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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2)~9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085
동방한문학
90권0호(2022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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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말~조선초 朱熹 『楚辭集注』·『楚辭辯證』·『楚辭後語』의 수입과 간행에 대하여

저자 : 魯耀翰 ( Noh Johan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4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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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실록』에 실려 있는 尹炯(1388∼1453)의 졸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종의 일화가 실려 있다. 곧, 윤형이 경자년(1420) 과거에 급제하여 承文院博士에 補任되고 承政院注書에 전임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右副承旨가 되어 入對하였을 때의 일이다. 세종이 注書에서 10년 만에 承旨가 된 것은 근래에 있지 않았던 일이라 윤형을 상찬하였는데, 윤형이 경전과 史書를 뒤섞어 인용하면서 상세히 敷奏하자 책을 읽을 때에 몇 번 보아서 이처럼 능히 기억할 수 있는지 물었다. 윤형이 자신은 겨우 30번 정도 읽는다고 대답하자 세종은 “나는 여러 책을 모두 1백 번 읽었고, 다만 『楚詞』와 『歐蘇手簡』만은 30번 정도였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세종이 여러 책을 모두 1백 번 읽었고 『楚詞』와 『歐蘇手簡』만은 30번 정도였을 뿐이라고 한 것은 경학과 사학의 서적을 중심으로 한 세종의 독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사』는 문장 학습의 교본으로서 고려시대 이후 문인들 사이에서 널리 독서되었으며 『문선』과 함께 가장 여러번 간행된 문학 선집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고려와 조선에서 독서된 『초사』의 텍스트는 어떤 것이었을까? 『초사』의 텍스트로서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것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저본은 무엇이었을까? 『초사』가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서 애독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하, 본고는 고려말 조선초 『초사』의 수입과 간행 사실에 대해 간략히 논해보고자 한다.


The death-record(Cholgi, 卒記) of Yun Hyŏng(尹炯, 1388∼1453) from Annals of King Tan Chong 端宗實錄 includes the following anecdotes of King Sejong: passing the civil service exam in 1420, Yun served as an Erudite in the Office of Diplomatic Documents 承文院博士 and was transferred to Recorder in Royal Secretariat 承政院注書, consecutively filling a variety of government posts. When Yun finally became Censor of Criminal Activities 右副承旨, he came to face the King. King Sejong was extremely complimentary about his being promoted from Recorder to Royal Secretary-transmitter within 10 years. Watching him reporting by citing a wide range of phrases from Confucian classics and historical books, King Sejong asked him how many times it took to be able to remember these texts. When he answered that he had read only about 30 times, Sejong replied, “I have read diverse publications in a total of 100 times, but just 30 times or so for Songs of Chu 楚詞 and the Collection of Letters of Su Shi and Ouyang Xiu 歐蘇手簡,” which indicated that Sejong would mainly read Confucian and historical books. Chuci, however, had not only been widely enjoyed among literati to study sentences after the Koryŏ period but published the most times in tandem with Selections of Refined Literature (wenxuan, 文選). What kind of Chuci texts had been published and enjoyed in Koryŏ and Chosŏn Korea? What are their original-texts? Why were many literati at that time into Chuci? This paper explores how Chuci was introduced and published in the late Koryŏ and early Chosŏ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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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도팔경시(京都八景詩)의 창작과 한양 도성의 형상화 - 이덕수(李德壽), 오광운(吳光運), 홍세태(洪世泰)의 시(詩)를 중심으로 -

저자 : 李承容 ( Lee Seung-yong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6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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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양 도성의 경관을 소재로 창작된 李德壽, 吳光運, 洪世泰의 京都八景詩를 고찰한 글이다. 한양 도성을 소재로 창작된 詩의 완결된 형태라 할 수 있는 城市全圖詩가 창작되기 이전 시기에는 한양의 경관은 八景詩의 형식에 담아내었는데, 李德壽, 吳光運, 洪世泰의 京都八景詩가 바로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 한양 도성의 八景을 소재로 지은 京都八景詩는 조선초기부터 창작되었으며, 그 형식은 시기에 따라 6言 4句 → 巫山一段雲體 → 7언 율시로 변화를 거듭하였다. 八景의 소재 역시 조선 중기에 한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본고에서 살펴본 李德壽, 吳光運, 洪世泰의 京都八景詩에서 소재로 삼은 八景은 애초 鄭道傳이 창작한 新都八景詩의 八景과 동일한 소재로 창작되었다. 그러나 7언 율시의 형식으로 창작되면서 시에 담아낼 수 있는 한양 도성의 경관은 더욱 편폭이 넓어졌다. 특히 1724년에 月課로 출제되어 창작된 李德壽, 吳光運, 洪世泰의 京都八景詩에서는 당시 한양 도성 八景의 구체적인 모습과 함께 각각의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한양 도성의 진면목과 그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李德壽, 吳光運, 洪世泰의 京都八景詩는 조선 초기부터 창작된 京都八景詩의 전통과 그 성격을 계승하여 月課로 창작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18세기 조선 후기 한양의 全景을 형상화한 正祖代 城市全圖詩의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점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 한양 도성을 형상화한 詩의 부류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poems themed on Hanyang City Wall by Lee Duksu, Lee Gwangwoon, and Hong Saetae. Before the creation of [Seongsijeongdo Poem], which is the completed form of poem on Hanyang City Wall, the landscapes of Hanyang were described in the forms of landscape poems and the poems by themed on Hanyang City Wall by Lee Duksu, Lee Gwangwoon, and Hong Saetae were part of them. The poems themed on 8 landscapes of Hanyang City Wall were created starting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forms repeatedly changed from the 6 Character-6 Line Style à Wushan Yiduanyun Style à 7 Character Style Chinese Verse. While theme of 8 landscapes changed once in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the landscapes described in the poems by Lee Duksu, Lee Gwangwoon, and Hong Saetae were the same as the landscapes described in [Sindopalgyeong Peom] by Jeong Dojeon. As the style of poem changed to the format of 7 character style Chinese verse, the more landscapes of Hanyang City Wall landscapes could be described in the poems. Especially, the poems by Lee Duksu, Lee Gwangwoon, and Hong Saetae submitted to the monthly test (月課) in 1724 described 8 landscapes of Hanyang City Wall in details and depicted the true worth and difference of the Hanyang City Wall that each poet tried to express. The poems by Lee Duksu, Lee Gwangwoon, and Hong Saetae were written and submitted for the monthly test by succeeding to the tradition and characteristics of landscape poems created starting from early Joseon Dynasty. In addition, the poems had a huge impact on creation of [Sungsijeondo Poem] which figured the landscape of Hanyang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in 18th century during years of King Jeongjo. Considering such points, the poems themed on Hanyang City Wall by Lee Duksu, Lee Gwangwoon, and Hong Saetae hold significant value on the poems themed on Hanyang City Wall during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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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종직(金宗直)의 매화시 고찰

저자 : 張眞熀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7-10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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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宗直은 서거정, 김시습 등과 함께 성종 대를 대표하는 한시 작가이다. 그런데 서거정과 김시습이 조선 전기의 주된 梅花詩 작가로 거론되고 있는 것과 달리 김종직의 매화시는 아직 연구된 적이 없다. 조선 전기 매화시의 계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김종직 매화시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悔堂稿』 및 『佔畢齋集』에 수록된 김종직의 매화시는 모두 22題 35首이다. 본론에서는 먼저 김종직 매화시의 제목과 형식, 창작 시기를 표로 제시하고, 각 작품의 창작 정황을 시기별로 살펴보았다. 이어서 김종직 매화시의 표현 양상을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첫 번째 양상은 일상 속의 친근한 동반자로서의 매화 형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김종직은 관료 생활의 여가에, 또 관직 수행 중에 늘 매화를 가까이하며 마음을 나눴다. 작품들 속의 매화는 고고한 은자의 형상이 아니라 친근하고 다감한 벗의 모습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양상은 심미적 태도를 바탕으로 매화에 대한 구체적인 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종직은 매화의 孤高한 절개와 같은 정신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매화의 고목과 꽃, 향기 등에 주목하여 그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하였다. 특히 題畫詩 작품들에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세 번째 양상은 매화의 생명력에 대한 경탄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도 매화의 개화를 生生之理나 天機의 발현으로 보는 觀物의 태도가 간혹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觀照的·哲理的 태도가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매화에 담긴 易의 이치를 말한 것은 매화의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며, 이는 화자의 흥취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생동하는 미적 대상과의 만남과 그 기쁨이야말로 김종직 매화시의 주된 주제이다.
이상의 특징을 요약하면 “관념적 상징성의 약화와 심미적 태도의 전면화”이다. 한편 김종직의 매화시에 나타나는 화락한 기상과 관념성의 부재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자신의 뜻을 성실하게 펼쳐가려고 했던 작가의 삶을 반영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매화시는 온화한 기상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서거정의 작품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서거정이 매화를 읊음으로써 賢相으로서의 사명감을 다짐한 것과 같은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방외인 문학의 특성을 보이는 김시습의 매화시는 두 사람과는 다른 미적 특질을 보여주지만, 매화의 정신성에 대한 경도라는 측면에서 서거정의 작품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종직의 매화시는 두 작가의 작품과 차이를 보인다.
김종직의 매화시에 대한 검토는 조선 전기 매화시의 계보를 완성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거정과 김시습 외에 동시기 다른 작가들의 매화시와는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Kim Chongchik, along with Sŏ Kŏchŏng and Kim Sisŭp, is one of the most well regarded poets from the Sŏngjong era. However, unlike Sŏ Kŏchŏng and Kim Sisŭp - who are regarded as the main writers of plum blossom poems from Early Chosŏn era - plum blossom poems of Kim Chongchik had not been studied yet. In order to complete the genealogy of Early Chosŏn plum blossom poems, his works prompt inspection.
As for Kim Chongchik's plum blossom poetry, there are thirty five verses under twenty two titles included in Hoedanggo (Manuscript of Hoedang) and Jeompiljaejib (Collected Works of Jeompiljae). The list of poems' titles, formats, and written dates is provided in the first part of this paper, and is followed by close illustration of the circumstances in which the poems were written, sorted by era. Then expressions featured in plum blossom poems are discussed in three aspects; the first characteristic is that plum blossom is depicted as a friendly companion of everyday life. Kim Chongchik kept plum blossom close during his spare time from life as an official, or while performing his civic duties. In the works, plum blossom is not a detached recluse but rather a neighborly and cordial friend. The second characteristic is that the aesthetics of plum blossom is particularly highlighted. Kim Chongchik focused on illustrating the tree, flower, and scent of plum blossom in detail, rather than paying attention to the mental properties of plum blossom, such as towering integrity. This tendency often appears in the works of painting poetry. The third aspect is that Kim Chongchik often marvels the vitality of plum blossom. In his works, he takes the stance of observation(觀物) - regarding the flowering of plum blossom as principle of life(生生之理) or manifestation of nature's secret(天機). Still, his this kind of attitude does not constitute the focal theme in the works; Kim Chongchik only discusses the principles of the Changes(易) embodied in plum blossom in order to emphasize its vitality - and this works to heighten the excitement felt by the speaker. The main theme of Kim Chongchik's plum blossom poems is the joy that comes from meeting a lively aesthetic object.
In short, aforementioned characteristics could be encapsulated as “weakened abstract symbolism and outright aestheticism”. It could be said that strong amicable spirit and contrasting lack of conceptuality in Kim Chongchik's plum blossom poems reflect the poet's life philosophy, who sought to achieve harmony with his surroundings and diligently pursue his ideas in real life. In the sense that his plum blossom poems prominently feature the flower's amicable spirit, they seem to be similar to the works of Sŏ Kŏchŏng. However, while Sŏ Kŏchŏng expressed his resolution to live as a wise prime minister by featuring plum blossom, no such intentions can be found in the poems of Kim Chongchik. The plum blossom poems of Kim Sisŭp, which displays characteristics of outsider poetry, shows yet different aesthetics with the two, but still has some commonality with the works of Sŏ Kŏchŏng in that it leans into the mental properties of plum blossom. In this aspect, plum blossom poems of Kim Chongchik is unlike the plum blossom poems of the other two writers.
Examining the plum blossom poems of Kim Chongchik is a necessary step in completing the genealogy of Early Chosŏn plum blossom poems. Following this, there is also a need to thoroughly probe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with the plum blossom poems of other writers - writers other than Sŏ Kŏchŏng and Kim Sisŭ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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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濯纓 金馹孫의 同人文化와 그 의미

저자 : 金鍾求 ( Kim Jong-g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9-14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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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濯纓 金馹孫과 同人의 문화를 분석했다. 이를 위해 同人文化가 형성되어 작품으로 남겨진 모든 부분을 고찰했다. 그들의 同人文化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첫째, 김일손과 同人은 신분을 뛰어넘어 文으로써 交遊하는 문화가 드러나고 있었다. 김종직 학단과 그 문하·관료·친인척·생육신 등 다양한 신분과 자유롭게 문으로써 교유를 하고 있었다.
둘째, 김일손과 同人은 山水에 노니는 놀이문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정여창, 김굉필과 함께한 산수유람은 의미가 있다. 그 외 누정과 강 등에서 뱃놀이를 하거나, 詩會를 열기도 했다.
셋째, 김일손과 同人은 지역 및 士林을 회합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는 훗날 다른 학파에서 그 명맥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일손의 여러 기문과 서문에서 이러한 의식이 잘 나타나고 있었다.
김일손과 同人이 형성한 문화는 초기 사림파의 同人文化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文·山水·同人이 서로 결합해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士林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에 그들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했다.


This study analyzed the culture of 金馹孫 and the same person. To this end, a sympathetic culture was formed and all the parts left as works were examined. Their cognate culture was manifested as follows.
First, there was a culture in which Kim Il-son and the same person communicated with each other through writing, transcending their status. He was acquainted with the Kim Jong-jik Academy and his followers, bureaucrats, relatives, physical bodies, etc. and freely as a teacher.
Second, a culture of play in which Kim Il-son and the same person played in the mountains and water was emerging. In particular, the landscape tour with Yeo-chang Jeong and Gong-pil Kim is meaningful. Other than that, they played boats in Nojeong and rivers, and held public demonstrations.
Third, Kim Il-son and his contemporaries were forming a culture that brought together regions and communities. It was later carried on by other schools of thought. Kim Il-son's various keynotes and prefaces showed this consciousness well.
The culture formed by Kim Il-son and the same person can clearly confirm the culture of the same person of the early Sarim school. They wanted to enjoy the joy of literacy, mountain water, and the same person united with each other, to play a role of uniting friendships, and to put their ideals into practice in the local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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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계곡(谿谷) 장유(張維) 시론(詩論) 연구(硏究) - 『시경(詩經)』의 영향을 중심으로 -

저자 : 鄭香春 ( Zheng Xiangchu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1-17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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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타고난 자질이 총명했던 谿谷 張維는 『詩經』 등 유가경전은 물론 道家·佛家·醫卜·天文·地理 등에 통했고, 그의 학문성취도 이에 힘입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본고는 이와 같은 학문적 배경을 전제로 계곡의 시론에 끼친 『시경』의 영향에 주목하여 詩序說, 詩史經說, 辭賦說, 天機說을 고찰하였다. 계곡의 「詩序」는 「毛詩序」를 버리고 “淫者自作”설을 주장한 주자의 견해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는 주자일변도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학문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개방의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詩史經說은 詩·史·經이 융합된 杜詩는 주로 『시경』을 비롯한 유가경전에서 자양분을 섭취한 것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杜詩를 詩史로 간주하는 상식에서 벗어난 계곡만의 이해이다. 그리고 “言切志深”, “事核而備”, “刺婉不隱” 등 詩·史·經의 특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논할 수 있고, 이런 작품이 훌륭한 시라는 詩論의 내함을 추출할 수 있다. 詞賦說은 「離騷」는 『시경』의 변종이고 사부는 또 「이소」의 변체이며, 『시경』, 「이소」, 사부로 이어지는 연결 키워드는 “麗以則”으로 보았다. 사부는 情性을 바로잡고 인간의 양심과 사물의 법도를 회복시키는 등 詩敎의 측면에서 『시경』 등과 근사하다. 단 사부에 경도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곧 귀신같은 절륜한 文藝의 경지로 파악된다. 이는 “獨秉天機”의 경지에 임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天機說은 천기의 내함을 진솔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발로한 것이라 하여 “성색” 등 형식 요소도 망라시켰다. 천기를 직접 경술과 연관시키지는 않았지만, 시문에 대한 자타의 평에서 언제나 經本설이 주로였음을 알 수 있었고, 시평의 용어나 개념 등도 대체로 유가시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계곡이 주장한 “以人觀詩”시점에서 보면 천기설의 기반은 유가의 시론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國風을 천기의 시로 규정한 洪良浩의 언급에서도 방증된다. 특히 “以人觀詩”설은 현대의 사회역사비평방법론에 해당하고, “眞情實境”, “情境妥適”은 “情景交融”의 意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천기설은 현대의 시 창작논의 靈感說과도 맥이 통한다. 요컨대 계곡의 천기설은 재래의 시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대인의 의식에 다가선다는 점에서 가치를 논할 수 있다.


It is well known that Gye-kok Chang-yu, who was born with bright qualities since he was young, was proficient not only in Yuga Scriptures such as “The Book of Odes”, but also in Taoists(道家)·Buddhist(佛家)·medicine and divination(醫卜)·astronomy·geography. And further his academic achievement was also supported by these studies.
On the premise of this academic background, this paper studies theory of Si-seo(詩序說), theory of Si-sa-gyeng(詩史經說), theory of Sa-bu(詞賦說), theory of Cheon-gi(天機說), focusing on the influence of “The Book of Odes” on Gye-kok's criticism of poems.
Gye-kok's “Si-seo(詩序)” had abandoned “Mo-si-seo(毛詩序)” and completely denied Juja(주자)'s opinion that claiming the theory of “obscene writers(淫者自作)”. This is meaningful in that it showed an open consciousness that academic research should be conducted in various ways of thinking, breaking away from the academic atmosphere of one-sided to the Juja.
The theory of “Si-sa-gyeng” could be seen that Du's poetry which was fused by peotry, history, and scriptures were mainly influenced from the Yuga scriptures, including “The Book of Odes”. This is a creative understanding of Gye-kok which has deviated from common sense that regards Du's poetry as a history of poetry. It is worthy that Gye-kok has presented the characteristics of Si-sa-gyeng as “keen and meaningful(言切志深)”, “well equipped content with the point(事核而備)”, “the satire is indirect without hidden(刺婉不隱)” and the content of Gye-kok's criticism of poems could be extracted from these facts above.
The theory of “Sa-bu(詞賦)” considered “I-sao(離騷)” as a variety of “The Book of Odes”, “Sa-bu” as a version of “I-sao”, and the connecting keyword between “The Book of Odes”, “I-so” and “Sa-bu” as “beautiful and custom(麗以則)”. “Sa-bu” is similar to the role of “The Book of Odes” in Si-gyo(詩敎), such as correcting disposition and restoring human conscience and the law of things. However, one of the important causes of Gye-kok's tendency to “Sa-bu” is identified as the state of spiritual and exquisite literature and art. This suggests that it cannot be achieved unless it reaches the level of “nature's mystery(獨秉天機)”.
The theory of “Cheon-gi(天機)” includes form elements such as “the sound and color of the poem(聲色)” which has the content of nature expression of sincere feelings. Although Gye-kok has not directly related Cheon-gi to scriptures, it was found that his criticism of poems is always based on Yuga scriptures from the reviews by himself or others. His terms and concepts of poetry review generally has not deviate from the category of Yuga's criticism of poems.
From the point of view of “I-in-gwan-si(以人觀詩)” claimed by Gye-kok, it is clear that the basis of the theory of “Cheon-gi” lies in Yuga's criticism of poems. This is also evidenced by the mention of Hong Yang-ho(洪良浩), which defines “Guk-pung(國風)” as a poem of Cheon-gi. In particular, the theory of “I-in-gwan-si(以人觀詩)” corresponds to the modern social criticism methodology. “Sincere feelings and realistic environment(眞情實境)” and “suitability between feelings and conditions(情境妥適)” are nothing but the artistic conception(意境) of “fusion of feelings and conditions(情景交融)”.
The theory of “Cheon-gi” is in line with the inspiration theory(靈感說) of modern creation of poetry. In short, the value of Gye-kok's Cheon-gi theory could be discussed in that it approaches modern consciousness while based on traditional criticism of poems the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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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金道洙 編 諸家文 選集 『諸家文粹』 硏究

저자 : 白晋宇 ( Baek Jin-woo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9-21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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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金道洙가 편찬한 문장 選集인 『諸家文粹』에 관한 연구이다. 이 자료는 몇 편의 序跋類 자료와 비평사 선행 연구를 통해 그 성격에 대해 짐작해왔을 뿐, 실제 現傳 여부와 소재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필자는 최근에 전북대학교 도서관에서 동일 書名의 자료를 확인하고 내용을 검토한 결과 失傳 자료로 여겨졌던 김도수 편 『제가문수』와 일치하는 자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편자 김도수는 젊은 시절부터 학습 범위가 상당히 넓었다. 儒家의 범위를 벗어나 佛家와 道家를 비롯한 諸家書에 큰 관심과 애호를 보였음을 여러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애호는 오랜 기간 깊이 있는 제가서 학습과 독서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가 다시 자신의 학습과 애호를 반영하는 문장 선집 작업으로 이어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제가서에 대한 애호를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유가의 가치관 안에서 일정 부분 타협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제가문수』 편집 과정에서 도가와 불가의 글을 덜어내는 산정 작업을 거쳤다는 김도수의 자기 고백이 이를 방증한다.
본론에서는 새로 발굴한 전북대 소장본이 김도수 편 『제가문수』와 일치함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먼저 김도수의 『제가문수』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스승 李德壽의 「諸家文粹引」, 김도수 본인이 산정 작업을 마친 후 작성한 「刪定諸家文粹說」 등, 이 자료를 둘러싼 서발류 문장에서의 언급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제가문수』의 전반적인 성격을 정리하였다. 다음으로 전북대 소장 殘存本의 내용을 검토하여 그 체제와 선집의 특징이 『제가문수』와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이를 토대로 『제가문수』의 현전 여부를 확정하고 잔존본에 의거하여 완질본의 형태가 어떠했을지 재구하고자 하였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collective work compiled by Kim Do-soo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The character of this material has only been inferred through a few documents and prior research, however the actual existence and whereabouts of this material have not been clearly known. Then I recently checked and examined a book of the same title in the library of Chonbuk University. And I became convinced that it was a material consistent with Kim Do-soo's edition, which was considered to be disappeared.
Kim Do-soo, known to compiler of this book, had a fairly wide range of learning from a young age. It can be confirmed from various sources that he showed great interest and affection for the books of the Buddhist family and the Dao family. This affection has led to in-depth study and reading of books for a long time, which in turn led to a selection of prose that reflect one's own learning and love. However, in the process, he did not fully express his love, and it seems that he came up with a compromised result within the values of Confucianism. The self-confession of Kim Do-soo that he went through the compilation of removing the Taoist and Buddhist texts proves this.
In this article, the discussion was conducted in the following manner to prove that the newly discovered copy of Chonbuk National University's collection is consistent with Kim Do-soo's edition of 『Jegamunsoo』. First, in the subordinate sentences surrounding this material written Lee Deok-soo and Kim Do-soo himself after completing the compilation. The comments were confirmed, and through this, the overall character of 『Jegamunsoo』 was summarized. Next, by examining the contents of Chonbuk National University's collection, it was confirmed that the system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thology were consistent with 『Jegamunsoo』. Based on this, it was attempted to determine the existence or not of 『Jegamunsoo』 and to reconstruct what the form of the finished version would have been based on the remaining co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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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素谷 尹光紹 「孤舟錄」의 저술 배경 및 자기서사 양상

저자 : 오보라 ( Oh Bo-ra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3-25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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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素谷 尹光紹(1708~1786)가 「孤舟錄」을 저술한 동기는 무엇이며, 「고주록」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재구했는지 살펴보았다. 윤광소는 尹拯의 각종 저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懷尼是非와 관련된 소론의 의리를 정립하고자 했다. 이처럼 윤광소는 윤증의 뒤를 잇는 소론계 문인 가운데 핵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윤광소는 「고주록」 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고자 했다.
윤광소의 전체적인 저술 경향을 고려했을 때, 윤광소는 당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변론하여 세간의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강하게 지니고 「고주록」을 저술했다고 판단된다. 그의 문집에는 문예미를 추구하거나 감정의 진솔한 표현을 위주로 하는 시문이 거의 없고, 자신과 가문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주를 이룬다. 또한 윤광소는 문집 이외에도 다수의 저술을 남겨, 회니시비 이후 정치적 열세에 속했던 소론, 특히 노성 파평윤씨 가문의 무고함·정당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고주록」은 정치적 목적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저술이다. 윤광소는 「고주록」에서 자신이 오로지 능력에 의해 영조에게 신임받았음을 명확히 하고, 자신을 공격하던 반대 세력은 탕평 의리와는 거리가 먼 자들로 형상화했다. 제3자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윤광소가 반드시 의리의 측면에서 정우량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영조실록』의 사평에서는 윤광소가 사적인 원한 때문에 정우량을 공격했다고 하였으며, 윤광소가 사사로이 자신의 선조를 변호해 선정신 송시열을 공격한다는 비난은 윤광소 생애 내내 따라다녔다. 이처럼 윤광소의 정치적 행보를 둘러싼 세간의 평이 엇갈렸다.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윤광소로서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행보를 변론하고 의혹을 해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윤광소는 「고주록」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 같다.
이처럼 윤광소는 평생에 걸쳐 자신과 가문의 입지를 변론하고 소론의 의리 명분을 확립하고자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은 당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 듯하다. 윤광소 이후, 그의 가문에서 정계에 진출한 자가 드물었으며, 윤광소의 학문 역시 가문의 후손이 아닌 영남의 강필효에게로 이어진다. 아울러 윤광소가 자편한 문집은 윤광소가 세상을 떠난 지 90년이 지나서야 간행된다. 윤광소가 이러한 미래를 예견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윤광소 이후 윤광소의 무함을 풀어줄 자는 윤광소 자신 이외에 없었다. 윤광소의 「고주록」은 윤증 이후 수세에 몰린 파평 윤씨 가문의 후손이 혼란한 黨爭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한 기록이자 자기 변론이라고 볼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d the background and self-narrative pattern of the author of 「Kojurok」 by Yoon Kwang-so(尹光紹). Yoon Kwang-so systematically organized various writings of Yoon Jeung and tried to establish the justification of the insistence related to Hoenisibi(懷尼是非). As such, Yoon Kwang-so had received little attention from academia so far, even though he is a key figure among the Soron writers who succeed Yoon Jeung. Yoon Kwang-so tried to organize his life and represent his position through a self-narrative called 「Kojurok」.
「Kojurok」 is an article that reveals very strong political purpose. In this article, Yoon Kwang-so clarified that he was trusted by King Yeongjo solely by his ability, and embodied the opposing forces who attacked him as those who were far from Tangpyeong loyalty. From a third party's point of view, it is difficult to say that Yoon Kwang-so is necessarily superior to Jung Woo-ryang in terms of justification. As mentioned earlier, in the private review of Yeongjo Annals, Yoon Kwang-so attacked Jung Woo-ryang because of his private resentment, and criticism that Yoon Kwang-so defended his ancestors and attacked Song Si-yeol, the god of selection, followed throughout his life. As such, public reviews surrounding Yoon Kwang-so's political moves were mixed. Yoon Kwang-so, who was politically on the defensive, would have no choice but to plead his own actions and explain the suspicions. Therefore, it seems that Yoon Kwang-so tried to secure legitimacy for his actions through 「Kojurok」.

KCI등재

8『熱河日記』 伯夷 記事의 형상화 방식과 쓰기 전략

저자 : 朴壽密 ( Park Su-mil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3-28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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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熱河日記』 伯夷 기사의 형상화 방식을 살펴 燕巖의 은밀한 쓰기 전략을 이해하고 백이 기사가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이다. 먼저는 백이 신화의 형성 과정을 정리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백이 기사의 작가 의식을 살펴보고 연암이 어떠한 방식으로 백이 기사를 형상화하고 있는지를 분석해보았다. 백이 기사에는 세 개의 일화가 나오는데, 공통으로 고사리가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연암은 고사리가 해를 끼치는 독물이라고 함으로써 백이 의리를 신봉해온 春秋 義理論者의 허위의식을 조롱하였다. 백이에 대해 풍자의 영역까지 나아간 작품은 백이 기사가 유일하다. 다음으로 연암이 어떤 방식으로 백이 기사를 형상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백이 기사는 날짜를 재배치하고 입체적인 구성을 하였다. 『열하일기』 7월 27일의 백이 기사는 본래 7월 26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날짜를 바꾸어 일화를 수록한 것은 전략적인 배치였다. 7월 27일의 백이 기사는 과거의 이야기에 다시 더 과거의 일화 2개가 들어 있는 구성이고, 세 개의 일화는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암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기술함으로써 자신이 글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두 번째는 객관적 거리두기이다. 연암은 자신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거리두기를 하였다. 이는 자신에게 가해질 비난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쓰기 전략이다. 백이 기사에는 하나의 일화가 끝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연암의 의도된 표현 방식이다. 세 번째는 사건의 戲畫化이다. 백이 기사에서 풍자의 칼끝은 대상 자체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꺼낸 말에 있었다. 『열하일기』의 백이 기사에 이르러 백이는 희화화되고 춘추 의리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연암은 노련한 쓰기 전략을 통해 풍자를 희석함으로써 일화가 과거의 가벼운 小品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This study is to appreciate the writing strategy of YeomAm and its meaning of Baekui articles by reviewing the way of embodying those articles. The first approach is to sum up the process of making Baekui mythology. On this approach, the writer consciousness of Baekui articles is to be examined and the process of embodying to be analysed. In Baekui articles there are three episodes, in all the bracken is found as a key common element. YeonAm considered bracken as a harmful plant, in this way he ridiculed the empty formality of the supporters of the Spring & Autumn period of praising Baekui royalty. The Baekui articles are the only one satire work about Baekui. Then the way of embodying those Baekui articles is to be researched. Firstly, in Baekui articles there are rearranged dates and three-dimensional structures. in 『Yeolhailggi』 the Baekui article on 27th of June was the story happened actually on 26th of July. This is strategic rearrangement in writing. The article on 27th of July is rearranged and has three-dimensional structures of borrowing two more older previous episodes on the past story. He tried to be free from the responsibility of writing in a way of just rearranging and telling the past stories. Secondly, it is to make objective distance. YeonAm made a distance, not involving directly in the events by himself. It is the strategy of writing to be free from any expected criticism to himself. There are expressions about people laughing at final moments of each episode, it also is his intentional way of expression. Thirdly, it is to make caricature of story. The final target to be criticized in Baekui articles is not to the objects themselves, but to the talks of theirs. In Baekui articles of 『Yeolhailggi』, Baekui is to become caricatured and the fidelity of Spring & Autumn period to be ridiculed. YeonAm made intentionally the episodes light happening by diluting satire with skilled writing strategy.

KCI등재

9李德懋의 『靑莊館全書』 편집상의 오류에 대한 고찰

저자 : 權政媛 ( Kwon Jung-wo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5-32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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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懋는 조선후기 박학으로 널리 알려진 문인으로, 평생을 서적에 몰두한 독서광이었다.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는 총 71권 32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그의 평생 著作의 기록이자 讀書記이기도 하다. 이는 이덕무의 삶과 사상, 학문과 문학의 대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당대 문단에 새롭게 유입된 明末 淸初 서적의 유입과 文風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계에서 일찍부터 관심을 받아 影印·國譯되었고, 연구 성과 또한 상당하다.
『靑莊館全書』는 이덕무의 아들 李光葵에 의해 편집·편찬되었다. 이덕무의 문집이 처음 간행된 것은 사후 정조의 명에 의해서 尹行恁의 주관 하에 이뤄졌다. 이때 간행된 것이 『雅亭遺稿』로, 총 8권 4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덕무 저작의 1/10 정도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50여 권은 본가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광규는 『아정유고』 간행 이후 집에 보관되어 있던 이덕무의 저작을 손수 수집하여 '순차적으로' 정리하고자 하였고, 10여 년의 노력 끝에 『청장관전서』를 완성하였다. 그리고는 완성된 원고를 李畹秀에게 교정을 부탁하였고, 이원수의 주도 하에 교정 및 필사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필사 작업에는 20여 명이 투입되었고, 기간 또한 1년여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문집 분량의 방대함에 비해 교정·필사가 단기간에 이뤄졌기에 편찬 과정에서 편집 및 기록상의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였다.
본고는 『청장관전서』 속 오류를 검토하여 수정 보완하였다. 먼저 편집상의 오류로 1)현재 널리 유통되는 4종의 판본을 비교해서 구성과 체재의 차이의 원인을 밝히고 수정 보완할 자료를 제공하였다. 2)『嬰處詩稿』와 『刊本雅亭遺稿』에 수록된 시와 척독의 배열이 편집의도와는 달리 시기가 뒤섞인 정황이 보이는데, 저술 시기를 밝힘으로써 오해의 여지를 줄였다. 그리고 기록상의 오류로 「연보」에 보이는 일자 표기의 誤記를 바로잡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청장관전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Lee Deok-moo(李德懋) was a writer widely known for his literature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d he was a lifelong reading book buff. His collection of writings, 『Chungjangkwan Jeonseo(靑莊館全書)』 was translated into Korean as early as possible by the academic community, and the results of the study also accumulated considerably accumulated significantly.
『Chungjangkwan Jeonseo』 was edited and published by his son Lee Kwang-gyu after Lee Deok-moo's death. However, the volume of the work was very large and the transcription was short, so errors could occur.
This paper finds errors in the contents of the 『Chungjangkwan Jeonseo』 and corrected them. First of all, poems and Chuck-Dok(尺牘) included in 『Yeongcheosigo(嬰處詩稿)』 and 『Ganbon Ajeongyugo(刊本雅正遺稿)』 were intended to be arranged by time, but they were actually not arranged in a mixture of periods. So, he revealed the time of writing and reduced the possibility of misunderstanding. Second, It found errors to the period of writing in annual report and corrected them.
It is hoped that this paper will help more accurate research on Lee Deok-moo and 『Chungjangkwan Jeonseo』 in the future.

KCI등재

10艮齋 田愚의 『檢本』에 대한 일고

저자 : 鄭敬薰 ( Jung Kyung-hoo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9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23-34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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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艮齋 田愚(1841~1922)의 『檢本』에 대해 최초로 소개하면서 가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우는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 논쟁 가운데 화서학파와 노사학파, 한주학파 등과 함께 心說 논변을 처음 제기한 인물이다. 본고에서 소개한 『검본』은 전우가 37세 완성한 심설 관련 저술이다. 전우의 성리설은 『艮齋集』을 비롯하여 『五賢粹言』, 『性理類選』, 『臼山旨訣』 등에 산재되어 있다. 『검본』도 전우 심설에 관련된 초기의 저서라고 할 수 있다. 『검본』은 기호학맥의 낙론계 학설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최근까지 『검본』의 소재를 알지 못했다. 『검본』은 『朱子語類』에서 가져온 명칭으로 잘못된 견해에 대해 근본을 검토한다는 의미로 상편,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은 『주자어류』를 모방하여 「心」, 「虛靈知覺」, 「神」, 「理」, 「情」, 「氣」, 「德」, 「事」 등 여덟 가지 주제에 대해 주자의 견해를 중심으로 설명하였고, 按說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서술했다. 하편은 상편에서 제시한 여덟 가지 주제에 대해 송시열, 김창협 등 기호학자 중심으로 견해를 모아 상편의 여덟 가지 학설을 밝혔다.


This paper first introduced 『Gumbon(檢本)』 by Ganjae(艮齋) Jeon-woo(田愚, 1841-1922) and looked into its value. Jeon-woo was the first to raise the Shim Seol(心說) debate along with the Hwaseo School, the Nosa School, and the Hanju School, among the representative debates of Joseon Neo-Confucianism. 『Gumbon』, introduced in this paper, is a book related to Shim Seol, completed by a comrade at the age of 37. The theory of the Confucianism of Comrades is scattered in 『Ganjaejib(艮齋集)』, 『Ohyeonsueon(五賢粹言)』, 『Seonglilyuseon(性理類選)』, 『Gusanjigyeol(臼山旨訣)』. 『Gumbon』 can also be said to be the earliest book related to the Shim Seol of Jeon-woo. 『Gumbon』 is an important material that shows that it faithfully inherits the theory of the Naglon(洛論) of the Giho school. However, the academia did not know about the existence of 『Gumbon』 until recently. 『Gumbon』 is a name taken from 『Juja-eolyu(朱子語類)』, meaning to examine the root of wrong views. All are made up of upper and lower parts. The upper part imitated 『Juja-eolyu』 and explained eight themes such as 「Sim(心)」, 「Heolyeongjigag(虛靈知覺)」, 「Sin(神)」, 「Li(理)」, 「Jeong(情)」, 「Gi(氣)」, 「Deog(德)」, 「Sa(事)」. And he described his opinion through Anseol(按說). The lower part mentioned eight themes presented in the upper part. Eight theories of the above were presented by gathering opinions centering on the Giho school such as Song Si-yeol and Kim Chang-hy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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