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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2)~87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053
동방한문학
87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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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한집(破閑集)』 소재 시의 전고 활용과 형상화에 관한 고찰

저자 : 辛泳周 ( Shin Young-j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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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파한집』에 나타난 이인로의 전고 활용 방식을 추적한 것이다.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시 비평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시문학 비평에 큰 공을 세웠다. 실제로 이인로가 제시한 비평의 견해가 『파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의 비평에 적용된 여러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가 전고 활용이다. 옛 전고를 정교하게 사용하여 완성도 높은 결구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한시 창작에서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를 한시 비평의 핵심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 논문은 이에 주목하여 '용사'를 분석 도구로 삼아, 이인로의 『파한집』을 살펴보았다. 2장 “이인로의 用事論과 琢句論”에서 이인로의 전고 활용에 관한 견해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3장 “『파한집』 소재 시의 전고 활용과 형상화 방식”에서 『파한집』 소재 시의 전고를 추적하여 전고의 유형과 성격을 “전고를 활용한 정교한 시어 구사”, “전고를 활용한 수사적 이미지와 관념의 형상화”, “전고를 활용한 서정과 서사의 구성”, “여러 전고를 아울러 활용한 현학적 재미의 구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이인로 시론의 특징과 『파한집』의 저술 성격을 규명하는 문제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This paper traces the Lee In-ro's method of using 典故 in < Pahanjip >. Lee In-ro pioneered a new way of criticizing poetry in < Pahanjip >. As a result, he made great achievements in criticizing poetry. In fact, Lee In-ro presented critical views throughout the < Pahanjip >. One of the many critique criteria he used is 用事. Using the old 典故 elaborately, It was considered important to improve the completeness of the poem composition. So, this is an important criterion for criticizing Chinese poems. This paper pays attention to this point, Using the 用事 as a tool to analyze Chinese poems, Lee In-ro's < Pahanjip > was analyzed. In Chapter 2, “Lee In-Ro's 用事論 and 琢句論”, I examined Lee In-ro's views on 用事. Subsequently, in Chapter 3, “The use and shape of the entire highs in the poems of < Pahanjip >”, the 典故 of the poem of < Pahanjip > was traced to find out the type and personality. Through this, tried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Lee In-ro's poem and the character of his < Pahanji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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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봉(芝峯) 리수광(李睟光)의 제자(諸子)에 대한 인식

저자 : 姜玟求 ( Kang Min-g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5-6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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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의 諸子에 대한 인식은 『지봉유설』 권6, <經書部 2>, 「諸子」와 『지봉유설』 권7, <경서부 3>, 「書籍」 제4則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書籍」 제4則에서는 제자서 62종의 書名이 나열되어 있는데, 시대와 내용에 따라 분류하려는 의식이 있다. 다만, '雜書'와 개념이 혼용된 결과 제자의 범주가 지나치게 넓게 설정되어 있다. 한편 <經書部 2>, 「諸子」는 총 50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언급한 제자서는 모두 15종이다. 「書籍」이 다양한 제자서를 간략한 형식으로 소개한 것이라면, 「諸子」는 제자서 內의 글에 대한 논평이나 어휘에 대해 변증한 것이다. 「제자」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책은 『장자』로 총 15칙(서명을 명기하지 않은 1칙 포함)이다. 그 다음은 『회남자』로 총 7칙(중복 1칙 포함)이며, 세 번째는 『노자』로 총 6칙(중복 1칙 포함)이다. 네 번째는 『관자』로 총 4칙이며, 다섯 번째는 『列子』ㆍ『文子』ㆍ『呂氏春秋』로 각각 총2칙(각각 중복 1칙 포함)이다. 그리고 『黃石公記』ㆍ『關尹子』ㆍ『公孫文』ㆍ『新序』ㆍ『說苑』ㆍ『法言』ㆍ『抱朴子』ㆍ『陰符經』이 각 1칙이다. 한편 제30칙의 『文子』는 『申子』의 오기이고 제46칙의 『新序』는 『說苑』의 오기이다. 그리고 제 41칙의 『家語』는 서명이 누락되었고, 제39칙의 '稗史'는 『升庵集』을 지칭한다.
「제자」에는 제자서의 글에 대한 논평이 가장 많으니 총 19칙이다. 그 다음은 제자서에 사용된 어휘의 의미에 대한 변증이 총15칙, 제자서의 내용에 대한 변증이 총9칙이다. 그리고 제자서의 내용과 老莊ㆍ불교, 유학 간의 동이점에 대한 변증이 총 4칙, 위작에 대한 변증이 총 2칙, 제자서의 서명에 대한 변증이 1칙이다.
「제자」에는 이수광의 지적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方麓集』과 『莊子翼』 등 당시로서는 최신 서적을 입수하여 활용하였으니, 이는 제자서의 문장해석ㆍ논평 및 어휘의 변증에 참신한 견해를 제시하려는 욕망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욕망은 문헌에서 인용한 내용을 이수광 자신의 독자적 논평 형식으로 처리한 것에서도 발견된다.


Lee Sugwang's perception of scholars and philosophers are intensively reflected in 『Jibong Yuseol (Topical Discourses of Jibong)』 Vol.6, < Gyeongseobu( 經書部) 2 >, 「Jeja(諸子)」 and 『Jibong Yuseol』, Vol.7, < Gyeongseobu 3 >, and 「Seojeok(書籍)」 Chapter 4. There are 62 titles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listed in the chapter 4 of 「Seojeok(書籍)」, and it seems to have been consciously categorized by the times and contents. But as the concept was used along with 'miscellaneous books(雜書)', the category of the philosophers and scholars was too extensively set. < Gyeongseobu(經書部) 2 > and 「Jeja(諸子)」 are comprised of 50 chapters and the number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mentioned here is fifteen. It can be said that 「Seojeok(書籍)」 introduces various books of philosophers in a brief manner, while 「Jeja(諸子)」 demonstrates vocabulary and comments about writings in the book of philosophers. The most-mentioned book in 「Jeja(諸子)」 was 『Jangja』, which has 15 chapters in total, including 1 chapter without stating the title. The next one is 『Hoenamja』 with 7 chapters in total, including the overlapped 1 chapter, and the third one is 『Noja』 with 6 chapter including the overlapped 1 chapter. The fourth most-mentioned one is 『Gwanja』 with 4 chapters in total, and the fifth one is 『Yeolja(列子)』, 『MunJa(文子)』, and 『Yoessichunchu(呂氏春秋)』 with 2 chapters each, including the overlapped 1 chapter respectively. 『Hwangseokgonggi(黃石公記』, 『Gwanyunja(關尹子)』, 『Gongsonmun(公孫文)』, 『Shinseo(新序)』, 『Seolwon(說苑)』, 『Beobeon(法言)』, 『Phobakja(抱朴子)』, and 『Eumbugeong(陰符經)』 have 1 chapter respectively. 『Munja(文子)』 with 30 chapters is the misspelling of 『Shinja(申子)』, and 『Shinseo(新序)』 with 46 chapters is the misspelling of 『Seolwon(說苑)』. 『Gaeo(家語)』 with 41 chapters is omitted with the book title, and 'Paesa(稗史)' with 39 chapters refers to 『Seungamjip (升庵集)』.
「Jeja(諸子)」 has the most comments, 19 chapters in total, about the writings within the books of philosophers. Then, there are 15 chapters of demonstrations about the meaning of vocabulary used in the books of philosophers, and 9 chapters of demonstrations about the contents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There are also 4 chapters of demonstrations abou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Nojang(老莊), Buddhism, and Confucianism, and the contents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and two demonstrations about pseudograph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and 1 demonstration about the titles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Lee Sugwang's intellectual appetite is well reflected in 「Jeja(諸子)」. He procured and made good use of the latest books of his time, such as 『Bangrokjip (方麓集)』 and 『Jangjaik(莊子翼)』, and this seems to be attributed to his intellectual desire to suggest a novel view on the demonstration of vocabulary, and sentence interpretation and comments of the books of philosophers. This is also well shown in the way to treat the quotes from literature in his own distinctive commenting m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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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세기 김시습(金時習)을 바라보는 두 시선 - 허목(許穆)과 송시열(宋時烈)을 중심으로 -

저자 : 姜彰圭 ( Kang Chang-ky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5-10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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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眉叟 許穆(1595~1682)과 尤庵 宋時烈(1607~1689)이 어떻게 金時習을 재해석하고자 하였고,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 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가장 주요한 작품은 허목의 「淸士列傳」과 송시열의 「鴻山縣東峯祠記」이다.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허목과 송시열이 주목했던 주요 인물형에 대하여 다루고, 그런 작업을 토대로 각자가 어떻게 김시습을 바라보는지 살펴보았다. 김시습에 대한 두 시선은 앞 시대의 맥락들이 수렴되어 17세기의 두 영수에 의해 집약된 것이다. 허목은 근기 남인이라 불리면서도 북인 학맥과도 밀접하기에 그런 학파적 경향을 이어받으면서 김시습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송시열은 서인의 입장에서 栗谷 李珥의 「김시습전」을 토대로 논의를 계승ㆍ발전시키고 있다.
허목은 李耔의 行儒迹佛을 인용하면서 북인계 奇自獻ㆍ柳夢寅이 가졌던 김시습 像을 잇고 있다. 그것은 김시습이 가진 울분에 공감하면서 遠遊에 주목하고 불교적ㆍ도가적 모습도 숨기지 않고 서술하는 방식이다. 송시열은 李珥의 心儒迹佛을 토대로 진행하면서 절의를 강조하고 불교적 모습을 대변하기 위해 泰伯을 끌어와 김시습의 절의를 설명한다. 일찍이 맹자는 伯夷를 聖之淸者라고 표현했는데, 두 사람은 이런 백이에게서 볼 수 있는 '淸'과 '節'의 모습을 김시습에게도 적용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강조점은 달랐다. 허목은 세상의 변고를 만났을 때 신하가 취할 수 있는 '淸'을 강조하고, 송시열은 신하가 무엇보다 지켜야 하는 '節'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는 두 지성이 17세기라는 혼란한 시대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바, 김시습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 일단을 엿보고자 하였다.


This article examines how Heo-mok and Song Si-yeol tried to reinterpret Kim Si-seup in the 17th century, and what context it took place in. The most important works are Heo Mok's 「ChungSaYeolJun(淸淸列傳)」 and Song Si Yeol's 「HongSanHyeonDongBongSaGi(鴻山縣東峯祠記)」. Prior to looking at this, Heo-Mok and Song Si-yeol dealt with the main character types that they noticed, and looked at how each person looked at Kim Si-seop based on such work. Heo-Mok is called the “Geungi Namin(近畿南人)” but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Beukin(北人) connections. Therefore, Kim Si-seup was described while inheriting such a scholarly trend. Song Si-yeol inherited and developed the discussion based on Lee lee's 「Kim Si-seup jeon(金時習傳)」.
Heo-Mok continues the image of Kim Si-seup, which was held by Ki Ja-hun and Yu Mong-in of the Beukin(北人) community, citing Lee-Ja's 'HangUJuckBul (行儒迹佛)'. Song Si-yeol emphasizes the temple as he proceeds based on Lee-lee's 'SimUJuckBul(心儒迹佛)' and explains Kim Si-seup's temple by bringing Tae-baek(泰伯) to represent his Buddhist figure. Mencius used to describe Baek-Yi(伯夷) as 'SungJiChungJa(聖之淸者)', and the two applied the 'Chung(淸)' and 'Jul(節)' found in Bae Yi to Kim Si-sup as well. Nevertheless, their emphasis was different. Heo-Mok emphasized the 'Chung(淸)' that his subjects could take when meeting the world's hardships, and Song Si-yeol emphasized 'Jul(節)' that his subjects should protect above all else. This is also in line with the agony of how the two intellectuals will solve the chaotic era of the 17th century, and I tried to get a glimpse of the story through a prism called Kim Si-s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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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ㆍ일 여훈서(女訓書) 비교 연구 시론 - 17세기 말~18세기 초를 중심으로 -

저자 : 成珉京 ( Sung Min-kyung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5-1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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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조선, 명ㆍ청, 일본에는 공히 '여훈서'로 범주화할 수 있는 문헌들이 존재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세 나라가 유교 성리학이라는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공동문명권이었음을 증명하며 비교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한다. 이에 본 논문은 한ㆍ일 여훈서 비교 연구를 위한 시론 격으로, 17세기 말~18세기 초의 조선과 일본의 여훈서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여훈서의 내용이 그것이 전개된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각국의 역사적ㆍ사회문화적 배경에 바탕을 두고 여훈서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분석 결과, 17세기 말~18세기 초 조선과 일본의 여훈서는 출가 이후 여성의 삶에 대한 이상적인 전망을 제시한다는 저술의 계기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저술의 계기는 자연스럽게 '출가외인'으로서 시가에 전적으로 치중하는 '며느리'로서의 여성 규정으로 이어진다. 타문에서 남편과 시부모를 받드는 존재로 여성을 규정하기 위해서 수반되는 것은 위계화와 차등화의 전략이다. 양국의 여훈서는 여성의 열등함을 선언함으로써 차이를 구성하고, 그것을 본질화ㆍ자연화함으로써 위계를 고착시킨다. 그리고 17세기 말~18세기 초 조선과 일본의 여훈서는 가정의 유지와 번영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라는 여성 존재에 대한 규정은 공유하고 있지만, '문자 사회'라고 할 만한 정치 체계와 '이에' 제도의 성립이라는 당대 일본의 역사ㆍ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여성의 문자 학습과 교양 습득에 있어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양국의 역사ㆍ문화적 배경의 차이는 가계와 가산을 담당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조선 여훈서는 가계 운영에 대한 가장의 간여를 배제했지만 일본 여훈서는 가계 운영 및 가산 보존에 있어 여성의 책임을 충분히 강조하는 동시에 남편이 그 시비를 살펴야 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三從'과 '七去'에 대한 양국 여훈서의 서술 방식의 차이는 당대 양국의 성리학 도입과 수용 정도의 일단을 살필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조선 여훈서 3종에서 모두 다루고 있는 '奉祭祀'에 대한 내용이 일본 여훈서에는 없는 점은 혈연을 중시하는 조선과 혈연보다는 직능을 중시하는 당대 일본의 역사ㆍ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결과이다.


In the Joseon Dynasty, the Ming Dynasty, and the Qing Dynasty, Japan, which constituted the pre-modern East Asia, there were documents that could be categorized as 'Yeo-Hoon-Seo(女訓書)'. This fact proves that the three countries were the right of common civilization to share the value system of Confucian Confucianism and evokes the need for comparative studies. Therefore, this thesis is a poetic case for a comparative study of Korean-Japanese postscripts, and attempts to examine the Yeo-Hoon-Seo of Joseon and Japan from the late 17th to early 18th centuries. Since this paper believes that the contents of a Yeo-Hoon-Seoshould be understood in the interaction with the world in which it has been developed, analysis of the Yeo-Hoon-Seo was conducted based on the historical and sociocultural backgrounds of each country. As a result of the analysis, the Yeo-Hoon-Seo of Joseon and Japan in the late 17th to early 18th centuries share the opportunity of writing that suggests an ideal prospect for women's lives after marriage. The momentum of this writing naturally leads to the woman's rule as a 'daughter-in-law', who focuses entirely on poetry as a 'Chool-gah-wayne(出嫁外人)'. It is the strategy of hierarchicalization and differentiation that accompanies other families to define women as supporters of husband and father-in-law. The Yeo-Hoon-Seo of the two countries constitute the difference by declaring women's inferiority, and fix the hierarchy by making it essential and natural. In addition, the Yeo-Hoon-Seo of Joseon and Japan in the late 17th to early 18th centuries differ in terms of women's learning of letters and liberal arts due to the historical and cultural background of the contemporary Japanese political system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IE(家)' system is revealing.
The difference in the narrative method of Yeo-Hoon-Seo in the two countries could be an indicator of the degree of introduction and acceptance of Sung Confucianism in both countries at the time. Lastly, the fact that Japanese Yeo-Hoon-Seo do not contain the content of 'Bongjesa(奉祭祀)' covered in all three Joseon Yeo-Hoon-Seo is a result of reflecting the historical and cultural background of Joseon, which values blood ties, and Japan at the time, which values skill rather than blood 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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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계찰괘검(季札掛劍)의 본의(本意)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 「해검현묘론(解劒懸墓論)」을 중심(中心)으로 -

저자 : 趙赫相 ( Cho Hyuk-sang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6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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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札掛劍은 中國 春秋時代 때 吳나라 公子 계찰이 서나라 임금의 무덤가 나무에 검을 걸어놓고 떠난 일화를 의미하는 고사성어이다. 계찰이 上國으로 사신 행차를 가는 도중 徐國을 지날 때, 서나라 임금이 계찰의 검을 보고 소장하기를 원하였으나, 계찰은 사신으로서 중원의 각 나라를 검을 차고 방문해야 했기 때문에 검을 바치지 않았다. 그 후 계찰이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서나라에 도착하자 이미 서나라 임금이 죽었기에, 이에 계찰은 서나라 임금에게 검을 주고자 했던 본래의 자기 뜻에 따라 보검을 풀어 무덤가 나무에 걸어놓는다. 이 이야기는 信義의 象徵으로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久堂 朴長遠(1612∼1671)의 『久堂先生集』 第16卷에 실린 갑술년(1634) 별시 대과 초시 합격 답안[甲戌別試初試入格]인 「解劒懸墓論」에서는 이러한 계찰의 괘검 행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박장원의 글은 季札의 掛劒이 지니고 있는 심층적 의미를 분석하여, 괘검을 단순히 신의의 상징으로만 파악하는 일차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괘검이라는 행위의 파급효과마저도 계자의 계산속에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박장원은 계찰이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掛劒이라는 행위를 실천하여 서나라 군주와의 우정을 표하고, 약속에 대한 신의를 보여 揚名하였으며, 吳君으로부터 왕위를 원한다는 혐의를 피하겠다는 목적까지 달성하였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계찰괘검의 본의이며, 이를 통해 계찰이 오군의 오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암살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박장원은 통찰한 것이다.


JìZhá's hanging sword(季札掛劍: JìZháGuàJiàn) is an idiom that refers to the event in which JìZhá(季札) hung his sword on a tree near the tomb of the king of XúGuó(徐國). When JìZhá passed through XúGuó on his way to the ShàngGuó(上國) as an ambassador, the king of XúGuó wanted to have the JìZhá's sword. But JìZhá did not offer his sword because he had to visit each country with the formal-dress sword. When JìZhá completed his mission and arrived in XúGuó, the king of XúGuó already died. Then, JìZhá unpacked his sword according to his original wish to give it to the king of the XúGuó, and hung it on a tree near the king's tomb. This story has long been talked about by people as a faithful behavior.
KuDang Park Jang-Won(久堂 朴長遠: 1612-1671) wrote 「the Editorial of Hanging Sword on the Tomb(解劒懸墓論)」 in 1634 as the answer sheet of the special great national examination, he explains in detail about the act of the hanging sword of JìZhá in these articles. Park Jang-Won's article analyzes the meaning of the hanging sword, revealing that even the ripple effect of the act of the hanging sword was in JìZhá's calculation, away from the common view of identifying the sword as just a symbol of goo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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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교남빈흥록(嶠南賓興錄)』의 판본과 어고(御考) 과부(科賦) 시권(試券)에 대한 소고(小考)

저자 : 金紀燁 ( Kim Gi-yeop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3-19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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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賓興錄』은 正祖代에 설행된 지방 별시의 전말을 기록하고 입격한 試券을 수록한 자료이다. 6종의 『빈흥록』 중 『嶠南賓興錄』에는 정조의 御考를 거친 영남 儒生의 우수 科賦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批點이 판각된 판본이 존재한다. 이 연구에서는 『교남빈흥록』의 판종을 살피고 御考 批點을 토대로 優等 試券에 나타난 정조의 科賦 평가 기준을 살폈다.
『교남빈흥록』은 권2 「御考優等試券」까지 수록된 판본과 여기에 「陶山試士壇碑銘」ㆍ「頖村致祭時日記」를 追刻하여 부록으로 넣은 판본이 있다. 부록이 추가된 판본과 1792년에 판각된 판본은 구성뿐만 아니라 批點의 형태도 차이를 보인다. 우등 시권에서 批點의 위치는 구절의 2ㆍ3ㆍ5 字마다 찍혀 있으나, 특정 글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句 자체에 매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교남빈흥록』의 「御考優等試券」에는 姜世白ㆍ金熙洛ㆍ金象九ㆍ曺深이 작성한 科賦 4편이 실려 있다. 네 사람 모두 30句로 구성된 科賦를 지었으며, 각 句의 4번째 자마다 虛辭를 넣어 6言 科賦의 형식을 준수하였다. 典故 또한 거의 모든 구마다 인용되었는데 三上의 성적을 얻은 姜世白ㆍ金熙洛의 시권에는 試題와 동일한 출처의 전고가 빈번하게 쓰였다. 三中의 성적을 얻은 金象九ㆍ曺深은 말미에 4言의 亂辭를 넣어 姜世白ㆍ金熙洛의 답안과 형식적인 차이를 보였으며, 亂辭 부분에서 정조의 批點을 전혀 획득하지 못하였다. 4언 亂辭의 활용으로 인해 조선 후기 科賦가 요구하는 6언의 規式에서 이탈하게 되는데, 批點을 통해 정조 또한 科賦에 亂辭의 출입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A binheungrok(賓興錄) is a book that contains details of local byulsi(a type of public officer test held for special occasions in Joseon Dynasty) held in Jeongjo era and the selected si-gwon(試券, answers). Among the six types of binheungrok, Gyonam Binheungrok(嶠南賓興錄) contains outstanding works of gwabu(科賦, rhymed pieces written for public officer exams) by yusaeng(儒 生)s from the Yeong-nam region, that were directly reviewed by the king(eo-go, 御考). Unlike other binheungroks, bi-jeom(批點, marks left by the reviewer)s are engraved in some versions of Gyonam Binheungrok. This study reviews the versions of “Gyonam Binheungrok” and analyzes the evaluation criteria used by Jeongjo, based on the bi-jeoms he left on the selected answers.
There is a Gyonam Binheungrok(嶠南賓興錄) version that includes the second book titled “Eo-go-udengsigwon(御考優等試券, selected works reviewed by the king).” There is another version of “Gyonam Binheungrok(嶠南賓興錄)” that contains the additional appendix with the engraved “Dosansisadanbimyeong(陶山試士壇碑銘)” and banchonchijesiilgi(頖村致祭時日記). Compared to the version that was made in the year 1792, the version with the appendix not only has a different structure, but also contains bi-jeoms with different shapes due to the engraving of the bi-jeoms. In the book of selected works, the bi-jeoms are left at the second, third, and fifth letters in certain phrases, but it is thought to have been left to indicate the phrase, not the letter.
The Eo-go-udengsigwon(御考優等試券) of Gyonam Binheungrok contains four gwabu(科賦)s written by Kang Se-baek(姜世白), Kim Hee-rak(金熙洛), Kim Sang-gu(金象九), and Jo Shim(曺深). Each wrote a gwabu(科賦) with 30 phrases. Each phrase contains heo-sa(虛辭, function word) as the fourth letter and consists of six words(6言), following the typical structure of gwabu(科賦). Almost every phrase contains jeon-go(典故, reference from the classics), and Kang Se-baek(姜世白) and Kim Hee-rak(金熙洛), who got sam-sang(三上) grade, quoted from the same reference that was used in the prompt. Kim Sang-gu(金象九) and Jo Shim(曺深), who got sam-jung(三中) grade, each added a four-word nan-sa(亂辭, a statement summarizing a big idea) at the end, which distinguishes the structure of their works from the works by Kang Se-baek(姜世白) and Kim Hee-rak(金熙洛). None of these nan-sa(亂辭)s won Jeongjo's bi-jeom. The utilization of nan-sa(亂辭) makes their work sway from the six-word(6言) format that was required in gwabu(科賦)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lack of bi-jeoms shows that Jeongjo didn't like nan-sa(亂辭)s in gwabu(科賦)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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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의 한시에 드러난 객(客)의 정감(情感) 고찰

저자 : 黃珉仙 ( Hwang Min-su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3-22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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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전공이 있어 벼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양경우는 시에 능했던 재능을 인정받아 사신을 접대하는 일에 4차례나 차출되기도 했고 文科重試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벼슬 생활은 잦은 탄핵과 파직, 낙향 등과 같은 굴곡이 많았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시기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과 서자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본고는 기존 제호 양경우의 연구가 그의 시화집인 『제호시화』에 집중되었던 것에서 벗어나 그의 시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 불안한 정치 상황과 신분적 한계로 인한 부침이 많았던 그의 벼슬 생활을 대변할 수 있는 시어인 “客”의 이미지가 담긴 한시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제호 시에서 “客”의 정감이 갖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시름[愁]으로 파악하고 객의 시름을 표출하는 양상을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이런 제호 한시의 객의 정감 표출 양상 연구는 그의 시 세계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With the illegitimate origination, Yang Gyeong-wu, who was able to start a government post life as he had meritorious services in war during the Imjin War of Japanese Invasion, was selected four times to host envoys in recognition of his talent for poetry, and was also elected in the civil minister post examination(文科重試). However, his government post life had many twists and turns, such as frequent impeachment, dismissal, and rustication. After the Imjin War of Japanese Invasion, it was difficult for him to overcome the unstable political situation in Gwanghae-gun era and the status limit of his illegitimate birth. This study focused on the point that Jeho Yang Gyeong -wu's research should not be focused on his poem and picture book, “Jeho's Poems and Pictures”, but should approach his poetic world in a more multifaceted way. To this end, Chinese poems containing the image of 'guest (客)', a poetic word that can represent his government post life, which had many ups and downs due to the unstable political situation and personal status limitations, were selected as the main research subjects. Through this, the representative image of affection of 'guest(客)' in Jeho's poems was identified as anxiety(愁), and three aspects of expressing guest's anxiety were analyzed. It is thought that this study on the expression aspects of the guest's affection appearing in Jeho's Chinese poems will be a starting point in understanding an aspect of his poetic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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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정당(晩靜堂) 서종태(徐宗泰)의 연행시(燕行詩) 연구(硏究) -『만정당유고(晚靜堂遺稿)』 소재(所載) 연행록(燕行錄)을 중심으로 -

저자 : 李承容 ( Lee Seung-yong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3-25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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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晩靜堂 徐宗泰(1652~1719)가 癸未年(1703, 숙종29) 燕行 당시에 창작한 燕行詩를 고찰한 글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접근이 이루어 지지 않은 『晚靜堂遺稿』 所載 燕行詩를 중심으로 徐宗泰의 燕行詩에 드러난 주된 주제와 특징적 양상을 고찰하였다.
먼저 徐宗泰의 癸未年 燕行과 관련된 자료 가운데 『晚靜堂遺稿』에 수록된 日錄과 燕行詩는 그의 燕行記錄을 온전히 담고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으며, 17세기의 燕行錄 저술 방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徐宗泰의 燕行詩에 드러난 주된 주제와 특징적 양상은 “燕行路程의 인상적인 風情 묘사”와 “淸에 대한 반감과 大明義理의 고취”로 요약된다. “燕行路程의 인상적인 風情 묘사”에서 살펴본 작품에서는 燕行路程에서 거치게 된 지역의 단순한 풍광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의 勝景, 역사, 경제 등 다양한 風情을 면밀히 담아내려 했던 徐宗泰의 기록의식이 돋보였다. 또 그가 이전 紀行詩에서 자주 활용하던 律詩 뿐만 아니라 古詩와 連作의 絶句 등 다양한 형식을 詩作에 활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가운데 「箕城雜詠」과 「孝娥歌」와 같은 작품은 당대에 손꼽히던 詩人이었던 昆侖 崔昌大(1669~1720)가 大家의 작품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다.
“淸에 대한 반감과 大明義理의 고취”에서는 徐宗泰가 당대에 누구보다도 崇明背淸의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였던 인물이었던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인식이 그의 燕行詩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徐宗泰에게 癸未年 燕行은 자신이 文明國으로 인정하기 힘든 淸왕조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는 동시에 융성했던 明왕조의 흔적과 역사를 회고하는 과정이었다. 徐宗泰는 燕行路程에서 淸나라의 천하로 변해버린 中原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면서 울분과 한탄을 금하지 못했으며, 사라져 버린 明나라의 문명에 대한 그리움과 한탄을 그가 특장을 보였던 古體詩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을 활용하여 詩作에 담아내었다. 「寧遠城感憶袁經略崇煥」과 「夜坐亡聊次金息菴燕館感懷韻」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은 낯선 異域의 풍광과 그 감회를 기록한 紀行詩의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자신이 견지했던 崇明背淸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출한 작품이라 하겠다.


This study explored the travel poem written by Manjeongdang(晩靜堂) Seo Jong-tae(1652~1719) when he traveled to Beijing as an envoy in 1703. This study examined the main theme and distinct characteristics of Seo Jong-tae's travel poem by focusing on the Manjeongdangyugo-themed travel poem which has not been studied until now.
First, among the materials related to travel to Beijing in 1703, the record and travel poem in Manjeongdangyugo hold the significant value for reflecting the Seo's record of travel to Beijing and for showing how travel journals were written in 17th century. The main theme and distinct characteristics found in the travel poem by Seo are summarized as “Description on impressive aspects in paths to Beijing” and “Inspiration of Repulsion Against Qing Dynasty and Loyalty to Ming Dynasty”. For the poem about “Description on impressive appearance of paths to Beijing”, Seo tried to record not only the view of the paths but also the various aspects such as beautiful scenery, history, and economy of the regions. In the Chinese poem-style works, Seo also utilized various forms including monostrophic poem he mainly utilized in previous travel poetry and quatrain used in old style poem and serial poems. Among the works, [Gisungjapyeong] and [Hyoaga] were highly praised by Gonryun(昆侖) Choi Chang-dae(1669~1720), the best poet of the time, as the poetry works by the great master.
In “Inspiration of Repulsion Against Qing Dynasty and Loyalty to Ming Dynasty”, this study focused on the point that Seo insisted a firm ground on loyalty to Ming Dynasty and rejection against Qing Dynasty more than anyone else and explored how such thoughts were expressed in his travel poem. To Seo, travel to Beijing in 1703 was the process of witnessing the reality of Qing Dynasty which he couldn't admit as a civilized country and recollecting the remains and history of Ming Dynasty that once flourished. On his way to Beijing, he resented and lamented after witnessing the reality of China that turned into the country of Qing Dynasty and he expressed his longing and lamentation for the lost civilization of the Ming Dynasty by utilizing various forms including the old style poem in his poems. These poems are represented by [Yeongwonsung Gamukwon Kyeongraksunghwan(寧遠城感憶袁經略崇煥)] and [Yajwamangryo Chagimsikam Yeongwangamhuiwoon(夜坐亡聊次金息菴燕館感懷韻)]. These poems record the scenery of strange lands and his feelings as the travel poems while actively expressing his strong will for loyalty to Ming Dynasty and rejection against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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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귀명(趙龜命) 「추기동협유상(追記東峽遊賞)」의 문체와 작가의식의 의미에 관하여

저자 : 朴熙秀 ( Pak Hŭi-s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5-29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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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東谿 趙龜命(1693~1737)의 丹陽 山水遊記 「追記東峽遊賞」의 문체와 작가의식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 특히 「추기동협유상」이 지닌 독특하고 난해한 문체에 유의하여, 이를 조귀명 후기 문예론에 나타난 난해한 문체에 대한 긍정과 연관지어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본고에서 규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제2장에서는 「추기동협유상」의 '수옥정'조 단락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난해하고 독특한 문체 이면에는 인간과 자연을 대비시키는 시각, 자신을 '시선의 주체'로서 자각하는 분명한 자의식, 인간과 자연의 매체로서 예술에 주목하거나 자연의 신화적 근원성에 주목하는 것과 같은 독창적 사유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서 제3장에서는 앞장의 논의를 발전시켜, 「추기동협유상」에서 구사된 것과 같은 난해한 문체를 긍정한 바탕에는 당대 모방적 문풍으로 인해 죽어 있던 조선 문단에 생기와 자유와 다양성을 회복시키고, 살아 있는 전범으로서 후대와 대화적 관계에 들어가 열린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와 함께 조귀명의 문예론에서 대상의 살아 있는 이치를 독창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낼 때 창작주체와 대상이 모두 생명과 영속성을 획득한다는 점을 밝혔고, 조귀명이 자연을 보는 독특한 방식을 형성한 한 원인으로서 그의 실존적 조건인 병약한 체질을 지목하였다.


In this study I examined the literary style of Cho Kwimyŏng's Reminiscence on Former Travel around Eastern Valley Area(Ch'ugidonghyŏbyusang in Korean) and the said writher's consciousness implied in the work. What I thought particularly noteworthy about Reminiscence is its rather abstruse style of writing, which had become a target of criticism by a literary critique of Cho Kwimyŏng's time, and its impact on Cho Kwimyŏng's later literary theory which advocated use of abstruse style in prose works in favor of expressing individuality.
In the second chapter I argued that Reminiscence's abstruse and distinctive style, which was as a former study suggests a result from adapting various literary style of late Ming travel writing works and Classic of Mountains and Seas(Shanhaijing in Chinese), should be understood as an reflection of Cho Kwimyŏng's original thought, such as his self-consciousness of being a subject of gaze, his seeing art as a media between a man and nature, and his understanding nature as a mythic foundation.
In the third chapter I explained about Cho Kwimyŏng's consciousness as a writer: that he thought one can bring freedom and diversity and liveliness to the literary world of his time, and achieve open and alive immortality, when one refuse to step back from voicing one's original thought in one's original style, however abstruse it might be; that he thought only when one can capture an object's profound principle by one's original way of seeing things, the author and the represented object can obtain eternal life and keep on to impact the later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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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의 『사소절(士小節)』에 나타난 지식 세계의 확장과 정보 편집 전략

저자 : 姜眞善 ( Kang Jin-su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99-341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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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청장관 이덕무(1741~1793)의 『사소절』(1775)을 대상으로, 『사소절』에 활용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 정보 규합 및 재생산의 한 방식과 그 의의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소절』은 이덕무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읽힌 저술 중 하나로, 그 호응의 한 요인에는 19세기의 독자가 『사소절』을 '재미있는 독서물'로 인식하였던 배경이 있었다. 이덕무는 주희의 『소학』을 모범으로 하되 18세기 조선의 현실에 맞게 변용한 규범서로써 『사소절』을 기획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전ㆍ사서ㆍ성리서ㆍ조선 선유의 저작, 『명유학안』ㆍ『뇌고당척독신초』 등 및 다양한 필기잡록과 총서류를 비롯한 명청대 서적, 이덕무 개인의 견문 정보 등 총 세 가지 계통의 지식 정보가 습합되었다. 이 중 명말청초 문인들의 저술에서 초출한 지식 정보들은 대부분이 어록ㆍ척독ㆍ필기소품에서 고른 문장이다. 이덕무는 청언소품의 문장을 노출시켜 규범서의 문체 특색을 전혀 색다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또 『뇌고당척독신초』의 척독 및 『칠극』 등에서 흥미를 끄는 소화를 인용하여, 18세기 문인들의 독서 취향을 겨냥하고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규범을 전달하는 효과를 얻고자 했다. 이덕무 개인의 경험을 출처로 하는 지식 정보를 활용한 경우, 동시대 한양의 화제와 풍속세태를 중심으로 편집하여 현실성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특징은 『사소절』의 규범에 핍진함을 부여할 뿐 아니라, 독자가 동시대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며 저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단축하고 규범의 독서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도록 유도한다. 더불어 이덕무는 가족과 주변 인물의 사례를 다수 기재하여 주변의 사소한 장점조차도 존중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적인 내밀한 감정의 표출은 『사소절』 독자와의 친밀감을 제고하고, 『사소절』의 규범에 대한 신뢰와 호응을 촉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현실적인 독서 대중의 구미에 맞추어 천근한 언어와 예화를 활용하고, 이를 통해 규범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한 글쓰기 전략을 통해, 『사소절』은 19세기의 독자에게 재미와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규범서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는 예민한 감각으로 동시대인의 요구와 취향을 파악하고, '지금 여기'의 화제를 가장 잘 포착해 냈던 이덕무의 지식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드러내는 한 방증이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method and meaning of knowledge editing Strategy in 『Sasojeol(士小節)』 by Lee, Deok-mu(李德懋, 1741~1793), intellectuals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18th century. 『Sasojeol』, The book of etiquette for the family of Joseon's nobility, is one of the most widely read works of Lee, Deok-mu. One of the reason for its popularity is that readers in the 19th century perceived 『Sasojeol』 as an interesting writing. Through a very clever strategy of knowledge editing, he responded to the popular reading tastes of the people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 『Sasojeol』, He used three different types of knowledge. The first is from scriptures and other books created based on Confucian traditions. The second is from the latest Chinese books imported from Qing Dynasty. And the last is the knowledge derived from his life experiences. Lee, Deok-mu quoted short aphorisms and literary letters or anecdotes from the latest Chinese books. Especially using Aphoristic style writing, He transformed sentences of the formal etiquette book into condensed and epigrammatic some. And to convey the etiquettes to readers naturally, he quoted interesting anecdotes from like 『Lai gu tang chi du xin chao(賴古堂尺牘新鈔)』 and Pantoja's 『The Seven Victories(七克, Qi Ke)』, books popular with contemporaries. When using his personal experience in 『Sasojeol』, he recorded current topics or trend in Hanyang, the capital of Joseon. These narrative features not only gave sincerity to the etiquettes in 『Sasojeol』, but also induced readers to feel homogeneous with the writer as contemporaries. In addition, he wrote down many anecdotes from his family and friends in 『Sasojeol』. The expression of human respect and love to his family and friends made readers feel close to the author and trust the contents of the book more. In conclusion, 『Sasojeol』 was regarded as a book that provoked interest and desire for reading in the 19th century readers. This is evidence of Editor Lee, Deok-mu's outstanding knowledge editing 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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