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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온지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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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598-1444
  • : 2384-2253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67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751
온지논총
67권0호(2021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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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용익의 <독사시장편삼백이십오운(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에 대하여

저자 : 이남면 ( Lee Nam-my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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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남용익의 <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시를 고찰한 것이다. 이 작품은 중국의 太古시대부터 淸나라 초기까지 흥망성쇠의 변천 과정을 시대 순으로 읊은 칠언고시로, 총 325운이고 650구이며 4,550자에 이르는 장편 대작이다.
창작 동기는 남용익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아울러 勸善懲惡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하였으며 명말청초의 암울한 현실을 역사의 반추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의 특징은 儒家的 이념과 사유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유가의 인물을 칭송하고 異端을 배척했으며, 蜀漢이 漢나라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기술했고, 곳곳에서 尊王攘夷 의식을 드러내었으며, 秦始皇과 隋煬帝 등 폭군을 비판한 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현의 특징은, 우선 장법 면에서 褒와 貶의 반복과 그 거리 조절을 통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였고, 역사의 전환기마다 과거와 새 시대를 연결하는 '聯'을 배치하여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시어의 사용은 '哀', '恨', '傷' 등 감정 표현의 글자를 사용하여 비판의 효과를 높였으며, 동물과 관련한 일화를 실패와 몰락 등의 표현을 위해 원용하는 한편 고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어 역사를 현장감 있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구법 면에서는 7언구가 5언구에 비해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 시는 다양한 역사 기술의 방법 중 하나를 제시해주었고, 家學을 통해 전승된 남용익의 역사 인식이 조선 후기 문인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다만 긴 편폭에 너무 많은 역사를 압축 제시하여 일별하기에 쉽지 않고 그 내용 또한 난해하다. 결국 이런 방식의 역사 시 창작이 후대에 계승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의 한계라고 할 만하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Nam Yong-ik's Doksasijangpyeonsambaekisipowoon(讀史詩長篇三百二十五韻), which is a long masterpiece comprised of total 325 Woons, 650 Gus, and 4550 letters. It chronologically depicts the history of China from ancient times to early Qing throughout its rise and fall.
Nam was motivated to create this work by his interest in history. He also intended to encourage good and punish evil. Witnessing the reality of the central plains of China being taken over by Qing considered as barbarians, he presumably wished to get consolation for the present from the repeating nature of history.
In terms of content, this work is characterized by historical awareness based on Confucian ideas and thinking, which is verified his praising Confucian figures and excluding the heresy, stating that Shu Han by Liu Bei inherited the legitimacy of Han, revealing his consciousness of revering the kings and excluding the barbarians throughout the work, and criticizing tyrants including Qin Shi Huang and Emperor Yang of Sui.
The work was then examined in expressive methods. As for its sentence styles, the work repeated Praise(褒) and Censure(貶), regulated the distance, and used the technique of creating and relaxing tension in order to avoid monotonous and dull quality that could be found in long poems. Describing history during a transition period, he placed a "stanza" connecting an old era with a new one to ensure a natural flow. As for his use of poetic words in the work, he intentionally used letters expressing emotions such as '哀(sad)', '恨(resentful)', and '傷(hurt)' to show his criticism effectively. In his work, the author let the dead speak in their own voices to depict history vividly with a sense of realism or used animal expressions and ancient events related to animal frequently in a bid to increase the expressive effects of failure, fall or its sign. In the use of phrase, he made active use of advantages of seven-character poem form which would not be expressed in a phrase of five characters.
This work holds significance by proposing one of various approaches to historiography and having impacts on writers and scholars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through the transmission of Nam's historical awareness. It is, however, too long and presents too many historical events in such a compressed manner, which means that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its content and get a glimpse of it. As a result, poems written in this style were not transmitted to later generations, which is a limitation of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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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설리시(說理詩) 연구(硏究)

저자 : 李貞和 ( Lee Jeong Hwa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7-7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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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설리적 언표로 자신의 사상을 표출한 병와 이형상의 학문 인식과 시세계의 상관관계를 탐색한 것이다. 병와가 애호한 산수는 음풍농월하기 위한 소일의 공간이 아니라 성학의 이치를 깨닫는 장소이자 학문적 사유의 공간이다. 병와의 학자적 풍모는 벼슬아치들이 모여 있는 조시에서의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었으니, 오히려 초야에서의 은거생활 속에서 완성된 것이었다.
병와는 생전에 '병와순옹(甁窩順翁)'를 명정(銘旌)에 써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 수양에 철저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 의지가 매우 강하였다. <경전명(鏡前銘)>에서는 내면을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 유자의 자세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때 묻기 쉬운 마음 상태를 염려하여 수신해야 함을 일깨운 작품이 <경후명(鏡後銘)>이다. 또한 <경갑명(鏡匣銘)>에서는 먼지를 막기 위해 거울에 덮개가 있는 것과 같이 유자의 수기(修己) 역시 허물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절조축(節操祝)」은 자신의 기상을 낙락장송에 빗대어 표출하고 있는데, 올곧은 선비로 살았던 병와의 삶과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임고알묘(臨皐謁廟)」에서는 유학의 도통을 전수한 포은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우러르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고결한 스승의 정신을 본받아서 자신 또한 지극한 정성을 다해 스승의 사우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에서 이러한 그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설리시에 내재된 시정신은 기본적으로 이학자의 구도 정신인데, 시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 것이다. 마음의 다스림을 수양의 근본으로 삼고 성학을 통해 체득한 이치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삶이 설리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공맹(孔孟)을 위시한 성현의 학문을 삶의 척도로 삼아 살아가는 유자의 일상은 수기(修己)가 중심이 됨은 물론이다. 병와의 시에는 『대학(大學)』을 비롯한 경전을 통해 성학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시화한 작품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작품들에 나타나 있는 병와의 가르침은 오로지 학문에 전념해야 통찰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일깨우는 마음을 담고 있다.
병와시에는 실천궁행하는 삶의 자세가 바로 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병와는 설리시를 읊음으로써 사람이면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길이 곧 '도'임을 표명하고 있으니, 이는 깨달음의 도가 충만할수록 더욱더 실천궁행하는 것이 유자의 바른 길임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일방삼연(一方三然)」에서 병와는 공자와 안회의 덕망을 우러르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인(仁)의 마음을 변치 않고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병와의 설리시 가운데 일상의 경솔한 언동을 경계하는 설리시가 들어 있는데, 이를 통해 신중한 태도로 살아가는 선비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 「삼성수수(三聖授受)」의 경우, 도심(道心)을 정밀하게 살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삼가고 재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은사(隱士)인 소부·허유의 고사를 전고로 하여 「소허청절(巢許淸節)」을 읊은 바 있으니, 이 시에는 본성을 잃지 말 것을 권면하는 가르침이 내재되어 있다.


Through Byungwa(甁窩) Lee Hyeongsang(李衡祥)'s poems, he tries to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his academic perception and the world of poetry. He was active in expressing his thoughts and depth of study in poetry. His poems have a strong tendency to pursue philosophical thinking and truth in life. In this paper, Byungwa paid attention to his mind, and his poems not only reflected his thoughts, but also emphasized the figure of a scholar who practices it well.
His life and poems were completed by his retreat near the mountains and rivers, so the period of his retreat in Hoyeonjeong(浩然亭) is particularly important. The mountains and rivers he loved so much were not for relaxation and pleasure. For him, the landscape of mountains and rivers were a space to realize the principles of study. Therefore, his poems, which he wrote while hiding in the landscape of mountains and rivers, expressed his thoughts on enlightenment. According to his teachings, insight can only be gained when dedicated to learning.
Because he controlled his mind well, he maintained the right path of life without being shaken under any circumstances. In this respect, he is a scholar who disciplines himself by removing desires, and a poet who reflects on the inside. He respected Confucius and other saints as mentors and pursued the life of a Confucian scholar. His life and poems are the fruit of self-discipline, and he practiced self-discipline throughout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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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채주문(蔡周文) 사건의 서사화 양상을 통해 본 조선 후기 복수 서사의 이념성

저자 : 오보라 ( Oh Bo-ra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10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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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복수를 둘러싼 쟁점들이 복수 서사를 통해 유교 이념으로 포섭되고 유교 이념을 실천하는 행위로 미화되는 과정에 주목하여, 蔡周文 사건의 서사화 양상을 분석했다.
채주문의 복수 살인은 장계, 옥안, 판부 등의 공문서에 형성된 내러티브를 통해 정당한 행위로 판결되었다. 당초 황성엽에 대한 옥안에서는 채서우가 황성엽에 의해 죽은 것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경상감사의 장계 등에서 각종 정황 증거를 거론하여 채주문의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평가했다. 하지만 채주문의 복수 살인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러한 논란을 해소하고자 창작된 것이 바로 정상리의 「채효자복수기사」이다. 채주문의 가문과 인척 관계였던 정상리는 실기류 산문을 통해 채주문의 복수가 정당한 행위였음을 역사적 사실로 명문화했다. 그 뒤 정민병과 고성겸은 「채효자전」을 지어, 채효자 사건을 인구에 회자될 만한 흥미롭고도 특출난 효행으로 윤색했다.
정민병은 정상리의 再從姪이었으며, 고성겸은 정민병과 교유했던 상주지역의 유생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정상리의 의도를 계승·발전하여, 복수사건을 보다 극적으로 탈바꿈하는 데 주력했다. 이들은 복수 준비 과정, 복수 살인 장면 등을 확대하고 새로운 서사를 삽입하여, 복수 서사를 흥미롭고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정민병과 고성겸이 새로 삽입하거나 확대한 서사 요소들은 모두 '孝'라는 가치와 긴밀하게 조응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이 창작한 「채효자전」은 독자들로 하여금 복수 관련 쟁점들을 상기하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채주문의 행위를 보기 드문 위대한 효행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정민병과 고성겸이 이러한 서사화를 통해 노린 것은 궁극적으로 채주문이 정려를 받고 역사서에 기록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정상리, 정민병, 고성겸은 의도적으로 채주문의 복수 관련 의혹들을 제거하여, 채주문의 살인을 칭송할 만한 윤리적 행위로 탈바꿈했다.


This article analyzed the narrating style of Chae Ju-mun incident, noting that the issues surrounding revenge were captured as Confucian ideology through revenge narrative.
First of all, Chae Ju-mun's revenge murder was recognized as a legitimate act through narratives formed in official documents such as Jang-gye, Ok-an, and Pan-bu. Originally, it was not specified whether Chae Seo-woo was killed by Hwang Seong-yeop, but various circumstantial evidence was cited by the Gyeongsang provincial governor evaluated Chae's revenge murder as a legitimate act. Also, Jeong Sang-ri's 「Chaejumunboksugisa」 resolved various suspicions surrounding the Chae Ju-mun's murder, glorifying his revenge murder as a legitimate. In other words, Chae Ju-mun's revenge murder was justified by the narrative of official documents and articles.
Rather than re-discussing whether the revenge was justified or not, Jeong Min-byung and Ko Sung-kyum focused on drawing Chae Ju-mun's revenge murder as a symbol of 'filial piety'. Jung Min-byung's 「ChaeHyojajeon」 showed that Chae Ju-mun's revenge murder was closely linked to 'filial piety' by expanding the long and difficult revenge preparation process and the brutal revenge murder scene. And in Go Sung-kyum's 「ChaeHyojajeon」, Chae Ju-mun's revenge murder were portrayed as public punishment based on humanity. Through two exhibitions, various controversies surrounding the revenge murder are eliminated, and revenge is only embodied in the practice of Confucian ideology called 'filial piety'.
In addition to 「ChaeHyojajeon」, there are countless narratives about revenge. It needs to be studied more broadly how these revenge narratives relate to contemporary ideologies, laws, and social situ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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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후산(后山) 정윤영(鄭胤永)의 『영악록(瀛嶽錄)』 일고찰(一考察)

저자 : 박종훈 ( Park Chongh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9-14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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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강산 유기로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后山 鄭胤永의 『瀛嶽錄』을 살펴본 것이다. 정윤영은 1897년 8월 16일 安城을 출발하여 內外 金剛과 東海를 유람하고 10월 8일 귀향했다.
『영악록』은 화성 향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총 99면, 17,956자이다. 특징 중 하나는 前代문인들의 금강산 관련 기록을 대폭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金昌協의 「東游記」와는 그 체제나 실제 내용에서 유사한 측면이 너무도 많다. 전인의 기록을 대폭 수용한 것은 『영악록』을 쓴 의도가, 단순히 금강산의 소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목적의식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목적은 첫째, 금강산의 절경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영악록』에는 산수 유람과 관련된 수많은 중국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직접 금강산을 말하지 않고 중국의 뛰어난 산수만을 표현함으로써 금강산의 절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냈고, 중국 산수와의 대비를 통해 금강산이 비교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둘째, 유자적 사유를 체험하는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유람을 통해, 유자로서 평소 익혔던 사유를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체득하는 기회로 삼았다. 또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하는 자세를 취했다. 셋째, 산수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함이었다. 절경의 산수에 대해서는 칭송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암벽에 새겨진 이름이나 정자에 걸린 작품 등을 통해 東國의 유람 습속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넷째,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이었다. 척화 관련 소장으로 유배의 시련을 겪었는데, 그러한 시련의 삶에 대한 진지한 회고가 담겨 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유람을 활용했는데, 이 부분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 측면에서도 그 목적의식을 살필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Jeong Yun-young's 『Yeongakrok』, a travel journal related to Mt. Geumgang, which is not yet known. He was in 1897, the Anseong, on August 16 starting Mount Geumgang and donghae a sightseeing trip and returned home on October 8. After he returned from his trip, it was 『Yeongakrok』 that summarized the trip.
One of the biggest features of the book is that it embraces the records of previous writers. Among them, Kim Chang-hyup's 「Dongyugi」 is very similar in terms of its system and contents. Records of the journey, descriptions of the scenery, and personal impressions were also greatly accepted by Kim Chang-hyup. In addition, he accepted records such as Lee Eui-hyun, Oh Do-il, Nam Hyo-on and Hong Kyung-mo, calling himself a record of former writers. The reason why the records of the previous writers were greatly accepted seems to have been due to their own sense of purpose.
First, it was to effectively reveal the scenic beauty of Mt. Geumgang. It indirectly revealed the scenic beauty of Mt. Geumgang by expressing only the outstanding scenery of China without directly mentioning Mt. It also emphasized that Mt. Geumgang is cooler in contrast to the Chinese landscape.
Second, it was intended to be used as a venue for experiencing academic reasons. As a scholar, he used his usual learning as an opportunity to learn from the real world. He also took a stance of thoroughly testifying the parts that needed to be verified. These are all derived from scholarly reasons.
Third, it was to show his own view of nature. He praised the wonderful scenery. However, he sharply criticized the name carved on the cliff or the work hung on the building.
Fourth, it was to use it as an opportunity to look back on one's life. This book contains a serious retrospective on life that has undergone difficulties. After all, he took advantage of his trip to Mt. Geumgang as an opportunity to look back on his life.
I hope this paper will serve as the basis for research on not only Jeong Yun-yeong's 『Yeongakrok』, but also his travel records to Mt. Geum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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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고전문학에 수용된 인물의 특질과 형상화 방안 ― 설화 <우렁각시>를 중심으로 ―

저자 : 하경숙 ( Ha Kyoung-sook ) , 이정현 ( Lee Jung-hyu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5-16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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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설화는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우렁각시는 다양한 유통을 통해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총각이 농사를 짓다가 우렁이를 발견하고 우렁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변신해 밥상을 차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총각과 처녀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설화 <우렁각시> 속에는 여성적이며 현실적이며 신비한 면모를 지닌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며, 사회적·문화적 문맥을 통하여 이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결핍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여성의 특성을 중심으로 서사가 지니고 있는 관계적 가치를 풀어보고자 모색하였다. 우렁각시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아내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총각이 지닌 다양한 결핍과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해결해주는 인물이다. 아울러 현모양처의 면모가 상세히 드러난다.
우렁각시라는 인물은 독립적인 결정과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능동적인 인물이다. 스스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 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렁각시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서사에서는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상황으로의 국면을 전환하는 노력과 아울러 주체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우렁각시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보다 삶에 대해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렁각시가 인간의 일상생활에 속하게 되면서 다양하고 신이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여성이 지닌 생명성을 동일하게 바라본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고대사회의 여성이 지니고 있는 생명에 대한 관점과 삶속에서 생명추구의 모습을 모색하였다.


The tale of < Ureonggaksi > is a very famous story that has been handed down for a long time. The man is in jars and picked up a snail found a snail and farm.The man is working table was set to be back at home and, weirdly The man is hiding here will watch the house.The snail in the process of transforming oneself into a beautiful woman spread a table to find that, men and women are married and to live a happy life story.
In the tale < Ureonggaksi >, there is a feminine, realistic, and mysterious woman, who tried to understand it through social and cultural contexts. It also sought to solve the relational values of narratives, focusing on the characteristics of women who are wise and play a role in solving deficiencies. More than anything else, Ureonggaksi expresses his feelings honestly and focuses on his wife's role. He is a person who solves various deficiencies and mistakes that a man has. The aspect of a great wife is revealed in detail.
It can be described as an active figure who decides independently and actively engages in activities. It emphasizes their vitality to those who have experienced various events on their own. At a time when the Ureonggaksi faces a tragic ending, it shows an independent life as well as efforts to overcome the tragic situation and shift the phase to a new one. In the end, Ureonggaksi is not suffer from tragic events and stays there, but makes various efforts to overcome them and deals with life more actively and realistically.
It has been recognized through various challenges, not limited to social choices or situations in which men have been mainly centered, overcoming female oppression. As Ureonggaksi becomes part of human daily life, it exerts various and mysterious abilities. This is the same view of the abundance of nature and the vitality of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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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연행록(燕行錄) 국역 사업'의 성과와 향후 과제 ― 학술적 가치와 연계하여 ―

저자 : 이홍식 ( Lee¸ Hongshi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7-19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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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2015년부터 수행하고 있는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를 학술적 차원에서 평가하고 그 의미를 점검하여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에 지금까지 제출된 연행록 국역 성과와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를 비교 분석하여 현재 의미를 평가하였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루어진 사행 관련 학술연구 성과를 분석하여 '연행록 국역 사업' 성과의 미래 가치를 점검하였다. 마지막으로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에 비추어서 앞으로의 국역 사업 진행 방향 등에 대해 정책 제언을 더하였다.
대중국 사행기록인 연행록은 한·중 교류의 역사적인 기록이자 문화의 교류와 충격 그리고 자각을 드러내는 문화사적·지성사적 자료이다. 우리 문화유산 속에서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 문헌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사에서도 매우 독특한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이에 한·중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밝히는 자료로써 그 가치가 매우 높은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번역 출간한 20권의 연행록은 이러한 사행기록의 학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이다.
따라서 '연행록 국역 사업'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체계적인 계획 아래에서 완성도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제출할 필요가 있다. 더하여 학술 연구와의 연계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사업 주체들의 책임의식과 협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하여 한국고전번역원의 평가 심사 외에도 성과발표회 및 학술세미나 등을 주기적으로 개최하여 국역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새로운 비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부의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연구지원이 절실하다.


This paper evaluated the achievements of the “Yeonhaengrok(燕行錄)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which has been carried out by Memorial of the Great King Sejong since 2015 with the support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at the academic level. And this paper examined meanings of the achievements and discussed the main purpose of presenting the future business direction.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conducted by the Memorial of the Great King Sejong plays a very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the basis for research on Sahaeng(使行:). So this paper was forced to proceed in connection with academic research.
First of all, the present meaning was evaluated by comparing and analyzing the performances of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that have been submitted so far. Then this paper examined the future value of the achievements of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by analyzing the achievements of academic research related to meandering from 2018 to 2020. Finally, in conjunction of the achievements of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policy suggestions were added on the future direction of the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Yeonhaengrok, the record of diplomatic trip from Joseon to China(Ming and Ching), is the historical record of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travel literature, and material of cultural·intellectual history indicated exchange, shock and awareness of culture. It is not only a document with its own value and meaning in Korea's cultural heritage, but also recognized as a very unique entity in East Asian cultural history. Therefore Yeonhaengrok is very valuable as a material that reveals the homogeneity and heterogeneity of Korean-Chinese culture. The 20 volumes of Yeonhaengrok, translated and published by the Memorial of the Great King Sejong from 2015 to 2019, are very useful texts in revealing the academic value of these speculative records.
Therefore,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needs to continuously submit high-quality results under a systematic plan than any other project. In addition, the connection with academic research should be strengthened even more than now. For this, the responsibility and cooperation of each project subject should precede anything else. Also, in addition to the evaluation of the Korean Classical Translation Institute, achievements presentations and academic seminars should be held regularly to evaluate the achievements of national translation in an overview, and to seek new visions in connection with academic research. Above all, stable and continuous research support from the Ministry of Education is desperately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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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선조초반 사인조보(私印朝報)사건을 통해 본 정치상황과 조보(朝報)정책

저자 : 김경록 ( Kim Kyeong Lok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7-23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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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보는 승정원에서 정리하여 전국에 전파함으로써 국왕의 선정 및 통치의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필사조보를 인쇄하여 보다 많은 부수를 보다 편리하게 전파할 수 있음에도 선조는 이를 사건화하여 정국을 경색시켰다. 그 결과 인쇄를 통해 신속하고 대량으로 전파할 수 있음에도 인쇄조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은 유교국가로써 국왕을 정점으로 사대부의 지배체제가 공론정치를 지향했다. 공론정치를 지속하고 확장하기 위해 국왕의 정당한 정치를 알리고 민심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 조보였다. 조보는 국왕과 왕실의 동정 및 각종 예제, 인사정책, 관리의 공론정치 및 보고서와 이에 대한 국왕의 처분을 포함하였다. 조선은 건국직후 조보를 왕정의 전파수단으로 인식하여 철저히 통제하고자 하였으며, 각종 정치사건, 예제사건, 인사정책에 조보는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선조는 즉위하며 명종대에 척신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분화 및 대립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유교국가의 정통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격화되었다. 이런 정치세력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군사적 위기의식이 고조되자 선조는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즉, 선조는 왕위계승의 문제를 극복하고 정치 상황에 대응하고자 정세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에 의한 사인조보의 발행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조보를 왕권의 대외 전파수단임을 강조했다.
1577년(선조 10) 선조의 備忘記에서 시작된 사인조보사건은 유교국가에서 조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직계왕손으로 즉위하지 못한 선조가 초반기 왕위의 정통성과 통치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왕의 정당한 통치를 전파하는 조보를 민간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인쇄하였다는 점은 선조로써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약 3개월의 조사를 통해 30여 명의 관련자를 처벌한 선조는 향후 조보의 인쇄를 금지하고 철저한 관리를 지시하며 사건을 종료했다.
선조에 의해 제기되고 처벌된 사인조보사건은 선조초반 정치상황의 전개과정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재위 10년을 경과하며 선조는 왕위의 권위를 회복하고 갈등구도의 정치상황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자 사인조보사건을 정치사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히 엄단하는 태도를 보였다. 실제 사인조보는 당시 명에서 일상적으로 시행되는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王政의 전파 및 전달단계를 원활히 함과 동시에 이의 발행을 수월하게 하여 민간에서 이익을 가지고자 했던 사회발전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선조는 사인조보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왕명출납의 한방식이라 강조하였다. 조보는 이후 매우 한정적으로 발행되었으며, 임진전쟁의 와중에 통치질서가 붕괴되자 이를 보완하는 매체로 활용됨으로써 선조초반 사인조보사건이 선조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발생하였음을 증명한다.


The purpose of the Joseon(朝鮮) was to promote the selection and governance of the king by organizing Jobo(朝報) from the Seungjeongwon(承政院) and spreading them throughout the country. It is convenient to print a desperate Jobo that takes a lot of time and manpower, but King Seonjo extended this to case. This resulted in the degeneration of the printed Jobo, even though it could be quickly and massively propagated through printing.
Joseon was a Confucian state, with the king at its peak, and the ruling system of the four great masters was aimed at public opinion politics. It was an Jobo that was used to promote the king's legitimate politics and stabilize public sentiment. Jobo included the king's movements and various ritual system, personnel policy, public opinion politics, reports, and the king's disposition. Shortly after the foundation, Joseon recognized Jobo as a means of propagation to the monarchy and tried to control it thoroughly. Jobo was closely involved in various political events, ritual events, and personnel policies.
King Seonjo needed to patch up the previous political turmoil shortly after his ascension and establish a new political order. Nevertheless, the conflict among the ruling class has intensified. As conflicts and military crises between political forces escalated, King Seonjo tried to establish royal authority. In other words, King Seonjo used the situation to overcome the problem of succession to the throne and respond to the political situation. The issuance of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私印朝報事件) in this process was regarded as a challenge to the throne and severely punished. In conclusion, King Seonjo emphasized that Jobo was a means of spreading the king's politics externally.
In 1577,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 illustrates the meaning of Jobo in Confucian countries. This is an case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of securing the legitimacy of the kingship and the authority of King Seonjo who could not be crowned by the immediate royal family. The fact that Jobo, which propagated the king's legitimate rule, was printed for economic benefit in the private sector was an unacceptable event as King Seonjo. King Seonjo, who punished 30 people involved through a thorough investigation for about three months, ended the case by banning the printing of Jobo in the future and ordering thorough management.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 raised and punished by King Seonjo can be grasped during the development of the political situ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reign. After 10 years of reign, King Seonjo stipulated the Civilian-printed Jobo Case as a political case in order to restore the throne's authority and lead the political situation of conflict.

KCI등재

8성호 이익의 관혼례(冠婚禮) 의절(儀節) 연구

저자 : 도민재 ( Doh Min-jae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5-2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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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성호 이익이 실제 관례와 혼례를 거행하며 의식절차를 정리한 「산절관의(刪節冠儀)」와 「취부의(娶婦儀)」, 「가녀의(嫁女儀)」의 내용 분석을 통해, 이익이 제시한 실용적인 관례와 혼례 의절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익은 관례에서 빈객을 모시는 절차를 생략하고, 삼가례는 한 번으로 간소화하여 관례 시행에 필요한 의복이나 기물 준비에 드는 비용 부담을 줄였다. 이는 예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가난한 집안의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혼례는 시속(時俗)을 따라 친영(親迎)을 하지 않고 신부집에서 혼례식을 거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청기(請期)'도 신랑집이 아닌 신부집에서 청하도록 하고, 폐백과 음식의 종류 및 가짓수를 간소화하여 실용적인 혼례 의식을 제시했다.
이익은 『가례』가 의례 실천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점은 인정했으나, 『가례』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실적인 경제 상황에 맞추어 의례를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가난한 양반이나 일반 서인들이 『가례』를 제대로 따르기 어려운 현실에서, 경제적인 측면에 구애되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의례의 형식을 제시했다. 이처럼 이익은 당시 조선의 현실에 알맞은 실용적인 의례 실천을 추구하여, 형식에 치우친 허례허식(虛禮虛飾)이 아닌 진정한 실학으로서의 예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This paper is a consideration of the coming-of-age ceremony and Marriage ceremony of Sungho Lee-Ik. Lee-Ik argued for the need for Seoingarye for the ordinary people, as the Zhu-Xi`s Family Rituals are a ritual for the nobility.
In the Coming-of-Age Ceremony, the procedure for requesting officiating is omitted, and the use of hats three times has been reduced to one time, which has been simplified. In response, reduced the cost of implementing rituals at home and emphasized practicality. The wedding ceremony was held to follow the customs of the bride's house, and simplifying the types of waste bags and food and the number of branches, and offering a practical wedding ceremony.
He acknowledged that the Zhu-Xi`s Family Rituals was a standard for practice, but rather than being tied to the form of ancient rituals, it was more important to carry out rituals in accordance with realistic economic conditions. So, based on the Zhu-Xi`s Family Rituals, he established a practical rite suitable for the reality of Choson Dynasty. Therefore, he proposed a practical ritual format that ordinary people could implement regardless of economic conditions. As such, his studies reflect the practicality of scholars.

KCI등재

9주희의 미발공부 유무와 호락논쟁

저자 : 이종우 ( Yi Jongwoo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5-29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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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미발시 공부로서 계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훗날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쟁점이 되었다. 호학의 한원진은 낙학인 이현익의 미발시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김창흡을 지지하였다. 당시 김창흡은 낙학에서 이현익과 박필주가 논쟁을 벌인 것에 대하여 이현익을 비판하면서 박필주를 지지하였다. 그는 미발시에도 함양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현익은 미발이란 희노애락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허황된 생각도 생기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고, 주희의 미발무공부에 근거하였다. 반면에 김창흡은 그러한 상태일지라도 그것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함양으로서 계신공구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주희의 미발공부에 근거하였다. 김창흡은 미발이란 본연지성만 있으므로 순선하다고 여긴 반면에 한원진은 기질지성도 있기 때문에 선악이 함께 있다고 여긴 것이 다른 점이다. 이간은 미발을 본연지성만 있으므로 순선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이 김창흡과 공통점이다. 이 때문에 『정조실록』에서 이간을 김창흡과 같은 낙학으로 분류하였으나 미발시 공부설도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간은 미발을 중과 부중으로 구분하여 부중의 미발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중의 미발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주희의 미발공부의 유무에 근거하였다. 이간의 미발시 무공부는 이현익과 공통점을 갖는 반면에 김창흡과 다르다. 그러므로 『정조실록』에서 이간과 김창흡을 낙학으로 분류한 것은 미발시 본연지성만 있다는 주장이 같았기 때문일 뿐 공부설이 같아서 분류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의 미발시 공부에 관한 논쟁은 성리학의 목적에 해당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것은 호락논쟁의 결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In the Works of Zhu Xi, self-cultivation a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mind-and-heart needs or not. Because of this, the scholars in the Ho and Rak group had a debate. Han Wonjin in Ho group was criticizing the argument of Yi Hyeonik in Rak group, not to be needed self-cultivation a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with Kim Changheup supporting. The argument of Yi based on Zhu Xi's not being in need of self-cultivation. In Rak group, Kim was criticizing Yi, with Park Pilju supporting a debate between Yi and Park at the time. Kim argued to be needed preserving the mind and nurturing nature, caution and apprehension, a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while Yi argued not to be needed the cultivation because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is not aroused emotions as well as bad thinkings. The arguments of Kim and Park was based on Zhu Xi's being in need of self-culitivation. Although is the state, man should have self-cultivation because can arise bad thinkings according to Kim's argument. Han was crticizing Yi, with Kim supporting. Therefore, Han's, Ho group's representative, supporting Kim, Rak group's representative, was not to keep their own claims. Kim and Han is not the same the definition of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That of Kim means it having original nature, while that of Han means it having original as well as physical nature. Kim and Yi Gan have a common point. Therefore, the Veritable Records during King Jeongjo's Regime recorded both Kim and Yi Gan to belong to Rak group. However, their self-cultivation at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is not the same. That of Yi Gan means a perfect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not to be needed self-cultivation, while that of Kim means it to be need. According to that,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Jeongjo was suitable for their concep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but not suitable for their self-cultivation. Their debate has necessity because the goal of neo-Confucianism aims self-cultivation. Therefore, Han's comment on their debate has necessity. According to that, this is the conclusion of Horak debate. Their debate was developed due to Zhu Xi's duality of a theory of self-cultivation in the Not-Yet Aroused State of the mind, but they had precisely established their own theories based on those of Zhu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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