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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ekje Hakbo

  • : 백제학회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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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2005-9469
  • : 2713-8380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9)~40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247
백제학보
40권0호(2022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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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中國 南朝 塼築墳을 통해 본 武寧王陵의 '外簡內奢'

저자 : 장단위 ( Zhang Tuanwei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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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송산리고분군 내에서 우연히 무령왕릉을 발견했다. 이는 정확한 墓主를 밝혀주는 백제에 속하는 유일한 무덤이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시기의 주류 묘제인 塼築墳文化를 받아들여 구축하였다. 이 점은 백제 웅진시기를 이채롭게 하는 대목일 것이다. 전축분을 포함한 출토유물에서도 남조의 영향이 다수 표출되었다. 따라서 무령왕릉의 구조나 출토유물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고 이해하려면 무령왕릉과 중국 남조 전축분 간의 比較硏究는 불가결할 것이다.
무령왕릉에 관한 상장의례 시설은 추정으로 본 艇止山 遺蹟뿐이다. 그리고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에 제사에 관한 방단적석유구도 2기만 발견되었으며, 埋葬主體部가 없어서 祭禮施設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고분군에 지금 확인 가능한 무덤은 총 15기에 달하는데, 그 중에 제례시설로 본 2기의 방단적석유구는 여러 무덤과 서로 어떤 대응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에 南京獅子沖南朝陵園과 蕭偉墓의 경우에는 능원담장, 신도, 석각(석수, 석주, 석비), 墓闕 등 예제시설을 갖추고 있는 정연한 능원배치에 비해 무령왕릉 외부에는 소박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양나라에 존속 되었던 55년 동안 백제에서 梁으로 遣使한 횟수는 총 7회에 달하였으며, 백제가 남조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나타난 지체성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규명하려면 南朝文化에 착안하기보다 백제의 고유문화에서 그 단서를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무령왕릉과 남조 왕후일급 무덤에 출토유물의 종류 간의 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무령왕릉과 비슷한 시기 및 동등 신분위계를 가진 양나라 諸王候墓에서 출토된 유물의 공통점은 묘지석과 磁器類遺物이 있다는 점이다. 다만 남조시기의 皇帝陵이나 王候墓에는 거의 다 도기나 俑이 출토되었지만 반면 무령왕릉에는 한 점이라도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백제시기 토기의 부장량 자체가 많지 않았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 진묘수 등을 함께 고려한다면 승선적인 내세관을 지닌 결과로 인해 토기 부장이 전무하게 된 주장과 진묘수는 鎭墓를 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피장자의 승선을 돕는 다목적성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흥미롭다. 이상과 같이, 남조 전축분은 무령왕릉과 서로 비교를 통해 외부의 附屬禮制施設과 출토유물의 종류 및 위계에 나타난 차이점을 충분히 해명할 수 있겠다.


King Muryeong's Tomb was accidentally found in Songsan-ri Ancient Tombs in 1971. To date, this is the only tomb among Baekje Tombs whose owner was identified by the academic community. King Muryeong's Tomb was constructed following the custom of Brick Chamber Tombs which stems from the most common burial system in the Southern Dynasties. Its style is a typical representative in Baekje's Yoongjin period. The cultural relics from the Brick Chamber Tombs were found to have the era characteristics of the Southern Dynastie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perform the comparative study between King Muryeong's Tomb and Southern Dynasties' Brick Chamber Tombs if we do the deep study on the structure of King Muryeong's Tomb and its cultural relics.
Jeongji-san ruin was the only location presumed to connect with the Funeral and Burial Rituals of King Muryeong's Tomb. To some extent, two sites of Bangdanjeokseok (squared altar where stones were piled up) relics in Songsan-ri Ancient Tombs can be considered as cult facilities due to the buried major part of the tomb chamber. So far, there are 15 tombs which can be confirmed to locate in Songsan-ri Ancient Tombs. However,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2 sites of cult-facilities like Bangdanjeokseok relics and other groups of tombs remain to be identified. Nanjing Lion Southern Dynasty Cemetery and Xiao Wei Tomb had rigorous layouts that consisted of ritual facilities such as Mausoleum, Tomb Passage, stone carvings (stone beasts, stone pillars, stone tablets) and Que Gate at the Tomb. Compared with these facilities, King Muryeong's Tomb was relatively simple. During the 55 years of Xiao Liang Dynasty, Baekje sent envoys seven times to the Liang Dynasty. Therefore, it would be unreasonable to explain the lag in Baekje's acceptance of the culture of the Southern Dynasty, and more appropriate to look for the cause in the inherent culture of Baekje.
There are many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ypes of cultural relics from the King Muryeong's Tomb and the Southern Dynasty princely tombs. Epitaphs and porcelain cultural relics are generally unearthed in the tombs of the King Muryeong's Tomb and the tombs of the Liang Dynasty princes with the same status in the same period. Pottery and figurines are basically buried in the Huangdi Mausoleum or the tombs of princes during the Southern Dynasties. On the contrary, no one was unearthed in the King Muryeong's Tomb. Although the earthenware in Baekje tombs is generally not very large, there are also a few unearthed. There might be certain unknown relationships between such phenomenon and both of the Land Purchase Record and the Jinmyosu found in King Muryeong's Tomb. Firstly, no earthenware was buried because of the concept of afterlife to be gods. Additionally, the function of Jinmyosu was not limited to safeguarding the tomb but also played some multi-functional roles. In conclusion, by comparing with the Brick Chamber Tombs of the Southern Dynasty, we can fully explain the phenomenon of “exterior simplicity and interior luxury” in the King Muryeong's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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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제 사비 도성 내 부소산성의 위상

저자 : 이병호 ( Lee Byongho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5-6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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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헌사료와 발굴 성과를 분석하여 백제 사비기 부소산성이 차지하는 도성 내의 위상이나 성격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翰苑』 백제전에서 인용한 「括地志」에 등장하는 百濟 王城 관련 기사를 부소산성에 관한 발굴 조사 내용과 비교해 보았다. 「괄지지」라는 중국의 역사책은 7세기대 백제의 사정을 반영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책으로, '백제 왕성'의 규모나 '北面한다'는 기사는 부소산성의 현상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기사는 부소산성 성벽이 土築이므로 오류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중국인의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Ⅲ장에서는 부소산성의 初築 시기와 내부에서 발견된 불교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여 사비 도성 내 부소산성의 위상을 검토해 보았다. 부소산성 동문지 일대에서 발견된 '大通'명 문자자료는 이 성곽이 538년 이전에 축조되기 시작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내부 사자루와 군창지 일대에서 발견된 佛像이나 佛頭, 光背, 각종 기와류 등은 부소산성이 불교적인 聖所로서 중요시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부소산성은 단순한 逃避城이나 後苑이 아니라 국가적인 의례 시설과 각종 중앙행정관서, 불교 사원 등이 배치된 백제 사비기 왕성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사비기 백제의 왕궁은 부소산성과 그 아래 별도의 평지성 등 2개소의 왕궁이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increase our understanding of the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 planned part of Sabi, the fortified capital city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538-660), based on the accounts contained in historical records and the findings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Chapter II compares the record on the fortified royal palace of Baekje contained in Comprehensive Land Records (Kuodi Zhi) and Garden of Academia (Hanyuan) with the archaeological discoveries made at the Busosanseong Fortress site. According to the Chinese history book, Kuodi Zhi , which provides an accurate depiction of the then situation of the fortress and also contains a valuable record about Baekje in the seventh century, including the size of the kingdom's fortified palace, the fortress “faced northward”. The assertion that the fortification was built by “piling up stones” is, however, incorrect because Busosanseong is actually an earthen-walled fortification. This record may be justifiable, however, it can't be overlooked in that it reflects the knowledge of Baekje shared by Chinese historians of that time.
In Chapter III, the discussion focuses on the status of Busosanseong Fortress as an integral part of the capital city of Baekje during the Sabi period based on ancient records about its initial construction and Buddhist artifacts discovered inside the fortress. The textual record containing the inscription “Daetong” (大通) discovered near the east gate site of Busosanseong Fortress shows that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began sometime before 538. Archaeologists have also found Buddhist statuettes, a Buddha's head and halo, and a variety of roof tiles at the sites of Sajaru Pavilion and Gunchangji , all of which suggests that the fortress was also a Buddhist sanctuary. In conclusion, Busosanseong Fortress was neither a place of shelter in times of emergency nor the rear garden of a royal palace, but rather a fortified royal palace of Sabi Baekje comprising government offices, religious structures used for state rites, and Buddhist temples. It also appears to have been connected with another fortification below Busosanseong Fortress, making it one of two fortifications that formed the royal palace of Baekje in the Sabi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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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북한 학계의 백제 역사인식

저자 : 이성준 ( Lee Sungjoon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8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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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에 대한 북한 학계의 지향점은 고구려사의 정립에 일조하는 것이다. 고구려 시조의 아들이 백제를 건국했다는 인식은 국가체제, 물질문화, 대외관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강조하게 하였다. 이것은 소위 인민의 투쟁사를 발굴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당위성을 공고히 하고, 사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하지만 백제의 제도와 문화가 고구려의 선진성과 주체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다는 해석으로 귀결되면서, 과장된 역사인식과 편중된 시각에서 비롯된 폐단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 학계는 고구려의 건국시점을 기원전 1세기 초로 규정하였고, 이에 따라 백제는 기원전 1세기 중엽 봉건소국, 기원후 1세기 중엽 봉건국가가 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고구려의 건국을 기원전 277년으로 수정하면서, 백제는 기원전 3세기 중엽 봉건소국, 기원전 1세기 말 봉건국가가 되었다고 정정된다. 그리고 백제의 사비 천도가 고구려의 장안성 천도보다 48년 앞선다는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장안성의 건설 이후 나성이 착공되었고, 이에 따라 7세기 전반 고구려식의 도성제가 백제에 완성되었다는 논리를 만든다.
고고자료에도 고구려의 선진기술과 제도의 파급이 선명하다는 기조는 이어진다. 토기의 형태적 특징, 기술적 유형, 문양 등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은 생활풍습, 감정, 정서, 취미가 서로 같았기 때문이고, 백제 초기 수막새에서 고구려의 전형적인 특징이 관찰된다고 한다. 기단식적석총은 고구려보다 2~3분기 정도 후행하도록 설정하였고, 고구려 석실묘의 구조를 감안하여 백제의 석실묘를 편년하면서, 부여 능산리와 서울 가락동의 일부를 4세기로 분류하였다. 또한 고구려 능제의 도입을 부여 능산리 사지의 건설 배경으로 제시하며, 능산리 2호분(중하총)을 성왕이 아닌 백제 시조 구태의 능으로 비정하였다.
이처럼 한국과 북한 학계의 간극은 학문적 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만 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향후 의미 있는 접점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도 고대 동아시아의 역학구도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The goal of the North Korean academia about the history of Baekje is to contribute to establishing the history of Goguryeo right. The recognition that Baekje was established by the son of the founder of Goguryeo emphasized the influence of Goguryeo in almost all areas, including the state system, material culture, and foreign relations. This is a part of measures to discover the history of the people's struggles to solidify the historical necessity of socialist construction and to strengthen ideology. However, as it resulted in the interpretation that Baekje's system and culture blindly followed Goguryeo's advancedness and subjectivity, it clearly showed the flaws stemming from an exaggerated historical perception and biased perspective.
Until the mid-1980s, North Korean academics defined the founding of Goguryeo as early 1st century BC, and Baekje became a small feudal state in the mid-1st century BC and a feudal state in the mid-1st century AD. However, after the 2000s,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Kim Jong-il, the founding of Goguryeo was revised to 277 BC, and Baekje was changed to become a feudal state in the middle of the 3rd century BC and a feudal state at the end of the 1st century BC. In order to solve the blind spot that Baekje's Sabi capital was 48 years ahead of Goguryeo's Janganseong capital, the construction of Naseong started after the construction of Janganseong, and it suggests the logic that the Goguryeostyle capital system was completed in Sabi in the first half of the 7th century.
The theory continues that the spread of advanced technologies and systems of Goguryeo is clear even in archeology. The common features identified in the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technical types, and patterns of pottery are that life customs, emotions, emotions, and hobbies were the same. Stone Mound Tomb was set to lag behind Goguryeo by two to three quarters. By analyzing the stone chamber tomb of Baekje in consideration of the structure of the stone chamber tomb in Goguryeo, parts of Neungsan-ri in Buyeo and Garak-dong in Seoul were defined as the 4th century. In addition, it is said that the Neungsan-ri temple in Buyeo was built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tomb system of Goguryeo, and Neungsan-ri Tomb No. 2 (Junghachong) was defined as the tomb of Gutae, the founder of Baekje.
As such, the gap between academia i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is a problem that cannot only be said to be caused by differences in academic methodologies. In order to find a meaningful point of contact in the future, it will be necessary to make an effort to form a consensus that Baekje and Gogurye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dynamics of ancient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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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솔동고분군 축조 배경과 역사적 의미

저자 : 정재윤 ( Chung Jae-yun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1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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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한솔동고분군과 세종 일대의 고대 유적을 분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이 백제의 금강 중류 지역 지배의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웅진 천도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밀리자 태자인 전지를 왜에 파견하는 등 주변국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다.
또한 금강 하구 유역 세력가로 추정되는 사두를 등용하여 지방의 戰力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후 용원리 고분군과 수촌리고분군 등에서 금동관 등 위세품이 출토되는 것도 백제가 이들 세력을 거점으로 삼아 점차 금강 중류 유역에 대한 진출과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이해된다. 한솔동고분군 또한 양상이 비슷하여 백제의 금강 유역 진출과 관련됨이 분명하고, 예식진 일가 묘지명을 통해서도 웅진 지역을 개발하려는 백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방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수도로서의 입지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지역을 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에 도움을 준 세력으로는 목씨와 해씨뿐만 아니라 수촌리고분군과 한솔동고분군 축조 세력 등 지방 세력가도 일조하였다. 한솔동고분군을 축조한 나성리 세력은 지방도시로 번성하고, 금강의 길목을 장악하여 세종 일대의 세력들을 통합하였다. 나성리 세력의 부상은 금강 상류로 가는 길을 통제함으로써 웅진 천도가 가능하게 된 배경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나성리 세력은 재지적 기반에 바탕을 두었지만 백제에 의한 계획도시라는 점에 주목하면 이들 중 일부는 이주민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는 선진문물을 취득한 중국계 이주민들을 활용하여 5세기를 전후로 한 시기부터 금강 유역을 개발하였으며, 예식진 일족을 통해서 그 모습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웅진 천도 이후 한솔동고분군 축조 세력의 연속성이 보이지 않은 것은 나성리의 도시 기능 위축과 이들의 중앙귀족화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천도 후 벌어진 권력 다툼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웅진 방령을 지낸 예식진의 모습을 통해서도 명맥을 이어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tombs of Hansol-dong and ancient remains in the Sejong area to examine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Through this, it was noted that the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played a great role in Ungjincheondo (transfer of capital to Ungjin) by contributing to the Baekje's stabilization of the midstream of the Geumgang River.
Baekje would utilize help from neighboring countries and local influences as it was losing the war against Goguryeo. It is understood in the dimension to strengthen its control over the Geumgang river area that grave goods like gilt-bronze crowns come from the tombs of Yongwon-ri and the tombs of Suchon-ri constructed around this time. The tombs of Hansol-dong, also, had similar aspects, which were related to Baekje's advancement to the Geumgang river area, and it would redevelop the Ungjin area, also through the Ye Shikjin clan's epitaph.
As powers that help Baekje's Ungjincheondo were the Moks and the Haes, and the local influences, like the powers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Suchon-ri and the tombs of Hansol-dong contributed to it as well. Naseong-ri power that constructed the tombs of Hansol-dong became prosperous as a provincial city and united powers in the Sejong area by occupying the routes of the Geumgang River. The rise of Naseong-ri power became the background that made Ungjincheondo possible by controlling the traffic routes in the upstream of the Geumgang.
Naseong-ri power is based on the region, but some of them likely included emigrants, given that it was a city planned by Baekje. Baekje developed the Geumgang river area around the 5th century, utilizing Chinese immigrants that acquired advanced culture, it is possible to peek at part of what happened through the Ye Shikjin clan. After Ungjincheondo, Naseong-ri power did not form a great power, but it was noted that this was maintained also through Ye Shikjin, who served as the leader of the Ungjin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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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종 한솔동 고분군(舊송원리 고분군)의 축조양상과 그 의의

저자 : 박신영 ( Park Shin-yeong ) , 성정용 ( Seong Jeong-yong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15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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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한솔동(舊 연기 송원리) 고분군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조성에 앞서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졌다. 고분군에서는 토광묘와 석곽묘·석실묘 등 다양한 묘제의 고분이 90여 기 조사되었는데 그중 21기가 석실묘이다. 이처럼 한성기 지방 고분군에 대규모 석실군이 조영된 사례가 그다지 없어 조사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솔동 고분군은 조성 초기에는 모든 묘제가 혼재하다가 석실묘 축조가 확산한 이후에는 묘제에 따른 고분 입지의 분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솔동 고분군에서 가장 도드라진 무덤은 송원리형 석실로 분류되는 16호 석실묘이다. 이는 한성기 석실묘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구조가 독특하고 완성도도 높다. 한솔동 고분군에서는 도굴 등의 요인으로 인해 위세품들이 거의 출토되지 않아 피장자의 위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석실묘가 다수 조영된 고분군 양상과 송원리형 석실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이 고분군 축조집단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고분군은 한성기 최대의 지방 도시이자 계획도시로 여겨지는 나성리 유적을 경영했던 사람들이 묻힌 곳으로 보이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거대한 계획도시인 나성리 개발을 주도한 것이 바로 한솔동 고분군 축조집단으로 보이는 바, 한성기 지방사회에서 이 집단이 가지고 있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나아가 한솔동 고분군 축조집단과 백제 중앙과의 밀접한 관계도 상정해 볼 수 있다.


Hansol-dong(old Yeongi Songwon-ri) Tombs in Sejong, were known through excavations conducted prior to the creation of an administrative complex city. About 90 tombs were built in Hansol-dong Ancient Tombs, and 21 of them are stone chamber tombs. Hansoldong is the only case in which a large-scale stone chamber group was constructed in the Hansung Period local ancient tombs, so it has received a lot of attention since the time of the investigation. Various tombs were built in Hansol-dong Ancient Tombs, and more than 20% of tombs were concentrated in District 1.
In the early stages of the form of the tomb, all tombs are mixed, but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stone chamber tomb spreads, the differentiation of the tomb site according to the form of the tomb appears clearly. The most prominent tomb among the tombs in Hansol-dong was the 16th stone chamber tomb, which was also classified as a Songwon-ri-type stone chamber. The structure is high quality of completion and unique that it is difficult to find similar cases to 16th stone chamber tomb of Hansung Period.
Although no valuable items were excavated from Hansol-dong Ancient Tombs due to the robberies, it is an outstanding local power that is no way inferior to not only the ancient tombs in Sejong-si but also the ancient tombs in the Hansung period. It is also the largest local city and the planned city during the Hanseong period where people who managed the ruins of Naseong-ri, were buried.
Although the size of the ancient tomb group is important, however one of the important values of this ancient tomb group is that it is found how the people who built the ancient tomb lived. The development of Naseong-ri was led by the Hansol-dong group, and it is believed that local forces participated in the operation. In the background of the development of Naseong-ri, it is assumed that there was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Hansol-dong group and the major power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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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제 금제구슬의 형태 구분과 금 순도 비교

저자 : 김성곤 ( Kim Seong Gon ) , 김은아 ( Kim Eun A ) , 김규호 ( Kim Gyu Ho )

발행기관 : 백제학회 간행물 : 백제학보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3-169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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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백제지역 15개 유적에서 출토된 금제구슬 1,067점을 형태에 따라 Ⅰ, Ⅱ, Ⅲ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른 금 순도를 비교하였다. 한성기와 웅진기 유적에서 확인되는 Ⅰ유형은 22점으로 타원형이고 한면에 두 개의 투공이 관찰된다. Ⅰ유형은 세부 특징에 따라 금판으로 구성된 Ⅰ-A형이 6점, 각목대가 둘러진 Ⅰ-B형이 7점, 금판에 장식이 있는 Ⅰ-C형이 9점으로 구분하였다. 웅진기와 사비기의 주요 유적에서 확인되는 Ⅱ유형은 857점으로 투공이 한 개 있는 반구체 금판 2매를 결합한 형태이다. Ⅱ유형은 세부 특징에 따라 구형(Ⅱ-A형) 709점과 화형(Ⅱ-B형) 148점으로 구분된다. 웅진기와 사비기 유적에서 확인되나 다수가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Ⅲ유형은 205점으로 소환과 누금을 연접한 구슬이다. Ⅲ유형은 소환을 연접한 형태인 Ⅲ-A형 4점, 소환에 각목문이 장식된 Ⅲ-B형 2점, 누금장식이 확인되는 Ⅲ-C형 199점으로 구분하였다. 형태에 따른 금 순도의 비교에서, Ⅰ유형은 금 순도가 다양하게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Ⅰ-A형이 15.1~23.0 K, Ⅰ-B형이 15.8~23.7 K, Ⅰ-C형이 20.9~21.3 K이다. Ⅱ유형은 순금에 가까운 편이다. Ⅱ-A형이 23.6~23.8 K, Ⅱ-B형이 23.8~24.0 K으로 확인된다. Ⅲ유형은 세부 유형에 따라 금 순도가 차이를 보인다. Ⅲ-A형이 20.0~20.9 K, Ⅲ-B형이 22.9~23.2 K, Ⅲ-C형이 23.0~23.8 K로 금 순도가 높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이를 종합하면 상대적으로 금 순도가 낮은 금제구슬 Ⅰ유형은 지방재지 세력과 귀족 집단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 금 순도가 높은 금제구슬 Ⅱ, Ⅲ유형은 웅진기와 사비기의 왕실과 관련된 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형태와 금 순도가 상관성을 보이는 백제 금제구슬은 시기와 지역에 따른 특성도 나타난다.


In this study, 1,067 gold beads excavated from 15 ruins in Baekje were classified intoⅠ, Ⅱ, and Ⅲ types according to the physical shape and the gold purity was compared. Type I identified in ruins of the Hanseong and Ungjin period was oval with 22 beads, and two holes were observed on one side. Type Ⅰ was divided into 3 groups according to the decoration of the gold plate. Ⅰ-A Type of 6 beads with gold plate only, Ⅰ-B Type of 7 beads with thin lines engraved on the gold plate, and Ⅰ-C Type of 9 beads with granulation on the gold plate. Type II identified in ruins of the Ungjin and Sabi period is 857 beads, which is a combination of two hemispherical gold plates with one hole. Type Ⅱ was divided into 2 groups according to their shape. The Round Ⅱ-A Type of 709 beads, and the flower shape beads Ⅱ-B Type of 148 beads. Type Ⅲ is confirmed from the remains of the Ungjin and Sabi periods, but many of them were excavated from the tomb of King Muryeong of Gongju. Aspherical Ⅲ-A Type with the small gold ring has 4 beads, Ⅲ-B Type with thin lines has 2 beads, and Ⅲ-C Type with granules decorations has 199 beads. In the comparison of gold purity according to shape, type I shows the characteristic of the various distribution of gold purity. Ⅰ-A Type is 15.1∼23.0K, Ⅰ-B Type is 15.8∼23.7K, and Ⅰ-C Type is 20.9∼21.3K. Type Ⅱ is close to pure gold, Ⅱ-A Type is 23.6∼23.8K, and Ⅱ-B Type is 23.8∼24.0K. Type Ⅲ shows a characteristic that the purity of gold increases from 20.0∼20.9K, Ⅲ-A Type to 22.9∼23.2, Ⅲ-B type, 23.0∼23.8K, and Ⅲ-C type. In summary, type I gold beads which are relatively low in the purity of gold, are found mainly in ruins presumed to be local power and aristocratic groups, and types II and III gold beads with high gold purity are mainly found in ruins related to the royal family of Ungjin and Sabi period. Therefore, it is presumed that the Baekje gold beads, which show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hape and purity of gold a correlation according to period and 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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