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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ournal of History Physical Education, Sports and Dance

  • : 한국체육사학회
  • : 예체능분야  >  체육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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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6-4105
  • : 2733-8606
  • :

수록정보
27권2호(2022) |수록논문 수 : 9
간행물 제목
27권3호(2022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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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저자 : 이선애 ( Lee Sun-ae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김재우 ( Kim Jae-wo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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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여자탁구가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73) 단체전에서 우승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제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1954, 싱가포르)에 처음 출전한 여자탁구는 오랫동안 홍콩과 일본의 벽에 부딪혀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러한 벽을 허물고 여자탁구가 아시아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제9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1968, 인도네시아)였다. 제2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1956, 일본 동경)에 처음 참가한 여자탁구는 제25회 대회(1959,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여자탁구는 이념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 만인 1969년 제30회 대회(서독 뮌헨)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여자탁구는 6위를 차지했다. 다음 대회인 31회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다. 마침내 여자탁구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탁구의 우승에는 1970년부터 추진된 대한탁구협회의 인프라 구축과 상비군제도 정착, 그리고 훈련의 체계화가 뒷받침되었다.


This study is about the process of The Korean women's table tennis team winning the gold medal in the 32rd World Table Tennis Championships(WTTC) in 1973. The first overseas competition for the Korean women's table tennis team was the 3rd Asian Table Tennis Championships(ATTC) held in Singapore(1954). After competing against Hong Kong and Japan, they only won the silver medal. Until the 9rd ATTC held in Indonesia(1968), Korean women won the gold medal for the first time in Asia. The first world-level competition for the Korean women's table tennis team was the 23rd World Table Tennis Championships (WTTC). But it was not until the 25rd WTTC that they won a silver medal. This boosted their confidence in winning the championship. However, women's table tennis failed to continue to participate in the WTTC due to ideological, social, and economic reasons. 10 years later (1969), they participated in the 30th WTTC (Munich) and won sixth place. And in the 31th WTTC, they won the bronze medal. Finally, women's table tennis won the championship at the 32rd WTTC(Saraj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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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태희 ( Lee Tae-hui ) , 안진규 ( An Jin-k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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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1946년 해군사관학교 개교부터 2021년까지의 해양체육프로그램의 변천 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도입·적용기(1946-1978)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해군 장교 육성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관생도에게 해군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해양성 강화와 해상 생존능력을 높이고, 협동심 및 도전정신 등의 리더십을 배양하여 최정예 해군 장교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둘째, 성장기(1979-2009)는 해양체육과를 신설하는 등 수업으로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강화와 함께 사관생도 개인의 적성에 맞는 해양스포츠를 선택하도록 다양한 해양체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해양스포츠에 유능한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다. 셋째, 정착기(2010-2021)는 도입·적용기와 성장기의 해양체육프로그램 성격과 내용을 포함하고, 보다 체계적이며 강화된 해양체육 수업 운영과 함께 군사훈련으로의 해양체육프로그램 확장을 통해,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며,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세계 일류 해군 장교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transition process of marine sports from the opening of the Korea Naval Academy in 1946 to 2021. The following conclusion was reached. First, in order to achieve the purpose of fostering naval officers, the introduction and enemy courage (1946-1978) focused on strengthening the maritime nature and the ability to survive in the sea, and cultivating leadership such as cooperation to grow into the best naval officer. Second, the growth period (1979-2009) focused on fostering competent naval officers in marine sports, such as strengthening marine sports as a class, and providing various marine sports programs. Third, the 2010-2021) focuses on fostering world-class naval officers who live up to the era of globalization in the 21st century, protecting maritime sovereignty and contributing to international peace through the operation of more systematic and strengthened marine sports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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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미숙 ( Kim Misuk ) , 변현 ( Byun Hyun ) , 전상완 ( Jeon Sang-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7-50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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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1996∼2022년까지 한국체육사학회가 발행하는 한국체육사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의 연구동향을 분석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데에 있다. 연구대상은 27여 년간 발표된 총 478편의 논문으로 제목과 초록을 발췌하였다. 소셜 매트릭스 프로그램 텍스톰을 활용하여 텍스트마이닝을 그리고 Ucinet6과 NetDraw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 및 시각화하였다. 분석한 결과, 첫째, 1996∼2011년까지 발표된 논문에서는 스포츠, 한국, 연구, 올림픽, 체육, 경기 등에서 높은 중심성 값이 나타났다. 또한 군집분석 결과는 '시공간 및 집단', '스포츠의 내재화와 세계화', '움직임과 지향점', '시대·지역별 스포츠의 다양성' 등 4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둘째, 2012∼2022년까지 발표된 논문에서는 한국, 올림픽, 스포츠, 태권도, 중국 등에서 높은 중심성 값이 나타났다. 또한 군집분석 결과는 '종목과 대회의 확장', '체육인의 등장과 활약', '근대 및 확산', '전통과 무예', '지역 체육 및 인물', '국제 무대로의 도전', '스포츠와 민족주의', '스포츠의 대중화와 체계 확립' 등 8가지 범주로 분류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search trends of papers published in the Journal of history for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dance from 1996 to 2022. The subjects of this study are the titles and abstracts of 478 papers published during the period. Text mining was analyzed using the social matrix program Textom, and analyzed and visualized through Ucinet6 and NetDraw programs. As a result of the analysis, first, the papers from 1996 to 2011 showed high centrality values in sports, Korea, research, Olympics, physical education, and competition. In addition, the results of cluster analysis were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Time and space and group', 'Sports Internalization and Globalization', 'Movement and orientation', and 'Diversity of sports by era and region'. Second, the papers from 2012 to 2022 showed high centrality values in Korea, Olympics, sports, taekwondo, and China. In addition, the results of cluster analysis were classified into eight categories: 'expansion of events and competitions', 'appearance and activity of athletes', 'creation and spread', 'Modernity and diffusion', 'local sports and people', 'challenge to international competition', 'nationalism in sports' and 'popularization of sports and establishment of a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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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허진석 ( Huh Jin-seo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1-69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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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는 한국 남자농구 역사상 광복 이후 등장한 첫 대중스타이다. 그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과 1964년 프리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명성을 얻었다. 국제무대에서 빛난 김영기의 경기력은 탁월한 개인기라는 특징으로 요약된다. 김영기는 트위스트 슛, 원 핸드 슛, 빠르고 다양한 드리블을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익혀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김영기는 은퇴 후 방송해설자와 코치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196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은 은퇴 후 우리 농구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김영기는 농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유명인사(Celebrity)로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한국 스포츠가 대중적인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기에 이른 지금 김영기의 선구자적 업적과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의 발전적 계승이 필요하다.


The Kim Young-Gi was the first Korean men's basketball star following the country'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Kim rose to prominence thanks to his outstanding performances at the 1956 Melbourne Olympics, the 1964 Pre-Olympic Basketball Tournament and the 1964 Tokyo Olympics. Kim leaned on his exceptional individual skills to shine on the international stage. He learned and developed his “twist shot” (double clutch shot), one-handed shot and quick dribbling skills without formal instruction. He used them with ease in competition. After retiring, Kim showcased his talent as a television commentator and also proved to be a great coach. In particular, he led South Korea to gold medals at the 1969 Asian Basketball Confederation Championships and at the 1970 Asian Games. Those that Kim had coached went on play integral roles in Korean basketball after their retirement. As a well-respected figure who transcended boundaries of basketball, Kim wielded a far-reaching influence on the Korean society. Kim's legacy as a pioneer can serve as the guiding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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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1-87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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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씨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씨름 경기장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근대 이전의 씨름은 안정성이 확보되는 천연적인 환경에서 행해졌다. 강변의 모래 백사장과 들판의 풀밭과 같은 자연환경이나 짚이나 멍석을 깐 인공적인 공간이 곧 씨름 경기장이었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창설된 이후 최초로 모래를 기반으로 한 씨름 경기장의 설비 규정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씨름은 양질의 모래 수급과 일제의 감시 때문에 주로 실내의 사각 링이나 매트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광복 이후 대한씨름협회는 실내외로 구분된 경기장 시설 자원과 규격에 대한 지속적인 개정을 추진했다. 씨름 경기의 안정적인 개최와 역동적인 경기의 연출을 위함이었다. 이러한 규정의 변화 속에서 현재의 씨름 경기장은 모래 설비가 원칙이 되었다. 모래판이 씨름의 역사성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능한 결과이다.


In order to systematically establish the history of Korean ssireum, this study reviewed the historical transition process of the ssireum stadium,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Pre-modern wrestling was conducted in a natural environment where stability was ensured. Natural environments such as sandy beaches along rivers and grassy fields or artificial spaces covered with straw or rugs were the ssireum stadium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Ssireum Association in 1927, the first sand-based ssireum stadium facility regulations were prepared. However, ssireum was mainly played on indoor square rings or mats due to the supply and demand of high-quality sand and surveillance by the Japanese. After the liberation, the Korean Ssireum Association promoted continuous revision of the resources and standards for indoor and outdoor stadium facilities. This was for the stable holding of ssireum matches and the production of dynamic matches. In the midst of these changes in regulations, the current ssireum stadium is based on sand facilities. It is the result of mounded-sand functioning as a symbolic space to maintain the historical and identity of ssir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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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경호 ( Park Kyo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2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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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탁구 최초 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인 탁구인 김충용의 성장 과정과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과정을 조명하고자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 탁구, 방콕 아시안게임, 김충용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고찰을 실시하였으며 김충용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스토리를 확보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김충용은 한국전쟁 이후 탁구가 성행하던 대구 지역에서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된 탁구 문화를 경험하였고, 우리나라의 전문적인 체육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의 상황 속에서도 당대 탁구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성장해 온 준비된 챔피언이었다. 둘째, 1966년 김충용이 획득한 금메달은 우리나라 탁구사에 있어서 첫 번째 국제대회 금메달이라는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중국과 일본에 밀려 국제대회에서의 자존감이 상실되어 있던 우리나라 탁구계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문화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shed light on the growth process of table tennis player Kim Chung-yong, the first Korean table tennis gold medalist, and the process of winning a medal at the 1966 Bangkok Asian Games. To this end, various literature reviews related to Korean table tennis, Bangkok Asian Games, and Kim Chung-yong were conducted, and unrecorded stories were secured through interviews with Kim Chung-yong. The research outcomes are as follows. First, Kim Chung-yong experienced a relatively advanced table tennis culture as he grew up in Daegu, where table tennis was prevalent after the Korean War, and He was a prepared champion who had grown through the elite course of table tennis at the time even before Korea's professional sports system was established. Second, the gold medal Kim Chung-yong won in 1966 was the first international gold medal in Korea's table tennis history, and served as a cultural driving force that inspired confidence in the Korean table tennis world, which had lost self-esteem in international competitions due to Chin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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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지영 ( Kim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3-11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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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본의 태권도 진출과 확산에 관한 연구로 문헌연구와 일본에 진출했던 태권도 사범 면담내용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일본에 태권도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오사카대학에서 태권도부의 창설과 태권도가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었다. 둘째, 일본 태권도의 체계적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일본태권도협회가 7년 만에 일본올림픽위원회(JOC)의 준가맹 단체로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태권도 국가 대표 팀은 국제적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해나갔다. 셋째, 일본태권도연맹은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선수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카모토 선수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결과 일본에서 태권도의 이미지 상승과 태권도 인구가 증가되었다.


This study is a study on the advancement and spread of Taekwondo in Japan,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as a result of studying the literature and interview contents of Taekwondo instructors who entered Japan.taekwondo. First, taekwondo was spread to Japan centered on Koreans in Japan,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Taekwondo Department at Osaka University and Taekwondo were adopted as official subjects. Second, Japanese Taekwondo was systematically distributed, and the Japan Taekwondo Association was approved as an associate affiliate of the Japan Olympic Committee (JOC) for the first time in 7 years. And the national Taekwondo team showed off their skills on the international stage. Third, in a situation where it was difficult for athletes to perform normal activities due to division within the Japan Taekwondo Federation, Okamoto won the bronze medal at the 2000 Sydney Olympics. As a result, the image of taekwondo in Japan and the population of taekwondo incr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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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병중 ( Kim Byung-jung ) , 조준호 ( Cho Jun-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9-13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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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상해에서 활약한 조선체육인 현창운의 생애와 체육활동을 분석했다. 그에 관한 선행연구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서는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1차 사료를 입수하여 번역, 해석을 통한 문헌분석법을 사용하였고, 각 사료의 교차검증을 통해 내용의 정확도를 높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10년 일본 제국주의의 한일병탄(韓日倂呑)에 의한 주권상실은 일제강점기 상해 조선 체육인 형성의 시대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에 그들은 민족의 울분을 원동운동대회의 참가, 체육활동을 통해 분출했다. 둘째, 조선의 야구선수 현창운은 1915년 제2회 상해 원동운동대회에 상해야구단 대표로 참가했다. 이는 한국 근대체육사에서 최초로 조선체육인이 국제종합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이었다. 이후 현창운은 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 고려공산당 등의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귀국한 후에는 조선의 야구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현창운의 제2회 상해 원동운동대회 참가는 근대 한국체육의 대외지향성을 상징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근대 조선체육의 국제성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제체육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높은 위상의 첫 출발점이었다.


This study analyzed Hyun Chang-un, a towering figure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an iconic Joseon athletes in Shanghai. It obtained primary data from the United States, Japan, China, and Korea, used literary analysis through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and improved the accuracy of historical descriptions through cross-validation of data. The resul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ly, the loss of sovereignty due to the Annexation of Korea by Japanese imperialism in 1910 birthed much national angst - and so athletes in both Shanghai and Joseon vented their national anger via participation in the 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 Secondly, Joseon baseball player Hyun Chang-un participated in the 2nd Shanghai FECGs in 1915 as a representative of the Shanghai baseball team. It was the first time a Joseon athlete participated in a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Joseon Modern and Alternative Athletics. Since then, Hyun Chang-un worked hard towards developing baseball in Joseon after returning there. Hyun Chang-un's participation in the 2nd Shanghai FECGs symbolized the external orientation of modern Korean physical education. Furthermore, it launched an international dimension of Joseon's modern sports under the Japanese deduction system. Also, it enabled the prestige Korea enjoys in the global sports arena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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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방출 ( Kim Bang-chool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5-15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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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북미스포츠역사학계의 연구 동향을 소개하는 작업으로, 학술지 Journal of Sport History에 1974년부터 2000년까지 게재된 연구들에 초점을 두고 그 내용과 성격을 정리하였다. 연구방법의 측면에서, 모든 연구들의 현황, 패턴, 양태 등을 정밀하게 분류, 구분하여 객관적 수치로 제시하기보다는, 역사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성격들을 포착하여 해석함으로써, 연구 동향을 대표하는 몇 가지 징후들을 뽑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결과는, 연구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실증적 연구에서 사회사적 연구로 확장되어 공존하고 있다는 점, 스포츠 관련 이데올로기, 담론 등을 탐구하는 지성(사상)사 연구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는 점, 학회 창립 초기부터 스포츠역사학의 학문적 본질, 성격, 실제 등을 검토하고 성찰하고 논의하는 관심들이 지속적으로 표명되어 왔다는 점, 과거 스포츠의 역사적 주체에 대한 관심이 백인 남성에 초점이 있었던 것에서 점점 여성 주체와 소수 인종 및 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구의 주제, 대상, 실제 등이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에서는 한국의 체육사학회 및 학술 구성원들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introduces the research trends of the North American sports history community and summarizes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research published from 1974 to 2000 in the Journal of Sports History. Rather than objectively classifying and presenting all research status, patterns, and forms, several signs representing research trends were selected and presented by capturing and interpreting historical philosophical and theoretical characteristics. Major findings include extending the dominant paradigm from empirical to social and historical studies, continuing to publish intellectual studies exploring sports-related ideologies and discourse, continuing to review, reflect on, and discuss sports historical subjects, increasing focus on women and ethnic minorities, and expanding diversity in the academic subjects, approaches, and methods. In conclusion, the desirable direction for the Korean Physical Education History Association and academic members was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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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영남 ( Kim Young Nam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3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5-168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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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체육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최초 올림픽 참가에 주목하여 국내에 창설되어 활동했던 관련 단체들의 행적을 고증하는 것에 연구의 목적이 있다. 광복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주로 올림픽 관련 단체의 결성과 활동을 토대로 올림픽 참가 승인과 출전 준비가 이루어졌다. 먼저 올림픽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NOC 조직 준비와 올림픽 참가 제반 마련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올림픽대책위원회의 임무를 계승하여 올림픽위원회, 올림픽준비위원회, 올림픽후원회가 순차적으로 결성되어 활동했다. 올림픽위원회는 IOC와의 문서연락 등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했고, 올림픽준비위원회는 올림픽 출전에 대한 종목선정, 선수선발, 기술향상 등에 목적을 두고 결성되어 활동했다. 올림픽후원회는 올림픽 출전에 소요되는 경비조달을 목표로 결성되어 활동했다.


This research has the purpose of ascertaining the traces of organizations founded in Korea related to the first ever participation in the Olympics, which was an important turning point in the development of sports in Korea. After independence, authorization for participating in the Olympics and preparations for competitions were happening domestically basing on the related activities of new associations. First, the Olympic Task Force was formed, prepared the NOC, and made arrangements for the Olympics. Later, to succeed the roles of the Olympic Task Force, the Olympic Committee, Olympic Preparation Committee, and the Olympic Sponsers' Association were founded in that order. The Olympic Committee took the role of communicating with the IOC, and handled the administrative business, while the Olympic Preparation Committee focused on selecting events and athletes that would participate, and improving techniques. The Olympic Sponsers' Committee was responsible for cost procurement needed for the Olympic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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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산 ( Kim S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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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근대 중국 무예교습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의 내용과 의미를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고찰함에 있다. 중국의 근대화 기간이라 할 수 있는 민국시대 중국 무술을 서양의 병식체조적 요소로 분류하고 조합하여 단계적 교수체계를 만든 마량의 중화신무술 체계는 중국 체육의 근대화에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중 중국식 씨름이나 레슬링이라 할 수 있는 솔각에 관한 서적인 『중화신무술 솔각과 상편』은 솔각 기술을 전문적으로 기술한 첫 서적이면서 중화신무술 체계의 서술 방법으로 인해 전문적 신체 문화였던 솔각을 일반적 교육체계로의 첫 시도로서 의미 있는 서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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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정숙 ( Lee Jeong Su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25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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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박금슬 『춤동작』에 내재한 무용치료의 가치 탐색을 목적으로 사적 고찰 및 음악, 춤사위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첫째, 춤동작은 박금슬의 삶이 투영되어 종교적 모티브, 한국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기교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한국 문화와 정서를 체험할 수 있음이 탐색 되었다. 둘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해 완성된 움직임으로 다양한 운동성을 내포하여 워밍업에서 필요한 기본무로써 자연스러운 신체 움직임을 유도하고 폭넓은 신체 표현을 가능하게 하여 예술치료 및 움직임을 통한 치료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이 탐색되었다. 셋째, 독특한 용어 정립으로 쉽게 동작을 익힐 수 있게 하고 용어 자체에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어 한국적 무용치료 연구 및 실제에 교육 자료로써의 활용이 가능함이 탐색 되었다. 후속 연구로 이러한 우리 고유의 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치료 도구 개발 및 그에 따른 결과에 과학적 연구를 제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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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손환 ( Son Hwan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39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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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가 한국스포츠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광복 후 한국의 올림픽 참가사,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의 참가와 교훈,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 후 한국스포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는 그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무런 실정도 모르고 올림픽대회에 무모한 도전을 해온 한국스포츠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했다. 그 변혁의 중심에는 스포츠행정가이며 정치인이었던 민관식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한국스포츠는 민관식을 만나 그의 불도저와 같은 뚝심으로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의 건설 등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위한 스포츠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들 시설은 한국스포츠가 세계스포츠무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한국이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스포츠계에 스포츠강국으로서 위상을 높이는데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KCI등재

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5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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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대 씨름의 영웅 김성률의 생애와 관련된 신문, 잡지, 문헌, 인터뷰 등을 분석해 김성률이 한국 씨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마산 출신의 김성률은 어린 시절 담대한 기질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다양한 운동에서 소질을 보였다. 마산상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씨름판에 등장한 김성률은 60-70년대 공식적인 전국씨름대회를 거의 독식하면서도 뛰어난 기술로 한국 씨름의 대중화를 견인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 경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경남 지역의 씨름 인재 양성에 헌신한 결과 이만기를 비롯한 위대한 씨름인들이 마산에서 탄생했다. 또한, 씨름 행정가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씨름의 제도화와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도 힘썼다. 이처럼 김성률은 한국 씨름의 대중적인 확신과 발전을 견인한 핵심적인 주체로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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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재우 ( Kim Jae-woo ) , 최흥희 ( Choi Heung-hee ) , 왕심위 ( Wang Xinyu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5-71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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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문헌분석을 통해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전국 연날리기대회를 살펴보았다. 한국일보사는 전통문화의 부흥과 판매 수입 인상을 목적으로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회는 주로 정부청사 신축 공연지, 경마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등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개최하기 시작했고, 점차 지방 민속의 발전을 위해 지방에서도 개최되었다. 공무원, 군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연날리기대회에는 외국인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학생부와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남녀노소가 참가하는 스포츠대회가 되었다. 또한 경기종목은 시대에 대응해 변화하여 지방의 전통연과 창조적 과학연 등이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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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가람 ( Lee Ka-ram ) , 문성국 ( Moon Seong-guk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3-88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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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씨름의 조직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씨름 경기방식이 통일되는 과정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8세기 샅바의 등장은 씨름 경기의 독창성과 역동성을 위한 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20세기 초까지 지역적으로 다양한 경기방식의 출현을 추동했다. 씨름의 조직화를 위한 시발점은 1927년 조선 씨름협회 창설이었다. 일제강점기 협회 창설을 기반으로 개최된 전국적인 씨름대회는 주로 왼씨름 경기방식이 채택되면서도 오른씨름과 통씨름 경기가 분리되어 개최되면서 씨름의 과학화와 제도화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 협회는 학생부 경기를 왼씨름 경기방식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씨름 경기방식의 통일을 위한 근간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한국 씨름은 1961년 전국체육대회가 시금석이 되어 1962년부터 점차 왼씨름으로 통일되었다. 그 결과 씨름은 같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근대적인 스포츠문화로 진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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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경호 ( Lee Keung-ho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89-10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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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호남 지역에서 춤과 관련된 무형문화재의 전승현황과 발전을 비교 고찰한 것이다. 연구방법은 계보를 통한 질적 연구에 의하여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를 위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로 한국무용에 있어서 대표적인 문화재 춤인 승무는 영·호남 지역 모두 전승되고 있으며, 권번에서 활동한 악공과 보유자의 활동영역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살풀이춤은 호남지역의 춤 정서인 한을 담았는데, 그 흐름은 영남과 호남지역과 유사한 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호남 권번의 춤꾼들이 영남에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권번과 연관된 종목의 춤은 입춤의 경우 권번에서 기본이 되는 춤이고, 진주검무는 교방의 기녀들의 춤으로 권번에서 전승되었다. 그리고 산조춤과 예기무는 즉흥성이 강한 춤이다. 그러나 한량무는 권번 춤에 영향을 받은 영남지역의 남성 춤꾼의 춤으로 정착하였다. 이 춤들은 점차 지역적 특색이 융화되어 독특한 춤사위로 전승되었고,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정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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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곽애영 ( Kwak Ae-young ) , 이인정 ( Lee In-jung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5-12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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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라틴 아메리칸 댄스 초대 챔피언으로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원로전문인 박영택의 생애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 발전사를 재조명 하는데 있다. 결과에 따르면 첫째, 춤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기질을 타고난 박영택은 원인화와의 인연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사교춤을 전문적으로 섭렵해 나가며 댄스스포츠계의 삼바가라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둘째, 국내 라틴 아메리칸 댄스의 초대 우승자가 된 박영택은 영국과 미국의 국제표준무도 교본을 입수·분석하여 라틴 아메리칸 댄스 전 종목을 정립·보급하는 개척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함으로써 한국 댄스스포츠의 발전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셋째, 한국무도교육협회의 수장으로 댄스스포츠계의 행정을 일임해 온 박영택은 유럽 우수선수초청 시범 및 강습회 개최, 연수원 운영 및 지도자 양성, 학생선수의 발굴 등으로 한국 댄스스포츠의 위상을 높였고, 국내 최초의 통합단체를 발족하여 댄스스포츠계의 입지를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받는데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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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진규 ( An Jin-kyu ) , 조문기 ( Cho Moon-gi )

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간행물 : 체육사학회지 27권 2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3-133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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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국내의 신문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생활체육 배구의 변천사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광복 이후 1950년대는 조선배구협회를 창립하고, 1959년 4월 서울시 종별배구리그전에서 첫 국제식 6인제 배구경기를 갖게 된다. 둘째, 1960년대는 1964년 제18회 동경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는 극동식 9인제 경기를 지양하게 된다. 셋째, 1970년대는 제1회 어머니배구대회를 시작으로 극동식 9인제 배구가 생활체육 배구로 도약한다. 넷째, 1980년대는 한국 어머니 배구연맹 등 9인제 생활체육 배구 단체가 조직된다. 1990년대는 지역사회 및 직장에서 친목경기로 큰 인기를 누린다. 2000년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생활체육 배구대회의 창설이 급진적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는 소프트 발리볼 등 기존 9인제 틀에서 벗어난 생활체육 배구의 다양화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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