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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Journal of Japanes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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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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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9)~56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541
일본연구논총
56권0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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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박명희 ( Park Myung-hee )

발행기관 : 현대일본학회 간행물 : 일본연구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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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일본 대미 공공외교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의 변화를 시계열적으로 검토하였다. 또한, 워싱턴 DC 중심의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하와이주에서의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큰 틀에서 그 특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발견된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공공외교가 외부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반응적' 성격에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늘리려는 '전략적'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이후 두드러진다. 둘째, 공공외교의 주체가 다양하며, 이들을 통한 중층적 공공외교가 추진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 정부 및 JF 뿐 아니라, 민간재단, 일계(日係) 미국인, 일본 내 우익단체 등이 주요 행위자가 되고 있다. 셋째, 공공외교의 내용이 일본적 시각 유포 및 직접적인 일본의 국익과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라 미국의 관심 사항, 양국의 공통과제 등에 중점이 놓여 있다. 넷째, 지역의 시점을 고려한 지역맞춤형 공공외교가 병행되고 있다. 일례로, 하와이주에서는 일계(日係) 미국인의 활용, 인도태평양사령부 주둔지라는 특성을 고려한 1.5트랙 대화가 중심이 되고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가 주체가 다양하고, 공공외교 내용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확인한 만큼 향후 주체 및 공간적 측면에서 확대된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 분석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Japanese public diplomacy in the United States (U.S.). The changes in the aforesaid policy have been examined in chronological order. In addition, by researching Japanese public diplomacy in Hawaii, this article attempted to understand its characteristics in a larger frame and away from the Washington D.C.-centered approach.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Japan's public diplomacy is changing from a 'reactive' to a 'strategic' posture. In particular, these changes were noticeable after the second Abe cabinet in 2012. Second, the actors in the arena of public diplomacy are diverse and this makes public diplomacy in the U.S. dual-structured. Third, the content of public diplomacy is not focused on the dissemination of Japanese perspectives and thereby directly related to Japan's national interest, but rather on the interests of the U.S. and the common tasks of both countries. Fourth, at the local level, Japan tries to adopt a policy suitable for addressing local interests. Considering the environment in which the Indo-Pacific Command operates in Hawaii, a 1.5-track dialogue dealing with security issues is emphasized, and Japanese Americans are in charge of critical roles in public diplomacy. This study found that there are many actors and there is the possibility of diversity at the local level. Therefore, research on the structure in various regions and participating actors should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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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손석의 ( Sukeui Sohn )

발행기관 : 현대일본학회 간행물 : 일본연구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5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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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최근 일본유신회의 재부상이 선거 및 정책적 측면에서 연합 정권을 운영하는 자민당과 공명당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2년 이후 지방 및 국정 레벨에서 유신회의 당세와 지지 규모 변화를 살펴본 후 이들의 오사카 및 간서 지역에서의 압도적 지지기반이 전통적으로 간서 지역에서 강고한 조직력을 유지해 온 공명당에게 일종의 딜레마를 안겼음을 주장한다. 즉 공명당은 오사카부(府)의회에서 유신-자민 간 경쟁을 회피해야 함과 동시에, 국정 레벨에서는 자민당-유신회 간 유착을 견제할 전략적 선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방 정책이나 헌법 개정과 같은 '우파적' 이슈에 적극적인 유신회의 재부상으로 인해 공명당이 정책 선호를 다소 수정할 필요성에 직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분석 결과는 자민당을 중심으로 유신회-공명당 간의 진행된 경쟁이 정책 선호의 다양화가 아닌 수렴을 초래했음을 시사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inter-party dynamics among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Kōmeitō, and the Japan Restoration Party (JRP) by elucidating the development of electoral balance as well as strategic policy positions over the past decade. Specifically, it sheds light on the resilience of the JRP in both local and national contexts, and how the party's electoral expansion in Osaka and the proximity of i ts policy preferences to that of the dominant LDP in the national setting have affected the intra-coalition relations between the LDP and Kōmeitō. The analyses suggest that the JRP's unrivaled popularity in Osaka and adjunct regions has imposed significant challenges on the Kōmeitō, whose strategic competence has been undermined by the rightward-looking party. Furthermore, in terms of policy agendas, the re-rise of the 'third party' induced the convergence of policy preferences among the three parties, rather than divers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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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미영 ( Kim Mi Young )

발행기관 : 현대일본학회 간행물 : 일본연구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1-8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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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복귀론은 1950년대 미군의 강제적인 통치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평화헌법을 이유로 일본으로의 귀속을 주장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일본복귀론은 1960년대 안보투쟁과 1969년 오키나와 반환을 명시한 사토-닉슨 미일공동성명을 계기로 반기지·반전평화가 더해지며 더욱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미군기지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 요구는 미일 양국의 오키나와 반환 과정에서 무시됐다. 특히, 일본국민으로서 주권을 회복했음에도 철거 혹은 이전을 주장한 미군기지가 존속함으로써, 오키나와인은 이러한 상황을 차별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학자이자 오키나와 전투 체험자이기도 했던 오타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오키나와(인)은 무엇인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오키나와 문제가 본토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과연 일본 정부를 비롯한 본토인이 그러한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타는 두 가지 물음과 연계하여 '일본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근대 일본화 과정에서 드러난 오키나와인의 민중의식을 검토했고 이후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오키나와인의 자기 검증 혹은 자기 인식이 '복귀'에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본 연구는 오타가 자문한 각각의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 중 하나로, 오타가 오키나와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그 해결의 방법으로 왜 일본 복귀를 사고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고찰한 것이다.


The theory of Okinawa's return to Japan began in the 1950s with the claim that Japan had instituted a peaceful constitution as a means of resisting the forced rule of the United States (U.S.) military. Afterward, the theory of the return to Japan began to be discussed more actively with the addition of anti-U.S. base and anti-war peace movements in the wake of the security struggle in the 1960s and the Sato-Nixon U.S.-Japan Joint Statement specifying the return of Okinawa in 1969. However, despite these discussions, the Okinawan residents' demands concerning the U.S. base were ignored in the process of the return of Okinawa by the U.S. and Japan. Specifically, the U.S. military base, which was supposed to be demolished or relocated, survived even after sovereignty was restored. As Japanese citizens, Okinawans came to perceive this as a discriminatory situation. In this regard, Ota, who was a scholar and had experienced the Battle of Okinawa, asked himself two questions. One is 'What is Okinawa (Okinawan)?' and the other is 'If the Okinawa problem is happening in other parts of the mainland, will the Japanese government and other mainlanders leave it as it is?' Ota asked, 'What are Japanese people' in connection with the above two questions and examined the popular consciousness of Okinawans revealed in the process of modern 'Japanese painting' and explored the effect of self 'awareness' on 'return'. This study is one of the processes of finding answers to each of the questions asked by Ota, and it examines the background of how he perceived the Okinawa problem and why he thought that returning to Japan was a s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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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성운 ( Kim Seong Un )

발행기관 : 현대일본학회 간행물 : 일본연구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1-11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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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원폭의 쓰라린 경험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경계가 아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즉 전면적인 원전 건설 정책으로 이어졌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러한 전후 일본 원자력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었고, 그것의 출발점이 된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원폭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고를 촉발했다. 이러한 담론적 지형에서 원폭 관련 일본 영화들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어머니와 산다면」은 원폭 투하의 주체가 미국이며, 일본은 미국과 무모한 전쟁을 벌임으로써 원폭 피해를 자초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태양의 아이」는 일본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시에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일본이 핵 에너지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두 영화는 원폭의 피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전쟁의 맥락을 소거하고 그 속에서 일본인을 피해자로 그리는 '피폭 내셔널리즘'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원폭의 의미에 대한 재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인간의 잘못으로 벌어진 '인재'로 여겨지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The painful experience of atom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 in 1945, rather than pushing the Japanese away from nuclear energy, worked as a catalyst for “atoms for peace”. In other words, it meant a total embrace of the nuclear energy policy. The March 11, 2011 (3.11) nuclear crisis at the Fukushima Daiichi plant led to criticism of Japan's post-war nuclear policies, resulting in a general re-examination of the historical meaning of Hiroshima and Nagasaki, which was the starting point of such policies. On this discursive terrain came a new generation of Atomic (A)-bomb-related films that set themselves apart from their pre-3.11 counterparts. Nagasaki: Memories of My Son emphasized the fact that it was the United States (U.S.) military that dropped the bomb on Nagasaki, which was a result of the reckless decision made by the Japanese military to wage a war against the U.S. Gift of Fire reveals the history of Japan's own nuclear weapon project during the war, reminding us that Japan could have been a perpetrator of nuclear weapons rather than the victim. Both films are meaningful works in that they attempted to revise the foundational narrative of “victims' nationalism” that has described Japanese people as “victims” of nuclear weapons rather than “perpetrators of the war and colonial rule.” This revision of the history of A-bombs has much to do with the consideration of the Fukushima nuclear crisis as a man-made dis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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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희식 ( Choi Heesik )

발행기관 : 현대일본학회 간행물 : 일본연구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14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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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이후 한일 양자관계의 갈등과 복잡성은 한일 국력 격차의 축소 및 경쟁화, 정체성의 갈등, 대중ㆍ대북 정책의 차이 등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및 강제동원 문제라는 구체적 사건과 결합되며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적합한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책과 전략적 측면에서, 그리고 한일 국력의 대등화가 초래하는 정체성의 변화 측면에서 한국은 하나의 한국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내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한일 양국 사이의 차이보다 어찌 보면 더 커 보인다. 이러한 '양극화된 정치'는 한일관계를 보다 국내적 변수를 포함하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정치적 양극화 상황이 어떻게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미중 전략경쟁시기 한국 보수-진보의 인식과 전략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한일 안보협력을 상징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양국 갈등의 중요 요인으로 언급되는 대북정책, 한일 갈등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역사문제의 전개과정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The existing conflict and complexity of bilateral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since the 2010s have now been further exacerbated due to the competi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owing to the reduction in the power gap between them, the conflict of identities, and the difference in their respective policies on China and North Korea. It is more appropriate to explain the conflict and complexity of the bilateral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in the context of specific events, such as the issues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and forced mobilization. However, in terms of policy and strategy, and the identity change caused by the equalization of the national powers of Korea and Japan, it must be understood that Korea is not just one country. The difference between progress and conservatism in Korea seems to be bigger than the difference between Korea and Japan. This 'polarized politics' is escalating the need to approach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from a new perspective that includes more domestic variables.
This study aims to analyze how political polarization affect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First, this study examines the perception and strategy of Korean conservatives and progressives during the U.S.-China strategic competition period and then analyzes the effects of political polarization on the development of the Korea-Japan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which symbolizes Korea-Japan security cooperation, the North Korea policy which is mentioned as an important factor in the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and the historical problem which is pointed out as a direct cause of the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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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木村幹 ( Kimura Kan )

발행기관 : 현대일본학회 간행물 : 일본연구논총 56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7-18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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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韓関係は1965年の国交正常化以降、最悪の状態にある」。日本のメディアが現在の日韓両国 間の関係を説明する際に頻繁に使うフレーズだ。2018年10月に韓国大法院が日本企業に対し、第 二次世界大戦中に動員された元徴用工らに賠償を命じて以来、日韓関係は4年間ほぼ膠着状態に 陥っている。
とはいえ同時に重要な事は、日本と韓国は慰安婦問題、歴史教科書問題、靖国神社問題など過 去の問題でこれまでも長期に対立を続けてきた。だとすると、今日の状況は過去とどう違うのか。 この点を明らかにしなければ、問題の本当の深刻さは見えてこない。
そこで本稿では、今日の日韓関係、とりわけ日本側の状況を、日本の主要な新聞、テレビ、雑 誌などのメディアにおける言説から、分析することを試みた。その結果明らかになったのは、安倍 ·文両政権期に、政治指導者を「悪魔化」する言説が顕著に見られるようなったことである。そこで は、日本のメディア、特に一定の「保守メディア」が、紛争の複雑な背景には全く目を向けず、関 係悪化の原因を、この時期の韓国の大統領であった、文在寅個人の特質によって説明し、事態を齎 した人物としてその責任を厳しく非難する状況である。このような政治指導者の「悪魔化」は同時 期の韓国でも見られ、日本の安倍晋三首相の個人的言動に、関係悪化の全ての原因を帰せしめる言 説が頻繁に見られるようになった。
しかしながらこの様な状況は、2022年、文在寅が退陣し、安倍が暗殺された後には深刻な問題 となって表れている。関係悪化の責任を押し付けられた特定の政治指導者がいなくなった後、人々 は依然として継続する関係悪化をどのように説明し、どこにその責任者を見出そうとするのだろう か。それとも、それらを切欠により真剣で客観的な考察へと移行するのだろうか。今日の日韓関係を巡る言説は大きな転換点に差し掛かっているのかも知れない。


“Japanese-South Korean relations are at their worst since normalization in 1965”. This is the phrase that the Japanese media frequently uses to portray the situ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today. Since South Korea's Supreme Court in October 2018 ordered Japanese companies to provide compensation to South Koreans forced to work in its factories during World War II, Japan-South Korean relations have been almost deadlocked.
However, this is not the first crisis in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nations. Japan and South Korea have continued to have the same issues over the years, such as comfort women, history textbooks, and the Yasukuni War Shrine. How is today's situation different from the past, and how is it changing?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the situation by looking at the discourse in Japanese media, including major newspapers, television programs, and journal articles. As a result, the author found that there was a strong trend of “demonization” of political leaders under the Abe-Moon administrations. Japanese media―in particular, conservative outlets―tried to explain the worsening of the relationship by attacking the personal characteristics of the South Korean political president, Moon Jae-in, and asserting that he was the criminal in the situation, without paying any serious attention to the complicated background of the disputes. A similar kind of “demonization” of political leaders can be found in South Korea, too, attributing all the culpability for the worsening situation to the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However, after the retirement of Moon and the assassination of Abe in the same year, these oversimplified explanations are no longer relevant. How would a new explanation be found for the situation, and who would then be named the guilty party? Or would the dispute finally merit a more serious and objective understanding? These would be the next big questions of the discourse on the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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