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석당논총 update

  •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738-6578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7)~81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741
석당논총
81권0호(2021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한인(韓人)·여진(女眞) 결합 시조이야기의 비교 연구

저자 : 박상석 ( Park Sang-Seok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35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에서는 『금사(金史)』의 금시조(金始祖)이야기와 『고려사(高麗史)』의 금시조이야기, 그리고 『금사』의 금시조이야기와 청시조(淸始祖)이야기(노달치전설)를 각각 비교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한인(韓人)과 여진(女眞)이 남녀로 결합하여 여진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의 조종(祖宗)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금사』와 『고려사』의 금시조이야기를 비교한 결과, 『금사』에서는 사실을 기술하는 태도로써 고려 출신 금시조와 그 부인을 탁월하고 신이(神異)한 인물로 묘사한 데 반해, 『고려사』에서는 다만 '혹왈(或曰)'을 전달하는 태도로써 고려 출신금시조를 도망친 중 혹은 중의 아들에 불과한 인물로 설명했다. 『금사』의 금시조 이야기와 청시조이야기를 비교한 결과, 여진에서 발생한 『금사』 금시조이야기에서는 상대측인 고려인 남성을 우월시하고, 조선에서 발생한 청시조이야기에서는 상대측인 여진 남성을 우월시했다. 이 같은 차이는 일차적으로 이 이야기들의 두 주체인 한인과 여진 간의 역학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려가 부족집단 단계의 여진에 앞서 있을 때, 여진의 금시조이야기에서는 고려의 훌륭한 인물이 자신들의 조종이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고려의 금시조이야기에서는 자국의 미천한 인물조차 여진의 조종이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각기 자기 종족·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려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이 조선에 앞서 있을 때, 조선의 청시조이야기에서는 청의 우월성을 인정하면서 자국의 인물들이 청나라의 건국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 민족의 자부심을 높이려 했던 것이다.


This paper compared the primogenitor story of Jin(金) Dynasty in 『Jin History(金史)』 and 『Goryeo History(高麗史)』, the primogenitor story of 金 Dynasty in 『金史』 and the primogenitor story of Qing(淸) dynasty, respectively. As a result of comparing the primogenitor story of 金 Dynasty in 『金史』 and 『高麗史』, 『金史』 portrays the primogenitor and his wife from Goryeo(高麗) as outstanding and divine characters with an attitude of describing the facts. On the other hand, 『高麗史』 describes the primogenitor from 高麗, as merely an escaped monk or a son of a monk with an attitude of conveying 'Hokwal(或曰)'. As a result of comparing the primogenitor story of 金 Dynasty in 『金史』 and the primogenitor story of 淸 dynasty, the story of 『金史』, which occurred in Jurchen(女眞), portrayed the opposing 高麗 male as a superior person. On the other hand, the primogenitor story of 淸 dynasty, which occurred in Joseon(朝鮮), portrayed the opposing 女眞 male as a superior person. It is understood that such a difference arises primarily from the dynamic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subjects of these stories, Korean and Jurchen. When 高麗 preceded the 女眞, the primogenitor story of 女眞 said that a great figure of 高麗 became their primogenitor, while the primogenitor story of 高麗 said that even a lowly figure of their own country became the primogenitor of 女眞. Through this, each tried to inspire the pride of their own race and nation. Likewise, when 淸 preceded 朝鮮, the primogenitor story of 淸 dynasty in 朝鮮 tried to raise the pride of one's people by acknowledging the superiority of 淸 and saying that their own people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founding of 淸 Dynasty.

KCI등재

2석당뮤지움 소장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3의 변상도 연구

저자 : 박은경 ( Park Eun-ky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59 (2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동아대 석당뮤지움 소장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3의 표제와 경제에 적힌 개법장진언부호, 변상도의 양식, 문양대의 변화상과 상징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3은 구마라집이 406년에 번역한 28품 가운데 제5 「약초유품」, 제6 「수기품」, 제7 「화성유품」의 내용을 필사한 경전이다. 이 경전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7, 불교중앙박물관 소장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2·4·5·6과 함께 1조를 이루는 사경으로, 1422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3의 표제와 경제에 적힌 개법장진언부호이다. 이 부호는 학립사횡(鶴立巳橫)이라 일컫는 것으로, 불교 경전의 열람을 청원하는 진언이다. 이는 경전이 담고 있는 정신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부호로, 본 사경외에 대개 고려 및 조선초 사경에서 확인이 된다. 목판본의 경우 인출본을 제외하고 조선 1500년대 초~중반 까지 일부 지속되다가 16세기 중엽 이후에는 소멸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사경 변상도의 화풍 및 외곽의 문양대의 변화상과 상징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변상도는 고려 14세기 중후반의 변상도 양식을 이어받고 있으나, 15세기 초의 형식화된 양상을 보인다. 외곽의 문양대에는 금강저 외에 흥미로운 모티브가 장식되어 있다. 금강저는 결계처럼 설법의장(場)을 보호하기 위한 벽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금강저 사이마다 배치된 둥근 모티브는 14세기에는 윤보문(輪寶文)이 주류를 이룬 반면,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초에는 길상 보문 중의 한 종류이자 재화를 상징하는 전보문(錢寶文)으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변상도 외곽의 문양대는 불법을 상징하는 특정 영역을 수호하는 벽사적인 문양과 부귀와 재화를 상징하는 길상 문양이 결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analyzed the changing phase and symbolic meaning of the pattern, and the Style and Mantra Sign of Cover page(開法藏眞言) of The Illustration of Saddharmapundarika Sutra in Silver on Indigo Paper(紺紙銀泥妙法蓮花經), Volume 3 owned by Seokdang Museum of Dong-A University. Saddharmapundarika Sutra in Silver on Indigo Paper is a scripture translated into the fifth, sixth, and seventh of the 28 articles by Gumaragip in 406. This scripture is a set of sutras with the Lotus Sutra (Volume 1, 7)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the Lotus Sutra (Volume 2, 4, 5, 6) of the Central Museum of Buddhism. This scripture was first published in 1422.
First, it is about the Mantra Sign of Cover page written in the title of the Saddharmapundarika Sutra in Silver on Indigo Paper, Volume 3. This code is a the Dharani for requesting access to Buddhist scriptures. This symbolizes the spirit of information contained in the scriptures. In addition to this sutra transcription, this sign is generally confirmed in Goryeo and early Joseon sutras. In the case of woodblock scriptures, this sign was partially used from the early to mid-1500s of the Joseon Dynasty. However, it seems to disappear after the middle of the 16th century.
Next, the changes in the style of the Illustration of Sutra, change of the outer pattern, and the symbolic meaning of the Illustration were examined. The Illustration of Sutra continues to be typical of the 14th century in Goryeo, but it shows a tendency to formalize in a formative way.
In particular, there is an interesting motif on the outer pattern of the belt. The patterned belt is the site of the Buddha's method and has the meaning of dividing the specific areas that symbolize Buddha's law. The motif of the golden pestle on this outer belt means to ward off evil spirits in order to protect the place of truth from evil. However, in the 14th century, the round shaped Pattern between the golden pestles became the mainstream. From the late 14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15th century, it was replaced by a Treasure Pattern with Money Motif(錢寶文), one of the eight treasures. It can be seen that the band of patterns is a combination of the golden pestle motif that protects Buddhism and the auspicious motifs that symbolizes wealth.

KCI등재

31920년대 전반기 군산의 일본인 阪上貞信의 제국의회 진출과 활동

저자 : 하지영 ( Ha Ji-you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1-99 (3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사카가미 사다노부는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1906년 군산에 정착하였다. 사카가미는 군산거류민단 민장을 역임하면서 군산 내 각종 현안 사업과 지역개발 사업에 매진하는 한편 군산을 근거로 선남권업주식회사 설립해 경영하였고, 국유 미간지와 광산에도 투자하였다. 1910년대 중반부터는 군산과 경부선을 잇는 경편철도 부설도 계획하였다.
1920년 제14회 중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야마구치현 대의사로 제국의회에 입성한 사카가미는 조선 문제를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으로의 보급금 확대, 철도ㆍ항만 등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 광산 개발 등이 사카가미가 발의한 대표적 안건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군산의 오랜 현안인 군산항 수축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히 열의를 보였다. 군산항은 조선의 대표적 쌀 이출항으로, 군산항 수축은 무역업을 근간으로 한 지역사회의 오랜 요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본국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산미증식계획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의정활동을 펼쳤던 사키가미는 중의원 내에서는 대표적인 '조선통(朝鮮通)' 의원으로 분류되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배경으로 한 1920년대 전반기 조선 관련 문제가 정당 세력 간의 주요 논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일단의 '정치세력'을 형성한 조선관계 대의사의 역할은 매우 컸다. 군산의 일본인 사카가미의 대의 사로서의 활동은 조선 거주 일본인이 목소리를 제국의회로 전달해 그들의 이해가 식민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대변한 '로비스트(lobbyist)'이자 조선에 실정을 근거한 식민정책의 수립 방향을 제시한 제국의 '브로커(broker)'였다.


Sakagami Sadanobu(阪上貞信) was born in Yamaguchi Prefecture and settled in Gunsan in 1906. Sakagami,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Gunsan Settlement Corporation, devoted himself to various pending projects and regional development projects in Gunsan. He also founded and managed Seonnam Kwonup Corporation based in Gunsan, and invested in state-owned wasteland and mines. From the mid-1910s, he also planned the construction of a light railroad connecting Gunsan and Gyeongbu lines.
Sakagami, who ran for the 14th general election of the Lower House of Representatives in 1920 and entered the Imperial Diet of japan as the representative of Yamaguchi Prefecture, carried out his legislative activities centered on the Joseon issue. Examples include expansion of supply funds to Joseon, investment in infrastructure such as railways and ports, and mine development. In particular, he showed enthusiasm for the issue of the construction the port of Gunsan, a long-standing issue in Gunsan. Gunsan Port is the representative rice export port of Joseon, and the construction of Gunsan Port has been a long-time desire of the local community based on the trade business, and it is necessary for the Rice Production Plan to solve the home country's food problem.
Sakigami, who carried out these legislative activities, was classified as a representative “Joseontong(朝鮮通)” member of the Lower House of Representatives. The Joseon-related issue in the first half of the 1920s, set in the backdrop of Daisho Democracy, emerged as a major point of contention among political parties, and the role of the representative of Joseon relations, who formed a group of “political forces,” was very significant. His activities as a representative of Sakagami, a Japanese in Gunsan, are 'lobbyists' who represent the Japanese living in Joseon so that their voices can be conveyed to the Imperial Diet of japan so that their interests can be reflected in the colonial policy. And He was the “broker” of the empire who suggested the direction of establishing colonial policy based on the actual situation in Joseon.

KCI등재

4해방 후 한국어 항공용어의 제정 노력

저자 : 김기둥 ( Kim Ki-doong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간행물 : 석당논총 8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01-132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한국의 항공용어 제정 사업을 일제시대와 미군정기, 정부 수립 후로 구분해서 고찰하였다. 항공은 식민지로의 전락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과학기술 제분야에서도 일제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일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항공용어의 정립 사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식민지에도 적용했다. 그러므로 해방 후 국내의 항공계는 조선항공협회(한국항공건설협회)를 조직한 뒤, 항공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항공용어의 순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 민간항공의 규모가 미미했던 상황에서 용어 제정 사업은 공군의 주관 아래 이뤄졌다. 해방 후부터 이를 주도했던 김석환(金石桓)은 군입대 후 공군 내 여러 조직에서 복무하면서 용어 제정 사업을 이어갔다. 6·25전쟁 초기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공군은 통역원이 임의로 번역한 용어를 혼용했는데, 그 용어는 과거 교육의 경험, 즉 일제 때 제정된 항공용어인 경우가 많았다. 공군은 전황이 고착화된 후 용어 제정 사업을 재개했지만, 관습화된 용어 사용을 완전히 혁파하긴 어려웠다. 또한 학술적인 차원에서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과학분야와 연계된 항공용어를 온전히 이해하고서 순화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과학용어제정 위원회는 공군 내 현실을 고려해 용어 제정에서 관용적인 표현의 사용을 용인했다. 한국어 순화의 측면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이 결과는 일제 잔재의 청산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기보다 해방 후의 혼란과 전문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그 결과의 미흡보다 노력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This research is to trace the efforts in the legislation of aeronautic terms during the colonial period, under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and after the found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government. Since aeronautics was introduced after colonization, it was where the influence of Imperial Japan was the biggest among various fields of science and technology. Imperial Japan proceeded several times to establish the terms of aeronautics. The establishment of the terms accelerated the growth of the field of aeronautics in Korea during the colonial period. After the Liberation in 1945, Korean aviation industries organized the Korean Aviation Association (KAA) for the aviation construction, along with the effort to polish the terms of aeronautics. As the size of the civilian aviation was insignificant, the Air Force supervised the legislation of the terms. Kim Seokhwan, the leading figure in the legislation after the liberation, continued the legislation process while serving in the various organizations under the Air Force. In the initial moments of the Korean War, when the ROK Air Force was dependent on the support from the United States, most of the aeronautic terms used in operations were translated in accordance with the past experiences, which had been mostly established by Imperial Japan. The ROK Air Force resumed the legislation of the terms during the stalemates in the Korean War, but it was difficult to abolish the terms which had already become customary. On the other hand, the absolute number of the academic professionals was scarce compared to the technical, it was challenging to fully understand and reorganize the terms in the aeronautics related to other scientific fields. As a result, the Science-Technical Terms Legislation Committee approved the utilization of the customary terms in the legislation considering the reality that the Air Force faced. This result was not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will of clearing the remnants of the colonial period, but because of the chaos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lack of the professionals. Thus, it must be evaluated not on the result but on the effort in the process.

1
권호별 보기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