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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학 update

Hanguk Bulkyo Hak ( The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

  • : 한국불교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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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5-0945
  • : 2734-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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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5)~99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375
한국불교학
99권0호(2021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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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미산문 조동선풍의 전개와 의의

저자 : 김호귀 ( Kim¸ Ho-gui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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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문(須彌山門)의 위상은 한국선법의 수입기에서 제3기에 전개되었는데 중국의 선종오가를 수입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 사상적인 근간은 중국 조동종풍의 전승이었다. 본고에서는 그것을 계승한 유학승들 가운데서 해동의 사무외대사(四無畏大士)를 비롯하여 운주(雲住)와 경보(慶甫) 등 6명의 선자들에 대한 선풍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중국 조동종풍은 주도면밀하고 엄격한 괄골선(括骨禪), 동산삼로(洞山三路) 소위 불염오(不染汚)의 수행을 비유한 조도(鳥道)와 이견(二見)을 초월한 현묘한 길을 의미하는 현로(玄路)와 납자를 접화하는 방편으로서 중생을 화익(化益)하는 것을 의미하는 전수(展手), 깨침에도 집착하지 않는 불향상사(佛向上事), 일체의 깨침이 현전에 성취되어 있다는 현성공안(現成公案)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들 조동종지를 전승한 인물들은 귀국해서도 선자의 본분을 잊지 않고 중생을 위하는 보살행과 국가의 안위에 도움을 주는 이타행을 지속하는 방편으로 실질적인 국사의 자문역할을 하였다. 그들 가운데 수미산의 이엄과 동리산문의 경보를 제외하고는 소위 구산선문과 관련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기타 선자들의 행실에서도 조동가풍을 전승하고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본래인의 자각에 따른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현실생활에 대한 강한 긍정의 사고방식으로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는 공사상의 실천이기도 한 동산삼로의 선리로서 몰종적의 가풍을 구현했던 형미(逈微), 용의주도하고 주도면밀한 가풍을 고려의 삼국통일 이전의 혼란한 현실 생활에다 강한 긍정의 사상으로 승화시켜주었던 이엄(利嚴),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언설의 표현을 초월한 이심전심의 방식을 전승한 경유(慶猷),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고 여일하게 정진하는 납자의 충실한 본모습을 보여준 여엄(麗嚴), 조사선의 사상을 유감없이 발휘해주었던 운주(雲住), 보살행으로 작용하는 행동을 지니고 있는 불향상인(佛向上人)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던 경보(慶甫) 등이었다.


Sumisanmoon's status was developed in the third period of Korean Zen importers, which was the result of importing the five sects of Zen,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which was the tradition of Caodongchanfeng in China. This study examines a selection of six monks, including Samuoidaesa (四無畏⼤⼠) in Korea, as well as Unju and Gyeongbo who studied abroad.
There are several doctrines related to Caodongchanfeng in China. The first is meticulous and strict, which is known as guaguchan (刮⾻禪), meaning cutting off the so-called bone. The second is the three ways by which Tungshan-Liangchieh led his trainees (洞⼭三路). These include ① niodao (⿃道) which compares uncontaminated performance, ② xuanlu (⽞路) which transcends discernment, and ③ zhanshou (展⼿) which benefits regeneration by edifying the disciples. The third doctrine is to give up the idea of buddhas and patriarchs (佛向上事). This means to move beyond enlightenment without attachment to it. Fourth is the undisguised manifestation of the ultimate reality (現成公案).
The following are some of those who have introduced these doctrines of Caodongchanfeng from China. Hyeong-mi (逈微) implemented the three ways by which Tungshan-Liangchieh led his trainees by practicing thoughts on emptiness. Lee-um (利嚴) implemented the strict practice of guaguchan. Gyung-you (慶猷) established a method of transmission that transcends rhetoric and combines the mind of the teacher with that of the student. Yeo-um (麗嚴) shows the true nature of the individual who seriously devotes himself without forgetting his duties. Un-ju (雲住) vastly spread the idea of patriarch-zen. Gyeong-bo (慶甫) practiced as a bodhisattva and also showed how one can surpass Buddhahood (佛向上⼈)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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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실상산문 홍척의 '조범모성(早凡暮聖)'에 대한 고찰 - 『대승개심현성돈오진종론』(大乘開心顯性頓悟眞宗論)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저자 : 오용석 ( Oh¸ Yong-suk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6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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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현존하는 홍척과 관련된 자료 및 당시 신라하대의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홍척의 선사상을 파악해보았다. 우선 홍척의 선사상에 접근하기 위해 기존의 실상산문과 관련된 선행 연구의 흐름을 파악하여 홍척의 선사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단서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홍척의 스승에 해당하는 서당 지장의 선에 나타난 특징과 홍척의 선사상을 살펴보았다. 특히 봉암사(鳳巖寺)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의 '조범모성(早凡暮聖)'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홍척의 선사상에 나타난 절충적 선관을 논술하였다. '조범모성' 즉 '아침의 범부가 저녁의 성인이 된다'는 말을 단순하게 무수무증의 돈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를 본 논문의 문제의식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돈오란 아침의 범부에서 저녁의 성인이라는 시간적 매개가 적용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홍척의 '조범모성'이 가진 함의를 중심으로 그것의 출처를 『대승개심현성돈오진종론』(大乘開心顯性頓悟眞宗論)으로 보고 이 어록에 나타난 사상을 중심으로 조범모성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진종론』에 등장하는 조범모성은 단순히 아침의 범부가 저녁에 성인이 된다는 의미로 보기 어렵다. 여기서 아침과 저녁은 미혹와 깨침을 상징하는 수사(修辭)이지 시간적 배열 혹은 점차적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범모성을 아침의 범부가 저녁에 성인이 된다는 의미보다는 몰록 범부와 성인을 초월한다는 의미 즉 미혹하면 범부요, 깨달으면 성인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홍척의 선법이 마조계의 서당 지장을 계승한 점에 방점을 둔 것이 아닌 홍척이 처한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 절충적 선관을 드러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In this study, the Seon thought of Hongcheok (洪陟) is identified focusing on the existing sources related to him and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later Silla period. First of all, in order to approach the Seon thought of Hongcheok, previous studies related to the existing Silsang Seon School are dentified and several clues necessary to understand Hongcheok's philosophy are obtained. Based on this, the characteristics of Xitang-zhizang (西堂智藏), the master of Hongcheok and his philosophy are examined. In particular, Hongcheok's eclectic view is discussed regarding the concept of jo-beom-mo-seong (朝凡暮聖) as it appears on the epitaph for Seon Master Jijeung (智證⼤師碑⽂) at Bongamsa (鳳巖寺).
This study aims to solve the issue regarding whether or not jo-beom-moseong should be interpreted as 'an ordinary person in the morning can be a saint in by the evening.' This is debatable because sudden enlightenment is a concept that does not apply to a temporal medium in the same way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being ordinary in the morning and being saintly in the evening does. In this thesis the meaning of jo-beom-mo-seong is reemphasized based on Hongcheok's definition as found in Dacheng-kaixin-xianxing-dunwuzhenzonglun (⼤乘開⼼顯性頓悟眞宗論).
It has been found that it is difficult to interpret jo-beom-mo-seong as 'an ordinary person in the morning can be a saint in by the evening.' Here, morning and evening symbolize delusion and enlightenment, not a temporal arrangement. Therefore, it can be understood that the Seon thought of Hongcheok did not focus on the fact that he succeeded Xitang-zhizang of the Ma-zu (⾺祖) lineage. It reveals that he had an eclectic view of Seon that reflected the historical reality of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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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다르마끼르띠의 바른 인식대상에 대한 경량부적 이해 - Pramāṇaviniścaya 의 개별상(svalakṣaṇa)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

저자 : 배경아 ( Bae¸ Gyeong-ah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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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끼르띠는 바른 인식수단의 대상과 결과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디그나가 인식론의 유식학적 관점을 계승하면서도 바수반두와 디그나가가 비판했던 외계추리론에 기반 한 경량부적 인식론을 받아들인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일한 바른 인식대상인 개별상을 둘러싼 논의이다. 다르마끼르띠는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유식철학의 관점에서 외계실재론을 비판하고 개별상과 관련된 인식론의 구체적인 설명에서는 경량부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인식론논리학파는 이후 경량유가행파라고 불릴 정도로 유식학적 관점과 경량부적 관점이 혼재되어 왔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다르마끼르띠의 『쁘라마나비니쉬짜야』(Pramāṇaviniścaya, 바른 인식의 확정, 이하 PVin)에서 다루는 개별상(svalakṣaṇa)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무엇을 지각하는가'에 대한 다르마끼르띠의 경량부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조망해 보고자 하였다.
첫째, 두 종류의 바른 인식대상 중에 개별상은 '효과적 작용(arthakriyā)에 능력'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실재(vastu)가 아닌 것에는 없다. 둘째, '효과적 작용'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승의적으로 개별상만이 바른 인식대상이고 이 능력이 있는 것은 외계의 대상이 인식 속에 자신의 모습(svarūpa)을 부여하기(upādhāna) 때문이다. 셋째, 개별상은 외계의 실재가 인식 속에 자신의 형상(ākāra)을 투영(arpaṇa)한 것이다. 이 능력이 있는 대상이야말로 진정으로 파악되어야 할 대상이다. 넷째, 개별상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은 선명하게 나타나는 감관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이 선명한 가 선명하지 않은가의 차이는 실재에 기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의해 결정된다. 다섯째, 개별상과 일반상이 서로 동일성이 없는 것은 개별상은 시간과 공간이 다른 곳을 따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관지는 언어표현되지 않고 효과적 작용능력이 있는 실재의 본성을 향한다. 여섯째, 인간의 언어활동은 이전의 선명한 지각 대상과 유사한 것을 지각함으로써 상기(想起)의 종자가 각성하고 잠재인상(vāsanā)으로 인해 욕구가 활성화함으로써 일어난다. 개별상의 경우 이와 같은 언어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선행하는 작용이기 때문에 잠재인상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Darmakīrti inherits Dignāga's epistemological stance that the means of valid cognition, the object, and the result are not separate, while accepting the epistemology of Sautrāntika, which is criticized by Vasubandu and Dignāga. At the center of this perspective is a discussion on the particular, which is ultimately the only object of valid cognition. There has been confusion with regard to this discussion because the Pramāṇa school encompasses both the epistemology of Yogācāra and Sautrāntika. Thus, the aim of this paper is a systematic understanding of Darmakīrti's view of Sautrāntika, which has been broken down into the following six points.
First, the object of valid cognition includes the following two points: there is the svalakṣaṇa, which has the effect of beneficial works (arthakriyā), and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real (vastu). Second, the svalakṣaṇa is the only object of valid cognition. The beneficial works, or arthakriyā, refers to the external object that, like a projection or an image exists as a cognition. Third, the particular is a projection of the way something appears (ākāra) in the external world. The object with this ability is grasped as an object for the perceiver. Fourth, the reason why the particular cannot be expressed in language is because it is the object of sense perception which occurs clearly. Fifth, the reason why the particular and the universal characteristics do not have the same identity is that the particular does not occur in different times and spaces. Therefore, the sense perception is not expressed in language and is directed towards the real nature of being able to act effectively on meaningful objects. Sixth, human linguistic activities are caused by the awakening of the seeds of the memory and the activation of desire due to the imprints of previously perceived objects. In the case of the particular, it is hard to determine if it is under the influence of a direct causal relationship with imprints because it is simply a leading action or if it is a direct cause of linguistic based 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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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다르마끼르띠의 의지각 발생과정에 관한 세 가지 학설

저자 : 양현희 ( Yang¸ Hyun-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1-11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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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끼르띠(Dharmakīrti, 法稱, ca.600-660)에 따르면, 의지각(意知覺, mānasa-pratyakṣa)은 직접인식[現量, pratyakṣa]임에도 불구하고, 분별을 동반하는 독특한 인식론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의지각의 인식론적 역할은 그 발생 원인에 근거한다. 그 원인으로 제시된 것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이다. 첫째, 등무간연(等無間緣, samanantarapratyaya)인 감관지(感官知, indriyapratyakṣa)와 둘째, 공동인(共同因, sahakārin)인 전 찰나의 자상(自相, svalakṣaṇa)이다. 감관지는 의지각으로 하여금 분별을 동반한 지각판단 작용을 수행하도록 하며, 자상은 무분별지로서 직접인식 작용을 수행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두 원인에 대한 규명에도 불구하고 그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점들이 뒤따른다.
이에 따라 일부 선행연구자들은 다르마끼르띠 주석가들을 통해서 '의지각의 발생과 정에 대한 이론'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운 설은 다르마끼르띠의 입장과 상충한다는 점에서, 또한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중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아 '의지각의 발생과정에 대한 세 가지 학설: 일시정지설(Pause Theory) · 교대발생설(Alternation Theory) · 동시발생설(Co-occurrence Theory)'을 본 논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이 중에서 제일 타당한 학설은 쁘라즈냐까라굽따(Prajñākaragupta, ca.780-840)의 '동시발생설'이다. 이것은 두 가지 행상(ākāradvaya)이 동일 찰나에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의지각의 상반된 두 가지 작용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의지각의 인식론적 역할에 대한 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지각의 인식작용은 다르마끼르띠 철학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실용주의(pragmatism)를 보여준다.


Dharmakīrti introduced mental perception (mānasapratyakṣa) which serves a distinctive epistemological role. It plays two different cognitive roles: one is perception without concepts and the other is perceptual judgement with concepts. According to Dharmakīrti, there are two causes for this. One is sense perception (indriyapratyakṣa) as samanantarapratyaya and the other is the preceding object (svalakṣaṇa) as sahakārin.
There are several questions about the process of mental perception which include, what exists in the moment of mental perception? does it exist alone in that moment or with other cognitions? and, which cognition rises afterwards, mental or sense perception? To answer these questions, previous researchers have suggested turning to the three theories of the genesis of mental perception based on commentators of Dharmakīrti.
However, they have some problems. Firstly, some theories violate Dharmakīrti's epistemology. Secondly, the classification system according to theorists brings dupolicate. Given the problems of the previous system, this paper rearranges and recategorizes three theories about the genesis of mental perception.
This is three 'new' theories about the genesis of mental perception : Pause theory, Alternation theory, and Co-occurrence theory. Among them, the most valid one is co-occurrence theory based on Prajñākaragupta's opinion. According to him, two images (ākāra) co-exist at the mental perception's moment : visual cognition (cakṣurvijñāna) and mental cognition (manovijñāna). Because of them, mental perception could play two epistemological roles : perception and perceptual judgement. This shows Dharmakīrti's pragmatic approach to 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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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광명장엄경』 9가지 비유에 대한 고찰

저자 : 김성옥 ( Kim¸ Seong-ock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3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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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명장엄경』은 제불의 경계에 들어가는 지혜, 여래의 지혜 광명으로 장엄된 세계를 기술하는 대승경전이다. 여래의 현현을 '제석천의 영상', '대법고의 소리', '비·구름', '대범천', '태양의 광명', '여의보주', '메아리', '대지', '허공' 등으로 설명하는 9가지 비유가 주목받는다. 그리고 이 비유들은 환영과도 같아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되는데, 바로 여기에 이 경전의 핵심이 놓여 있다.
이 점에서 『지광명장엄경』은 「여래성기품」과 명백한 차이를 갖는다. 여래의 현현이 일체 세간에 두루하다는 것을 기술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거기에는 여래의 불생불멸을 설명하는 부정구의 나열은 보이지 않는다. 『보성론』에서는 여래 현현에 관한 9가지 비유를 중생들 마음 안에 머무는 법신을 보는 것으로 해석하며, 여래장 사상에 맞추어 '연꽃 속의 여래' 등과 같이 '중생의 마음에 생겨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여래의 현현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불의 세계'에서 '중생들 마음속', 그들의 내부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광명장엄경』 기술방식의 특징은 “여래가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어디에나 머무는 법성”을 언급하지만, 이것 역시 '불생불멸(不生不滅)·비유비무(非有非無)'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여래가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언제나 이들 중생은 여래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여래장경』·『보성론』의 입장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보성론』의 여래장 사상에 공성의 관점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는 사항이지만, 『지광명장엄경』에서 여래의 현현을 불생불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공성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The Sarvabuddhaviṣayāvatārajñānālokālaṃkāra is a Mahāyāna sūtra that describes the wisdom that enters the boundary of the buddha, and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tathāgata. It is noted for its nine metaphors that explain the manifestations of the tathāgata. These metaphors are said to be like illusions and shadows (幻影), which “neither arise nor disappear.” These metaphors are the essence of this sūtra.
In this respect, the Sarvabuddhaviṣayāvatārajñānālokālaṃkāra has a distinct difference from Tathāgatagotrasambhava. Although both describe the manifestat -ions of the tathāgata as being everywhere pervasive, there are no negative phrases that explain the tathāgata, as “neither arising nor disappearing.” In the Ratnagotravibhga, we can see that the manifestation of the tathāgata is understood as seeing the dharmakāya that dwells in the minds of sentient beings, interpreting it as “having arisen in the minds of sentient beings” in accordance with the thoughts of the tathāgatagarbha. It could be said that it constituted the turning the point where the view of the manifestation of tathāgata shifts from the world of the Buddha towards the inner world of sentient beings.
In the Sarvabuddhaviṣayāvatārajñānālokālaṃkāra it is mentioned that the dharmakāya exists everywhere regardless of whether the tathāgata appears or not. However, this is also explained from the point of view of “neither arises nor disappears.” This is decisively different from the position of Tathāgatagarbhasūtra and Ratnagotravibhāga, in which it is mentioned that “whether the tathāgata appears or not, these sentient beings always have the tathāgatagarbha.” How the understanding of śūnyatā remains in Ratnagotravibhāga, establishing the thoughts of tathāgatagarbha is a matter to be examined more closely, but it could be said that it is not unrelated to the position of understanding śūnyatā in Sarvabuddha -viṣayāvatārajñānālokālaṃkāra, which views the manifestation of the tathāgata from the point of “neither arises nor disapp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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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갈애의 발생과 소멸에 관한 일고찰 - 빠알리(Pāli) 문헌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재은 ( Park¸ Jae-e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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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苦)의 주요 원인인 갈애(渴愛)의 의미와 기능을 살펴보고, 그것이 생기하는 조건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그 수행적 위상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갈애는 모든 괴로움의 뿌리이므로 갈애의 소멸은 괴로움의 종식으로서 열반을 의미한다. 불교 수행의 방법론은 갈애를 소멸하기 위한 방향으로 수렴된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반드시 정화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로서 중요시된다. 갈애의 종류는 보통 그것을 일으키는 대상을 기준으로 '감각적 즐거움(kāma)에 대한 갈애', '유(有, bhava)에 대한 갈애', '무유(無有, vibhava)에 대한 갈애'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여기에서 '유에 대한 갈애'는 자아(我)와 세상(界)이 존속한다는 견해인 상견(常見)에 의지하는 것이고, '무유에 대한 갈애'는 사후에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견해인 단견(斷見)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유에 대한 갈애'와 '무유에 대한 갈애'를 그 토대가 되는 신체적 낙(樂)과 고(苦)에 대한 감수[受]로만 설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니까야(Nikāya)를 비롯한 빠알리(Pāli) 문헌을 살펴보면 갈애가 육근, 오온의 행위 및 대상 전체와 관련된다는 경증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신체적 감수로만 그 외연을 한정한다면 본래의 포괄적 성격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 수행에 있어서 갈애의 기능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계에서 체계적인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갈애에 대한 개념적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그 수행적 위상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identify performative status by examining the meaning and nature of craving (渴愛), which is the main cause of suffering (苦), and exploring the conditions under which it arises (⽣起) and how to make it disappear. Since craving is the source of all suffering, the cessation of craving means Nirvana as the end of suffering. To the extent that it can be said that the Buddhist method of practice is concentrated in the direction to extinguish craving, craving is regarded as a key element that must be purified.
Craving is usually divided into three types: craving for sensual pleasures, craving for being (bhava, 有), and craving for nothingness (vibhava, 無有). This goes beyond a mere formal and schematic classification and becomes a condition for craving each. Craving for being refers to obsession with sang-gyeon (常⾒), the view that the self (我) and the world (界) persist. Craving for nothingness is the obsession with dan-gyeon (斷⾒), the view that everything is destroyed after death. Some believe that these two cravings should be understood only as a response to sensation (受) for pleasure (樂) and suffering (苦), which are its foundations. However, in Pāli literature including the nikāyas, craving for the dhamma (法) is specified as the object of the faculty of mind (意根). Affirmation is given that craving is related to acts of the sixfold sense bases, the five aggregates, and the whole subject. Nevertheless, if the explicit meaning of craving is limited only to the response of the sensual, there is a problem that its comprehensive character will be reduced. Despite the function and importance of craving in the practice of Buddhism, systematic discussions have not been held in earnest in academia until now.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serve as an opportunity to broaden the conceptual understanding of craving and draw attention to the performative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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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금강삼매경』의 저자 - 특히 신방(神昉)과 관련하여 -

저자 : 홍재성 ( Hong¸ Jae-s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9-19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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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강삼매경』(이하 『삼매경』)의 저자와 관련하여 중국 삼계교승이면서 신라승인 신방법사와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신방의 저작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서(序)와 작자미상의 『삼매경』 및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이하 『삼매경론』)등의 용어와 당시 사상의 고찰에 연구의 초점을 두었다.
이 연구는 『삼매경』을 지장계 경전류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하며 지장교라고도 불리는 삼계교의 배경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큰 사상의 흐름, 즉 삼계교내지 지장사상과 그 신앙은 신라의 누구에 의하여 어떠한 방법과 형태로 유입되었는가라는 의문은 신방의 위치를 추적해 봄으로써 그 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기존에 연구한 『대방광십륜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이하 『십륜경』)과 『삼매경론』의 경론을 비롯해 총 14종 37개 용어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새롭게 신방의 '『십륜경』 서(序)'의 내용을 추가하고 이들을 비교 분석하여, 신방의 고뇌와 그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었는가를 탐색하였다.
먼저 『삼매경』의 대의를 살핀 후, 이 경을 지장계 경전류로 보려는 측면에서의 『삼매경』의 연구사의 문제점 및 신방과 원효를 둘러싼 중국불교에서 새롭게 시연되는 첨단사상인 지장사상의 유입에 관한 일련의 움직임을 용어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또한 『십륜경』 서(序)와 『삼매경(론)』에 나타난 용궁의 개념과 비교하여 『삼매경』이 전해진 연유와 결론을 추정하여 이 경의 저자를 추적해 보고자 하였다.


This writing considers the author of the Geumgang Sammaegyeong (hereinafter abbreviated as Sammaegyeong) with relevance to Shinbang, who was both a member of the Chinese Samgyegyo (三階敎, the Three Stages school) and a Buddhist monk of Silla. This thesis will focus on analysing the terminology in the preface of Daeseung daeji pjijang sipryun gyeong by Sinbang, the Sammaegyeong, which is of unknown authorship, and the Sammaegyeong by Wonhyo as well as other ideas of that time.
This study starts by viewing the Sammaegyeong from the perspective of the Jijanggyo tradition (地藏敎, the Kṣitigarbha school), which is based on the Samgyegyo, also referred to as the Jijanggyo. Through an investigation of Sinbang it is believed that the questions of how and in what way the Samgyego and Jijanggyo were introduced to Silla can be answered.
Accordingly, based on the analysis of 37 terms in 14 categories, included in such sūtras as the previously studied Daeseung daejip jijang sipryun gyeong (or Daebang kwangsipryun gyeong, hereinafter abbreviated as Sipryungyeong) and Sammaegyeong, Shinbang's preface to the Sipryungyeong was added and comparatively analyzed.
After looking at the significance of the Sammaegyeong, as well as the problems which occur as a result of viewing i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Jijanggyo tradition, a series of movements were examined regarding the inflow of new ideas. These movements revolved around Shinbang and Wonhyo.
In addition, an attempt is made to figure out who the author of the sūtra is by considering the cause and conclusion of the preface to the Sammaegyeong. This is done through a comparison of the concepts of the Dragon palace (⿓宮) between in the preface of Sipryungyeong and in Sammaegyeong(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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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중국과 일본선종 공양 의례의 실제와 특징 이해 - 『행호율의』 · 『선원청규』 · 『영평청규』를 중심으로 -

저자 : 한수진 ( Han¸ Su-jin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9-23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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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종의 공양 의례는 한국과 일본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일본 선종에서는 중국 선종의 청규 규정을 대부분 수용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 선종 공양 의례의 실제와 특징을 중국 선종 청규인 『선원청규』 및 일본 조동종의 『영평청규』의 규정을 토대로 고찰하면서, 중국 율종의 신참 수행자의 생활 규정을 담은 『행호율의』와의 비교를 통해 선종의 공양 의례와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중국불교에서 율종의 불상과 선종의 성승상 예경 모습, 염불과 범패, 발우 보관법, 출생식, 정인의 공양 배분, 정인이나 행자의 제공되는 공양물 알림, 공양 관법(觀法) 등은 율종과 선종에서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율종의 공양 작법을 선종에서 수용하여 의례로 발전시켰음을 의미한다. 한편, 중국 선종 공양 의례에서 나타난 다수의 게송 · 진언 · 다라니 등은 율종보다는 공양을 의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선종 청규에서는 중국 선종의 공양 의례 절차를 대부분 수용하여 중국 선종과 유사함을 보이며, 중국 선종의 공양 의례를 전승하였다. 그러나 추가로 중국 율종의 규정도 따르며 중국의 율종과 선종의 공양 의례를 종합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일본 선종에서는 공양 의례의 세밀한 설명과 함께 공양 절차와 방법에 있어서 통일성 · 일관성을 더욱 엄격하게 유지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도 공양 의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공양 의례가 추구한 의례의 본래 목적은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식탐을 제거하며, 원활한 공동체 생활과 운영으로 수행자의 출가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있었다.


In Chinese Buddhism, the explanation of the alms-bowl offering ritual of the Vinaya school is organized according to the same precepts as those of the Vinayapiṭaka. However, it is complicated compared to the Zen school's rules of purity (Qinggui, 淸規), which describes its ritual rules more clearly. However, in both the Vinaya and Zen schools, the importance of respect for seniors, accepting Indian Buddhist culture as a priority, worshipping the statues of the Buddha or eminent monks, chanting, keeping the alms-bowl, distributing food by means of (kappiyakā, 淨⼈), mind concentration, and control, are similarly applied. The rituals of Zen have been accepted by Vinaya and have spread to the Japanese Zen schools.
The ritual of Japanese Zen is similar not only to Chinese Zen but also to the Vinaya school. However, Japanese Zen explains the steps and methods of the rules more specifically and tries to maintain consistency and unity. Also, Japanese Zen has less chanting than Chinese Zen. Furthermore, the similarity between the alms-bowl offering rituals of Chinese and Japanese Zen indicates that the Japanese Zen school adopted the ritual rules of Chinese Zen and the Vinaya school. Perhaps the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Chinese and Japanese Buddhism and its philosophy affected how the ritual developed.
Most importantly, the main purpose of the ritual is to cultivate a thankful mind for food, remove gluttony, and manage life smoothly so monks can reach their aim of becoming a bhik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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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신효(信孝)의 월정사 수조(修造)와 사명(寺名)의 특수성 검토

저자 : 염중섭 ( Youm¸ Jung-seop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7-26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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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오대산 관련 항목이 4편 존재한다. 오대산에 대한 자료는 이외에도 일연보다 약 40여 년 늦은 인물인 민지(閔漬)의 『오대산사적』(五臺山事蹟)이 있다. 두 문헌은 상호 비슷한 구성과 항목적인 분절을 보이는데, 이는 상호 비슷한 시기의 자료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문헌을 자세히 보면, 같은 오대산 문헌 안에서도 '보천 · 효명'과 '신효'에 대한 내용이 분절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 중 신효에 대해서는 자료의 산만함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오대산의 개창자인 자장의 주된 계승자가 보천과 효명이 아닌 신효라는 점, 또 오대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월정사의 정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신효라는 점은 신효에 대한 연구의 필연성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본고에서는 신효의 연대를 추론하고 신효의 월정사 수조(修造)가 가지는 의미에 관해 모색해 보았다. 그리고 월정사의 '월정(月精)'이라는 불교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寺名의 대두와 관련해서, 신효의 동선(動線)에 입각해 경주 월정교(月精橋)의 명칭 영향을 제시해 보았다. 또 이렇게 해서 추론되는 신효의 오대산 주석 연대는 760-800년대 초반으로 판단된다.


In Ilyeon's Samguk Yusa, there are four articles related to Mt. Odaesan. In addition to the data on Odaesan, there is also the Odaesan Sajeok (五臺⼭事蹟) written by Minji (閔漬) about 40 years after Ilyeon's book. The two books have similar content and item segmentations, because they contain data of roughly the same period.
However, when examining the two documents closely, it is confirmed that even within the same document, the content regarding Bocheon (寶川) and Hyomyeong (孝明) and that regarding Sinhyo (信孝) are divided. Among these, the research on Sinhyo was relatively incomplete due to scattered data.
However, research on Sinhyo is necessary because he, not Bocheon and Hyomyung, was the main successor of Odaesan's founder, Jajang (慈藏). This is because Sinhyo was the most important person in the establishment of Woljeongsa, a temple representing Odaesan.
In this paper, the age of Sinhyo is inferred and the meaning behind his restoration of Woljeongsa is examined. Furthermore, in relation to the name of Woljeong (⽉精), which was not commonly used in Buddhism, this thesis suggests there was an influence of the Woljeonggyo (⽉精橋), a bridge in Gyeongju, based on the movement line of Sinhyo. Thus, the date of Sinhyo's residence in Mt. Odaesan is judged to be between 760 and 800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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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엄사상으로 본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와 덕주사(德周寺)

저자 : 진영아 ( Chin¸ Young-ah ) , 한민수 ( Han¸ Min-su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간행물 : 한국불교학 9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3-29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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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와 덕주사(德周寺)의 연관성을 살피고자 한다. 기존 선행연구에서는 덕주사가 사료(史料) 등에 기반해 법상종(法相宗) 사찰로 존재했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덕주사 창건 설화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자빈신사의 경우 자료 부족으로 사찰의 성격 등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사자빈신사와 덕주사의 사상적 기반을 새롭게 살펴보고, 두 사찰 간의 관련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크게 2가지 점에 의거해 논의를 진행한다. 첫째, 두 사찰명이 화엄사상에 기반했을 것이라는 점. 둘째, 두 사찰에 조성된 불상이 각각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이라는 점이다.
먼저 사자빈신사지는 『화엄경』의 주석서인 『징관소』(澄觀疏)의 설명에 의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사자빈신사 창건에 화엄교학이 반영되었고, '빈신(頻迅)'이라는 독특한 용어로 발전했다고 판단된다. 덕주사 역시 화엄교학의 보현행(普賢行)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자빈신사와 같이 화엄에 기반한 사찰로 볼 여지가 있다. 화엄 주석서에서 '덕주'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보이고, 설명 또한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사자빈신사지 사사자석탑의 경우 탑에 존상이 모셔져 있는데, 탑의 구조를 변화하여 상(像)을 안치했다는 점, 탑기(塔記)가 기단부 외면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사리가 아닌 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셨을 것이라 보았다. 덕주사 마애불은 아미타 구품인을 취하고 있으며, 사찰명 또한 보현행에 입각한다는 점에서 볼 때 아미타불로 간주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유가업(瑜伽業) 사찰에서도 아미타상이 모셔졌다는 점이 확인되므로, 미륵불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사자빈신사지부터 상덕주사, 상덕주사에서 하덕주사까지의 거리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명명되었다는 점, 인접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덕주사만의 기록이 후대에 남아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나의 사찰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In this paper, the relationship between Sajabinsinsa Temple (獅⼦頻迅寺) and Deokjusa Temple (德周寺) is examined. First of all,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Sajabinsinsa Temple name coincides with explanations given in Chengguan's Commentary on the Avataṃsaka-sūtra (澄觀疏). In other words, it is judged that the Huayan doctrine is reflected in the establishment of Sajabinsinsa Temple, at which time the unique term 'Binsin' (頻迅) comes to rise. Since Deokjusa Temple may also have originated from the practice of Samantabhadra (普賢⾏), there is a possibility that Deokjusa Temple, like Sajabinsinsa Temple, is also connected to the Huayan School.
Regarding the pagoda supported by four lions (四獅⼦⽯塔) at the Sajabinsinsa Temple site, it has been found that a sacred image (尊像) is enshrined within. It has been found that the image is enshrined in the changed pagoda structure, and that the memorial-stele biography (塔記) is carved on the outer surface of the base of pagoda. Thus it is concluded in this thesis that Vairocana Buddha as Dharmakāya (法⾝), not śarīra (舍利), is enshrined in the pagoda. Furthermore, the image of a buddha inscribed on the face of a cliff at Deokjusa Temple is in the form of the nine grades mudra of Amitābha (阿彌陀九品印). The name of this temple coincides with the practice of Samantabhadra, and is considered to be a temple of Amitābha Buddha. Moreover, it is confirmed that the Amitābha image was enshrined in the Yuga-eob (瑜伽業) temple of the Goryeo period.
Lastly, the approximate distances between Sajabinsinsa Temple site, and the upper and lower sites of Deokjusa Temple, are similar. They were also named on the basis of Huayan thought. In addition, even though it is an adjacent temple only the records of Deokjusa Temple remain. With this in mind, one can presume the possibility that all three sites were a singl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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