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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Jungbu Archaeolog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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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598-9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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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21권2호(2022) |수록논문 수 : 7
간행물 제목
21권3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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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구혜영 ( Koo Hea-young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2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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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조사된 강화 삼거리 유적에서 탁자식 지석묘, 신흥동식토기, 동북형 석창 등 대동강 유역의 특징적 양상이 감지되었다. 이 조사를 기점으로 강화는 신흥동식토기의 남한계선으로 설정되었고, 대동강 유역과의 관련성이 주목되었다.
최근 장정리 주거지에서 다수의 신흥동식토기가 출토되면서, 이 지역에서 신흥동식토기의 영향력은 재검증되었다. 나아가 신봉리 주거지에서 출토된 역삼동식토기는 기존 신흥동유형의 고유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강화도 내에 타 유형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솔정리 주거지에서 무문토기시대 중기의 대표적 특징인 주거지면적 소형화, 주거지 내 노지 탈락 현상, 공렬토기 등이 확인되면서 늦은 시기에 역삼동유형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강화 북부에 부근리 지석묘(사적)를 중심으로 강화 대산리 지석묘, 강화 부근리 점골 지석묘와 같은중·대형의 지석묘가 위치한다. 동쪽 경계에 해당되는 대산리 지석묘와 부근리 지석묘는 약 4.5km 상당 떨어져 있다. 평지에 위치한 중·대형의 탁자식 지석묘가 취락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였을 때, 이러한 위치 선정은 의도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강화 오상리 지석묘군, 강화 대산리 주거지는 부근리 지석묘로부터4.5km 밖에 각각 위치한다.
봉산 신흥동, 송림 석탄리 등 대동강 유역의 조사 성과 및 김포 양촌에서 확인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를 반영한 결과 장정리 주거지는 기원전 12세기 전·후의 시간성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 집단인 신흥동유형은 역삼동유형이 유입되면서 공간 경계를 설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지에 중·대형의 지석묘를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오상리 지석묘군은 산지 구릉에 위치하며 중·대형 지석묘와 입지에서 차이를 보인다. 무문토기시대 중기에 이르면 기존 중·대형의 지석묘의 입지에 주거지가 조성되는 등 취락 경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The table-style dolmen and Sinheung-dong pottery, confirmed in the 1967 Ganghwa Samgeo-ri site survey, are characteristic excavated attributes of the Sinheung-dong assemblage. As a result of a surface survey of dolmens in Ganghwa Island since 1999, table-style dlomen are distributed mainly in the northern part of Ganghwa Island.
Recently, as residential areas have been identified centered on the northern part of Ganghwa Island, the scope of related discussions has expanded. Sinheung-dong pottery excavated from Jangjeong-ri residential area reconfirms that this area is a space of Sinheung-dong assemblage. In contrast, Yeoksam-dong pottery excavated from residential areas in Shinbong-ri and Daesan-ri proves that this area was not a unique space of the Sinheung-dong assemblage.
Although this paper's thesis is based on some cases, it is hoped that this paper will serve as a basis for data examining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Sinheung-dong assemblage and Yeoksam-dong assemblage in Ganghwa Islan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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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은식 ( Yu Eunsik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6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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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부지방 원삼국 초기 토기의 계통과 사용 집단의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먼저 중부지방 원삼국 초기 토기의 원류 및 기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북한지역을 서북한지방, 압록강 중상류지역, 동북한지방으로 구분하여 청동기 후기∼원삼국 초기의 토기문화의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점토대토기와 타날문토기는 서북한지방과 압록강 중상류지역에 한정되어 출토되며,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동북한 북부지역을제외하고 전역으로 확대된다. 특히 대동강유역의 화분형토기는 동북한 남부지역(함흥 일대)에서 확인되지만, 인접한 서북한 북부지역(청천강 이북지역)에서 출토되지 않는 점이 주목된다.
중부지방 원삼국 초기의 토기는 기술유형과 계보가 다른 삼각형점토대토기, 화분형토기, 경질무문토기가 출토된다. 삼각형점토대토기는 원형점토대토기에서 계기적으로 변화한 것이고, 화분형토기는 기원전 1세기무렵에 서북한 남부지역에서 남하한 것으로 보았다. 경질무문토기는 크게 두 가지 계보 관계로 정리되는데, 서해안지역의 경질무문토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가 홑구연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지만 영서·영동지역의 경질무문토기는 동북한 북부지역의 토기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동부지역의 재지계 토기로 추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재지계의 삼각형점토대토기와 한식계(漢式系) 분형토기가 공반된 운북동 유적군은 기존 이해와 달리 서북한 북부지역과의 관련성을 검토할 여지가 많다. 화분형토기가 공반되는 대성리B지구 유적군은 서북한 남부지역에서 이주해온 집단으로 북한강유역 일대를 한시적으로 점유한 것으로 보았다. 중도유형문화는 동북한 북부지역의 중심으로 한 재지계 토기문화에 서북한지역의 문화요소들이 수용·융합된 것이며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고고문화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genealogy of earthenware types in the central region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Proto-Three Kingdom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groups using them. First of all, this researcher has divided the North Korean region that is pointed out as the source and origin of earthenware in the central region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Proto-Three Kingdoms into the west North Korean region, the middle and lower Yalu River area, and the northeast region and then investigated the changes of earthenware culture from the late Bronze Age to the early period of the Proto-Three Kingdoms. Clay stripe pottery and beating patterned pottery are excavated only in the northwestern region and the middle and upper reaches of the Yalu River, and around the 1st century BC, they were expanded to the entire area except for the northern region of east North Korea. In particular, it is noteworthy that pot-type pottery in the Daedong River basin is found in the southern region of east North Korea (the area of Hamheung) but is not excavated in the adjacent northern region of west North Korea (north of the Cheongcheon River).
As the types of earthenware in the central region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Proto-Three Kingdoms, there are triangulated clay stripe pottery, pot-type pottery, and hard plain pottery of which type of technique and genealogy are different from one another. Triangulated clay stripe pottery was changed from circular clay stripe pottery instrumentally, and pot-type pottery is considered to have descended south from the southern part of west North Korea around the 1st century BC. Hard plain pottery can be arranged largely with two genealogical relations. Hard plain pottery in the west coast appeared in the process of Hotguyeon of triangulated clay stripe pottery whereas hard plain pottery in Yeongseo and Yeongdong areas is estimated to be Jeji-gye pottery grounded on earthenware culture in the northern area of east North Korea.
Lastly, unlike the previous understanding of it, Unbuk-dong Archeological Complex where Jaeji-gye triangulated clay stripe pottery and Hansik-gye salver form pottery have been excavated has a lot to be investigated in terms of its relations with the northern area of west North Korea. Regarding Daeseong-ri District B Archeological Complex where pot-type pottery has been found, the group of Nakrang-gye people who migrated from the southern part of west North Korea is considered to have temporarily occupied the area of the Bukhan River basin. Jungdo type culture is a type of archaeological culture that has been establish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while Jaeji-gye earthenware culture formed around the northern area of east North Korea was accepted and integrated into the cultural elements of the west North Korea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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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현우 ( Kim Hyunwoo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3-8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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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그간 검토가 미진하였던 통일신라토기의 지역성의 수준과 범위를 파악하고자, 서울·경기지역 생산유적 중 화성 청계리 유적과 동탄2신도시 유적에서 출토된 완을 대상으로 형태적 변이가 확인되는지, 만약 확인된다면 변이의 수준은 어떠한지 등을 시험적으로 검토하였다. 유적별 연속형 및 명목형 속성의 분포를 살펴본 결과, 두 유적의 완은 상당한 형태적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화성 청계리 유적 내 매우 가까운곳에 위치한 나A1구역과 나A2구역 사이에서도 구분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유적 간 시간적위치의 차이로 볼 수도 있겠으나, 방사성탄소연대의 분포를 고려하면 시간성에 기인하였을 가능성은 낮다고판단되었다. 이와 같이 생산유적별로 형태적 변이가 확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형태적 변이의 범위는당시 한주로 편제되었던 서울·경기지역 내에서도 상당히 좁은 범위에서, 심지어는 단일 유적 수준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서울·경기지역 통일신라토기는 유적 단위의 검토를 선행하여 유적별형태적 변이의 양상을 확인하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토기상의 지리적 권역을 설정하는 순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In order to understand the level and scope of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of the Unified Silla pottery, which has not been reviewed, this paper examines whether or not morphological variations are confirmed in bowls excavated from Cheonggye-ri site, Hwaseong, and Dongtan 2 Newtown site.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distribution of continuous and nominal attributes, it was confirmed that the bowls of the two sites not only showed a significant morphological difference, but were also distinguished between 나A1 area and 나A2 area, located very close in the Cheonggye-ri site in Hwaseong. This difference can be seen as a difference in the temporal location between the sites, but considering the distribution of radiocarbon dates, it seemed that the possibility that it was due to temporality was low. Therefore, considering that morphological variation is confirmed for each production site, the scope of such morphological variation is likely to be confirmed in a considerably narrower range than in the Seoul and Gyeonggi province, even at the level of a single site. Considering this, it is thought that it is necessary to conduct research on the Unified Silla pottery in the Seoul and Gyeonggi province in the order of the review of the each sites prior to establishing the geographical area for archaeologic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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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허의행 ( Heo Euihaeng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7-10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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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및 산간 지형에 자리한 흥전리 사지는 입지 환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사지는 산지 지형을 선택하였지만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등과 같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형 공간을 적절히 이용하고 활용하는 모습이 명확하다. 유형의 공간으로는 사찰 건축물을, 무형의 공간으로는 기도와 도량 등의 신앙적 장소 등을 지형의 형태와 특성에 맞게 배치하고 이를 사역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러한 모습은 발굴조사 자료를 통해 확인된 유구의 배치, 고고 지형학적 관점의 고지형분석 그리고 과거 풍수 지리 환경 자료 등을 종합하고, 여기에 GIS의 TPI분석 등을 통해 그 특징을 명확히 살필 수 있었다.
흥전리 사지와 그 일원에는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지형 흔적이 모두 확인된다. 사지의 중심으로는 평탄대지를 넓게 조성한 흔적이 있고, 그 외부로는 단차를 두는 사면과 곡부 내 습지 그리고 도로로서의 임도 등을볼 수 있다. 이러한 지형의 모습은 사지를 둘러싼 산지와 하천의 분포에서도 그 특징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북쪽의 산지 정상에서 동서로 뻗은 능선과 남쪽의 하천 그리고 그 너머의 산지 지형은 전형의 풍수지리적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한 자연 환경의 중심에는 흥전리 사지의 건물들을 배치하고 그 외부로는 생산지대로 활용하면서 사역의 범위를 넓혀 가는 모습이다. 경내에서 경외로 그리고 가시적 경관 차원의 사역의범위로 확장하였다.
경내 사역은 금당과 부속 건물의 축조를 위해 대지를 조성한 지형으로서 인위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 경외 사역은 인위적 행위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형질 변형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지는 조금 더 자연 지형에 순응한 지형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경관적 사역은 흥전리 사지를 대상으로 주변 자연환경을 바라보는범위인데 온전히 자연에 순응한 지형이다.
이러한 사역 범위는 흥전리 사지의 내·외부로 지형 공간 활용과도 연관된다. 발굴된 흥전리 사지를 둘러싼 경내는 불지의 공간이며 다시 승방과 불방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경외는 속지의 공간으로서 출입공간, 생계를 위한 생산공간, 경내의 오폐수 처리 공간 그리고 도량을 위한 개별의 신앙 공간 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확장된 범위로서 경관의 범위는 가시권이 미치는 무형의 지형 공간으로 살필 수있을 것이다.


The Heungjeon-ri Buddhist Temple located in mountainous and mountainous terrain, is characterized by its location environment. Temple chose the mountainous terrain, but thought of the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situations of the time. Above all, it is clear that Heungjeon-ri Temple appropriately uses and utilizes the topographical space. As a tangible space, the location of the temple building and as an intangible space, religious space places such as prayer and temple were arranged according to the shape and characteristics of the topography, and these were included in the range of the temple.
Such features could be clearly examined through the TPI analysis of GIS by synthesizing the layout of remains identified through excavation survey data, paleo topography analysis from an Geoarchaeological perspective, and past Geomancy (Fung Shui) environment data.
Natural and artificial terrain traces are identified at Heungjeon-ri Temple and its surroundings. At the center of the Temple, there are traces of a wide flat land, and outside of it, you can see a stepped slope, wetland in the valley area, and forest roads as thoroughfare. The characteristics of this topography could be clarified in the distribution of mountains and streams surrounding the slopes. The ridge extending east and west from the top of the mountain in the north, the stream in the south, and the mountainous terrain beyond have a typical Geomancy natural environment. The building of Heungjeon-ri Temple is located at the center of such a natural environment, and the outside is used as a ploughed land, expanding the Temple. It has been extended from the precincts and from the inside Temple to the outside Temple.
The temple in the precincts is artificial as the land was created for the construction of Main hall(金堂) and its affiliated buildings. On the other hand, the out of precincts is confirmed to be a more natural terrain where artificial behavior is carried out. In addition, the landscape of Temple refers to the range of viewing the surrounding natural environment for Heungjeon-ri Temple Site, and it is a topography that fully adapts to nature.
This range of Temple is also related to the use of topographical space inside and outside Heungjeon-ri Temple. The precincts surrounding Heungjeon-ri Temple, which were excavated an Buddha's land and divided into a space of Buddhist nunnery(僧房) and Buddha's space(佛房). As the outer space of Temple, there are a possibility that there are entrance spaces, ploughed lands for a living, sewer spaces for the precincts, and individual faith spaces for Buddha. Finally, as an expanded of the Temple range, the scope of the landscape can be examined as an intangible topographic space of vi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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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성진 ( Park Seong-jin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9-13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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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먼저 프랑스 실험고고학계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두 가지 대형 집단 실험고고학 프로젝트, 즉 아르케오드롬(Archéodrome) 프로젝트와 게드롱(Guédelon) 중세성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논하였다. 프랑스 실험고고학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처럼 19세기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실험고고학은 2차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프랑스 실험고고학은 주변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석기 제작을 중심으로 개인적 차원의 실험고고학이 발달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1978년에 문을 연 아르케오드롬은 프랑스 최초의 고고학 테마공원으로서, 집단 실험고고학은 이 고고학 테마공원의 개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아르케오드롬은 초반에 많은 대중적 관심 속에서 원활히 운영되었지만, 90년대 후반기부터 운영난에 허덕이다가 2005년에 결국 폐쇄되었다. 유사 기관 간의 과당 경쟁, 전문화실패, 대중과 소통 실패, 모호한 정체성 등이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1997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진행 중인 게드롱 중세성 건설 프로젝트는 집단 실험고고학의 모범적 사례로서, 본문에서는 추진배경, 진행과정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제시한 다음, 결론에서는 프랑스 실험고고학 사례들에서 국내 고고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교훈을 찾고자 하였다.


This article first briefly introduces the history of experimental archaeology in France, and then discusses two large collective experimental archeology projects: the Archéodrome project and the Guédelon medieval castle construction project. French experimental archeology can be traced back to the 19th century like other Western European countries, but experimental archaeology in the true sense developed in earnest after World War II. Unlike the neighboring countries of Western Europe, French experimental archaeology is characterized by its development centering on the production of stone tools. First opened in 1978, the Archéodrome was the first archaeological theme park in France. The Archéodrome was successful in the early days with a lot of public interest, but it suffered from operational difficulties from the late 1990s and was eventually closed in 2004. Excessive competition among similar institutions, failure of specialization, failure to communicate with the public, and ambiguous identity are presumed to be the reasons for the failure of the Archéodrome. Meanwhile, the Guédelon medieval castle construction project, which started in 1997 and is still ongoing, is a good example of collective experimental archaeology. In this main body, the background, progress of this project, and the reason why this project was successful are explained in detail, and instead of the conclusion, we reflect on what the French experimental archeology cases examined in this paper can contribute to the korean archaeolog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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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후석 ( Yi Huseok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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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문화권의 차마구는 많은 기종들이 확인되는 것에 비해 그 조합이나 수량에는 중원이나 초원 문화권에 못미친다. 독자적인 것도 일부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초원계통이나 중원계통 차마구를 수용하였거나 이를 변형시켜 재지화한 것이 많다. 마차 또는 전차 문화를 수용하였지만, 이를 본격 사용하는 일상으로 연결하지 못하였다. 고조선 문화권의 엘리트는 차마구로 대표되는 마차(전차)의 상징성과 위세성을 차용하는 것에 주목하였으며, 일부 상위계층은 의례적인 행위들을 통해 그들만의 힘을 과시하며 공동체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하였다고 생각된다.
비파형동검문화권에서는 십이대영자문화를 중심으로 보이는데, 하가점상층문화와 교류하는 전기(기원전8~7세기경)에는 요서지역에서 확인되며, 옥황묘문화나 중원문화와 교류하는 후기(기원전 6~5세기경)에는 요중지역까지 확산되는 한편 차마구가 가장 발전한다. 이때에는 2·4마리의 말이 끄는 2륜 독주차로 복원되는 차마구가 주로 확인된다. 세형동검문화권에서는 북한이나 그 주변부를 중심으로 확인된다. 특히 위만조선에는 토착적인 차마구가 일부 확인되며, 서한·흉노와도 교류 관계가 형성된다. 낙랑 초기의 동병철검문화단계에는 재지화된 차마구와 서한계통 및 흉노계통 차마구가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때에는 1마리의 말이 끄는 2륜 쌍원차로 복원되는 차마구도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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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재윤 ( Kim Jae Youn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87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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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쪽구들은 라즈돌라야 강(수분하)의 대성자 유적과 크로우노프카 I유적에서 만들어졌다.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가 등장한 시점은 기후하강기이다.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문화가 기후 온난기에 우리나라 중부지역 및 남부지역으로 이동한 것과는 달리 기후 하강기에 발생한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쪽구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I기에서는 석재로 된 ㄱ자형 쪽구들이 만들어진다. II기에서는 ㄱ자형과 ㄷ자형쪽구들이 확인되고, 여기서 발전된 ㅁ자형 쪽구들도 확인된다. 축조재료는 아궁이와 구들이 모두 점토로 된것과 석재로 된 것이 있다. III기에서도 ㄱ자형 쪽구들이 설치되어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기원지에서는 가장 다양한 형태의 쪽구들이 사용되었으며 평면형태, 축조재료, 단면형태는 일정하게 변하지 않는다.
기원전 3세기경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쪽구들이 청천강 유역과 남해안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4세기~3세기 및 기원전 2세기 세형동검, 다뉴세문경, 쌍조형 동검이 연해주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청천강 유역의 고조선 후기~위만조선의 문화교류로 그 과정 중에 쪽구들이 청천강 유역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남해안의 방지리와 늑도 유적 쪽구들은 별도의 논고로 설명하겠다.
청천강 유역의 쪽구들은 오늘날 자바이칼 지역인 기원전 2세기 흉노 유적에서 나온다. 쪽구들이 많이 나온 이볼가 유적에서는 주거지의 80%이상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의 쪽구들은 문화적으로 관련성이 크게 알려진 바 없는 북옥저 보다는 청청강 유역에서 요동동부까지 분포한 고조선후기 사회 혹은 위만조선과 흉노와의 교류는 잘 알려져 있는데 그로 인한 가능성이 크다. 양지역간의 인적 교류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나라 중부지역에서는 북한강 유역에서 기원후 2세기에 처음 나타난다. 당연히 기원전 3세기 청천강유역이나 남해안에 나타났을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고 생각된다. 북한강 유역에서는 같은 유적 내에서도 쪽구들이 발견되는 숫자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쪽구들이 수용되는 방법의 차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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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정하 ( Yoon Jungha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9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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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차구유적과 노하심유적에서 출토되었던 양식의 동병철검이 청주 오송에서 발굴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동일 양식의 부여계 유물은 검류와 이식류가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포 운양동 유적의 금제이식 3점과 풍납토성의 은제 이식 부속품 1점, 청주 오송 유적의 동병철검 1점이 있다. 다만, 이를 종합적으로 다루어 비교한 연구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유물이 소수이기 때문에 이주와 이민을 논하기는 힘들지만, 운양동 유적과 오송 유적,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부여계 유물들이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어떤 유적에서, 어떤 맥락을 가지고 매납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한반도 내에서 출토한 부여계 유물들과 비교하였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부여계 유물들은 출토지역이 중부지역에 한정되고 있고, 시기적으로 유사성이 보이며, 남한 내에서 유사한 모티프를 지닌 유물조차 발견된 사례가 없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덤에서 출토된 운양동 금제이식이 출토한 유구의 피장자는 집단 내에서 높은 신분을 보이는 반면, 오송 유적의 동병철검의 피장자는 여타 무덤의 피장자들과 신분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신분상의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고, 각각 성토분구묘와 주구토광묘라는 무덤양식상 차이, 각 유적 내의 출토유물에서도 차이가 확인되었다.
본 고에서는 유적 간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며, 운양동 유적에서 출토하는 구슬류의 수량적·종류적 다양성과 한강 하류에서만 출토하는 백색토기의 분포양상, 상대적으로 이른 유적의 조성시기를 고려했을 때, 운양동 유적으로 대표되는 한강 하류 일대의 정치체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해상교역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반면, 오송유적의 경우 동병철검의 유입루트를 상정하기 힘들고, 위신재로서의 상징성도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에 유입루트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당대 부여계 동병철검이 부장품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배경에 오송 유적의 조성집단이 개별 정체성으로 '부여계'도 용인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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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양시은 ( Yang Si-eun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14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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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4~5세기대에 접촉이 잦았던 모용선비와 고구려의 물질문화 교류 양상을 전반적으로 검토해본 것이다. 모용선비는 전연, 후연, 북연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고구려와 군사적 대립과 외교 관계를 이어갔다. 특히 342년 전연의 고구려 수도 공략 당시 잡혀간 수많은 포로들과 355년 전연과 고구려의 책봉·조공관계 수립에 따른 일부 인원의 귀환, 436년 북연의 멸망 당시 용성 주민들의 고구려로의 대거 유입 등은 문헌기록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삼연의 정권 교체기를 비롯한 혼란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고구려로 들어온 사람들은 고구려의 문화 형성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삼연에서 고구려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물질문화는 고분벽화, 마구, 보요장식, 대금구, 토기 등이다. 이번에 이들 고고학 자료들을 비교해본 결과, 고분벽화와 대금구는 모용선비의 문화가 고구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중원계통의 문화가 고구려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모용선비가 매개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토기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관계를 찾기 어려웠지만 암문과 같은 특정 시문기법에서 그 관련성이 확인되었다. 보요관은 모용선비를 상징하는 유물이지만 고구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보요장식에서만 유사성이 일부 관찰되었다. 그렇지만 마구의 경우에는 고구려와 삼연의 마구 세트 간에 상당한 관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와 모용선비 두 세력 간 물질문화의 교류 양상에 대한 이상의 검토 과정에서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와 삼연은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였음에도 두 문화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뚜렷이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구려는 모용선비를 통해 여러 외래적인 문화 요소를 받아들였지만 선택적 수용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이후 고구려화를 거쳐 해당 물질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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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인욱 ( Kang In Uk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3-16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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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에서는 연해주 남부와 중도 레고랜드에서 발굴된 말갈 관련 자료를 통하여 한반도의 중심에서 남부지역과 북방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중부지역의 지리적인 특성을 새롭게 강조했다. 중부지역은 지리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북쪽으로 북한이라는 인위적 경계에 막혀있다. 한국 고고학의 연구의 범위는 북한과 만주를 포괄하지만, 실제 발굴조사는 남한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지리적 상황과는 다르게 고립적인 위치에 처해 있다. 중부지역의 지리적 상황, 즉 환동해를 중심으로 하여 연해주에서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산악지형과 한강의 하류라는 평야지대가 공존하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한반도 중부지역의 고고학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중도 레고랜드의 고구려와 말갈토광묘, 그리고 연해주 자레치노예 출토의 신라 환두대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서기 4세기 이후 고고학적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말갈의 양상을 볼때 강원도와 연해주 지역을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비슷한 지형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고구려의 남진과 함께 중부지역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해왔던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해주 발해 유적의 중심지인 라즈돌나야강에서 발견된 신라의 5세기대 삼루환두대도의 발견은 기존의 모든 인식을 깨는 동시에 그 동안 공백으로 있었던 발해 이전의 서기 5~7세기의 연해주와 한반도 일대의 관계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 역사에서 철저히 타자화되었던 말갈, 그리고 위말갈이라는 개념으로 애매하게 정의되었던 강원도 지역의 말갈 세력에 대하여 최신 고고학자료를 통한 재평가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북한이라는 공백이 있기 때문에 말갈 세력의 애매함이 완전 해소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반도 중부를 삼국의 세력관계로만 해명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백두대간을 따라 이어지는 연해주와 동북한에 대한 이해가 더할 때에 한반도 중부지역 삼국시대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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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준희 ( Kim Junhee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7-20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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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주거의 구조와 시설, 취락의 점유기간 등 제 양상을 통해 취락 경관의 변화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점유기간을 파악할 수 있는 주거 내부 시설에 주목하여 이를 주거의 사용수명으로 환산한 뒤 취락 점유기간의 시·공간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생계경제적 차원으로 접근하여 점유 방식의 변화와 원인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중기에 농경이 발달하고 저장 식량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주민집단은 생산량 증가와 안정화에 유리한 전략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취락의 입지를 용수 획득과 복합 생산 활동에 유리한 대형 하천주변으로 선정하여 취락을 기획 조성했다. 또한 농지 및 저수지와 관개시설 등 생산 설비의 관리를 위해 장기점유가 가능하도록 주거 구조 등 시설물에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투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기가 되면 농경 기반의 생계경제가 약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기 단계에 인구 밀집화에 의한 산림의 황폐와 가경지 감소로 인한 식량자원의 고갈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생계경제 자원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농경 및 수렵·채집, 어로를 병행하는 혼합경제 체제로 전환되면서 중기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생계 전략을 영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생계경제 전략 변화에 따른 점유기간의 시·공간적 변화 양상을 검토한 결과 경기 북부, 중부지역은 중기 단계까지 점유기간이 점차 증가하다가 후기에 대폭 감소한다. 점유기간이 증가하면서 취락의 경관은 주거군이 밀집하고, 배치와 주거 시설이 정형화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외부 저장 수혈과 분묘군이 축조된다. 그러나 후기에 점유기간이 대폭 감소하면서 개별 주거가 분산되고, 주거 시설과 배치에서 정형성이 약화되며 외부 수혈이 사라진다. 경기 남부지역도 북부, 중부와 동일한 변화가 확인되지만 상대적으로 점유기간이 길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락 경관의 변화를 살펴보면 주거군이 점차 밀집하고 주거 시설과 배치에서 정형성이 강화되며, 외부 수혈이 증가하고 환호와 분묘군이 축조된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 점유기간이 소폭 감소하면서 주거지들이 분산되고 수혈이 감소하지만, 소형·방형 주거지는 상대적으로 정연하게 배치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이를 종합하면, 경기지역의 취락 경관은 생계경제 전략 변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기지역 취락은 생계경제 전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입지를 선정하고, 경관을 기획하여 예상 점유기간에 적합한 주거 시설을 마련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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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성주 ( Lee Sungjoo ) , 이수정 ( Lee Sujung ) , 김진우 ( Kim Jinwoo )

발행기관 : 중부고고학회 간행물 : 고고학 21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4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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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시대 초기는 물레질과 타날성형, 그리고 환원소성이라는 신제도기술이 남한지역에 도입됨으로써 이지역 토기생산기술의 큰 변화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이래 신기술의 계통을 요동과 서북한의 타날문 회도에서 구했지만 와질토기론이 제기되면서 그 기원을 낙랑토기에서 찾았다. 와질토기 논쟁을 거치며 다시 전국계토기 기원론이 부상하고 근래에는 남한의 원삼국시대 환원소성 토기를 이른바 세죽리-연화보유형의 타날문회도와 비교하는 연구가 제출되고 있다. 이 논문은 이주-전파에 초점을 맞춘 기원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요녕지역을 대상으로 신제도기술의 확산과 수용을 기술혁신의 과정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연이 동북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직전부터 서한시기에 해당하는 건창 동대장자, 조양 원대자, 본계 상보촌, 그리고 서풍 서차구 등 네 고분군의 토기유물군을 분석하여 타날문 회도 기술의 수용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연, 혹은 진·한 제국이 설치 운영한 거점에 회도 제작기술과 생산체계가 이식되는 과정을 설명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토착사회의 도공이 신기술을 수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의 진출 직전의 동대장자와 연이 진출한 거점 내부의 원대자유적 토기유물군을 통해 이식된 회도와 토착 무문토기계가 공존하는 가운데 토착도공이 물레질을 익혀 소형 발과 호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물레질-타날법을 수용하여 생활용기를 광범하게 생산했는지에 관해서는 알기 어려웠다. 요동지역의 상보촌과 서차구유적은 중원의 세력권 밖에 분포하는 토착집단의 고분군으로 그 부장 토기유물군에서도 토착 무문토기와 회도 생산체계의 공존이 확인되었다. 두 유적의 타날문호에 대한 관찰 결과 제국의 거점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 토착집단의 도공이 서한 초기의 打捺陶罐이나 壺의 제작기술을 익혀 생산해낸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를 통해 요녕지역 토착사회의 신제도기술 수용과 그 시기, 그리고 생산기종에 대한 일단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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