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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Chong(The Historical Jouranl)

  •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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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9-4446
  • : 2671-58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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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55)~10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906
사총
107권0호(2022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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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승훈 ( Han Seunghoo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간행물 : 사총 10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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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개항기 대외관계사의 연구사 정리와 전망을 모색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학계에서는 “개항기”를 한국이 서구식 근대사회로의 전환 가능성과 외세의 침략과 이에 대응한 시대로 규정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개항기 대외관계 연구는 주로 '침략'을 담당하였다. 그 과정에서 외세를 절대적인 강자로 상정하였으며, 한국은 서구식 근대를 배워가는 미숙한 존재로 그려냈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로 개항기 대외관계사 연구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외교정책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고종의 외교를 부각하는 연구, 개항기 대외관계사의 “통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시도한 연구, 역사적 실체로서 한국과 외세의 관련성 및 행위주체로서 한국의 존재를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This article started with the purpose of seeking out the research history and prospects of foreign relations during the recent port opening period. Academia has defined the “period of port opening” as an era in which Korea can transform in to a Western-style modern society and aggression and response from foreign powers. Among them, the study of foreign relations during the port opening period was mainly in charge of 'aggression'. In the process, foreign powers were assumed as an absolute strong force, and Korea was portrayed as an immature entity learning Western-style modernity. However, around 2000, a new trend appeared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foreign relations during the port opening period. Specifically, a study that highlights Gojong's diplomacy as the supreme decision maker of foreign policy, a study that attempts a critical analysis of the "orthodox" in the history of foreign relations during the port opening period, and a study that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foreign powers as a historical entity and Korea's existence as an actor research was carried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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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헌주 ( Kim Hun-joo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간행물 : 사총 10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1-8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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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 연구는 식민지기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반외세-반봉건론과 혁명전쟁론 등의 역사상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역사상이 해방 이후에는 식민사학 극복과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의 증명이라는 과제와 맞물려 변화하였다. 구체적으로 동학의 역할과 주도세력에 대한 논쟁, 동학농민군이 근대적 지향을 가졌는가에 대해서 벌어졌던 여러 논의 등이 그것이다.
의병운동에 관한 연구는 '자주와 민족', 그리고 '민중적 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이런 관점에서 의병은 근대적 변화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일어났고, 지역과 계층을 초월한 전민족적 항쟁으로 발전했으며, 궁극적으로 독립운동과 연결되었다는 역사상을 완성했다. 그러나 의병운동의 정치·사회적 성격과 의병운동 주체들의 다양한 지향을 분석한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의병운동의 역사상도 확장되었다.
이러한 연구사적 고찰 위에서 본 연구에서는 '저항'의 범위를 확장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주체들'의 움직임에 주목한 사회운동사 연구를 제언하였다. 요컨대 변혁적 민중상에서 더 나아가 '저항'의 다양한 양상과 정치성을 드러내고, 당대 지역사회에서 탈경계적으로 활동하던 주체들의 모습도 그려내어 당대 사회운동사를 두텁게 읽어내자는 것이다.


The nationalists and socialists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was established historical meaning of Donghak Peasant's War as an anti-foreign forces and anti-feudal theory and a revolutionary warfare theory. This historical meaning changed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n conjunction with the task of overcoming the colonial historical theory and that of proving the intrinsic development of Korean history. Specifically, there were debates over the role of Donghak and its leading forces, and various discussions about whether the Donghak peasant army had a modern orientation, etc.
The study on the movement of the righteous army was conducted from the perspective of 'independence and nation' and 'popular nationalism'. From this point of view, they completed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righteous army movement that it arose against modern changes and Japanese aggression, that it developed into a national struggle across regions and classes after the Treaty of Eulsa, and that it was ultimately linked to the independence movements. However, as studies analyzing the political and social characteristics of the righteous army movement and the various orientations of the subjects of the movement emerged,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movement expanded.
Based on these historical considerations, this study proposed a study on the history of social movements that expands the scope of 'resistance' and focuses on the movements of 'subjects crossing social boundaries'. In other words, this study suggested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social movements of those times more thoroughly by revealing not only the transformational public but also the various aspects and political characteristics of the 'resistance' and by portraying the subjects who were acting across the social borders in the local community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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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진아 ( Yang Jinah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간행물 : 사총 10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33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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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향후 연구를 위한 기반과 전망을 제공하기 위해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한국 근대 정치사 연구의 동향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평가와 과제를 제시했다. 1960년대부터 진행된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에서 근대 정치사 분야의 주안은 자주적 근대의 탐색에 있었다. 자주적 근대의 탐색을 기준으로 연구의 궤적을 살펴보면 1960~197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민족주의가 강조되면서 자주적 근대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연구가 이루어졌고, 1980~1990년대는 민중적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기존의 자주적 근대 탐색 작업이 변용되고 한편으로는 확장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2000년대부터는 내재적 발전론이 비판을 받은 것에서 영향을 받아 자주적 근대 탐색을 비판하는 연구와 계속 자주적 근대를 탐색하는 연구가 공존하는 연구 경향을 보였다. 1960~1990년대의 연구를 통해 식민사관이 극복될 수 있었고,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연구를 통해 이전 시기 연구의 근대지상주의가 비판되고 근대를 상대화, 나아가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국민국가론에 입각한 연구, 정치문화에 주목한 연구, 개념을 중심으로 정치성을 파악하려는 연구는 보다 보완이 필요하며 그 외에도 다양한 시각과 이론을 반영한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This article summarizes the trends of Korean modern political history research from the 1960s to the present, and presents its evaluations and tasks to provide a basis and prospect for future research. In the study of Korean history based on the theory of immanent development, which has been conducted since the 1960s, the main focus of the field of modern political history was the search for the independent modernity. Looking at the trajectory of research based on the search for independent modernity, research was conducted to explore and discover the independent modernity in the 1960s and 1970s as nationalism was emphasized politically and socially, and then in the 1980s and 1990s with the rise of popular nationalism, research that transforms on the one hand and expands the existing independent modernity search work on the other hand has been conducted. Influenced by the fact that the theory of immanent development was criticized since the 2000s, studies that criticize the search for independent modernity and those that continue to search for independent modernity showed a coexistence of research tendencies. The colonial view could be overcome through research in the 1960s and 1990s, and through research from the 2000s, the modernity supremacy of research in the previous stage was criticized, making it possible to relativize modernity and further come to criticize it. However, at the recent days studies based on the nation-state theory, studies that focus on political culture, and studies that try to grasp politics with a focus on concepts need to be further supplemented, and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conduct research that reflects various perspectives and the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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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성산 ( Cho Sung-sa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간행물 : 사총 10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5-18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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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19세기 吳熙常, 洪直弼의 문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洛論系 지식인들의 神 관념의 내용과 그것이 가졌던 사회적 맥락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19세기 낙론 학계에서의 신 관념에 대해서 많은 부분 그 연구가 부족하였다. 낙론계의 신 관념은 18세기 호락논쟁에서 논의되었던 담연지기를 황간의 형기신리 논의를 통하여 19세기에 새롭게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 신 관념에 대한 입장은 당시 낙론계의 경쟁학파였던 宋秉璿의 淵齋學派, 李恒老의 華西學派, 李震相의 寒洲學派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신 관념은 낙론계의 학문적 정체성 문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졌다. 이 신 관념은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가졌다. 첫째는 모든 존재와 사물에 신이 내재한다는 균등의 특성이었고, 둘째는 신은 본질적으로 氣인 이유로 변화한다는 특성이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그들의 심성론과 경세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변통을 중시한 東道西器論과 內修論에 입각한 교화적 斥邪論은 이러한 神 관념을 기반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This article attempts to examine the contents of the concept of Sin (神; extremely pure force) of the Nak school intellectuals, which is centered on the students of O Hui-sang and Hong Jik-pil in the 19th century, and its social context. Existing studies have not focused much on this concept from the 19th-century Nak school. Sin of the Nak school was to inherit the idea of damyeon ji gi (湛然之氣; extremely pure force) in the Horak debate in the 18th century through Huang Gan's hyeong gi sin ri (形氣神理; form, force, extremely pure force, principle) discussion in the 19th century. This position on the concept received much criticism from the Song Byeong-seon, Yi Hang-ro, and Yi Jin-sang schools, which were the Nak school's rivals at the time. In this respect, the concept of Sin has a close relation ship with the academic identity problem of the Nak school. It has two important characteristics: equality, in that Sin is inherent in all beings and things, and change, in that Sin changes all beings and things because it essentially has the characteristics of gi (氣; force). These aspects have become important ideological foundations for the heart and mind theory and the statecraft theory upheld by the Nak school intellectuals. The theory of Dongdo seogi (東道西器; Eastern ethics and Western technology)-which emphasized reformation-and the argument to reject the West based on internal moralism were based on this concept of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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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민경 ( Lee Min-kyo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간행물 : 사총 10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5-230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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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전반 영국인들의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에 대한 선행연구사 뿐만 아니라 이민의 현황과 실제 관행, 담론 및 사회적 사고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영국인들의 식민지 이민 연구에 확장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민 증가 현상의 직접 대상인 이민자들에 대해 본고는 모국의 불필요한 잉여인력이라는 일반 인식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영제국 번영에 이바지할 자질을 갖춘 부류로 고려되었음을 확인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이민 유인요건에 있어 특히 '건전한 이민자' 선발을 위한 재정지원의 수혜조건과 이민자 선택조건에 까다로운 자격 기준이 적용되었음을 확인한다. 이로부터 이를 우회하려는 여러 부정적 시도 또한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본고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이민자들의 출신 종족, 지역 또는 계층에 대한 일반적 해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아울러 식민지 이민에 대한 사회적 사고를 검토함으로써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이민의 증가가 단순히 '영제국의 확장' 또는 '모국과 식민지의 경제사회적 문제 해결'이라는 사고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인식했던 개념적 사고에도 기초함을 밝히고 있다.


This study presents an expanded view on 'British emigration to colonial Australia in the first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by examining not only the historiography but also the conditions, currents, actual practices, discourses and social thinking on colonial immigration. Regarding immigrants, it confirms that they were considered capable of contributing to the prosperity of the British Empire. Regarding incentives for immigration, it finds that strict eligibility criteria were applied for providing assistance and selecting “sound emigrants” ; consequently, attempts to bypass these were also observed. Concerning the social thinking behind colonial immigration, it affirms that the increase in immigration to the colony Australia was not only based on the idea of the 'expansion of the British Empire' or solving socio-economic problems, but also on the conceptual thinking that recognized the col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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