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은 조선 후기 공론정치를 유교적 공론장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유교적 근대의 한 증거로 제시한다. 이 글은 조선 후기 공론정치를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장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유교적 근대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분석하여 그 핵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공론장은 이념형적인 일반 개념이 아니라 서구 근대의 산물로서 서구 근대와 분리 불가능하며 전제하는 바가 많은 역사적 개념이다. 그것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관철에 대한 규범적 기대와 자유주의 정치문화 그리고 사회적 갈등의 민주적 해소를 보장하는 민주적 법치국가를 전제한다. 나아가 공론장은 일반적 이해가능성을 그 본질적 특징으로 가지며, 공중의 공급원이자 공론장의 의제가 감지되고 발굴되는 자율적인 사적 영역을 상보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끝으로 공론장은 오늘날에도 그 존속 여부가 우려될 정도로 본질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이 취약성은 공론장 개념을 형식적으로 유사한 임의의 역사적 상황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점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준다. 이렇게 밝혀낸 하버마스 공론장 개념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글은 유교적 공론은 실체론적 개념으로서 하버마스가 상정하는 형식적 공론 개념과는 다르며, 현실의 정치투쟁에서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하나의 실천적 수단 개념의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붕당정치 내지 공론정치는 − 어쩌면 그것이 가질 세계사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의 적용이 불가함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