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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ANGSARON (The Western History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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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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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권0호(2022년 03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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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포스트코로나 문명 전환과 역사학

저자 : 김기봉 ( Kim Gi-bo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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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의 시대구분을 낳은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던 포스트코로나 시대 “역사학의 미래”와 “미래 역사학”에 대해 고찰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지구에서 인류의 삶은 거시 기생과 미시 기생의 두 과정으로 전개된다. 코로나19는 인간의 거시 세계에 미시 세계의 코로나바이러스가 개입해서 일어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종래의 역사학은 그런 질병이 발생한 과정에 관한 역사연구를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해서 전염병의 역사로 서술했다. 하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바이러스와 같은 비생명체도 행위자로 보는 “물질적 전환”의 패러다임이 역사학에 요청된다.
인류세에 일어날 인류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류의 시간을 행성 차원의 깊은 시간과 얽혀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문명사와 자연사를 통합하는 새로운 역사학 모델이 나와야 한다. 지금 인류에게는 역사학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이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근대 역사학 모델을 대체하는 “미래 역사학”을 모색해야만 하는 이유다.


This thesis aims to think about the “future of history” and “future history” in the post-COVID19 era, which has changed so much that the a new periodization of B.C.(Before Corona) and A.C.(After Corona) was created. Human life on Earth unfolded in two dimensions: macro-parasitism and micro-parasitism. COVID-19 is a zoonosis caused by the intervention of the coronavirus from the microscopic world into the macroscopic world of humans. Conventional historiography has described the history of epidemics from an anthropocentric viewpoint, focusing on the genetic process of diseases. However, in the post-COVID19 era, history requires a paradigm of “material turn” that recognizes non-living things like viruses as actors.
In order to overcome the crisis of human survival that could occur in the Anthropocene, a new History model that integrates the “history of civilization” and “natural history” by understanding human time as entangled with planetary deep time must emerge. The fact that humankind can face the end of history, not historiography, is the reason why we must seek a “future historiography” that replaces the modern historiography model.
(Kyonggi University / nowtime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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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대 서아시아의 팬데믹 -제1차 세계화 시대의 이집트 문명을 중심으로-

저자 : 유성환 ( Yoo Sung-hwan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41-7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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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시기, 특히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와 당시 이집트를 비롯한 지중해 전역이 국제화되던 “제1차 세계화 시기”(기원전 1500-1200년)에 유행했던 감염병의 종류 및 전파·확산의 양상을 접근 가능한 문헌학적·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규명하는 데 있다.
단편적인 문헌학적 언급이나 고고학적 정황증거를 통해서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감염병과 관련한 확정적 정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이집트인들이 우주의 총체적 질서에 반하는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장애나 질병 등을 조형예술을 통해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염병과 관련하여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야는 미라에 대한 의학적 검시라 할 수 있다. 첨단 연구방법을 통한 왕족 및 일반인의 미라 검시를 통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혈흡충ㆍ촌충ㆍ선모충 등 다양한 기생충과 결핵ㆍ소아마비ㆍ천연두ㆍ말라리아ㆍ흑사병 등과 같은 감염병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원전 1500-1200년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걸쳐 국제화가 진행되었다. 국제화에 따라 감염병이 이집트ㆍ시리아-팔레스타인ㆍ아나톨리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감염병의 국제적 확산, 즉 범유행은 당시 강대국과 약소국 간 발신ㆍ수신되었던 외교서신을 통해 그 실체와 규모를 확인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집트의 왕궁 터에서 발견된 소위 「아마르나 외교서신」에 따르면 시리아-팔레스타인에서 발병한 감염병이 이집트와 히타이트로 전파되었으며 특히 히타이트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아마르나 외교서신」에 언급된 감염병에 대해서는 말라리아ㆍ흑사병ㆍ야토병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잠복기 및 증상 등을 고려할 때 이들 후보군에 속한 질병으로는 문헌학적 증거에 묘사된 질병의 확산 양상을 설명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감염병의 존재는 확정할 수 있으나 그 정체는 여전히 규명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This essay delves into infectious diseases that broke out and spread during the Pharaonic period - especially, during the New Kingdom Period (1550-1069 BCE) - and during the First Globalization of the ancient West Asia (1500-1200 BCE), when the entire Mediterranean region was unified into a single international trade and diplomatic network based on archaeological and philological evidence available to us.
Fragmentary statements from ancient Egyptian texts and some circumstantial evidence suggested by archaeological fieldwork and excavations can provide only a limited view on the epidemic during the Pharaonic period due largely to the fact that ancient Egyptians remained reluctant to explicitly and objectively record in texts or express in artworks ungraceful events such as scandals, military defeats, unexpected disasters and outbreaks of infectious diseases, which appeared to violate the cosmic order. Therefore, the most reliable source to study infectious diseases in the ancient world comes from the modern medical examinations of mummies. The medial investigations of mummies have revealed that ancient Egyptians were hosts to various parasites such as tapeworm, schistosome and trichina and largely exposed to common infectious diseases including tuberculosis, small pox, malaria and plague.
In the period of 1500-1200 BCE, the entire Mediterranean region, North Africa including Egypt and Mesopotamia were integrated into a single international network of trade and diplomacy, which made it possible for infectious diseases to freely spread across Egypt, Levant and Anatolia. This international prevalence of highly infectious diseases - namely, a pandemic - can be traced through diplomatic letters exchanged among regional empires and their vassal city states. Based on the texts found in a corpus of the so-called “Amarna Letters,” it is assumed that an infectious disease that first broke out in Syria-Palestine spread to Egypt and the Hittite Empire, respectively. For the identification of the disease, three infectious diseases - i.e., malaria, plague and rabbit fever - were proposed as a possible candidate but there is no decisive evidence to pinpoint the culprit for now.
(Seoul National University / zaubery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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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매독에 대한 인식과 대응

저자 : 이성재 ( Lee Sung-jae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0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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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유럽에 처음 나타난 매독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증상의 완화와 잠복기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병이 사라지고 있다는 낙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종종 매독이 천재적 영감을 준다는 오해에 빠지기도 했다. 17세기에 들어 종교적 믿음이 사회 전체적으로 커지자 매독 환자는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수은을 통한 치료 노력이 가져온 신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더 큰 문제는 치료의 실효성에 있었다. 또한 예방 의학적 접근 역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가운데 17세기 말의 전쟁과 기근은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18세기는 인구가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 속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매독 문제에 개입한 시기였다. 특히 선천성 매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것은 1780년 파리에 성병 전문 병원인 보지라르의 창설을 가져왔다. 매독이라는 질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병원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독 치료를 위해 모유의 형태로 수은을 사용한 방법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 여성을 실험과 치료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병원이 보여준 매독에 대한 체계적인 의학 실험은 하나의 성과였다고 할 것이다.


Syphilis, which occurred in Europe at the end of the 15th century, spread throughout Europe by the 16th century and was recognized as a dreadful disease. People who were unaware that the symptoms could be relieved and that there was an incubation period had an optimistic attitude that the syphilis could disappear, and succumbed to an error that the epidemic could provide a genius inspiration. In the 17th century, as religious beliefs had a major influence on society as a whole, syphilis patients became the subject of moral criticism. At that time, there was an effort to treat it with mercury, which caused serious physical pain, but there was no effect of treatment. Additionally, while the preventive medical approach began to reveal limitations, the war and famine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raised concerns about population decline.
In the 18th century the government began to address syphilis more actively with the notion that the population was the source of national wealth. In particular, interest in congenital syphilis increased, and thi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Vaugirard, a hospital specializing in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in Paris in 1780. It can be said that the creation of a specialized hospital to solve one disease, that is syphilis, was a different approach than before. Of course, there were limitations in that it still focused only on mercury-containing breast milk and did not yield significant results in syphilis treatment, and that women were used as tools for experimentation. Nevertheless, the scientific approach and systematic medical experiment regarding syphilis demonstrated by this hospital was certainly an achievement.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 capsoc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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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세기 북미 두창 팬데믹 시기 영국군과 인두접종(smallpox inoculation) -의사 존 제프리(Dr. John Jeffries, 1745-1819)의 기록을 중심으로-

저자 : 이현주 ( Lee Hyon Ju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7-1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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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A. 펜(Elizabeth A. Fenn)은 2001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폭스 아메리카나: 1775-82 두창 대유행』에서 18세기 미국독립전쟁 동안 유행한 두창이 실질적으로 전 북미를 휩쓴 팬데믹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펜의 책은 국지적이라고 생각되었던 두창 발발 케이스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 거시적 관점에서 북미 두창 유행의 규모를 밝히고, 독립전쟁 기간 동안 두창 유행의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의학적 함의를 연구한 저작으로 18세기 미국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 본 연구는 펜의 사학사적 공헌에 더해, 그러나 펜의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접근으로 그 방법을 달리해 18세기 북미 두창 유행의 시대를 재조명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전쟁기 영국군에서 의료인으로 활동한 미국인 충성파 의사 존 제프리의 기록을 중심으로 영국군 주둔지에서 두창 통제에 대해 살펴본다. 본 연구는 독립전쟁 기간 동안 제프리의 충성파로서의 여정과 그가 남긴 군사 및 의료 기록을 통해 봉쇄된 보스턴과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위치한 영국군 주둔지에서 두창 유행의 양상과 인두접종 실시 방법을 재구성한다. 특히 본 논문은 영국군 내 전투요원뿐만 아니라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피난민, 종군민간인, 그리고 전쟁포로에 대한 영국군의 두창통제 정책과 인두접종의 사례를 발굴하는 것을 통해 전쟁기 군에 의한 두창 통제와 인두접종에 대한 논의가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특히 아동)을 포함하는 포괄적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In her distinguished book Pox Americana: The Great Smallpox Epidemic of 1775-82 (2001), American historian Elizabeth A. Fenn gauged the scale of the eighteenth century smallpox epidemic by seeing individual outbreaks as linked events and examining the political, military, and medical implications of an epidemic during the Revolutionary War. Benefiting from her contribution, but switching from a macro perspective to a micro approach, this article addresses underexamined or undiscussed issues regarding smallpox inoculation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smallpox pandemic through the records of Dr. John Jeffries, an American loyalist doctor who served in the British Army as medical personnel. His odyssey as a loyalist during the Revolutionary War and the military and medical records left by him allow us to visit different times and locations where smallpox was spreading and inoculation was practiced. Based on these materials, this study illuminates the British Army's policies and practices concerning smallpox inoculation for loyalist refugees, camp followers, and prisoners of war in sieged Boston and in Halifax, a British garrison town in Nova Scotia, Canada. In doing so, this article argues the importance of understanding wartime smallpox inoculation as a method of disease prevention and control from a more comprehensive and complex perspective that includes not only the immunization of combat soldiers but also that of noncombatants, especially children.
(Ewha Womans University / maat782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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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희생자의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 -1865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 주도 노예제와 짐크로 보상 운동-

저자 : 권은혜 ( Kwon Eun-hye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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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재건기부터 현재까지 노예제 보상을 위해 싸웠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가들과 조직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1990년대 이후에야 노예제 보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의 주요 의제로 등장한다. 사실 1865년부터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지속적으로 내전 중 연방정부가 약속했던 “40에이커”의 보상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스스로 운동을 조직했다. 이 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주도 노예제 보상운동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별해 각 시기의 특징과 대표적 인물을 소개한다. 재건기에서 대공황 시기를 대표하는 노예제 보상 운동은 1890년대에서 1910년대 사이 칼리 하우스 주도의 전 노예 연금운동이다. 전 노예 연금운동은 노예노동과 내전 중 노예들에게 지불되지 않은 임금을 연금으로 보상하는 입법을 지지했다. 민권운동 시기에는 오드리 무어, “흑인 선언”의 저자 제임스 포먼, 그리고 새로운 흑인 민족주의 및 분리주의 단체 블랙팬서당과 신아프리카공화국같은 단체들이 1948년 유엔의 제노사이드 반대 선언 및 1952년 독일의 홀로코스트 보상의 사례에 착안해 노예제를 흑인 제노사이드로 정의하며 미국 정부를 향해 노예의 후손에게 지연된 노예제 보상을 이행하고 흑인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20세기의 대부분 노예제 보상운동은 가난한 흑인 대중을 대상으로 한 흑인 민족주의 집단의 급진적 요구로 인식되었다.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 보상이 실현된 1980년대 말 이후부터 중간계급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주류 민권운동단체, 학계가 노예제 보상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21세기 미국은 노예제 보상의 필요성과 방법을 두고 논쟁 중이다. 노예제 보상 운동은 미국 사회의 진정한 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이자 희생자의 정의를 위한 사회운동이다.


This essay examines the African American leaders and organizations that fought for the reparations for slavery since 1865. It was not until in the 1990s that reparations have become one of the major issues for the civil rights for African Americans. In fact, poor African Americans have continued to organize and participate in the reparations movement since 1865, asking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to keep its promise of distributing “40 a cres” to ex-slaves. This essay divides the history of the reparations movement into three periods. Between Reconstruction and the Great Depression, the most notable case for reparations was the ex-slave pension movement led by Callie House. House organized the campaign for the legislation for the ex-slave pension, which would compensate for the unpaid labor of ex-slaves under slavery and during the Civil War. In the Civil Rights Movement era, Audley Moore, James Foreman―the author of “the Black Manifesto,”― and new black nationalist and separatist organizations such as the Black Panther Party and the Republic of New Afrika led the reparations movement. Inspired by the 1948 UN Genocide Convention and postwar German reparations to the survivers of Holocaust, these leaders of the reparations movement called slavery black genocide. They asked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to pay the descendants of slaves for the unpaid labor of American slaves and to address the issue of black poverty and racial inequality. For the most part of the 20th century, the reparations movement remained within the circle of black radicals who organized poor African Americans. In the late 1980s, the success of the Japanese American redress campaign for the World War 2 Internment of Japanese Americans helped the reparations movement spread among middle-class African Americans, major civil rights organizations, and scholars. During the first two decades of the 21st century, Americans have debated over reparations. The goal of the reparations movement led by African Americans has been the pursuit of racial equality and the vision of the United States as a democratic nation. The reparations movement has always been a social movement for the justice for victims.
(Hansung University / eunhyekw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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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버크의 돼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정치적 공포의 문제-

저자 : 김철기 ( Kim Chulki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3-20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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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프랑스혁명의 원리를 저지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공포스러운 정치적 상태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견한 근거를 검토한다. 기독교와 기사도로 대표되는 유럽문명은 '숭고'와 '아름다움'이 결합되어 공포에 의존하면서 그 공포를 중화하는 관습 체계였다. 프랑스혁명의 원리가 이러한 사회 관습을 파괴하면, 공포를 중화할 기능도 사라지게 되고, 결국 국가의 공포스러운 작동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버크는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혁명 동조자들을 아름답지 못한 동물로 꼽았었던 돼지에 비유했다. 하지만 그는 영국사회 관습 중 오래된 것들만 옹호하고 비교적 새롭게 형성되는 관습의 존재와 역할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은 버크가 말하는 '오래된' 유럽 사회보다 상업과 무역의 팽창으로 역동적인 사회에 가까웠고, 중간계층을 중심으로 '공손함'과 '세련됨' 같은 상업사회와 관련된 관습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크가 판단한 사회적 기반은 편협했고, 따라서 그가 프랑스혁명의 정치적 공포를 예견했다고 보기 어렵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critically examine the view, put forward by British politician Edmund Burke in his 1790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that a country would be drawn into a state of political terror unless it deterred the principles of the French Revolution. The existing European civilization, epitomized in chivalry and Christianity, were a system of manners that relied on fear (what Burke called 'the sublime') with an addition of the beautiful that would temper the fear. The destruction of those social manners by the principles of the French Revolution would leave political terror alone in which nothing in society would mitigate its fearful operations in laws. Thus, Burke probably likened to the swinish those who would follow the Revolution in Britain as well as in France, pigs that represented in his earlier work the animal most furtherest removed from the notion of the beautiful. Yet Burke's chivalry and Christianity were, at most, only part of manners of eighteenth-century British society. The British society was no less a rapidly changing one, and the middling sorts and other social ranks transmitted social manners such as 'politeness' and 'refinement' that intimately related to the aspect of a commercial society. Therefore, Burke's anticipation, the French Revolution's subsequent political terror, was at best a biased judgement.
(Kyung Hee University / ckim103@binghamto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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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파르테논의 기능과 역할 재고

저자 : 이상덕 ( Lee Sang-duk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2-235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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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위에는 미케네 시대로부터 성채가 있었으며, 상고기에는 헤카톰페돈과 고(古) 아테나 신전의 두 건물이 있었다. 이 두 건물 사이에는 하나의 제단만이 존재했다. 페르시아 전쟁 후, 파르테논의 전신 헤카톰페돈이 세워졌지만, 곧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폐허가 되고 만다. 약 30년이 지나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보고를 옮겨오면서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아테네 전역에 아테네 제국을 선전하는 건축 활동을 개시한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것은 바로 파르테논이었다. 파르테논은 폐허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지어졌다. 혹은, 급히 지어야 해서 폐허의 재료를 활용했다. 에렉테이온은 고(古) 아테나 신전의 폐허를 빗겨 세워졌다. 아테나 폴리아스의 오래된 나무 신상은 고(古) 아테나 신전에서 에렉테이온으로 옮겨졌다. 상고기와 고전기의 이 건물들 사이에는 완벽하게 증명하기는 어려운 관계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를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최대한 파악함으로써 파르테논의 기능이 숭배보다는 봉헌물의 보관에 있었음을 드러내도록 한다.


What was function and role of the Parthenon? It has not been questioned seriously enough even by the scholars. The paper studies both archaeological evidence and literary sources. From the Mycenaean period there was a citadel built on the Athenian Acropolis. In the Archaic period there were Hekatompedon and the Old temple of Athena, of which the Old temple of Athena functioned as the center of the city cult - the cult of Athena Polias. Then in the Classical period these two buildings were replaced by the Parthenon and the Erechtheion with the destroyed Old temple of Athena in betwee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chaic temples underli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arthenon and the Erechtheion. The function as a treasury was retained by the Parthenon, while the religious function remained in the Erechtheion.
(Kyunghee University / kong15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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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역사기행 : 남부 아프리카 마풍구웨와 그레이트 짐바브웨 문명 답사 -영국 식민주의의 왜곡과 부정을 파헤치며-

저자 : 김광수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6-267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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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평 : 임지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 (휴머니스트, 2021), 640pp.

저자 : 권윤경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8-276 (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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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평 : 세르히 플로히(허승철 역) 『체르노빌 히스토리: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책과함께, 2021), 535pp.

저자 : 김동혁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77-283 (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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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포스트코로나 문명 전환과 역사학

저자 : 김기봉 ( Kim Gi-bong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4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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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의 시대구분을 낳은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던 포스트코로나 시대 “역사학의 미래”와 “미래 역사학”에 대해 고찰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지구에서 인류의 삶은 거시 기생과 미시 기생의 두 과정으로 전개된다. 코로나19는 인간의 거시 세계에 미시 세계의 코로나바이러스가 개입해서 일어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종래의 역사학은 그런 질병이 발생한 과정에 관한 역사연구를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해서 전염병의 역사로 서술했다. 하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바이러스와 같은 비생명체도 행위자로 보는 “물질적 전환”의 패러다임이 역사학에 요청된다.
인류세에 일어날 인류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류의 시간을 행성 차원의 깊은 시간과 얽혀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문명사와 자연사를 통합하는 새로운 역사학 모델이 나와야 한다. 지금 인류에게는 역사학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이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근대 역사학 모델을 대체하는 “미래 역사학”을 모색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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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대 서아시아의 팬데믹 -제1차 세계화 시대의 이집트 문명을 중심으로-

저자 : 유성환 ( Yoo Sung-hw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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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시기, 특히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와 당시 이집트를 비롯한 지중해 전역이 국제화되던 “제1차 세계화 시기”(기원전 1500-1200년)에 유행했던 감염병의 종류 및 전파·확산의 양상을 접근 가능한 문헌학적·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규명하는 데 있다.
단편적인 문헌학적 언급이나 고고학적 정황증거를 통해서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감염병과 관련한 확정적 정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이집트인들이 우주의 총체적 질서에 반하는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장애나 질병 등을 조형예술을 통해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염병과 관련하여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야는 미라에 대한 의학적 검시라 할 수 있다. 첨단 연구방법을 통한 왕족 및 일반인의 미라 검시를 통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혈흡충ㆍ촌충ㆍ선모충 등 다양한 기생충과 결핵ㆍ소아마비ㆍ천연두ㆍ말라리아ㆍ흑사병 등과 같은 감염병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원전 1500-1200년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걸쳐 국제화가 진행되었다. 국제화에 따라 감염병이 이집트ㆍ시리아-팔레스타인ㆍ아나톨리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감염병의 국제적 확산, 즉 범유행은 당시 강대국과 약소국 간 발신ㆍ수신되었던 외교서신을 통해 그 실체와 규모를 확인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집트의 왕궁 터에서 발견된 소위 「아마르나 외교서신」에 따르면 시리아-팔레스타인에서 발병한 감염병이 이집트와 히타이트로 전파되었으며 특히 히타이트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아마르나 외교서신」에 언급된 감염병에 대해서는 말라리아ㆍ흑사병ㆍ야토병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잠복기 및 증상 등을 고려할 때 이들 후보군에 속한 질병으로는 문헌학적 증거에 묘사된 질병의 확산 양상을 설명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감염병의 존재는 확정할 수 있으나 그 정체는 여전히 규명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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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매독에 대한 인식과 대응

저자 : 이성재 ( Lee Sung-jae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0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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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유럽에 처음 나타난 매독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증상의 완화와 잠복기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병이 사라지고 있다는 낙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종종 매독이 천재적 영감을 준다는 오해에 빠지기도 했다. 17세기에 들어 종교적 믿음이 사회 전체적으로 커지자 매독 환자는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수은을 통한 치료 노력이 가져온 신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더 큰 문제는 치료의 실효성에 있었다. 또한 예방 의학적 접근 역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가운데 17세기 말의 전쟁과 기근은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18세기는 인구가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 속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매독 문제에 개입한 시기였다. 특히 선천성 매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것은 1780년 파리에 성병 전문 병원인 보지라르의 창설을 가져왔다. 매독이라는 질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병원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매독 치료를 위해 모유의 형태로 수은을 사용한 방법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 여성을 실험과 치료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병원이 보여준 매독에 대한 체계적인 의학 실험은 하나의 성과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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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세기 북미 두창 팬데믹 시기 영국군과 인두접종(smallpox inoculation) -의사 존 제프리(Dr. John Jeffries, 1745-1819)의 기록을 중심으로-

저자 : 이현주 ( Lee Hyon Ju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07-1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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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A. 펜(Elizabeth A. Fenn)은 2001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폭스 아메리카나: 1775-82 두창 대유행』에서 18세기 미국독립전쟁 동안 유행한 두창이 실질적으로 전 북미를 휩쓴 팬데믹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펜의 책은 국지적이라고 생각되었던 두창 발발 케이스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 거시적 관점에서 북미 두창 유행의 규모를 밝히고, 독립전쟁 기간 동안 두창 유행의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의학적 함의를 연구한 저작으로 18세기 미국사에 기여한 바가 크다. 본 연구는 펜의 사학사적 공헌에 더해, 그러나 펜의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접근으로 그 방법을 달리해 18세기 북미 두창 유행의 시대를 재조명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전쟁기 영국군에서 의료인으로 활동한 미국인 충성파 의사 존 제프리의 기록을 중심으로 영국군 주둔지에서 두창 통제에 대해 살펴본다. 본 연구는 독립전쟁 기간 동안 제프리의 충성파로서의 여정과 그가 남긴 군사 및 의료 기록을 통해 봉쇄된 보스턴과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위치한 영국군 주둔지에서 두창 유행의 양상과 인두접종 실시 방법을 재구성한다. 특히 본 논문은 영국군 내 전투요원뿐만 아니라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피난민, 종군민간인, 그리고 전쟁포로에 대한 영국군의 두창통제 정책과 인두접종의 사례를 발굴하는 것을 통해 전쟁기 군에 의한 두창 통제와 인두접종에 대한 논의가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특히 아동)을 포함하는 포괄적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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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희생자의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 -1865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 주도 노예제와 짐크로 보상 운동-

저자 : 권은혜 ( Kwon Eun-hye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39-1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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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재건기부터 현재까지 노예제 보상을 위해 싸웠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가들과 조직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1990년대 이후에야 노예제 보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의 주요 의제로 등장한다. 사실 1865년부터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지속적으로 내전 중 연방정부가 약속했던 “40에이커”의 보상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스스로 운동을 조직했다. 이 글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주도 노예제 보상운동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별해 각 시기의 특징과 대표적 인물을 소개한다. 재건기에서 대공황 시기를 대표하는 노예제 보상 운동은 1890년대에서 1910년대 사이 칼리 하우스 주도의 전 노예 연금운동이다. 전 노예 연금운동은 노예노동과 내전 중 노예들에게 지불되지 않은 임금을 연금으로 보상하는 입법을 지지했다. 민권운동 시기에는 오드리 무어, “흑인 선언”의 저자 제임스 포먼, 그리고 새로운 흑인 민족주의 및 분리주의 단체 블랙팬서당과 신아프리카공화국같은 단체들이 1948년 유엔의 제노사이드 반대 선언 및 1952년 독일의 홀로코스트 보상의 사례에 착안해 노예제를 흑인 제노사이드로 정의하며 미국 정부를 향해 노예의 후손에게 지연된 노예제 보상을 이행하고 흑인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20세기의 대부분 노예제 보상운동은 가난한 흑인 대중을 대상으로 한 흑인 민족주의 집단의 급진적 요구로 인식되었다.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 보상이 실현된 1980년대 말 이후부터 중간계급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주류 민권운동단체, 학계가 노예제 보상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21세기 미국은 노예제 보상의 필요성과 방법을 두고 논쟁 중이다. 노예제 보상 운동은 미국 사회의 진정한 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이자 희생자의 정의를 위한 사회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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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버크의 돼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정치적 공포의 문제-

저자 : 김철기 ( Kim Chulki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73-20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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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프랑스혁명의 원리를 저지하지 않으면 그 나라가 공포스러운 정치적 상태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견한 근거를 검토한다. 기독교와 기사도로 대표되는 유럽문명은 '숭고'와 '아름다움'이 결합되어 공포에 의존하면서 그 공포를 중화하는 관습 체계였다. 프랑스혁명의 원리가 이러한 사회 관습을 파괴하면, 공포를 중화할 기능도 사라지게 되고, 결국 국가의 공포스러운 작동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버크는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혁명 동조자들을 아름답지 못한 동물로 꼽았었던 돼지에 비유했다. 하지만 그는 영국사회 관습 중 오래된 것들만 옹호하고 비교적 새롭게 형성되는 관습의 존재와 역할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은 버크가 말하는 '오래된' 유럽 사회보다 상업과 무역의 팽창으로 역동적인 사회에 가까웠고, 중간계층을 중심으로 '공손함'과 '세련됨' 같은 상업사회와 관련된 관습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크가 판단한 사회적 기반은 편협했고, 따라서 그가 프랑스혁명의 정치적 공포를 예견했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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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파르테논의 기능과 역할 재고

저자 : 이상덕 ( Lee Sang-duk )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2-235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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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위에는 미케네 시대로부터 성채가 있었으며, 상고기에는 헤카톰페돈과 고(古) 아테나 신전의 두 건물이 있었다. 이 두 건물 사이에는 하나의 제단만이 존재했다. 페르시아 전쟁 후, 파르테논의 전신 헤카톰페돈이 세워졌지만, 곧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폐허가 되고 만다. 약 30년이 지나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보고를 옮겨오면서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아테네 전역에 아테네 제국을 선전하는 건축 활동을 개시한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것은 바로 파르테논이었다. 파르테논은 폐허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지어졌다. 혹은, 급히 지어야 해서 폐허의 재료를 활용했다. 에렉테이온은 고(古) 아테나 신전의 폐허를 빗겨 세워졌다. 아테나 폴리아스의 오래된 나무 신상은 고(古) 아테나 신전에서 에렉테이온으로 옮겨졌다. 상고기와 고전기의 이 건물들 사이에는 완벽하게 증명하기는 어려운 관계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를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최대한 파악함으로써 파르테논의 기능이 숭배보다는 봉헌물의 보관에 있었음을 드러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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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서평 : 임지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 (휴머니스트, 2021), 640pp.

저자 : 권윤경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간행물 : 서양사론 152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68-276 (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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