이러한 전통 하에 이 두 입장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대현의 사상적 성향은 논란이 되어 왔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대현의 사상 성향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전통적 논사들뿐 아니라 현대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왔다. 하지만 성과 상을 상반된 이론 체계로 보는 사상 구도 하에서 대현의 '복합적'사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근본적 모순을 지니며, 이런 점에서 성과 상의 이론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논문에서는 상종과 성종의 대표적 논서로 각각 알려진 『성유식론』(成唯識論)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한 대현의 주석서인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와 『대승기신론내의략탐기』(大乘起信論內義略探記)를 고찰함으로써, 성과 상에 대한 대현의 이해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전형적인 이분법 구도를 재조명한다. 또한 『대승기신론내의략탐기』의 분석 과정에서 『대승기신론』의 대표적 주석가인 원효(元曉, 617-686)와 법장(法藏, 643-712)의 『대승기신론』에 대한 입장과 대현의 입장을 비교함으로써 당시의 동아시아의 불교 전통 내에서 유식논사로서 대현의 사상적 위치를 가늠해 본다.


Taehyŏn (ca. eighth century CE), a renowned Buddhist monk of Silla Korea, is known as a Yogācāra master. In East Asia the Yogācāra school, which was established on the basis of Xuanzang (602-664)'s new translations of Buddhist literature, is generally designated as the dharma characteristics (C. Faxiang, K. Pŏpsang) school, in distiction from which the Yogācāra schools formed before Xuanzang. Taehyŏn, who belongs to the Yogācāra tradition after Xuanzang, also considered as a master of the Dharma Characteristics school. In East Asia, however, 'Characteristics school (Xiang zong)', i.e., the Dharma Characteristics school, is regarded as doctrinally antagonistic against the so-called 'Nature school (Xing zong)', such as Madhayamaka, Tathāgatagrbha, and Hwaŏm (C. Huayan). In this regard, Taehyŏn's doctrinal position has been controversial, because his thought contains both elements of the Characteristics school and the Nature school. The conflict between Taehyŏn's thought and the traditional bifurcation between the Characteristics school and the Nature school requires a new vision on the relationship between 'characteristics' and 'nature'. Considering this problem, this article explores Taehyŏn's views on these two concepts, by analyzing his commentaries on the two representative treatises on characteristics and nature, that is, the Cheng Wei Shi Lun and the Awakening of Faith, respectively.

KCI등재

3원효 초기 심식관의 사상적 배경과 회통 논리 - 유식과 유심 회통을 중심으로 -

저자 : 김태수 ( Kim Taesoo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103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원효(元曉, 617-686)의 초기 저술에 나타난 심식 논리는 초기 유식 및 『집량론』 등의 자기인식 논리에 기초해 있다. 원효는 이러한 논리에 의거, 마나식이 알라야식자체를 인식대상으로 한다는 견해와 알라야식 종자에서 현현한 6가지 경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견해를 마음(식) 안에서 모두 인식대상(견분과 상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회통한다.
나아가 삼분설의 자증적 인식 논리를 『기신론』·『능가경』의 유심(唯心)·자심(自心) 이해와 회통시킨다. 이를 위해 거울의 비유 등을 활용한다. 즉 모든 상은 알라야식의 종자에서 생겨나 알라야식의 밝은 거울에 현현한 것일 뿐이라는 유식의 구도를 “일체법은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 오직 마음일 뿐”이라는 『기신론』의 유심 사유와 관점적으로 교차시킨다.
회통 근거로는 “인연의 도리가 초연하여 의거하는 바 없고 텅 비어 장애 없음”을 승의 차원에서 제시한다. 이로써 유무 중도의 지평에서 비유(非有)와 비무(非無), 가유(假有)와 가무(假無)라는 한 가지 진실의 두 측면으로 유식과 유심 이론을 회통한다. 이는 일심, 공성과 같은 해석학적 지평을 전제로, 인연 도리에 따라 각기 다른 측면(뜻)에서 유·무를 말한 것이기에 두 논의는 모순되지 않는다는 회통 방식이다.


The logic of mind and consciousness in Wonhyo (元曉, 617-686)'s early works is based on those of self-awareness of early Yogācāra and Pramāṇasamuccaya. Based on this logic, Wonhyo reconciles both the view that manas takes alaya consciousness itself as the object of cognition and the view that it takes the six objects manifested in the seeds of alaya consciousness as the objects of cognition, so that both can be regarded as the cognizing aspect and objective part within a mind (consciousness).
Furthermore, the logic of self-cognition in the theory of three parts is reconciled with the understanding of mind-only and one's own mind in the Awakening of Faith and the Laṅkâvatāra-sūtra respectively. To this end, the analogy of a mirror is utilized. That is, the scheme of consciousness-only that all images are born from seeds of the alaya consciousness and manifested in the bright mirror of alaya consciousness is intersected in perspective with the understanding of the Awakening of Faith, which states that “all dharmas are like the image in a mirror, that they are mind-only.”
As for the reconciliation method, in the ultimate horizon, the ground for reconciliation is suggested as “the principle of causes and conditions, as it is standing aloof, such that it has no foundation, empty and free from obscuration.” Likewise, on the horizon of middle way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the theories of consciousness-only and mind-only are reconciled into two aspects of one truth―non-existence and no non-existence, nominal existence and provisional non-existence.
In this way, based on the premise of hermeneutic horizons such as one mind and emptiness, Wonhyo presents a reconciliatory logic in which the two discussions are not contradictory because they describe the existence or nonexistence in different aspects (meaning)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auses and conditions.

KCI등재

4한국 비담사상 - 최치원의 비문을 중심으로 -

저자 : 황정일 ( Hwang Jung-il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28 (2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최치원의 비문에 언급된 '담시 초전설(曇始 初傳說)'과 '비담[阿毘達磨]사상 초전설(毘曇思想 初傳說)'을 중심으로 그 진위 여부를 논구했다. '담시 초전설'과 관련해서는 최치원의 주장을 인정하는 키무라 센쇼(木村宣彰)의 견해와 그것을 비판하는 김영태(金煐泰)의 주장을 살펴보았다. 이에 두 연구를 보면, 문헌적 측면에서는 키무라 센쇼의 주장이 다소 타당해 보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비담사상 초전설'과 관련해서는 우선 기존의 주장인 격의불교(格義佛敎), 비격의불교(非格義佛敎), 신이(神異)의 불교가 전래지인 중국불교의 동향과 전래자들의 불교적 경향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그들의 불교적 경향을 대승적 관점에 둔 격의나 비격의로만 한정할 수 없음을 논구했다. 즉 초기 중국불교는 대·소승을 엄격히 구분해서 경전을 번역하거나 전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전래 당시 중국에서 중점적으로 번역된 경전들을 보면, 비담사상과 관련한 전적이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격의 또는 비격의 불교론자로 인정되는 승려들이 비담사상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직접 비담사상 관련 역경작업(譯經作業)에도 참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 불교 전래 당시의 일부 교리를 언급한 『고승전』이나 『해동고승전』의 내용을 볼 때, 고구려에 전래된 불교는 인천인과교(人天因果敎) 또는 비담불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당시 중국에 유행했던 율장(律藏)이 비담의 4부율(四部律)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전래 당시의 불교는 비담불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래 이후 건축된 고구려 사원들의 특징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더욱 분명해져 보인다. 즉 당시 고구려 사원들은 중국에서 유행하던 가람배치 중의 하나인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堂式)과 8각불탑(八角佛塔)이 유행했는데, 이러한 형식은 비담의 『사분율』의 조탑사상(造塔思想)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불교 전래 당시의 불교는 최치원이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서 밝혔듯이 비담사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This study examines the 'Damsi Transmission Theory (曇始 初傳說)' and Bidam (Abhidharma) Thought Transmission Theory mentioned in Choi Chi-won's (崔致遠) inscription and 'Abhidharma Thought Transmission Theory (毘曇思想 初傳說)' to define whether the theory is authentic or not.
Regarding the 'Abhidharma Thought Transmission Theory', first, the existing claims of Geyi (格義佛敎), non-Geyi (非格義佛敎) and Sini (神異) Buddhism were found to be based on the trends of the Chinese Buddhism, the transmitter, and on transmitters' Buddhist trends. Moreover, according to the scriptures mainly translated from China at the Buddhism transmission time, most of the records were found to be related to Abhidharma Thought. In addition, the monks, who are generally accepted as conventional or unconventional Buddhists, were not only interested in Abhidharma Thought, but also directly participated in the work of translating scriptures related to Abhidharma Thought.
Also, when taking a look at the contents of 'Goseungjeon (高僧傳)' and 'Haedonggoseungjeon (海東高僧傳)', which mention some doctrines at the time of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to Goguryeo, Buddhism transmitted to Goguryeo is deemed to be In Cheon In Gwa Gyo (人天因果敎) or Abhidharma Buddhism. Moreover, considering that Yuljang (律藏, Vinaya Piṭaka), which was popular in China at the time, was the Sabuyul of Abhidharma (四部律, caturvarga-vinaya), Buddhism at the time of transmission is deemed to be Abhidharma Buddhism. In particular, when taking a view at the characteristics of Goguryeo temples that were built after the transmission, this claim seems clearer. In other words, the Goguryeo temple building layout at that time involved the trendy one-pagoda and three-main hall and octagonal Buddhist pagoda style, one of the most popular temple building arrangements in China, because this style was based on the pagoda building thought (造塔思想) of Vinaya Piṭaka of Abhidharma. Therefore, Buddhism at the time of its introduction to Korea is highly likely to be Abhidharma Thought, as Choi Chi-won revealed in the inscription of Buddhist priest Jijeungdaesasukjo monument at Bongamsa Temple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KCI등재

5신라 정토신앙의 현신왕생설 재검토 - 『삼국유사』 「욱면비염불서승」·「광덕엄장」·「포천산오비구」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춘호 ( Kim Choonho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9-156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에서 필자는 『삼국유사』의 왕생설화를 분석하여 기존에 제기된 '현신왕생신앙설'을 비판하고, 나아가 신라정토신앙의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하였다.
첫째, 현신왕생신앙설은 재고가 불가피해 보인다. 왜냐하면 『삼국유사』의 왕생설화는 모두 왕생자가 현신(現身)을 버렸다고 하고 있을뿐더러, 그 현신이 버려진 장소까지 특정하고 있다.
둘째, 신라정토신앙의 한 흐름으로서 관음신앙과 왕생신앙이 결합된 형태가 확인된다.
셋째, 신라정토신앙은 신라중심의 불국토관념과 연동된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의 왕생설화에서는 당시 현실의 장소를 극락왕생의 기서(奇瑞)와 연관된 영험한 장소로서 부각시키고 있다.
넷째, 신라정토신앙의 한 흐름으로서 집단 염불을 통한 왕생신앙이 인정된다. 아울러 집단염불 왕생신앙의 정착과 전개에 있어서 불교신행 결사조직인 향도(香徒)의 역할이 컷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섯째, 신라의 염불왕생신앙은 신분을 초월하여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의 왕생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천한 여종에서부터 귀족, 재가승려, 은둔 승 등으로 다양하다.


This study criticizes the previously proposed theory of rebirth in Pure Land Buddhism (現身往生信仰說) and presents a few characteristics of the Pure Land faith (淨土信仰) of Silla based on an analysis of tales on rebirth in the Pure Land as found in Samguk Yusa. This thesis will consider several points as described below.
First, the theory of rebirth in Pure Land needs to be reconsidered because all rebirths in Pure Land tales, according to the Samguk Yusa, indicate that those reborn in the Pure Land have abandoned their present bodies, even specifying where they have been abandoned.
Second, a combination of the Avalokitesvara faith and the rebirth in Pure Land faith was found as a branch of the pure land faith of Silla.
Third, Pure Land faith of Silla is interconnected with the Silla-oriented concept of Buddha-land. In the rebirth in Pure Land myths of the Samguk Yusa, a real place, one as miraculous as the places mentioned in fantasy books regarding rebirth in Buddhist paradise, is emphasized.
Fourth, rebirth in Pure Land faith through collective Amitabha chanting is recognized as a branch of the Pure Land faith of Silla. It is also presumed that the role of Hyangdo (香徒), which is a Buddhist lay association for the practice of faith, played a huge role in the settlement and development of the rebirth in Pure Land through collective Amitabha chanting faith.
Finally, rebirth in Pure Land through Amitabha chanting faith of Silla is accepted broadly regardless of class differences. In the rebirth in Pure Land myths of the Samguk Yusa, a variety of characters appear in these myths, from lowly slaves to noble people, as well as married priests, and hermit priests.

KCI등재

6고려시대 법화삼매참법의 두 양상에 대한 비교 고찰 - 백련사계와 묘련사계의 법화참법을 중심으로 -

저자 : 오지연 ( Oh Jiyeon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7-18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고려시대 백련사와 묘련사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두 가지 법화참법의 양상을 비교 고찰한 연구이다. 백련사계는 천태의 '법화삼매참의'를 따랐으므로 별도의 의례집이 없다. 본 연구에서는 백련사의 제2대주 천인과 제4대 천책이 남긴 「법화수품찬」을 통하여, 백련사에서 행하였던 법화참법과 그 수행가풍을 검토하였다.
천인의 「법화수품찬」에는 법화경 각 품의 요지와 더불어, 법화참법의 지향점과 수행의 자세 그리고 수행 계위 등이 종합적으로 응축되어 있어서, 백련사의 수행을 이끄는 지침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천책의 「법화수품찬」 두 축은 당시 남송(南宋) 천태종과의 교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의 「법화수품찬」에는 법화원교(法華圓敎)의 종지를 바탕으로 좌선(坐禪)과 송경(誦經)을 겸하였던 백련사의 가풍이 잘 드러나 있다.
천인과 천책 모두 경전 분과(分科)와 내용 해설 등은 전적으로 천태의 『법화문구』 등의 강설에 의거하였으며, 항상 일념삼천의 경계를 닦고 일심삼지(一心三智)를 갖추기를 강조하였다.
고려후기 묘련사계에서 행해진 법화참법은 2006년경 발견된 산긍(山亘) 찬 『묘법연화경삼매참법』 3권을 통해 살펴보았다. 참법의 형식은 법화경 전체를 12단락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별도의 참법을 행하는 것이며, 그 방법은 '송경(誦經)·작관(作觀)·예경·참회'가 중심을 이룬다. 특히 옛 참법에 비해 실상정관(實相正觀)의 선정행이 미약하므로, 유상행(有相行) 위주의 법화참법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백련사계는 송경을 중심으로 한 유상행(有相行)과 좌선 실상관(實相觀)의 무상행(無相行)이 조화를 이루는 본연의 법화참법이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This is a comparative study on two aspects of repentance based on the Saddharma Pundarika Sutra (Lotus-sutra) as practiced in Baekryeonsa Temple and Myolyeonsa Temple during the Goryeo dynasty. At Baekryeonsa temple during the middle of the Goryeo dynasty, monks did not have their own manual regarding repentance in the Lotus-Sutra. This was because they had been depending on the Tiantai Chi-i's. In this paper, repentance as based in the Lotus-Sutra and the practice tradition in Baekryeonsa is examined through the verses of praise in the Lotus-sutra. These include chapters by Cheon-in and Cheon-check, who were the second and forth leaders of Baekryeonsa temple.
At Myolyeonsa temple during the late Goryeo period, a completely different manual of the repentance was compiled. This is known as Samadhi Repentance of the Loutus Sutra (妙法蓮華經三昧懺法), which was discovered in 2006 in the city of Gyeongju. The format of this manual of repentance is totally different with that of Tiantai Chi-i's. The Lotus-Sutra was divided into 12 parts, each part being practiced one time. In each ritual, sutra chanting (誦經), contemplation (作觀), worship (禮敬), and repentance (懺悔) are the primary elements while Zen meditation for the realization of truth was lacking. At Baekryeonsa temple, however, the original meaning of repentance of the Lotus-sutra, the harmony of chanting the sutra, and contemplated meditation had been inherited.

KCI등재

7『구사론』과 『성유식론』의 명(名) · 구(句) · 문(文) 논의 고찰 - 『구사론기』와 『술기』의 주석을 토대로 -

저자 : 박재용 ( Park Jaeyo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1-217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불교에서 명·구·문과 소리[聲] 및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義]를 논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부처의 가르침이 전승되는 것은 말소리(語聲)로서의 설법이 명·구·문을 매개로 하여 의미가 전달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명·구·문과 소리[聲] 중 어느 것이 실법이고 가법인지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있어왔다. 이런 경향은 유식에도 이어져서 『성유식론』에서는 아비달마의 실유사상을 비판하는 가운데 명·구·문과 소리[聲]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구사론』에서는 명·구·문과 소리[聲]의 관계에 대해 유부와 경량부의 대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세친은 명·구·문이 실법(實法)이 아니라 가법(假法)이라는 경량부의 주장에 초점을 맞춘다. 『성유식론』에서도 명·구·문의 실유를 비판하면서 이를 가법에 배대하고 있는데, 명·구·문이 가법이라서 무용하다는 경량부의 입장에 반하여 명·구·문이 가법임에도 소리 상의 굴곡(屈曲)을 반영하기 때문에 의미를 전달하는 데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경량부와 유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명·구·문을 가법으로 보는 경량부에서는 무상한 말소리가 어떻게 취집하여 우리에게 이해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였으나, 『성유식론』 및 주석서에서는 이를 5심(五心)의 취집현현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양 학파에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명·구·문과 그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 경량부와 유식의 차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부와 유식에서 소리[聲] 및 명·구·문이 지칭하는 의미[義, artha]를 비교하여 살펴본 결과, 유식에서는 대상[境, artha]이 곧 의미[義, artha]라는 양의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오직 식뿐'이라는 유식의 특징을 명·구·문 논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The relationship between names, phrases, and letters as well as the sounds of one's voice is important to the Buddhist view of language. In the process of transmitting the Buddha's teachings, the way the teaching is expressed through names, etc. is a matter that must be considered to clarify the nature of Buddhism. Amongst Buddhist scholars there has been active discussion about whether names etc. are representative of real dharma or nominal dharma, and what that means regarding the essence of Buddhism. The Shuji commentaries introduce the relationship between names, phrases, letters and sounds when criticizing Abhidharma in the Cheng Wei Shi Lun.
The Abhidharmakośa-bhāsya develops an argument between the Sarvâstivāda and Sautrântika school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names, phrases, letters and sounds. Vasubandhu focuses on Sautrântika's assertion that names, phrases, and letters are nominal and not real dharma. The Cheng Wei Shi Lun also criticizes the real existence of names, phrases, and letters and matches them with nominal dharma. This simply opposes the Sautrântika position that names, phrasese, and letters are useless, as it argues that they are nominal dharma but are still useful for conveying meaning because it reflects inflection of sound. While Sautrântika could not explain how the impermanent sound of one's voice could be gathered and understood, the Mind-Only school revealed that there is a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the two schools, which is explained with the five minds (五心).
The contents of Cheng Wei Shi Lun is difficult to understand because the arguments of Abhidharma scholars and those of Dharmaphala are intertwined. In this paper, the relationship between names, phrases, letters, and sounds of the voice is considered by referring to the Shuji annotations of the Cheng Wei Shi Lun. These annotations summarize the discussion in five criticisms and four correct meanings. This makes it easier to understand, in detail, the discussion that the sound of the voice is real dharma and names, phrases, and letters are nominal dharma.

KCI등재

8고려 의선(義璇)의 삼장법사 법호 고찰

저자 : 계미향 ( Kye Mihya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50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천태승 순암 의선은 고려 후기 대표적 명문가인 조인규의 아들로, 해방 전까지의 한국불교사상 유일한 삼장법사였다. 그간 의선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되었으나, 그가 어떤 공적과 배경으로 삼장법사가 되었고 또 황실 사원의 주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런데 논자는 최근 충선왕에 관한 선행 연구를 통해, 그에 대한 답을 일부나마 찾을 수 있었다. 충선왕은 원황실을 대표하는 지식인의 하나로, 유교와 불교에 두루 해박했다. 의선이 국내에서 점차 이름을 날릴 무렵, 왕은 대도에서 무종과 인종을 옹립하였고, 그들에게 인재를 추천하고 과거제 부활을 도우며 원 제국의 전성기를 견인하였다. 그뿐 아니라 충선왕은 여원 양국에 사찰을 창건하고 대장경을 기진하였으며, 성지순례, 행향 등의 다양한 불사(佛事)를 통해 원의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원대에는 석사라바와 석달익바, 고려의 의선 등 총 3명의 삼장법사가 있었다. 앞의 두 토번승은 무종대에 삼장법사가 되었고 경수사에 주석하다가 인종대에 입적하였다. 그들의 삼장법사 피봉과 경수사 주석, 입적 전후의 상황 등도 충선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편 원의 황제들은 계율을 중시하고 호국불교를 앞세우던 고려승에 대한 존경이 커서, 그들을 주요 사찰에 주석하게 하고 가르침을 청하였다고 한다. 의선은 충선왕이 유배에서 풀려난 태정제 통치기에 원으로 가서 활동하다가, 1332년에 『예념미타도량참법』을 중각·유포한 공으로 삼장법사 법호를 받고 황실사찰 대천원연성사에서 20여 년을 주석하였다. 대천원연성사는 당시 황제의 부친이자 충선왕의 장인인 명종의 신어전이 있는 곳이었다. 의선은 충선왕의 처남이면서 매우 뛰어난 승려였기에 충선왕에 의해 원 황실에 그 존재가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충선왕의 다양한 불사와 함께 의선의 승속 배경을 살펴보고, 그가 황실 사찰의 주지를 맡고 삼장법사가 된 배경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Shùnān Yìxuán (順庵義旋, 1284?-1355), a monk of Tiāntáizōng, was a son of Jo Ingue (趙仁規), representative nobleman of the late Goryeo Dynasty. He was highly respected in Goryeo and Yuan Dynasty, and he is the only Buddhist monk to receive the title of the tripiṭaka-ācārya in Korean Buddhist History.
Although some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the surrounding characters such as Yìxuán's family. But there is no specific study on what contribution Yìxuán made to become a tripiṭaka-ācārya and how he became the chief monk of the imperial temple of the Yuan Dynasty Dàtiānyuányánshèngsì (大天源延聖寺).
I believe that King Chungseon (忠宣王) played a big role in the process. By the time Yìxuán gradually became known in the Buddhist community of Goryeo, the King established a political power by supporting the two emperors in the capital of Yuan Dynasty, Dàdū (大都). Furthermore, King Chungseon worked as a representative intellectual among the imperial family of the Yuan Dynasty based on his broad knowledge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During Yuan Dynasty, there were a total of three Buddhist monks, two Tibetan monks (釋沙囉巴, 釋達益巴) and Yìxuán. King Chungseon not only achieved the revival of the test system (bureaucrat selection test) in the political aspect, but also founded temples in China and Goryeo, printed and distributed the Tripitaka Koreana, and performed various Buddhist services such as pilgrimage etc.
Yìxuán engaged in many Buddhist activities in Dàdū since 1323, when King Chungseon was exiled in Tibet, and he became the chief monk of Dàtiānyuá- nyánshèngsì in 1332.
He reissued and distributed Lǐniànmítuódàochǎngchànfǎ (『禮念彌陀道場懺法』) there and he also incorporated them into the Wàn xù zàng jīng (卍續藏經). This achievement seems to be the direct reason why he received the title of the tripiṭaka- ācārya.

KCI등재

9구하의 통도사 개혁과 그 현대 불교사적 의의

저자 : 최두헌 ( Choi dooh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1-283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구하는 주지로 취임할 무렵인 1911년(40세)부터 계단 정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격 정비에 나서 통도사의 전통성 회복과 부흥, 변화와 개혁을 위한 기초를 다지게 된다. 개혁에 있어 대중들의 호응과 동참을 호소하고, 재정확보를 위해 본말사법을 추진하여 투명성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개혁은 사전 조사를 통해 재정 파악과, 공과 사의 분리, 사찰 각 방과 암자의 철저한 역할 분담 등을 신속하게 정리해 나가면서 내·외적, 정신적·물질적 우열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개혁 기반을 다진 이후에는 안으로 사찰통합의 일환으로 통도사 선의 중흥조인 환성을 소환하게 된다. 바로 환성 아래로 갈라졌던 문파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환성종계(喚惺宗契)'를 결성하여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을 아우르고 동시에 그 정당성을 환기하고자 하였다.
한편 구하 개혁의 방점은 교육기반 확립과 승려교육 규정의 정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06년(35세)에 명신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렇게 양성된 후학들은 1919년 신평 만세운동과 3·1만세 운동이라는 실천적 행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고, 나아가 포교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즉 구하의 개혁은 '안으로부터의 개혁'이 우선이었고, 환성을 통해 대중들을 아울렀으며 교육을 기반으로 포교와 역경 사업을 추진하였고, 불교를 통해 세상과 공생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개혁정신과 희생을 깊이 살펴 구하의 개혁정신이 후대에 올바르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Guha renovated the ordination platform in 1911 when he was the chief monk, and initiated maintenance, which would lay the ground work for the restoring tradition, revival, change, and reform of Tongdosa. He appealed to the public for response and participation in the reform, and ensured transparency in financial operations and management by promoting the Law of Buddhist Order to secure finances.
Guha's reform proceeded regardless of internal, external, mental, and material superiority, as it quickly organized the securing of finances, separation of public and private affairs, and the division of roles of each hermitage. After laying the foundation for reform, Guha strived to establish a foundation for education and smooth over issues that divided temples.
As part of public integration, he summoned Monk Hwanseong, the symbol of Zen in Tongdosa, and he founded the Hwanseong sect to unite the division among sects. He then tried including his opponents and aroused legitimacy for the reform. His reform was focused on establishing the foundation of education and reorganizing the rules for monks' education. In 1906, he established Myeongshin school and was very supportive in cultivating the talents of students. His younger students participated in the Sinpyeong Manse Movement and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which further led to missionary work. Together they achieved great results.
'Reform from within' was Guha's priority. He united the public through Hwanseong, promoted missions and academic-based scripture translation projects, and tried to coexist with the world through Buddhism. The reform spirit of Guha should be properly evaluated by closely examining any internal conflicts during his time and take note of his sacrifices in this process.

KCI등재

10템플스테이의 연구동향분석 - 언어 네트워크 분석을 중심으로 -

저자 : 양택수 ( Yang Tecksoo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10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7-315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템플스테이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대량의 텍스트 정보들을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언어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 템플스테이 관련 연구의 동향과 주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템플스테이를 검색어로 하여 제목에 템플스테이를 포함하는 논문들을 선별한 후, 최종 69건의 연구들을 분석에 활용하였다. 그리고, 각 논문 초록에 저자들이 부여한 키워드들을 언어 네트워크 분석 방법인 텍스톰(Textom)과 UCINET을 통해 CONCOR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결과, 첫째, 템플스테이 연구들의 주요 핵심어는 '템플스테이'가 62회로 가장 높은 출현빈도를 보였으며, 그 다음은 '만족'(15회), '재방문의도'(5), '템플스테이체험'(5), '행동의도'(4) 순으로 나타났다. 둘째, TF-IDF 분석을 실시한 결과, '만족', '재방문의도', '템플스테이체험', '행동의도' 순으로 나타났다. 셋째, N-gram 분석 결과, 전체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키워드는 '템플스테이'로 확인되었다. 전체 논문의 핵심어 중 '템플스테이' 핵심어가 출현할 때는 '템플스테이체험', ' 참가동기' 핵심어가 3회 동시 출현되었으며, '인식차', '인지체험', '감각유산' 등은 각각 2회 출현되었다. 넷째, 연결중심성이 가장 높은 핵심어는 '템플스테이'(0.31)로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만족'(0.10), '템플스테이체험'(0.03), '몰입'(0.0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CONCOR 분석 결과, 3개의 그룹이 형성되었으며 각각 '템플스테이 체험의 만족 및 재방문 결정요인', '템플스테이 체험동기', '템플스테이의 효과'로 명명하였다.
본 연구는 템플스테이 연구동향의 특징을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네트워크 분석기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템플스테이 연구방향 및 연구 주제 설정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To mark the 20th anniversary of the implementation of the templestay program this study aims to analyze trends and topics regarding domestic, templestay-related research over the past two decades. This is done using language network analysis that can effectively analyze large amounts of text information.
To this end, from 2007 to 2021, “Templestay” was used as a search term to find papers including “Templestay” in the title. The most recent sixty-nine templestay studies were used for analysis. In addition, the keywords assigned by the authors to each thesis abstract were subjected to CONCOR analysis through Textom and UCINET, which are text mining-based analysis methods.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not only identifies the characteristics of templestay research trends, but also applies language network analysis techniques.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used as basic data for setting future templestay research directions and research topics.

1
권호별 보기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