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석당논총 update

  •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738-6578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7)~83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761
석당논총
83권0호(2022년 07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저자 : 정인태 ( Jung In-tae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43 (3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5~6세기 고령지역 봉토분을 축조공정별로 주요 축조기법을 분류하고, 유형 설정을 통해 봉토분 축조의 전개양상과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7단계의 축조공정에서 나타나는 주요 축조기법은 각각 위계성, 시간성, 공간성을 나타낸다. 이 중 봉토분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위계성'을 기준으로 4개의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또 기존 편년안을 토대로 5기의 시기 설정을 통해 고령지역 봉토분의 축조기법의 전개양상과 그 배경을 알아보았다.
봉토분은 위계별로 묘제, 축조기법 등이 발전해 가면서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높은 위계의 Ⅰ유형은 능선 말단부에서 능선을 따라 입지가 이동하면서 축조되고, 5세기 후엽 이후에 일정 간격으로 조성되었다. 묘제도 주·부곽식 수혈식에서 횡혈식으로, 구조도 목곽에서 석곽으로 발전하였다. 또 Ⅰ·Ⅱ유형은 부곽과 순장곽의 배치도 일정한 패턴으로 변화하는데, 반면 Ⅲ·Ⅳ유형은 주곽과 순장곽이 나란히 배치되는 정형성을 보이는 등 차이가 나타난다.
5세기 후엽의 44호분을 기점으로 최고 위계를 가진 봉토분은 일정한 묘역을 가지며 입지가 정형화되고, 규모와 축조기법에서도 하위 위계의 봉토분보다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준다. 또 일부 계층은 본관동고분군으로 옮겨 봉토분을 축조하는 양상도 확인된다.
6세기 중엽 이후로는 최상위 계층의 묘역이 고아동고분군으로 이동하면서 수혈식 묘제에서 횡혈식 묘제로 변화하는 등 급격한 사회변화를 맞이한다. 또 출토 유물을 통해 고령지역 봉토분 축조집단은 신라, 백제, 왜 및 다른 가야 소국들과 교류 또는 대립하면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nvestigates the techniques and methods for the construction of mound tombs in Goryeong of the 5th and 6th centuries. Then Ⅰ looked at the development and background of construction of mound tombs.
The major the techniques and methods in the construction process of Step 1~7 are represents the Hierarchy and space-time specific. Of these, four types were divided based on the 'Hierarchy' that most prominently demonstrat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und tombs.
In addition, the time to build the mound tombs was divided into 5 period and the development and background of the method of constructing the mound tombs in Goryeong.
The reason behind the creation of the mound tombs are the increase in agricultural and iron productivity after the 4th centuries. Along with Gyeongju and Changnyeong, it will build the earliest large-scale mound tombs in the Yeongnam region.
It can be seen that it was created under the influence of Silla in order to become a center forces in Gaya after Southward Expansion of King Gwanggaeto.
The mound tombs in Goryeong has different scale, location, and construction techniques depending on the hierarchy. This reflects the social stratification.
In addition, relics from the mound tombs show that the group of people who built mound tombs in Goryeong developed by exchange or confrontation Silla, Baekje, Why(Japan) and the other Gaya.

KCI등재

저자 : 崔永好 ( Choy Young-ho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5-69 (2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에서는 고종 33년 조성된 『선문삼가염송집』 권1~6의 기본정보를 정리·분석한 다음, 해당 불교기록유산에 함축된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진단하였다. 이 과정에서는 『선문삼가염송집』도 해인사대장경판의 외장으로 포함될 수 있는 개연성도 검토하였다.
『선문삼가염송집』 6권은 수선사 계열의 승려지식인 구암이 『선문염송집』 30권 가운데 雪竇·天童·圜悟 3가의 염송을 발췌·편집한 선종의 공안집이다. 현재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에 포함되어 있는 해당 기록유산은 고종 33년 음력 7월 판각된 목판 가운데 훼손·마모된 일부 경판을 세조 10년 조선국간경도감에서 보판한 중수본을 찍은 인출본이다. 때문에 해당 인출본의 외형적 형태와 천영의 후기 및 각수 등과 같은 기본정보에는 고종 33년 음력 7월 해당 불교경판의 조성에 대한 역사·문화적인 실체·성격과 함께 세조 10년 조선국간경도감의 보각 사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해당 불교기록유산은 관찬 사서나 개인 문집 등에서 확인되지 않는 해당 목판의 조성불사를 보완할 수 있는 원천자료이다. 고종 33년 음력 7월 해당 불교경판이 조성된 이후, 세조 10년 조선국간경도감에서도 보각·보완한 사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불교 기록유산으로서의 원천자료적인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종 33년 음력 7월 조성된 역사·문화적인 실체와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존 『선문삼가염송집』 권1~6은 외형적 형태가 13세기 중엽 분사도감에서 조성된 『선문염송집』·『주심부』 등의 판본과 동일·유사하며, 17명의 각수들 가운데 正安·孫昌 등 13명이 해인사대장경판의 조성기구로 설치·운영된 고려국대 장도감·분사대장도감에서 개별 경판을 직접 새겼던 사실이 확인된다. 때문에 『선문삼가염송집』 권1~6은 고종 33년 음력 7월 대장도감·분사도감에서 판각되었거나 해당 도감의 인적·물적 자원과 연계망으로 조성된 도감판으로 분류될 수 있다. 더구나 海藏分司에서 조성된 수선사 계열의 『선문염송집』 30권도 해인사대장경판의 외장으로 분류되고 있으므로, 대장도감·분사도감의 인적·물적 자원과 연계망으로 조성된 『선문삼가염송집』 6권도 해인사대장경판의 외장으로 새롭게 추가·편입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해당 『선문삼가염송집』 권1~6은 향후 해인사대장경판의 외장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원천자료로서의 역사·문화적인 가치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attempt to analyze into the historical & cultural character of the Book of Reciting of Zen Buddhism that have engraved in the King-Gojong's 33th year of the the Goryeo-Dynasty. the Buddhist Heritage is included in the Excavated Documents that was found in Plastic statue of Vairocana Buddha(塑造毗盧遮那佛) at the Girim-Temple(祇林寺). in the process of this analysis, the existed studies have been reviewed, and the original information has been newly organized. the original information is the bibliographic information & the publication-information & the engraver that this woodblocks-Printing have been existing.
First, the Buddhist Heritage is the printed publications of the relevant woodblocks that have engraved in the King-Gojong's 33th year of the the Goryeo-Dynasty.
Secondly, the source information can supplement the Buddhist contents of the Goryeo's Annals(高麗史) & the King-Sejo's Annals(世祖實錄) & the personal writings. in addition, the source information can supplement the historical & cultural reality of the original information that the Goryeo-Dynasty-Daejangdogam(大藏都監) & the Goryeo-Dynasty-Bunsa Daejangdogam (分司大藏都監) have engraved the relevant Buddhist-woodblocks in the King-Gojong's 33th year of the the Goryeo-Dynasty. and the source information can supplement the reality that the Josun-Dynasty-Gangyeongdogam(刊經都監) has supplemented a part of the woodblocks in the King-Sejo's 10th year(1464) of the the Chosun-Dynasty.
Thirdly, the relevant Buddhist-woodblocks have engraved by the human & material resources of the Goryeo-Dynasty-Daejangdogam & the Goryeo-Dynasty-BunsaDaejangdogam. therefore, the relevant Buddhist-woodblocks can be classified as a Daejangdogam-woodblock(都監板), can also be included in the Woijang(外藏) of the the Haein-Temple's Buddhism-Sutra-woodblock(海印寺大藏經板).
Finally, the printed publications can be used as key data that it restored the relevant Buddhist-woodblock.

KCI등재

저자 : 오임숙 ( Oh Im-suk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99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조선 중기 좌의정을 역임했던 화곡(華谷) 「이경억 誌石」에 관한 분석이다. 지석이란 장례 마지막 절차 때 땅 속에 매납하는 부장품의 하나이다. 피장자 성명을 비롯해 관직, 선대 계보, 생몰연대, 행적, 장지, 좌향 등 출생부터 사망과 매장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는 1차적 사료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생생한 기록은 피장자의 충실한 전기적 자료가 될 수 있으며, 한 개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경억(李慶億)은 조선 인조(1644)~현종(1672) 때 문신으로, 1644년(인조 22)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을 시작으로 1672년(현종 13)에 이르기까지 이조·호조·예조·형조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한성 판윤(判尹)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까지 올라 경주이씨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경억 지석」은 그가 사망한 후, 29년이란 세월이 지난 1702년에 제작해서 매납한, 총 13편으로 구성된 장방형의 청화백자 지석이다. 이 시기는 청화백자 지석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경억 지석」처럼 장편으로 제작된 장방형 형태의 청화백자 지석이 사대부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내용 구성에 있어 조선시대 드물게 나타나는 표제문(表題文), 지문(誌文), 명문(銘文)의 구성 체계를 갖추고 있어, 18세기 사대부 지석의 전형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이경억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등 문헌 자료를 비롯해, 묘비나 묘갈 그리고 행장을 통해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석을 통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아직 한 번도 조명되지 못했던 「이경억 지석」기록과 여러 문헌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그의 행적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시도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문헌 자료 등에서 누락되었던 이경억이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그의 지석을 통해 조금이나마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memorial stone of Lee Gyeong-eok who held office as the first vice-premier in middle Joseon. A memorial stone is one of the grave relics buried underground in the last procedure of a funeral. It primary provides historical data based on the vivid records of a buried person from birth to death and burial including name, public post, genealogy of ancestors, birth and death dates, achievements, burial plot, and exposure. Such vivid records can serve as loyal biographical data for the buried person, thus telling his or her personal history.
Lee was a literati official during the reigns of King Injo (1644)~King Hyeonjong (1672) in Joseon. He won first place in the regular state examination for literati officials in 1644 (22nd year of King Injo's reign). His career as a government official began with Jeonjik, and he held office as a minister of Ijo, Hojo, Yejo, and Hyeongjo until 1672 (13th year of King Hyeonjong's reign). After serving Hanseong as the mayor, he moved up to the second and first vice-premier position. He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 figures of the Gyeongju Lee clan that brought glory to the family.
The memorial stone of Lee Gyeong-eok was made and buried in 1702, 29 years after his death. It is a rectangle memorial stone made of white and blue porcelain and comprised of a total of 13 parts. Those days marked the golden era of memorial stones made of white and blue porcelain in Joseon. Rectangle memorial stones made of white and blue porcelain like the memorial stone of Lee Gyeong-eok were a huge vogue in the nobility during the time. Lee's memorial stone was in the content organization system of Pyojemun, Jimun, and Myeongmun, being a rare case among memorial stones in Joseon. It is a good example to show the typical characteristics of the memorial stones of noblemen in the 18th century.
Lee is well-known to some degree thanks to literature materials including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Seungjeongwonilgi and records from his tombstone, a small headstone before the tombstone, and history. This is the first study on Lee based on his memorial stone. The study attempts to make a more specific approach to his achievements by comparing and analyzing his memorial stone that had not been examined before with several literature materials. His memorial stone helped to supplement new materials about Lee that had been omitted from several literature materials.

KCI등재

저자 : 김정선 ( Kim Jung-su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1-121 (2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서양화가 츠지 히사시(辻永, 1884~1974)가 1927년 완성한 <일한합방>은 메이지천황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성덕기념회화관 벽화 중 한 점이다. “明治43년(1910) 8월 22일, 조선정부의 동의를 얻어 병합조약에 조인”했던 “당시의 경성 남대문 부근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화면에는 병합을 축하하듯 일장기가 휘날리고 숭례문을 배경으로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그런데 본 작품을 한일합병을 주제로 한 역사적 기록이라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즉, 대부분의 회화관 벽화들이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정황'만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며, 무엇보다 유일하게 시공을 나타내는 장치인 숭례문조차 현판이 부재하다. 게다가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숭례문의 모습은 1910년 합병 '당시의 남대문'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따라서 논고에서는 이러한 의문점들을 바탕으로 먼저 성덕기념회화관의 성격을 畵題 선정을 통해 살펴보고, <일한합방>의 제작 과정 및 내용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종래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 없는 본 작품이 단순한 事實의 전달을 넘어 한일 강제 병합을 정당화하고 천황의 성덕을 시각화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메이지천황의 신령이 깃든 남산과 도성 관문으로서의 당당한 자태를 잃어버린 숭례문이야말로 망국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s one of the mural paintings at the Meiji Memorial Picture Gallery painted by an Westerner-style painter Hisashi Tsuji (辻永, 1884~1974) to commemorate the Meiji Emperor. The theme of the painting is “the scene around Namdaemun Gate, Gyeongseong at the time” of signing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with the consent of the Korean Empire on August 22, 1910. The painting depicts the flag of Japan flying as if celebrating the annexation and the peaceful daily life of the Koreans and Japanese.
However, some factors disturb understanding that this work is a historical record on the theme of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other words, Tsuji's painting describes only “the circumstances at that time,” while most of the mural paintings in the painting gallery deal with the specific “events.” Above all, Sungnyemun Gate, the only sign representing time and space, does not have its tablet. In addition, it is hard to conclude that the gate in the painting covered with ivies was 'the Namdaemun Gate at the time' of the annexation in 1910.
Therefore, based on these questions, this article explor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Meiji Memorial Picture Gallery tby selecting the themes of their paintings. It also examines the production process and contents of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Through these analyses, this essay argues that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which has never been specifically mentioned before, is a work that justified the forced annexation and visualizes the sacred virtues of the emperor. Namsan Mountain, where the spirit of the Emperor Meiji indwells, and Sungnyemun Gate, which lost its dignified appearance as a gateway of the capital, represent the ruined country's phases of the times.

KCI등재

저자 : 권정원 ( Kwon Jung-won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154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선신보』는 1881년 12월 10일, 부산에서, 일본인 상인이 중심이 된 재부산항상법회의소에서 간행한 신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이라 불리는 『한성순보』보다 1년 10개월 정도 먼저 창간되었으니,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한반도에서 간행 된 최초의 근대 신문이라 하겠다.
『조선신보』는 그 중요성에 비해 학계에서의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 『조선신보』가 일본어와 한문의 2중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 기인함이 크다. 2중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다층적 독자를 염두에 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기존 논의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이 '표기언어와 독자 대상'에 관한 문제였다.
초기 연구에서는 『조선신보』를 일본인을 독자대상으로 한 신문이라 했지만, 점차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까지 독자대상에 포함된다는 논의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일본어 기사의 독자대상은 일본인 상인이 위주이고, 한문 기사의 독자는 조선인 식자층이라는 견해가 보편적이다. 하지만 『조선신보』는 '일본어 기사:한문 기사=일본인:조선인'이라는 이분법적으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문 기사의 경우는 한문을 아는 식자층을 대상으로 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본어 기사의 경우는 언문일치제가 실현되기 이전의 한문체와 소로우문(候文), 변체 가나가 뒤섞인 고어체가 혼재해 있기에, 표기언어에 따라 독자대상을 세분화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조선신보』 한문 기사의 독자대상은 조선인 식자층, 즉 정부의 관료 및 상층의 지식인이고, 일본인 지식인 또한 이에 포함되었다. 일본어 기사의 독자대상은 조선 거류 일본인이 중심인데, 이들은 무뢰배, 상인, 사무라이 등 상하층 계급이 모두 포함되었다. 또 본국의 일본인과 조선인 중 개화파 지식인까지 이에 포함되었다. 결국 『조선신보』는 간행 의도와 기사 전달의 목적에 따라 대상 독자를 달리하였고, 그에 부합하는 표기언어로 기사를 작성했다고 하겠다. 이것이 조선에서 최초로 간행된 근대 신문인 『조선신보』가 다중 언어로 표기된 이유라 하겠다.


『Chosun Sinbo(朝鮮新報)』 was published on December 10, 1881 in Busan by the Bususan Port Chamber of Commerce, which was centered on Japanese merchants. It was founded about a year and 10 months earlier than the 『Hansung Sunbo(漢城旬報)』, the first newspaper in Korea, so it is the first modern newspaper to be published on the Korean Peninsula.
『Chosun Sinbo』 is compared to its importance, there is a regret that research in academia has not been actively conducted. Above all, it is due to the fact that the 『Chosun Sinbo』 is composed of a bilingual language of Japanese and Chinese characters. The use of dual language means that multi-layered readers were in mind, and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in the existing discussion was the issue of 'marked language and reader object' too.
『Chosun Sinbo』 consists of Japanese articles and the Chinese character article, except for one Korean article. In the case of Chinese characters article, it is not difficult to guess that it was targeted at the intellectual class who knew Chinese characters. In the case of Chinese characters article, it is not difficult to guess that it was targeted at the intellectual class who knew Chinese characters. In the case of Japanese articles, since various styles are mixed, it is necessary to subdivide and review the target readers according to the notation language.
As a result, the main readers of the 『Chosun Sinbo』 Chinese literature article were bureaucrats and upper-level intellectuals of the Joseon government, and Japanese intellectuals were included. The readers of Japanese articles ranged from the lower to the upper classes of Japanese, it included samurai, merchants, hoodlums and even enlightened Koreans.
In the end, the Chosun Sinbo changed the subject of the reader according to the intention of publication and the purpose of delivering the article, and wrote the article in a notation language suitable for the subject. This is the reason why the 『Chosun Sinbo』, the first modern newspaper published in Joseon, was written in multiple languages.

KCI등재

저자 : 주현희 ( Ju Hyeon-hee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5-200 (4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연구는 1960년대 한국 원양어업 개척기에 북태평양어업시험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실습생이 쓴 원양 실습일지초(抄) 및 한희수 부단장의 회고록, 수산청 조사보고서 등 어업시험조사와 관련된 일련의 기록물에 나타난 해양인식을 고찰한 연구이다. 1957년 지남호의 출항을 시작으로 한국의 원양어업은 1960~70년대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전쟁 직후의 초토화된 국가를 재건하고 경제 성장을 견인하였다. 1960년대 한국의 원양어업은 발전을 거듭하여 남태평양 사모아를 비롯해 인도양,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어장을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세계 3대 어장의 하나로서 저서어(底棲魚) 자원의 보고인 북태평양 어장은 미개척 상태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원양어업의 진출 해역을 확장하고 어획 종목도 다양화하기 위하여 북태평양 어장 개척에 나섰다.
수산청은 1966년 7월에 북태평양 어장 진출을 위해 북태평양어업시험조사계획을 확립하고 어장에 대한 정보 수집과 경제성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부산수산대학에서 백경호를 동원하고 시험 조사단을 편성하였다. 이 조사단에는 연구진 및 행정직 단원들 외에도 부산수산대학 어로학과 4학년 학생 34명이 실습생으로 참가하였다. 조사단은 1966년 7월 16일부터 10월 12일까지 약 3개월간 북태평양 어장의 해황, 기상 등 어장 환경 조건과 연어, 송어 및 저서어 어류 자원에 관한 조사 및 어로 시험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북태평양어업시험조사에 참여한 실습생의 원양 실습일지 및 한희수 부단장의 회고록, 조사보고서 등의 일련의 기록물에 나타난 1960년대 당시의 원양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이들이 이국의 여러 기항지를 거치면서 겪은 경험의 궤적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실습선원과 조사단원들이 원양어업 개척기에 원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방문하여 목도한 이국과 비교하여 자국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아울러 살펴보았다.


This study examines marine recognition in a series of records related to fishing test surveys, such as a draft of the Ocean practice logbook written by a trainee who participated in the North Pacific fishing test survey in the 1960s, and a memoir and survey report by Deputy Director Han Hee-soo. Starting with the departure of Ji-Nam ship in 1957, Korea's Ocean fishing industry grew rapidly in the 1960s and 1970s, rebuilding the devastated country immediately after the war and driving economic growth. With the success of the Indian Ocean tuna fishing trial in 1957, Korea's Ocean fishing industry was already actively expanding into the South Pacific Ocean. And in 1966, a trawler introduced by the Korea Fisheries Development Corporation entered the Atlantic Ocean. As such, in the 1960s, Korea's Ocean fishing industry continued to develop and expanded fishing grounds to the South Pacific Samoa, the Indian Ocean, and Africa. However, as one of the world's three largest fishing grounds, the North Pacific fishing grounds, a repository of fish resources, were unexplored. Accordingly, the Korean government began to explore North Pacific fishing grounds to expand the sea area of Ocean fishing and diversify fishing stocks.
In July 1966, the Fisheries Agency established a North Pacific Fisheries Test Survey Plan to enter the North Pacific fishery and launched an investigation into the information and economic feasibility of the North Pacific fishery. And Busan Fisheries University mobilized Baek-Kyung Training ship and formed a test investigation team. In addition to researchers and administrative staff, 34 fourth-year students from the Department of Fishing as trainees at Busan Fisheries University participated in the survey. For about three months from July 16 to October 12, 1966, the investigation team conducted a survey and fishing test on fishing ground environmental conditions, such as seaweeds and weather, and salmon, trout, and fish resources.
In this study, we looked at the perception of the North Pacific in the 1960s in records such as the Ocean practice logbook of trainees who participated in the North Pacific fishing test survey, Vice President Han Hee-soo's memoirs, and survey reports, and how they perceived foreign cultures through foreign ports. Through this, it was also examined how the ocean was recognized during the pioneering period of the Ocean fishing industry, and how it was recognized by actually visiting foreign countries and comparing it with foreign countries.

KCI등재

저자 : 신현아 ( Shin Hyeon-a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3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1-216 (1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연구는 페미니즘에서 '원년'을 선언하는 세대론적 수사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세대론은 매번 '리부트'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원년'을 재생산해야 지속 가능한 담론 구조이다. 아비계승서사에서 아들 세대는 언제나 현재를 파국과 폐허로 상정하며 아비 세대를 부정하고, 아들 세대는 다시 아비 세대가 되어 그 전아비 세대의 몫을 상속하며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해왔다. 그렇게 남성들의 세대론은 약 백 년의 시간 동안 매 번 '새로운 세대'를 자임하고 '새로운 원년/기원'을 선언하였지만, 결국 부정과 계승으로 이어지는 가족적 상속의 구조를 단 한 번도 혁명해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대론을 반복하지 않고, 절멸되지 않는 페미니즘의 서사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이러한 '페미니즘 원년'의 선언이 매번 반복되며 '여성 일반론'의 구축이 결국 여성 수난사의 계보가 되는 것이 나타남을 분석한다. 또한 웹툰 <단지>에서는 각각의 개별적 경험을 토로하고 아카이브로 만들며 '일반론'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을 살펴본다. 그리고 웹툰 < 여중생A >를 통해서는 글쓰기와 응답이 어떻게 해방적인 '낙원'을 구축하게 되는지를 보고자 한다.


This study begins with the consideration of generational rhetoric that declares the “first year” in feminism. Generational theory is a sustainable discourse structure that requires constantly reproducing a new 'first year' through 'reboot'. In the father's succession narrative, the son's generation always assumed the present as catastrophe and ruins, denying the father's generation, and the son's generation became the father's generation again, inheriting the share of the previous father's generation and maintaining a patriarchal order. In this way, the generational theory of men pretends to be a “new generation” and declares a “new year / origin” every time for about a hundred years, but it has never revolutionized the structure of family inheritance that leads to injustice and succession. Then, how can we imagine the narrative of feminism that does not repeat generational theory and is not exterminated? In the novel < Kim Ji Young born 1982 >, this declaration of “feminism first year” is repeated every time, and the construction of “the general theory of women” eventually appears to be the genealogy of the female survivors. In addition, in the webtoon < Dan-ji >, we will discuss each individual experience, make it into an archive, and dismantle the 'general theory'. And through the webtoon < yeo-jungsaeng-A >, I want to see how writing and responses form a liberating “paradise”.

1
권호별 보기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