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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 Manuscripts

  • : 한국고문서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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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3218
  • : 2671-8081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1)~61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10
고문서연구
61권0호(2022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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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심재권 ( Shim Jae-kwo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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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文書'의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들은 꾸준히 생성 발전되어 왔다. 대표적 단어로는 文, 書, 典, 簿, 牘, 牒, 狀, 冊, 卷, 券, 籍, 案 등 다양한데, 이들은 처음에는 각각 단음절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유사한 다른 단음절과 결합되면서 많은 파생어가 생겨났다. 이 연구의 대상인 '牒'도 마찬가지로 단음절에서 시작하여 公牒, 文牒, 牒案, 券牒, 譜牒, 職牒, 度牒, 平牒, 移牒, 故牒, 牒呈 등 많은 파생어를 낳았다.
'첩'은 중국 역대 왕조에서 그 역사가 오래된 文種 중 하나로, 거의 모든 왕조에 걸쳐 사용되었고, 그 용도나 행문방향에서도 유연성이 매우 높았던 문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던 문서이다. 문헌상 '첩'은 삼국시대부터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는 중요한 문서로 자리 잡았고, 용도 또한 매우 다양했다. 특히 '첩'은 고려에서 송ㆍ요ㆍ금ㆍ원ㆍ명 등 중국의 많은 왕조들과 대외적ㆍ외교적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문서로 사용되었고, 국내적으로도 관부문서로서 뿐만 아니라 각종 증명서나 증표 등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첩'은 협의의 문서로서 뿐만 아니라 광의의 문서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었으나, 기존의 연구들은 특정 영역이나 시기에 초점을 두어 연구함으로써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파악과 이해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첩'의 유래와 용도의 활용 및 변천과정 등을 분석하여 '첩'에 대한 종합적ㆍ체계적인 이해를 도모코자 하였다.


Historically, Chinese characters with names that imply the meaning of 'documents' have been steadily created and developed. And Chinese characters, which mean documents, usually began as monosyllables, but they were combined with other monosyllables that had similar meanings. As a result, many derivatives related to documents have emerged. The word 'Chup(牒)' that will be covered in this study also started with a single syllable and gave rise to many derivatives such as 'GongChup(公牒)', 'MunChup(文牒)', 'PyeongChup(平牒)', 'ChupAn(牒案)', 'YiChup(移牒)', 'GoChup(故牒)', 'BoChup(譜牒)' and so on. And 'Chup' has a very long history in the Chinese dynasty and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documents used in almost all dynasties, and was used historically in Korea from ancient times to the late Joseon Dynasty. In Korea, the term 'Chup' has already been discovered since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Korea. In addition, the 'Chup' were used for various purposes, and in the Goryeo Dynasty, they became an important type of document. In particular, Goryeo was a medieval dynasty that maintained its relationship with Song, Ryo, Geum, Yuan, and Ming dynasties in China.
Goryeo used 'Chup' as a diplomatic document with the Chinese Dynasty, and also as a government document domestically. In this way, 'Chup' was used as a document in a narrow sense, and it also served as a broad document such as books and certificates. Although it has been used in various areas, existing studies focused on specific areas, so there is a limit to the comprehensive and systematic understanding of 'Chup'. Therefore, this study attempted to promote a comprehensive systematic understanding of the documents by analyzing the origin and use of 'Chup', and further analyzed how it introduced from China was used in Korea's previous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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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전영근 ( Jeon Youngkeu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9-5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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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21년 처음 공개된 세조의 契文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세조는 즉위한지 10년째 되던 해 수도 한복판에 원각사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4월에 낙성을 축하하는 경찬회를 열었다. 이 경찬회에는 128인의 승려가 초대되어 한글로 번역된 원각경을 열람했으며 이들 외에도 2만 여명의 승려가 모였다. 행사는 5일 동안 치러졌고 마지막 날인 4월 11일에 참여자들에게 契文이 발급되었다.
이 계문은 낱장의 종이에 목판으로 인쇄된 문서이나, 일반적인 인쇄 문서의 특성과 달리 一回에 한하여 다수에게 발급되었다. 서체는 乙亥字와 유사하며 테두리는 龍紋과 雲紋으로 장식되어 있고 세조의 서명 부분에는 꽃비의 문양이 있다. 이러한 문양들은 세조의 권위와 원각사에서 일어난 神異를 표상하고 있다. 본 문서는 19세기에 간행된 『淸權輯遺』에 全文이 수록되어 있고 「金剛山乾鳳寺事蹟」에 본문이 전사되어 있다. 20세기 초 이능화와 다카하시 도루는 두 문헌을 근거로 하여 동 문서를 誡文 또는 發願文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들 문헌들의 문자를 대조한 결과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인 『청권집유』와 본 계문의 문자가 일치하고 나머지 문헌들은 차이를 보여 본 문서가 원형일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계문의 印跡은 御印으로 볼 수 없다. 조선시대 사찰에서 제작된 인장이거나 전래과정에서 위조되었을 수도 있어 차후의 연구를 필요로 한다. 이 문서는 조선 초기 국왕이 종교행사에 사용한 문서로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형태와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당시 불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This paper is a review of King Sejo(世祖)'s Gyemun(契文; bonding document) first released in 2021. In the 10th year of King Sejo's reign, the king began to build Wongak Temple(圓覺寺) in the middle of the capital, and in April of the following year, a Gyeongchanhoe(慶讚會; A Buddhist ceremony for celebrating the completion of a temple) was held to celebrate its completion. 128 monks were invited to this ceremony to read the Sutra of Great Right Capacious Consummate Enlightenment of the Ultimate Tenet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which was translated into Korean, and about 20,000 monks gathered. The event was held for 5 days, and on the last day, April 11, Gyemun was issued to the participants.
This Gyemun was printed on a single sheet of paper with a woodblock, but unlike ordinary printed documents, it was issued to a large number of people only for one time. The typeface is similar to Eulhae-ja (乙亥字), and the border is decorated with dragons and cloud pattern, and there is a flower rain pattern on the part of King Sejo's signature. These patterns represent the authority of King Sejo and the miraclulous events at Wongak Temple.
The entire text of this document is included in Cheonggwon-jipyu (淸權輯遺) published in the 19th century, and the text is transcribed in Geumgangsan-geonbongsa-sajeok (金剛山乾鳳寺事蹟).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Lee Neung-hwa(李能和) and Takahashi Tooru(高橋亨) introduced this document as Gyemun (誡文; commandment letter) or Balwonmun (發願文, invocation letter) based on the two books. As a result of comparing the texts of these documents, it was confirmed that the earliest records, Cheonggwon-jipyu and this Gyemun were identical, confirming the possibility that this document was the original one. The Seal(印跡) in this Gyemun cannot be regarded as the seal of King(御印). It may be a seal made at a temple in the Joseon Dynasty, or it may have been forged during transmission, so further research is required. This document is meaningful because it has an unprecedented style and form as a document used by the king for religious event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it is valuable to know about the Buddhism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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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형중 ( Lee Hyeongjung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7-7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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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후기 草謄錄의 존재를 밝히고, 그 성격과 사료적 가치를 고찰해보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먼저 實錄과 承政院日記 등 조선의 관찬사료상에서 확인되는 草謄錄의 존재와 그 역할을 살펴보고, 현전하는 조선 후기 실물 草謄錄을 분석하여 草謄錄의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草謄錄은 등록의 草本으로서 등록과 동일하게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생산·활용되었으며, 정본 謄錄의 부재 시에는 이를 갈음하는 역할도 수행한 기록물이다. 다만 草謄錄은 정본 등록물의 草本이기에 그 보존과 관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구성과 내용 또한 엄격하게 통제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전하는 조선 후기 草謄錄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서체나 서식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草謄錄 내에 직접 교정사항을 표기하여 이를 正本 편찬에 참고토록 한 점도 특기할만하다.
그러나 草謄錄의 가치는 謄錄의 草本이라는 것에만 있지 않다. 草謄錄은 일반적인 기록물의 草本과 달리 공식적으로 그 작성과 활용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謄錄이 원본 문서를 베껴 적어 넣는 수준의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즉 草謄錄은 조선 후기의 謄錄체계 一端을 고찰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자 동시에 조선에서 謄錄이 공적인 영역에서 일정한 지위를 지닌 기록이었음을 증빙해 줄 수 있는 史料가 된다 하겠다.


This paper is written to discover the existence of Cho-Deungrok(草謄錄, Drafts of public archives in Joseon dynasty's administration) in the late Joseon and to examine its characteristics and historical value. For this purpose, We reviewed the existence and role of Cho-Deungrok which in historical materials such as Sillok(實錄, The Annals of the Joseon) and analyzed several existing Cho-Deungrok in the late Joseon.
Cho-Deungrok were a sort of draft of Deungrok. These drafts were able to use in the similar way to the Deungrok. It were even used as a substitute of Deungrok if those were absence. Cho-Deungrok were almost not kept and managed, However, Because they were considered as just draft. Most of the extant Cho-Deungrok were written regardless of standardized format or font.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corrections were directly written in Cho-Deungrok, so that it could be reffered to in the creation of the revised Deungrok.
The value of Cho-Deungrok are not only as drafts of Deungrok. Cho-Deungrok were made and used officially which different from other drafts of general records. This situation proves that Deungrok were not a mere archives at the level of just copying and writing original documents. In other words, Cho-Deungrok are a means to examine a part of Deungrok System which is the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 system of late Joseon, and they can be historical materials showing that Deungrok are archives with a certain status in the public archives system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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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건우 ( Kim Kun Woo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9-9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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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58년(효종 9) 민정중(1628∼1692)의 영남 암행어사 서계·별단을 통해 암행어사 활동과 그 과정에서 제안한 安民策과 지방군 개선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당시 젊은 관료였던 민정중은 효종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호남·호서 지역에 이어 영남 지역까지 암행어사 직무를 수행하였다. 민정중은 효종 연간에 세 차례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파견되었다는 점은 그의 뛰어난 실무수행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본고의 주요 자료는 문집 『老峯集』에 수록된 서계·별단이다. 원문서가 아니고 개인 문집에 수록된 암행어사 서계·별단이다. 현재 암행어사 서계·별단에 대한 선행연구가 대부분 정조와 고종 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민정중의 서계·별단은 시기상 효종 대에 해당하기에 매우 이른 시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효종이 민정중을 영남 암행어사로 파견된 주된 목적이 지방군 운영과 營將制의 실태, 현지 廉察이었다. 암행어사 민정중은 지방군의 증강에 따른 여러 문제점과 民弊를 거론하며 개선안을 제시하였다. 개선안의 기본 방향은 균등부과와 부담, 재분배를 통한 安民이었다. 영남 암행어사 서계·별단에 보이는 2개월 동안 민정중의 활동은 실무 능력과 정치적 감각을 겸비한 조선 관료의 典範을 보여주고 있다. 『노봉집』 수록 암행어사 서계·별단은 효종 연간 민정중의 암행어사 활동과 아울러 당시 영남 지역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explores the activities of Min Jeong-Joong(閔鼎重 1628-1692) in Gyeongsang-do in 1658 as a secret royal inspector and the measures he proposed in the process to stabilize the lives of the people. A young government official at the time, Min Jeong-Joong received special trust from King Hyojong and performed duties as a secret royal inspector in Jeolla-do and Chungcheong-do areas, which were followed by the same duties in Gyeongsang-do r egion as well. The fact that he was appointed and dispatched from the age of 25 to 31 as a secret royal inspector three times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is closely related to his sincerity and competence in performing duties. The main purpose of the secret royal inspector dispatched to Gyeongsang-do region was to inspect the conditions of the local military and the yeongjang system(營將制) during the northern expedition policy of Hyojong that was implemented at the time, and to inspect the conditions of local people's lives. In the report to the king Min Jeong-Joong pointed out various problems and inconveniences in the lives of the people and suggested plans to improve them. The basic direction of the improvement plans proposed by him was to stabilize the lives of the people through equal taxation and redistribution. Through his activities as a secret royal inspector in the Yeongnam region for two months, Min Jeong-Joong showed a typical example of a Joseon Dynasty government official with an excellent practical sense and s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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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리나라 대표 국학자료 소장기관 4곳의 고문서 소장 현황과 문화적 활용에 대한 제언을 다루었다. 한류(韓流) 열풍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한 이 시점에 전근대 고문서의 역할과 그 효능감을 찾아보고자 시작한 연구이다. 이른 감은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와 지역화'가 각광 받는 지금이야말로 전통문화의 보고인 고문헌 자료의 다양한 활용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유일성과 고유성, 다양성과 복합성을 내포한 고문서의 무한한 잠재력은 한류의 한 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고문서의 문화적 잠재력을 파악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전근대 국학자료 소장기관의 자료 정리 현 황과 디지털 서비스를 위한 기반 구축 현황, 고문서의 일반적 활용 양상을 일별하고,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국내외적ㆍ탈공간적으로 이용 가능한 문화적 활용을 제언한다.
국학자료 수집 선발 기관의 자료 정리 현황을 고찰하면 후발 기관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후발 기관들은 선발 기관들이 초창기 자료를 조사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오류를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문서의 다양한 활용 양상을 통해 세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유구한 역사와 스토리를 담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국내외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논문이 '고문헌의 한류'라는 거대한 파도의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This paper dealt with the current status of collection of ancient documents and suggestions on cultural utilization of four representative Korean academic data collection institutions in Korea. At a time when the world is buzzing due to the Korean Wave, the study began to find out the role and efficacy of pre-modern ancient books. Although it is early, I think it is time to think about the various uses of ancient materials, the treasure trove of traditional culture, as “globalization and localization” is in the spotlight around the world. In particular, the infinite potential of old documents containing uniqueness, uniqueness, diversity and complexity will be able to form an axis of the Korean Wave.
First, as a prerequisite for grasping the cultural potential of old documents, the current status of data organization of former and contemporary Korean academic institutions, the establishment of a foundation for digital services, and the general use of old documents are reviewed, and cultural utilization is suggested.
Considering the data organization status of the national data collection and selection agency, latecomers will be able to suggest the direction of the future, which will help them avoid or minimize various errors that the selection agencies experienced in investigating, collecting, and organizing early data. In addition, it is believed that through various aspects of the use of old documents, it will be able to draw a favorable impression of our traditional cultural heritage, which contains a long history and story regardless of generation and country, and arouse interest at home and abroad. It is hoped that this paper will be a small starting point for the huge wave of “Korean Wave of Ancient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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