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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난한 사람들』: 가난의 심리학 또는 어느 연인들의 비에 -도스토에프스키 연구 노트 ③-

저자 : 정선태 ( Jeong Seon-tae )

발행기관 : 국민대학교 어문학연구소 간행물 : 어문학논총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41-51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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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or people, which is sympathetic to the tragic love and destiny of the poor lovers living here in the background of the slums of Petersburg, is a milestone pointing to the literary path of Dostoevsky. In this work, Dostoevsky not only understands poverty as a personal, human tragedy, but also analyzes it in a special mental state. Poverty means helplessness, psychological pressure, and humiliation. Thus, poverty is the number one crime and shame to disrupt the beautiful nature of man and cut off the flow of productive relationships. Dostoevsky does not view poverty from a sociological or political economic point of view. The important thing is the psychology of the poor. Material poverty leads to emotional poverty and mental poverty, and those who suffer from poverty eventually go to the destruction of psychological stability and the destruction of soul. To overcome this poverty, Dostoevsky`s "Russian" solution is to restore the "joy of common 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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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난한 자에 대한 암브로시우스의 교훈: "습관적 선행과 유용함"

저자 : 조병하 ( Byoung Ha Cho )

발행기관 : 한국복음주의신학회 간행물 : 성경과 신학 58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185-21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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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후기 로마제국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더불어 "가난과 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를 연구한 글이다. 이미 키프리아누스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선행과 자선에 대한 교훈을 연구 하여 학술지에 기고한 바 있다. 그 후속으로 암브로시우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가르침을 연구한다. 그의 글 『토비아에 대하여』와 『이스라엘 사람 나봇에 대하여』, 『사역자들의 의무에 대하여』는 이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시시엔스키는 암브로시우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해를 예전적인 화려함에 견주고, 리차드 핀은 당시 로마 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고전적인 사상과 이미 헬라 교부 바실레이오스가 이루어 놓은 견해를 개작하였다는 데 맞추고 있다. 그러나 다스만은 이전에 가난과 궁핍의 문제를 소유한 이들의 부의 문제로 보았던 것을 목회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그의 글 『토비아에 대하여』와 『이스라엘 사람 나봇에 대하여』에서 가난과 부의 문제를 고리대금업의 고금리와 부자의 탐욕으로 보고 있다. 그는 매우 일상적인 목회의 테두리 속에서 매우 온건하게 가난과 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자선(사랑)과 고대사회의 관용이 구별된다. 4세기에는 가난과 부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크게 변화를 가져왔다. 키프리아누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행과 자선을 세례 후에 지은 죄와 허물을 속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암브로시우스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사역자들의 덕목으로 열거하고 있다. 키프리아누스가 물질적인 가난에 집중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암브로시우스는 영적인 가난과 ``가난과 궁핍``이 주는 복된 요소들을 일깨운다. 암브로시우스에게 있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습관적인 선행이어야 한다.


Diese Schrift ist der Forschungsbeitrag, der zeigt, welche Lebensfuhrungen die uber die Armut und den Reichtum Christen in dem spatromischen Reich hatten. Im voraus habe ich Cyprianus unter dem anhlichen Thema nachgeforscht: "Zur Lehre von Cyprianus uber die gute Werke und Almosen fur die "armen" und "bedurftigen" Leute". Diese gibt es nacheinander. A. E. Siecienski schaut auf "Defence of liturgical Splendor" bei Ambrosius, R. Finn schrieb, daß Ambrosius romisch-klassische Tradition und den Gedanke des Basileios von Caesarea plagiierte. Aber E. Dassmann tritt dies Thema als pastorales Problem heran. Zum Forschungsthema d.h. ``Armen und Reichen`` bei Ambrosius untersuche ich besonders seine drei Schriften ``De Nabuthae``, De officiis ministrorum``, ``De Tobia``. Bei Ambrosius sind Wurzel allen Ubels Habsucht(avaritia) und Wucher(usura). Im Gefolge der Habsucht gedeihnt der Wucher, der den Armen in die Enge treibt. Bei Cyprianus konnten die Sunden, die Christen nach der Taufe begehen, durch das Almosen vergeben werden. Aber bei Ambrosius ist es eine standige und sittliche Tugend der Christen und Priester. Ambrosius konnte den Gegensatz von Armut und Reichtum spiritualisieren und eschatologisch relativie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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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난한 여성을 위한 조직인 ‘여성이웃집단’의 성격변화와 그 의미: 께랄라(Kerala)주 꼬치(Kochi)시를 중심으로

저자 : 김영진 ( Kim Young Jin )

발행기관 : 한국문화인류학회 간행물 : 한국문화인류학 52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1-125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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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랄라 주 정부는 1998년 5월 ‘꾸둠바슈리: 께랄라주 빈곤퇴치사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는데, 여성이웃집단은 이 프로그램의 토대를 이루는 조직을 일컫는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여성의 역량강화를 통해 빈곤을 타파하는 데 있으며, 빈곤층 여성의 자치조직인 스스로-돕는 집단과 정부의 관리감독을 함께 묶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꼬치시에서 여성이웃집단 회원은 소규모 기획사업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지 않으며, 이들의 활동은 대체로 저축 및 대출에 한정되어 있다. 한편 현재 이 조직은 중산층 여성의 회원가입 허용하며, 영구 주소라는 새로운 가입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여러 여성이웃집단들이 1회 저축액을 최고한도에 고정함으로써 가난한 여성의 조직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이 웃집단은 빈곤층 여성을 위한 조직으로 기획되었음에도, 현재는 중산층 여성에게 더 유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여성이웃집단은 빈곤층 여성을 위한 조직에서 중산층 여성에게 유리한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격변화는 2001년 이후 정치영역에서 심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와 맞물려 있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주 정부에 의한 여성이웃집단의 ‘탈취’와, 여성이웃집단의 자유주의적 역량강화의 추구가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In May 1998, the State of Kerala launched the program of ‘Kudumbashree: State Poverty Eradication Mission’. The Women’s Neighbourhood Group(below NHG) is the basic organization of the program. The program has a unique structure that connects the self-help group, that is, NHG, and the government offices at diverse levels. The aim of the program is to alleviate poverty through women’s empowerment. In Kochi, NHGs did not make an important achievement in microenterprises, and the activities of the organization are largely limited to ‘thrift saving’ and ‘bank-linkage loan’. At the same time, many NHGs currently allow middle-class women to join the groups and also require ‘permanent address’ as a prerequisite for membership. Furthermore, several NHGs fix the amount of weekly saving to the maximum, which makes it difficult for very poor women to take part in the groups. Such a contradiction is related to Neoliberalization having deepened in the political sphere of Kerala since 2001. To conclude, the NHG was transformed from an organization for the Below Poverty Line(below BPL) into that which is more favorable to non- BPL. The change resulted from the ‘hijacking’ of the NHG by the neoliberal state government, and appeared along with the process that the concept of empowerment was converted from liberating to liberal empower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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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난, 병, 죽음: 삶의 난관 앞에 선 실학자들

저자 : 김선희 ( Seon Hee Kim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26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121-167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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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의 지적 전통의 내부로 진입하는 한 방법으로 개인과 그의 삶의 공동체 내에서의 실천과 지향을 파악하는 경로를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논문에서는 실제 생활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가난, 병, 죽음 등 누구나 실존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삶의 난관에 맞서 성호학파가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실천을 모색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유학에서 가난과 그에 따른 검소한 삶은 자기 수양과 학문 그리고 도덕적 완성의 토대로 여겨져 왔다. 공자 이래로 유학자들에게 검약은 단순히 생계유지나 운영의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원리이자 가치적 지향을 담은 세계관의 문제였다. 병과 죽음 역시 인간적 감정의 차원에 매몰될 수 없는 이념적 지향과 관련된다. 성호는 특히 검약의 강조와 더불어 사치를 비판하는 데 이 두 가지 긴장은 결국 이들이 바라던 공적 세계상과 연관된다. 성호학파에게 검약의 실천은 공적 정치 영역으로 갈 수 없었던 이들이 생활 속에서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성호학파들은 이런 지향 속에 실질적인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삶의 자원을 노동으로부터 해결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사치가 없고 노동의 결과물에 대한 수탈이 없다면 각자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만으로도 천하가 안정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이들에게 노동의 강조는 자원과 지위가 없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립하며 삶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일종의 공적 가치 실현의 방법이었다. 이들은 삶에 필요한 자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가정과 가문을 유지하고, 죽음의 의례에 들어가는 비용과 절차를 줄임으로써 검약을 통해 생활에서 공적 가치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상례(喪禮) 역시 한 개인, 한 집안의 검약이 사회 전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성호 학파의 경계와 비판과 연결된다. 이들에게 신후의 준비는 예의 차원을 넘어서 사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공의 이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검약의 원리로 사회 제도를 구축할 뿐 아니라 가정 생활을 영위하고, 죽음을 준비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삶이 공적 세계에서 기대되는 올바른 삶의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가족이라는 삶의 공동체가 겪는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가난, 병, 죽음의 문제를 통해 성호학파가 꿈꾸었던 올바른 세계에 대한 이념과 실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This paper suggests a way of understanding Joseon`s intellectual tradition, which is a path of perceiving one`s practice and orientation in his community. It focuses on the subject of poverty, illness and death occurring in life-world, namely, in one`s community including their family, relatives and writers. And it covers how Seongho school responded to those trouble of life and what kinds of practices they sought for. By traditions of Confucianism, poverty and thrifty living had been regarded as a foundation of self-discipline, one`s learning and moral life. For confucianism philosophers, the frugalness is not merely a way to make a living but a view of the world including value orientation. Illness and death also concerns ideological orientation, not restricting to humane emotions. Especially Seongho school stressed practicing thrifty and criticized extravagant spending, which connected with a picture of the public world that they hoped. For them, who couldn`t make their ways into public post, the practicing thrifty is a way of practicing the public value in their daily life. They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labor and tried to obtain necessaries of life by the products of labor. No dispensable extravagance, no plundering of the products of labor, they believed that only labor for sustentation could stabilize the whole country. The emphasis on labor is a way for realizing the public value that stabilize the livelihoods of social members who had no social resources. They maintained pedigree minimizing necessaries of life and reducing funeral expenses. Funeral rites also concerns Seongho school`s criticism on how individual frugalness are connected with total society. By the principle of frugalness, they hoped to construct the social system, to manage domestic life, and to prepare for death, because a frugal life was the way of life to be expected right life-style in public world. This study focuses on the subject of poverty, illness and death to consider Seongho school`s ideas and practices on righ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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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난 체험을 통한 현실주의 동화 읽기의 방법 탐구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중심으로

저자 : 임성규 ( Sung Kyu Lim )

발행기관 : 한국어교육학회(구 한국국어교육연구학회) 간행물 : 국어교육 120권 0호 발행 연도 : 2006 페이지 : pp. 379-40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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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변방의 역사: 고아열차와 빈곤 아동의 이미지

저자 : 전동호 ( Chun¸ Dongho ) , 전종설 ( Chun¸ Jongserl ) , 정익중 ( Chung¸ Ick-joong )

발행기관 :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간행물 : 미술사와 시각문화 2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27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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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열차(Orphan Train)’ 운동은 뉴욕 등 동부지역 대도시의 가난하고 집 없는 아이들을 미국 전역의 농촌으로 이주시킨 일종의 빈민 구제 프로그램으로 1854년과 1929년 사이에 총 20만 명가량의 빈곤 아동이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한 것으로 추산된다. 즉 고아나 버려진 어린이들이 뉴욕시 등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의 다른 농촌 지역으로 대량 이주했는데 이동이 주로 열차를 통해 이루어졌으므로 후에 고아열차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회개혁가이자 개신교 목사인 브레이스(Charles Loring Brace, 1826-1890)는 1853년 뉴욕시에 아동구호협회를 설립했으며, 도시환경에서 버림받은 어린이들을 농촌의 기독교가정에 보내는 것이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농촌 생활에 대한 낭만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기술을 배우고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농촌 지역으로 보낼 대담한 계획을 시도하였다. 이는 1854년 최초의 고아열차 운행으로 이어졌으며 아동구호협회의 고아열차 프로그램은 널리 모방되었다. 보스턴과 시카고의 수녀회(Sisters of Charity)는 4만 명의 어린이를 미국 농촌 지역 가톨릭 공동체에 보냈으며, 또한 영국,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본고는 미국의 저명한 삽화가 로크웰(Norman Rockwell, 1894-1978)이 1951년 고아열차를 소재로 삼아 제작한 유화를 지렛대 삼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고아열차의 출현과 전개를 학술적으로 조명한 글이다. 이 고아들은 누구이며 왜 등장했고 고아열차는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한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빈곤 아동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당대 미국의 미술가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본고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시론적 탐구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간 학계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아동복지의 역사와 미술사학의 접점을 탐색하고 학제적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 본고의 일차적 목적이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혹은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아동의 역사는 늘 주류가 아닌 변방의 역사였다. 이제는 아동의 관점에서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재구성하고 재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를 위해서는 아동사와 아동복지학 그리고 미술사학 간의 학제적 협력과 고민이 절실하다.


The Orphan Train Movement was an early American child welfare program that relocated destitute children from crowded Eastern cities of the United States to foster homes located predominantly in rural areas of the Midwest. The orphan trains operated between 1854 and 1929, transporting roughly 200,000 children. Initiated by Charles Loring Brace (1826-1890) and the Children’s Aid Society that he founded in 1853, the program placed homeless, orphaned and abandoned urban children, exceeding 30,000 in New York City alone in the 1850s, in rural homes throughout the country. They were mainly transported to new homes by trains, hence the term ‘orphan train’ was coined. The movement terminated in the 1920s with the advent of organized foster care in America. Brace’s idea that children are better looked after by families at home than in institutions, however, is the most fundamental keystone of modern foster care. Employing the 1951 painting of the orphan train by Norman Rockwell (1894-1978) as an interlocutor, this article explores the history of the orphan train and its visual representations, a subject hardly known in Korean academia. In doing so, it seeks to establish an interdisciplinary partnership between art history and child welfar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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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석남 시에 나타난 삶의 인식 양상

저자 : 황윤진 ( Hwang Yun-jin )

발행기관 : 청람어문교육학회(구 청람어문학회) 간행물 : 청람어문교육 79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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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장석남 시의 변모에 따른 삶의 인식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체 시집을 3기로 구분하여 삶에 대한 시인의 발전적 인식을 이해 하고자 하였다. 장석남의 1기시는 시인의 삶 속 비애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가족과 가난, 삶의 목표 상실 등으로 인해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삶에 비애의 분위기 만연하여 음울한 시적 전개가 나타난 시가 많았다. 2기시는 이전의 삶의 비애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삶의 긍정성을 인식한 시인은 지속적인 자기반성을 통한 자기 성찰을 지향하였다. 개인의 삶에서 더 발전하여 시의 정치를 통해 사회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화자의 시선이 개인에서 사회로 범위를 넓힌 시기이기도 하다. 3기시에 이르면 가장 발전된 삶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드러난다. 『장자』제1편 「소요유」의 개념으로 장석남의 삶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알 수 있다. 시인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 지인至人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세속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궁극의 자유를 맛보고자 하였다. 또 한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현대의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삶의 모습 중 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In this article, I examined the aspects of perception of life according to the transformation of Seoknam Jang's poem. The entire collection of poetry was divided into three periods to understand the poet's developmental perception of life. Jang Seok-nam's first poem started from acknowledging the sadness in the life of a poet. The reality was unsatisfactory due to family, poverty, and loss of life goals. There were many poems in which an atmosphere of sorrow prevailed in life and showed gloomy poetic development. The second period was not frustrated by the sorrows of his previous life, but tried to overcome it in his own way. The poet, who recognized the positivity of life, aimed for self-reflection through continuous self-reflection. He further developed in his personal life and began to recognize social reality through poetry politics. It is also a time when the speaker's gaze expanded the range from individual to society. In the third stage, the poet's perception of the most developed life emerges. With the concept of “Soyoyu” in the first part of 『Jangja』, you can see how Jang Seoknam's perception of life has changed. The poet strives to live his life as an acquaintance who has reached the level of absolute freedom. Without being bound by worldly values, he tried to comply with nature and taste the ultimate freedom. In addition, it showed one aspect of life that is meaningful to modern readers through encounters with real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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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양반전」을 통해 본 18세기 조선의 사회신분 질서

저자 : 계승범 ( Kye Seung-bum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간행물 : 한국한문학연구 81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55-8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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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양반전」을 통해 18세기 조선의 신분 질서를 조명하였다. 먼저 18세기 조선사회의 신분 질서와 관련하여 「양반전」을 해석한 기존 학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양반전」은 18세기 조선의 신분 질서가 동요하고 붕괴하던 정황을 잘 보여주는 증거물로 널리 회자하였다. 일부 반론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조선 후기 신분 질서의 와해라는 인식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양반전」의 내용만으로는 그런 해석을 도출할 수 없다. 오히려 당시 양반이 주도하던 신분 질서가 꽤 강고했음을 보여준다. 「양반전」에는 가난한 정선 양반 외에도 다양한 양반 군상이 등장하는데, 사회 지배층으로서 그들이 현실에서 누리던 신분적 지위는 매우 확고하였다. 가난한 양반을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양반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학계에서 「양반전」을 전통적 사회신분제 철폐를 주장한 작품으로 파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서는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국내 역사학계의 통설처럼 군림하던 일부 학설을 「양반전」 이해를 방해한 주요인으로 꼽았다. 자본주의 맹아론의 허구성, 납속의 실상에 대한 오해, 신분제 ‘동요’론의 허점, 신분의 개념 문제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폈다.


With emphasis on the social status system of Joseon Korea in the mid-18th century, this paper reexamines Yangban-jeon, a satirical short story written by Pak Jiwon in the 1740s, to understand the fact that Pak neither criticized the social status system nor described the reality in which the system was in decline due to the new phase of the socioeconomic development of the time. Many an existing study on the historical meaning of Yangban-jeon never hesitated to accept Yangban-jeon as a literature showing the collapse of the social status system in the eighteenth century despite some criticisms. The content of Yangban-jeon, however, vividly shows that the social status system of the time was working well without serious challenge. A number of diverse ruling yangban elites appears in the story of Yangban-jeon. Many of them still enjoyed their social status as yangban, although some suffered from economic hardship as seen in the case of poor yangban in the Jeongseon prefecture. It is not reasonable to generalize a certain yangban in poverty as if he represents the whole ruling yangban class. Misinterpretations of Yangban-jeon was a product of historical interpretations, prevalent in the 1960s through 1980s, such as the theory of bud of capitalism, misunderstanding of the grain contribution policy and the hereditary social status system, and the ambiguous concept of the social status, among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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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성호 이익의 관혼례(冠婚禮) 의절(儀節) 연구

저자 : 도민재 ( Doh Min-jae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7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5-2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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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성호 이익이 실제 관례와 혼례를 거행하며 의식절차를 정리한 「산절관의(刪節冠儀)」와 「취부의(娶婦儀)」, 「가녀의(嫁女儀)」의 내용 분석을 통해, 이익이 제시한 실용적인 관례와 혼례 의절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익은 관례에서 빈객을 모시는 절차를 생략하고, 삼가례는 한 번으로 간소화하여 관례 시행에 필요한 의복이나 기물 준비에 드는 비용 부담을 줄였다. 이는 예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가난한 집안의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혼례는 시속(時俗)을 따라 친영(親迎)을 하지 않고 신부집에서 혼례식을 거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청기(請期)’도 신랑집이 아닌 신부집에서 청하도록 하고, 폐백과 음식의 종류 및 가짓수를 간소화하여 실용적인 혼례 의식을 제시했다. 이익은 『가례』가 의례 실천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점은 인정했으나, 『가례』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실적인 경제 상황에 맞추어 의례를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가난한 양반이나 일반 서인들이 『가례』를 제대로 따르기 어려운 현실에서, 경제적인 측면에 구애되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의례의 형식을 제시했다. 이처럼 이익은 당시 조선의 현실에 알맞은 실용적인 의례 실천을 추구하여, 형식에 치우친 허례허식(虛禮虛飾)이 아닌 진정한 실학으로서의 예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This paper is a consideration of the coming-of-age ceremony and Marriage ceremony of Sungho Lee-Ik. Lee-Ik argued for the need for Seoingarye for the ordinary people, as the Zhu-Xi`s Family Rituals are a ritual for the nobility. In the Coming-of-Age Ceremony, the procedure for requesting officiating is omitted, and the use of hats three times has been reduced to one time, which has been simplified. In response, reduced the cost of implementing rituals at home and emphasized practicality. The wedding ceremony was held to follow the customs of the bride's house, and simplifying the types of waste bags and food and the number of branches, and offering a practical wedding ceremony. He acknowledged that the Zhu-Xi`s Family Rituals was a standard for practice, but rather than being tied to the form of ancient rituals, it was more important to carry out rituals in accordance with realistic economic conditions. So, based on the Zhu-Xi`s Family Rituals, he established a practical rite suitable for the reality of Choson Dynasty. Therefore, he proposed a practical ritual format that ordinary people could implement regardless of economic conditions. As such, his studies reflect the practicality of scho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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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박정희 잔재의 사회적 기원에 관한 연구

저자 : 문상석 ( Moon¸ Sangseok )

발행기관 : 동양사회사상학회 간행물 : 사회사상과 문화 24권 1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53-200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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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개인의 변화가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끌 수 있다고 믿었던 일제 강점기 사회진화론자와 개량주의자들이 한국인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부정적 인식을 공유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4⋅19 혁명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기회는 박정희의 통치와 더불어 사라졌다. 박정희의 집권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으로 사회화된 한국인 부역자들이 한국의 저발전을 한국인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한국인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는 대신 외세에 기댄 채 일본식 근대화를 추진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가난과 저발전의 사회 구조적 요인은 배제되었고 개별 한국인들의 열등성이 한국의 저발전의 주요인으로 비난 받으면서 인간개조의 바람이 일었다. 박정희는 한국인을 개조하여 근대화를 추진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집권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 연구는 인간개조를 위해 박정희가 도입한 정량 중심의 성과주의, 무한 경쟁, 서열과 위계 등의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와 박정희 방식의 식민지 기원을 설명한다. 한국 사회구조의 깊은 층위를 이루는 물질주의, 개인 이기주의, 그리고 집단주의는 사실상 박정희 잔재를 구성하는 주 요소이다. 일제 강점기처럼 다수 한국인들의 정치 참여의 기회는 축소되었다. 일상을 지배하는 정치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이 배제당하며 파편화되었다. 성과중심의 과도한 경쟁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국민 탈정치화가 일어나, 국민들은 자신들의 물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서 활용 가능한 집단주의를 발전시키었다. 박정희에 의해 시작된 한국인을 위한 인간개조는 경쟁에서의 승리에 적합한 인간이 되는 것과 승리한 사람 중심으로 보상체계를 구성하는 연공서열의 위계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한국인들의 강력한 성공 욕구와 추진 동력은 타인과 성공의 과실을 공유하지 않고 배제하는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개별 한국인을 만들게 되었다.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결사도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대화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박정희 잔재는 다수의 한국인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한국인들에게 전과 너무나 다른 사회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사회화를 경험한 박정희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그대로 학습하였으며 해방 이후 혼란을 조선인들의 탓으로 돌리면서 강제화한 사회를 만들어 인간을 통제하려고 하였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와 제도들이 박정희 지배 기간보다 더 오래 남아서 한국인들은 개조하였다. 이 연구는 한국인들의 문화 속에 남아 지배적인 위치를 형성한 사회구조의 특성을 정의하고 박정희가 한국인들에게 빼앗은 결사, 보편성, 공공영역의 시민사회 특성을 되살리는 것이 박정희 잔재를 제거하는 것임을 주장할 것이다.


It is a difficult job and to find the vestige of Park Chung Hee in modern Korean society. Park Chung Hee shared with social Darwinists and reformists who tried to change the Korean society by changing and reforming in humanity because they believed that changing in humanity would bring national prosperity and strong military power. The social causes of poverty were not regarded as the main independent factors but Koreans without power and wealth became the scapegoat for Korean underdevelopment in modern. Park Chung Hee started to reform humanity by making humans modern, to consolidate the system of dictatorship. This research aims at exploring the social consequences of the competition system, goal-oriented competition, seniority, and rank system, which Park Chung Hee introduced to reform humanity. The social consequences are materialism, self-oriented egoism, collectivism that Koreans are forced to follow in their everyday lives. The chances of Koreans’ participation in politics were lessened gradually because Park Chung Hee excluded the majority of Koreans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Depoliticised Koreans got on the endless race of material success. The exclusive, closed social relationship between Koreans developed and made Koreans atomized. The vestige of Park Chung Hee is three layers of social structure; collectivism, self-interest-oriented egoism, the materialism of Korean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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