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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T`oegye Studies

  • : 퇴계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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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5-4398
  • : 2713-8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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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3)~149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578
퇴계학보
149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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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퇴계의 주돈이 사상 계승적 측면

저자 : 王晚霞 ( Wang Wan-xia )

발행기관 : 퇴계학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보 14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61 (5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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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한국 유학사에서 지난날을 이어받아 앞날을 개척한 의의를 지닌 명실상부한 유학의 대가다. 『聖學十圖』와 『天命新圖』를 전형적 대표로 하는 퇴계학설은 圖說學적 학문 방법ㆍ만물연화의 우주론ㆍ하나가 나뉘어 둘이 되고 합하면 하나가 되는[一分爲二合而爲一] 사유방법ㆍ사람은 누구나 성현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인식론 등의 여러 방면에서 모두 염계 주돈이에 대한 생동감 있는 계승과 진일보한 발전이다. 퇴계와 염계 사이의 사상적 계승 관계를 논증하는 것은 독특한 특색을 갖춘 한국 유학 발전의 중요한 일면이고, 또한 송명이학 연구를 심화하는데 소홀히 할 수 없는 절차이기도 하다.


Yi T'oegye is a generation of Confucianists who are worthy of inheriting the past and opening up the future in the history of Confucianism in South Korea. Yi T'oegye's theory, represented by Shengxue Shitu and Tianming Xintu, vividly inherits Chou Tun-i in the following aspects: the academic method of iconography theory, the debate about cosmology of the evolution of all things, the way of thinking that divides into two and combines into one, and the epistemology that everyone can become a saint, except that, he further development it. It is an important way to deepen the study of Neo Confucianism in song and Ming Dynasties that the ideological inheritance relationship between Tuixi and Lianxi, and meanwhile, It is an important aspect of the unique development of Korean Confucianism, It is also an important way to deepen the study of Neo Confucianism in song and M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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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희(朱熹)와 이황(李滉)의 수사학적(修辭學的) 『논어(論語)』 해석(解釋)

저자 : 유민정 ( You Min-jung )

발행기관 : 퇴계학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보 14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3-105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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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朱熹의 『論語集注』와 李滉의 『論語釋義』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고, 경학의 한 방법으로서 수사학적 경전 해석의 보편성을 究明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수사학적 경전 해석이란 '문장의 구조적 특징을 통해 경문을 해석하고, 이에 대한 어휘 배열, 문장 구조, 표현 기교 등을 注解한다'는 의미를 지향한다. 철학가나 문학가를 막론하고 유학자라면 경전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았으며, 그들의 문집이나 『論語』 주석은 이러한 관점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고찰하였다.
전근대 학술장은 오늘날의 분과학문과 달리 文史哲이라는 통합적 사유를 기반으로 성립한다. 하지만 국내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경전과 문학을 연계한 연역에 관심이 부족하여, 양자 간의 평형 내지는 융합의 형태인 수사학적 경전 해석은 소홀하게 논의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 살펴본 주희와 이황의 『論語』에 대한 수사학적 접근은 전근대 수사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제공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use of rhetorically oriented exegesis as a method of study of the Confucian Classics, based on Zhu Xi 朱熹 (1130-1200)'s Lunyu Jizhu 論語集注 (Collected commentaries on the Analects) and Yi Hwang 李滉 (1501-1570)'s Nonŏ Sŏgŭi 論語釋義 (Exposition of the Analects). Rhetorically oriented exegesis is defined as interpreting the classics through the structural features of sentences, investigating their vocabulary, sentence structure, and forms of expression. Regardless of philosophers or literary scholars, a Confucian scholar considers the classics as a model for writing. The rhetorical commentaries on the Analects clearly display this point of view.
Pre-modern scholarship consisted of an integrated study of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 By contrast, existing studies perceive philosophy and literature as separate categories, causing a lack of interest in rhetorical commentary among current scholars. Thus, Zhu Xi and Yi Hwang's rhetorical commentaries on the Analects, the subject of our examination, will help us to not only understand pre-modern rhetoric, but also provide a three-dimensional view of the Confucian traditions of the pre-moder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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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해석을 둘러싼 쟁점과 맥락 - 이만인(李晩寅)과 윤주하(尹胄夏)의 논변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종석 ( Kim Jong-seok )

발행기관 : 퇴계학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보 14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7-14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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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895년 이진상의 『한주집』 발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전개된 이른바 영남 심설논쟁에서 특히 쟁점이 되었던 이황의 『성학십도』 가운데 「심통성정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퇴계학파 내부에서 벌어진 논변의 쟁점과 맥락을 고찰하였다. 먼저 「심통성정도」에 대한 이황과 이진상의 견해를 검토하고, 중도와 하도를 각각 본원상의 관점과 유행처의 관점으로 정의하고 중도에 이황의 주리론의 참뜻이 들어있다고 하는 이진상의 주장과 관련하여 도산서원을 대변하는 李晩寅의 「寒洲李氏動靜說條辨」과 한주문하를 대표하는 尹胄夏의 「反究錄」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만인은 「심통성정도」 중도가 결코 이진상의 말처럼 심즉리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중도가 비록 기품 중에서 본연성의 발현 과정만을 따로 떼어서 나타낸 것이라고 하지만 심권 상단에 合理氣라고 명기해 둔 것처럼 리기지합을 전제로 하면서 다만 본연성 부분만을 나타낸 것일 뿐 미발시에 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주하는 미발시에 기의 용사를 부정하는 이진상의 주장은 근거 없이 한 말이 아니고 이황 심론의 핵심적 발언에 근거한 것으로서 '心合理氣'는 이황이 일반론으로서 말한 것일 뿐 이황의 주리철학의 참된 요결은 '惟理而已' 라는 언급에 있으며 그러한 의도가 「심통성정도」 중도에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만인과 윤주하의 논쟁을 검토한 결과, 이들이 다툰 논란의 핵심에는 “미발시에 기의 용사를 인정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나아가 미발시에 기의 용사를 인정하는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결국 『성학십도』는 우주의 일부로서 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우주원리의 실현 과정에 올바로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이황이 제시한 대안이었고, 이진상을 비롯하여 영남의 유학자들은 이황의 대안을 서구문명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조선말기의 불안한 시대상황에 대처하는 유일한 해법으로 보았으나 양측이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다.


This study examined the context and meaning of the discussion within Toegye School over how to interpret the “diagram of saying, 'The Mind Combines and Governs the Nature and Feelings'”(心統性情圖) in Yi Hwang's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聖學十圖). It was a particular issue in the so-called Yeongnam Simseol(心說) controversy which was developed in earnest after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of Hanju's literary works”(寒洲集) in 1895. First, we reviewed Yi Hwang and Lee Jin-sang's views on “diagram of saying, 'The Mind Combines and Governs the Nature and Feelings'”, and analyzed the views of Yi Man-in(李晩寅) and Yoon Ju-ha(尹胄夏) regarding Lee Jin-sang's claim that the middle diagram(中圖) contains the true meaning of Yi Hwang's theory. After reviewing Lee Man-in and Yoon Ju-ha's argument, we could reach the conclusion that the question of “can we recognize Ki(氣)'s playing a role before Li(理) does move?” was at the heart of the controversy, and furthermore, the question was linked to the philosophical question of how to view humans. In the end, the “Ten diagrams on Sage Learning” was an alternative to the question of how a human being, as part of the universe, could become a moral entity by properly intervening in the process of realizing universal principles, and Lee Jin-sang and other Confucian scholars in Yeongnam district saw Yi Hwang's alternative as the only solution to the unstable situation of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Western civilization was introduced in earnest, but the views of the two sides diff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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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조(正祖)의 '심화(心畵)' 차원의 서예 인식에 관한 연구

저자 : 조민환 ( Jo Min-hwan )

발행기관 : 퇴계학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보 14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1-17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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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서예를 '玩物喪志' 차원에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서예를 '마음의 그림[心畵]'이란 차원, 서예학습을 敬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하여 학문을 익힌다는 차원, 혹은 심성 도야 차원, '마음이 바르면 붓[=글씨]이 바르다[心正卽筆正]' 라는 차원에서 이해하는 경우에서였다. 그 하나의 예로 조선조 正祖의 서예인식을 들 수 있다. 조선조 후기의 문예 및 書風 경향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정조의 '文體反正'과 '書體反正'이다. 邪學을 물리치고 正學을 밝힐 것을 목표로 하는 정조가 유가의 道統觀과 진리의 무오류성 차원에서 朱子學을 신봉하고 문체반정을 추구한 사유는 書體反正에도 적용된다. 특히 명ㆍ청시대의 글은 治世의 글이 아니라는 비판에 담긴 사유는 書體反正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조는 당시 尹淳이 주도했던 자유분방한 서풍이 眞氣를 잃어버렸다는 차원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이른바 '六寧六毋說'을 주장한다. 정조가 하라는 것은 '肥, 拙, 滯, 鈍, 劣, 庸'이고, 하지 말라는 것은 '瘦, 巧, 流, 刻, 狂과 奇, 苛와 僻'이다. 그런데 정조의 '六寧六毋說'의 핵심은 진짜로 '肥, 拙, 滯, 鈍, 劣, 庸'등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六寧六毋說'은'瘦, 巧, 流, 刻, 狂과 奇, 苛와 僻'등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것으로, 궁극적인 지향점은 주자학에 기반한 중화미학을 서예에 실현하는 것에 있다. 이런 점은 중화미학을 서예에 잘 적용한 趙孟頫의 蜀體를 긍정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같은 六寧六毋說에는 정조가 治世에 도움을 주는 眞氣가 담긴 서체 회복을 꾀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데, 이것이 書體反正의 핵심이다. 이런 書體反正의 '바른 것으로 되돌린다는 '反正[=返正]'의 핵심에는 中和美學의 서예적 실천 및'存天理, 去人欲'를 추구하는 미학이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정조가 '心正卽筆正' 차원에서 典雅하면서 敦實하고 圓厚한 溫柔敦厚한 서풍을 강조하면서 '眞氣'가 담긴 趙孟頫 蜀體를 쓰라는 것에는 이른바 '書以載道' 사유가 담겨 있다.


It is the case that calligraphy is understood in terms of 'picture of the heart,' in terms of learning calligraphy from a respectful mind, or in terms of helping one's mind, and in terms of 'writing is correct when one's heart is right.' One example is the recognition of calligraphy by King JeongJo of the Joseon Dynasty.
Jeongjo's belief in Neo-Confucianism in 'the dimension of revealing the line of Confucian saints' and 'the error-free dimension of truth' is also applied to 'Handwriting Restoration and Real Spirit Embodiment.' In particular, the writings of the Ming and Qing eras criticize that they are not 'the writings that govern the world,' which apply to 'Handwriting Restoration and Real Spirit Embodiment.' Jeongjo argues that the so-called 'do six things and do not six things' as a way to overcome the free-spirited west wind led by Yoon Soon at the time in terms of losing its 'true energy.' What King Jeongjo wants to do is 'fatty, dreary, stagnant, dull, brave, ordinary'. Don't do it is 'thinness, finesse, lack of restraint, harshness, madness and eccentricity, harshness and bias.' But the point of Jeongjo's 'do six things and don't six things' is presented as a way to overcome problems seen in 'thinness, craftiness, lack of restraint, harshness, madness and eccentricity.' King Jeongjo's the ultimate goal is to realize the moderation aesthetics based on Neo-Confucianism in calligraphy. This can be seen from the affirmation of Zhao MengFu's calligraphy, which applies the aesthetic of moderation well to calligraphy. These 'do six things and do not six things' is intended to restore the typeface containing "true energy" that helps King Jeongjo rule the world, which is the core of Handwriting Restoration and Real Spirit Embodiment. The reason for this 'Handwriting Restoration and Real Spirit Embodiment' is to realize the beauty of moderation in calligraphy, as well as to 'preserve the reason of heaven and eliminate human desire.' In conclusion, King Jeongjo's emphasis on the style of calligraphy, which came from the point of 'If you have a good heart, you have good handwriting,' contains the reason for 'loading the truth as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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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왕충의 인성론(人性論)은 모순을 범하고 있는가?

저자 : 박동인 ( Park Dong-in )

발행기관 : 퇴계학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보 14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5-21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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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왕충의 인성론은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한 주장에 의문을 품고, 그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그리고 그 검증 과정을 통해 왕충 인성론의 참된 모습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결과, 얼핏 보기에 왕충의 인성론은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본성」편에서는 주로 인성의 변화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솔성」편에서는 인성의 변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본성」편과 「솔성」편 전체를 재검토해 본 결과 왕충의 인성론은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왕충이 인간의 본성을 氣적으로 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 우주자연으로부터 품부 받은 氣의 厚薄ㆍ多少의 정도에 따라 인간 본성의 善과 惡이 결정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왕충에 따르면 그 사람이 우주자연으로부터 어떤 성질의 기를 품부 받았는가에 따라 본성이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 그 중 지극히 두텁고[厚] 풍부한 기[多]를 품부 받은 사람은 지극히 선[極善]하여 그 자체로 변화가 필요 없고, 지극히 엷고[薄] 적은 기[少]를 품부 받은 사람은 그 자체로 악하여 선으로의 변화가 불가능하다. 전자는 그 자체로 선하니 더 이상 말할 것이 없고, 후자가 바로 왕충이 인성의 변화 불가능성을 말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 두 영역에 속한 사람은 1~2퍼센트 정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98~9퍼센트에 속하는 나머지 대부분은 악과 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교화와 교육을 통해 선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다. 왕충이 인성의 변화 가능성을 말한 것이 이 영역에 속한 사람이다. 그래서 왕충은 이들 중간 등급의 일반백성들을 교화하고 교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교화 혹은 교육의 도구로 예와 악을 제시했다. 예는 도덕적 일탈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고(교화), 악은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다(교화). 그런데 왕충은 이에 그치지 않고 법의 기능을 이용하여 극단적으로 악한 사람조차 교화하고자 했다. 법의 사후처벌 기능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기능을 설정한 것이 그것이다. 왕충이 법의 사전예방 기능을 설정한 측면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교육 혹은 교화를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왕충의 인성론은 모순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품부 받은 기의 정도에 따라 변화 가능성 여부를 다르게 규정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왕충이 동중서처럼 性三品說을 채택하는 대신 '性有善有惡說'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보다 포괄적으로 다루는 방법이요, 인간 본성의 선과 악의 스펙트럼을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왕충이 기의 후박ㆍ다소로 인성을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왕충이 의도한 것은 교화 혹은 교육이었음을 알 수 있다.


This article attempted to validate the claim, questioning the claim that “Wang Chong's Theory of Human Nature is in contradiction.” And through the verification process, the aim is to find the true appearance of Wang Chong's Theory of Human Nature.
As a result of the research, at first glance, Wang Chong's Theory of Human Nature seemed to violate a contradiction. This is because in the 'Benxing' section it seems to be mainly referring to the immutability of Human Nature, and in the 'Shuaixing' section it seems to be talking about the possibility of change in Human Nature. However, as a result of my review of the entire 'Benxing' and 'Shuaixing' sections, Wang Chong's Theory of Human Nature was not in contradiction.
This is because Wang Chong is solving human nature as a Qi. It is that the good and evil of human nature is determined by the degree of Hou-Bo·Duo-Shao of Qi received from cosmic nature when humans are born. According to Wang Chong, the nature of the person is either good or evil, depending on what kind of Qi he received from the universe nature. Among them, those who are extremely thick and rich Qi are extremely good and do not need change in themselves, and those who are extremely thin and receiving little Qi are evil in themselves, making it impossible to change to good. The former is good in itself, so there is nothing more to say, and the latter is the part where Wang Chong spoke of the nature of the person's unchangeability.
However, those in these two areas are only a fraction of 1-2 percent, and most of the rest, 98-99 percent, have both evil and good, which can be transformed into good through edification and education. So Wang Chong aimed to edify and educate these middle-class general people. And Li(禮) and Le(樂) were suggested as tools for edification or education. Li (禮) is to prevent moral deviations in advance(edification), Le(樂) is to restrain emotions(edification). Wang Chong, however, attempted to refine even the extremely evil by using the functions of the law. It is the addition of preventive functions as well as the post-punishment functions of the law. In terms of Wang Chong's added precautionary function of the law, we can see how much he valued education or edification.
From the above, it can be evaluated that Wang Chong's nature of the person does not violate contradictions, but rather defines the possibility of change depending on the degree of Qi received. And Wang Chong chose 'Xing-You-Shan-You-e-Shuo' instead of adopting 'Xing-San-Pin-Shuo' like Dong-Zhong-Shu, because it deals with the nature of the person more comprehensively. It is because I saw that the spectrum of good and evil of the nature of the person could be viewed more broadly. This is why Wang Chong said the nature of the person as Qi's Hou-Bo and Duo-Shao. And through this, we can see that what Wang Chong intended was edification or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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