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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4)~4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12
율곡학연구
47권0호(2022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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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영경 ( Lee Young Kyung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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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주장하는 도덕 실천의 동력과 실심(實心) 문제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논의를 전개했다. 먼저 도덕 실천 동력의 특성을 지적(知的), 발현적(發現的), 주체적(主體的) 실천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했다. 도덕 실천을 추동하도록 하는 지적(知的)인 실천 동력은 도덕적 이치와 도리 등에 대한 궁리(窮理)를 중심으로 논했으며, 발현적 실천 동력은 심성(心性)이 발한 정(情)·의(意)·지(志)라는 작용을 중심으로 특성을 탐색했다. 도덕 실천을 위한 주체적 동력에 대해서는 마음이 '발현된' 동력인 정·의·지와는 달리, 도덕 실천을 위해서 마음을 '발현케 하는' 주체적인 동력인 실심(實心)을 중심으로 논했다. 그리고 경(敬)이 실심을 형성·강화하는 핵심 방법이 되는 맥락을 분석했다.
율곡은 실심에 매우 중요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실심은 선(善)을 행하려는 실천적 도덕성이 충만한 참된 마음이므로 실심이 있어야만 도덕 실천의 지적(知的)인 동력과 지·정·의의 동력을 강하게 행적(行的)으로 작동케 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행적 경지가 지선에 머물 수 있다[止於至善]는 입장을 율곡은 표명한다. 이점에 입각하면, 도덕 실천의 문제에 접근하는 율곡의 사유를 실심의 윤리사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This these design to study the thoughts what Yulgok takes the issue on driving forces of moral practice and sincere mind[實心]. The driving forces of moral practice have very important meaning in ensuring the integrity and completeness of moral behavior in terms of operating and leading to practical morality. According to the purpose on analysis to the forces of moral practice and the sincere mind, we found the essential points of discussion as follows ;
The first, the intellectual driving force of moral practice is discussed on thinking of moral principles[窮理] and truthful knowledge[眞知]. The second, the expressive driving forces of moral practice are searched for its characteristics of emotion, intention, and volition which expressed by the mind. The third, the subjective driving force for moral practice is illuminated by the discussion focused on the sincere mind which Yulgok emphasized manifestly. The fourth, cautious convergence(敬) is discussed the context which become a key method to form and strengthen sincere mind.
The sincere mind can operate the intellectual power of moral practice and the emotion, intention, and volition which expressed by the mind strongly and actively. Through this study, we confirm that Yulgok granted a very important status to the sincere mind, therefore his ethical position in approaching the problem of moral practice can be defined as the ethical thoughts of sincer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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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영우 ( Park Young Woo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6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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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이의 '획전역(畫前易)' 개념을 통해 드러나는 태극의 정치적 의미를 논증하는 글이다. (1) 이이가 '획전역' 개념을 통해 드러내는 '태극'이 유가실천론, 즉 제왕학 수립에 끼쳤던 인식론적 구조를 드러내고, 나아가 (2) '획전역'의 이러한 인식론적 의의가 이이의 정치적 실천에 끼친 영향을 논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3) 이이의 '획전역' 개념이 지닌 정치적 특징을 랑시에르의 정치학 개념에 비추어 규정함으로써 이이의 역학에서 제시하는 '획전역' 개념이 지니는 정치적 위상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4) 이이의 '획전역' 개념이 오늘날에 어떤 정치적 활용도가 있을지를 논의한다.


In this paper, I aim at a purpose on arguing for Leeyi's political meanings of Tai-ji, which be exposed through his concept Pre-hexagram-Yi. For achieving this purpose, (1) I will discuss on his political meanings of the concept Tai-ji through keeping up with his concept pre-hexagram which influence on recognition process of structuring kingly-learnings in Confucian practice. (2) furthermore, also examine what this cognitional process about Leeyi's pre-hexagram have affected on his political practice, (3) standing on this basis, I will confirm political status of Leeyi's concept pre-hexagram through comparing Leeyi's political meaning with Rancière's concept 'policitics'. (4) finally, I also identify what political availability nowadays will be in the Leeyi's concept pre-hex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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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황수영 ( Hwang Su Young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9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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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에 있어서 학문한다 함은 곧 '인간 되어짐'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수기요 공부라 하겠다. '인간 되어짐'으로서의 마음공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도덕적 실천이 결여된 인간이야말로 부족한 인간일 뿐 아니라, 또 그러한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공부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일 인간에게 지적(知的)인 변화 가능성과 행동의 변화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공부론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유가철학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도덕가능의 존재일 뿐 아니라 영특한 지성을 지녔다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긍정적 신념을 갖는다. 율곡도 전통적인 유가의 인간관을 계승하여 인간은 도덕가능의 존재라고 인식한다. 율곡은 인간의 신체적 타고남은 바꾸기 어려워도 정신적 변화는 가능하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어리석음을 지혜롭게 바꾼다는 것은 지적(知的)인 변화이며, 덕이 없는 사람을 현명함으로 바꾼다는 것은 도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율곡은 인간의 도덕적 변화 가능성과 지적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인정하였다. 이러한 인간관에서 그의 공부론이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율곡에 있어 마음공부의 목표는 무엇일까? 율곡의 공부론에 있어서 추구하는 목표는 한결 같이 『성인(聖人) 됨』에 있다. 인간은 성인을 목표로 공부를 해야 하며, 그 성인의 표준은 다름 아닌 천지였으니, 인간의 공부는 천지와의 합일에 있었다. 여기에 유학의 마음공부가 천인합일에 그 구경지(究境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Studying the mind as a human being has a very important meaning. This is because humans who lack moral practice are not only insufficient humans, but also cannot be a true study.
Then, how is it possible to study the human mind? For this, the possibility of human change must be premised. If humans are not given the possibility of intellectual change and behavioral change, the theory of study itself cannot be established. In the Confucian philosophy, humans have a positive belief in the nature of humans that not only are they inherently moral beings but also have a brilliant intelligence. Yulgok also inherits the traditional view of oil prices and recognizes that humans are moral beings.
Yulgok saw that mental change is possible even if it is difficult to change the human body. Here, wisely changing foolishness is an intellectual change, and wisely changing a person without virtue means moral change. In this way, Yulgok recognized the possibility of moral and intellectual changes in this way. From this point of view of man, it can be seen that his theory is possible.
Then, what is the purpose of studying the mind in Yulgok? The goal pursued in Yulgok's theory is to become a saint. Humans must study with the goal of being a saint, and the standards of that saint were none other than heaven and earth, so human study was in unity with heaven and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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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원혁 ( Suh Won Hyuk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5-12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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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율곡의 인성 교육에 대한 실천성을 연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인성교육의 실제로 이뤄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율곡 이이가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편찬한 『격몽요결』을 통해 그의 교육 실천에 대한 내용과 방법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가 해주의 은병정사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 향방을 정하지 못하는 초학자들에게 스스로 뜻을 세우고 몸을 단정히 하며 가정과 사회에 대해 기본적인 역할을 다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 하여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였다. 특히 현시점에서 인성교육이 필요성이 매우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실제적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연구를 진행하였다.


This study is a work to find a methodology that makes Yulgok's personality education practical. The purpose is to find various methodologies for the Practicality of Yulgok Personality Education. This study attempted to explore the contents and methods of his educational practice through “Gyeokmongyo-gyeol”. “Gyeokmongyog-yeol” was created to help Yulgok set his own will, keep his body neat, and fulfill his basic role in his family and society. It reinterprets this from a modern perspective and discusses ways to practice it. In particular,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find ways to provide practical education centered on personality education, considering that the need for personality education is emerging at this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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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순자 ( Yang Soon Ja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9-15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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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경상우도 노사학파인 명호 권운환(明湖 權雲煥, 1853~1918)의 「납량사의기의소차(納凉私議記疑小箚)」와「납량사의기의추록소차(納凉私議記疑追錄小箚)」에 주목하여 노사학맥을 계승하고 있는 그의 성리학적 사유와 이해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 1798~1879)은 리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조선 유학사의 중요한 논쟁 중의 하나였던 호락논쟁(湖洛論諍)을 비판하기 위해 「납량사의(納凉私議)」를 지었다.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는 낙론의 입장에서 「납량사의의목(納凉私議疑目)」을 저술하여 노사를 비판하였고, 이에 대해 노사의 제자들은 스승을 변론하고자 노사학파의 입장에서 간재를 재비판하였는데, 권운환 또한 그런 관점에서 두 편의 글을 작성하였다.
우선 권운환은 리의 순선(純善)함을 보존하면서도 리의 주재력도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현상 세계의 부득불연(不得不然), 즉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분(分)으로 보고 분과 편(偏)을 일관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 간재는 '분'과 '편'을 일관된 것으로 보고 분을 리에 귀속시킨다면 현상 세계의 악(惡)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권운환은 모든 사람과 사물은 천명지성(天命之性)을 타고 태어났으며 잠시 악을 행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 본연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세상에 일시적으로 악이 존재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선으로 나아간다. 또한 리가 언젠가는 돌아오기 때문에 결코 리가 약하고 기가 강하다고 할 수 없으며, 리는 현상 세계에 강한 주재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권운환은 마음의 허령신묘(虛靈神妙)함은 기(氣)가 하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마음에 천서(天叙), 천질(天秩), 천명(天命), 천토(天討)의 실체가 있음을 전제하지 않고 기의 순수함만을 언급한다면 호론(湖論)의 주장은 쉽게 무너질 수 없음을 지적한다.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examine the Neo-Confucian ideas of Meongho Kwon Yunhwan, one of the Nosa School in Geyongsang Province, focusing on his writings such as “Napryangsaeuigieuisocha” and “Napryangsaeuigieuichuroksocha.” Nosa wrote “Napryangsaeui” in order to criticize the Horak Controversy, one of the major debates in the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through a new interpretation of “Principle is one and its manifestations are many (理一分殊).” Ganjae criticized Nosa by writing “Napryangsaeuiuimok” from the standpoint of Rakron, and in response, disciples of Nosa re-criticized Ganjae from the standpoint of the Nosa Schoo to defend their master, and Kwon Yunhwan also wrote the two writings from that point of view.
First of all, Kwon Yunhwan ascribed the inevitable inevitability of the phenomena to division (fen, 分) and regarded it consistent with part (pian, 偏) to preserve Li's pure goodness and revive its presidency over the phenomena. Ganjae responded to him saying that Kwon's idea cannot explain why there are evils in the world. Kwon Yunhwan believed that ever person and thing were born with the Heavenly Nature, so they can do evil for a while, but eventually restore their pure nature. Therefore, evil may exist temporarily in the world, but eventually it moves toward good. In addition, it can't be said that Li (理) is weak while Ki (氣) is strong as long as Li will return eventually, and it can be said that Li has strong presidency in the world. Kwon Yunhwan additionally agreed that the empty and mysterious state of the mind is due to Ki, but also pointed out that Horon's argument cannot be easily destroyed if we mention only the innocence of Ki without presupposing that there are the entities of Heavenly Order, Heaven Mandate, or Heavenly Pun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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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향준 ( Lee Hyang Joon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7-19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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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01년 하반기에서 1902년 사이에 나타난 몇 가지 텍스트를 중심으로 외필논쟁의 초기 양상 가운데 하나를 다룬다. 이 양상은 원래 기정진의 「외필」 -저자를 알 수 없는 영남 노론계의 저술인 「외필문목」-기우승의 「박외필문목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재 외필문목」의 현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에 「외필문목」에 영향을 받아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유와 하우식의 「독기노사외필」 두 편을 경유해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기우승의 「외필문목」 비판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다음 순서에 따라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박외필문목변」의 저자로서 기우승의 생애와 사승을 개괄하면서 「외필문목」의 존재가 어떻게 확인되는지를 약술할 것이다. 둘째 「독기노사외필」 1·2의 서술 구조와 「외필」을 비판하는 내용의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셋째 「박외필문목변」에서 인용된 「문목」의 구절들을 「독외필」 2와 대조함으로써 「외필문목」의 논지를 재구성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논의를 배경삼아 「외필문목」의 재비판으로서 「박외필문목변」의 견해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성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외필논쟁 과정에서 기우승의 존재와 그의 학술적 기여를 확인시키고, 그 다음으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외필논쟁의 초창기 양상을 좀 더 섬세하게 파악하게 될 것이다.


This article deals with one of the early aspects of the Eopil-Debate(猥筆論爭), focusing on several texts that appeared between the second half of 1901 and 1902. This originally led to Ki Jeongjin's Eopil(猥筆), the author of Yeongnam Noron, whose author is unknown, Eopilmoonmok(猥筆問目), and Ki Wooseung's The Counterargument of Eopilmoonmok(駁猥筆問目辨). However, it is currently impossible to confirm the existence of the Eopilmoonmok. For this reason, the discussion will be conducted through two texts, Han Yu and Ha Wooshik, which are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under the influence of this document. The two texts have the same title as Reading Eopil by Ki Nosa(讀奇蘆沙猥筆). Therefore, this article focuses on Ki Wooseung's criticism of Eopilmoonmok and develops the discussion in the following order. First, I will outline the life and teacher-in-law of Ki Wooseung and outline how the existence of Eopilmoonmok is confirmed. Second, we will look at the narrative structure of Reading Eopil by Ki Nosa 1·2 and the characteristics of criticizing Eopil. Third, we will compare and review The Counterargument of Eopilmoonmok and Reading Eopil by Ki Nosa 2 to reconstruct the thesis of Eopilmoonmok. Finally, we will look at Ki Wooseung's criticism of Eopilmoonmok. First of all, it will specifically show the existence of Ki Wooseung and his academic role in the process of the Eopil-Debate. Second, we will understand the early aspects of the Eopil-Debate more delicately. Furthermore, the fact that this debate began in the first year of the 20th century has intellectual historical implications. This is because, in terms of timing, this debate should be called an aspect of the Korean Neo-Confucianism in the 20th century. As a result, this article reminds us of the need for questions and explanations about the possibility and significance of the field of Korean Neo-Confucianism in the 20th century, including Eopil-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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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영이 ( Seo Young Yi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1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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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도 리학(理學)의 재현이 지속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한국 역사상 가장 큰 변혁기를 살았던 송산(松山) 권재규(權載奎, 1870~1952)의 시대에도 리학이 여전히 같은 동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권재규는 개항기-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경험한 지식인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노사학(蘆沙學)을 충실히 계승한 그는 정치적·사회적 인식, 관습, 사고, 가치관 등의 총체적인 틀이 바뀌는 변혁의 조선에서 일관되게 성리학의 재현을 꿈꾼 유학자다. 그는 조선의 정치·사회·경제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던 개화론자들과 달리, 그 구조를 뒤흔드는 서구 세력과 일본, 그리고 그들을 통해 들어오는 신문물과 신학문을 '옳지 않은 것'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그의 사회적 인식은 '리존무대(理尊無對)'의 리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권재규에 따르면, 동서고금에 통용되는 보편의 '리'가 있으며,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그 '리'의 주재와 명령을 받아 드러난 현상이다. 이러한 구조의 리학이라면, 변화의 시대에 대응[應事接物]하기 위해서는 '구세(救世)'보다 '구도(求道)'가 더 시급한 일이며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규범들은 그것들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가'에 따라 수정되고 변화될 수 있다. 마치 게임마다 규칙이 다르듯 시대적 맥락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상황에 단일한 규범을 적용하려 하면 오히려 상황을 왜곡하게 된다. 타자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유기체임을 감안하면 '사람의 도리[理]'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다만, 그 '리'가 현실의 변화를 포용하지 않는 한, 그것은 갇힌 사고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리학의 재현이 되기 위해서는 '리' 중심의 배타적 이해를 넘어 시세의 변화를 포용하는 포괄적 해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탐구를 '리학 재현의 시대 맥락적 고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set out to explore the sustainability of Li-Hak's reappearance even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of paradigm betwee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 Specifically, the study raised a question as to whether Li-Hak would still have the same momentum during the years of Songsan Kwon Jae-Gyu(1870~1952) that lived the most turbulent period in Korean history.
Kwon shows a type of intellectuals that experienced the opening port period, Japanese rule, and Korean War. Inheriting the Philosophy of Nosa faithfully, he lived as a Confucian scholar that consistently dreamed of Neo-Confucianism's reappearance in Joseon of transformation in which the overall framework of political and social perceptions, customs, thoughts, and values was changing. Unlike the enlightenment advocates that raised issues with the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structure of Joseon, he defined the Western power and Japan that shook up the structure and also the new culture and new learning that accompanied them into Joseon as “something that was not right” and “something bad”. His social perceptions were based on Li-Hak of “Lijonmudae”. According to him, there is universal “Li” commonly applicable to all times and places, and the reality that we face is a phenomenon exposed by the presidency and order of “Li”. In Li-Hak in this structure, it is natural that “seeking after truth[求道]” should be more urgent and come before “saving the world[救世]” to react to the times of changes[應事接物].
The norms that people use can be revised and changed according to the “situations in which they are used”. Just like different games impose different rules, different periods have different contexts. If such differences are ignored to apply the uniform norms to all situations, the situations will rather be distorted. Given that human beings are organisms that should engage in ongoing interactions with others, the “human duties[理]” are still valid to people. However, as long as “Li” refuses to embrace changes in reality, it will remain only as the product of closed thinking. There should be comprehensive interpretations to embrace the changes of the times beyond the exclusive “Li”-centered understanding for the successful reappearance of Li-Hak. This inquiry can be called an “investigation into the periodic context of Li-Hak reappea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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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정준 ( Choi Jeong Jun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7-23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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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보편적 수리는 현실에서 문화로 구체화되기도 하고 구체화되지 않기도 한다. 문화적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수리는 그저 가능태로서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문화적으로 구체화된 수리는 현실태로서의 문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문화의 원형이 역사적 유구성을 동반할 때 그 나라의 문화적 특징으로 거론할 수도 있다.
본고에서는 역의 삼재론적 관점에서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을 살펴보았다. 첫째는 국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태극기의 괘에 대해 살펴보았다. 둘째는 한민족의 역사적 유구성의 차원에서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셋째는 우리말인 훈민정음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찰을 통해 한국문화에서 삼재론이 적용되는 방식과 그 철학적 함의를 도출해보았다. 태극기의 태극음양과 4괘의 문양은 상징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한 가운에 위치한 건곤감리의 4괘를 취하였다. 단군이야기와 훈민정음의 경우 천지인이나 천인지라는 삼재가 시공간적 구성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군의 경우 천인지의 공간을 설정한 후 천지인의 시간적 흐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훈민정음의 경우 구체적인 언어의 영역에 천인지의 공간적 우주를 펼쳐서 글자를 만든 것은 일대 혁명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2분법적 어음을 3분법으로 구상한 것은 삼재론의 철학이 적극적으로 문화에 활용된 대표적 사례이다.
무엇보다 문화에 내재된 삼재론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함의는 인간의 위상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본다. 삼재론에서 인간을 천지에서 발생된 인간(범인), 그 천지의 덕과 합하기 위해 학습하는 인간(군자), 천지의 조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간(대인)으로 구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천지와의 관계에서 발생과 학습과 참여라는 인간상으로 구분해볼 때 훈민정음과 단군신화의 인간은 발생의 차원을 넘어 주체적 참여를 지향하는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는데 의의가 있다.


In reality, universal numbers-Principle of Iching may or may not be embodied as a culture. numbers-Principle, which is not culturally embodied, can only be said to be a prototype as possible. On the other hand, culturally embodied numbers-Principle can be said to be the prototype of culture as a reality. Furthermore, when the original form of this culture is accompanied by historical permanence, it can be mentioned as a cultural characteristic of the country.
In this paper, I looked at Korea's representative cultural heritage from the perspective of three basis theory(三才論) in Iching. First, we looked at the national flag, Taegeukgi(太極旗), which can be said to be the face of the nation. The second was to focus on Dangun(檀君) mythology in terms of the historical structure of the Korean people. Third, we looked at the Korean word Hunminjeongeum(訓民正音).
Through consideration, the method and philosophical implications of applying the theory of three basis in Korean culture were derived. The Taegeukgi(太極旗)'s Taegeuk(太極) yinyang(陰陽) and four gwae(卦) patterns used the symbolic original form as they were, and at the same time, took four gwae(卦) of Geongongamri(乾坤坎離), located in the middle. In the case of DangunDangun(檀君) Story and Hunminjeongeum(訓民正音), three basis theory(三才論), Cheonjiin(天地人) and Cheoninji(天人地), are used as a temporal and spatial composition. In the case of Dangun(檀君), the story was composed of the time flow of Cheonjiin(天地人) after setting the space of Cheoninji(天人地). In the case of Hunminjeongeum(訓民正音), it is a revolutionary idea to create letters by spreading the spatial universe of Cheoninji(天人地) in the specific area of language. The idea of changing the two-division letter to three-division method i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the active use of the philosophy of three basis theory(三才論) in culture.
Above all, I think the most important philosophical implication of the three basis theory(三才論) inherent in culture lies in understanding human status. In the three basis theory(三才論), humans can be divided into humans(Ordinary people) from heaven and earth, humans(gunja:君子) who learn to combine them with the virtues of heaven and earth, and humans (magnanimous man) who actively participate in the harmony of heaven and earth. In this way, when divided into the human image of Birth, learning, and participation in relation to heaven and earth, it is meaningful that the humans of Hunminjeongeum(訓民正音) and Dangun(檀君) Myth have an active meaning of emphasizing subjective participation beyond the dimension of 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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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종우 ( Yi Jong Woo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5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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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는 미발(未發)시 중(中) 뿐만 아니라 부중(不中)도 있고, 이발(已發)시에도 중절(中節) 뿐만 아니라 부중절(不中節)도 있다고 여겼다. 『중용』에서 미발의 중과 이발의 중절이 쓰여져 있는데 주희가 말하는 부중과 부중절은 『중용』의 중과 중절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과 중절이 있다면 부중과 부중절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미발시 중은 존양을 통하여 이발시 중절이 되지만 미발시 부중은 이발시 부중절이 된다는 것이 주희의 생각이다. 희노애락이 이발했을 때 올바르거나 과불급이 없는 것이 중절이자 시중(時中)이고, 올바르지 않거나 과불급이 있으면 부중절이자 불화(不和)가 된다는 것이다. 이발로서 사단이 있으며 그것은 중절 뿐만 아니라 부중절도 있다고 주희는 말했는데 이발은 『중용』, 사단은 『맹자』에 나오므로 그는 양자를 연결시켰다. 또한 희노애락도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고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이 중절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중절이라고 한다.
희노애락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중절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중절하다는 것이 주희의 생각이다. 기쁨이 과하거나 분노가 부족하면 그것은 부중절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발시 공부가 필요한데 그것이 존양(存養)과 계신공구(戒愼恐懼)이고, 이발시 공부는 성찰(省察)과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Zhu Xi considered the Not-Yet Aroused State of mind is equilibrium as well as non-equilibrium, and the Aroused State of mind is equilibrium as well as non-equilibrium. This equilibrium of Not-Yet Aroused State and Aroused State of mind have been written in The Doctrine of Mean, so those of Zhu Xi means expansion of the book. The equilibrium can become non-equilibrium, according to Zhu Xi's thinking. According to him, the equilibrium of Not-Yet Aroused State generates the equilibrium of Aroused State through preserving original mind, but the non-equilibrium of Not-Yet Aroused State generates the non-equilibrium of Aroused State. The equilibrium at the Aroused State of mind to be equilibrium means Adhere to the Mean at Any Time, if this has excess or deficiency, this means non-equilibrium. Four Beginning meaning the Aroused State is equilibrium as well as non-equilibrium, according to Zhu Xi, and this means interpretation of Mengzi based in The Doctrine of Mean. If joy, anger, sorrow, and pleasure are keeped their balance, it is equilibrium. If not so, it is non-equilibrium, according to Zhu Xi. The excess of joy and deficiency of anger means non-equilibrium. Therefore, human being need self-cultivation, treatment with extreme care caution, and preserving mind and nurturing nature, at the Not-Yet Aroused State of mind, and introspection and careful sincere at the Aroused State of mind. treats with extreme care.

KCI등재

저자 : 전병욱 ( Jeon Byoung Ok )

발행기관 : (사)율곡연구원 간행물 : 율곡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9-28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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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수양론은 전체적으로 '明明德'이라는 목적을 지향한다. '명명덕'은 그 자체로 윤리행위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도덕수양의 과정이다. 주자 철학에서 '명덕'은 인간 본성의 자연적 능력이며, 그 속에는 도덕지식과 도덕의지가 있다. 致知는 도덕지식을 극대화시키는 수양이고 성의는 도덕의지를 극대화시키는 수양이다. 치지가 이루어질 경우 도덕실천이 보장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 본성 속에 도덕실천의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는 특성을 가진 도덕실천의 의지는 치지를 통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온전하게 제시될 때 그 본연적 능력이 제대로 실현되지만 그렇다고 치지를 통해 비로소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현실에서 선이 아닌 것을 좋아하고 악이 아닌 것을 싫어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선과 악에 대한 착각에 의한 것일 뿐이고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 자체는 본연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맹자의 사상을 계승한 성리학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논리이다. 그런데 주자가 격물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지식의 역할이 부각시키면서 그의 이론체계에 대해 도덕적 의지의 생성마저 지식에 의존시키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는 '성의' 공부를 위해 필요한 격물치지의 역할에 한계를 분명히 하고 '성의' 공부의 고유한 역할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도덕의지가 인간 본성의 고유 영역이라는 사실을 천명하고 그것의 수양론적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The purpose of Zhu Xi's cultivation theory is to restore one's inborn luminous Virtue. Restoring one's inborn luminous Virtue in itself a process of ethical practice and at the same time a process of moral discipline. In Zhu Xi's philosophy, inborn luminous Virtue is the natural ability of human nature, and there is moral knowledge and moral will in it. Zhizhi(致知) is a training that maximizes moral knowledge, and Chengyi(誠意) is a training that maximizes moral will. Zhu Xi argued that moral practice was almost guaranteed when Zhizhi was carried out because he believed that the will of moral practice was inherent in human nature. The will of moral practice which has the characteristic of loving good and disliking evil is completely presented through Zhizhi, but it does not completely rely on Gewuzhizhi. Even if it is true that a person's mind likes something that is not good and hates something that is not evil in reality, it is only because it misrecognizes good and evil, and the mind itself that likes good and hates evil naturally exists. In fact, this is a natural logic from the standpoint of the Neo-Confucian who inherited the idea of Mencius that human nature is good. However, Zhu Xi emphasized the role of knowledge too much in the process of emphasizing Gewuzhizhi(格物致知), so there was a misunderstanding that the creation of moral will in his theoretical system also depended on knowledge. In this paper, by clarifying the limitations of the role of the Chengyi and clearly presenting the unique role of Chengyi, I tried to clarify the fact that moral will is an inherent area of human nature and to clarify its significance in cultivation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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