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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87권0호(2022) |수록논문 수 : 7
간행물 제목
88권0호(2022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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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지영 ( Jiyoung Kang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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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못 이야기'는 돌아보지 말라는 승려의 말을 어기고 돌이 된 며느리 사연을 경개로 한다. 이 연구에서는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장자못 이야기'를 비극으로 전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에 따라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장자못 이야기'를 중심으로 복합 비극, 단순 비극, 에토스적 비극, 파토스적 비극으로 분류하였다. 이후 주요 등장인물인 '며느리'의 행동을 시아버지 말에 대한 위반과 승려의 당부에 대한 위반 두 가지로 나누었다. 라캉과 들뢰즈의 '욕망'을 적용하여 상기 분석에서의 금기와 욕망의 양상 및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회적 통념에 의한 금기 위반인 에토스적 비극과 정념이나 충동으로서의 파토스에 이르게 한 자극원에 따라 분류한 파토스적 비극에서 '장자못 이야기'는 파토스적 비극이 두드러진다. 며느리는 금기를 어기게 되는 두려움의 동일시 대상으로 에토스적 비극에서는 가족이나 통념을, 파토스적 비극에서는 그 자극원인 자연 현상을 두었다. 파토스적 비극에 이르게 된 원인은 라캉의 관점에서 며느리를 실재계로 진입하게 만들었다. 한편 에토스적 이야기의 가족이나 통념은 며느리를 실재계와 상징계의 언저리에 멎어 있게 하였다.
라캉이 주체를 중시했다면 들뢰즈의 중심에는 '욕망하는 기계'가 있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에토스적 비극 속 며느리의 금기 위반은 기존 질서에 반하는 힘으로서 반복의 특징을 보였다. 파토스적 비극에서 며느리가 금기를 어기게 하는 탈영토적 상황은 며느리가 욕망을 생성하도록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 고전에서 비극적 결말을 보이는 작품이 적어 그 체계와 의미에 대한 접근이 많지 않은바, 비극에 대한 이론적 접근에 기반하여 등장인물의 행동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서사가 마무리된다는 점을 기준으로 '장자못 이야기'를 비극으로 전제하였다. 비극을 크게 에토스적 비극, 파토스적 비극으로 대별한 후 각 비극에서 주인공의 욕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로써 라캉과 들뢰즈 이론에 근거하여 각 비극 속 며느리의 욕망을 읽는 것으로 응징 또는 돌아보는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 기존 연구 결과에 새로운 시각을 더해보고자 하였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story of Jangjapond with the keywords of desire in taboos and violations. A daughter-in-law breaks the taboo of not looking back, which leads to tragedy. To broaden the understanding of the story, the categorization on tragedy from Aristoteles is applied. The story of Jangja-pond is firstly analyzed as complicated plot, simple plot, plot in ethos and plot in pathos. Secondly, under the classification between plots in ethos and plot in pathos, the objects of a daughter-in-law's violation are analyzed, which are from her father-in-law's remarks and a monk's warnings. Her desire to break the taboo of not looking back is read as the term Knower from Jacques Lacan and the Desire Productivity from Gill Deleuze in plot in ethos and plot in pathos.
Tragedy with plot in pathos is concerned with the sensory stimulation, while tragedy is aroused from the social convention in plot in ethos. It is clear that there are more stories with plot in ethos in The Story of Jangjapond. The results from the analysis under J. Lacan's imaginary, symbolic and real order are as below; a daughter-in-law identifies her fear with the rules of her family or social conventions in the tragedy of ethos while it becomes the natural phenomena in the tragedy of pathos. The natural phenomena in the order of pathos makes her enter in the real order. In contrast, the rules of her family or social conventions in the tragedy of ethos let her stay between symbolic and real order.
Meanwhile, G. Deleuze focuses on the productivity of desire. According to G. Deleuze, human beings and even capitalistic society are identified as Desiring Machines. In the view of G. Deleuze, a daughter-in-law's violation in the tragedy of ethos can be read as the impulses against the conventions which has the altitude of repetition. On the other hand, the Deterritorialization beyond the territory of herself becomes the driving force to produce the desire for her violation.
The contrasting points of view broaden the accounts of The Story of Jangjapond. This paper implies academic significance in that; first, different from the studies which focus on the punishment or the act of looking back, this paper defines the object of the analysis to the daughter-in-law herself, second, it analyzes her inner desire under the theories of Aristoteles, J. Lacan and G. Dele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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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연호 ( Yeunho Kim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3-5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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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의 영화비디오법에 명시된 영화의 정의를 살펴본다. 오늘날까지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대 용어인 영화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映畫)”라는 용어는 현재 영화비디오법을 통해 한국영화를 규정하고 영화와 영화가 아닌 것의 기준을 가르고 있다. 이 글은 선행적으로 한국에서 활용하게 된 영화의 어원적 기원을 우선적으로 고찰한다. 이후 영화가 아닌 것인 '연속적인 영상들'에 대한 탐색을 영화산업에서 탈각된 시각장치들의 궤적을 그려나가며 탐구한다.
먼저 약 100여 년간 시각장치를 간략히 훑고, 다음으로 규격화되지 않은 영상이 어떻게 새로운 '극장술(劇場術, theatre-technique)'을 이루고 있는지 검토한다. 첫 번째 장치는 오늘날 규격화되어 있는 영화와 극장으로 집단적 시각 체험 장소로서 투영형 스크린 장치다. 두 번째는 혼자 보기로서 개인 시각장치다. 세 번째 유형은 파노라마 또는 전방위를 볼 수 있는 시각장치인 파노라마관이다.
스펙터클 수행자가 아닌 별빛 탐험가로 극장을 마주하기에서는 필자가 기획자로 참여한 기획 중 새로운 극장술을 선보이고 있는 사례를 '하나가 아닌 스크린', '모니터 신체와 목소리의 현현', '수행적 전환으로서의 보행 극장'으로 분석한다. 이 글은 관람자의 시각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공간 안무로 스펙터클 이미지에 길들여진 시각성을 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장술로 제안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definition of film specified in Korea's < Korean film & video law >. Today, Korea still uses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erm for movies. And the '映畫(movie)' currently defines Korean films through the < Korean film & video law > and determines the standards of movies and non-movies. In this paper, the origin of the '映畫' that was used in Korea was first considered. This thesis attempted to explore the 'continuous images' that are not movies by drawing the trajectory of visual devices that have been deviated from the film industry.
Firstly, I wanted to briefly look at the visual device for about 100 years, and next, I wanted to look at how unstandardized videos are forming a new 'theatre-technique'. The first device is a projective screen device as a collective visual experience place with movies and theaters standardized today. The second is a personal visual device as a solo view. The third type is the panorama or 360-degree omni-directional view of the panoramic view.
Facing the theatre as a starlight explorer, not a spectacular performer, is the perspective of “a screen, not one,” “a manifestation of a monitor body and voice,” and “a walking theater as a performance transition,” focusing on the case of showing new theater-techniques among the exhibitions I conducted as a planner. The theater-technique examined in this paper attempted to examine the possibility of escaping visualization tamed by spectacle images through spatial choreography that can change the viewer's visual at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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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문화 ( Hwa Moon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61-8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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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의 소설 『벨 자』(The Bell Jar, 1963)를 여성 성장 서사의 관점에서 보고자 했다. 성장 서사의 주인공에게 대도시 경험은 젊음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나 『벨 자』에서 뉴욕행은 새로운 모험이나 도전이 부재한 권태로운 경험으로 끝난다. 본고는 성장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 찬 작가 지망생이 느끼는 패배감이, 그녀가 '레이디'로 환대 받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전후 미국 사회에서 레이디라는 호명은 '가정 주부'에 대한 환상과 함께 여성을 성장의 주체로 보지 않고 가정의 수호자로만 보는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와 무관하지 않은 문제적인 이름이었다. 레이디 교육이 지배하는 대학과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젊음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기도 전에 젠더화된 호명에 갇힌 주인공의 현실은, 물리적 공간의 이동만으로는 규범적 여성상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끝으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서야 이상적인 레이디 모델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 주목했다. 이는 예외적 공간으로 추방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여성 성장의 딜레마를 함축한다. 본고는 『벨 자』를 통해 여성의 성장 스토리가 여성을 성장의 주체로 보지 않는 세계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논의하고자 했다. 이는 여성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시련이 젠더적이라는 것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In this paper, Sylvia Plath (1932-1963)'s novel “The Bell Jar” (1963) was interpreted as a bildungsroman from the female perspective. In coming-of-age novels, the experience of a metropolitan city is a rite of passage where a protagonist challenges oneself and overcomes the difficulties that arise. However, in “The Bell Jar,” a female protagonist's trip to New York ended with exhausting experiences without any adventures or achievements. This paper observed the frustration and feeling of failure of that protagonist as it related to a society where young women were welcomed only as “ladies”. Specifically, this paper points out that the term “lady,” which was generally used to refer to an adult woman, was problematic. It reflects the heterosexual-patriarchal society during the postwar period in the U.S.A, which shows that women were not considered as subjects of growth, but as guardians of the family and were fantasized as “housewives”. The struggles of the female protagonist had experienced as a lady, which limited her ability to grow up, show that even the act of physically running away from home or college did not provide an escape from the gender-oriented interpellation. It also noted that the only way to be free from the ideal lady model was when Esther became a woman in a public scandal. This implies a dilemma where women can only hope to develop unique characters by taking the risks of being alienated from central society. Through exploring “The Bell Jar,” this paper attempted to reveal that the story of women's growth is a battle with a society where women are not considered subjects of growth. This paper finds meaning in show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allenges women experience in the process of growing up and the conflict between gender n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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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슬기 ( Seulki Park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91-12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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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에서 바로크 시학의 특성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을 모던 바로크로 이해한 사유들을 참고하면, 모던 바로크는 근대에 대한 미적 태도이며 문학적 양식으로서 알레고리를 취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근대적 이성과 자본주의의 양면성을 목도하면서 세계를 폐허로 간주하여 이를 파편적 알레고리로 포착하고자 하는 예술의 정신적 태도다. 193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이자 시론가인 김기림은 당시의 한국의 근대를 식민지적 특수성의 발로로 보기보다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인식했다. 그는 유럽의 모더니스트들처럼 근대의 양면성을 파멸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이 세계 자체에서 구원적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재현적 언어를 거부하는 알레고리적 양식, 세계의 극장화와 같은 전략을 통해 시인을 알레고리스트로서 재발견한다. 근대 세계에서의 시와 시인의 존재론에 관한 그의 발본적 사유를 통해 한국 모더니즘의 정신적 구조로서 모던 바로크 시학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서구의 모더니즘과 한국의 모더니즘을 원본과 번역본의 관계로 놓고 이를 비교적으로 고찰하는 차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글은 김기림의 알레고리를 근대적 알레고리론에 비추어 분석하고, '피에로'로서의 시인 개념을 바로크 비애극의 군주 형상에 비견시킴으로써 한국 모더니즘에서의 바로크시학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는 또한 근대에 대한 피상적 인식으로 인해 단순한 기교주의에 머물렀다고 평가되었던 김기림의 모더니즘을 재평가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Baroque poetics in Korean modernist poetry in the 1930s. When considering the opinions that interpret avant-garde art in the early 20th century as modern baroque, it can be defined as an aesthetic attitude toward modernity that perceives allegory as a literary style. Modern baroque is the mental attitude of art that, upon witnessing the duality of modern reason and capitalism, considers the world to be in a state of ruin and attempts to capture it as a fragmented allegory. Kim Ki-rim, a representative modernist poet and poetic theorist in Korea during the 1930s, recognized Korea's modernity in the context of world history, rather than seeing it as an expression of colonial specificity. Like European modernists, Kim tries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salvation in this world, while also recognizing the destructiveness of modernity's double-sided nature. He rediscovers the poet as an allegorist through strategies such as an allegorical style that rejects appropriative language and the theatricalization of the world. Through this radical view on the ontology of poetry and poets, modern baroque poetry can be perceived as the psychological structure of Korean modernism. This article analyzes Kim's allegory in the context of modern allegorical theory. Also, by comparing the concept of a poet as a pierrot to the figure of a monarch in baroque tragic theater, this study examines the possibilities of baroque poetry in Korean modernism. Such efforts are also conducted to re-evaluate Kim Ki-rim's modernism, which was evaluated to have been limited to simplified mannerisms due to his superficial awareness of mod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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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향경 ( Xiangqing Song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25-15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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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포로의 서사가 체험 중심의 서사에서 메타서 사로 전환되는 변화에서 출발하였다. 2010년대에 발표된 최수철의 소설 「거제, 포로들의 춤」과 강형철 감독의 영화 <스윙키즈>는 모두 사진작가 베르너 비숍이 1952년에 찍은 사진 한 장을 출발점으로 한다. 사진, 소설과 영화에는 모두 춤추는 포로가 등장한다. 춤은 '반공'과 '친공'이라는 양자택일의 이데올로기적 선택의 시작을 늦춰주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화해의 순간으로 나아가는 장치로 등장한다. 최수철은 사진의 경유를 통해 아버지 세대와 정신적 동일성을 체험하고 '빙의'의 방식을 빌어 아버지의 역사를 다시 쓰는 과정에 한국전쟁에서 가려졌던 주체성 복구에 나선다. 영화 <스윙키즈>의 감독 강형철은 영화에서 포로수용소를 둘러싼 공적기억과 사적기억의 충돌을 통하여 공적 서사에 균열을 낸다. 또한 국군을 노출시키지 않음으로써 한국 전쟁을 국제전으로 부각시키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다재다능한 '친구'를 학살한 비극이라는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재해석한다. 이와 같은 한국전쟁에 대한 창작은 냉전 지배 이데올로기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넘어 댄스라는 예술의 층위로 폭넓은 연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도래할 평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This study is based on the transition of the prisoner's narrative, set during the Korean War, from an experience-oriented narrative to a meta-narrative. Both released in the 2010s, Choi Soo-chul's novel Geoje, Dance of the Prisoners and Kang Hyung-chul's film Swing Kids are based on a photo taken by the photographer Werner Bischof in 1952. The photograph, novel, and film all feature dancing prisoners. Here, dance appears as a device that delays the choice between the ideologies of “anti-communism” and “pro-communism” and shifts from a situation of violence to a moment of reconciliation. Choi experiences psychological identification with his father's generation through photographs, and in the process of rewriting his father's history using the “possession” method, he sets out to restore subjectivity, a task his father's generation could not complete. Swing Kids shakes the certainty of official history through the conflict between public and private memories surrounding the POW camps. The film highlights the Korean War as an international affair by not revealing Korean soldiers and reinterpreting the trauma of war based on the tragedy of slaughtering a “friend.” The contemporary way of creating the Korean War goes beyond neutralizing the Cold War's governing ideology and shows a broad solidarity through the art of dance and an aspect of the peace to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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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은경 ( Eunkyung Shin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9-18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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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와 명나라의 문인 풍몽룡의 의화본 소설 「장자휴고분성대도」를 여성인물의 심리를 중심으로 비교하고자 한 연구이다. 비교의 근거가 되는 것은 여성인물 '데스데모나'와 장자의 妻 '전씨'가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을 두었다는 점, 그로 인해 두 인물 모두 죽음―한쪽은 타살, 한쪽은 자살―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또한 두 작품이 이루어진 시대적 상황이 가부장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비교의 근거가 된다.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은 집단적 규범이나 가치에 위배되는 개인적 욕망을 억누르는 한편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의 탈을 쓰고 남성에게 순종하면서 예속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이 글에서는 여성이 지니는 이 두 모습-가부장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자아의 모습과 집단의 가치규범에 부응하는 자아의 모습―을 각각 '그림자'와 '페르소나'라는 용어로 포괄하여 심리적 관점에서 양자의 역학관계를 조명하였다.


This article intends to explore Shakespearean drama “The Othello” and “The Story of Jangja Who Accomplished Great Awakening by Playing the Jar,” a uihwabon novel by Pung Mongnyong who was active in Myung Period, from the standpoint of comparative study and especially focusing on the mental state of women characters. What are common to these two works is that two women's husbands are possessed with infidelity delusion, thereby causing their wives's deaths; one is killed by her husband and the other commits suicide. Women in a patriarchal society in which these works are based on could do nothing but obey men― usually father and husband―and patriarchal canons and values, following orders, commands or instructions of the society. To the extent that women's desires, opinions, and behaviors were repressed on the one hand, and masks of good daughter and subordinate wife were rising to the surface on the other. With employing these two aspects of women's lives as Jungian terms of “shadow” and “persona”, this article investigated the dynamics of the two asp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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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하림 ( Harim Lee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87-20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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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작가 안나 제거스의 망명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 『통과비자』에서 편지의 부유하는 궤적이 소설을 어떻게 작동시키며,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인 '망명'과 조우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통과비자』는 편지의 내용을 직접 보여준다거나 서간문 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 편지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매체다. 소설 속 시공간은 망명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난민의 이동에 따라 구성되면서 편지의 이동과도 궤적을 같이한다. 주인공에게 잘못 도착한 편지는 권태로운 주인공의 삶에 균열을 내는 중요한 사건임과 동시에 '도주(망명)'라는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다른 주체라는 점,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시공간의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편지는 소설의 위기를 조성하는 반면 인물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편지라는 글이 지니는 특수한 성격을 바탕으로, 『통과비자』에서 편지의 부유하는 움직임은 전쟁 후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망명의 시공간을 구성하는 동시에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how the movement of letters in Transit by Anna Seghers encounters exile, the desire of the characters in the novel. Transit does not directly show the contents of the letter or take the form of an epistolary novel, but the letter is an important medium that drives changes in the mind and behavior of the character in this work. The time and space in the novel are constructed in accordance with the movement of refugees who have to pass borders to defect,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in line with the movement of letters. The wrong arrival of letters is an important event that cracks the boring life and simultaneously is a way to realize the main character's desire for escape. In that the sender and the receiver are different agentss, and that there is a distance between the sender and the receiver, letters creates a crisis of the novel, while being savior for the character. Based on the particular characteristics of the letter, it can be seen that the floating movement of letters in Transit constitutes and represents the space-time of exile in the post-war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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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하연 ( Ha-yun Jung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07-23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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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사적 현재는 영미권을 비롯한 유럽어권에서 두드러진 현대소설 양식으로 자리 잡은 반면, 한국문학에서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는 작법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현저한 차이가 현재시제를 사용하는 소설의 국문번역에 어떠한 양상으로 반영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분석 대상 텍스트인 영국 작가 힐러리 맨텔의 부커상 수상 연작소설 두 편 『울프 홀』 그리고 『튜더스, 앤 불린의 몰락』은 두 명의 다른 번역자의 번역으로 출간되어 현재시제 서사 기법의 번역 양상을 나란히 비교 검토할 기회를 제공한다. 본 연구는 서사학자 플루더닉이 자유간접문체의 일환으로 그 효과를 파악하는 서사적 현재관련 이론을 비롯하여, 신진학자 게바우어가 현대 소설에서 현재시제 사용은 단순히 시간적, 문법적 선택이 아닌 서사적 세계 구축의 주요 요소라고 보는 관점을 토대로 맨텔의 작품에 나타나는 서사적 현재의 특성을 상세하게 규명하는 한편, 두 편의 번역본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번역양상의 분석을 수행한다. 두 번역본의 비교 결과, 한 편은 시제를 과거시제로 변환하여 번역하였고 한 편에서는 현재시제를 국문본에서도 유지하고 있는 차이가 확인되었으나, 현재시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칭, 자유간접화법, 구어체 사용 등의 번역에 있어서는 두 편의 번역본 모두 번역전략의 혼선을 보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즉 이는 아직 서사적 현재가 국문으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과 실험이 국문소설, 국문번역에서 아직 진행 중이며, 한국의 작가와 번역가 모두에게 중요한 서사미학적 고민과 도전을 안겨주고 있는 것으로 고찰된다.


This research examines two respective Korean translations of Hilary Mantel's two linked novels, Wolf Hall (2009) and Bring Up the Bodies (2012), in order to examine how present-tense narratives are translated from English into Korean. While present-tense narratives have become a wide-spread phenomenon in English literature, there are very few works of Korean fiction written in the narrative present and this research aims at carrying out an initial descriptive analysis of how translators have been handling the task in the face of such limitations in resource. This research relies on the narratological theories of Monika Fludernik, Renate Brosch and Carolin Gebauer regarding present-tense narratives to demonstrate the effects of the narrative present in Mantel's novels. The analysis of the two translations finds that while one translation switches the narrative to past tense and the other maintains the narrative present, the two translations also share strategies that reveal the translators' unstable handling of the two novels' internal focalization and free indirect style, which are both closely connected with Mantel's effective use of the narrativ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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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윤경 ( Yunkyung Cho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39-28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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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초현실주의의 제2 진원지이자 고유한 초현실주의를 발전시킨 벨기에 초현실주의를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벨기에 초현실주의는 브뤼셀과 에노지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브뤼셀 그룹은 파리 그룹과는 다른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 파리 그룹이 문학을 배격하면서도 문학 작품을 계속 출간한 것과는 달리, 브뤼셀 그룹은 소책자, 잡지 등에 패러디, 파스티슈 등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함으로써 문학을 탈신비화하고 작품의 완결성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이 모순된 것이 모순으로 여겨지지 않는 지고의 지점을 향한 종합을 추구했다면, 브뤼셀의 초현실주의자들은 존재와 일상과 언어가 조각나 있는 파편성 자체에 주목하면서 이를 기워내고 다시 쓰는 과정을 전면화했다. 에노 그룹의 경우에는 파리 초현실주의와 시적,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활동하면서 초현실주의의 경이로움, 욕망, 주관과 객관의 변증법을 탐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파리 초현실주의자들보다 더욱 투쟁적, 냉소적이었고, 규칙을 더욱 철저하게 배격하면서 초현실주의의 반순응성과 혁명 의식을 발전시켰다.
벨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은 고유한 초현실주의 미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꿈, 무의식, 자동기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오히려 현실, 일상, 의식, 다시쓰기에 집중했다. 이는 초현실주의를 무의식의 탐구와 동일시 여겼던 기존의 개념을 재고하게 만들면서 초현실주의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또한 이러한 벨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의 활동은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다른 방식을 통해 오히려 초현실주의의 이념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는 의의를 갖는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시는 만인에 의해 써져야 한다'는 로트레아몽의 강령을 내세우면서도 작가의 이름을 걸고 독자적인 시를 발전시켰다. 반면 벨기에 초현실주의는 작가의 개념을 지우고, 출판을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작품과 작품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문자 그대로 만인에 의해 써지는 시를 실천했다. 브르통은 로트레아몽의 “해부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처럼 아름다운” 것을 미학으로 삼아 우연한 만남이 촉발하는 “경련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을 내세웠다. 반면 벨기에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우연의 힘을 빌리지 않고 평범한 현실을 예기치 않은 상황에 위치시킴으로써 의도적으로 '충격적인 오브제(objet troublant)'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들은 '꿈' 대신 '현실'과 '일상'에 주목하면서 더 의도적으로 평범함을 자극했고, 현실과 언어와 형태들을 체계적으로 용도 변경하거나 전복시킴으로써 초현실의 세계를 탐색했다.


L'étude vise à éclairer le surréalisme en Belgique, en tant que deuxième origine du surréalisme développé dans une forme propre et singulière. Le surréalisme belge a émergé de différentes manières à Bruxelles et à Hainaut.
D'abord le groupe de Bruxelles a exploré son propre domaine, distinct du groupe de Paris. Contrairement aux surréalistes parisiens qui prétendaient réfuter la littérature tout en publiant continuellement des oeuvres littéraires, les surréalistes bruxellois ont totalement mis en doute la littérature en diffusant leurs écrits à l'état de brochures, de magazines, etc., et en détournant les oeuvres des autres écrivains à l'aide de techniques de parodie, de pastiche en vue de démystifier totalement la littérature.
Dans le cas des membres du groupe de Hainaut, ils ont exploré le merveilleux, le désir, la dialectique du subjectif et de l'objectif, tout en étant étroitement liés au surréalistes parisiens, à la fois poétiquement et politiquement. Pour autant, ils étaient plus militants, plus cyniques que les surréalistes parisiens, s'attachant à développer l'anticonformisme et la conscience révolutionnaire propre à leur groupe.
Les surréalistes belges ont développé une esthétique surréaliste unique. Ils ont mis en doute les rêves, l'inconscient et l'automatisme, caractéristiques les plus importantes du surréalisme français tout en se concentrant plutôt sur la réalité, le quotidien, la conscience et la réécriture.
Ces activités belges ne cherchaient pas vraiment à s'opposer au surréalisme français, mais plutôt à pousser l'idéologie du surréalisme à l'extrême. Les poètes surréalistes français ont écrit et publié leurs oeuvres avec leurs propres noms, même s'ils prétendaient suivre les mots d'ordre de Lautréamont : “La poésie doit être faite par tous. Non par un.” Au contraire, les surréalistes belges ont littéralement embrassé ce mot d'ordre, en faisant disparaître leur nom d'auteur dans le texte et en pastichant d'autres oeuvres afin d'écrire la poésie avec tous.
Breton a mis en valeur la beauté convulsive en suivant en tant que modèle la phrase de Lautréamont : “beau comme la rencontre fortuite sur une table de dissection d'une machine à coudre et d'un parapluie.” Mais les auteurs surréalistes belges ont délibérément cherché à créer des “objets choquants” en positionnant la réalité ordinaire dans des situations inattendues.
En outre, si les surréalistes français avaient poursuivi une synthèse vers le point suprême où les contradictoires cessent d'être perçus contradictoirement, les surréalistes belges ont laissé la réalité partielle en tant que telle, et ont essayé plutôt de la réécrire et de la recoud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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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요환 ( Yohwan Choi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85-31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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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볼테르는 『포푸리』라는 한 편의 콩트를 출간한다. 이 단편은 볼테르의 작품 중 가장 모호하고 독특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얼마간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평이한 이해를 가로막는 원인은 무엇보다 형식적 조건에 있다. 작품은 서두에 매겨진 숫자로만 구분되는 열다섯 편의 단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장들의 순차적 배치와는 반대로 서사는 선형적인 모형을 따르지 않는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한 편의 알레고리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 서사를 담당하고 있는 가운데, 종교적, 철학적 성찰, 당대 가톨릭 수도회에 대한 비판 등이 단속적으로 끼어든다. 작품의 독서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서로 낯설어 보이는 단장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인력, 그리고 그 인력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은 종교에 대한 전면적 비판의 의도이다.
작품의 제목과 구성은 볼테르가 특정한 글쓰기와 사유 형식으로서 미셀라네의 전통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 기원을 고전시기까지 소급할 수 있는 미셀라네의 본질은 구성의 비체계성, 소재와 형식의 다양성, 유희적 목적과 결합된 문헌학적 동기에 있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포푸리”는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의 문인들에 의해서도 실천되던 미셀라네의 근대적 변용이며, 그러한 문학적 실천을 지칭하는 속명이기도 했다. 본고는 볼테르의 철학적 작업이면서 동시에 미학적 성찰의 결과물인 이 작품이 전통적 양식과 맺고 있는 관계를 검토하면서,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을 목적으로 삼는다.


En 1756, Voltaire publie un conte intitulé, Pot-pourri. Un des contes les plus mystérieux, voire extraordinaires, Pot-pourri échappe à l'attention des dix-huitièmistes. Ce qui en empêche l'interprétation facile se trouve dans la structure du conte, qui consiste en quinze fragments qui, à leur tour, ne se distinguent que par le chiffre romain mis à la tête du chaque fragment. Contrairement à leur disposition successive, le récit ne suit pas le modèle linéaire. Un récit allégorique des personnages typiques de la commedia dell'arte se déroulant au centre de l'oeuvre, la critique de la religion chrétienne, la méditation philosophique, l'attaque contre la congrégation catholique intervienne d'une façon discontinue. Au cours de la lecture apparaît la force attractive qui s'opère entre les fragments tandis que l'intention voltairienne de la critique totale du Christianisme se trouve manifeste.
Or, la structure fragmentaire et le titre du conte suggère que Voltaire est conscient d'une tradition littéraire dont l'origine remonte à l'Antiquité: les miscéllanées. L'essentiel de ce genre réside dans l'absence de l'organisation, la diversité des matières traitée, le motif philologique joint à la fin récréative. Le pot-pourri, que choisit l'auteur comme le titre de son oeuvre, peut être considéré comme les miscellanées à la dix-huitièmiste. En examinant la relation que tient ce conte avec cette tradition de longue date, notre étude vise à la compréhension générale de l'oe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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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은 ( Eun Kwon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5-3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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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재조선 일본인 작가와 한국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를 포괄하여 경성의 '남촌'이 재현되는 양상을 비교하고, '남촌'의 재현이 한국 근대소설에서 갖는 서사적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남촌'은 한국 근대소설에서 가장 재현되기 어려웠던 장소였지만, 동시에 재조선 일본인 작가들에 의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재현된 장소였다. 경성의 이중도시적 특성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장소가 바로 '남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식민지 도시 경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과 재조선 일본인 작가들의 작품을 다룸으로써 경성의 총체적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인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경성의 이중 도시 구조로 인해 한국 작가들과 재조선 일본인 작가들이 각각 경성의 '절반'만을 중점적으로 재현하여 왔다. 그로 인해 경성의 총체적 이미지를 그리는 텍스트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두 그룹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토대로 한 불완전한 지도를 겹쳐 보면, 경성의 총체적인 상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
경성 문학지도를 겹쳐보면, 일본인보다 조선인들이 내부경계에 대해 더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지도가 중첩되는 구역인 본정, 명치정, 황금정, 신정 등은 두 민족 간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접촉 지대'라 할 수 있다. 이외의 남촌 구역은 조선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금지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인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공포'와 '두려움'은 동일한 공간에 존재했던 비가시적인 조선인들의 등장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염상섭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조우하거나 경계를 넘으면서 발생하는 서사적 긴장감을 토대로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작가였다. 반면 송영은 남촌에 함께 머무르지만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못하고 유리되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김남천은 대경성 확장 이후 자본의 힘에 의해 경성의 공간질서가 새롭게 변모하는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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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민현주 ( Hyun Ju Min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37-7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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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게오르그 짐멜의 사유에서 드러나는 상품 세계와 도시산책자를 분석한다.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가속화된 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자본주의적 질서는 근대의 일상에 완전히 침투하였고 특히 대도시 공간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가운데 근대의 일상적 경험이란 실상 자본주의적 현실을 체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도시는 상품으로 가득 찬 시장으로 급격히 변모했으며 근대적 일상의 핵심은 상품이 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을 견지해 상품과 관련해 짐멜이 근대적 일상을 고찰하는 방식을 분석할 것이다. 특히 파편에서 출발하면서도 총체를 배제하지 않는 그의 독특한 사유에 주목하며 상품 분석에서도 이러한 사유가 일맥상통함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짐멜의 에세이 「1896 베를린 무역 박람회」(Berliner Gewerbeausstellung, 1896)를 면밀히 살핌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둘째, 근대 대도시 일상의 담지자로서 짐멜 이론에 나타나는 도시산책자의 군상을 분석할 것이다. 도시산책자의 인격적 구조 형성과 관련해 짐멜 이론 내에서 화폐뿐만 아니라 상품의 위상을 「대도시와 정신적 삶」(Die Großstädte und das Geistesleben, 1903)을 중심으로 검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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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제철 ( Jecheol Park ) , 문재철 ( Jae Cheol Moon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77-11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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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스피노자, 들뢰즈, 브라이언 마수미 등이 전개시킨 정동의 철학을 통해 VR 영화의 공감의 윤리학 대신 정동의 윤리학을 제안함으로써 VR 영화의 경험이 갖는 윤리적 잠재력을 재이론화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필자는 VR 영화 특유의 몰입 경험이 단순히 관객의 공감능력 증대로만 귀결되지 않고 주체의 자기-동일성의 폐쇄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타자-되기를 가능케 하는 윤리적 역량 증대에 기여함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필자는 VR 영화가 관객의 공감 능력 증대에 기여한다는 주장들과 이에 대한 비판적 반론들을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 VR 영화의 공감의 윤리학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을 생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필자는 VR 영화의 정동의 윤리학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이를 탐구하기 위해 먼저 스피노자, 들뢰즈, 마수미가 제안한 정동의 철학의 핵심 논점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다음으로 필자는 전통적인 영화와 비교하여 VR 영화가 갖는 미학적 차별성―세계에 대한 복합적 접근, 기분이나 분위기의 표현, 임의공간의 편재성 등―이 관객에게 정동을 생산하는데 어떻게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지를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김진아의 <동두천>(2017)을 사례로 VR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공감능력 신장을 넘어 타자-되기를 경험하는 정동의 윤리를 독려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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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서영 ( Seoyeong Shin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11-15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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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쓰 리이치의 『상해』는 상해의 일본계 방적공장에서 벌어진 중국인 여공살해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반일 운동으로까지 확산된 5·30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이다. 일본군의 산동출병으로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개조사는 요코미쓰의 『상해』와 마찬가지로 5·30사건을 다룬 마에다코 히로이치로의 르포르타주 「중국은 움직인다」도 동시에 연재하기로 기획한다. 이런 개조사의 편집 의도는 독점자본과 군사력을 앞세운 일본침략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주인공 산키는 노동자의 신체가 일으킨 5·30사건에 공감하면서도 식민 도시 상해에서 반일운동이 일어나자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국적을 지닌 '신체'를 의식하고, 국가에 귀속되는 자의식의 과잉을 표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산키의 자의식 발견은 요코미쓰가 주장하는 '복안(複眼)적인 의식'에 근거를 둔 순수소설의 발현이다. 요코미쓰는 마에다코가 묘사하고 있는 현실세계의 상해에 살고 있는 은행원 산키와 터키탕에서 일하다 결국 매춘부로 전락한 오스기를 통해 '국가'를 매개로 한 근대국가 시스템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는 5·30사건 속에 묘사된 인간 서술을 통해 인간은 “경제와 내셔널리즘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소외되는 상품적 기호에 불과하다”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조명하고자 한 『상해』를 요코미쓰가 지향하는 순수소설의 시초가 된 작품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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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영재 ( Youngjae Yi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53-19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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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영화 <대괴수 용가리>는 이 영화가 구성해내고 있는 지정학적 상상력 내에서 오랫동안 한국전쟁과 그 결과 형성된 이 분단국가의 강렬한 냉전적 상상력의 우화로서 읽혀왔다. 그런데 이 괴수는 한국영화사 안에서 예외적 형상이지만, 피폭괴수물이라고 할 수 있을 일종의 '공통' 장르의 소산이기도 하다. 1950년대 미국 SF영화에는 수많은 피폭 뮤턴트들이 횡행하였다. 이 장르의 가장 위대한 '캐릭터'로 등재될 <고지라>는 1954년 일본에서 등장한 이래 1960년대 캐릭터의 극적인 전환을 거친 채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갔다. 한편, 피폭괴수는 두 개의 테크놀로지컬한 계보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괴수들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면 일본의 경우, 모형을 만들고 이를 사람이 뒤집어씀으로써 해결하는 방식, 즉 수트형 괴수로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각각의 테크놀로지의 전통에 기반에서 이와 같은 피폭괴수의 테크놀로지적 계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냈으며, 이로써 일본 피폭괴수와 미국 피폭괴수를 결정적으로 차이지운 핵심 표상이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1967년의 순간에 일본 '특촬'의 기술진을 초빙하여 만들어진 <대괴수 용가리>가 지닌 형상의 공통성과 특수성은 무엇이며 그것은 각각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글에서는 1945년의 해방과 1950-1953년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성립된 한국에서의 핵에 관한 태도를 추적해나가며, <대괴수 용가리>가 보여주고 있는 피폭괴수라는 한국영화사 안에서의 이 예외적 형상의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다. 이 형상은 냉전의 최전선 국가의 호전성 속에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 원전국가로 나아가고 있던 1967년 한국의 핵에 관한 '비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대괴수 용가리>는 피폭괴수의 계보 속에서 무기로서의 핵의 파괴성을 일별하는 한편, 그럼에도 그것이 능히 조절가능하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과학입국을 선언한 한국의 어린 남자아이는 빛이 나오는 기구로 용가리를 춤추게 한다. 그리고 이 믿음 위에서 알다시피 이제 곧 한국 역시 원전국가로 이동해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풍요와 번영의 핵 이미지를 그 어떤 의심도 없이 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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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선아 ( Seon-ah Chung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193-22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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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 르베르디와 니체의 단장에 나타난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예술 고유의 실재 인식을 고찰하는 한편, 그것이 인간에게 온전한 자기 인식에 이르게 함으로써 자유의지로 감각 현실의 한계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창조하게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있다. 서구 근대의 구축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삶의 측면들은 인식할 수 없으므로 타당치 않은 것으로 통념화 되어 배제되었다. 그것들을 진지하게 다룬 것은 예술이다. 니체는 진리를 추구한 형이상학의 인식오류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예술을 제시한다. 그에게 예술은, 진리의 구현이 아닌, 창조 의지의 발현이다. 지각할 수 없는 실재를 인식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물에 인식의 빛을 비출 때 드리워지는 그림자다. 예술형상화는 그 그림자다. 예술의 실재 인식은 반영이라는 속성을 띤다. 삶과 예술의 반영 관계에 주목하는 르베르디의 성찰은 예술을 실존의 미적 정당화라고 역설한 니체 철학에 맞닿아있다. 이들의 미적 성찰은 예술을 통해 인식영역을 무한히 넓힌다는 점 그리고 예술 개념 자체를 삶의 예술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삶에 절실한 인식의 길을 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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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예은 ( Yeeun Park )

발행기관 : 한국비교문학회 간행물 : 비교문학 87권 0호 발행 연도 : 2022 페이지 : pp. 227-26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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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바이오폴리틱스 면역 이론을 토대로 빅토리안 시대 소설인 『드라큘라』를 해석하며, 19세기 대영제국의 작가인 브램 스토커의 글에서 종종 20세기 독일의 나치로만 대표되던 우생학적 관점을 찾는다. 당시 타자를 향한 두려움과 드라큘라 백작의 구현을 연결지었을 때, 소설 속 타자성은 살균하여 제거되어야 할 병리학적 요소로 그려진다. 이 글은 19세기 유럽 사회에 만연했던 일종의 퇴행성 이론인 디제너레이션 담론들 - 세자레 롬브로소의 범죄이론, 몰리 로버츠의 유기적 사회이론 등의 생명정치적 영향을 다룬다. 에스포지토에 의거하면 디제너레이션, 즉 퇴보적이며 타락한 “야만인”을 감염병의 요인으로 지목하는 풍토는 나치 정권 이전인 빅토리안 영국에서부터 존재해 왔다. 『드라큘라』는 얼핏 이러한 당대 공동체의 우생학적 관점에 동조하는 듯 보이나, 동시에 그와 같은 타자 배타적, 양분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이 기저에 내제되어 있다. 면역주권자인 반 헬싱의 무리가 타자인 뱀파이어를 감염요소로 여겨 박멸하려는 시도는 종내에 자기파멸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이 분석은 “다름”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 심리를 관통한다는 사실을 전개하며, 따라서 문화권과 시대를 막론하고 타자와 퇴행적 질병의 연관관계가 형성됨을 시사한다.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드라큘라』 속 디제너레이션에 대한 집단적 대응을 기각하는 방식 읽기는, 타자성을 마주하는 공동체들이 향후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한 암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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