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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연구 update

  •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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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5-3820
  • : 2714-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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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118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8
간행물 제목
120권0호(2022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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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全聖健 ( Jeon Sung-k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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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磻溪 柳馨遠의 실리론과 경세학의 연계성을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지금까지 반계의 학술경향은 주로 경세론의 측면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것은 公田制와 貢擧制를 핵심으로 전개되는 『磻溪隨錄』의 위상 때문이었다. 爲堂 鄭寅普가 반계를 실학의 鼻祖로 거론한 뒤, 반계의 경세학은 이른바 조선학운동과 조국근대화의 분위기 속에서 星湖 李瀷과 茶山 丁若鏞 등의 그것과 함께 연구의 최전선에서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반계의 경세학에서 보이는 典章制度의 철학적 토대는 實理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학문과 사상은 성리학의 학문적 풍토 속에서 숙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실리론은 일차적으로는 성리학의 맥락에서 독해되어야 하고, 그 실리론은 다시 경세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본 논문이 그의 실리론과 경세학을 함께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가 남긴 철학적 자료가 희소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리론과 경세학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반계는 理氣合一과 理氣不離의 [事]物을 전제하고, 그 전제 아래서 [사]물의 원리가 주재하고 있는 상태[理氣不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그의 경세학에 적용할 경우, 變法의 관점에서 현실의 積弊를 改正하고, 다시 常法의 이상을 추구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계에게 상법의 실현은 다시 變法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 聖賢의 善意志가 부여될 때 획득할 수 있게 된다.


This paper focuses on examining the connection between the practical principle theory and the modification theory of Yu Hyeong-weon who have been evaluated as the first practical scholar in Joseon Dynasty. Yu Hyeong-weon wrote the Bangye Essay(磻溪隨錄) which have been used so far in the so-called Joseon Studies Movement and the modernization of the country.
However, it can be said that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the national system which is composed of the land system and the tax system ans so on lies in the practical principle theory which is the principle of things conferred from heaven and should be primarily understood in the neo-confucianism.
In spite of that, Yu Hyeong-weon's practical principle theory have been studied in Qi Learning which has logic centered on energy, not principle. As a result, Yu Hyeong-weon's practical principle theory have a logic of unity between principle and energy and we can call it principle of things not principle of Qi.
Bangye Essay can be based on the practical principle theory and his modification theory can be also said that it was carried out by the practical principle theory. And the implementation of the system can be carried out by the good will of a Confucian s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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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姜榮珠 ( Kang Young-ju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7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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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화가 휴당 이계호(1754~1833)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1928년) 이래 현재까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포도그림 화가로 잘못 알려져 왔다. 이러한 오류는 오세창이 휴당의 자제글 중 乙酉(1825년)를 乙酉(1645년)로 오역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4년 使行 연구자 최강현에 의해 이계호의 한글 『연행록』(1793년)이 번역·출간되어 휴당 이계호가 조선 후기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오류가 수정되지 않고 있다. 이계호 생애에 대한 100년간의 오류는 오세창의 誤記 이후 후학자들이 이 기록을 고증없이 반복적으로 복사해 사용했던 실수도 있었지만 조선 중기화풍으로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야포도도〉를 이계호 작품으로 비정하면서 더욱 어긋났다. 이 작품에는 이계호가 제작했다는 단서가 없음에도 조선 중기 양식이라는 이유로 이계호 작품으로 둔갑했고 이후 백년동안 관서가 있는 이계호 眞品들과 어색하게 공존하면서 조선 포도화의 계보가 뒤틀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일성록』 등의 문헌 고증을 통해 그의 생애를 바로잡고 조선 포도화의 도상과 유형을 분석해 이계호 포도도의 성격과 특징을 도출해 조선 후기 대표적 포도화가로서의 위상을 정립시켰다. 즉 이계호는 포도도를 군자화로 인식하여 水墨 위주로 그렸던 전대의 화법을 계승하면서도 다자다손과 복락의 상징인 '萬代'를 뜻하는 '全樹式 포도도 병풍'의 제작방식을 애용하고 사실적 표현수법인 '葡萄汁' 기법을 유행시켜 '휴당화풍'을 진작시켰다. 특히 그의 기년작 3점은 모두 70대 작이며 유존작은 모두 능숙한 필치로 제작되어 대부분의 작품이 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계호의 찰방지인 공주와 지척인 가까운 전북지역의 포도도 화가인 최석환, 서병우, 강봉훈 등의 포도화와 휴당화풍과의 관련성도 살펴 보았다.


This study reviewed and corrected the life and paintings of HyuDang Lee Gye-ho(休堂李繼祜, 1754~1833), who was wrongly known as a representative grape painter in the mid-Joseon Dynasty, and examined the impact of Lee Gye-ho on later grape painting styles.
First, we investigated the cause of Lee Gye-ho's mistake as a grape painter of the mid-Joseon Period. The reason for this is that Oh Se-chang(吳世昌, 1864~1953) misinterpreted the poem of Hyudang(休堂) in Oh Se-chang's “keonyeokseohwajing(『槿域書畫徵』, 1928).” Yi Gye-ho had already gained a reputation for grapes in his 40s before 'the envoy's trip to Beijing, China' in 1794. He then served as Chalbang(察訪) of Gyeongsang-do and Chungcheong-do.
Next, the symbols and types of grape paintings were divided into the first and second half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differences and characteristics were analyzed in detail. In the fir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Joseon writers used grape painting as an object to cultivate their character. Since then, grape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ve been painted in pairs with squirrel, a symbol that gives birth to many sons and descendants and brings blessings, and the secular auspiciousness tends to be highlighted. The characteristic of grape paintings during this period is that in terms of form and detailed style, they are changed to Joseon style using grape juice in A single tree-style folding screen(全樹式屛風), which means “Mandae(萬代)”.
There are three works in his early 70s, all of which are in his late 70s, and all 40 works have been produced in skillful strokes. And modern painters in Gongju and grape painters in Jeollabuk-do(全北地域) all followed Lee Gye-ho's grape painting style. This may be due to the influence of Lee Gye-ho, who gained fame while working mainly in Gongju, Chungcheongna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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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曺圭百 ( Cho Kyu-bae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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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조 문인의 왕안석 및 그의 신법에 대한 평가를 전면적이고 종합적으로 고찰하였다. 부정적 평가가 主流이나, 그 장점도 함께 제시하여 실체를 파악하려는 균형적 안목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의 사대부 문인들은 왕안석 신법의 실패를 조선의 정치, 경제발전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했다. 그들은 新法의 순수한 취지 그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중국의 역사서나 朱熹의 왕안석에 대한 비평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이에 매몰되지 않고 왕안석 및 그의 신법에 대해서 조선의 君臣과 문인 자체의 감식안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 문인의 개혁의지도 이와 관련된다. 이에는 왕안석에 대한 평가와 해석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민생안정 추구, 救國의 열정 등의 정신적 가치가 들어있다.


Most of the literary people have a negative view of Wang Anshi and his New Policies. However, there are also occasional balancing views that present the strengths of Wang Anshi as well.
Moreover, they take advantage of the failure of Wang Anshi's New Policies as a good example to promote the political and economic development of Joseon. They did not doubt the pure purpose of the New Policies itself. However, Wang Anshi strictly evaluated the fact that the implementation of the New Policies was too hasty, that trial and error of the New Policies caused the collapse of the North Song Dynasty, failure in selecting a successor, inappropriate appointment of officials, and ignoring opinions and public opinion.
Writers of the Joseon were greatly influenced by Chinese and Joseon history books and criticism of Wang Anshi by Zhu Xi. However, they are making an effort to understand Wang Anshi's character and his New Policies with the insight of Joseon writers themselves. In particular, it grasps the spiritual values of Joseon writers' pursuit of stability for the people and the passion for national salvation, which are inherent in the evaluation and interpretation of Wang An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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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林茶英 ( Lim Da-yŏ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3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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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중문본 『德慧入門』과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인 『덕혜입문』을 이용하여 신지식, 신문물에 관한 한자어가 한국어에 유입되고 정착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덕혜입문』(1915)와 『덕혜입문』(1927)은 간행 시기가 불과 12년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두 판본을 비교하면 중문본의 동일 내용을 서로 다르게 번역한 예가 다수 나타난다. 두 판본 간 대역어의 차이는 한국어 어휘의 성립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두 판본에서 化學, 養氣, 輕氣, 炭氣, 淡氣, 原質(質), 軌道, 直徑, 流星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비교하고, 동시에 이중어사전 및 근대 한국 문헌 속 용례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이들 한자어가 한국어 어휘 체계 속에 수용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덕혜15』와 『덕혜27』이 급변하던 한국어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in which words related to new knowledge and new culture were introduced and settled in the Korean language around the 20th century using Chinese versions and Korean versions of THE GATE OF VIRTUE AND WISDOM. Although the two Korean versions were published with a time difference of only 12 years, comparing the contents of the two versions, there are many examples of different translations of the same Chinese words. The different translations of the same Chinese in the two editions can be seen as reflecting changes in the Korean lexical system. In this study, compares how Chinese words such as 化學, 養气, 輕气, 炭气, 淡气, 原質, 軌道, 直徑, 流星, etc. are translated differently in two editions, and then examined how these words were explained in bilingual dictionaries and how they were used in other literature.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the two Korean versions of THE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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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金賢珠 ( Kim Hyun-joo ) , 趙正允 ( Jo Jeong-yun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5-16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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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검열당국의 공세가 고조되던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기획, 실천된 사회주의 계열 대중출판운동을 검토한 것이다. 운동의 주체는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정기간행물인 『新生活』을 발행한 新生活社와 그 뒤를 이은 春秋閣書店과 高麗公司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숨겨야 했던 사회주의계열 출판운동의 존재조건 때문에 회의록 같은 내부 자료나 비망록, 일기 등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본고는 잡지의 「사고」, 「편집실에서」 등과 같은 주변부 텍스트나 일간신문의 「신간소개」, 광고 같은 2차 자료를 대상으로 '책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신생활사는 『노국혁명사와 레닌』(김명식 편역), 『엘렌의 功』(김동성 역), 『이리앳트 이야기』(노자영 역)를 발행했다. 춘추각서점은 신생활사가 앞서 발행한 3권을 발매한 한편, 『개인적 사상과 사회적 사상』(신종석 저), 『봄 잔디밧 위에』(조명희 저)를 발행했다. 고려공사는 신생활사와 춘추각서점이 발행한 5권을 발매한 동시에 『만세전』(염상섭 저), 『설음의 빗』(전무길 저)을 발행했다. 잡지 『신생활』의 편집 원칙인 사회주의사상 소개와 민중문예 연구는 신생활사, 춘추각서점, 고려공사의 단행본 출판의 원칙으로 이어졌다.


This article reviews the socialist-type mass publishing movement that was formed and implemented between 1922 and 1924, when the level of offensive by the censorship authorities was heightened. The main body of this movement is New Life Society(新生活社), which published 'New Life(新生活)', the first periodical to put socialism at the fore. And the Chunchugak Bookstore(春秋閣書店) and Goryeo Company(高麗公司) followed it. Due to the condition of existence of the socialist publishing movement, which had to hide the movements of 'people' as much as possible, there are no records of internal data such as meeting minutes, memorandums, diaries, etc. Therefore, this paper traces the movement path of 'books' in peripheral texts such as 'announcement' and 'in the editorial room' of magazines or secondary data such as 'new book introduction' and advertisements of daily newspapers. The New Life Society published 'Russian Revolutionary History and Lenin(露國革命史와 레닌)' translated and edited by KIM Myungsik, 'The exploits of Elaine(엘렌의 功)' translated by KIM Dongseong, 'Iliad story (이리앳트 니야기)' translated ROH Jayoung. The Chunchugak Bookstore has released three volumes published by New Life Society, while also publishing 'Personal Thoughts and Social Thoughts(個人的 思想과 社會的 思想)' written by SHIN Jongseok and 'On the spring lawn(봄잔디밧위에)' written by CHO Myeonghee. The Goryeo Company released five volumes published by the New Life Society and Chunchugak Bookstore, while also published 'Mansejeon(萬歲前)' written by YEOM Sangseob, 'Light of sorrow(설음의 빗)' written by JEON Mugil. Introduction to socialism and research on people's literature, which are the editorial principles of the magazine 'New Life', led to the principle of publishing books by the New Life Society, Chunchugak Bookstore, and Goryeo Company. In the cultural and political era of Joseon under Japanese colony, socialist mass publishing has been cut off, continued, and repeatedly revealed and hidden, expanding into various branches and l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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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金南奭 ( Kim Nam-seo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19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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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2월 극예술연구회는 제7회 정기 공연으로 안톤 체호프의 〈앵화원〉을 공연하였다. 일찍부터 '서구 근대극의 교과서'로 인정되어 오던 이 4막의 장막극은, 홍해성에 의해 연출되었다. 홍해성은 1929년까지 일본에서 〈앵화원〉의 공연에 배우로 출연한 바 있었고, 1930년에는 〈앵화원〉을 국내에서 연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앵화원〉에 대한 연구는 극예술연구회의 공연사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1934년 당시 공연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러한 연구상의 한계로 지금까지 〈앵화원〉 공연 정황은 막연하게 짐작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앵화원〉 공연 시 제1~4막의 무대를 복원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연극적·무대적·공연적 정황을 최대한 실증하고자 했다. 비록 제한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학문적 시도를 통해 극예술연구회의 〈앵화원〉의 실제 공연 상황과 무대디자인에 대해 진전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앵화원〉의 의미와 가치를 실질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연에 대한 재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In December 1934, Geugyesuryeonguhoe performed < Vishnyovyi sad > by Anton Chekhov as the 7th regular performance. This four-act curtain play which has been recognized as the 'textbook of modern Western drama', was directed by Hong Haeseong. Hong Haeseong had appeared as an actor in the performance of < Vishnyovyi sad > in Japan until 1929, and had directed < Vishnyovyi sad > in Cheoseon(Korea) in 1930. However, studies on < Vishnyovyi sad > were conducted mainly on the performance history of Geugyesuryeonguhoe, and as a result little was known about the state of the performance in 1934 until now. Due to the limitations of these studies, the circumstances of the performance of < Vishnyovyi sad > were only vaguely guessed until now. To overcome this limitation, this study tried to restore the stage of Acts 1 to 4 during the performance of < Vishnyovyi sad >, and to demonstrate theatrical, stage, and performance situation as much as possible. Although it is a limited clue, this academic attempt was able to lead to an advanced discussion about the actual performance situation and stage design of < Vishnyovyi sad > produced by Geugyesuryeonguhoe. In the future, it is believed that reconstruction of these performances is necessary to examine the meaning and value of < Vishnyovyi sad > prac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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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柳石桓 ( Yu Seok-hwa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9-23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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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시기의 지식문화와 문학시장을 주제로 한 연구의 네 번째 글이다. 제국의 통제주의는 식민지의 지식문화와 제국의 지식문화를 일원화했다. 공교롭게도 제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정신력의 총동원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무렵에 식민지 조선에서는 문학이 자기 영역을 넘어서 지식문화 전체를 포괄하는 문학중심주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제국의 통제주의는 저항은커녕 그 어디로도 탈주하지 못하도록 문학을 전방위적으로 포위했다. 무엇보다 시장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제거해 나갔던 일련의 조치는 문학의 다양성을 죽이고,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을 최소화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문학의 목소리가 '국민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극도로 단성화된 것도 그 때문이었고, 문학의 기능이 제국의 광적 정신주의를 신성화하며 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에만 골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록 문학시장이 제국의 통제주의에 의해 장악당했지만, 문학은 문학시장 주변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This article is the fourth article of a study on the topic of knowledge culture and literature marketplace during the colonial period. Imperial dirigisme unified the knowledge culture of the colony and the knowledge culture of the empire. Coincidentally, around the time when the power elites of the empire began to mobilize their mental powers in earnest, in colonial Joseon, literary centralism was formed in which literature went beyond its own domain and encompassed the entire knowledge culture. The imperial dirigisme encircled literature in all directions so that it could not escape from anywhere, let alone resistance. Above all, a series of measures that thoroughly removed the autonomy of the market absolutely contributed to killing the diversity of literature and minimizing unexpected emergencies.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voice of literature became extremely monotonous under the name of 'national literature', and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function of literature was devoted only to sanctifying and legitimizing the fanatical spiritualism of the empire. Although the literature market was dominated by imperial dirigisme, literature was preparing for a new future around the literature market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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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鄭雨澤 ( Jeong Woo-tae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7-27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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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국 내의 조선인들이 자신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아리랑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떤 변화와 관련하여 재창작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시기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직후까지 한정하였다. 기존의 문헌 자료를 근거로 2015년 6월 18일부터 25일까지 중국 연변 연길시, 용정시, 도문시, 안도현 일대에서 필자가 현지 답사하고 채록한 아리랑과 인터뷰 자료를 보충하였다.
중국의 조선인들은 '국적'과 '민족'이 길항하는 사이에서, 아리랑이라는 문화적 기제를 통해 민족을 상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성해 왔다. 중국 조선족 아리랑의 역사는 민족 정체성의 구성 및 정서체계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의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기원을 1920년대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인 「본조아리랑」에 두고, 이후 조선 민족의 이산과 유랑, 중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이라는 역사적 고난과 연결되는 아리랑 계열이다. 또 하나는 광복 이전에 화북지역 조선의용군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렸던 「기쁨의 아리랑」 계열로, 1945년 광복을 거쳐 1950년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중국 조선족의 주체적인 역량과 현실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
「기쁨의 아리랑」은 고향과 고국을 떠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랑하던 고난의 서사를 환기한다. 이런 고난과 죽음의 위협에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생의 의지와 미래로의 企投를 멈추지 않았고 혁명투쟁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탄식과 죽음의 고개'가 '기쁨과 승리의 아리랑 고개'로 전환된다. 이들이 「기쁨의 아리랑」을 부르며 꿈꾸었던 “새 나라”는 바로 “태극기”-“무궁화”-“삼천리”로 표상되는 조선이었다. 그런데 광복 후에 토지개혁으로 땅을 획득하고 이어 중화인민공화국 건설과 함께 「기쁨의 아리랑」은 '조선'을 연상시키는 4절을 노랫말에서 배제하게 된다.
또한, 중국에서 조선 민족이 독자적으로 새 터전을 이루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희망과 포부를 새로운 국면과 형식에 맞춰 「새 아리랑」으로 창작하여 공연하였다. 「기쁨의 아리랑」과 「새 아리랑」은 조선 민족이면서 중국 공민으로서의 주권과 주체성, 독자적 고유성이 편입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피눈물'과 연대, 혁명적 이상, 헌신적인 항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아리랑의 창작과 전승을 통해 '조선인'으로서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또한 '조선족'으로서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생성하며 '건설적'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려는 기획을 드러내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historically clarify the role of Arirang and how it has been changed and recreated while Koreans in China form their ethnic and cultural identity. Based on existing literature, this study also used Arirang and local interviews that the researcher obtained during the field investigation to Yanji, Longjing, and Antu in Yanbian from June 18th to 25th in 2015.
Although 'ethnicity' and 'nationality' were contradictory for Koreans in China, they imagined ethinicity and formed their own identity through Arirang which is the cultural mechanism. The history of China's ethnic-Koreans' Arirang can be divided into two classes. One originated from < Bonjo Arirang >, which was the theme song of the movie < Arirang >, and connected to historical sufferings like the separation and displacement of Korean ethnic groups, and their migration and settlement in China. The other one is < Arirang of Joy > which was created and sung by Korean Volunteers Army in the northern part of China before the independence of Korea. < Arirang of Joy > expresses the subjecthood of China's ethnic-Koreans and their sense of reality during the period from the independence of Korea in 1945 to the establishment of Yanbian Autonomous Prefecture in the 1950s.
< Arirang of Joy > reminds the narrative that they wandered around going through all the difficulties after leaving their hometown and homeland. Despite the sufferings and death threats, they did not lose the will to live and Entwurf towards the future, singing “We are going over Arirang Pass”. After they joined the revolutionary struggle, their 'Pass of moan and death' is changed to 'Arirang Pass of joy and victory'.
“The New World” that they dreamed of while singing < Arirang of Joy > is Joseon, which is symbolized by the national flag of Korea(Taegeukgi)-the national flower of Korea(Mugunghwa)-the whole land of Korea(three thousand li). However, verse 4 of < Arirang of Joy >, which reminds of 'Joseon', was excluded from the lyrics when they get the land after land reform and establishe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s Korean people independently made new livelihoods in China, they created and performed < New Arirang > expressing their hope and ambition for independent life. < Arirang of Joy > and < New Arirang > shows that their sovereignty and identity as ethic-Koreans and national-Chinese, and their own characteristic are not simply given to them, but achieved through Koreans' 'tears of blood', solidarity, revolutionary ideal, and dedicational struggle. By creating and handing down Arirang, they share historical experiences and memories as 'Koreans', and they try to create their own values as 'China's ethnic-Koreans' and establish themselves as 'constructive'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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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諸点淑 ( Je Jum-suk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1-26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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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는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개신교, 천주교, 불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SGI 회원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 분석하여 한국SGI 회원의 종교적 가치관과 생활 만족도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계 종교인 한국SGI의 종교적 특징과 한국 사회 속에서의 한국SGI 종교의 성장 요인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 조사에서 살펴본 결과, 한국SGI 회원의 종교를 갖는 시기는 기성종교와 비교했을 때 9세 이하와 20대~30대가 가장 많았다. 또한 한국SGI의 회원은 기성종교 대비 신앙을 하는 기간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를 믿게 된 계기는 스스로 필요해서와 다른 사람의 권유가 많았고, 종교를 믿는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기위해라는 특징을 보였다. 종교집회 참가 횟수, 개인적인 기도 또는 기원 횟수, 교리를 접하는 횟수도 기성종교에 비해 훨씬 많았다. 또한, 종교적 신앙심 정도나 종교의 힘으로 병을 나은 경험 역시 기성종교에 비해 높은 결과를 나타냈다. 생활 만족도 면에 있어서는 행복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고 인생의 의미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삶의 중요한 척도에서는 기성종교가 건강한 것을 꼽을 때 한국SGI는 가정생활이 즐거운 것을 꼽았다. 또한, 한국SGI 회원들은 기성종교에 비해 유교적 가치관에 얽매이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아닌 개방적 가치관을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혼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한국SGI 회원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와는 다른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SGI라는 종교와 삶이 매우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한국SGI 회원의 종교적 가치관과 생활 만족도 특징 역시 한국사회 속 한국SGI 성장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Korea SGI members' religious values and life satisfaction through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result of a survey of Korea Soka Gakkai International (Korea SGI) members based on data on Protestantism, Catholicism, and Buddhism surveyed by Gallup Korea. Through this, this study would approach the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Korea SGI, a Japanese religion and the growth factors of the Korea SGI religion in Korean society. As a result of this survey, compared to the established religions, most of the Korea SGI members came to have the religion when they were younger than nine and in their 20s to 30s. In addition, the Korea SGI members had faith longer than those of the established religions did. As for the momentum they came to believe in the religion was mostly because they needed to or by another person's propagation. As for the reason for believing in the religion, they wanted to be blessed or they would like to find the meaning of life. The number of participants in religious gatherings, the number of personal prayers or wish, and the number of encounters with the doctrine were much more than in the established religions. Also, they had higher religious beliefs or more experiences of healing by the religious power than in the established religions. In terms of life satisfaction, they felt great happiness and attached importance to the meaning of life as well. As for the important measure of life, the members of the established religions picked health while those of Korea SGI picked happy family life. In addition, it turned out that the Korea SGI members had open values, instead of conservative ones tied up to Confucian values compared to the established religions. Through the above results, the Korea SGI members had religious values different from Protestantism, Catholicism, and Buddhism while they kept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religion of Korea SGI. It is judged that the members' religious values and life satisfaction are also considered one of the growth factors of Korea SGI in Kore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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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李承姬 ( Lee Seung-he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3-30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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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은 좀처럼 사회적 흔적을 드러내지 않아 형이상학적인 관심사로 표면화되지만, 그 뿌리는 지극히 정치적인 데 있다. 부조리극의 세계사적 추이는 부조리극이 냉전과 필연적 관계에 있으며 그 스펙트럼이 꽤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4·19혁명의 시간과 겹쳐 새로운 세대가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한국의 부조리극도 보편성의 환상을 거둬내면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검열체제는 충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냉전적 질서를 권력의 토대로 삼아 재구축된 검열체제에서, 비로소 부조리극의 '필요'는 발견된다. 부조리극이 확실성의 세계에 불신을 표명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권력이 주도한 지배 이데올로기 또는 산업화·근대화(발전주의) 담론에 대한 불신과 거부를 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과정에 게재되었을 정치성은 표백되고 추상성은 종종 현대성으로 환원되어 그 사회성·역사성이 휘발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한국 부조리극의 전부는 아니다. 검열로 인해 아예 관객에게 공개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1975년 공연이 불허된 〈어느 조각가와 탐정〉과 〈달리는 바보들〉이 그런 사례다. 이 연극들은 검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 아니라 검열의 현실성을 패러디한다. 의식적인 꾸밈이 없이 부조리한 방식으로 삶의 감각이 전달되고, '검열의 눈'에 갇힌 폐소공포증이나 가스라이팅에서 오는 무력감은 검열의 메커니즘을 단번에 이해하도록 한다. 부조리극의 검열 패러디는 검열의 압력을 높이던 시절에 관한 정치적 우화로서 새롭게 연극사에 등재해야 할 자산이다.


Absurd plays rarely reveal social traces, so they surface as metaphysical interests, but its roots are extremely political. The trend in the world history of absurd plays show that absurd plays have an inevitable relationship with the Cold War and their spectrum is quite wide. Korea's absurd plays, which coincided with the time of the April 19 Revolution and began to introduce a new generation in earnest, can also be found if the illusion of universality is recovered. In particular, the censorship system needs to be fully emphasized. In the censorship system reconstructed using the Cold War order as the basis of power, the 'necessity' of irrational theater is finally found. If the absurd play is to express distrust in the world of certainty, it is to express distrust and rejection of the ruling ideology led by power or the discourse of industrialization and modernization (developmentism). Although the political nature that would have been inserted in this process is bleached and the abstraction is often reduced to modernity, its sociality and historicity are volatilized, but this is not the whole of Korean absurd play. Due to censorship, it may not be revealed to the audience at all. A Sculptor and a Detective(어느 조각가와 탐정) and Running Fools(달 리는 바보들), which were banned from performing in 1975, are such examples. These plays do not depict censorship realistically, but parody the reality of censorship. The sense of life is conveyed in an absurd way without conscious decoration, and the helplessness from claustrophobia or gaslighting trapped in the “eye of censorship” allows us to understand the mechanism of censorship at once. The censorship parody of absurd plays is a political allegory about the time when the pressure of censorship was increased, and is an asset that should be newly listed in the theater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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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徐胤晶 ( Seo Yoonjung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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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통 서화의 영역에서 여성 書畵家 활동의 비가시성(invisibility)과 서화의 제찬과 제시에 보이는 한글의 비가시성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그 자체로 젠더화된 체계인 '書畵'의 영역과 가부장적 한문중심의 유교사회에서 문화와 예술의 생산과 소비에 성(性)의 개념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자와 한문이 갖는 젠더적 속성이 이미지와 결합될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작품의 제작과 감상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조선시대 서화의 후원과 제작과 감상, 수장 전반에 걸쳐 젠더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 논고는 여성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이라는 상층 남성 중심의 신분질서와 젠더적 질서로 위계화된 사회에서 하위주체의 여성이 회화와 문자(한글)를 통해 남성화된 서화의 세계―한문의 영역으로 소통되는―에 어떻게 침범하며 동화 또는 소외되는 지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조선시대 서화 영역의 젠더성과 여성의 서화 활동을 젠더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조선시대 시각문화 속에서 한글 텍스트의 출현과 한글 사용을 둘러 싼 젠더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젠더 연구가 조선시대 미술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개념적으로 또는 방법론적으로 어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시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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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劉宰賓 ( Yoo Jae-bi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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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倫行實圖』의 판화는 조선 후기 이 책의 출판이 가졌던 사회적 의미와 당시에 노출되어 있던 언어적·시각적 환경, 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오륜행실도』는 조선 전기부터 이어온 왕실 윤리서의 전통을 이어 받아 현재의 언어와 그림으로 새롭게 꾸미고자 하는 의욕을 보여준다. 일명 '전통의 현재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기조는 『오륜행실도』의 판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오륜행실도』의 판화는 『三綱行實圖』의 여러 다시점 중의 한 장면을 선택하여 확대하였는데, 그 선택은 철저히 삼강도 판화가 처음 지정한 '제목'에 부합하는가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보수적으로 삼강행실도의 제목을 따르다보니 때로는 사건의 본말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열녀의 행위만이 박제된 도상을 양산하는 경향이 생겼다.
『오륜행실도』는 한편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통속적 회화의 화풍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명말의 소설 삽화는 당시 중국의 열녀전과 미인도에 넓게 영향을 주었다. 『오륜행실도』는 그 일부는 취하고 일부는 절제하였다. 인물의 제스처나 표정을 미화시키고, 화려한 궁궐과 정원의 표현은 취했다. 여성이 혼자 외딴 규방에 앉아 있는 구도를 빌리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 명말 소설 삽화풍으로 그려진 『汪氏增輯列女傳』에서 보이는 것처럼 남편에 대한 사랑이나 죽음을 앞둔 갈등 같은 감정은 취하지 않았다. 에로틱한 신체 노출이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도 절제하였다.
이처럼 『오륜행실도』는 조선 전기의 행실도 전통을 계승하고, 통속적 회화를 선택적으로 취사함으로써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열녀도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윤리서로서 『오륜행실도』의 기능에 얼마나 적합하였을까. 『오륜행실도』는 여성의 갈등과 사건의 본말을 생략하고 '烈'을 증명하는 죽음의 행실만을 중심에 두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와 규방 공간은 죽음을 미화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관음증적인 시각을 허용하였다. 『오륜행실도』가 얼마나 여성 교화에 효력을 발휘하였는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다만 당시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관음의 이중적 억압을 반영하기는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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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高蓮姬 ( Kho Youen-he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10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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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인이 讀書하는 모습을 그린 조선시대의 회화작품은 尹德熙의 〈책 읽는 여인〉이 有一하다. 지금까지 이 그림은 조선 여인의 독서 실상을 그린 風俗畵의 하나로 간주되면서 이 그림의 배경이 中國的이란 점이 간과되고 있었다. 이 논의는 조선의 상류층 여인이 중국 남성의 정원에 앉아서 독서하는 장면, 즉 이 그림이 특이하게 보여주는 이질 조합들에 대하여 젠더적 관점의 해석을 제안하였다. 즉 조선시대 남성들이 여성의 독서에 요구한 제한적 독서내용 및 독서태도 혹은 폄하적 태도와 아울러 조선의 남성학자들이 중국 명청대의 미인독서도를 바라볼 때 마치 스스로 중국 남성학자 시선을 상상하고자 하였던 욕망적 태도 및 중국여성을 바라보는 동경의 시각 등이 가지는 다각적 二重性을 분석하고, 이러한 이중적 태도가 빚은 결과로 〈책 읽는 여인〉이 제작되었음을 논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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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李姃恩 ( Lee Junge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3-14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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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일본 내 경직도가 중국으로부터 수용되어 변용되는 과정에서 시기별로 형태와 매체, 내용 면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제작과 소비를 둘러싼 복합적인 층위를 젠더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耕織圖는 耕圖(耕作)와 蠶圖(蠶織), 즉, 농업과 잠업과 관련된 일련의 작업 과정, 기술, 풍속에 대해 묘사한 그림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중국 송대 제작된 이래, 그 내용이 지니는 감계적이고 교훈적인 의미와 더불어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제작된 대표적 화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일본에는 중국 남송대 제작된 경직도와 누숙(樓璹, 1090~1162) 경직도의 명대 간행본, 청대 康熙帝의 어제 경직도 등이 유입되었고,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를 거치며, 경직도 관련 그림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1676년에는 가노 에이노(狩野永納, 1631~1697)에 의해 중국 간행본을 토대로 한 和刻本 『경직도』가 제작되었고, 이후 耕作을 담은 耕圖 장면은 17~18세기 사계경작도로 대형의 병풍이나 후스마(襖)에 그려진다. 한편, 蠶圖는 다치바나 모리쿠리(橘守国, 1679~ 1748)의 『絵本直指宝』권1에 일부 장면이 변용된 이래, 18세기 말부터 우키요에의 주제로 蠶圖와 織圖가 미인도와 결합하여 등장한다. 이는 경작과 잠직이 단순히 각각 남성과 여성의 일과 직무, 교양과 덕목이라는 성 역할에 따른 구조를 넘어서, 그림의 제작과 소비를 둘러싸고, 공적 사적 영역이라는 사용 공간의 문제, 漢과 和라는 중국(他國)과 일본(自國)의 문제, 수묵/병풍과 다채/우키요에, 雅와 俗이라는 화풍과 매체의 문제, 그리고 여성의 노동을 둘러싼 경제적 가치와 계층의 문제와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본고는 일본 내 경직도 관련 회화에서 나타나는 도상의 계승과 변용 과정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작도와 잠직도 사이의 층위의 분화를 젠더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경직도라는 그림의 구체적 사용 양산뿐만 아니라, 당시 양잠업과 여성의 노동을 둘러싼 경제적 가치와 인식이 어떻게 그림 속에 표현되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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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金素延 ( Kim So-ye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43-16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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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금강산을 '외금강=남성, 남성적, 남성미', '내금강=여성, 여성적, 여성미'로 인식하는 경향성에 주목하여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의 형성과정을 추적하고, 상대적으로 외금강에 부여된 우월한 위상이 근대기 이후의 시각문화와도 긴밀하게 연동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젠더(Gender)는 금강산의 경관을 채택하고 경험하는 렌즈로 작용하여, 근대적이고 장대한 암석미의 외금강, 과거와 전설이 머물러 있고 얌전한 계곡미를 갖춘 내금강이라는 차별적인 표상을 구축하는 도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강산에 사회적인 성별, 즉 젠더의 개념이 도입되는 시점은 총독부의 주관 아래 외금강 중심의 금강산 관광을 도모한 1910년대 중반 이후로 판단된다. 암석과 나무의 많고 적음, 바위의 빛깔과 모양은 외산과 내산을 비교하는 지표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금강산 개발의 진행과정에서 젠더의 보편적 인식에 부합하는 경관들의 특징은 더욱 부각되었다. 이에 외금강은 산악미가 빼어나고, 내금강은 계곡미가 아름답다는 심미적 기준이 등장하고, 외금강의 산악미를 대변하는 만물상, 내금강의 계곡미를 드러내는 만폭동이 대표 경관으로 부상한다.
금강산 권역을 차별적으로 인식하면서 시각문화와 교차하는 지점 역시 포착되는데, 사진엽서, 사진첩, 안내서와 같은 시각물은 물론 회화 작품에서도 외금강 이미지는 우선적으로 선별된다. 근대기 금강산 여행안내서는 외금강을 먼저 방문하고 내금강으로 향하는 반전된 여정을 順路로 제안하기도 했다. 따라서 각 폭 구성의 금강산도 병풍에서는 금강산 명소 구성의 오랜 전통과 근대인들에게 익숙한 금강산 여행의 새로운 면모들이 대립하는 양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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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金芝慧 ( Kim Ji-hy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19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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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가 표방한 이념들로 조합된 근대의 구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전까지 소녀, 즉 오늘날의 정의로 '어린 여성'을 그린 이미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소녀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소녀상은 근대성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근대기 새롭게 부상한 소녀는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변화하는 신체로서 발견되고 조형되었다. 소녀는 계몽과 근대화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민족구성원이자 일제에 의해 황국신민의 일원으로 포섭되었으며, 근대 상품의 이상적 소비자로서 발견되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화되었다. 근대기 소녀의 개념이 소년에 기대어 기생적으로 정립되었듯이 근대 소녀상 역시 제국과 남성의 시선과 규율에 의해 제조되며 경계에 있는 여성들에 의해 강화되는 방식으로 조형되어왔다. 소녀상은 근대적 여성교육과 가족제도 안의 소녀라는 범주 속에서 작가와 제국, 사회의 시선과 의도가 적극적으로 작용될 수 있는 소재였으며, 그들의 취향에 맞춰 제조할 수 있는 순응적이고 이상적인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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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金桂園 ( Kim Gye-wo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5-23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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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부채를 든 여인상을 사례로 삼아, 부채라는 사물이 어떻게 근대기 여성의 표상과 의미작용에 관여할 수 있는지 고찰한다. 근대기 여성 인물화의 부상 속에서 부채는 남성이 아닌 여성의 소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논문은 20세기 초중반 부채 사용자의 젠더 변화에 착목하여, 사물의 사회적이며 '젠더적'인 삶의 양식이 어떻게 근대기 여성의 시각적 재현이나 여성성의 표현과 교차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1) 20세기 초반에서 해방 이전까지 주요 전시에 출품된 회화 작품과 잡지 표지화를 중심으로 부채를 든 여성상의 사례를 찾아보고 2) 태극선의 대중화와 여성 인물화 속 태극선 사이의 연관성을 탐색하며 3) 작품 속 접선을 든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 접선의 사회적 의미 변화와 여성의 표상 방식이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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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彭潛心 ( Peng Qian-xin ) , 張慶姬 ( Jang Kyung-hee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5-26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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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은 오랜 기간 교섭하면서 양국 간의 나전칠기 기술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한중 학계의 연구는 正史類나 개인 문집류 등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되, 양국 학자들은 주로 自國의 자료에서 출발하여 自國에 유리한 視覺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이 다분하였다. 그러나 나전칠기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심도 있게 연구하려면 양국 문헌을 함께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고는 중국과 한국의 문헌을 동시에 참고하였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중국에서 나전의 기원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생하였다. 고고학적으로는 夏대에 조개에 옻칠이 사용된 유물이 발굴되어 그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문헌적으로는 周대에 기재된 '蜃器'가 조개를 사용한 기물로서 나전 장식의 전신이었다.
둘째, 唐대에는 문헌에 '鈿鏡'·'鈿貝鏡'·'寶鈿鏡'·'寶鈿帶' 등과 같은 기물명들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기록에 보이는 '寶鈿'은 조개를 비롯한 고급 재료를 사용한 기물로서 나전칠기로 발전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
셋째, 宋元대에는 '螺鈿'이라는 단어가 여러 저술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나전칠기는 한국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보급되었으며 시장에서 상품으로까지 판매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의 고대부터 원대까지의 고문헌 기록을 통해 나전칠기의 재료인 조개에 칠을 사용한 기물과 관련된 단어나 기술적 내용의 발전과정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나전칠기의 기원을 밝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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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南在澈 ( Nam Jae-cheol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3-311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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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낙화암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三千宮女'라는 표현의 근원을 찾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역대 문헌을 바탕으로 三千宮女의 개념과 유래를 검토하고, 이어 唐詩에 나타난 三千宮女의 문학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三千宮女는 원래 구체적인 궁녀의 수효를 나타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막연히 많은 궁녀의 수효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三千宮女가 하나의 전형화된 표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은 중국의 唐代 한시를 통해서이다.
唐代 한시에 나타난 三千宮女의 문학적 의미는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화려한 궁궐에 대한 代喩 또는 아름다운 자연의 擬人化 대상이다. 둘째, 총애를 받지 못하여 소외된 수많은 궁녀에 대한 정형화된 명칭이다. 셋째, 宮外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宮內 신하들에 대한 寓意의 대상이다. 넷째, 사치와 향락에 빠져 망국을 초래한 군왕에 대한 代喩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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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羅榮勳 ( Na Young-hun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행물 : 대동문화연구 11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13-34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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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이정회의 인간관계를 친족, 동향, 동학, 동관으로 분류하고 특히 '동관'의 인적 교류 양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영남이라는 '동향', 퇴계와 학봉이라는 '동학'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있던 이정회에게 이를 제외한 인맥은 자연히 '동관'을 중심으로 파생될 수밖에 없었다. 이정회는 통례원 겸인의 시절과 사헌부 감찰 시절에는 계회도를 남겨서 이 두 시기 동관의 인연을 별도로 추적할 수 있다.
이정회는 통례원 겸인의 당시 1586년과 1589년 두 차례 계회도를 남겼다. 『송간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교유양상을 분석한 결과 이정회는 통례원 '동관'들과 활발한 사적 모임을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계회도 연구에서 지적되었듯이 '同官契'가 결속과 친목의 장치로서 실질적으로 기능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반면, 이정회는 사헌부 재직 기간에도 동일하게 두 차례의 계회도를 남겼다. 그러나 『송간일기』를 분석하면 이들 상호간의 결속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정회는 동관인 사헌부 감찰 24명과, 6개월의 기간 동안 사적인 모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사적인 모임은커녕 상호간에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기록조차 거의 없다. 이는 앞선 통례원 관원들의 상호간 교류에서 보인 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이 시기 일기의 기록이 소홀한 것도 아니다. 이정회는 이 기간 친족, 동향, 동학들을 꾸준히 만났다. 심지어, 이 기간 사헌부 감찰 동관보다 직전 동료인 통례원 관원들을 더 자주 만났다. 이런 점은 이정회의 사헌부 결속과 연대는 매우 낮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기에 충분하다.
즉, 동일한 '同官契會'라 하더라도 개인의 참여의사나 혹은 관서의 성격에 따라 계회의 결속 정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즉, '동관계회'가 존재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들이 당연히 결속했거나 친목을 다졌다고 전제하는 것은 무리이다. 본 논문의 분석 결과와 같이 향후의 '동관계회' 분석에는 각 개별 계회도와 관원들의 실제 모임을 세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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