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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문화 update

  •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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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975-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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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30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0
간행물 제목
32권0호(2022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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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구화, 지구시민, 그리고 홍익인간사상: 상생과 조화의 지구촌을 향하여

저자 : 김광린 ( Kim Kwang Ri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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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문제 혹은 코로나-19사태가 잘 보여주듯이,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범지구적 이슈들은 개별국가의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인류가 당면한 엄중한 현실을 타개하고 지구촌을 상생과 조화의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려면, 개별국가의 국민이라는 의식을 넘어 지구를 시야에 넣는 지구시민의식이 형성 및 확산해야 한다. 즉 자기자신 및 자국만 생각하는 분리의식에서 벗어나 지구촌 시민으로서의 주권자의식, 곧 인류의식으로서의 지구시민의식 형성과 확산이 현재 인류가 당면한 최우선의 과제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지구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범세계적 협력이 긴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자기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분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사태 하에서도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미중간 갈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고 하는 지구촌 전체의 위기 상황 하에서도 자국 이기주의에 입각하여 전개되고 있는 현재 국제사회의 갈등은 마치 지구촌을 공존공영해야 할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지구화의 흐름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려는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화의 흐름과 과정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지구촌 공동의 번영을 시야에 넣는 지구화의 패러다임은 바람직하며, 따라서 인류문명은 궁극적으로 지구화의 과정을 거쳐 공존공영의 새로운 문명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세계시민 교육이 중시하는 교양교육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근본적 변화의 추구, 그리고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공동의 이슈들에 대한 통섭적이고 포괄적인 해결 노력 등이 가미된 교육을 지구시민교육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지구시민교육 차원의 접근법에 바탕하여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으로서 지구가 갖고 있는 건강한 자연질서를 회복, 사람과 자연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장하려는 노력, 이것이 지구화 시대의 최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구시민교육의 토대사상으로 한민족 고유의 홍익인간사상을 들 수 있다.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홍익인간사상의 본질적 특성은 자연과 사람이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로서 공히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로 보는 데에 기인한다.
'홍익'의 대상과 범위는 사람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등 우주 내 모든 존재를 포괄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단어 본래의 어의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 이외의 자연이 함께 얽혀 형성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즉 홍익인간사상은 본시 지구를 넘어 우주적 범위의 조화를 시야에 넣고 있는 사상이다.
그리고 홍익을 펼치는 주체로서의 사람을 홍익인간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이 때의 홍익인간은 자신 속에 본원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상생과 조화의 가치를 발현하고 삶 속에서 편견없이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홍익인간은 현대판 지구시민과 동일어라 할 수 있다.


Urgent global issues such as global warming, environmental pollution, and Corona-19 pandemic, which we are presently faced with, cannot be solved by capability and effort of any one country.
To break through the rigorous situation that is confronting to humankind and construct mutual-properity and harmonious global community, it is essntial to cultivate, above all, global citizenship beyond national citizenship.
Nevertheless most states still give priority to state egoism. Though, the globalization process cannot be irreversable. We continue to pursuit globalization process firmly for co-properous global village.
Meanwhile the conventional world citizenship education which is centered on liberal arts education,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additionally emphasize the enlightment which leads to fundamental change of man and the consilience approach towards global issues. By means of the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we should make our best endeavors to recover healthy natural order of earth.
Finally, as ideological base for the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you can recommend the Hong-ik-in-gan thought, which is the founding ideology of Bae-dal, the first country that was established about 6 thousands years ago by Korea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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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뫼 안호상의 회고록을 통해서 본 민족주의와 파시즘론 재고(再考)

저자 : 조덕제 ( Cho Deok J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5-5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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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안호상의 민족주의 사상의 본질에 대한 평가를 다루었다. 안호상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하나는 민족주의자로 평가되며, 다른 하나는 파시스트로 평가된다. 대한민국의 건국기에 수행된 안호상의 행적은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라는 지점에서 전개된 안호상의 행적은 민족주의 또는 파시즘의 형태로 이해되었다. 본 논문은 안호상에 대한 파시즘 평가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해명을 위해서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회고록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한 세대를 살아간 인물로서 회한이 담겨 있는 저술이다. 그가 보여준 사상적 행보는 대종교가 추구한 세계를 완성하는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대종교의 이념은 단군사상으로 귀결되며, 이는 조화에 근거한 민족주의이며 세계주의이다. 안호상은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이를 접목했던 것이며 이를 위해 정치적 실천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사상적 이해를 달리하는 이승만 세력과 투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승만의 역사적 평가가 정권의 부침에 따라 달라짐으로써 안호상의 평가도 부침하게 되었다. 안호상의 파시즘 평가는 기본적으로 이승만 정권의 패착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호상 사상의 본질을 재조명하는 것이 안호상 사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안호상과 같은 민족의 독립과 백성의 주체를 주장한 대종교인들의 희생과 그 이념에 발 딛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The evaluation of Ahn Ho-sang's idea is clearly divided. One is evaluated as a nationalist, and the other is evaluated as a fascist. The activities of Ahn Ho-sang during the founding of the Republic of Korea are clues to the current Republic of Korea. Ahn Ho-sang's activities in the period of new national construction were understood as nationalism or fascism. This paper is a counterargument to evaluate the idea of Ahn Ho-sang as fascism. And I would like to explain it. For this explanation, we have to listen to his inner story. His memoir contains the memories of a person who lived in a generation of Korea. His ideological practice is focused on the world pursued by “Dae jong gyo(大倧敎)”. “Dae jong gyo”'s ideology results in “Dangun(檀君)” ideology, which is nationalism and globalism based on harmony. Ahn Ho-sang carried out political practice for the construction of a new state. In this process, he fought against Syngman Rhee, who had different political and ideological interests. In addition, as Rhee Syng-man's historical evaluation changed according to the ups and downs of the regime, the evaluation of Ahn Ho-sang also became ups and downs. Ahn Ho-sang's evaluation of fascism is basically based on the defeat of the Syngman Rhee regime. Therefore, it would be said that re-examining the nature of Ahn Ho-sang's idea objectively evaluates the idea of safety. Furthermore, it should not be forgotten that the current Republic of Korea is stepping on the sacrifices and ideologies of the “Dae jong gyo”'s people who insisted on the independence of the people such as Ahn Ho-sang and the subject of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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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흑수백산지구 소남산문화의 옥·석기 조합 연구

저자 : 정경희 ( Jung Kyung He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131 (7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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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산문화 2기(B.C.7200년∼B.C.6600년경)의 적석단총인 옥기묘·제1묘지·제2묘지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단총은 제1묘지 Ⅲ구역의 적석묘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옥·석기의 주요 기종은 '벽·부·관류(관·석무저통형기)'였다. 특히 관류중 석무저통형기는 훗날 요서지구 홍산문화의 도무저통형기로 이어졌다. 일반 기종은 도구류 '부·촉', 기본 기종은 '부'였다. 또한 구석기 후기 말타문화의 '벽+도구류 권장(골모)'이 '벽+도구류 권장(부)'으로 이어졌다.
제1묘지 Ⅲ구역의 적석묘보다 늦은 시기의 단총이자 소남산유적의 최상급 단총인 옥기묘의 4대 옥·석기 기종은 '[벽류(벽·환·결)+도구류(부·비·촉 위주)]+관류+태아형기'였다. 제1묘지 Ⅲ구역의 주요 기종인 '벽·부·관류'가 옥기묘에서도 '벽류(벽·환·결)·도구류(부·비·촉 위주)·관류'로 이어졌다. 더하여 벽과 함께 구석기 시대 이래의 대표적인 생명표상물이었던 태아형기도 나타났다. 또한 말타문화의 '벽+도구류 권장(골모)'이 제1묘지 Ⅲ구역의 '벽+도구류 권장(부)'으로 이어졌다가, 옥기묘의 '벽류(벽·환·결)+도구류 권장(부·비)'으로 이어졌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재나 형태는 달라져갔지만 '벽류+도구류 권장'의 기본 구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소남산문화의 4대 옥·석기 기종에는 '천·지·인 삼원조화론'이라는 선도의 세계관, '성통→공완→조천론'이라는 선도의 생사관, '지감·조식·금촉론'이라는 선도의 수행관이 반영되어 있었다. 특히 '벽류·도구류·태아형기' 3종은 단군조선에 이르러 '청동거울·청동검·태아형기(또는 청동방울)'의 청동제 제천의기 3종, 곧 '천부삼인'으로 전승되었다. 이렇듯 소남산 옥·석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청동기 옥·석기문화로 면면히 계승, 동북아 신석기∼청동기 옥·석기문화의 원형을 소남산문화로 바라보게 된다.


Among the Jade tomb, the first cemetery, and the second cemetery, which were the stone mound altar·tomb of the second period of Xiaonanshan Culture(from B.C.7200 to around B.C.6600) belonging to Whanguk(桓國) period, the earliest altar·tombs were the stone mound altar·tombs in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The main types of the jade·stoneware excavated here were 'Byeog(璧)·Bu(斧)·Guans(管類)(Guan·the bottomless tubeshaped stoneware石無底筒形器)'. In particular, the bottomless tube-shaped stoneware of Guans later led to the bottomless tube-shaped pottery(陶無底筒 形器) of Hungsan culture in Liaoxi(遼西) areas. And the general types were 'Bu·Chok(鏃)' and among them, the status of 'Bu' was high. Also 'Byeog+Power cane among Tools(Bone pointer)' tradition of Malta culture in the late Paleolithic period led to 'Byeog+Power cane among Tools(Bu)' tradition in the first cemetery-III district.
The four major types of the jadeㆍstonewares of the Jade tomb, which was later than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and was the highest-class tomb, were '[Byeogs(ByeogㆍHwan環ㆍGyeol玦) + Tools(BuㆍBi匕ㆍChok)] + Guans + Taeahyeong-gi(胎芽形器, 曲玉). As the main types of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were 'ByeogㆍBuㆍGuans' and the main types of the Jade tomb were 'Byeogs(ByeogㆍHwanㆍGyeol), Tools(BuㆍBiㆍChok), Guans', we can understand that the main types had continued unchanged. In addition, Taeahyeong-gi, which had been a representative energy symbols since the Paleolithic period along with Byeog, also appeared. In addition, 'Byeog+Power cane among Tools(Bone pointer)' tradition of Malta culture and 'Byeog+Power cane among Tools(Bu)' tradition of the first cemetery-district III led to 'Byeogs(ByeogㆍHwanㆍGyeol)+Tools(BuㆍBi)' of the Jade tomb. Over time, the material and form had changed, but the basic composition of 'Byeogs+Power cane among Tools' had not changed.
The four major types of the jadeㆍstonewares of the Jade tomb had been passed down to the jadeㆍstoneware culture of Neolithic era to Bronze Age in Northeast Asia, so we can see the prototype of the jadeㆍstoneware culture of Northeast Asia as Xiaonanshan culture.
In the four major types of the jadeㆍstonewares of Xiaonanshan culture, the worldview of Sundo(仙道) called 'the harmony idea of Cheon(天)ㆍJi(地)ㆍ In(人)' and the birth and death view of Sundo called 'Seongtong(性通) → Gongwan(功完) → Jocheon(朝天)', and the practice view of Sundo called 'Jigam(止感)ㆍJosik(調息)ㆍGeumchok(禁觸)' were reflected. Among the jadeㆍ stonewares of Xiaonanshan culture, the three types of 'ByeogsㆍPower cane among ToolsㆍTaeahyeong-gi' were handed down to Dangun Joseon(檀君朝 鮮) as three bronze vessels for Sundo heaven ritual(仙道祭天), namely 'Cheonbu Samin(天符三印: tree symbols of Sundo, Bronze mirrorㆍBronze swordㆍTaeahyeong-gi(or Bronze 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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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조선의 패수와 왕검성

저자 : 윤병모 ( Yoon Byoung M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3-16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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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조선열전에 의하면 위만의 이동방향은 요동고새→패수→진고공지 상하장→왕검성의 순서로 되어 있다. 패수가 어떤 강인지를 알기 위해『사기』조선열전에 등장하는 요동고새와 진고공지 상하장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사기』조선열전에 나오는 요동은 오늘날 요하 이동이라기보다는 요서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진고공지는 오늘날 대릉하 하구와 요하 하구 일대로 해석하였다. 만번한은 패수라고 인정된다. 여기서 패는 늪지 또는 습지의 의미로 대릉하 하구부터 요하 하구에 걸쳐 있는 요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요하 서쪽에 있는 요양하가 한대의 패수라고 인정되며 패수가 요양하라면 왕검성은 요양하 동쪽과 요하의 서쪽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험독은 요하를 끼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오늘날 험독의 위치는 요하 서쪽에 있는 대안현의 손성자고성으로 비정된다. 또한 왕검성은 바다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고 보여 진다.


In order to find out what kind of river Paesu is, I looked up the old Castle of Liaodong that is appeared to 『Shiji』. I also checked Qingukongdishangxiazhang.
Liaodong in 『Shiji』 is Liaoxi area. Qingukongdishangxiazhang is today the Dalinghe mouth of the river and the Liaohe mouth of the river.
In 『Shiji』, it is indicated as 'dongzou'. Weiman's direction of travel is west to east. That river is Paesu. Therefore, Paesu is a river in the north-south direction. Manfanhan stands for bog or wetland. After all, Manfanhan is Paesu. The Raoyanghe in the west of Liaohe is Paesu.
Wanggeomsung was to the east of Raoyanghe and west of Liaohe. Xiandu was wearing Liaohe. The location of Xiandu is Sunchengzi old castle west of Liaohe. This corresponds to the Liaohe downstream delta.
Liaohe downstream is an earth and sand spill formed by a sedimentary layer. So the land continues to increase. This is connected with Zengdi and Zengtu of 『Hanshu』. A Han soldier advances without any hurdle up to Xiandu. So reach the south of Wanggeomsung. Therefore, Wanggeomsung was located in an area close to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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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임나 7국의 위치에 대한 재론

저자 : 박덕규 ( Park Duck Gyu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1-21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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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에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신찬성씨록』길전련(吉田連) 가전(家傳)으로 전하는 '임나 기문'을 '가야 기문'으로 개변하여 임나부(任那府)의 기원으로 설명했고,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는 염승진(塩乘津) 설화와 숭신기를 연결하여 임나 일본부는 '대가야에 설치된 야마토의 일본부'라고 주장했다. 대일항쟁기 일본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여 『일본서기』의 임나 국명을 한국의 지명에 비정하였는데 이들의 임나=가야설은 지금까지 일반설이 되어있다.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임나흥망사』에서 음상사(音相似)에 기반하여 『일본서기』 신공기에 나오는 '임나 7국'을 한반도 남부와 가야 지역에 비정하였다. 그의 지명 비정을 재검토하면 『일본서기』와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삼서'에 보이는 임나의 역사지 리적 특징과 한국 문헌의 '가야'와는 정합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광개토대왕릉비와 강수열전, 진경대사탑비 등 한국 자료에 등장하는 '임나' 관련 기록들도 기존의 연구에서처럼 임나가 가야를 뜻한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양직공도」 등 중국 자료에 보이는 임나도 마찬가지여서 이때의 임나는 대마도나 북규슈 등 백제의 해양진출과 일본 열도 진출을 보여주는 흔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임나=가야설은 재검토가 필요하며 더욱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In the Edo period of Japan, Arai Hakuseki(新井白石) described Imna Gi-mun, which was passed down from the family of Gil-jeon(吉田連), as the origin of Imna-bu(任那府), and Daisuke Hayashi(林泰輔) connected the story of Yeom Seung-jin(塩乘津) and『Nihon Shoki(日本書紀)』 Sungshin-gi, claiming that Mimana Nihon-fu(任那日本府) is the Japanese part of Yamato installed in Dae-gaya.
In Japanese colonial era, Japanese colonial historians equated Imna described in『Nihon Shoki』 with Gaya and designated the country names of『Nihon Shoki』 in the Gaya area of Korean land, and their theory of Imna=Gaya has been a general theory so far.
Yasukazu Suematsu(末松保和) designated 'Imna Seven Kingdoms' in the『Nihon Shoki』 Sungshin-gi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Gaya area based on Eumsangsa(音相似: a method of matching similar notes with each other). Reviewing his nomination, it can be seen that Imna's historical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shown in Baekje Samseo(百濟三書) cited in『Nihon Shoki』 or『Nihon Shoki』 do not match the historical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Gaya in Korean literature data. After all, his appointment of Imna was not reasonable. In addition, records related to Imna appearing in Korean historical records such as the Stele of King Gwanggaeto, the Gangsu-yeoljeon, and the Jinkyeong Daesa Pagoda cannot be found as solid evidence that Imna means Gaya as in previous studies.
The same goes for Imna, which is seen in Chinese historical records such as 「Yangjikgongdo(梁職貢圖)」, so it can be seen that Imna at that time shows the advancement of Baekje into the sea such as Tsushima and Northern kyushu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Therefore, the Imna=Gaya theory needs to be reviewed and more in-depth research i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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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훈민정음 해례(解例)와 천부경(天符經)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저자 : 송옥진 ( Song Ok Ji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11-23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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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있어 사상과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최고의 산물은 단연코 훈민정음이라 할 수 있다.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데다가 당시 최고의 지성인을 뛰어넘는 세종이 창제하여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데다가, 제자원리에 언어학적 완벽함은 물론 철학적 사유체계까지 담은 범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훈민정음의 가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온 이후 더욱 견고하게 연구되어 왔다. 단순히 옛 글자를 모방하고 음양오행으로 대표되는 중국 전통사상을 성리학적 서술체계를 따라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놓아야만 했던 세종의 본의가 해례본에는 담겨 있다. 그 핵심을 본고에서는 천부경의 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본다. 이에 해례본과 천부경사이에 어떠한 유사점이 있는지를 해례본 제자원리에 나온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음의 부분에서 설명한다. 하나는 중성 11자의 제자원리에서 '·, ㅡ, ㅣ' 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각각 '천(天)·지(地)·인(人)'을 본뜬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성자를 음양오행으로 풀어 설명한 것에서 'ㅣ'는 정해진 자리와 수로 논할 수 없는데 이는 천부경에서 인(人)의 역할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초성, 중성, 종성을 결합함에 있어 초성이 중성을 중심으로 종성으로 다시 사용되는 것은 순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천부경(天符經)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마치는 것과 결을 함께 한다.


Hunminjeongeum Haerye is written by King Sejong and his companion Jeong Inji. In the Haeryebon, Hunminjeongeum was created based on the Yin-Yang and Five-Elements and the Three-Elements Theory. However, Haerye is thought to have originated from the thought of Cheonbugyeong. So, I will try to find any similarities between Haeryebon and Cheonbugyeong based on the keywords found in the original Haeryebon. The medial(of a Korean orthographic syllable) 11 neutrals are based on '·, ㅡ, ㅣ' and modeled after the shape of 'haeven, earth, and human'. It was said that vowels do not have a fixed place and number. It can be explained by the role of a person in the Cheonbugyeong. The use of the initial consonant again when combining the initial, neutral and final consonants signifies a cycle. It is the same as Cheonbu-gyeong, which starts with a one and ends with th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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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은평구 '천부지모비'의 성격과 변천 과정 연구

저자 : 박지영 ( Park Ji You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1-26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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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불광중학교 운동장에 있다가 1975년에 불광중학교가 운동장을 넓히면서 지금 있는 불광중학교 뒷산으로 옮긴 은평구 천부지모비(天父地母碑)의 성격과 변천과정을 살펴본 연구이다.
우리나라 도처에는 수많은 서낭당이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시골 마을 입구나 마을 중심에 서낭당 혹은 신목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의 밝음과 자신 안의 밝음이 하나 되어 그 밝음을 세상에 펼치고자 하였고 그것이 제천수행, 제천의례라는 형식을 통하여 이어져 내려왔다. 처음엔 산 정상에서 행해지던 제천의례가 점점 마을로 내려오면서 제천을 행하는 장소가 서낭당이 되었고 서낭당 이외에도 신목, 장승, 솟대, 선돌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었다.
은평구 천부지모비는 마을제당이 서낭당 같은 제천사의 모습이 아닌 비석의 형태로 전해지는 사례이다. 당초 불광중학교 운동장 자리에 있을 때에는 제당 안에 비석을 모신 상태였다가 1975년에 불광중학교가 운동장을 넓히면서 지금 있는 불광중학교 뒷산으로 제당은 없애고 비석만 옮겼다고 한다.
천부지모비를 연구해 본 결과 천부지모비는 지리적으로 북한산 올라가는 산중턱에 위치하고 불광천이라는 하천이 자연환호 역할을 하는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 중 제천사 유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천단의 원형인 백두산 서편 고제단군과 우하량 제단군의 위치 또한 높지 않은 산구릉에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천부지모비는 그 일대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제천하기 좋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적으로도 천부지모비는 한민족의 삼원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천(天)과 지(地) 그리고 김매월로 대표되는 인(人)을 비석에 새겨 우리 민족 전통의 천ㆍ지ㆍ인 삼원사상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한 밥할머니 전승과의 연계성으로 천부지모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천부지모비는 밥할머니를 신격으로 하는 한민족의 제천의례와 관련 있는 제천단이었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서기전 4000년 전부터 면면히 이어온 한민족 제천단의 최적의 입지인 '환호를 두른 구릉성' 입지에 '천ㆍ지ㆍ인' 삼원사상을 내포하고 비석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천부지모비의 제천단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천단의 모습이 아닌 천부지모비와 같은 비석 혹은 신목, 장승, 솟대, 선돌 등 여러 형태로라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적은 전국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많은 제천단의 변형적인 형태가 민속이나 무속적인 시각을 넘어 선도적인 해석으로 그 문화재적인 가치가 재인식되고 복원하는 사례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This thesis is a study examining the nature and transition process of Cheonbujimobi(天父地母碑) in Eunpyeong-gu(恩平區), which was located in the playground of Bulgwang Middle School and was moved to the mountain behind Bulgwang Middle School in 1975.
There are numerous village guardian deity shrines everywhere in Korea. Although it has disappeared a lot now, Seonangdang(shrine to the village deity) or Sinmok(a tree sacred to the gods) is still often built at the entrance to rural villages or in the center of the village. Since ancient times, the Korean people have tried to spread the brightness of the sky and the brightness within themselves to the world, and it has been passed down through the form of Heavenly ritual practice and Heavenly rituals. As Heavenly Ritual, which was initially practiced at the top of the mountain, gradually came down to the village, the place where Heavenly Ritual was practiced became Seonangdang, and in addition to Seonangdang, various behaviors such as Sinmok, Jangseung(Korean traditional totem pole), Sotdae(a pole signifying prayer for a good harvest), and Seondol(Menhir) were changed.
The Cheonbujimobi Monument in Eunpyeong-gu is an example in which a village shrine is transmitted in the form of a monument, not in the form of Heavenly ritual shrine like Seonangdang. Initially, when it was located in the playground of Bulgwang Middle School, a monument was enshrined in the shrine, but in 1975, when Bulgwang Middle School expanded the playground, the shrine was removed and only the monument was moved to the mountain behind Bulgwang Middle School.
As a result of studying Cheonbujimobi, it was confirmed that Cheonbujimobi is a type of Heavenly ritual shrine among the "hilly Heavenly ritual facilities with surround lake"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mountain that goes up Bukhansan Mountain geographically and acts as a natural surround lake. Considering that the locations of old Altars on the west side of Baekdusan Mountain, which are the prototype of Heavenly ritual Altar, and Niuheliang (牛河梁) Altars, are also located in a good place for many people to gather and perform in Heavenly ritual.
In terms of content, Cheonbujimobi contains the idea of the Korean people's Samwon(三元). The monument is carved with people represented by heaven and earth and Kim Mae-wol so that they do not forget the idea of Samwon, the heaven and earth of our nation. In addition, the value of Cheonbujimobi was confirmed by the connection with the transmission of Bob-Halmoni(Cooked-rice Grandmother).
In other words, it was confirmed that Cheonbujimobi was the Heavenly ritual Altar, which was related to the Heavenly ritual of the Korean people, which was dedicated to Bob-Halmoni. It can be said that the cultural value as a Heavenly ritual Altar of Cheonbujimobi, which is handed down in the form of a monument, is sufficient for the "hilly Heavenly ritual facilities with surround lake" the best location of the Korean Heavenly ritual Altar since 4,000 years before AD. In the meantime, relics such as Cheonbujimobi, which have remained so far, can be easily found throughout the country, even in the form of a monument, not in the form of Heavenly ritual Altar. It is hoped that there will be more cases in which the value of the cultural heritage is re-recognized and restored as a Korean SunDo's interpre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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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춘천 중도의 풍수지리 입지특성과 역사문화 형성에 관한 연구

저자 : 김기찬 ( Kim Ki Cha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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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도는 태백정간의 기운이 응축된 곳으로 산수가 생기로 조화를 이룬 곳에 입지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수천 명이 거주하며 주거지와 지석묘 등 세계적인 대단위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렇게 오랫동안 역사와 문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중도의 입지특성이 자궁형상의 풍수생기 터에 입지하여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중도에서 형성한 선사역사와 문화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문화 유산으로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여 인류문화의 산실로 전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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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춘천 중도유적의 역사적 가치와 한국사회의 인식

저자 : 장우순 ( Jang Wu Soo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43-7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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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도유적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청동기 도시유적이다. 유적의 규모나 유물의 성격 등으로 보아 이 유적은 국가 수준의 권력이 결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시기를 기록한 중국과 한국의 문헌에는 당시 이 지역의 유일한 국가권력으로 고조선이 언급되어 있다. 아마도 고조선이나 고조선과 관련된 지방세력이 남긴 유적일 것이다. 지금 개발세력과 시민사회 간에 벌어지고 있는 중도의 개발을 둘러싼 갈등에는 한국의 모든 모순이 응축되어있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만약 불가피하게 개발이 되더라고 유물과 역사적 가치가 보존되는 현명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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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춘천 중도 호반관광지 개발의 환경영향 등 연구

저자 : 정연돈 ( Chung Youn Do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7-11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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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도 개발이 시작된 것은 무척 오래되었지만 역사문제로서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중도도 중도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 우리 역사의 문제요, 환경의 문제이다. 정신 상승의 기회요, 위기 극복의 아이콘이다.
중도의 인연 속에 제1회 중도 역사문화 보존 학술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실천적인 노력과 함께 학술적인 도전이 힘겹기는 하지만 참으로 의미있는 주제라 생각된다. 중도에는 많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 환경문제는 역사문제와 함께 기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환경영향평가의 측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내용일 것 같다. 여기에는 법, 제도, 관심, 참여도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학술대회를 계기로 중도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모이고 정신적인 상승이 더욱 많아짐으로써 그동안 누적된 많은 문제가 잘 풀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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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춘천 중도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 과정과 방향 연구

저자 : 김영숙 ( Kim Young Sook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3-14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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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OLAND KOREA Project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춘천 중도유적에 대한 시굴조사가 있었다. 2011년 시굴조사를 통해 중도유적의 전체적 양상이 파악되었고, 2013년 10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총 600,522㎡의 면적에 대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레고랜드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시·발굴에 대한 약식 보고서가 존재한다. 약식 보고서를 보면 중도유적에 대한 시굴 및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8,025점으로 이중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이 7,940점이다. 유물 중 일부는 복토보존과 기록 보존이라는 미명하에 다시 묻혔고, 소수의 유물은 이전되어 잡석으로 존재하거나 박물관 전시를 위해 이전보존 하고 있다.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중도유적 발굴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 발굴은 1977년 이후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졌고, 제대로 된 발굴조사는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 발굴조사부터다. 특히 2010년∼2011년에 걸쳐 이루어진 4대강 살리기 사업 하중도 제방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일보 레고랜드 기사, 문화재청 매장분과 위원회 회의록, 도의회 회의록을 열람해보면 상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문화재청 회의록을 살펴보면, 도의 투자 유치법에 따라 레고랜드 테마 파크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였고, 문화재청과 도의회는 개발이라는 도의 입장에 손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도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단체는 중도유적 보존을 우선 하였으므로 양쪽이 대치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도가 주도하면서 지역주민은 경제살리기 프로젝트가 먼저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에 반하여 2015년부터 소수의 역사문화 단체의 시민운동이 명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일본은 1981년∼1989년 개발사업으로 진행되던 사가현 지역을 여러 과정을 거치며 요시나 가리 유적을 보존하였다. 일본이 유적을 지켜낸 것은 언론과 학자들이 함께 노력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춘천 중도유적을 지키면서 경제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대안으로 시민단체의 보존운동 과정을 살펴보고 방향성을 제시하여 중도유적 보존을 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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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홍산문화 '곰(맥)-마고삼신-매' 표상의 기원과 변천

저자 : 정경희 ( Jung Kyung He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219 (7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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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7000년경 신석기 후기 동북아 일대에서는 '여신, 태아, 신수' 생명 표상이 널리 나타났다. 신수는 족휘이기도 하여 종족적 문화적 차이를 가늠케하는데, 요동지역이 주로 곰·매였던 반면 요서지역은 도마뱀·돼지·사슴·매 등이었다.
B.C.4000년경 홍산문화에 이르러 요동·요서지역의 생명 표상들이 형태나 의미면에서 완전히 새로워졌으니, 우하량 여신묘·적석총의 '곰(맥)-마고삼신-매' 표상이 그러하다. 이는 선도 삼원오행적 세계관의 요체인 '수승화강' 사상, 더 나아가서는 사람이 땅에서의 생명력이 소진된 후 하늘의 생명력으로 돌아간다는 대우주 차원의 수승화강, 곧 '조천'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는 홍산문화기 선도제천문화 발전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동북아 조기 신석기 이래 다양한 신수들(곰·도마뱀·돼지·사슴·매 등)이 있었으나 홍산문화기가 되자 요동지역의 대표 신수였던 곰·매가 부상, 요동·요서를 막론하고 대표 신수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즈음 배달국이 개창되고 배달국의 주족인 맥족(웅족+환웅족)이 요서지역으로 진출하였던 정치사회적 변화가 신수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동북지역에서 배달국 개창을 계기로 '곰(맥)-마고삼신-매' 표상이 정형화되었던 것과 달리, 황하 일대 중원지역에서는 배달국에서 중원지역으로 이주한 웅(맥)족의 후예들에 의해 토착 화하족사회의 유서깊은 도마뱀·악어류 신수가 용으로 경신되었다. 또 화하족과 산동 일대 동이족의 쟁투 과정에서 '용·봉' 표상이 생겨났다. 또한 화하족의 전통적인 도마뱀·악어류 및 호랑이 신수가 중국도교로 흡수되어 '용·호' 표상 및 '용-서왕모-호' 표상도 생겨났다.
맥족계 '곰(맥)-마고삼신-매' 표상, 또 뒷날 중국의 영향을 받은 맥족계 '용-마고삼신-봉' 표상은 종족의 신수 차원이 아니라 수승화강-조천사상을 표현한 선도 상징의 차원이었다. 현재 중국학계가 그들이 익숙한 화하계 용·봉 표상의 관점으로 맥족계 '곰(맥)-마고삼신-매'나 '용-마고삼신-봉'을 해석하는 것은 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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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전자유적 납돈(鉛貝)에 나타난 고대 해상교류의 인식범위

저자 : 송옥진 ( Song Ok Ji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21-25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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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는 오랜 기간동안 주변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전통적인 유불선 삼교의 유입과 발전을 거듭함은 물론,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문화 사상인 한국선도의 유출 및 확산이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전세계에서 부는 K-food, K-fashion, K-style 및 각종 K-culture 역시 전통문화와 함께 끊임없이 주변 문화와 교류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대 동아시아의 교류에 대한 인식, 특히 기록이 소실되어 다양한 문헌 자료로 증빙되지 않는 고조선 시대의 교류에 대해서는 외부로부터 일방적 문화유입을 전제하고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지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고조선시대 해상교역이라 한다면 대부분의 연구결과물에서는 『관자』에 나오는 발조선과의 모피교역을 그 상한으로 보고 있고 이조차도 『관자』가 집필된 시기와의 시간적 괴리감을 들어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고대 동아시아교역에 대한 인식을 먼저 살펴보고 고조선문화로 추정되는 하가점하층문화의 대표 유적인 대전자유적에서 출토된 납돈을 가지고 고대 해상교역의 인식범위가 기존 연구의 인식범위보다 훨씬 광범위 함을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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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서학이 근대 민중종교운동에 미친 영향 - 민간 예언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임채우 ( Lim Chae Wo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5-301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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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대혼란속에서 싹트고 발전한 민중종교운동은 말세론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천주교의 말세론에서 영향을 받은 정감록의 말세 개념은 19세기 말에 이르면 동학과 증산교 등의 후천개벽(後天開闢) 개념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종말론과 역학의 순환적 세계관이 결합되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천주교의 교리나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등의 선교사의 저술이 알려지면서 천주(天主)란 개념이 정감록에서는 말세의 진주(眞主)로 수용되면서, 근대민중종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감록에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도령은 전통적 성인관과는 차이가 크며,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로서 기독교의 구원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17세기 수입된 서학에서 전파된 새로운 사상은 18세기에는 정감록의 종말론과 정도령론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끼쳤고, 이 정감록사상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선 근대민중종교운동에서의 후천개벽개념, 후천세계의 진주(眞主)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암울했던 조선의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민중들을 위로하며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는 희망의 등불로 작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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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해방공간(1945년-1947년)의 개천절 봉축 행사와 그 의미

저자 : 신운용 ( Shin Woon Yo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03-3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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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회복 이후 개천절 봉축행사는 국내 단군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었다. 이를 먼저 담당한 세력은 대종교인 안재홍의 국민당이었다. 국민당은 1945년 10월 3일에 개천절 행사를 개최하고 단기 사용과 개천절 홍보를 결의하였다.
1945년 개천절 행사는 특히 대종교인들이 중심된 단군전봉건회의 출발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단군전봉건회는 대종교·조선국술협회와 함께 1945년 개천절 행사를 열었다. 이는 대종교인들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 주도하였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개천절이 3.1절·광복절·한글날·예수성탄절과 더불어 일요일로 정해졌다. 이는 개천절이 국경일로 정해지는 배경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개천절은 사상적 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장이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946년의 개천절 행사의 특징은 전년과 달리 기독교 등 종교단체와 사회단체로 구성된 '교화사업중앙협회'가 주도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개천절이 대종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이제 전민족적 행사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이승만의 “단군은 신이 아니다.”라는 발언은 1948년 개천절을 국경절로 정한 기반의 조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47년 개천절의 분위기는 국내외의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민족국가 건립에 대한 열망으로 고조되어 갔다. 단군전봉건회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채동선이 「개천가」를 작사하는 등 단군관련 기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여 개천절에 대한 열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무엇보다 1947년 개천절의 특징은 관이 주도하였다는 점이다. 군정청 문교부는 적극적으로 개천절 행사에 각 학교·관공서·사회단체 등 직능별로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이는 개천절이 완전히 한국사회에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대일항쟁기의 개천절이 민족의 단결과 정체성 확립 및 대일투쟁 의지를 고무시켰듯이, 해방공간의 개천절도 민족국가 건립과 남북통일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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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제시대 민족종교의 조직구성과 근대성 - 보천교를 중심으로

저자 : 김철수 ( Kim Chul So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33-37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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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조직은 기본적으로 믿음체계를 우선하는 조직형태이다. 종교조직은 물질적·물리적이 아닌 상징적 보상과 도덕적 가치를 활용하여 구성원들의 높은 도덕적·헌신적 참여를 유도한다. 본고는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조직인 방위제와 그 원리를 확인하여 보았고, 1910년대의 소위 24방위제 그리고 보천교의 포교조직으로 자리매김된 60방위제와 교무기관, 교의회 기관에 관해 살펴보면서 그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방위제는 차경석 교단이 만든 독특한 포교조직으로 이후 보천교의 전형적인 포교조직으로 자래매김 된다. 이 조직은 각 방(方)의 포교를 책임지도록 임명된 방주(간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포교조직이었다. 방(方)은 처음에는 24절후를 원리로 한 24방위로 구성되었으나, 나중에는 4行, 4方, 四季, 24방위, 24절후를 총망라한 60방위로 확대되었다. 이는 인간이 인식 가능한 우주 시·공간 전체인 시방삼세(十方三世), 곧 4방(四方) 사유(四維), 상하와 과거·현재·미래 전체를 관장함을 의미했다. 점차 보천교 교도가 수적으로 확대되면서 포교활동과 더불어 대정부 활동이나 대사회 활동이 중요한 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조직의 분화가 필연적으로 요청되면서 1922년 2월부터 전국 주요 도시에 진정원들이 설치되었고 각 郡에는 정교부가 설치되어 포교활동이 강화되었다. 중앙에서 각 지방까지 교단의 전반적인 사무를 집행하는 기관들이 설치되어 총령원-진정원-정교부로 이어지는 수직적 조직이 교단의 사무행정계통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보천교 조직은 중앙본소로부터 각 지방조직까지 거미줄망처럼 치밀하게 구성되었던 것이다. 또한 보천교에서는 의결기관인 입법부, 곧 교의회 조직을 설치하고 있었다. 교의회는 강선회(綱宣會)와 보평회(普評會)로 이루어져 양원제로 조직했던 점이 특징이었다. 규범적으로만 본다면 보천교는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입법부와 같은 교의회를 조직, 운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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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노화인식 변화의 필요성 - 한국선도(韓國仙道)에 나타난 노년초월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 : 김일식 ( Kim Il Sik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3-40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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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고령사회를 맞아 한국선도(韓國仙道)에 나타난 노년초월(Gerotranscendence)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모색해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례없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노인복지비 및 의료비의 증가를 초래하여 국가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심각성은 노인 뿐만 아니라 노년기를 바라보는 사회성원들에게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경향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년기를 상실의 시기라기보다 삶에서 터득한 지혜를 사회에 환원하는 성숙의 기회로 보는 노년초월로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년초월은 인생의 전반적인 시각을 물질적·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다 우주적·초월적인 관점으로 인식함으로써 노화 개념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서구의 노년초월과 한국선도의 성통공완은 자아초월을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노년초월에 대한 한국적 실천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된다. 노화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노인 개인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노년초월로의 노화인식 변화는 노인의 삶의 만족도를 개선하고 노인복지 개념의 변화를 통해 고령사회가 초래한 문제들을 경감함으로써 성숙한 노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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