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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Musi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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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8)~66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007
한국음악사학보
66권0호(2021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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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일제강점기 음악통제와 애국창가 탄압사례 - 신문기사를 통해 -

저자 : 김수현 ( Kim Su-hyu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49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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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일제의 음악통제와 애국창가 탄압의 다양하고 많은 사례를 모아 분석하여 그 양상과 특징을 살펴본 연구이다.
일제강점기는 일제의 음악통제와 애국창가탄압의 양상은 통제를 위한 법적인 장치 마련, 음악교과서의 국정교과서화, 창가책 단속으로 불법 창가책 압수와 발매 금지, 치안에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음악회 금지, 집회 행사 금지로 가창 통제, 음반 검열과 발매금지 및 압수, 불온창가 단속과 처벌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탄압의 양상을 보면 가택수색·검거·취조를 거쳐 구금·구류·구속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애국가·독립가·아리랑과 같이 구체적인 곡 또는 장르의 명칭이 가시화 되어 있었던 경우는 그 처벌이 더욱 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논문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러한 억압적인 상황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불온창가, 즉 일제의 통치에 반일적이고 항일적인 노래이거나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노래를 부르는 일이 허다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애국창가 탄압의 사례를 통해서 일제가 어떤 음악을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탄압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며 애국창가를 부르고 전파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도 항일과 독립운동은 중단되지 않고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Japanese music control and the suppression of patriotic songs with newspaper articles in Japanese colonial era; controlling by law, making music textbooks goverment-designated, confiscating unauthorized song books, prohibiting music concerts and gathering for safety nominally, and censoring music records and patriotic songs.
The patterns of oppression led to detention and imprison after house search, arrest, and interrogation. The punishment was stronger with popurlar songs, national anthem, independence song, and Arirang. It states that it was common to sing songs that inspire patriotism and national consciousness or anti-Japanese under hard oprression.
through bridge this example of the suppression, it was possible to guess what kind of music was considered as a threat to Japanese rule; and the anti-Japanese and independence movements continued steadily in Korea by singing and disseminating patriotic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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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근현대 전통공연예술 제도와 정책의 젠더 쟁점

저자 : 김희선 ( Kim Hee-su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1-8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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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전개된 미투운동은 한국의 공연예술계에서도 젠더와 관련한 논제들을 드러내는데 일조했다. 젠더 논제의 핵심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젠더 위계화와 젠더 불평등에 있다. 이 연구는 전통공연예술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조선-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단계의 젠더 위계화와 젠더 불평등의 고착화 과정을 해체적으로 검토함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시대 공연예술의 성리학적 성별 정치는 전통의 고유 속성으로 이해되어 전승되었고, 근대적 성별 이분화는 민족, 계급, 식민담론을 가로지르는 식민지 근대의 민족 기획과 관련되며 심화되었다. 해방 이후 국가 수립으로 본격화된 전통공연예술의 무형문화재 제도, 국가 차원의 관광개발사업과 해외공보, 현대적 교육제도, 직업예술단 제도를 통해 젠더 위계화와 젠더 불평등은 고착되었다.
젠더와 음악간 계급정치가 결합하고 가부장적 국가제도가 용인한 전통공연예술계의 젠더 불평등은 현재에도 공적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성찰의 기회나 젠더 감수성 인식에 기반한 교육은 부족했다. 미투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 중인 공연예술의 성평등과 성주류화 정책은 전통 공연예술 정책의 수립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의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구성원들의 젠더 성찰과 실천 의지이며 이에 대한 논의는 내부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The global spread of the Me Too Movement triggered discussion of gender-related issues including gender hierarchy and gender inequality. This paper critically examines the ways in which both have been constructed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Gender roles strictly defined according to the Confucian norms of Chosŏn affected practice of the performing arts, and were transmitted since they were understood as original traits of “tradition.” Dichotomy of modern masculine and feminine gender roles emerg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e process of modern nationalization, and deepened in association with ethnicity, class, and colonial discourses. Along with the establishment of nation-states after independence, the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system, international tourist development and its overseas promotion, and the establishment of a modern educational system and professional troupes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contributed to maintaining the gender hierarchy and inequality.
Gender inequality persists in both public and private spheres in the contemporary traditional performing arts field; however, opportunities for self-examination and education based on gender sensitivity have been wanting. Discussions toward gender equality and gender mainstreaming policies in the performing arts have begun since the Me Too Movement and also involve important considerations in the establishment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policy. Fundamentally, though, self-reflection and the will to action toward gender equality among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siders are more important than policy making, and should arise from voices within the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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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악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한 초등예비교사들의 질문과 그 상징

저자 : 라예송 ( Ra Ye-song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85-10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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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한 교육대학교 국악과목의 수강생들을 통해서 초등예비교사들이 국악수업 및 국악지식에 관하여 실제로 가장 궁금해 하는 점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수강생들에게 “국악 및 국악수업과 관련 유의미한 질문하기”의 과제를 주고 그들 스스로 현재 상태에서 답답하거나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이를 통해 교육대학교에서 국악 관련 과목을 확대ㆍ강화할 때 실제로 어떤 내용적 방향이 필요한지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또한 초등예비교사들의 질문을 통해서 현재 학교 국악교육이 교육적 가치보다 국악전공자의 관점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article aims to find out what pre-service elementary school teachers are actually most curious about Korean traditional music classes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knowledge through the students of a Korean traditional music course at a university of education that I am teaching. Students were given the task of “Asking meaningful questions related to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classes” and asked what they were frustrated or curious about in their current state.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derive what kind of content direction was actually needed when expanding and strengthening the subjects related to Korean traditional music at the university of education. Also, through the questions of elementary school pre-teachers, it can be argued that the current school's traditional music education contains the perspective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majors rather than educational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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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미마지의 기악무(伎樂舞)에 대한 일고(一考)

저자 : 박은옥 ( Piao Enyu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9-1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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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음악문화의 연구는 문헌 자료와 유물 등 이유로 고구려와 신라보다 부진한 양상을 나타낸다. 하지만 일찍부터 중국과 일본으로 백제의 음악문화를 전파한 사실과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백제의 음악문화는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특히 미마지와 그의 기악무는 한, 중, 일의 학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 역시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마지 기악무의 실체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채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미마지가 일본으로 전한 기악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미마지와 오국의 다양한 학설을 다시 검토하여, 기악무가 일본으로 전해진 612년을 기준으로 백제와 중국의 교류를 양, 진, 수를 통해 다시 살펴보았다. 이러한 기초 작업을 통해 문강악, 상운악의 “문강사와 호무”와 기악무를 비교, 설명하면서 미마지 기악무의 실체를 규명하려고 노력하였다.


Studies on the musical culture of Baekje tend to fall behind those on Goguryeo and Silla by reason of the lack of literature data and remains, etc. However, it has been verified that Baekje spread its musical culture to China and Japan from the earlier days and that Baekje's musical culture was in a considerably advanced level as indicated by Baekje Incense Burner. In particular, Mimaji and his Giakmu attracted much attention of scholars in Korea, China, and Japan, and quite a number of studies have been found on the subjects. Disappointingly though, the substance of Mimaji's Giakmu has not been completely clarified.
In this study, various theories about Mimaji and Wu Kingdom were reexamined to verify the true nature of Giakmu handed over to Japan by Mimaji, and thus the exchange between Baekje and China was discussed based on the year 612, the year in which Giakmu was transferred to Japan, in terms of Liang, Chen, and Sui. Through this groundwork, it was attempted to verify the substance of Mimaji's Giakmu by comparing it against "Wenkangci and Huwu" of Wenkangyue and Shangyuny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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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미투 운동 이후 전통공연예술의 젠더 담론 지형과 쟁점

저자 : 성혜인 ( Seong Hye-in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5-1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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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미니즘은 분야를 막론하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예술계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기를 띄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역사와 담론을 전복하고 재편하는 급진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는 사제 간 작동하는 위계질서, 대학의 서열화에 따른 보수적 관행, 전통예술 속에 내재된 여성혐오에 대한 무비판적 교육 등 다양한 요인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고착된 전통예술의 기본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는 담론장이라 할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가장 먼저 학문으로 정립된 전통예술의 특성과 미학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전통예술은 사회에서 형성되고 발전된 문화적 산물이므로,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가부장적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통예술에 남성중심적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그다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전통예술은 여성혐오적인가'라는 질문은 보호 이데올로기, 민족주의적 당위성과 결합하면서 비판적으로 논의되지 못했고, 금기 시 된 측면도 있다.
또한 전통예술을 연구하는 주체가 대부분 남성 지식인에 한정되다보니 전통예술 속 여성혐오를 독해하지 않은 채 여성이 배제된 지식을 형성해 왔다는 추론도 해볼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전통예술과 미학적 담론의 확립에 있어 '여성'이라는 젠더적 요소를 간과해온 것이다. 2장에서는 전통예술의 특성과 미학을 논할 때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수사를 점검하고, 전통예술에 관한 보편적 지식이 누구의 주도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는 개괄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 공연예술 현장에서 반복되는 여성혐오 기제를 살펴보기 위해 2018년부터 현재까지 페미니즘 이슈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통 예술계의 시도를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여성을 내세운 공연 기획이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모든 기획이 질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홍보 수단으로 여기는 기획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했다. 또한 전통예술에 내재된 남성중심적 맥락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파기하지 않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면서 여성예술가만을 전면으로 가시화 하는 공연이 주를 이루었다. 여기에 여성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평이 덧붙여지면서 대다수의 시도는 여성혐오의 재생산으로 귀결되었다. 반면, 이러한 창작 흐름의 대척점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소수의 동시대 여성예술가들도 존재했다. 본고에서는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며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았다.
전통예술은 전통예술의 권위에 의해 어떠한 비판 없이 보호되어야할 대상이 아니다. 전통예술의 생명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해체되고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끊임없이 재맥락화 될 때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전통예술이 여성을 배제해왔던 역사의 결과물이라면 이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대 전통예술계의 페미니즘 담론은 전통예술을 바라보는 경직된 태도를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Feminism has recently emerged as an important social issue, regardless of field. In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scene, discussions on feminism issues are relatively lively compared to the past. However, there are few radical discussions that subvert and reorganize existing history and discourse. In this reality, various factors may be at work, including hierarchy between teachers and students, conservative practices based on university rankings, and lack of criticism of misogyny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Therefore, it is time to form a discourse where the basic premise of the entrenched tradition can be critically reviewed and freely debated.
This thesis critically reviewed the characteristics and aesthetic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y the perspective of feminism.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re a cultural product formed and developed in society, so it often reflects the patriarchal order of the ruling ideology of the time. However, the argument that a male-centered order is inherent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as not been seriously considered academically so far. The question of "Ar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misogynistic?" has not been critically discussed in combination with protection ideology and nationalist justification, and has also been taboo.
In addition, the theory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as been led by male scholars, thus forming knowledge that excludes views on women. Many male scholars have overlooked the gender elements in establishing the aesthetic discours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Chapter 2, a comprehensive discussion was held to examine the expressions used to refer to the characteristics and aesthetic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nd to study who led the universal knowledg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nd it critically viewed attempts by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scene based on feminist issues from 2018 to the present. Starting in 2018, performance planning featuring women has increased noticeably, and not all projects have achieved qualitative success. Above all, there are overwhelmingly many projects that regard feminism as a means of promotion that can benefit commercially. In addition, there were many works with only women without seriously considering the male-centered context inherent i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This has been added to the criticism that follows misogyny. This paper also introduced works by contemporary female artists who are continuing their activities on the other side of this flow.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re not something that should be protected by the authority of tradition without any criticism. The vitality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can be acquired when it is actively dismantled and new meanings are added as the times change. I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s the result of history that has excluded women, anyone should be free to criticize it. Feminist discourse begins with a departure from the rigid attitude toward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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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농악 공연문화에서 바라본 젠더, 여성, 여성농악

저자 : 양옥경 ( Yang Ok-kyung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9-18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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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젠더학의 시각에서 농악에 대한 학술적 논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려 한다. 나아가 젠더학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어떤 관점과 태도가 요구되는지를 여성농악 사례 해석을 통해 밝혀보려 한다. 농악 공연 문화에서의 여성의 존재, 그리고 본고에서 여성 농악의 실체적 상징으로 삼은 여성농악이 젠더 이슈 차원에서 학술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려면, 젠더의 관점에서 유의미한 현상들이 제시되고, 나아가 논제로 성립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연구자는 여성농악을 당대 사회사적으로나 공연문화사, 농악 양식사뿐만 아니라 여성사 등의 여러 차원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본격적인 여성농악 형성 이전 시대의 농악 공연문화 및 사회문화적 맥락을 살피고,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 전통예술계를 포함한 1900년대 초중반의 연예계 동향, 남성 중심의 연예농악 상황 등을 두루 살폈다.
이 고찰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여성농악이 남성 중심의 농악 전통에 대한 저항 또는 반작용의 차원에서 발생한 돌출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로 소급해 볼 수 있는 여성 연예인의 사회적 등장, 초기 연예 산업의 발아와 여성 스타의 출현 및 파격적 대우, 여성국극의 흥행, 그리고 남성농악인들이 전개한 포장걸립으로 기반이 닦인 연예농악 등은 여성이 농악 분야에서 주역을 점유하는 새로운 농악 문화 및 양식의 성립과 관련한 공연문화적 전조 양상들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농악 전통의 맥락, 그보다 더 넓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여성농악이 탄생하였고, '여성'들이 중심이 된 여성농악이 있었기에 젠더학과의 접촉점이 분명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젠더학의 지평에서 과거 여성농악의 존재 양상을 대상화 할 때는 매우 신중한 태도와 균형잡힌 관점이 요구된다. 특히 지금의 여성주의가 크게 강조되어 있는 젠더학의 시각으로 과거 여성 농악인들의 인식과 경험을 이슈화하고, 논의하는 것은 무척 신중을 기하는 일이다. 페미니즘의 역사 역시 시대적으로 중심 화두가 바뀌고, 시행착오와 성찰을 거듭하며 성숙되어 온 것처럼, 젠더학의 관점에서 농악 공연문화, 여성, 여성농악을 논의하는 데에도 신중한 태도와 꾸준한 담론 형성, 그리고 폭넓은 숙의의 과정이 요구된다 하겠다.


This study seeks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an academic discussion of nongak from the perspective of gender studies. Furthermore, if gender-related discussions are possible, we will reveal what perspectives and attitudes are required through interpretation of female Nongak cases. In order to see the existence of women in Nongak performance culture and the possibility that female Nongak, which has been used as a real symbol of female Nongak in this school, can be discussed academically in terms of gender issues, meaningful phenomena should be presented from Gender's perspective. In response, the researcher examined the performance culture and social and cultural context of women's nongak, including women's roles, traditional arts, and male-centered entertainment nongak.
In conclusion, female Nongak was born in the context of Nongak tradition and wider social context, and there was a female Nongak centered on "women," so I believe there is a possibility contact point with Gender Studies.
However, gender issues such as inequality, absurdity, and anti-human rights that female artists face today are our problems right now. Randomly inserting women's nongak, into the gender studies, without being sure what meaningful topics the existence of women's nongak in the past can throw, cannot be a proper "mirror reflection." In particular, it is very careful to issue and discuss the perceptions and experiences of female farmers in the past from the perspective of gender studies, where feminism is greatly emphasized now. It is undesirable to weigh the past with the present standards. Just as feminism has also changed in times, and has matured through trial and error and reflection, it requires careful attitude, steady discourse formation, and extensive deliberation in discussing Nongak performance culture, women and women Nongak from a gender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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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세기 궁중음악의 변동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악고(樂考)」

저자 : 이정희 ( Lee Jung-hee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2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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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1908년(융희 2)에 국가에서 편찬한 유서(類書)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1770)』, 『증정문헌비고(增訂文獻備考, 1790)』, 『증수동국문헌비고(增修東國文獻備考, 1831)『를 이은 문헌비고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백과사전적 분류서의 형식을 지녔기 때문에 항목별로 연도순으로 기사가 제시되어 있어, 분야별로 전례와 다양한 내용을 단시간에 파악 가능하게 해준다.
1903년 2월 24일 김석규의 상소로부터 시작된 『증보문헌비고』 편찬ㆍ간행 작업은 총 5년 5개월 가량 소요된 끝에 마무리 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국내외 상황이 좋지 않은 데에다 국가 재정도 열악하여 간행까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보문헌비고』의 편찬ㆍ간행을 마무리하고 감인까지 이행했다는 점에서 전적(典籍)을 통해 국정 운영의 준거 틀을 만들고 이를 통해 문화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했던 당대인들의 문화의식을 드러내는 면모가 존재한다.
특히 『증보문헌비고』 「악고」는 19세기 후반 궁중음악의 변화를 보여주는 내용이 수록되었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황제국으로 격상되면서 변화된 악제(樂制)를 추가했다는 점, 서양음악이 궁중에 공식적으로 자리하는 새로운 국면을 반영했다는 점, 궁중 의례의 노랫말인 악장을 대폭 보완함으로써 고종의 왕권의 정당성과 권위를 높이고자 행했던 유교식 전통 의례를 부각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증보문헌비고』 「악고」는 19세기 후반 궁중음악 변동 양상이 투영된 공식적인 음악저작물이자, 격변기의 궁중음악의 지형이 새겨진 '대한제국 최후의 음악문헌'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Jeungbo Munheon Bigo(增補文獻備考)』was compiled by the nation in 1908, and is the final edition of『Munheon Bigo(文獻備考)』series. Having an encyclopedic classification, it allows us to grasp precedents and various contents by field in a short time.
Compilation and publication of 『Jeungbo Munheon Bigo(增補文獻備考)』, which began with Kim Seok-gyu's appeal on February 24, 1903, was completed after a total of 5 years and 5 months. It was difficult to publish due to poor domestic and foreign conditions and poor national finance. Nevertheless, the culture of the contemporary people who tried to preserve their identity as a cultural state by creating a framework for governing the state administration through a complete record in that they completed the compilation and publication of 『Jeungbo Munheon Bigo(增補文獻備考)』 and carried out an impression. There is an aspect that reveals consciousness.
In particular, 『Jeungbo Munheon Bigo(增補文獻備考)』 「Akgo(樂考)」 was noted in the aspect that they contained contents showing changes in court music in the late 19th century. It can be pointed out that it reflects the new phase of being positioned as a royal court, and by significantly supplementing the movement, which is a song of the royal ritual[樂章], it highlights the Confucian-style traditional ritual that was practiced to enhance the legitimacy and authority of the kingship of Gojong(高宗).
Although lacking in completeness, 『Jeungbo Munheon Bigo(增補文獻備考)』 「Akgo (樂考)」is official musical works reflecting changes in court music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is meant in terms of the last musical literature of the Korean Empire's engraved with the topography of court music during the period of uphea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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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미군정기 일라이 헤이모위츠의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최 참여와 그 한계

저자 : 최희영 ( Choi Hee-young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간행물 : 한국음악사학보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3-24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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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미군정청 음악 자문위원으로 1945년부터 약 2년간 한국에 머물었던 헤이모위츠의 참여로 개최된 전국농악경연대회 전개와 의의, 그리고 그 한계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대회 개최를 가능케 했던 헤이모위츠와 함화진과의 관계, 대회가 전통음악계에 주는 의미, 단기 행사로밖에 끝날 수 없었던 당시 예술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이에 대한 헤이모위츠의 반응 등을 두루 고찰하였다. 기존에서 단편적으로만 다루어져 왔던 미군정 시기 전국농악경연대회를 다루는 본 연구는 해방 직후 한반도 내 전통문화계 변동과 정치적 긴장감 속에서 미군정청 주요 인사였던 헤이모위츠가 끼쳤던 영향력을 재조명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헤이모위츠는 미군정청 직원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한국 대중들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전통음악에 관심을 지니게 된다. 특히 농악의 무대화에 대한 그의 큰 지지는 특히 해방 직후 좌익계 성향 인사 중 하나로 국악원을 이끌고 있던 함화진과의 돈독한 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경연대회는 정기 대회로 정착하지는 못하고 헤이모위츠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중단되고 마는데 1947년 말 좌우합작운동의 실패로 미군정과 남조선과도정부위원이 우익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예술계를 포함한 좌익 성향 인사들이 대거 탄압의 대상이 된 이유였다. 헤이모위츠는 문화 장르, 국가, 정치색에 상관없이 걸출한 예술인이라면 누구든지 존중하고 애정을 가졌던 예술인으로서 이러한 한반도의 실정을 안타까워했고 미군정의 문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좌익계 색출이 가시화되기 이전인 1946년과 1947년 대중을 위한 문화행사 성격을 지녔던 이 전국농악경연대회는 식민지 시기 동안 통제의 대상이었던 민속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해방 후의 기쁨을 맛보는 자리였다. 이러한 자리가 정치적 갈등 속에서 또다시 통제를 받게 됨은 함화진과 농악대, 그리고 민중뿐만 아니라 이를 기획하였던 헤이모위츠에게도 통탄할 소식이었다. 그의 전국농악경연대회를 향한 열정은 미국의 이념 선전에서 벗어나 한국 민중에게 의미 있는 한민족문화를 수립하고자 했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This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significance, and challenges of the National Nongak Competition, focusing on the participation of Ely Haimowitz (1920-2010), who hosted the event as the lead advisor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from 1945 to 1947. This paper discusses Haimowitz's relationships with Ham Hwajin, the significance of the competition to the traditional music world, post-colonial political conflicts in the field of art, and Haimowitz's response to the termination of the event in 1947. Delving into the National Nongak Competition that has been addressed in a piecemeal way, this study aims to shed new light on the post-colonial movements of the traditional Korean music world and Haimowitz's influence.
Haimowitz became interested in traditional Korean music as the sole USAMGIK official who experienced the Korean general public's diverse popular and folk culture. His support for the National Nongak Competition resulted from his close relationship with Ham, a leftist who established the Kugagwŏn upon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zation. However, the competition did not settle as a regular event. This is because the left-leaning activists, including eminent figures in the art field, became the target of suppression as the USAMGIK and the interim government of the Southern part of Korea made drastic rightists-centered staff changes. Haimowitz was a well-known pianist who respected and got along with great artists regardless of genre, nationality, and political inclination. As such, he was sympathetic to the state of political affairs in the Korean Peninsula, even sharply criticizing the USAMGIK policies on Korean culture.
Prior to the task of tracking left-wing activists was materialized, the National Nongak Competition that Haimowitz and Ham co-hosted in 1946 and 1947 provided the public with an opportunity to enjoy Nongak to the fullest. The colonial authorities' repression on Korean folk culture was no longer present. Haimowitz regretted the termination of the competition, which was attributable to the political tensions under the Cold War; the same sentiment was shared with Ham, local Nongak performers, and the general audience. Haimowitz's passion for the competition shows an aspect of his efforts to promote Korea's ethnic culture that was meaningful to the public beyond American ideological propaganda on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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