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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온지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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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598-1444
  • : 2384-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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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69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768
온지논총
69권0호(2021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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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근재(謹齋) 안축(安軸)(1282~1348)의 관동(關東) 체험 고찰 ― 가정(稼亭) 이곡(李穀)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저자 : 裴圭範 ( Bae Kuybeom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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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謹齋 安軸과 稼亭 李穀이 경험한 關東 체험을 비교 분석하여 그들의 삶과 이 시기 시문에 드러난 주제 의식을 확인하고자 진행되었다. 安軸-安輔 형제와 李穀-李穡 부자의 인연은 학문을 토대로 전개되었고, 科擧라는 매개를 통해 더욱 깊어졌다. 특히 元 制科에 형제와 부자가 동시에 급제하여 一身은 물론 家門을 일으킴으로써 新進士大夫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어지러운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진행된 그들의 관동 체험은 안축이 江陵道存撫使에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19년 뒤 이곡은 그런 안축의 발자취를 뒤따라감으로써 그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시에 담았다. 시문에 드러난 주제 의식은 두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안축이 암담한 현실을 비판적이며 풍자적인 논조로 노래한 반면, 이곡은 낙관적이며 조금은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현실감각이 떨어져 보인다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This paper was conducted to compare and analyze the experience of Kwandong experienced by Keun-jae Ahn-chook(謹齋 安軸) and Ga-jeong Lee-Gok(稼亭 李穀) to confirm their lives and the theme consciousness revealed in poetry during this perio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hn-chook(安軸), Ahn-bo(安輔) brothers and the Lee-Gok(李穀), Lee-Saek(李穡) father developed based on learning and deepened through the medium of the highest-level state examination. In particular, brothers and fathers passed the Yuan Empire state examination at the same time to established the family as well as a single person, showing the typical form of a new generation(新進士大夫). Their experience in Kwandong, which took place in a chaotic domestic political situation, began when Ahn-chook was appointed to Gangwon-do Jonmu-sa(江陵道存撫使). 19 years later, Lee-Gok followed in Ahn-chook's footsteps and expressed his admiration and longing for him. The consciousness of the subject matter revealed in the poem varied depending on the situation the two faced. While Ahn-chook sang in a critical and satirical tone of the dark reality, Lee-Gok was optimistic and understood a little super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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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창협(金昌協)의 <동유기(東游記)> 연구

저자 : 정영문 ( Jeong¸ Young-m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7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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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金昌協)은 17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문장가이면서 유람객이다. 그는 21살 되던 1671년 8월 11일부터 9월 11일까지 1달동안 관동지역(금강산과 동해)을 유람하였다. 금강산만 유람하고 돌아오려던 여행이었지만, 권세경(權世經)의 권유로 동해안으로까지 유람 지역을 확대한 것이다. 이때의 유람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 <동유기(東遊記)>이다.
<동유기>에 나타나는 서술상의 특징으로는 첫째, 김창협은 『농암집(農巖集)』에 567題의 한시를 남겼지만, <동유기>에는 한시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동유기>가 12편의 짧은 기(記)를 결합하여 완성했다는 점이다. 김창협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산수에서 흥취(興趣), 유묵에서 아취(雅趣), 승려와의 관계에서 정취(情趣)를 느꼈다. 이러한 감정은 유람을 떠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현상이지만, 각인각색의 정감이기 때문에 단순화시켜 말하기는 어렵다.
김창협은 금강산을 유람한 이후에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잊지 못하여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애당초 보지 못했던 때보다 더 간절해진다.”고 말할 정도로 잊지 못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유산(遊山)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또한, 김창협은 유람지에 있는 바위나 누정 등에 적혀있는 이름과 유묵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제명(題名)을 남기려고 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흥취를 즐기는 여흥인 동시에 동류들과 소통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동안 김창협은 이전의 사대부들과는 달리 승려들과 성리학에 관해 논쟁하기보다 불교와 승려에 대해 긍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Kim Chang-Hyup(金昌協) is a Neo-Confucian scholar, writer, and traveler who represents Joseon in the 17th century. At the age of 21, from August 11 to September 11, 1671, he toured the Kwandong(關東) area (Mt. Geumgang and the East Sea) for one month. He was on a trip to return from a tour of Mt. Geumgang only, but at the recommendation of Kwon Se-Kyung, he expanded the tour area to the east coast. The record of the excursion at this time in a diary is 「Dong Yugi (東遊記)」.
As the descriptive characteristics of 「Dong Yugi」, first point is that although Kim Chang-Hyup left 567 Chinese poetry in 「Nongamjip(農巖集)」, he did not record them in 「Dong Yugi」. The second is that 「Dong Yugi」 is composed of 12 short experiences. While Kim Chang-Hyup toured Mt. Geumgangsan(金剛山), he felt joy(興趣) in the landscape, the elegance(雅趣) in the writings of various persons, and the Emotion(情趣) in the relationship with the Buddhist monks. These feelings are felt by anyone who goes on a sightseeing, but it is difficult to unify them because they are various emotions by person.
After traveling to Mt. Geumgangsan, Kim Chang-Hyup has never forgot his desire to see it again for the rest of his life, as much as to say, “As time goes by, I can't forget it, and my desire to see it again becomes more earnest than when I never saw it at all.” After that, it came to think of ways to understand nature for a long time. In addition, Kim Chang-Hyup actively searched for names written on rocks and pavilions in the excursion site, and tried to leave his name on such places. This was because these actions were both entertainment to enjoy and a way to communicate with fellow members. During his excursion to Mt. Geumgangsan, unlike previous noblemen, Kim Chang-Hyup showed an attitude in favor of Buddhism and monks rather than arguing with them about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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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조선 후기 고소설에 나타나는 죄벌(罪罰)의 방식인 추모(醜貌)·귀물(鬼物)·유충(幼蟲)·병신(病身)의 형상화를 통해 조선 후기 고소설 속 갈등의 방식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원인을 고찰하는 것이다.
고소설은 일반적으로 권선징악을 세계관으로 삼아 선악(善惡)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악행에 대한 죄과(罪科)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고소설 속에서 가문의 질서를 따르는 인물을 선인으로, 가문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문의 질서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물에게는 징벌이 내려지는데 그 대상이 권력 관계 속에서 열세에 있는 소수자인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은 죄벌로 인해 못생긴 외모(醜貌)로 태어나고(<한조삼성기봉>), 몸에서 수많은 벌레(幼蟲)를 쏟아내며(<완월회맹연>), 흉악한 귀물(鬼物)이 되어 돌아오고(<완월회맹연>) 맹인·앉은뱅이·성불구자와 같은 병신(病身)이 된다.(<한후룡전>·<유화기연>) 소수자를 악취·유충·버러지·더러움·우두나찰·귀신·잔나비·흉계망측·병신·일무가취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해 신분 질서의 동요 등이 일어났던 조선 후기 사회에서 사대부 남성들은 흔들리는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윤리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종법 의식을 강화하여 가문 중심의 질서로 사회를 재편하려 했는데 이러한 움직임 이면에는 주체 남성의 은폐된 욕망과 자신들이 만든 공동체가 새로운 사고에 의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반(反)이데올로기, 성적 욕망, 신체적 불완전성에 대한 주체 집단의 원초적 두려움이 소수자를 괴물화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주체가 만들어낸 괴물이 사실은 폭력적인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 권력의 희생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is aimed at examining and considering the formats of conflicts and the causes of abhorrence against minorities displayed thereof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Joseon Dynasty through the embodiment of hideous appearance, evil spirits, vermin, and physical deformation, which are the formats of punishment, illustrated in the old novels of the time.
Old novels generally employ 'encouragement of good and punishment for evil' as the worldly values, thereby focusing on depicting the conflicts centered around good and evil, as well as the punishment of evil deeds most importantly. What should be noted is the trend of the distinction between goodness and evilness of the characters appearing in the novels becoming even more definitive towards the latter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In particular, there had been a marked increase of novels that depicted those who safeguard the orderliness within the family clan as virtuous persons and those who threatened such orderliness as evil persons. Accordingly, those who failed to comply with the orderliness of the family clan were subjected to an extensive range of punishments. Moreover, women and disabled persons who were the minorities deemed to be inferior amidst of the power dynamics within the family clan become the targets of abhorrence. Accordingly, they were borne with hideous appearances (< Hanjosamsunggibong >), countless vermin gushing out of their bodies (< Wanwolhoemaengyeon >), returning as atrocious evil spirits (< Wanwolhoemaengyeon >), and becoming blind, paralyzed in the lower body, sexually impotent, and intellectually disabled as the results of punishments for their crimes committed. (< Hanhuryongjeon >, < Yuhwagiyeon >) depict the images of minorities with descriptions such as foul odors, larva, insects, foulness, ghosts with bull's heads, evil spirits, monkeys, physical deformations, worthless persons to incite strong senses of abhorrence. They were then either eliminated or reformed into persons who were in compliance with the ideologies of the ruling group to be incorporated into such group
Depiction of women and disabled persons as monstrous characters as well as displays of abhorrence against them could be seen as the results of reflection of the uneasy consciousness of the male principals with power and their psychological horrors of being castrated from the status quo they enjoyed. Monsters are the manifestation of the internal impulses of principals that are difficult to understand from the moral viewpoint of humanity. Therefore,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monsters created by the principals are in fact the victims of the social powers rather than violent authority. It was possible to deduce the mentality of the social classes striving to continue to enjoy their status quo in the latter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towards hideous appearances that underwent hierarchical changes through the aforementioned punishments for what they considered cr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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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렁덩덩 신선비>와 <두꺼비 신랑> 속 '허물'과 '아내 고행'의 의미 ― 동물 토템에서 기인한 가부장제로의 이행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용선 ( Kim Yong-s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1-13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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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의 오랜 관계는 구전설화에서도 즐겨 다루는 주제의 하나이다. 설화 속 이물은 대체로 동물이며 이물교혼은 동물과 사람 간의 혼인을 다루는 서사로서 <구렁덩덩 신선비>와 <두꺼비 신랑>은 남성 배우자가 이물 즉 동물이다. 동물 신랑과 사람 각시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이야기. 두 서사는 나란히 이물교혼을 다루며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이를 갖기 어려운 부모나 노파가 구렁이 아들, 혹은 두꺼비 아들을 얻고 이웃집 세 딸 중 막내딸과 혼사를 이룬다. 첫날밤 동물신랑은 허물을 벗고 미남자가 되며 아내에게 허물간수를 부탁하고 멀리 떠난다. 언니들의 방해로 허물을 태우자 냄새가 신랑에게 닿고 신랑은 새 각시를 만난다. 아내는 남편을 찾아 떠나 고행을 겪고 끝내 두 처가 겨루어 아내는 집 나간 남편과 재결합 한다. 여기까지 구조는 두 서사 모두 동일하나 <두꺼비 신랑>의 경우 동물 신랑이 처가로부터 시험을 겪는 각 편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두 설화는 모두 민담의 구조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말하는 동물과 이를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 성과 속의 세계는 평면적 서사 세계에 함께 놓여 있고 교차된다. 민담 속 구렁이와 두꺼비는 고대의 동물 토템 흔적을, 변신과 혼인의 과정은 민간 신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처가에서 남편 가정으로의 서사 공간이 이동되고 아내의 입장이 남편의 시험과정을 통해 승인된다는 점에서 두 서사는 모권제에서 가부장제로의 이행을 서사적으로 드러낸다. '허물'은 신성성의 탈각이며 아내의 고행은 동물 토템에의 숭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두꺼비 신랑의 처가 승인 과정은 일종의 변이형으로 이물의 비범한 능력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된다. 이는 동물 토템이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이기보다 도리어 우월한 입장인 '신격'에 놓여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두 민담은 토템과 민간 신격의 흔적, 그리고 가부장제의 학습을 남편의 '허물'과 아내의 '고행'을 통해 전승한다.


The long relationship between animals and humans is one of the topics that are often treated in oral folktales. The monsters in the narrative are generally animals, and foreign body marriage is a narrative dealing with marriage between animals and humans. The male spouse is a foreign object, or animal, in < Gureongdeongdeong Sinseonbi > and 'Toad Bridegroom'. This is a story of an animal groom and a human bridegroom's meeting and becoming a couple. The two narratives deal with marriage between man and animal side by side and have a similar narrative structure. A parent or old woman, who is difficult to have children, gets a snake son or a toad son, and marries the youngest of the three daughters in the neighbor's house. On the first night, the animal groom takes off his skin and becomes a handsome man, asks his wife to keep his skin exuviae, and leaves far away. When the exuviae is burnt due to the interference of the older sisters, the burning smell reaches the bridegroom and the groom happens to meet a new bridegroom. The wife leaves for her husband, suffers adversities, and eventually the two wives compete, and the original wife reunites with the husband who left the house. The structure up to this point is the same for both narratives, but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case of < Toad Bridegroom >, the animal groom undergoes a test from his wife's family. Both stories have the typical structures of folktales intact. The typical structures are that animals talk and people do not surprise at them. The worlds of the sacred and the profane lie together and intersect in the flat narrative world. In folklore, the snakes and toads capture the traces of ancient animal totems, and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and marriage captures the traces of folk myths. The two narratives narratively reveal the transition from the motherhood system to the patriarchal system in that the narrative space moves from the wife's family to the husband's family and the wife's position is approved through the husband's examination process. The “exuviae” is read as a symbol of the renunciation of divine nature, and the wife's asceticism symbolizes the worship of animal totems. The approval process of the toad bridegroom's wife is used as a stage to show off the extraordinary ability of a foreign body as a kind of variant. This indicates that animal totems are in a superior position rather than being inferior to humans, which is a “godliness”. The two folktales pass on totems, traces of the folk deity, and the learning of patriarchy through the husband's “exuviae” and the wife's “pe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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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수석>에 구현된 국가의 존망과 가문의 존재 양상

저자 : 김강은 ( Kim¸ Kang-e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7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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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석>은 당말오대라는 역사적 배경을 활용하면서도 비극적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국문장편소설 중 특이한 작품으로 일컬어져 왔다. 당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차용한 작품이 드물기도 하지만, 가문 번영에 중점을 두는 여타의 국문장편소설과 달리 <천수석>은 국가와 가문의 쇠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 <천수석>에 나타난 국가의 존망과 가문의 존재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천수석>은 실존 인물인 위보형과 위부를 중심으로, 국가와 명운을 함께하게 된 가문이 번영하였다가 쇠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사 가문이었던 위부가 공주혼을 통해 당 왕실과 운명을 함께하고, 당이 멸망하자 다시 처사 가문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작품은 이극용과 동창공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위부의 명맥을 계승하고 당과 후당의 연결성 또한 확보한다. 이는 난세에 가문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거시적인 역사를 문학적 범주에서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천수석>의 지향은 대내적으로는 가문의 생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문장편소설과 역사적 배경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상당수의 국문장편소설이 역사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활용하면서도 가상의 역사에 머물거나 역사적 사건을 주변화시키는 것과 달리, <천수석>은 시대 배경이 작품을 좌우하며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때로는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가의 멸망이라는 큰 사건을 한 가문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이 스스로 역사의 빈 공간을 상상하고, 국가가 멸망할 때 가문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서사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천수석>은 가문의 존속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 고소설에서의 역사 활용 방식을 검토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Cheonsuseok is a work that reveals a tragic perception of reality while utilizing the special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late Tang Dynasty, and has been referred to as an unusual work among Korean classical novels. Although it is rare to borrow the background of the period at the end of the year, unlike other Korean classical novels centered on the prosperity of the family, Cheonsuseok contains the decline of the state and family. Therefore, this paper focused on this specificity and examined the existence of the state and the family in Cheonsuseok.
Cheonsuseok. is about the process of prosperity and decline of the family who joined the nation and fate, centering on the real characters, Wi Bo-hyung and Wi family. It is to establish a structure in which Wi family, who was a retired family, shares fate with the Tang royal family through marriage with Princess Dongchang, preserves his reputation through the Later Party when the party collapsed, and returns to the retired family. And in the midst of this, the work actively utilizes Lee Kuk-yong and Princess Dongchang, inheriting the prestige of the stomach, while also securing the connection between the Tang Dynasty and the later Tang Dynasty. This shows the awareness of how the family can survive in difficult times at the family level, and it can be said that it reveals an attempt to newly understand macroscopic history in the literary category at the national level. It can be seen as the result of literary imagination to understand the macroscopic flow of history through the changes experienced by a family.
This orientation of Cheonsuseok is problematic in that it internally emphasizes the sense of problem with the family's survival method and externally reflect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classical novels and historical backgrounds. Unlike staying in "virtual history" or marginalizing historical events while using the past in which a considerable number of Korean classical novels exist, Cheonsuseok leads the overall story as the background of the times influences the work. Sometimes crossing the boundaries between fiction and facts, vividly describing the great event of the collapse of the state from the standpoint of a family. This can be said to be an experimental narrative about the work imagining the empty space of history on its own and what choices the family can make when the state collapses. In this respect, Cheonsuseok can be said to be a significant work in the history of novels in reviewing the way history is used within the complaint theory as well as the problem consciousness of the family's survival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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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광개토태왕훈적비(廣開土太王勳績碑) 제3·4면 해독(解讀)과 수묘제(守墓制) 고찰(考察)

저자 : 朴光敏 ( Park¸ Kwang-mi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3-223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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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太王勳績碑연구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비문에 대한 解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많은 연구자의 선행 연구에 의해 대부분의 글자는 해독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글자의 해독에는 논란이 많고, 아직 읽지 못한 부분도 상당히 남아 있다. 필자는 제1면과 제2면을 다룬 논문에서 광개토태왕훈적비의 글자와 古代의 金石文 자료들을 한 글자 한 글자 對比하여 그간 논란이 되어 왔던 일부 글자를 새롭게 해독한 바 있는데, 본고에서도 古代 금석문 자료들을 활용하여 3-5-10의 '挺', 3-7-29의 '抺', 3-10-9와 3-10-16의 '契', 3-11-37의 '岺' 등을 새롭게 解讀 하였다. 碑面이 완전히 깨져나간 4-1-1∼4-1-3, 碑面이 훼손된 4-1-4∼4-1-7도 문맥으로 헤아려 일부 글자를 해독하였다.
제3면의 討倭 기사 중 “侵入帶方界”라는 내용은 몇 글자 아래의 “王躬率住(왕)討徙平穰”과 연결되어 高句麗 平穰의 위치에 대하여 새로운 논의를 요한다. 본고에서는 중국 『二十四史』 중 『新唐書』와 『遼史』, 『元史』 등의 기록을 詳察하여 高句麗 平穰의 遼東 존재설에 대하여 문제 제기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3-8-16∼4-9-41은 守墓制에 관한 기사다. 4-1-41∼4-2-10에는 “百殘의 남쪽에 사는 韓은 國烟 1家 간연 5家”라고 기록해 있는데, 이는 濊貊을 비롯한 北方 韓系와 남쪽의 馬韓系 등 韓이 여러 곳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三國志』 『魏書-동이전』에, “景初 연간(237년∼239년)에 辰韓 여덟 개 나라를 나누어 樂浪에 주었는데, 吏讀(이두) 번역의 轉音에 같은 것과 다른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魏書』에서 말한 '辰韓 여덟 개 나라'는 古代의 요동에 존재했던 北方系 韓을 가리킨 것이다.
제4면의 “烟戶매매를 금지했다.”는 내용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墓直이(>묘지기)에 관한 필사본 자료를 처음 발굴하여 '연호 매매'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國烟과 看烟의 의미는 무엇인지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하였다.


This study examines the Section 3 and 4 of King Gwanggaeto's Stele and deciphered the Chinese character '挺' of 3-5-10, '抺' of 3-7-29, '契' of 3-10-9 and 3-10-16, and '岺' of 3-11-37 of King Gwanggaeto's Stele which had been misread. Several heavily damaged letters from 4-1-1 to 4-1-3 and the defaced part from 4-1-4 to 4-1-7 were interpreted according to the context as well. In addition, the theory of Liaodong-Pyongyang in Goguryeo is suggested after a thorough study on New Book of Tang (『新唐書』), History of Liao (『遼史』), History of Yuan (『元史』) of Twenty-Four Histories (『二十四史』).
The part from 3-1-1 to 3-8-15 of the Stele is about the war-time story that King Gwanggaeto's yielding Japanese and conquering East Buyeo (東扶餘). King Gwanggaeto clarified the number of fortresses and villages that he acquired during his regime, and it provides us previous information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and dynamics between the countires of its time. The part from 3-8-16 to 3-14-41 is about Yeonho (the house unit) and has a record of the number of Gukyeon (國烟) and Ganyeon (看烟). The section 4 of King Gwanggato's Stele inscribes Yeonho system and the total number of it, and declares that trading of YeonHo was illegal as well as why he modified the system for tending royal tombs (守墓制).
The part from 4-1-41 to 4-2-10 describes that “The Hans (韓) of south Baekjan (百殘) have one Gukyeon and five Ganyeons” and it means that the Hans, Yemaek Tribe and other the Northern Hans and the Mahan in the south, settled separate in the several area. According to Book of Wei-Dongyi (『魏書-東夷傳』) of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三國志』), “Around the year of 237 to 239, in the period of Cao Rui (Chinese emperor from 226 to 239), eight countries of Jinhan confederacy (辰韓) were divided and given to Nakrang (樂浪) and some of them had the same name in Idu (吏讀)”1), and the 'eight countries of Jinhan confederacy' indicates the Northern Hans of ancient Liaodong area. This requires the further discussion.
As for the part of Section 4 of King Gwanggaeto's Stele, this study clarifies the meaning of trading Yeonho and the words, Gukyeon and Ganyeon, and specifies its examples with the help of the manuscripts about tomb-keepers during the Joseon Dynasty which have not been made public before.
This study follows the previous two articles, “An Interpretation of Section 1 of King Gwanggaeto's Stele” and “A Study on Section 2 of King Gwanggaeto's Stele.” I hope it can be a cornerstone of the studies on the ancient Korean history and the further studies will be continue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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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誠)'의 도덕적 이해 방식에 관한 고찰 ―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을 중심으로 ―

저자 : 홍한얼 ( Hong¸ Han Eol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5-24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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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성실(誠實)'은 '부지런함'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기서 '부지런함'은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태도'로 정의(定義)된다. 또 '정성(精誠)'은 '마음을 다함'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부지런함'이나 '마음을 다함'을 곧바로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동양고전에 나타난 '성(誠)' 개념을 중심으로 그것이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의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알아보고, '부지런함'과 '마음을 다함'이 '성실(誠實)' 그리고 '정성(精誠)'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이유를 탐구해 보고자 했다.
이 연구는 '성(誠)'의 의미를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으로 한정한다거나 정형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 의미 구조로 이해되는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의 개념을 보다 선명하게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부지런함'과 '마음을 다함'은 그 대상과 목적이 도덕적 자기완성에 있어야만 '성실(誠實)'과 '정성(精誠)'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In Korea, the term Seongsil 誠實 is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diligence,” which is defined as "an attitude of steadily working hard without procrastinating or delaying one's work." Also the term Jeongseong 精誠 is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wholeheartedness." However, I suggest that we should be cautious to immediately connect those two terms, Seongsil and Jeongseong, to diligence or wholeheartedness.
This study focuses on the concept of Seong 誠(Ch. Cheng; Jp. Sei) that appeared in the Oriental classics, and examines how that concept relates to those two terms, Seongsil and Jeongseong, in Korea. Furthermore, it will explore why those two terms ar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diligence and wholeheartedness.
As a result of this study, those two terms, Seongsil and Jeongseong, can only relate to the context of diligence and wholeheartedness when the subject and the purpose of the action are aimed at one's moral comple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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