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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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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38-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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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37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6
간행물 제목
40권0호(2022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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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문상 ( Moon Sang Kw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50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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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팬데믹과 제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사회의 실상을 대변하는 온라인 시대는 필연적으로 대면 사회에서 경험하는 공동체성을 상당 부분 희석하게 할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한 신앙생활 만족도 하락에 더하여, 결과적으로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특성이 위협받게 하며 성도 수의 감소 현상도 함께 겪게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팬데믹과 온라인 시대에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영적 생명력을 어떻게 유지 및 증진할 수 있을 것인지, 교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공동체 곧 '온라인 공동체' 문화에 대비한 교회론을 재구축할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서 교회의 공동체성을 가장 잘 구현시킨 미국의 세이비어 교회를 모델로 하여 우리는 팬데믹과 온라인 시대에 영적인 생명력을 잃지 않을 시스템을 찾아본다. 세이비어 교회는 성화 공동체로서 내적인 신앙의 여정과 외적인 실천 여정의 변증법적 연합의 삶을 내재화한 21세기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이 교회에서 교회의 공동체성 확보의 항구적인 원리와 실제가 발견되는 것은 물론, 팬데믹과 온라인 시대를 맞이한 오늘의 교회도 이 교회를 모델로 하여 영적인 생명력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교회도 내적인 성화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외적인 사회 봉사와 섬김을 동시에 실현하여 교회 공동체성을 실제화함으로써 영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


The online era, which represents today's pandemic and the reality of the hyper-connected society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inevitably dilutes the sense of community experienced in face-to-face society, and furthermore, the religious life caused by the prolonged pandemic makes the decrease in satisfaction, as a result, the character of the church as a community is threatened and the possibility of experiencing a decrease in the number of members cannot be excluded. In this article, we discuss how the church as a community can maintain and promote spiritual vitality in a completely different pandemic and online era, and prepare the church for a culture of an 'online community', a community with a completely different character than before. There is a need to reconstruct an ecclesiology.
As a concrete action plan, we look for a system that will not lose its spiritual vitality in the era of pandemic and online, modeled on the Savior Church in the United States which best embodies the communality of the church. The Savior Church is a representative church of the 21st century that internalizes a life of dialectical union between the inward journey of faith and the outward practical journey as a sanctifying community. In this church, the lasting principles and practices of securing the church's communality are discovered, as well as today's churches in the era of pandemic and online can strengthen their spiritual vitality by using this church as a model. Thus, the Korean church can maintain and strengthen the spiritual vitality by realizing the church's communal nature by simultaneously realizing external social service while forming an internal sanctifying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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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찬호 ( Chan Ho Park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2-82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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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가 직면했던 재세례파는 츠빙글리가 주도하였던 소그룹성경 공부 모임이었던 “예언모임”에서 기원하였다. 콘라드 그레벨과 펠릭스 만츠를 중심으로 하는 스위스 형제단은 성서적 아나뱁티스들이었으며 온건한 재세례파라고 할 수 있다. 1523년 10월 삼일에 걸쳐 개최된 2차 공개토론회는 재세례파 운동의 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른바 “10월 논쟁”을 통해 재세례파 제자들은 스승인 츠빙글리에게서 일종의 영적인 괴리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1525년 1월에 개최된 3차 공개토론회는 유아세례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토론회는 츠빙글리의 승리로 끝났고 이 3차 공개토론회를 통해 츠빙글리와 그의 제자들인 재세례파가 적대하며 분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아세례 문제와 관련된 츠빙글리와 그의 제자들 사이의 분리의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523년 7월 츠빙글리는 1차 논쟁에 제출하였던 “67개 논제에 대한 해설”을 발간하여 자신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이 가운데 마지막 67번째 논제에서 츠빙글리는 이자와 십일조 그리고 유아세례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유아세례가 문제가 된 것은 1525년 1월 3차 논쟁에서였는데 츠빙글리과 그의 반대자들 사이의 논쟁은 일방적이었다. 3차 논쟁 후 츠빙글리와 재세례파 제자들의 대결은 극단으로 치우쳐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된다. 재세례파와의 대결에서 츠빙글리의 주된 관심은 어떤 면에서 세례 자체 보다는 재세례파의 과격한 주장이 종교개혁에 미칠 영향이었다. 국가로부터 교회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아세례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로부터의 교회의 자유가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는 시대라고 한다면 유아세례의 문제에 대한 토론은 다소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The Anabaptists that Zwingli had encountered originated from the “Prophecy Meeting,” a small group of Bible studies led by Zwingli. Conrad Grebel and Felix Mantz were the central figures of the Swiss Brethren. It was biblical anabaptists and can be said to be moderate anabaptists. The second public debate held on October 3, 1523 is closely related to the beginning of the anabaptist movement. Through the so-called “October Controversy,” the anabaptist disciples felt a kind of spiritual disparity and betrayal in their teacher Zwingli. The third public debate held in January 1525 discussed infant baptism, which ended with Zwingli's victory. And this third public debate served as a decisive opportunity for Zwingli and his disciples, the anabaptists, to antagonize and divide.
We have to look back on the process of separation between Zwingli and his disciples related to the issue of infant baptism. In July 1523, Zwingli published “Explanation on 67 topics” submitted to the first debate and explained his reform program in detail. Among them, in the last 67th thesis, Zwingli discusses interest, tirade, and infant baptism. However, it was in the third debate in January 1525 that infant baptism became a problem in earnest, and the debate between Zwingli and his opponents was unilateral. After the third debate, the confrontation between Zwingli and the disciples of the baptism was biased to extremes, leading to a tragic ending. Zwingli's main interest in the confrontation with the anabaptists was in some ways the radical argument of the anabaptists rather than the anabaptists themselves influenced Reformation. The issue of infant baptism would have been a very important issue in a situation where the church could not be thought of separately from the state. However, if it is an era in which church freedom from the state is generally recognized, the discussion on the issue of infant baptism will inevitably change some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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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재용 ( Jae Yong Kim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4-115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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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범위라는 주제에 나타나는 충분성과 유효성의 도식을 다룬다. 이 도식을 통해 다버넌트와 칼빈의 신학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이 부분에 있어서 칼빈의 신학과 다버넌트의 신학이 동질(同質)의 것인지 어떤지를 토론한다. 또한 다버넌트의 충분성과 유효성의 도식에서 발생되는 모순을 그가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살피고, 그의 해결책과 칼빈의 관점이 동질의 것인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리처드 멀러는 충분성과 유효성의 도식 안에서 다버넌트와 칼빈을 연결시키며, 두 사람의 견해가 동일하다고 말하는데, 이를 심도 있게 살펴봄으로써 두 사람의 견해가 어떤지를 밝히고자 한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schema of sufficiency and efficacy in the subject of the Extent of Christ's atonement. Through this schema, I examine whether the theology of Davenant and Calvin can be connected with each other.
In this section, we discuss whether Calvin's theology and Davenant's theology are the same. Also, I would like to examine how he solves the contradiction that arises from the schema of sufficiency and efficacy of Davenant, and discuss whether his solution and Calvin's point of view are the same. Richard A. Muller connects Davenant and Calvin in the schema of sufficiency and efficacy, and says that the views of the two are the same. By examining this in depth, I would like to clarify what the views of the two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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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성호 ( Sung Ho Kim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6-145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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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고는 위르겐 몰트만과 미로슬라브 볼프에 의해 주도된 '기쁨의 신학(Theology of Joy)'의 근본적인 담론을 배경으로, 본회퍼의 신학을 '기쁨'이라는 주제로 재구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슬픔 속에서 절규하는 인간은, 고통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한 임시적이며 하나님이 부재한 인간적 기쁨(tob)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기쁨을 소원해야 한다. 본회퍼의 관점에서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 몰트만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고통 속에서 거짓 기쁨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희망이며, 죽음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이다. 타락이전 아담의 기쁨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공동체적 기쁨, 교회론적 기쁨으로 슬픔과 고통 속에 처한 인간은 다시 참 기쁨을 소유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몰트만의 기쁨의 신학은, 본회퍼에게 교회론적 기쁨이라는 주제로 함양된다. 그 기쁨은 타락한 인간의 기쁨(tob)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기쁨이다. 몰트만은 종말론적 기쁨을, 본회퍼는 교회론적 기쁨을 말했다. 몰트만은 기쁨의 희망을, 본회퍼는 교회의 기쁨을 논했다. 두 신학자의 기쁨의 담론의 중심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쁨의 희망이며, 교회의 기쁨을 이끄시는 주관자이시다. 기쁨의 희망은 희망의 기쁨을, 교회의 기쁨은 기쁨의 교회를 창조한다.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의 '기쁨의 희망'은 '희망의 기쁨'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교회의 기쁨'은 '기쁨의 교회'를 지금, 여기에 설립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희망의 기쁨, 기쁨의 교회로 현존하시며, 타자를 위한 고통의 자리로 그리스도인들을 초청하신다. 그곳에 세상의 고통과 슬픔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기쁨'이 있다.


This study aims to reorganize Bonhoeffer's theology on the topic of “joy” against the backdrop of the fundamental discourse around “Theology of Joy” led by Jürgen Moltmann and Miroslav Volf. Man crying out in sorrow should wish for the joy of being with God as well as his presence rather than seeking after temporary human joy(tob) with the absence of God to escape from the weight of pain. In Bonhoeffer's viewpoint, the only way is to restore the community relationship with God through Jesus Christ. In Moltmann's viewpoint, God's being with man represents hope amid despair instead of fake joy amid pain and also the true life of Jesus Christ that is bigger than death. Man can restore Adam's joy before his depravity only through Jesus Christ. Man can own his true joy amid sorrow and pain through such community joy and ecclesiological joy. In this sense, Moltmann's Theology of Joy is cultivated by the topic of ecclesiological joy for Bonhoeffer. The joy is not the joy of corrupt man, but God's joy that he approves and belongs to him through Jesus Christ. Moltmann talked about eschatological joy, and Bonhoeffer did about ecclesiological joy. The former discussed the hope of joy, and the latter did the joy of church. There is Jesus Christ at the center of the two theologians' joy discourse. Jesus Christ represents the hope of joy and is the host to lead the joy of church. The hope of joy creates the joy of hope, and the joy of church creates the church of joy. In the COVID-19 era when many people are suffering, Jesus Christ's incarnation, cross, and “hope of joy” of resurrection continues to produce the “joy of hope,” and the “joy of church” sets up the “church of joy” here and now. Today, many people are in pain due to the coronavirus. Jesus Christ is present among people as the joy of hope and the church of joy and invites Christians to the place of pain for others. There is “God's joy” that is much bigger than the pain and sorrow of the world at the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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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웅 ( Sang Ung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6-183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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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는 개혁교의학과 개혁파 윤리학이라는 대작을 통해 최고의 개혁신학자 군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신학은 방대하고, 난해하여 전문적인 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여겨지고, 목회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에게는 기피 대상이 되는 감이 있다. 하지만 바빙크는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를 위해 신학을 했던 신학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본고에서 그와 같은 교회의 신학자로서 바빙크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먼저 배경을 제시했고, 이어서 1883년에 행한 그의 깜쁜 신학교 교수 취임 연설문을 분석 개관해 보았다. 28세의 바빙크는 짧은 취임 연설문 속에서 개혁신학의 원리, 대상 그리고 목적에 대해 잘 서술해 주고 있다. 19세기 자유주의적이고, 자연과학주의적인 세계관에 맞서 바빙크는 성경 중심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이며, 교회 중심적인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가능함을 잘 보여주었다.


Generally speaking, nowadays, Herman Bavinck is well recognized as one of the best Reformed theologians because of his magnum opus Reformed Dogmas. Because his theology is vast and complicated, it is in the spotlight as an object of professional study, but tends to be ignored by general readers. But we must remember that Bavinck loved the church, and he was a theologian who did theology for the church. In this paper, we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Bavinck as a theologian for the reformed church. I first provided background, followed by an analysis and overview of his 1883 inaugural address for a seminary professor. In his brief inaugural address, the 28-year-old Bavinck does a good job of describing the principle, object, and purposes of Reformed theology. Confronting the liberal, naturalistic worldview of the 19th century, Bavinck demonstrated the potential of theology as a Biblecentered, God-centered, and church-centered science(wetensc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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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승성 ( Seung Sung Oh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4-218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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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주의(foundationalism)는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믿음이 존재하며, 지식은 자체적으로 정당화된 그 자명한 믿음에 기초하여 추론적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칼 바르트(Karl Barth)와 앨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의 사상 속에는 그러한 토대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토대주의는 지식이 이론에 의존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식론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인식론적 이분법을 은밀히 보여주는 토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신과 주체 사이에 성경을 두는 고든 스파이크만(Gordon Spykman)의 신학과 같은 후기 토대주의적인 신학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논문은 초월적인 토대주의자(transcendent foundationalist) 바르트나 내재적인 토대주의자(immanent foundationalist)인 슐라이어마허와는 달리 후기 토대주의적인 합리성(postfoundationalist rationality)에 근거하여 성경적 신 인식론을 정당화 하고자 한다.


According to foundationalism, there is an undubitablely self-justified belief, and knowledge is constructed from such an epistemological foundation inferentially. Karl Barth and Alvin Plantinga shows such foundational elements in their theology. But, such a foundationalism has no epistemological justification, because knowledge is theoryladen fundamentally. We should pay attention to postfoundationalist theologies such as the theology of Gordon Spykman which puts the Bible between God and subject in order to overcome the foundationalism that covertly asserts an epistemological dichotomy. Based upon the postfoundationalist rationality, this essay tries to justify an epistemology of God through the Bible, not through the objectivistic word of God(transcendent foundationalists like Barth) and the subjectivistic human experience(immanent foundationalists like Schleierm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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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형철 ( Hyung Chul Yoo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6-61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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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포스트휴머니즘의 대안적 인간론을 비판하고 기독교 신학의 답변을 제시함으로써 코로나 팬데믹 이후 회복될 교회와 세계를 위해 '참된 인간됨의 본질과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재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은 인간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세계관적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론자들은 과학기술이 전염병 상시화 시대의 돌파구라고 주장하며 코로나 팬데믹을 세계사적 전환의 '위대한 리셋'으로 삼자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론의 배후에는 '시간과 공간의 소멸'을 통해 인간의 생물학적 삶의 토대를 해체하고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통한 기술진화론적 재구성을 도모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이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물리적 세계에 거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생명을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클론 등의 기계와 융합을 통해 기계적 생명으로 진화시키려 한다. 포스트휴머니즘에게 시간과 공간과 몸은 인간의 확장을 방해하는 요소이고 영혼은 인간과 기계의 융합에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이 낯선 세계관은 인간을 메커니즘으로 보고 인간의 영혼을 알고리즘으로 이해하며, 인간의 삶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통해서 연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우리 시대가 빚은 기술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이자 반기독교적 우상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은 초월적 준거점인 창조주 하나님께 인간의 본질과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시간과 공간, 생물학적 몸, 그리고 물리적 세계는 인간이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조건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빛이 반영되고 비춰야 하는 곳은 바로 시간과 공간과 관계라는 언약적 질서이다. 인간다운 삶은 시간 속에서 실현되고, 공간을 오가며 맺는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과 세계와 맺는 삼중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인간(homo relationis) 이다. 시간과 공간의 순례자(homo viator )로서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 시간과 하나님 나라를 산다. 구속의 시간과 거룩한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人間)을 하나님은 소멸시키지 않고 구속하실 것이다.
결론적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의 허망한 세계관에 맞서, 기독교 신학은 시간과 공간과 관계의 장(場)이 참된 인간됨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적 질서로서 환원 불가능한 조건임을 힘주어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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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찬호 ( Chan Ho Park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2-92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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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생태적 위기의 원인이 중세 기독교 신학이라는 린 화이트의 주장은 진위를 떠나 많은 논란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생태위기 극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책무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생태적 위기의 원인이 중세 기독교 신학에 있다는 화이트의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 방법으로 검토하고 화이트의 주장이 다소 과장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첫째는 구약신학에서의 반론인데, 창 1-2장의 주석학적 결론은 기독교 창조론이 자연에 대한 훼손을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사와 관련된 반론인데, 기독교 신학이 현대 자연과학의 출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와 관련이 있다. 사실 기독교 서구에서 자연과학이 등장했지만, 자연과학의 출현이라는 거대한 인류학적 사건에서 기독교 창조의 교리가 전적으로 그 공로를 차지할 수는 없다. 서양에서 자연과학의 출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에 한 눈에 정리되지 않는다. 셋째, 기독교 창조론이 생태적 위기를 조성한 것이 아니라 서구에서 기독교 창조 교리가 사라지면서 오늘의 생태적 위기가 발생했다는 반론이다. 이것은 최근에 판넨베르크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상의 세 가지 논의들은 화이트의 주장이 무모함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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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웅 ( Sang Ung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4-122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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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전의 한국 장로교회는 하나의 교단이었고, 하나의 공인된 신학교인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가지고 있었다. 평양 장로회신학교는 1901년에 개교하여 1939년에 무기한 휴교하기까지 800명 이상의 한국인 목회자 후보생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신학교는 네 개의 장로교선교가 협력하여 운영했고, 교수들도 주로 선교사 교수들이었다. 따라서 한국 목회자들은 선교사 교수들의 신학과 신앙을 그대로 배우고 전수받을 수밖에 없었다. 본고에서는 특별히 해방 이전 한국 장로교 목사들의 종말론을 논구해 보고자 하는데, 먼저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선교사 교수들의 종말론에 대해서 간략하게 검토하였는데(II), 그들 대부분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정설로 믿고 가르쳤다. 이어지는 III에서는 초대 한국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길선주 목사의 종말론을 검토해 보았고, IV에서는 신사 참배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주기 철 목사, 손양원 목사, 주남선 목사 등의 종말론을 확인해 보았다. 길선주와 달리 후자에 속한 목회자들은 종말론에 관련된 저술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설교나 심문 조서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V 절에서는 초기 박형룡 박사와 초기 박윤선 박사의 종말론을 논구해 보았다. 그들의 후기 입장이 역사적 전천년설이었던 것에 비하여, 초기의 종말론적인 언급은 극소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종말론을 택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규명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이러한 논구 과정을 통하여 선교사 교수들의 종말론이 그러하였듯이, 그들에게 배운 한국인 목회자들 대다수 역시도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따라갔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사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장로교나 개혁교회 신학과 부합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선교사 교수들의 영향으로 초기 한국 장로교회는 그러한 입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달리 다른 선택의 폭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따라 임박한 종말론을 강조하게 되므로 선교와 전도사역에 열정을 낼 수가 있었다거나 일제의 강압에 굴하지 아니하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점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칼빈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신학 체계이므로, 현재 장로교회나 개혁교회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대하여 바른 종말론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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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윤석 ( Yoon Seok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4-157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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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트렌트, 제2차 바티칸,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나타난 칭의와 성화 교리를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먼저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개혁신학의 교리와의 유사점은 다음과 같았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공덕은 하나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부르심으로, 믿음으로,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루어진다. 성화와 관련해서는 신자가 평생 추구해야 하며, 성도의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 하며, 십자가를 지는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야 하며, 계명을 준수해야 하며, 늘 회개해야 하며, 열매인 선행에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 가톨릭교회와 개혁신학의 교리의 현저한 차이도 있었다. 첫째, 칭의의 법정적 특징이다. 개혁신학은 철저히 의의 전가를 주장하는 법정성을 강조한다. 가톨릭교회는 의롭게 변하는 은총의 주입을 주장한다. 둘째, 칭의의 도구인에 대한 것이다. 개혁신학은 '오직 믿음'을, 가톨릭교회는 세례를 포함한 '성사'를 주장한다. 이것이 개혁신학과 가톨릭교회 간의 화해할 수 없는 결정적 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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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인규 ( In Kyu An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8-189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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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과 관련된 '성화론'에 대한 개혁주의 견해를 성경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고찰하는 것이다. 특히 '영적 성숙'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하나님의 은혜'와의 상호 상관성을 보다 면밀하게 규명해보고자 한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개혁주의 성화론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루터의 칭의론에서 출발하였다. 루터의 신학을 계승한 칼빈은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도 강조하였다. 그러나 칼빈과 루터는 공통적으로 '기독론적 관점'에서 칭의와 성화 교리를 정립하였다.
이러한 종교개혁자의 가르침을 계승한 개혁주의는 '기독론적 관점'에서 구원의 서정을 가르쳐왔다. 그 결과 개혁주의는 성화론에 있어서 '영적성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성령충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기독론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 교리를 중시하였다. 즉 개혁주의는 '성령체험'을 통한 성화를 가르치기 보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교리에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통해 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반면에 존 웨슬리와 오순절주의자는 성령 자체의 역사와 능력을 중시하면서, '성령체험'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다만 오순절계통의 교회는 '성령의 열매'보다는 '성령의 은사'만을 중시함으로써 성숙한 신자를 양육하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교회사적 흐름 속에서 개혁주의는 '영적 성숙'에 필요한 '성령 충만'의 중요성을 깨닫고, '성령체험'의 의의와 의미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박형룡은 '성령론적 관점'에서 성화론을 다룸으로써, '영적 성숙'과 관련된 '성령충만'의 의미를 시의적절하게 정립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늘의 개혁주의는 종교개혁자들의 5대 정신(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적극적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실제적인 '성령체험'의 의미를 체계화한 박형룡의 성령론을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개혁주의는 은사중심의 성령운동보다는 '성령 충만'을 통한 '영적 성숙'을 강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충만'은 구원받은 신자가 어린아이같은 미성숙한 단계에서 벗어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령충만'의 올바른 의미와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실제로 '성령충만'을 체험함으로써,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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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신열 ( Samuel Y Lee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간행물 : 조직신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90-224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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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려신학교의 설립자 한상동 (1901-1976)의 설교에 나타난 창조론에 대한 고찰을 시도했다. 이 시도에 앞서 먼저 한상동의 생애와 신학에 대해서 간략하게 평가했는데 그는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평양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출옥하여 목회활동에 전념하면서 고려신학교를 설립했으며 고려신학대학의 학장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그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목회 사역에 임하면서 행한 그의 설교를 평가함에 있어서 먼저 그의 목회사역과 기도가 그의 설교에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설교에 대한 양적 분석을 시도했는데 이는 구약 보다는 신약에 집중하는 설교이었으며 신약 중에는 특히 복음서를 중심으로 설교이었으므로 그의 설교는 복음 설교라기 불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설교를 교의학적 주제에 따라 분류해 보면, 개인 구원에 상당히 많은 양의 설교가 할애된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또한 교회와 성령에 대한 설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사실이 분석을 통해서 파악되었다. 이런 양적 분석과 더불어 그의 설교에 나타난 특징은 청중과의 일체감에 대한 강조, 짧지만 선포적인 문장의 활용, 그리고 대조적 용법을 지닌 문장의 활용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한상동의 설교는 내용적으로 살펴본다면 교리설교에 해당되는데 주로 다루어졌던 주제로는 하나님의 주권, 신앙 세계, 천국, 그리고 고난과 고독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그의 설교들은 창조론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삼는다는 사실이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는 창조라는 주제를 빈번하게 자신의 다른 주제의 설교의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그가 자신의 설교에서 창조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가 잘 드러난다. 이 논문에서는 창조와 말씀, 창조의 성격, 창조의 목적, 창조와 인간, 그리고 창조와 노동이라는 5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그의 설교에 나타난 창조론에 대해서 상세하게 고찰했다. 결론적으로 이 고찰을 통해서 그의 설교 제목에는 뚜렷하게 반영되지 않았지만, 한상동의 설교와 신학에 있어서 창조론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분명히 확인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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