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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中國史書에 나타난 高句麗 初期 王系와 宮의 裔孫化
The Study on the Early Royal Lineage of Goguryeo and the Genealogy of the King ‘Gung’ in the Chinese History Books
김성현
DOI http://dx.doi.org/10.34159/tkby.66..202003.001

본고는 고구려의 1대 동명성왕부터 6대 태조대왕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하여, 중국사서에 기록된 고구려초기 왕계를 『삼국사기』 및 「광개토왕비」 등 한국 측 자료에 나타나는 왕계와 비교ㆍ분석한 글이다. 『위서』는 주몽의 고구려 건국 설화와 기재하면서 주몽을 위시한 초기 4대 왕계를 설정하였다. 그런데 이 당시 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의 고구려 건국 설화와 함께 그 계승자인 유리왕, 대무신왕 등 3왕의 사적이 하나의 서사구조로 전승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 측에서 입수한 정보는 「광개토왕비」에서 전하는 추모왕 및 초기3왕 계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위서』가 비록 최초로 고구려 초기 왕계를 전하였으나, 이후편찬된 중국사서에서는 『위서』에서 제시한 4대 왕계를 3대로 수정하여 싣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 『위서』는 고구려 6대 태조대왕 궁이 막래, 즉 3대 대무신왕의 예손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북사』 나 『?府元龜』 등 중국 측 자료에는 주몽의 고구려 건국 및 초기 3왕의 재위 시기가 모두 한 무제가 조선을 멸하기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주몽을 『삼국사기』에서 밝혔듯 서기전 1세기 후반에 건국한 고구려의시조가 아니라, 현도군의 속현이 된 바 있는 그 이전 고구려의 시조로 오해한 것이다. 이로 인해 『後漢書』나『三國志』를 통해 이미 2세기 대 구체 행적이 확인되는 태조대왕(궁)과 초기 3왕의 마지막 왕인 대무신왕(막래) 과는 200여 년의 시간상 공백이 설정되어 버렸고, 궁은 자연 막래의 예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궁의 裔孫化는 역사적 사실 관계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몽이 건국하기 이전부터 존재한 고구려의 실체와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정보가 착간되면서 발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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