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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칸트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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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598-9372
  • : 273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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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49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429
칸트연구
49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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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창화 ( Changhwa Shin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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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산술학(arithmetic) 및 대수학(algebra)이 칸트 비판 체계에서 어떤 지위를 점유하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칸트는 아프리오리 종합 판단의 가장 전형적인 실례로 “7+5=12”와 같은 산술학의 명제를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시간론」의 서술에서 시간의 아프리오리한 학문으로서 산술학이나 대수학을 제시하지 않는다. 산술학과 대수학이 처한 이러한 사정은 「공간론」과 「시간론」에서 각각 공간과 시간의 아프리오리 종합적 학문으로 제시된 기하학 그리고 일반 역학에 대비된다. 해석자들은 산술학과 대수학이 가진 비대칭적 지위를 해명하고자, B745의 “상징적 구성”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기하학과 달리 기호 사용의 학문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존의 해석에 따라서는 산술학 및 대수학을 논리학과 동일한 기호 사용의 학문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그것을 기하학에 전적으로 종속시키게 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본 논문은 다음의 순서에 따라 논의를 진행한다. 먼저 2장에서는 '상징적 구성'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상징'과 관련된 판단력비판 §59절의 서술을 추적한다. §59절에서 칸트는 상징을 도식(Schemata)과 비교하여 체계적으로 논의하는데, 이때 핵심적인 사항은 상징이 '직관에 주어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기호라는 점이다. 이후 3장에서는 직관에 주어질 수 없고 상징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산술 요소의 후보로서 “0”이라는 기호를 논의한다. 3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칸트의 전비판기 논문인 「부정량 개념을 철학에 도입하는 시도」와 순수이성비판 의 「반성개념의 모호성」그리고 「지각의 예료」장을 주로 살펴볼 것이다. 이때 '0'이라는 기호는 직관에 주어질 수 없는 순수 부정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를 다루는 산술학과 대수학은 기하학과 일반 역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추론을 수행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논의를 정리하고 비판 체계 내에서 산술학 및 대수학이 기하학과 순수 역학 그리고 논리학에 대해 독자적으로 갖는 지위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상의 논의에 따른 결과, 산술학과 대수학은 기하학과 달리 직관적 대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하학과의 비대칭성이 설명될 수 있는 동시에, 그럼에도 산술학과 대수학은 여전히 직관의 형식을 참조한다는 점에서 논리학과 변별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제시된다.


In this paper, I aimed to investigate the status of arithmetic and algebra in Kant's Critical System. Although Kant presents arithmetical propositions such as “7+5=12” for a paradigmatic example of a synthetic a priori proposition, he never mentions arithmetic and algebra in his Transcendental Aesthetic. Rather, he mentions geometry and general mechanics (physics) as synthetic a priori doctrines of space and time. Commentators have tried to elucidate this asymmetry between algebra/ arithmetic and geometry/general mechanics, focusing on the expression “symbolic construction” in Critique of Pure Reason B745. However, the interpretations have so far encountered a dilemma: algebra and arithmetic cannot be discriminated from logic concerning the use of a symbolic sign, otherwise they are merely reduced to geometry. In this context, this paper treats this interpretative problem in the following order: first, Chapter 2 focuses on the passages from section §59 in the Critique of the Power of Judgment and thoroughly examines the meaning of the expression “symbolic construction.” In this section, Kant systematically elaborated on the terms 'symbol' and 'schema'. The fundamental consideration is that the symbol is the use of a sign, the referent of which cannot be given in intuition. In Chapter 3, this paper investigates the symbol '0' as a candidate for an arithmetical symbol, the referent of which cannot be given in intuition. Regarding this matter, I will check the descriptions in the Attempt to Introduce the Concept of Negative Magnitudes into the Philosophy and Anticipation of Perception, Amphiboly of the Concepts of Reflexion from his Critique of Pure Reason. Finally, in Chapter 4, I will conclude the discussions, positing that arithmetic and algebra have an independent status from logic, geometry, and general mechanics in Kant's Critical System. I will argue that the asymmetry between these doctrines can be explicated in that arithmetic (algebra) does not need any object of intuition, unlike geometry and general mechanics, yet they can be discriminated from logic in that they inevitably involve a form of intu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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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채우 ( Yoon Chae-woo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8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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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근본 목표는 칸트의 수학 철학이 완수한 '존재론적 혁명'을 밝히는 것이다. 필자는 칸트의 수학 철학이 지닌 존재론적 의미에 비추어 현대 물리학의 '수학적 미학 원리'를 비판하고자 한다. 본고를 집필한 동기는, 20세기를 지나 오늘날 21세기 물리학계에서도 여전히 '피타고라스-플라톤적 이상'에 경도된 이론 물리학자들이 수학에 의탁하여 더욱 추상적인 혹은 사변적인 이론들을 고안하면서 물리학이 수학 혹은 수학적 미학과 분간이 안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상황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서론에서 “수학의 판단들은 모두 종합적이다”라는 언명으로 반(反)플라톤주의를 선포했다(KrV, B 14). 플라톤적 세계에서 부유하던 수학은 칸트에 의해 이 지상으로 하강하였다. 칸트의 수학 철학이 완수한 '존재론적 하강'은 서양 철학사의 최고의 혁명 중 하나다. 칸트는 수학을 우리의 경험 세계에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칸트의 수학 철학은 순수이성비판 의 「선험적 감성론」으로 압축되고 선험적 감성론은 선험적 관념론의 근본정신을 형성하며, 서양의 우주론은 피타고라스-플라톤의 우주론 이후 이론 물리학자 막스 테그마크의 “수학적 우주 가설(MUH)”에 이르기까지 수학적 우주론을 형성하는바, 선험적 관념론과 수학적 우주론은 긴장 관계에 있다. 수학적 미학 원리는 플라톤을 거쳐 피타고라스까지 소급되는 유구한 이상으로서 근대 물리학에 이어 오늘날 21세기 물리학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늘날 이론 물리학은 고도의 수학을 활용하여 더욱 추상적인 이론들을 생산하며 '사변적 물리학'으로 변모하고 있다(이 배경에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을 통합하려는 통일의 이상이 있다). 그러한 사변적 이론들은 인간의 '이성의 위업'일 수 있으나 '수학적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현대 물리학의 성배라 일컫는 “만물의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은 우주의 모든 현상 및 입자를 포괄하고 중력을 비롯한 모든 힘을 통합하는 “최종 이론”이다(이 최종 이론의 꿈을 이론 물리학자 마르셀로 글레이저는 “서양의 일신론 전통이 과학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규정했다). 만물의 이론은 온 우주를 직관하는 능력, 즉 우주의 경계 밖에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직관하는 신적인 능력을 전제하므로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망각한 꿈이다.―이는 칸트가 제시한 순수이성의 제1이율 배반이 지닌 물리학적 함축이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지점에서 수학적-미적 직관에 따라 이론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성향이 있다. 다시 말해 물리학 연구에 수학적 미의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이들에게 수학적-미적 직관 능력은 감성적 직관의 인도를 받을 수 없는 지점에서 궁극의 실재로 뻗어갈 수 있는 촉수인 셈이다.―이는 칸트의 물자체 개념이 수학으로 환원된다는 점을, 다시 말해 물자체가 수학적 개념으로 규정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칸트에게 수학은 경험 과학으로서의 물리학을 정초하는 학이며, 수학적 인식은 과학적 인식의 기초가 된다. 칸트는 이 원칙을 “직관의 공리”로 명명하였다. 이 공리는 “지각의 예취”와 함께 “수학적 원칙”에 속하며 합법적 인식 혹은 과학적 인식의 제1원리다. 우주에서 수학적 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수학적 미를 발견 대상으로 보는 플라톤적 사유는 '지적 설계론'으로 이어진다(지적 설계론은 칸트가 논파한 “물리신학적 증명”에 해당한다). 무신론자를 자처한 이론 물리학자 폴 디랙조차 수학의 힘에 도취되어 지적 설계론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스티븐 와인버그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이론 물리학자에게 자연 법칙은 실재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러한 실재론적 입장에서 수학적 질서/구조는 발견 대상이다.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에 따르면 외적 물리적 실재는 인식의 한계 내에 있는 경험적 실재다; 수학은 초재의 세계로 비상하거나 궁극의 실재 혹은 존재 자체를 통찰하게 하는 신비적 학문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 세계와 관계하는 철저히 내재적인 학문이다. 이론 물리학계에 만연한 수학적 미학주의는 상당수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칸트적 인식 비판'을 엄정하게 수행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칸트의 수학 철학에 따르면 인간의 수학적 인식 능력은 현상계 너머에는 미치지 못한다. 칸트의 수학 철학은 우리에게 인식의 한계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칸트 비판철학의 정수다.


The main aim of this paper is to bring to light the 'ontological revolution' accomplished by Kant's philosophy of mathematics. In light of the ontological significance of Kant's philosophy of mathematics, I am going to criticize the 'principle of mathematical aesthetic' in contemporary physics. My motive in writing this treatise was a thought that there is a need to be critical of the situation where, while those still inclined toward the 'Pythagorean-Platonic ideal', within the community of the 21st-century physics today since the last century, have been resorting to mathematics to devise increasingly abstract or speculative theories, physics has found itself to be indistinguishable from mathematics or mathematical aesthetic. By stating in the introduction of Critique of Pure Reason that “Mathematical judgements are all synthetic,” Kant declared anti-Platonism (KrV, B 14). Mathematics, having drifted along in a Platonic world, was made to descend toward this earth by Kant. This 'ontological downward movement' completed by Kant's philosophy of mathematics is one of the greatest revolutions in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Kant returned mathematics in its totality to our empirical world. With Kant's philosophy of mathematics summed up as “Transcendental Aesthetic” in Critique of Pure Reason-transcendental aesthetic forming the fundamental spirit of transcendental idealism-and with western cosmology composing mathematical cosmologies since that of Pythagoras-Plato up to theoretical physicist Max Tegmark's “Mathematical Universe Hypothesis” (MUH), transcendental idealism and mathematical cosmology have been in a strained relationship. The principle of mathematical beauty, a long-held ideal traced through Plato back to Pythagoras, has still been wielding a mighty influence on physics in the 21st century through modern physics. Theoretical physics today, producing increasingly abstract theories depending on by far the highest-level mathematics, is becoming 'speculative physics' (against the backdrop of the ideal of unification, understood as the integration of the theory of relativity and quantum theory). Those speculative theories may be exceptional feats of human reason, but they may also be merely 'mathematical illusions.' The “Theory of everything” (TOE), the so-called holy grail of contemporary physics, is a “final theory,” which encompasses all phenomena and all particles in the universe and integrates all the forces including gravity (this dream of a final theory, theoretical physicist Marcelo Gleiser defined as “the scientific incarnation of the monotheistic tradition of the West”). TOE, which presupposes the ability to intuit the entire universe, i.e., the divine capability of intuiting outside the boundary of the universe all phenomena in it, is a dream lacking the awareness of the limits of human cognition-this is an implication of physics in Kant's first antinomy of pure reason. At the point of no possibility of experimental verification, a sizable number of theoretical physicists have a disposition to resort to mathematicalaesthetic intuition to find out a theoretical breakthrough. In other words, what they do is the introduction of the principle of mathematical beauty. For them, the faculty of mathematical-aesthetic intuition is something like a tentacle to stretch out toward the ultimate reality at the point of no possible guidance by sensory intuition. This means that the Kantian concept of the thing-in-itself is to be mathematically reduced or determined through a mathematical idea. For Kant, however, mathematics is a discipline laying the cornerstone of physics as an empirical science; mathematical cognition is the basis of scientific cognition, a principle which Kant named the “axiom of cognition.” This axiom, which belongs to the “mathematical principle” along with the “anticipations of perception,” is the primary principle for legitimate or scientific cognition. The belief that one can find out mathematical beauty in the universe, or the Platonist way of thinking mathematical beauty to be an entity to be discovered, leads to the dogma of 'Intelligent Design [ID]' (which is equivalent to the “physico-theological proof,” confuted by Kant). Even Paul Dirac, a professed atheist theoretician, was, enraptured by the power of mathematics, not free from the illusion of the ID. For most theoretical physicists including Steven Weinberg, natural laws are real, unchanging laws. In such a realist position, mathematical order/structure is a substance to be discovered. According to Kant's transcendental idealism, the outer physical reality is an empirical reality within th limits of cognition; mathematics is not a mystical discipline by which to soar high into a transcendent world or which enables us to see into the ultimate reality or being itself, but rather an entirely immanent science associated with our empirical world. Mathematical aestheticism pervading the academic world of theoretical physics is a demonstration that not a few theoretical physicists have not strictly performed 'Kantian critique of cognition'. According to Kant's philosophy of mathematics, humanity's capability of mathematical cognition cannot reach beyond our phenomenal world. Kant's philosophy of mathematics, as a reminder of the limits of our knowledge, is the core of Kant's critic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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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지영 ( Kang Ji Young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8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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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이성의 사실Faktum der Vernunft”의 의미와 역할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Faktum der Vernunft'라는 표현에서 'Faktum'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Faktum der Vernunft'라는 표현에서 2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성의 사실” 테제는 실천이성비판 분석론의 논증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라는 세 개의 질문에 답변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단어 'Faktum'은 사실과 행위를 모두 의미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행위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표현 'Faktum der Vernunft'는 이성이 창조자로서 어떤 행위를 한다/어떤 사실을 가진다고 보아야 함을 밝혔다. “이성의 사실” 테제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성의 사실” 자체는 도덕법칙의 유효성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며 완성된 증명에 덧붙여진 부가적 해설의 역할을 한다는 해석을 제시하였다.
“이성의 사실”은 이성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의 창시자는 경향성과 의무가 충돌할 때 의무를 해야한다고 판단하는 순수실천이성이다. 단 “이성의 행위Faktum der Vernunft”에 의해 “만들어진” 사태는 물리적 사태처럼 인식자와 독립하여 존재하면서 인식하는 자에 의해 인식되는 그런 사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위자가 도덕적 판단을 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한에서 “이성의 사실”은 어떤 이성적 존재가 스스로 실현시키는 것(즉 행위Tat)에 의해 존립하는 사태(Tatsache)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larify the meaning and role of Kant's “Faktum der Vernunft”: 1) What does the word 'Faktum' mean in the expression 'Faktum der Vernunft'? 2) How should we interpret the genetive in the expression 'Faktum der Vernunft'? 3) Does this Faktum-thesis play a role in the argumentation of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By answering these three questions, I tried to clearly define the meaning and role of “Faktum der Vernunft”.
For the first question, the word 'Faktum' can mean both fact and action, but its fundamental meaning relates to action. Regarding the second question, I concluded that practical reason acts as an author or practical reason has certain fact. In addressing the third question, I concluded that the “fact of reason” does not serve as a proof of the validity of the moral law and it functions only as an additional explanation.
The characteristic of the “fact of reason” is that it is created by pure practical reason to oppose the inclinations and defend the duty whenever in conflict. The fact “created” by “act of reason” is not one that exists independently from and could be recognized by the human subject as a physical situation. The fact “created” by “act of reason” can rather be said to occur only when the agent makes a moral judgment. In this regard, the “fact of reason” is a fact that exists by virtue of a rational being's self-re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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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경남 ( Park Kyoungnam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15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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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칸트가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와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보편사의 이념」에서 제시한 인간의 근원적 소질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갈등들의 원인을 이해하고, 칸트가 그와 관련하여 제시한 바람직한 윤리적 공동체의 특성을 검토함으로써 통해 갈등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칸트는 사회적 패악이라 불릴만한 다양한 갈등들의 바탕에 인격성의 소질에 기반한 동기보다 동물성의 소질과 인간성의 소질에 기반한 동기들을 우선시하는 악의로의 성향이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인격성의 소질에 기반한 동기가 동물성의 소질과 인간성의 소질에 기반한 동기들을 인도하도록 준칙들의 형식적 관계를 바로잡음으로써 다양한 갈등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또한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동기들의 윤리적 질서를 바로잡는 결단은, 선의지를 회복하고 자 하는 각 개인의 노력에 그쳐서는 안 되고 도덕적 이념에 의해 인도되는 윤리적 공동체를 건립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인간성의 소질과 인격성의 소질 사이의 윤리적 질서는 보편적 세계시민상태를 실현해 나가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통해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인간성과 인격성의 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는 도덕적 원리가 실제 정당한 세계시민사회의 확립을 위한 노력으로 구체화할 때 우리는 선의 이념에 의해 인도되는 갈등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In this paper, I seek principles for conflict resolution by examining Kant's analysis of the original predispositions in human nature and his suggestions concerning the establishment of ethical community. Kant argues in Religion Within the Boundaries of Mere Reason that human beings have the original predispositions of animality, humanity, and personality and that our propensity to prioritize the predispositions of animality and humanity over the predisposition of personality lies at the basis of various conflicts. According to this analysis, an ethical order among these original predispositions should be established by subjecting the predispositions of animality and humanity to the predisposition of personality. Kant also argues that such an ethical ideal should be applied to the actual efforts to establish an ethical community for all human beings. More specifically, Kant argues in the “Idea for a Universal History with a Cosmopolitan Aim” that the effort to overcome the moral evil which grounds various social conflicts should be combined with the efforts to establish a universal cosmopolitan condition. According to this suggestion, we can seek principles for conflict resolution by combining the efforts to restore the good will with the efforts to establish an ethical community for all human beings in a universal cosmopolitan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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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철우 ( Lee Chul-woo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3-18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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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삶을 척도로 하여 인간의 좋은 삶의 방식을 논하던 고대 그리스 윤리학의 근본물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칸트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행위의 규범에 대한 물음을 윤리학의 근본과제로 설정하면서 주변부로 밀려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칸트에게서 위의 행위물음 역시 마지막에는 도덕적 행위의 목표로서 좋은 삶에 대한 물음으로 향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왜냐하면 도덕적 동기로부터 도덕적 선의 행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목표는 칸트에게서도 역시 고대 그리스 윤리학에서처럼 최고선을 통해 다시 주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아리스토텔레주의나 담론윤리적 칸트주의 같은 일부 윤리적 입장들은 칸트의 최고선 이론에 근거한 도덕적 행위의 목표로서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을 윤리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덕적 행위와 그것의 목표로서 최고선에 대한 논의가 빠진 채 도덕외적 행위와 그 목표만이 주제화되면, 칸트에게서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은 도덕적 삶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칸트에게서 좋은 삶은 도덕적 행위의 목표가 아닌 비-도덕적 내지 도덕외적 행위의 목표인 개인의 주관적 소망성취로서의 행복이해에 근거한 < 단순 주관주의(Einfacher Subjektivismus) >나 혹은 주관적 소망성취의 합리적 종류와 추구 방식을 문제 삼는 < 반성적 주관주의(Reflektierter Subjektivismus) >로 제한되어 논의될 뿐이다. 물론 칸트에게서 좋은 삶의 구상을 단순 혹은 반성적 주관주의로 파악하는 것이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최종적인 것은 도덕적 행위의 궁극목적인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칸트에게서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은 오히려 고대 그리스 윤리학에서처럼 도덕적 행위를 통해 도달되는 궁극목적과의 연관 속에서 구상되는 < 객관주의(Objektivismus) >의 틀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최종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Die Grundfrage der antiken griechischen Ethik lautet “Wie soll ich leben?” Damit ist nach dem moralischen Maßstab gefragt, mit dem das gute Leben bewertet wird. Diese Frage gerät jedoch seit Kants moralphilosophischer Handlungsfrage “Was soll ich tun?”, in der es um die moralische Norm geht, zunehmend in den Hintergrund der philosophisch-ethischen Diskussion. Eine nähere Betrachtung zeigt jedoch, dass auch die kantische Frage letztlich auf die Frage nach dem guten Leben als Ziel des moralischen Handelns abzielt. Denn das höchste Gut als Ziel moralischen Handelns, das durch moralisch gutes Tun aus moralischen Motiven erreichbar ist, wird auch bei Kant wie zuvor in der antiken griechischen Ethik im ethischen Sinne thematisiert. Einige prominente heutige ethische Ansätze, insbesondere der Neoaristotelismus und die sog. kantische Diskursethik, vernachlässigen die Lehre vom höchsten Gut bei Kant, in welcher dieser den Bezug des guten Lebens auf die moralische Handlung ethisch darlegt. Stattdessen betrachten sie in Bezug auf Kant allein das rein empirische Glück als Gegenstand eines nicht-morlaischen bzw. außermoralischen Handelns. Wenn jedoch das höchste Gut als Lehre vom Endzweck der moralischen Handlung in der Auseinandersetzung mit Kant nicht hinreichend berücksichtigt wird, dann scheint Kant allein einen “einfachen Subjektivismus” zu vertreten, dem zufolge das gute Leben auf der faktischen Wunscherfüllung einer Person basiert, oder bestenfalls einen “reflektierten Subjektivismus”, in dem es um die ethische Reflexion über die Art und Weise jener Wunscherfüllung geht. Diese Interpretation ist zwar nicht vollkommen abwegig, aber sicher unvollständig. Dagegen muss daran festgehalten werden, dass Kant auf einen Begriff vom höchten Gut abzielt, in dem die Moral den Status eines notwendigen Bestandteils für das gute Leben hat. Somit kann auch für Kant die Frage nach dem guten Leben letztlich ihren systematischen Ort in einer Diskussion jenes “Objektivismus” finden, in welchem das gute Leben in Bezug auf das moralische Handeln konzipiert w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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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창환 ( Oh Chang Hwan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5-21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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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성비판』은 칸트가 전혀 저술을 의도하지 않았다가 급조된 저작이다. 처음 순수이성비판 에서 칸트는 이 저작으로 하나의 유일한 이성 비판을 의도하였기 때문에 실천이성비판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도 '순수 실천이성비판'은 사변이성비판만큼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진술되었다. 우리는 먼저 칸트 자신의 실천이성비판 불필요성 테제를 검토한다. 다음으로 그가 저러한 최초의 생각을 바꿔 다시 독립된 저작으로 실천이성비판을 저술하기로 변심한 이유들과 저작의 고유한 목표를 탐구한다. 『실천이성비판』은 순수 실천이성의 확립, 경험적으로 조건지어진 이성의 월권 비판, 순수 실천이성의 변증성 해소, 사변이성과 실천이성의 통일 등의 주제를 통해 독립된 저작으로서 새롭고도 고유한 위상을 드러내며, 이런 점에서 칸트 사유의 발전사적 진보가 확인될 수 있다.


The Critique of Practical Reason(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seems to be an improvised work that Kant did not intend to write at all. In the Critique of Pure Reason, Kant declared that there was no need for a separate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since he had intended the critique of only one and the same reason through this work. Even in the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he repeatedly stated that the 'critique of pure practical reason' is not as necessary as the critique of speculative reason. We will first examine Kant's own thesis of the unnecessity of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Next, we will explore the reasons why he changed his initial idea and resolved to write a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as an independent work. The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is revealed to have a new and unique status as an independent work through themes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the pure practical reason, the critique of the empirically conditioned reason's arrogation, resolving the dialectic of the pure practical reason, and the unity of speculative and practical reasons. In this respect, Kant's philosophical development during the 1780s can be traced and under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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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동원 ( Kang Dongwon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7-24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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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도르노의 칸트 윤리학 비판을 재구성하여 검토한다. 우선 '이론주의'라는 용어를 통해서, 아도르노의 칸트 윤리학 비판이 무엇을 겨냥하는지를 구체화 한다. 이를 통해, 칸트의 순수실천이성 개념의 '탈실천화'와 '탈대상화'에 주목하는 아도르노의 비판은 행위이론적 문제설정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이어서, 칸트 윤리학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충동(Impuls)' 개념의 함의가 분석된다. 아도르노는 '충동' 개념에 관해서 독특한 신조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덧붙여진 것(Hinzutretende)'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덧붙여진 것'과 실천이성의 관계를 '비동일적인 것'과 동일성사유의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함으로써, 아도르노의 칸트 윤리학 비판이 '합리주의적인 이성의 윤리학 대 비합리주의적인 충동의 윤리학'이라는 구도로 귀결될 수 없다는 점이 밝혀진다. 결론에서는 칸트의 '구 정언명법'과 아도르노의 '신 정언명법'을 비교하면서, 아도르노가 어떤 지점에서 칸트 윤리학을 거부하는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도르노는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칸트주의자'인지가 언급된다.


This article reconstructs and examines Theodor W. Adorno's critique of the Kantian moral philosophy. First, using the term 'theoreticism', this article articulates what Adorno's critique aims at. The term 'theoreticism' will reveal that Adorno's critique, focusing on 'depracticalization' and 'deobjectification' - which are immanent in Kant's concept of pure practical reason -, is grounded on the action-theoretical problematics. Subsequently, we analyze the implications of the concept of 'impulse,' which plays the most important role in Adorno's critique. Adorno uses a unique neologism for the concept of impulse ; “the addendum(Das Hinzutretende)”. By interpret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ddendum and the practical reason as continuou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on-identical” and the “identitythinking” - which is a more general theme of Adorno's philosophy -, we reveal that Adorno's critique of the Kantian ethics cannot collapse into the cliche of “rationalistic ethics of reason versus. irrationalistic ethics of impulse.” In conclusion, comparing Kant's categorical imperative with Adorno's “new categorical imperative”, we remark that although Adorno rejects the Kantian ethics at some point, in a sense, he is still “a Kantian”, by insisting on an irreducible remainder of r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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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원봉 ( Lee Wonbong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7-27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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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롤즈가 칸트의 도덕법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한 보편적 합의의 요구가 개인적 도덕성과 정치적 정의 사이의 혼동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롤즈가 정언명법 절차에서 마지막 단계로 요구한 보편적 합의에 개인적 도덕성의 원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은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를 정치적 정의의 문제와 유비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적 정의이론을 위해 구성한 '원초적 입장'의 핵심 요소를 칸트의 정언명법 해석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의 철학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이런 혼동은 도덕성을 일차적으로 또는 유일하게 '우리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라는 상호성의 문제로 보는 자유주의의 일반적 경향에서 기인한다. 이런 경향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행위자의 성품과 덕에 관한 물음은 도덕의 영역에서(또는 적어도 도덕성의 핵심 영역에서) 배제되어 '윤리' 또는 '윤리적 삶'의 영역에 한정된다. 하지만 도덕성이 일차적으로 또는 유일하게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는 가정은, 개인적 도덕성의 물음과 정치적 정의의 물음을 혼동한 것이다. 도덕성이 타인에 대한 의무에만 관계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 즉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떤 종류의 성품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무관하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칸트 자신은 도덕철학의 임무를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의 도덕적 성품을 위한 원칙을 밝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롤즈가 칸트의 도덕법칙을 절차적으로 해석한 것은 모든 도덕성은 인간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라는 자유주의적인 상호성의 윤리에서 비롯한 것으로, 칸트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I will argue that the conception of personal morality principles as the focus of an agreement rests on a confusion between personal morality and political justice. More precisely, my suspicion is that agreement may seem to play the role of justifying principles of personal morality if we understand questions of personal morality in analogy with those of political justice. An indication of this confusion is the common tendency to assume that morality is primarily, and perhaps even only, about how we ought to relate to other people (and not about who one ought to be). This view excludes from the moral domain, or at least from the core of morality, questions about the agent's character and the moral virtues. These questions are often taken to belong to the non-moral domain of “ethics” or “ethical life”. However, the assumption that moral questions are only about how we ought to relate to other people is not at all Kantian. Kantian ethical principles articulate an ideal of character that we ought to have. Rawls' interpretation of the universalizability test already presupposes those questions of personal morality are primarily (or only) about how we ought to relate to other people. My focus in this paper will be on challenging this interpretation of the universalizability test as an agreement test. I will argue that Rawls is partly responsible for it.

KCI등재

저자 : 이충진 ( Choong-jin Lee )

발행기관 : 한국칸트학회 간행물 : 칸트연구 49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3-29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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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칸트철학의 현재성을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연구의 방법은 '지금 여기'의 칸트연구자를 추적하는 것이다. 그의 연구가 칸트철학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면 우리는 -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 '살아있는 칸트'를 우리 눈앞에서 만나게 되는 셈이며 따라서 그의 연구는 칸트철학의 현재성을 예시하는 셈이다.
이 글은 브란트의 연구에 주목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흄을 거쳐 30대 중반에 처음 칸트철학 연구를 시작했다. 그 후 칸트 법철학에 관한 해설집과 논문을 발표한 초기, 칸트 인간학 강의록 편찬 및 관련 논문과 저서를 출간한 중기, 수십년의 칸트연구를 종합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한 후기 등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칸트철학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 글은 그의 칸트연구가 때로는 칸트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고 때로는 학문적-편집자적 엄격성을 입증하고 때로는 철학연구 일반의 모범을 보임을 제시한다.
왜 지금 여기에서 칸트인가? 이 물음은 칸트연구자에겐 특히 피할 수 없는 물음인데, 칸트의 이성 비판은 바로 그 물음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칸트연구자라면 누구나 던져야 할 이 물음에 대답하는 '하나의' 방식을 이 글은 제공하게 될 것이다.


Diese Arbeit ist ein Versuch, die Aktualität der kantischen Philosophie zu evaluieren. Die Methode besteht darin, einen zeitgenössischen Kantianer im 'hier und jetzt' zu verfolgen. Wenn seine Forschungen die Gedanken von Kant erfolgreich repräsentieren, dann ist es als würden wir (metaphorisch gesprochen) 'den lebenden Kant' vor unseren Augen sehen und selbst erleben. Seine Forschungen sind in dem Fall ein Beweis für die Aktualität der kantischen Philosophie.
Die Arbeit untersucht die Forschungen von R. Brandt. Nach dem Abschluss seiner Doktorarbeit über Aristoteles und seiner Habilitationsschrift über Hume widmete er den Rest seiner Forschungstätigkeit der kantischen Philosophie. Die Forschungszeit über 30 Jahre lässt sich in drei Phasen aufteilen:
In der ersteren Phase veröffentlichte er einige Schrifte über Kant-Rechtsphilosophie. In der zweiten gab er die Anthropologie-Vorlesungsschriften von Kant heraus. In der dritten und letzen verfasste er seine eigene Jahrzehnte lange Forschung in ein unfangreiches Buch. Er leistete einen bedeutenden Beitrag zur Erweiterung der Kant -Interpretation und ging den zeitgenössischen Kantianern durch seine wischenschaftlich fundierten Forschungen mit gutem Beispiel voran.
'Warum Kant heute?' Die Frage ist für den Kantianer, der die Vernunftkritik von Kant leben sollte, unausweichlich. Diese Arbeit zeigt ein Beispiel auf, wie auf diese Frage geantwortet werden k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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