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update

  •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738-2173
  • : 2713-7325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40권4호(2021) |수록논문 수 : 594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4호(2021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살 만한 삶”을 향해: 『젠더 트러블』에서 『비폭력의 힘』까지

저자 : 윤조원 ( Yoon Joewon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7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초기 저작 『젠더 트러블』부터 최근의 『비폭력의 힘』까지 주디스 버틀러의 사유가 밟아온 궤적을 살피며, 더욱 중요하게는 그 변화의 흐름 가운데 서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살 만한 삶”의 조건들에 대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는 “살 만한 삶”을 규제하고 폐제하는 힘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초기의 젠더 이론에서 버틀러가 누군가를 인정불가능하고 애도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폐제의 권력으로서 규범적 젠더 체계를 비판하고 해체하고자 했다면, 윤리적 지향이 두드러지는 후기의 저작들은 그러한 문제틀을 확장하여, 인간과 생명, 삶의 의미체계를 규제하여 “삶 속 죽음”을 초래하는 상징질서의 조건들에 의문을 던진다. 이와 같은 점에 주목하고 이 글은 버틀러의 이른바 윤리적 선회를 단절로 보는 대신, 초기 젠더 이론의 문제의식과 나란히 후기 저작들을 독서함으로써 버틀러 사유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의 사유와 연계된 실천의 가능성을 살핀다. 또한 애도가능한 존재들의 “살 만한 삶”을 지향하는 버틀러의 비폭력 윤리가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의 대안적 인간관을 형성하고 있음을 밝힌다.


This essay overviews Judith Butler's oeuvre to trace how Butler's theoretical thinking changes shape over three decades from Gender Trouble (1990) to The Force of Nonviolence (2020). More importantly, this essay notes that the consistency of Butler's work lies in the very same question she keeps asking about the terms of “livable life” and the forces that foreclose or destroy them. Butler's gender theory begins by interrogating how the normative gender system forecloses some lives as unintelligible and ungrievable by regulating the field of signification. This critical framework continues in her later works and leads to an expansive critique of the operation of power which condemns some people to the “death within life,” be they sexual minorities or refugees. Instead of finding Butler's 'ethical turn' as a theoretical break, this essay suggests that the ethics of nonviolence and its political orientation explicated in her later works can be better understood in the theoretical continuum with her earlier works, where pain, melancholy, grievability are already key notions. The entirely of her work consists in an alternative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as vulnerable and interdependent, whose claim to a “livable life” is envisioned on the ground of radical equality.

KCI등재

2瑞隱 全新民의 『瑞隱實紀』考察

저자 : 김현희 ( Kim Hyunhee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9-68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전신민은 본관은 천안이며 호는 서은으로 고려 공민왕 때 북도안무사 겸 병마 원수를 거쳐 우왕 때 병부상서를 역임한 고려 후기 무신이다. 전신민은 병부에 있으면서 포은 정몽주와 나라 형세를 걱정하였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되고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전남 담양군 남면 연천리 산음동으로 내려와 종적을 감추었다. 전신민은 '두문동 72현'과 뜻을 함께하며 '백이 숙제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홀로 서산에서 굶주림을 지켰는가.'라는 뜻으로 '독수'라고 편액한 작은 누정을 짓고 죽지 못하고 은둔하며 지낸 절의의 신하이다. 『서은실기』는 서은 전신민의 시문과 관련 글, 후인들의 차운시 등을 모아 편집한 5권 1책의 문집이다. 독수정 관련 자료로는『서은실기』가 유일하며, 전신민의 지행과 충절을 보여주고 독수정을 중건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신민은 독수정의 주인으로 이전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국파군망의 한을 품고 자연을 벗 삼아 시문으로 한을 달랬다. 『서은실기』의 구성은 '두문동 72현'의 명단을 최초로 기록한 『기우집』과 유사하며, 「부조현언지록」을 싣고 있는 최초의 문집인 『철감록』과는 인물 선정에서 차이점이 있다. 『서은실기』는 '두문동 72현'과 뜻을 같이한 절의를 지킨 선조인 전신민을 추숭하기 위해 후손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Jeon, SinMin, family clan is Cheonan, was nicknamed SeoEun, and was a warrior in the late Goryeo Dynasty who served as a military commander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and King Wu of Goryeo. Jeon, SinMin was along with Jeong, Mongju, he was worried about the state of the country while he was commander of the army. When PoEun Jeong, MongJu was murdered at Seonjuk Bridge and Goryeo fell, he abandoned his post and came down with his family to Saneum-dong, Yeoncheon-ri, Nam-myeon, Damyang-gun, Jeollanam-do and hid. Together with the 'Dumundong 72Hyun''s same will, he built Doksu-jeong to mean 'what kind of person Baek-yi and Sukje, so they died of starvation in Seosan.' and could not die and lived in seclusion. SeoEunsilgi is a collection of five volumes, one book. It is compiled by collecting and editing poems and related articles by Jeon, SinMin, as well as the poems of his descendants. The only material related to Doksujeong is SeoEunsilgi, which shows the wisdom and loyalty of the former people, and the process of rebuilding Doksujeong can be confirmed. As the owner of Doksujeong, he kept the integrity of the military and immortality, embraced the resentment of the nationalist military network, and made friends with nature to comfort him with poetry. The composition of SeoEunsilgi is similar to Giwoojip, which first recorded the list of 'Dumundong 72Hyun', and the character selection is different from Cheolgamnok, the first collection of literature to contain 'Bujohyeoneonjirok' is showing. SeoEunsilgi can be said to be the result of the efforts of descendants to honor the ancestors, Jeon, SinMin, who kept the ceremonial spirit that shared the meaning of 'Dumundong 72Hyun'.

KCI등재

3宋代 正祀와 淫祀에 관한 認識 - 朝廷·官員·士人의 淫祀觀을 중심으로

저자 : 정일교 ( Jeong Ilgyo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9-95 (27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송대는 민간 神祠信仰은 매우 성행하였고 그 합법성 문제 또한 매우 중시 되었다. 민간 신사신앙이 官方의 승인을 얻는 주요과정을 보면 祀典에 등록하는 것과 封祀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전을 위주로 점차적으로 賜額과 封額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와 지역사회의 역량 그리고 그 신앙의 근원은 큰 연관성을 갖고 있었고 이들 사이에는 상호 인과관계가 존재하였다. 동시에 일부 민간 사신신앙은 朝廷·官員·士人 그리고 理學家들에게 “淫祀”라하여 배척 당하였다. 조정·관원 그리고 사인의 음사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주로 음사가 민간의 생명안전·지방치안·경제이익·윤리도덕 그리고 貌像儀式이 비도덕적이었다는 것이었고 神靈의 출신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의식행위가 합법적이지 않은 것에도 관심을 가졌다. 관원과 사인이 사신신앙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합법적인 경우라도 조정의 제도와 유가경전과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理學家가 운용한 理·氣·誠 등의 관념은 전통 유교경전을 다시 해석하는 것이었고 매우 엄격한 음사 관념을 제시하였다. 어떠한 경우에는 朝廷에서 封賜를 받은 수많은 신령 또한 합법적이지 않은 음사에 속하였고 이학가들은 傳統祀典을 회복하는 것이 최후의 이상이라고 보았다.
송인이 인식하고 있던 正과 淫의 대립된 이분법적 관념은 부당한 것이었고 정사와 음사 사이에 사신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송대의 지방 관원은 소재지의 신사에 대하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상황은 官과 民이 雨旱祈禱에 있어서 신사가 사전에 등록되었는지 아닌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송대에는 법률로 정사와 음사를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규정은 없었을 것이지만, 개인은 정사와 음사에 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사와 음사에 경계에 있어서 여전히 모호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송대 조정·관원 그리고 사인은 민간 사신시상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다양한 특수성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송대 음사를 배격하였던 주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The ritual shrine[神祠] worship was very popular in the era of the Song Dynasty. But the issue of its legality was very important and sensitive thing. There were the main two ways that a private ritual shrine worship get official recognition from the government. First thing was putting the shrine on the Dynasty's official shrine list[祀典]. And another way was applying for a specific ritual[封祀]. Mainly with the Dynasty's official shrine list, it was gradually turned into the way receiving the title board[賜額] and certain supports[封額]. There were a close interrelationship and a cause-and-effect relationship among this change, the capability of community and the origin of folk religion.
On the other hand, some private ritual shrine worships were rejected by the government, officials[官員], scholars[士人] and Neo-Confucianism Confucians[理學家] because they suspected that those ritual shrines held improper ritual. They claimed that those shrines became a menace to safety of residents, local economy and security, and social ethics. They especially pointed out that the way of those shrines ritual was unethical and illegal. They also took issue with the origins of those shrines' divine spirits. Even if it was legal, the officials and scholars judged a ritual shrine whether to be a proper ritual or to be a improper ritual in accordance with the government's policy and Confucian scriptures. However, actually, the most important criterion was the government's policy. Neo-Confucianism[理學] reinterpreted their Confucian scriptures focusing on Li-Qi theory[理氣論], and the Confucians established a strict criterion about whether to be a proper ritual or to be a improper ritual. In some cases, lots of private ritual shrines didn't fit in the strict criterion, even though they had gotten certain supports from the government. Neo-Confucianism Confucians wanted to recover the Dynasty's official shrine list aboriginally.
The Song people thought their dichotomous view was incorrect, and admitted that the ritual shrines were between to be proper and to be improper. The local officials didn't apply strict criteria to the ritual shrines. Commonly it wasn't important thing that a shrine was on the list or not. In the Song Dynasty, there were not any law to divide specifically whether a ritual shrine was to be proper or not to be proper. But there were probably a strict criterion for individual to ritual shrines. The border between to be proper or not to be proper was uncertain. It had lots of perception gap and considerable complex interrelation about ritual shrines among the government, officials, and scholars. They became the main causes to reject the improper ritual.

KCI등재

4타즈족의 형성 과정 및 문화 혼종성

저자 : 엄순천 ( Eom Sooncheon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7-125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타즈족은 19세기 초중반 이후 퉁구스족 여성과 한족, 만주족 남성의 혼인으로 출현한 타즈족, 한국인 여성과 한족, 만주족 남성의 혼인으로 출현한 포투이즈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종족이다. 타즈는 중국어 타주(他族)에서 기원하지만 중국인들의 타즈 사용 양상은 시기별로 이민족의 범칭(泛稱), 퉁구스계 특정 종족명, 현대 타즈족의 호칭으로 변화되었다. 중국인들로부터 타즈라는 용어를 차용한 러시아인들의 타즈 사용 양상은 일관성이 없었고 이는 타즈족 연구에 많은 제약이 되면서 타즈족의 기원은 현재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다.
타즈족의 기원에 관한 러시아 연구자들의 주장은 몽골 타타르족 기원설, 퉁구스족 기원설, 독립 종족설로 나누어지는데 퉁구스족 기원설은 다시 오로치족 기원설, 우데게족 기원설, 나나이족 기원설, 퉁구스계 여러 종족 혼혈설, 퉁구스족 기층의 아무르강 하류 여러 종족 혼혈설로 나누어진다. 21세기 이전 러시아 연구자들 사이에는 오로치족 기원설과 우데게족 기원설이 널리 전파되어 있었고 21세기 이후에는 독립 종족설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주거문화에서 구조물의 맞배지붕, 정방형의 우물은 퉁구스족, 타즈족, 한반족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사냥 덫 투이~투대는 극동 남부~한반도 북부에 전파되어 있는데 이는 극동 남부 지역~한반도 사이에 문화 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타즈족은 중국인의 영향으로 퉁구스족과 달리 씨족명 대신 성(姓)을 사용하였는데 복성이 90%이며 모든 음절들이 의미소로 작용하고 나나이족 기원의 성이 17개로 전체의 56.6%를 차지하는데 이는 타즈족의 기층이 나나이족임을 말해준다.


The taz are independent race an composed of taz and fotuiz. After the early and mid-19th century, the taz appeared from the marriage of a tungus women, a han chinese, and a manchu men, and the fortuiz emerged from the marriage of a korean women, a han chinese, and manchu men.
The claims of russian researchers on the origin of the taz are divided into the theory of the origin of the mongol tatars, the theory of the origin of the tungus, and the theory of independent racial origin. The tungus origin theory is further divided into the orochi origin theory, the udege origin theory, the nanaj origin theory, the tungus mixed race theory, and the tungus-based nivh mixed theory. In the 19th and 20th centuries, the taz were strongly influenced by the udege, nanaj, and orochi, living in the same natural ecological environment and socio-economic conditions as the adjacent udege, nanaj, and orochi. In the residential culture, the gable roof of the structure, the square well, and the hunting trap tui~tudae are spread in the southern far east and the korean peninsula, indicating that there was a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tribes in this area. Unlike the tungus, the taz used their surnames instead of their clan names due to the influence of the Chinese. There are 17 surnames of nanaj origin, accounting for 56.6% of the total, indicating that the nanaj make up the base of the taz.

KCI등재

5대학 교수자를 위한 교수역량자가진단도구 개발

저자 : 성소연 ( Sung Soyeon ) , 박혜영 ( Park Hyeyoung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7-152 (2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대학 교수자들의 교수역량을 스스로 평가하고 점검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문헌연구를 기반으로 예비문항을 개발하고 교수자 136명을 대상으로 예비조사 실시 후 내적 신뢰도 분석과 탐색적 요인분석을 통해 최종문항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284명의 교수자 대상으로 한 본조사를 통해 문항의 신뢰도 및 구인타당도 검증을 실시하였으며, 교수자 배경변인 간의 차이 분석을 하였다. 최종적으로 기본역량(열정적 태도, 다양성 존중, 입체적 사고) 12문항, 강의역량(전문적 교과지식, 강의개발, 강의운영, 상호작용) 18문항으로 구성된 전체 30문항의 교수역량자가진단도구를 개발하였다. 또한, 교수자의 직급과 재직기간에 따른 교수역량을 살펴본 결과, 조교수와 부교수의 교수역량이 교수보다 더 높고, 신임 교수자가 21년 이상 재직한 교수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개발된 교수역량자가진단도구는 교수자의 교수역량에 대한 세부적 진단을 가능하게 하고, 교수자가 자기인식에 기반하여 강의를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velop tools that can self-evaluate and check the teaching competency of university professors. Based on literature research, preliminary questions were developed and preliminary surveys were conducted on 136 professors, then the final questionnaire was completed through internal reliability analysis and exploratory factor analysis. The survey of 284 professors was conducted, and the reliability and validity of the final questionnaire were verified. In addition, the differences according to professor background variables were analyzed. Finallly, self-lecture diagnostic tool was developed with a total of 30 questions, consisting of 12 in basic competency (passionate attitude, respect for diversity, multi-dimensional thinking) and 18 in lecture competency (professional knowledge, lecture development, lecture operation, interaction with students).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teaching competency according to the professors' potions and length of service, the teaching competency of assistant professors and associate professors was higher than that of professors, and that of professors with 0-3 years of service was higher than that of professors over 21 years. The self-diagnosis tool for teaching competency developed in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enables detailed diagnosis of the professor's teaching competency and provides opportunities for professors to respond based on self-awareness to check and improve lectures.

KCI등재

6대학 신입생 가정의 학업지지와 공동체 의식 간 관계에 미치는 대학특성과 학생특성의 직렬매개효과

저자 : 안선영 ( Ahn Sunyoung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3-182 (3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의 목적은 대학 신입생의 공동체 의식 역량에 가정에서의 학업지지가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이들의 관계를 매개하는 두 요인인 대학특성과 학생특성이 어떠한 간접효과가 있는지 탐색하는데 있다. 간접효과의 확인은 SPSS를 이용한 Baron과 Kenny(1986)의 단순 및 위계적 회귀분석과 Mplus를 이용한 직렬적 다중매개모형의 두 방법으로 하였고, 대학 신입생 150명의 응답 자료를 사용하였다. 연구 결과, 가정의 학업지지는 대학 신입생의 공동체 의식역량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 그러나 매개변수를 투입했을 때에는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가정의 학업지지와 공동체 의식 간 관계는 학생특성에 의해 완전히 매개되었다. 또 대학특성은 학생특성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공동체 의식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가정의 학업지지는 대학특성, 학생특성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대학특성과 학생특성을 각각 투입했을 때는 학생특성만이 완전매개효과를 나타내었고, 두 매개변수를 모두 투입했을 때에도 가정의 학업지지에서 대학특성, 학생특성을 거쳐 공동체 의식에 영향을 주는 간접효과 즉, 완전매개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다. 본 연구는 대학 신입생에게 대학특성의 영향이 유의하지 않았던 결과를 바탕으로 검사 시기, 비교과 프로그램과 교양 교육, 장학지원 등 신입생의 공동체 의식 강화를 위해 대학특성이 긍정적으로 향상되도록 고려해 볼 방안들을 논의하고 후속 연구를 위한 보완점을 제언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family's academic support that affects the sense of community of university freshmen. It is also aimed to explore the indirect effects of university and student traits as mediators. For this, two types of analysis about indirect effect were implicated for 150 response data of freshmen: First, the simple linear and hierarchical multiple regression were carried out with Baron & Kenny(1986) procedures. Second, a serial multiple mediation model with Mplus 8.5 was applied. As a result, family's academic support had a direct effect on the sense of community of university freshmen. However, when the mediators were put in the model, direct effect was disappeared. The relation on family's academic support and the sense of community was fully mediated by student traits. Family's academic support influenced both traits of university and student. university traits had an effect on student traits though, it did not influence on the sense of community. Finally only student traits showed a full mediated effect when university and student traits were input. Even both mediators were input simultaneously, the full mediated effect on sense of community through university and student traits was statistically significant. As a results of this study, it was discussed that some considerations are needed for freshmen such as appropriate diagnosis timing, developing the support programs with scholarships, extracurricular and general education. Then some complementary points were suggested for the future study.

KCI등재

7오지호의 주정적 회화세계 연구

저자 : 최정주 ( Choi Jeong-ju )

발행기관 :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권 4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3-215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오지호는 한국 인상주의 회화의 선구자로 기록되어왔다. 또한 인간의 본성과 예술의 본질, 자연의 생명력을 결합한 회화이론을 꾸준히 제시하여 한국근현대미술사에 논리적 토대를 마련하고,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장에 기여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오지호의 회화세계를 인상주의로 한정해온 그동안의 미술사적 관점을 재고하고, 그의 작품 성향의 변화와 이론적 주장 속에서 절대 긍정의 자유를 본성으로 하는 대상의 '생명'을 부각하는 감정이입과 심안(心眼)의 작용을 통해 '색채'와 '형태'의 주관적 회화 표현에 천착했던 면모를 '주정주의' 회화세계로 규정하여 그의 작품세계가 지니는 본질적 특성을 바로 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2장에서 오지호가 일본 유학을 통해 인상주의 회화의 원론을 재인식하고 한국적 풍토에 맞게 재창조한 양상을 살펴보고, 3장에서 야수파, 표현주의, 상징주의 회화로 확장해 나간 주정주의 회화의 변화를 고찰하고, 4장에서 그동안의 조형 표현의 방법을 총동원하여 양식과 내면의 의식을 절충한 회화 언어로 확장해나간 면모를 확인했다. 그 결과, 오지호는 인상주의를 자신의 회화적 관점을 설명하는 이상적인 조형 도구로 활용하여 한국 인상주의 회화의 문을 연 장본인이지만, 인상주의자로 제한할 수 없을 만큼 다면적인 모더니즘 회화의 변용을 추구했다. 또한, '순수회화론', '구상회화론', '데포르메론'을 통해 구상회화에 기반한 조형적 변형을 포용하는 미의식을 제시하면서 주정주의 회화세계로 확장해 나갔음을 확인했다.


Oh Chi-ho has been recorded as a pioneer in Korean impressionist painting. In addition, by steadily presenting a painting theory that combines human nature, the vitality of nature, it laid the logical foundation for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art history and contributed to the growth of Korean modernist ar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consider Oh Chi-ho's artistic perspective, which has limited the painting world to impressionism, and to see the essence of his work world by defining the subjective painting expression of "color" and "form" through empathy and deep vision. Chapter 2 examines Oh Chi-ho's re-recognition of the principles of impressionist painting through studying in Japan and recreation to suit the Korean climate, examines changes in emotionalism painting, and Chapter 4 mobilizes all methods of formative expression and inner consciousness. As a result, Oh Chi-ho was the one who opened the door to Korean impressionist painting by using impressionism as an ideal formative tool to explain his pictorial perspective, but pursued a multifaceted transformation of modernist painting that could not be limited to impressionists. In addition, through Pure Painting Theory, Initiative Painting Theory, and Depormeron, it was confirmed that it has expanded into a world of painting by emotionalism by presenting a sense of aesthetics that embraces formative transformation based on conceptual painting.

1
권호별 보기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