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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mal of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 : 한국교회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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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598-5229
  • : 2713-9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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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61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8
간행물 제목
62권0호(2022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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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나현기 ( Na Hyun Kee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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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요안네스 카시아누스의 수도 문헌에 나타난 영적 성장 이해가 지니는 특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동안 카시아누스의 영성 신학 연구는 에바그리오스를 포함한 오리게네스 전통과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차이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갈리아 수도사들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쓰인 『제도집』과 『담화집』의 배경과 두 문헌의 전체적인 구조를 고려하면서 영적 성장 이해의 특징을 분석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배경과 전체적인 주제와 구조적인 흐름을 고려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카시아누스는 에바그리오스처럼 실천적 단계에서 관상적 단계로 나아가는 성장 과정을 제시하지만, 실천적 단계에서 8가지 악과 싸우는 영적 전투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8가지 악에 대한 이론이 모든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실천적 단계의 목표인 “마음의 청결”을 지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시편 70편 1절의 반복적인 암송을 “쉼 없는 기도”라 칭하고 성서 읽기와 기도를 통합해서 일상의 수도 훈련에 적용했다. 카시아누스의 이런 영적 성장 이해는 갈리아 수도원에서 목격한 욕망에 취약한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This study presents the characteristics of spiritual progress, as reflected in the monastic literature of John Cassian. Many previous scholars have focused on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Cassian's version of spiritual theology and Evagrian Origenism. However, it is difficult to find a study of Cassian's spiritual progress that places it in the Gallic monastic context, incorporates it as a significant background for De institutis and Collationes patrum, or shows how it informs the overall structure of these two writings. When his criticisms of Gallic monks and the whole structure of the documents are accounted for, the following features of Cassian's understanding of spiritual progress can be observed: he does not assert that monastic life is necessarily progressive and successive (moving from the practical stage to the contemplative stage) as it is considered in Evagrian spiritual theology. The practical stage―improving one's virtues and removing the vitia―is thought to be much more important than the contemplative stage. The origins and interrelationships of the eight vitia are clarified. Cassian never states that his theory of the vitia is universally relevant. The goal of the practical stage, puritas cordis, cannot be continuously upheld. Through the repeated recitation of Psalm 70:1 that he terms “unceasing prayer,” Bible reading and prayer are integrated and applied to ascetic training. Cassian's understanding of spiritual progress is based on his deep reflections on the human frailty that he witnessed in the Gallic mona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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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성진 ( Lee Seong Jin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9-6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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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1560)에 나타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사상과 정책을 탐구하고 있다. 『제1치리서』는 16세기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의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며 다양한 영역에서 개혁 사상에 기반을 둔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다시 복음의 정신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사상과 정책이었다. 그러한 정책 중에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사상과 정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포함한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얻고자 한다.
필자는 먼저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의 16세기 역사적 배경을 개관할 것이다. 당시의 사회적 약자들이 살아온 역사적 상황을 아는 것은 그들에 대한 배려 사상과 정책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제1치리서』의 저술 배경과 구조를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본문에 나타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언급, 그리고 그들에 대한 배려 사상과 정책을 살펴볼 것이다. 이후 그러한 내용을 종합하며 그 의미를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가 더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신학적인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explores the ideas and policies of consideration for the socially disadvantaged shown in The First Book of Discipline in Scotland (1560). This work formed the basis for the political system put in practice in the Scottish Reformed Church in the 16th century and featured policies in various areas based on reformed ideas. These ideas and policies were intended to reform the chaotic world and protect the spirit of the gospel. Among such policies were ones intended to promote consideration for the socially underprivileged. This paper focuses on this part to obtain theological insight to aid the development of Korean churches today in terms of their practice and as they move forward with their love for their neighbors, including the socially disadvantaged.
First, we present an overview of the 16th-century historical background to The First Book of Discipline in Scotland. Knowledge of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reforms aimed at the socially disadvantaged at that time must be the basis for understanding the ideas and policies of consideration for them. Furthermore, we examine the immediate background and structure of the policies. Next, we take account of the references to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 the text, as well as the ideas and policies developed to consider them directly. Following this, these contents will be synthesized, and their meaning will be considered. Hopefully, this study can pave the way for Korean churches as they fulfill their responsibilities to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 our mid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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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성덕 ( Lee Sung Duk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9-9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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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오늘날 한국 기독교회에서 보이는 '가나안 성도' 현상을 서구 기독교회가 세속화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이미 경험했던 현상으로 파악하고, 18세기 세속화와 계몽주의 시대 한 가운데서 이러한 문제를 '사적종교' 또는 '사적신학'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한 요한 살로모 제믈러(Johann Salomo Semler)의 신학적 입장을 고찰하는 함으로써 오늘날 '가나안 성도' 현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제믈러는 세속화와 계몽주의를 통해 기존의 제도적 국가적 종교의 영향력이 상실되고 종교가 사적영역(private sphere)으로 주변화 되는 현상을 받아들이며, 여기에 부정적인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자유를 위한 해방적인 측면도 있음을 긍정한다. 그의 '사적종교' 혹은 '사적신학'은 단순히 시대의 반영의 산물 일뿐 아니라, 성서적 신학적 숙고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신앙인 각자의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야말로 제믈러가 주장하는 '사적종교'의 강력한 근거이다. 제믈러가 '사적종교'의 정당성을 주장했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성과 공공성을 도외시하는 않는다. 또한 그는 제도적 교회가 개인의 신앙의 성숙을 의미하는 '사적종교'를 위한 안내자나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할 때에 제도의 긍정적인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concept of private religion or private theology developed by the 18th-century German Enlightenment theologian Johann Salomo Semler and its application in the context of today's Korean Christianity, which is characterized by the phenomenon of the Canaan Saints.
Semler accepts that due to secularization and enlightenment, religion has become marginalized to the private sphere, with not only negative aspects but liberating ones as well, namely, for conscience and freedom. His idea of private religion or private theology is not only a reflection of the times, but also a product of biblical theological deliberation.
Furthermore, Martin Luther's Reformation, which advocated the freedom of conscience and the freedom of faith for each believer, forms the foundation for Semler's claims regarding private religion or private theology. It is noteworthy that Semler's ideas do not neglect the social responsibility and public stance of the Christian faith. In addition, Semler does not deny the positive role of the institutional church when it serves as a guide or educator for private religion, referring to the mature development of an individual's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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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진호 ( Kwon Jin Ho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7-12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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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33년 독일 '루터의 날'을 분석하여 교회사적 의의를 얻는데 목표가 있다. 1933년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해인 동시에 루터의 탄생 450주년 기념이 되는 해였다. 이러한 기회를 교회와 정치는 놓치지 않고 루터와 히틀러를 연결하려고 시도하였다. 정권을 잡은 나치당은 지배권의 공고화를 위해 교회의 도움이 필요했고, 반면 이러한 정치적 변혁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독일 그리스도인'은 새 정권에 기대어 '루터의 날' 행사를 치러 개신교 교회들을 통합시키며 새롭게 하고 민족과 교회가 하나되는 민족선교의 수단이 되도록 하는 의도를 가졌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웅대한 개신교 민족축제의 날로 만들고 개신교회를 단결시키려는 의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길을 잃고 잘못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This study investigates Luther Day 1933 in Germany to determine its historical significance. Hitler's seizure of power occurred in the same year as Martin Luther's 450th birthday. The political establishment and the church did not miss the opportunity to emphasize the close entanglement between Luther and Hitler. To consolidate its power, the Nazi Party required the help of the church, while German Christians who wanted to benefit from this political transformation to found an imperial church (DEK) under their leadership organized Luther Day as a day of unification, using it for popular missionary work. Nevertheless German Christians' intention to create Luther Day as a grand Protestant festival and uniting Protestant churches was shipwrecked. The 1933 Luther Day, entangling Luther and Hitler with the intention of boosting the nation to, was a peak of appropriation and political instrumentalization in chur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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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훈 ( Song Hoon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9-15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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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땅에 들어온 미 북감리교회 선교는 순회전도와 기관선교를 병행하며 조선의 근대화와 복음전파에 매진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으로 정동교회와 같은 개신교회의 설립과 이화학당, 배재학당 등을 설립하였고, 보구여관과 같은 여성들을 위한 의료기관을 설립하여 조선근대화와 복음화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는 1910년을 거치면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의 배경에는 기관선교의 강조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순회전도 방식의 한계가 존재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현지인 평신도 리더십이 확고하게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순회전도는 공동체의 결속력의 약화와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또한 현지에서의 재정이 확보되지 않는 한 선교 파송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어 재정확보의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1910년대 북감리교회 선교부의 위기는 조선에 들어온 젊은 감리교 목사 빅터 채핀의 힘겨웠던 삶에 투영되며 세계선교의 유례없는 성공으로 평가된 조선선교의 뼈아픈 교훈을 남겨주게 되었다.


The missions sent by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had a significant impact on of Korea. They established modern facilities for education and medical care for the use of the Korean people, along with the proselytization of the passionate circuit preachers. They founded the Ewha School for Girls, Paichai School for Boys, and Bogu Hospital for Women, paving the way for the development and modernization of Korea. However, in 1910, when Japan annexed Korea by force, the Methodist missions in Korea went into decline due to their emphasis on missions implemented through institutions such as schools and hospitals and their misguided circuit evangelism in Korean. Without concrete lay leadership, local Protestant communities founded in Korea were quickly disbanded after the missionaries were no longer present. Moreover, without relevant income in the mission fields, the finances of missionary society deflated as support from the homeland decreased. Study of the life of Victor D. Chaffin, a young Methodist pastor in Korea, represents this crisis of MEC mission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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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선영 ( Suh Sun-young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7-18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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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0년대 함경남도 장로교회 여성들의 근대적 자아정체성을 정의하는 논문이다. '최영혜 외 103명'의 함경남도 장로교회 여성들이 청원한 '여성치리권'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실질적인 여성참정권 운동의 효시라 부를 수 있다. 여성은 일하되 잠잠했던 장로교회 안에서 1백 명 이상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모두를 놀라게 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행동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앞서가게 했는가? 최영혜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최영혜는 1933년에 연서를 작성한 104명과 1934년의 640명을 대표하여 이름을 드러냈고, 용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36년까지 관련글을 신문에 기고한 바 있다. 함경남도의 엘리트 교회여성들 역시 최영혜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1920년대에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따로 혹은 함께 독립운동, 여자기독교청년회 설립 및 활동, 사회주의 단체 활동, 여성 옹호 주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교회 밖에서 여성들의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따로 혹은 함께 활동하던 이들은 점차 교회의 여전도회로 모였고, 그 안에서 활동하며 오랜 시간 동안 독립적, 자율적, 주체적인 자아정체성을 다지며 근대적 개인으로 변모해갔다. 1933년에 진행된 '여성치리권 청원'은 그 열매였다. 청원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지키면서 자신의 몫을 감당했던 이들을 필자는 '교회의 신여성'이라고 정의하였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하여 잊혀졌던 함경남도 교회여성들의 면모와 최영혜라는 미지의 인물을 발굴하였고, 분류되지 않은 채 서술되었던 한국의 교회여성사에서 함경남도 장로교회 여성들을 분리하여 지역적인 서술을 시도하였다. 본 연구에서의 시도가 향후 우리나라 교회여성 연구에 적용되어 더 많은 교회여성의 진면목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This article explores modern self-identity as exhibited by Presbyterian churchwomen in South Hamgyong Province in the 1930s. The Women's Ruling Eldership that such a group petitioned for can be identified as the beginning of the women's suffrage movement in Korea in a broad sense. The fact that more than 100 women in the Presbyterian Church spoke out, in spite of the general quiet in which women worked in that environment, was an act that was ahead of its time and surprised everyone. Why were they so far in advance of their contemporaries? The example of Young-hye Choi is a clue for identifying an answer to this question. Her name was included among 104 signers in 1933 and 640 signers in 1934, and she published articles in the newspaper Gidok-sinbo until 1936. She was referred to as a brave leader. Elite church women in South Hamgyong Province showed a similar profile to Young-hye Choi. They participated in various activities inside and outside of the church in the 1920s. They became leading women in the Presbyterian Church through their activities in various fields, including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establishment of the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socialist groups, and their advocacy of women's rights. Working individually or together, they gradually came to work together under the name of the Women's Missionary Society in the church. They developed into modern individuals, strengthening independent and autonomous self-identity over the course of years. The Petition for Ruling Eldership in 1933 was the fruit and expression of their self-identity. This writer refers to them as New Women of the Church, even though their petition failed. Through this exploration, the author found information on forgotten churchwomen from South Hamgyong Province and an unknown woman named Young-hye Choi and described Presbyterian churchwomen in South Hamgyong Province separately from the history of churchwomen in the Korean church, which had not yet been identified. It is to be hoped that this attempt will be applied to the study of churchwomen in Korea in the future, revealing their truly valuable charac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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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재웅 ( Choi Jay Woong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7-21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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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한국 오순절 기독교는 1928년 오순절 선교사인 메리 럼지가 내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주장은 한국 오순절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단인 기하성이 공인하고 학계와 교계에서도 폭넓게 수용되면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1928년 럼지 내한설' 또는 '1928년 한국 오순절 기독교 원년설'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적 증거는 부재하며, 오히려 역사적 증거들은 '1928년설'을 부정하고 있다. 이 논문은 역사적 증거들에 근거해, 1928년 메리 럼지가 내한하였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오순절 기독교가 한국에 전해진 해는 1928년이 아니라 1930년이라는 점을 밝히고자 시도하였다.


It is generally thought that the Korean Pentecostal Christianity was founded upon Mary C. Rumsey's arrival in Korea in 1928. This claim has been underwritten by the Assemblies of God of Korea, the oldest and largest Korean Pentecostal denomination, but it is also widely accepted in the religious and academic worlds. However, no evidence exists to support the claim that Rumsey arrived in Korea in 1928. Indeed, historical evidence is grounds for disputing this claim. This study seeks to determine when Pentecostal Christianity was actually introduced to Korea, founded on historical documents, and it finds that Korean Pentecostal Christianity first appeared not in 1928 but in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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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지인 ( Kim Jean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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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무굴 아크바르 황제의 명으로 제롬 하비에르 선교사가 예수의 생애에 관해 저술했던 『거룩함의 거울』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제작 의도에 관한 문화 종교적 분석이다. 먼저 아크바르 황제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 다양한 종교에 관한 이성적 관심의 일환으로 예수의 기적과 신성에 관해 왕권 강화적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다. 한편 제롬은 황제를 개종시킬 목적으로 무굴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면서 예수의 생애와 접촉점이 될 만한 내용을 선택하여 저술했다.
또한 무굴 궁정의 화가들은 제롬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슬람과 힌두교 종교예술 양식과 서양 기독교의 양식을 혼합하여 예수의 생애에 관한 그림을 그렸다. 『거룩함의 거울』에 나타난 이러한 문화적 종교적 대화를 통해 직접적인 개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지 않았고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있었다. 이러한 무굴제국의 문화 적응적 예수회 선교의 예는 오늘날 여전히 어려움에 봉착한 인도의 모슬렘, 힌두교인의 선교방법에 대화를 통한 선교의 긍정적 선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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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전인성 ( Jeon Insung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7-6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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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북미의 아나뱁티스트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이며, 특히 교회론을 중심으로 한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다. 북미 아나뱁티즘 연구는 20세기 초반에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는데, 해럴드 벤더(Harold S. Bender)의 등장으로 벤더학파(Bender School)라고 하는 학자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동안에 많은 오해로부터 고통받아왔던 아나뱁티스트의 신학과 신앙이 주류 종교개혁자들의 그것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주장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세기 중반부터는 아나뱁티즘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아나뱁티스트의 교회론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기 시작한다. 아나뱁티스트 교회론의 연구에서는 프랭클린 리텔(Franklin H Littell)의 연구를 필두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20세기 아나뱁티스트의 연구가 특정 인물과 신학에 치중된 측면이 있으며 교회론 연구에서도 치리에 관한 연구에 치중되어왔음을 지적하며 보다 다양한 인물과 주제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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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성진 ( Lee Seong Jin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5-9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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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1560)에 나타난 교회재산의 재분배 규정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16세기 이전의 스코틀랜드 교회재산은 무질서하게 악용되었는데, 이에 대해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회재산의 재분배 규정을 제시하였다. 개혁자들은 교회재산의 재분배 기준뿐만 아니라 세부 계획안, 그리고 세부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부분에 주목하면서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교회재산의 세속화의 무질서 문제를 해결하는 신학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개혁교회의 '질서의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비록 질서를 바로잡고자 제정된 '교회헌법'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것조차도 개교회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오용하면서 더 심각한 무질서의 문제들을 야기하였다. 교회의 재산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은 성경적인 바른 질서와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교회재산의 세속화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곧,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재산에 관한 분명한 질서와 기준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를 위해 필자는『제1치리서』에 나타난 교회재산의 재분배 규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그 문서의 배경이 되는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상황을 개관할 것이다. 왜냐하면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교회재산의 형태는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시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은 16세기 스코틀랜드 교회재산과 이를 둘러싼 사회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직접적인 배경, 그리고 구조와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이후에 본문에 나타난 교회재산 재분배에 관한 규정을 주목하고, 그 의미를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가 직면한 교회재산의 세속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학적인 발판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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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교성 ( Ahn Kyo Seong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9-12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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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목회자, 회중, 목회사역의 삼대 요소로 이뤄진 삼각구도를 통해 수행된다. 목회에 있어서 이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목회론(혹은 목회신학)은 전반적으로 볼 때, 주로 목회자 혹은 목회사역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목회론에서 회중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고, 따라서 목회자론과 목회사역론에 비해서 회중을 논하는 '회중론'(필자의 조어)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한편 오늘날 신학 특히 교회론과 선교론은 급변하고 있고, 이런 변화 가운데 회중에 대한 강조를 빼놓을 수 없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런 학문적 요구에 응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한편으로 교회사에서 회중론의 유산을 간추려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 본 논문은 최근 신학 특히 교회론과 선교론에서 회중을 강조하는 담론들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목회론 특히 회중론에 대해 지니는 함의를 간추려보고자 한다. 교회사 가운데 평신도의 중요성은 간헐적으로 강조되어왔고 대표적인 것은 종교개혁이지만, 본격적으로 신학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관련 신학은 평신도 신학, 하나님의 백성신학, 회중 신학 등이다.
교회사의 사례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첫째, 『사목규범』은 목자가 양을 알아야 한다는 성서적 목회론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러나 회중론은 목자의 회중 이해라는 일방적 이해를 넘어 목자와 양의 상호 이해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목회론은 양의 목자 이해에 대해 가중치를 두고 발전시킬 과제를 안고 있다. 둘째, 『참된 목회학』은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적 틀을 깨고, 평신도가 목회 동역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것은 초대교회 목회상의 재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참된 목회학』은 목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소극적인 차원에서 병든 양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인 차원에서 건강한 양의 성장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목회론은 목회를 목회상담, 영성 등을 넘어서 교회 전체에 대한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근 신학은 회중의 중요성, 회중의 다원성을 주목하게 한다. 더이상 서구 중심적, 남성 중심적 신학의 틀로는 목회론, 특히 회중론을 제대로 해나갈 수가 없다. 세계의 급변하는 상황에 맞는 목회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론과 목회사역론은 물론이고, 회중론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회중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회중론은 목회의 실천에 대해 점검하는 것을 넘어서 목회 진정성에 대해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목회론에 기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균형잡힌 목회론이 나온다면, 그 목회론은 다시 신학 전체에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학이 있는 목회, 목회를 위한 신학의 첫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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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혜원 ( Hyewon Lee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9-167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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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에 중국에서 『依經問答』, 일본에서 『美以敎會問答』, 그리고 조선에서 『미이미교회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순차적으로 번역된 미북감리회 교리문답서를 그 연구 대상으로 하여, 각 판본의 번역 및 출판 과정을 밝히고, 번역 과정에서 기독교 용어가 어떠한 창출·변용·적용의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865년 매클레이가 번역한 중문본은 영문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중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의 내용을 바꾸거나 첨언하는 경우가 있었고, 새로운 문항도 2개 추가되었다. 1876년 소퍼가 번역한 일문본은 영문본을 기본으로 하되 중문본도 함께 참고하면서 용어에 있어서 약 45%가 중문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글본에는 2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그 중 플랑시가 수집한 번역자 미상, 연대 미상의 『미이미교회문답』은 1885년 이수정에 의해 번역된 것임이 본 논문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수정역은 일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용어의 약 68% 가량이 일문본과 일치하였다. 이후 1889년 존스가 다시 번역한 『미이미교회문답』은 영문을 저본으로 하였지만, 중문본과 이수정역에서 차용한 용어가 각각 37%, 17% 정도 되는 등 앞선 번역본들도 참고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수정과 존스가 한글로 창출한 단어들은 현재 대개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한자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용어의 유통에 있어서는 번역자 뿐 아니라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대중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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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평 ( Kweon Pyoung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69-20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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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쉴즈(Esther L. Shields, 한국이름 秀日斯, 1868-1940)는 미국 북장로교 파송 한국 간호선교사이다. 쉴즈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1897년부터 1938년 만 70세로 선교현장인 한국에서 은퇴할 때까지 40여년을 의료선교와 복음전도 그리고 간호교육과 사회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녀는 “세브란스의 천사”라 불리울 정도로 봉사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의료 선교사였지만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쉴즈는 미국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충분한 임상을 경험한 후 선교사로 자원하여 한국에 왔다. 그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정식 간호사로 사역하였으나 열악했던 당시 한국의 의료상황과 과중한 업무로 인해 탈진하여 건강을 해쳐 병원 사역에서 벗어나 평북 선천에서 전도와 교육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세브란스로 복귀하여 은퇴할 때까지 이 곳에서 간호교육과 간호사들을 위한 사역 그리고 병원에서의 전도와 사회봉사 활동에 매진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쉴즈의 선교사 지원 이전의 삶과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시기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그녀의 선교사역이 갖는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였다. 이를테면 그녀는 조직과 협동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이를 매우 중시하여 사역을 진행했으며 그것이 오늘날 한국간호사협회와 같은 기구로 자라났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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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병준 ( Chung Byung Joon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5-23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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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 도시산업선교운동의 선구자 조지송의 생애, 산업선교정책, 그의 노동자선교 신학 사상을 고찰하고, 그의 활동이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조지송은 보수적 친미 반공적인 신앙을 가지고 남한에 온 피난민이었다. 그는 산업전도를 하면서 산업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비인간적으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현실을 발견했고,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선교 정책을 네 단계로 발전시켰다. 1 회사 사주와 협력하는 노동자 전도 2. 훈련된 평신도를 통한 공장 전도 3.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 선교 4. 소그룹 안에서 여성 노동자의 의식화와 주체성 회복을 통해 산업현실을 개혁하는 산업선교. 조지송은 노동자 기독론과 노동조합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변화된 노동자의 성숙한 인격과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는 헌신성에서 희망와 용기를 발견했다. 독재정권과 비윤리적 기업과 협조해서 산업선교를 탄압하는 제도교회를 거짓교회로 보았다. WCC와 CCA는 한국의 도시산업선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그것은 한국의 도시산업선교운동이 세계교회와 인류 노동사회를 향해 보편적인 희망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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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형신 ( Hyung Shin Park )

발행기관 : 한국교회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회사학회지 61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41-28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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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예수셩교문답』(1881)으로부터 시작하여 『셩경문답』(1936/1937)에 이르는 한 특별한 한글 문답서의 변천사를 현존하는 소장본들과 문헌적 증거들을 통해서 탐구한다. 초판은 만주에서 출판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만주와 한국에서 후속 개정판들과 재인쇄본들이 발행되었다. 모리스 꾸랑의 『한국서지』(1894-1901)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된 이 문답서는 한국기독교에서 특히 19세기말과 20세기 전반기에 전도와 교육을 위해 사랑받는 문서가 되었다. 이 문답서의 원작자는 만주의 존 로스 선교사이며, 메리 F. 스크랜턴 선교사와 한국인 동역자들에 의하여 조선의 수도인 서울 방언으로 크게 개정되었다. 원작 및 개정판을 이어서 많은 후속 판본들과 재인쇄가 1936년 또는 1937년까지 뒤따랐다. 초판을 포함하여 원본이 일부라도 남아있는 8종의 판본들이 역사적 상황과 및 서지적 정보를 위하여 탐구되었고, 9종의 재인쇄본들 역시 문헌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연구되었다. 판본들에서 동일한 주제와 구조가 확인되어 연속성이 입증되었다. 신존재를 위한 존칭법은 점차 한글에 적절한 방식으로 변화되었으며, 문법과 형식 차원에서도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고, 개별 판본들에서 특수한 변화들도 나타났다. 문답서의 첫 부분을 다룬 이 연구는 향후 문답서 전체에 대한 역사 및 문헌적 연구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한국기독교가 이 문답서를 어떻게 수용하였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이 문답서를 점차 배제해갔는가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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