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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philosophical history

  • : 한국철학사연구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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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598-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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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75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835
한국철학논집
75권0호(2022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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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원준 ( Lee Won-ju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3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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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성호 이익의 후학들, 즉 성호학파의 격물관(格物觀)을 통해 기존 한국유학계의 “격물궁리(格物窮理)” 전통이 한역서학서의 “격물궁리지학(格物窮理之學)”을 접한 지식인들에 의해 변동되는 양상을 시론한 것이다. 한국유학의 “격물궁리” 전통의 기반이 되는 주자학적 소학-대학의 교학 체계와 “격물궁리”의 방법론은 예수회 선교사들 또한 자신들의 학문 체계를 정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채용하였고, 그 결과 Philosophia의 대역어로 “격물궁리지학(格物窮理之學)”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역서학서의 학술용어 “격물궁리”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성리학적 “리” 관념을 부정함에 따라 “리일분수”의 대전제와 결별하였고, “격물궁리” 이전에 요구되는 선행학습의 차이로 인해 『소학』을 통해 수학해야 할 도덕실천의 기반과도 이격되었다. 이러한 “격물궁리”는 성리학적 관념에 익숙한 한국유학자들에게 있어 “구이지학”의 폐단으로 흘러들 위험성이 높은 공부방법론으로 이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역서학서를 접한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전통적인 “격물궁리” 전통의 본의인 도덕인식론적 특성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호학파학자들은 주자의 『대학장구』를 따르지 않는 형태로 주자학의 “격물궁리”와 결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호학파에서 서학을 최초로 비판한 하빈 신후담의 경우 『고본대학』의 맥락 속에서 “격물”을 이해하였고, 정산 이병휴나 녹암 권철신 등 서구 학문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였던 인물들 역시 성리학적 “격물”에 대해 그 말류의 폐단을 지적함으로써 신후담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격물설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대학장구』의 “격물궁리”가 “구이지학”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생김에 따라 우선적으로 전통적 “격물궁리” 그 자체에 내포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스승인 이익이 다층적 격물 이해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지녔던 당대 학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는가에 대해 고민케 한다는 점에서, 성호학파의 격물설은 조선 후기 사상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of changing the traditions of the former Korean Confucian academia`s “investigation of things” by Sungho School, which encountered “Gewuqionglizhixue” from texts for Western Learning written in Chinese. Zhu Xi`s educational system based on Elementary Learning-Great Learning structure and its methodology of “Gewu” and “Qiongli”, the basis of the tradition of “investigation of things” in Korean Neo-Confucianism, were also adopted by Jesuit missionaries to explain their academic system. And as a result, “Gewuqionglizhixue” was used by Jesuit missionaries as a equivalent for their acadenic term “Philosophia”. However, Jesuit missionaries` academic term “Gewuqiongli” broke with the premise of Zhu Xi`s “Liyi-Fenshu” for “investigation of things” because they denied the Neo-Confucian notion of "Li", and was separated from the foundation of moral practice to be studied through Elemnetary Learning due to differences in prior learning required before “Gewuqiongli”. For Korean Confucian scholars who are familiar with Zhu Xi`s doctrine for “Gewu”, it is clear that the Western "Gewuqiongli" may have been understood as a study methodology with a high risk of flowing into a discipline lacking moral practice.
Scholars of the Seongho School, who encountered books for Western Learning written in Chinese, tried to preserve the moral and epistemological characteristics, which are the essence of the tradition of “investigation of things”. However, most Sungho School seem to break up with the “Gewuqiongli” of Zhu Xi's studies in a form that does not follow Zhu Xi's Commentaries of Great Learning. Shin Hudam, who first criticized Western Learning, understood the “Gewu” in the context of first edition of Great Learning before Zhu Xi`s re-editing, and those who were open to Western Learning such as Jeongsan Yi Byunghyu and Nokam Kwon Cheolshin also pointed out the weakness of the Zhu Xi`s view on “Gewu” and argued their theory in a similar way to Shin Hudam. They first tried to solve the problems inherent in the tradition of “investigation of things” itself as there was a possibility that traditional concept of “Gewu” could be misunderstood as a lack of moral practice. Their view on “Gewu” is an example of the dynamics of the late Joseon Dynasty's intellectual history, at least in that it makes us think about the direction of the problem consciousness that Sungho Yi Ik had while insisting on the multi-layered understanding for “Ge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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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천승 ( Lee Cheon-s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7-7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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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간재 전우의 문집간행을 둘러싼 문인 내부의 갈등을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유교지식인이 겪었던 정신적 갈등이란 측면에서 검토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총독부의 '인가(印可)'라는 검열과정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따라서 조선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으로 문집을 간행하는 것이 간재와 그 문인들 앞에 놓인 가장 큰 관건이자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전우는 생전에 전고와 후고로 나누어 어느 정도 문집간행 직전의 상태로 정리해 두었다. 미흡한 점은 보완의 여지를 남기면서 시대적 열망과 좌절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간재 사후에 문인들은 바로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스승의 문집간행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게 된다. 오진영을 주축으로 한 세력과 최병심등을 주축으로 한 문인집단의 충돌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오진영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입장에서 검토되었는데, 이 논문에서는 그반대편에 서있던 최병심을 중심으로 문집간행을 둘러싼 갈등의 쟁점을 재검토한 것이다.
오진영은 문집간행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과 상황을 내세우며 문집간행을 서둘렀다. 암울한 시대에 스승의 문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속히 발간하려는 의도가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편차의 구성이나 인쇄방법 등 문인내부의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은 문집발간의 추진은 문인내부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최병심은 편차의 재구성은 스승의 의도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더 나아가 일제 총독부의 검열과 삭제라는 인가과정 속에서 출간되는 문집이란 스승의 의리정신을 손상시키게 될 것이라는 주장하면서 독자적 문집간행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현행 간재문집은 오진영과 최병심을 중심으로 문인들의 갈등이 치열했고, 동일 저자의 서로 다른 3종의 문집이 있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에서 조속히 간행을 서둘렀던 것은 자칫 산실될지도 모르는 스승의 문집을 '전도(傳道)'의 사명감으로 유통보급하려는 노력이었다. 반대측에서는 스승의 유훈에 따라 총독부의 인가라는 굴욕을 피해 제대로 된 문집의 원형을 인출하려는 '정도(正道)'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최병심이 별도의 문집간행을 염두에 두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는 서로 다른 신념과 가치의 충돌 이전에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스승을 향한 문인들의 열정이 충돌한 사건이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onflicts between Ganjae's disciples with the publication of Ganjae's collection of writings. Focusing on Choi, Bueng-sim, in terms of the mental conflicts experienced by the Confucian schola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d period. During this period, the censorship process (印可) of the Japanese governor authorization was inevitable.
Therefore, publishing the collection of writings in a way that can properly continue the spirit of Joseon became the biggest problem and motives of conflicts between Ganjae Jeon, Wu's disciples. When Ganjae was alive, he divided his own collection of writings into former and latter grades. Writings organized in the state just before the publication. However, after Ganjae died, his disciples have a serious conflicts over the publication of their teacher's collection of writings, which they have longed for so much. There were conflicts between Oh, Jin-young and Choi, Byung-sim who were the representative of disciple groups. In the previous discussion, there was review for the perspective of Oh, Jin-young. However, in this paper, the issue of conflicts over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of writings were reviewed, centering on Choi, Byung-sim, who was standing on the opposite side.
Oh, Jin-young rushed to publish the collection of writings, based on the two reasons. Convenience and freedom without Japanese governor authorization for publishing the collection of writings at Jin Ju. His intention was to publish quickly so that the teacher's collection of writings would not disappeared in the dark periods. However, the progress that did not go through sufficient agreement within disciples, such as the composition of deviations and printing methods, were the reasons of conflicts. Choi, Byung-sim expressed his opinion that the reconstruction of the deviation could results in distorting the Jeon Wu's intention. Furthermore, he promoted his own independent publication of collection of writings. Claiming that Jeon Wu's collection of writings which published in the process of censorship and deletion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would damage the spirit of resistance to Japan.
As a result, Currently there are different series of Ganjae's collection of writings by Oh, Jin-young and Choi, Byung-sim. In the gloomy period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period, the collection of writings, the spiritual heritage of Joseon, remains with us as more valuable than just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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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윤경 ( Kim Yun-kyeo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11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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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조선 후기 '실' 담론의 추이와 함의 변화를 검토함으로써 전환기 유교 사상의 대응과 변화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 후기 '실' 담론 연구는 '실학'을 하나의 학술 사조로 이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근대의 실학 규정 내용을 재검토하고, 최근 실학 관련 개념사 연구를 발전적으로 확장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실' 담론의 변화양상은 일차적으로 정량적 분석, 즉 '실(實)'과 관련된 용어 사용 빈도의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실학(實學), 실심(實心), 실사(實事), 실용(實用), 실리(實理), 실행(實行), 실덕(實德), 실정(實政), 실효(實效), 실업(實業)을 '실' 담론의 주제어로 보고, 이 용어들이 국가기록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과 개인 문집에 사용된 빈도를 검토하였다. 숙종 대 이후 국가기록에서는 실심, 실사, 실용, 실리, 실효, 실업의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들은 시대 상황에 따라 의미 변화를 보였다. 이때 다른 용어에 비해 실학의 사용 빈도가 낮은 것은, 고종 연간에도 보수적인 주류 담론 내에서는 실학이 보편개념으로서 경학, 성리학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순종 연간 기록에서는 신학(新學)과 연동된 실학 개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기록에 나타난 '실' 담론의 분석과정에서 확인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각 개념의 용례가 상호 연동되기 때문에 교차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 문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문집에서는 '실' 담론을 주로 제기한 인물들을 학파별 · 시대별로 배열하고, 각 저술 내 '실' 담론의 사용 빈도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학파나 시대에 따라 주로 논의한 '실' 담론의 비중이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퇴·율 절충파나 우계 계열은 실심(實心)과 실사(實事)를, 성호학파와 북학파는 실사(實事)와 실용(實用)을,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는 실심(實心)과 실리(實理)를 중시한 것이다. 특히 실리(實理)의 중시는 정학(正學)이나 사학(邪學)이라는 용어 사용과 함께 후기 퇴계학파와 후기 율곡학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이들이 학파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대상-서구의 물질문명-에 대응하는 논리를 구축할 필요성에 절감했음을 드러낸다.
조선 후기 '실' 담론의 변화는 당대 보편이념인 도학(道學)이나 정학(正學)의 '수호' 혹은 '재정립'의 필요에 따라, 실사구시(實事求是), 정덕이용후생(正德利用厚生)과 같은 그 하위개념의 재해석과 함께 나타났다. 이는 전환기 유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며, 실학을 실(實) 중시의 학풍으로 본 관점이 단순히 자의적인 설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This paper attempts to understand the response and changes of Confucianism in the transition period by examining the trends and change of the implications of the discourse on 'Sil(實, being practical, true)' in the late Joseon Era. The study of 'Sil' discourse in the late Joseon era involves the reexamination of Jeong In-bo, one of the most important late Joseon scholars in Silhak studies' emphasis of Silhak (實學, practical learning, true learning) as a Sil-oriented academic tradition, as well as the expansion of the recent studies about Silhak-related conceptual history. The changes in 'Sil' discourse can be detected, primarily, by a quantitative analysis, that is, by analyzing the frequency of the use of 'Sil'-related terms. In this paper, for example, Silhak, Silsim(實心), Silsa(實事), Silyong(實用), Sili(實理), Silhaeng(實行), Silduk(實德), Sileong(實政) and Silup(實業) were considered as the key word of 'Sil' discourse, and the frequency of their use and appearance in both the national records, including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Records of the Royal Secretariat, and private literature were examined. After the reign of king Sukjong, the use of terms, Silsim, Silsa, Silyong, Silhyo, and Silup were significantly increased in the national archives and their meaning was changed according to the time. The low frequency of the words indicates that Silhak was not distinguished from the Scholar of Confucian Classics, or Neo-Confucianism, but taken as a general idea in the mainstream discourse until the end of king Gojong. Another important finding in the quantitative analysis of the national archives was that it is necessary to cross-check the use of those terms and words because they were used, interchangeably. This phenomenon was found in private literature, too. With private literature, this paper sorted out the people who had mostly suggested the 'Sil' discussion according to their school and time period, and then compared the frequency of the 'Sil' discourse in their writings. As a result, this study has found that the weight of 'Sil' discourse which used to be discussed most frequently was similar throughout the schools and the time period. The Toegye(退溪) and Yulgok(栗谷) Eclectics and the Ugye(牛溪) School emphasized Silsim and Silsa, while Seongho(星湖) and Bukhak(北學) Schools, respectively, focused on Silsim and Sili, and Toegye and Yulgok Schools, respectively, focused on Silsim and Sili. The emphasis on Sili was particularly noticeable in the late Toegye and Yulgok Schools, along with the terms Jeonghak(正學) and Sahak(邪學). It signifies that, despite the differences in their academic position, they all felt the pressing need to establish a theory to respond to the same object, the western materialism. The changes in the 'Sil' discourse in the late Joseon era appeared with the re-interpretation of its subordinate concepts, such as Silsagusi(實事求是) and Jeongduk-liyong-husaeng (正德利用厚生), as the need to defend or re-establish Dohak(道學) or Jeonghak(正學), the general ideas of the time, arose. The changes in the 'Sil' discourse in the late Joseon era reflected the shift of Confucianism paradigm in the transition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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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보승 ( Kang Bo-se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13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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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는 『소학』, 『가례』, 『심경』, 『근사록』, 사서, 오경의 순서로 공부할 것을 제시하였다. 사계가 이 순서에 따라 사서오경에 앞서 『가례』, 『심경』을 공부하도록 한 이유는 교육에 있어서 퇴계의 방식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사계는 교육에 있어서 '약례'를 과제로 설정하고 그 과제의 해결 방법을 퇴계에게서 찾았다. 따라서 성리설은 율곡을 표준으로 하고 수양은 퇴계를 본받는 것이 사계 이후 충청 유학의 교육 사상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계 교육 사상의 특징 중 하나는 『가례』 곧 예학의 중시이다. 사계가 교육 과정에서 강조한 『가례』는 그의 후학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조되었으며, 조선 후기 예학의 연구와 『가례』의 보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사계는 또한 서원의 입학자격에 신분의 제약을 두지 않음으로써 교육의 문호를 넓히고자 하였는데, 이는 영남 지역 서원과 다른 점으로 기호학파의 특징이면서 사계 이후 충청 지역 유학자들도 이를 준용하였다. 아울러 사계는 직(直)으로 교육 기조를 삼았고, 이 직(直)의 교육 사상을 우암을 통해 충청 유학에 전승하였다.
우암은 조선 성리학을 불의를 배격하고 인의(仁義)를 수호하는 강력한 춘추의리 사상으로 확립했다. 우암은 주자와 율곡의 성리학을 따르고 사계의 예학을 이어 예치(禮治)로 정치적 이상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직(直)의 심법을 수양과 행도(行道)의 요결로 삼았다. 직(直)으로 관통하는 우암의 교육 사상을 통해 그가 설정했던 이상적 인간상이 의리(義利), 시비(是非), 곡직(曲直), 정사(正邪)를 명백히 구분하여 옳음을 추구하는 인간임을 알 수 있다.
우암은 초학이 공부의 자세를 갖추는 데에는 『소학』과 『가례』를, 다음 단계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의리를 정밀히 탐구함에는 『심경』과 『근사록』를 기본적인 텍스트로 교육하였다. 우암의 교육 과정은 『가례』를 입두처(入頭處)로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치와 시비를 명확히 밝히는 우암의 교육 방침은 그의 직(直) 사상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치열하고 정밀한 공부를 통해 옳음으로 나아가는 송시열의 교육에서 직(直)은 도의(道義)를 의미한다. 우암은 경(敬)을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제시하였고, 또한 경으로 안을 곧게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우암은 경(敬)은 동정(動靜)을 관통하지만 언제나 지향점이 분명해야 하니, 경이 지향성을 갖게 하는 것이 곧 직(直)임을 말한다. 우암의 교육사상에서 경(敬)과 직(直)은 필수 불가결한 두 요소이며, 상호 보완, 상승(相乘)하는 관계이다.


Sagae set the task of education as 'Summarize by etiquette' and found a solution to the task in Togeye's education. Therefore, it is a characteristic of Sagae's educational idea that Neo-Confucianism is based on Yulgok and discipline is modeled after Togeye.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Sagae's educational thought is the emphasis on arts. Zhuxi's Family Rituals, which Sagae emphasized in the curriculum, were continuously emphasized by his students, and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study of art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generalization of Zhuxi's Family Rituals.
Sagae removed the barriers to education by not placing any status restrictions on the admission qualification of Seowon. And Sagae set the educational tone as 'honesty', and spread the educational idea of 'honesty' to 'Confucianism in Chungcheong Providence' through Wooam.
Wooam developed Joseon Neo-Confucianism as a powerful idea for justice. Wooam followed the Neo-Confucianism of Zhu Xi and Yulgok, and succeeded Sagae's idea to achieve political ideals with "Moral polytic." The philosophy of 'honesty' was used as the main point of discipline and practice. Wooam tried to cultivate people who seek justice through educational ideas that value 'honesty'.
Wooam argued that people who first started studying should follow Sohak and Zhuxi's Family Rituals when they have a mental attitude for studying. Simkyung and Kunsarok were used as important textbooks when controlling their minds and clearly exploring justice and interests. Wooam saw that Zhuxi's Family Rituals was a common gateway for those who first started learning.
Wooam's educational policy, which clarifies the reason and the right and wrong, is closely related to his 'honesty' idea. Honesty means moral in Song Si-yeol's education, which pursues justice through intense and precise study. Wooam presented Kyung(敬)as a method of cultivation, and emphasized that the mind should be right with respect. Wooam said that Kyung and Honesty are the most important elements of education and have a complementary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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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영성 ( Choi Young-s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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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성리학계의 이단자'로 불렸던 농산(農山) 신득구(申得求: 1850∼1900)는 『천설(天說)』·『천인변(天人辨)』 두 저술을 통해 하늘에도 사사로움과 악한 모습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늘을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보았다. 이것은 현대의 어떤 문제와 연결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이 글의 목표가 있다. 최고 지도자인 임금의 마음을 바로 잡는[格君心] 문제, 그리고 이 시대의 화두인 '정의'와 '공정(公正)'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였다.
농산은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불공정-불평등-부도덕 등 부조리한 현실 문제와 각종 선악의 문제를 운명적 결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원인의 최종 귀착점을 하늘로 보았다. 하늘에도 사사로움과 악이 있다[天有私惡]고 외치는 농산에게 공정(公正: 公平)은 곧 사사로움이 없는 것[無私]이었다. 사사로움은 곧 악이었다. 그는 '인류의 역사는 공정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은근히 돌려서 하는 말하였다. 농산은 이런 생각을 자신의 철학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주자의 말에 다 들어 있는 내용이라고 보았다. 주자를 이끌어 '공정 사회'를 외친 이면에서 농산이 사실상 성리학-유학을 개신(改新)하려 했음을 읽을 수 있다.
'공정한 사회'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인간', '각성된 인간'이 요구된다. 공정한 사회와 새로운 인간상의 추구, 이것이 농산설의 결정체다. 그 현대적 의의는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Late in the Joseon Dynasty, Nongsan Shin Deuk-gu (申得求: 1850∼1900) who was called 'a heretic of Neo-Confucianism field' argued that Heaven also had its own personality and badness through his two books: CheonSeol (天說) and CheonInByeon (天人辨). He thought of Heaven to be 'an imperfect existence'. What kinds of modern issues can be linked to such argument? This article is aimed at looking into such linkage. This study is, therefore, focused on the issue of GyeokGunSim (格君心: correcting the minds of kings, the highest leaders) and the issues of justice and fairness.
Nongsan did not think that destiny would cause such unreasonable issues as unfairness, inequality and immorality and a variety of issues of goodness and badness that happen every place in the real human society. He thought that such issues were caused primarily by Heaven. To Nongsan arguing that Heaven also had its own personality and badness, justice and fairness were based on non-personality. That is, personality itself was a badness. Behind such argument of his, he wanted to say 'Human history is a process of going toward justice and fairness. Nongsan, however, did not consider such argument as his philosophy. He thought that such argument was already in the words spoken by Zhu Xi. Such argument for 'a fair society' quoting Zhu Xi, therefore, can be read that Nongsan tried to renew Neo-Confucianism and Confucianism.
'A justice and fairness based society' is what human is making. A justice and fairness based society requires 'waken people' and 'enlightened people'. It is the essence of Nongsan's argument to go for a justice and fairness based society and a new human character, which the modern implication of such argument of his must start to be sought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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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지준호 ( Chi Chun-ho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19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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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덕(德) 개념은 여러 비유와 수식어를 통하여 진술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유학은 도덕의 철학, 특히 행위 규범의 철학으로 여겨지듯이 덕을 실천하는 다양한 방법과 방법적 원리들에 관한 구조는 비교적 치밀하다.
덕성(德性)과 덕행(德行)에 관한 유학의 다양한 논의는 도(道)를 이해하고 덕(德)을 함양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사회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으로, 바로 유학이 도덕을 기초로 하여 이를 정치의 문제로 확장해온 역사이자 발전과정이기도 하다.
덕(德)은 공부의 측면에서 논한 것으로, 도(道)를 실행하여 실제로 내 마음에 얻은 것이다. 『논어』의 덕(德)은 대덕(大德)과 천덕(天德)을 지향점으로 하여 덕성과 덕행을 관통하고 있으며, 덕행은 덕성의 실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논어』의 실천적 덕교육은 덕성의 자각과 덕행의 이행과 관련한 덕의 실천 내용과 방법 등을 덕목 위주로 논의할 수 있다.
덕(德)을 체득하여 덕행(德行)을 실천한 인물이 바로 군자(君子)이며,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문을 연마하여야 한다. 그리고 학문을 통하여 덕을 체득하였으면 덕을 더 넓혀야하며, 덕을 더 넓히는 과정에서 이웃이 있게 되어 궁극적으로 도덕정치가 실현되는 이상사회가 건립된다.


The concept of virtue of Confucianism contains various meanings because it is stated through various metaphors and modifiers. However, as Confucianism is considered a philosophy of morality, especially a philosophy of behavioral norms, the structure of various methods and methodological principles for practicing virtue is relatively dense.
Confucianism's various discussions on the character of virtue and behavior of virtue aimed at understanding morality(Tao) and cultivating virtue to promote concrete practice in the real world, and it is also the history and development process in which Confucianism has expanded it to a political problem based on morality.
Virtue is discussed in terms of study, and it is actually gained in my mind by practicing morality(Tao). The virtue of the Analects is aimed at the great virtue and the haven's virtue, penetrating the character of virtue and behavior of virtue, and the behavior of virtue is also the realization of the character of virtue. Therefore, the practical virtue education of the Analects can discuss the contents and methods of virtue related to the awareness of the character of virtue and the implementation of the behavior of virtue.
Wise man is the person who learned virtue and practiced virtue, and in order to become a wise man, you must cultivate your studies. In addition, if you have learned virtue through learning, virtue should be further expanded, and in the process of expanding virtue, there will be neighbors, and an ideal society where morality politics will ultimately be realized is esta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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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진명 ( Lee Jin-my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2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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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중국 5·4 신문화운동 시기에 반공자운동, 신여성운동, 백화문 운동을 이끌었던 중국근대기의 대표적 사상가 오우(吳虞, 1874-1949)의 사상을 통독하여 오우 사상의 지형도를 개괄한 후 그의 사상이 남겼던 득과 실을 논의했다.
오우는 진독수(陳獨秀, 1879-1942), 노신(魯迅, 1881-1936), 호적(胡適, 1891-1962)과 함께 5·4 신문화운동을 전개한 주축이다. 오우가 유교의 예교와 전제군주제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그것을 비판한 연유에 원세개(袁世凱, 1859-1916)가 공자를 숭상한다는 슬로건으로 복벽(復辟)을 노린 실태가 자리한다. 오우는 장기간에 걸쳐 중국민중의 뇌리를 지배하여 민중이 새로운 세기로 진출하는 것을 가로막는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했으며, 그는 그것이 가부장으로서의 군주, 군주로서 가부장 관념을 정당화시켜준 유가윤리의 뿌리 깊은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오우의 반공비유 사상은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오우는 유가와 군주제에서 효(孝)가 중핵이 되어 가국일체(家國一體)의 효과를 얻으며, 그 중심 개념에 충(忠), 예(禮), 형(刑) 등 요소가 결합한다고 파악한다. 이 네 가지 요소야말로 봉건군주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것이다. 이 요소들은 화학적 결합을 이루어 부지불식간에 사람들로 하여금 우효(愚孝)와 위효(僞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우와 신문화운동 진영의 백화문 운동은 청년, 여성, 비(非)지성인 그룹의 독서역량의 향상과 문맹률 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반면 오우의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 중국근세의 병폐가 마치 공자의 도리에서 연유했다고 보는 반공비유(反孔非儒) 사상은 유가의 본질을 흐렸으며, 그것의 가치를 왜곡하여 폄훼한 측면이 적지 않다. 오우의 사상이 실제로 파급력이 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우의 반유가 사상이 유학의 맹점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오히려 그곳으로부터 유학의 내재적 생명력이 드러났다.


After reading through the thoughts of Wu Yu(吳虞, 1874-1949), a representative thinker of modern China who led the Anti-Confucianism movement, the New Women's Movement, and the Baihuawen Movement during the May Fourth Movement in China, I outline the topographical map of the Wu Yu's thoughts. We would like to discuss the pros and cons of this.
Wu Yu, along with Chen Duxiu(陳獨秀, 1879-1942), Lu Xun(魯迅, 1881-1936), and Hu Shi(胡適, 1891-1962), were the main pillars of the May Fourth Movement. For the reason Wu Yu criticized the relationship between Confucianism and the tyranny of feudalism, there is a situation where Yuan Shikai(袁世凱, 1859-1916) was aiming for a fortune with the slogan that he worshiped Confucius. For a long time, Wu Yu had been contemplating what was the real thing that ruled the minds of the Chinese people and prevented them from advancing into a new century, and he wrote in the deep-rooted history of Confucian ethics that justified the idea of patriarchal monarchs and monarchs like father, was judged to have originated. However, Wu Yu's Anti-Confucianism has a unique structure. Wu Yu understands that filial piety(孝) becomes the core of Confucianism and the monarchy and achieves the effect of unity of the nation(family country), and that elements such as loyalty(忠), rite(禮), and punishment(刑) are combined in the central concept. These four elements are the pillars of the feudal monarchy. It is said that these elements form a chemical bond, which unwittingly leads people to silly-filial piety(愚孝) and pseudo-filial piety(僞孝).
The Baihuawen Movement of the May Fourth Movement had a positive effect on the improvement of reading ability and the reduction of illiteracy among young people, women, and non-intelligent groups. In particular, the repercussions of raising the awareness of the new female class spread beyond Chengdu to Shanghai, Tianjin, Changsha, Beijing, Nanjing, Hangzhou, and Guangzhou, and according to the evaluation of Hu Shi, the aftermath continued until 1938. Wu Yu's Baihuawen model was accepted by the next generation of authors, and it became the basis for the young school scholars to introduce Western culture and new ideas relatively easily. However, the negative impact of Wu Yu is also formidable. Although Wu Yu's thought provided a new perspective on the scriptures, it cannot be said to have been beneficial from a long-term perspective. Wu Yu's view that the ills of modern China stemmed from the doctrine of Confucius, and that the logic of combining the family system and the monarchy created by Confucius actively dominated the minds of the people over a long period of time had a great ripple effect. The atmosphere in which Wu Yu sold the traditional ideology represented by the Confucianism was used in the ideological censorship guidelines of the author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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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재경 ( Kim Jack-young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1-24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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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인류세 논의가 지닌 유학적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인류세를 유학적 관점에서 천도(天道)가 무너진 시대라고 규정한다. 이어서 인류세라는 용어의 등장과 대체 용어 논란, 인류세의 시작 시기 등에 대한 학계의 논의를 소개한다. 또 인류세 논의의 두 축인 탈인간중심주의와 새로운 인간중심주의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기후 재앙의 시대인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를 약탈한 결과물이다. 지구자율시스템 붕괴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지만,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몫이다. 다행히 유학적 사유는 인간을 하늘과 땅과 더불어 만물의 화육에 참여하는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은 인간이 지구의 파트너(與天地參)로서 만물화육의 책임을 떠맡는(贊天地化育) 의무 수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과거 서양의 이분법적 자연관에서 비롯된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다. 유학적시야에서 새로운 인간중심주의를 모색하고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이 의무 수행은 인류세의 일상 속에서 어느 것이 지구를 살리는 천리가 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에서 행하는 천리·인욕 구별하기의 항상성(至誠)은 하늘과 땅을 비롯한 자연으로서의 지구(비인간 세계)의 본성을 구현하는 일이다. 이 논문은 그 일이 지구가 다시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저절로 그러한 자율 시스템에 의해 만물을 생성하도록 돕는(參贊)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I have a dream! This thesis starts from the problem awareness, 'What is the Confucian meaning of the Anthropocene discussion?' To solve this problem, first of all, the Anthropocene is defined as the era in which the Heavenly Way collapsed from a Confucian point of view. Next, this paper introduces academic discussions about the emergence of the term Anthropocene, the controversy over alternative terms, and the beginning of the Anthropocene. It also examines the implications of post-anthropocentrism and new anthropocentrism, two axes of the Anthropocene discussion.
The Anthropocene, an era of climate catastrophe, is the result of human predation of the Earth. Humans are responsible for the collapse of the Earth's autonomous system, but it is ultimately up to humans to restore it. Fortunately, Confucian thinking places humans as partners in their participation in the nurturing of all things, along with heaven and earth.
Therefore, this thesis asserts that human beings are responsible for taking part in the nurture of all things as partners of the earth. This position is not anthropocentrism derived from the dichotomous view of nature in the past in the West. It is an attempt to seek and secure a new anthropocentrism from a Confucian perspective.
The fulfillment of this duty begins with knowing and putting into practice which is the heavenly principle to save the earth in the daily life of the Anthropocene. The homeostasis of distinguishing between the heavenly and the humanistic in everyday life is to embody the nature of the earth (the non-human world) as nature, including the sky and the earth. This paper argues that it is a shortcut to help the Earth create all things by such an autonomous system, while maintaining homeostasi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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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영자 ( Lee Young-ja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9-28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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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22년 10월까지 연구된 충청유학(철학계)의 인물별, 주제별 연구성과물 600여 편을 분석해 보고, 향후 충청유학 연구에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충청에 연고를 둔 유학자 중 가장 많이 연구된 유학자는 한원진(65편), 홍대용(60편), 송시열(56편), 임성주(48편), 윤증(46편), 전우(45편) 순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 연구의 특징은 주로 2000년대 들어 연구가 급증하다 2010년대 이후 서서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다만 한원진과 전우는 2010년대 이후에 연구가 급증하고 있어 향후에도 연구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연구현황 분석을 통해 볼 때 충청유학의 향후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진한 연구 분야와 미개척 연구 분야의 집중 연구의 필요성이다. 인물별 연구성과는 위 6인에 집중되어 있고, 그 외 인물들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1~20여 편의 성과물이 전부여서 편향적인 연구 경향이 강하다. 향후에는 미진한 인물의 연구와 더불어 철학계 논문이 한 편도 존재하지 않는 충청 유림도 발굴하여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신진연구인력 양산의 필요성이다. 충청유학의 연구성과는 1990~2000년대 절정을 이루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연구 경향의 배후에는 충청유학 연구자의 고령화와 관련이 깊다. 이에 신진연구연력을 양산할 필요가 있다.
셋째, 충청유학에 대한 관심 및 지원 증대의 필요성이다. 이에 충청유학을 꾸준히 발굴, 연구할 수 있도록 지자체, 연구원, 재단 등의 연구비지원, 안정된 일자리 제공 등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꾸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충청유학의 현대화 및 융복합 연구의 필요성이다. 최근 들어 충청유학에도 예술적 측면이나, 문화콘텐츠, 인성교육과의 활용방안 등 다양한 측면과 융복합하여 연구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융복합 방식의 접목과 디지털 방식의 다양한 형태의 연구성과물이 양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충청유학의 보편화와 세계화로, 충청유학의 글로컬리즘(glocalism) 완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검토하고, 세계에 충청유학을 소개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더불어 일반인들도 함께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보편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각도의 활용방안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nalyze more than 600 research status by person and subject until October 2022, and subject with the focus on the philosophic theses regarding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and contemplate on what is the perspective required in the future perspective on the studies of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As a result, from the Confucius scholars who had their basis in Chungcheong up to August 2022, the Confucius scholars who studies the most are in the sequence of Han Won-jin (65 works), Hong Dae-yong (60 works), Song Si-yeol (56 works), Im Seong-joo (48 works), Yoon Jeung (46 works), and Jeon Woo (45 works). In addition, the characteristics of these studies have drastically increased mainly in the 2000s but displayed gradual decrease after the 2010s. However, the studies are drastically increased after 2010s for Han Won-jin and Jeon Woo that the study is expected to be concentrated.
Considering through the analysis on the status of such studies, the future perspective on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is shown as follows.
First, it is the need of concentrated studies in the insufficient study fields and un-pioneered study fields. The study outcome for each person is focused on the 6 above-named persons and the studies on these personnel would be the outcome of 1~20 volumes in general that there is a strong tendency of inclining studies. In the future, the study would be reasonable to discover the scholars in Chungcheong for not having any single thesis for philosophy existing.
Second, it is the need of producing new and advanced personnel on its studies. The outcome of studies on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was peaked in 1990~2000s, but it displayed the trend of gradual decrease after the 2010s. In the background of such study tendency, it is profoundly related to the high age of researchers for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Therefore, it is required for producing new study personnel in the field.
Third, it is the need for increase in interests and support on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Therefore, it is considered to steadily discover and study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with the progress of continuous studies under the stable atmosphere by providing subsidies on research expenses by local government, institutions, foundations and others as well as providing steady jobs and so forth.
Fourth, it is the need for studies on modernization and convergence and integration of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In recent days, studies have been engaged in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with respect to diversified aspects of artistic approach, cultural contents as well as schemes to facilitate with humanities education in addition to convergence and integration thereof, but such efforts have not been sufficient. It requires endeavors to come up with diverse types of study outcomes in digital method along with the linkage of converged and integrated methods required in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era.
And fifth, there is a need for generalization and globalization of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for completing the glocalism of the Chungcheon Confucianism. For this purpose, it requires the review under the global historic perspective and its works to introduce the Chungcheong Confucianism to the world. Furthermore, it also requires to generalize the same for the general public to share and facilitate together. For this purpose, it is deemed to require steady studies on the scheme of multi-dimensional facil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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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영민 ( Song Young-min )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연구회 간행물 : 한국철학논집 75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5-31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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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교수텍스트는 도덕과 교육과정의 내용 요소를 교수하기 위해 교사가 생산한 텍스트이다. 텍스트를 생산하기 위해 교사는 교육과정을 해석하여 이해하고, 이해를 구체화하기 위한 도덕적 사상(事狀)과 방법을 통합하여 교수학습 활동을 선정하고, 선정한 활동이 전체적으로 내용 요소를 표상하도록 구조화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의사소통에 합당한 대화, 대화를 통한 해석 가능성, 해석 활동 참여의 촉진을 고려한다. 따라서 도덕과 교수텍스트는 도덕과 내용 요소를 주제로 하는 의사소통 행위에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해석 가능한 교수학습을 수행하기 위해 도덕적 사상을 소재로 구체화한 표현이다. 구체적 표현으로서 도덕과 교수텍스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내용 요소의 학습과정에서 경험한 도덕적 변화가 지속되는 도덕성의 함양이다. 도덕성을 함양하여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도덕과 교육텍스트는 교사와 학생을 매개한다. 교수텍스트라는 매개체의 산출 시점에서 교사는 저자이며 학생은 독자이지만, 이 텍스트가 구현되는 수업에서는 교사와 학생은 모두 참여자이다. 도덕과수업에 참여하여 교수텍스트를 실연(實演)하는 과정에서 학생은 도덕적 존재로의 변화, 도덕성의 함양이라는 변용을 경험한다. 도덕과 교수텍스트는 이러한 교수학습 경험이 가능하도록 대화적 상황으로 내용 요소를 구조화하고, 도덕적 의미 발생이 가능한 해석체로서 기능하고, 수업이라는 실연을 통해 도덕적 변화를 의도하는 텍스트이다. 도덕과 교수텍스트에서 대화의 구조화, 해석체의 기능, 실연의 전제라는 성격은 교사와 학생의 매개체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Teaching text for moral lesson is a text produced by a teacher to teach the content elements of the moral curriculum. In order to produce text, teachers interpret and understand the curriculum, integrate moral thoughts and methods to embody understanding, select teaching and learning activities, and structure the selected activities to represent content elements as a whole. In this process, teachers also consider dialogue suitable for communication, interpretability through dialogue, and promotion of participation in interpretation activities. Teaching text for moral lesson is an expression that embodies moral ideas in order for students to actively participate in communication activities under the theme of content elements and to conduct interpretable teaching and learning. As a specific expression, the ultimate goal of teaching text for moral lesson is to cultivate morality in which moral changes experienced in the learning process of content elements persist for learners. Teaching text for moral lesson is a medium of teaching and learning to cultivate morality and become a more moral person. At the time of calculation of the medium of instructional text, the teacher is the writer and the students are the reader, but in the class where this text is implemented, both the teacher and the students are participants. In the process of participating in the class and demonstrating the teaching text, students experience the transformation of moral existence and cultivation of morality. Teaching text for moral lesson is a text that structures content elements in a conversational situation to enable this teaching and learning experience, functions as an interpreter capable of generating moral meaning, and intends to change moral through a demonstration of instruction. In the teaching text for moral lesson, the structure of the conversation, the function of the interpreter, and the intention of the performance are necessary conditions for becoming a medium for teachers and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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