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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연구 update

The Journal of Paekche Research Institute

  •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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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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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6-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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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0)~73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613
백제연구
73권0호(2021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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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5세기 일본 近畿지역 한식계토기 출토 유적과 백제계 이주민들의 성격

저자 : 愼이슬 ( Shin¸ Iseul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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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에 의한 기술과 문화의 전파는 완성품의 수입보다 한 단계 진전된 교류 방식이다. 재지 집단이 외부의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는 과정 속에서 변화 양상이 가장 잘 확인되는 자료로서 생활 유적에서 사용된 일상용기인 토기가 있다.
본고는 5세기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정착한 곳에서 확인되는 삼국 시대 연질토기인 심발형 토기, 시루, 장란형 토기, 동이와 기형이 유사한 한식계토기를 검토하였다. 특히 5세기 近畿지역 중 오사카(大阪), 나라(奈良)에서 한식계토기가 출토되는 대표적인 유적을 선정하여 한반도계 이주민이 제작하였거나 그들이 가지고 온 연질토기를 모방해 제작된 것을 포함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5세기 近畿지역에서 확인되는 한식계토기의 전개 양상을 통해 백제계 이주민들의 성격과 정착과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시기와 지역에 따라 취락 유적 내에서 한식계토기의 변화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재지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지역별로 이주민의 성격에 차이가 확인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왜 왕권의 요구에 따른 기술자 집단의 단발성 이주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교류를 계속 해왔던 한반도의 여러 지역 사람들이 여러 차례 이주하여 정착한 결과로 판단된다. 한식계토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취락에서는 수공업 생산과 지역 개발에 참여한 백제계 이주민과의 친연성이 높게 확인된다. 또한 한식계토기 이외에도 다양한 백제계 요소가 확인되는 유적을 통해 왜와의 교류를 중요시하고 계속적으로 이어온 백제 여러 지역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dissemination of technology by immigrants is an advanced method of cult ural exchange compared to import of finished goods. Earthenware produced in l ocal area, which is an archaeological data, shows more practical exchange betw een groups, in comparison with imports or trade of foreign goods including pres tige goods, royal gifts, and imported local-specialties. The changes in the proc ess of local residents accepting a new culture from outside can be identified th rough excavated earthenwares from local sites.
This research reviewed Korean-style earthenware of Three-Kingdom-Dynasty excavated in Japan, especially in Kinki region, where emigrants of Baekje settled down during 5th century. The examination of soft-earthenware produced by Kore an emigrants and imitation made by Japanese, showed result that the manufacturi ng techniques gradually became localized. In addition, it needs to be noted that e xcavated potteries from one ruin were not only influenced by one Korean regiona l culture, but by various Korean regional culture. Majority of excavated potteries seemed similar to those of midwest-Baekje and Yeongsangang River basin, which confirms the aspects of exchange between Baekje and Mahan emigrants.
Through these discoveries, the research intends to examine the role of Baekje emigrants in the areas settled, and understand the aspects of exchange between various Baekje area and Kinki area. Moreover, the research also covers Baekje emigrants role in the Yamato(倭) kingdom back then, by examining Baekje-style factors found in the historical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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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주왕의 웅진천도와 수촌리 고분군 조영세력

저자 : 姜鍾元 ( Kang¸ Jongwo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간행물 : 백제연구 73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1-5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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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475년 한성 함락 이후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한 배경을 수촌리고분군 조영세력을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수촌리고분군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중반에 조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백제는 대내적으로 왕위계승 분쟁과 민심의 분열, 대외적으로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이 지속되었다. 백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왜를 비롯한 주변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고, 각 지역에 존재하는 유력한 재지세력의 이탈 방지와 인적·물적 지원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각 지역에서는 위세품을 부장한 고분군이 조영되었는데, 수촌리고분군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수촌리고분군 조영세력은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가진 금강 중류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수촌리세력은 웅진천도 이후 신진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백씨세력에 비정할 수 있다.
백제는 475년 10월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천도 배경은 고구려의 침략으로 인한 한성의 함락과 개로왕의 죽음, 그리고 상존하는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웅진은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전략적 거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며, 수로 및 내륙교통로의 요지라는 이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천도는 정치세력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과정에서 다양한 귀족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주왕이 웅진을 왕도를 정할 수 있었던 것은 수촌리세력의 적극적인 협조와 중앙귀족세력들의 이해관계에서 수촌리세력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왕성이 수촌리세력의 재지기반이었던 의당지역이 아닌 공산성에 두어진 배경은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수로교통에 유리한 입지적 위치, 그리고 한성후기에 도사가 파견되어 행정기능을 담당했던 곳으로 일정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This paper reviewed the background of transfer of the capital to Woongjin by King Munju after the fall of Hanseong in 475 focusing on local power who constructed ancient tombs in Suchonli.
It is understood that the ancient tombs in Suchonli were built from the end of the 4th century to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At that time, Baekje continued to experience the national crisis due to the conflict over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the split of public sentiment internally, and the southward extension of Goguryeo externally. In order to break through this situation, Baekje established friendly relations between neighboring countries including Japan, and made efforts to prevent breakaway of influential local powers and to secure their human and material support. Suchonli tombs were constructed during that period when tombs were built to bury luxurious items in each region. It can be assumed that the influential group who built Suchonli tombs was the actual dominant forces with the economic and military basis in the middle stream area of the GeumGang. As for the local influence in Suchonli, it can be compared to the power of Baek clan which rose as a new political influence aft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Woongjin.
Baekje relocated its capital to Woongjin in October 476. The capital transfer aimed to rebuild the nation from the fall of Hanseong by Goguryeo's invasion, the death of King Gaero and the existing threat of Goguryeo. Woongjin was not only a strategic foothold safe from Goguryeo's military threats but had economic fundamentals and an advantage of major transportation point of waterway and inland route also. By the way, the transfer of the capital might have caused conflict of interests of various aristocrats in the process of discussion given that it could cause a change of political influence. Nevertheless, the reason why King Munju was able to appoint Woongjin to be a new capital could be attributed to the active cooperation of the Suchonli forces and their relative independence from the interests of the central aristocrats.
However, I regard the background of placing the royal palace in Gongsanseong, not Euidang area where the Suchonli influential forces were located as not only its military stronghold but its position in favor of water transportation and the fact that proper infrastructure was equipped for the dispatched head of duty officers to manage provincial administration in the late period of Hanseong a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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