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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론과 (本體論) 심성론을 (心性論)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이해 (格物致知) - 보편과 특수를 중심으로 -
김교빈
동양철학연구 vol. 6 169-208(40pages)
UCI I410-ECN-0102-2008-150-001065075

중국철학은 道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哲擧이 始作되었다고 할 수 있다. 人間의 올바른 지표나 價値觀으로서뿐 아니라 字宙의 原理에 이르기까지 自己가 옳고 그럴 수 밖에 없는 理致를 中國人들은 道라 일컬었다. 그러나 問題는 道가 무엇이냐? 하는데 대한 對答이 學波마다 다를 뿐 아니라 오랜 中國哲學史의 흐름 속에서 多樣하게 풀이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論文에서는 先秦哲擧에 있어서 學派를 超越하여 道가 가지는 根本的인 意味를 老子 道德經과 儒家哲學의 重要한 經典인 周易에서 찾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먼저 道德經 首章에 「道可道 非常道」란 有名한 句節이 있다. 이를 현대어로 옮겨보면, 여러 번역이 있겠으나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다면 떳떳한 도가 아니다」라 한다. 그러나 道의 內容上으로 論理를 展開해 보면, 여섯 글자밖에 안되는 이 작은 文章속에 道란 말이 세번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세 道자의 意味가 다 다르게 使用되었다는 것이다. 이 問題를 조금 더 生覺해 보기로 하자. 첫번패 道와 두번째 可道의 道자와의 關係에서 道란 變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두 道는 세번째 商道의 道와 연관속에서 그 存在樣式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論理의 結果로서 道의 뜻은 變化와 不變의 矛盾的 性格을 同時에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周易繫辭上의 「一陰一陽之謂道」란 말속에서도 그러한 道의 意味를 찾을 수 있다. 易이란 본래 「변한다」 또는 「바뀐다」는 뜻으로 陰이나 陽과 같이 栢異한 두 要素의 和合을 通해서 環象界의 變化係을 表示한 것이다. 그래 「生生之謂易」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끊임없이 變化하는 現象界는 어떠한 一定한 法則性에 따라 變한다. 이를 통해 人間은 對像世界의 認識이 可能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變易之中에 不易之理에 의하여 哲學의 成立이 可能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易思想에 나타난 兩面性도 道란 말에 함축되어 表示되고 있는 것이다. 宋代에 와서 주돈신는 이러한 周易에 나타난 道의 二重的 意味를 본따서 新儒의 哲學體係를 세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太極而無極으로부터 始作되는 저 有名한 太極圖說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한다면 中國哲學의 兩大主流를 이루어온 道家와 儒家의 思想的인 差異는 常識的으로 自然과 人間이라는 지름길에서 區別하지만 道가 가지는 基本意味, 즉 變化와 不變의 뜻은 兩家의 共同點이라 하겠다. 이러한 道에 對한 깊은 理解없이는 哲學에로의 接近은 힘들것이다. 西洋哲學에 있어서도 中國哲學에 있어서 道가 가지는 意味와 類似한 理論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이스에 있어서 人間은 두번 다시 같은 시내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로서 變化의 哲學을 展開한 헤라크레이토스는 自然(Physis)을 東洋의 陰陽論과 같이 說明하고 있다. 그의 단편 10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自然은 相對的인 것을 追求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生成이 이루어진다. 同質的인 것으로부터는 호응을 불러 일으킬 수 없다.……」 헤라크레이토스는 現象界를 儒家의 易처럼 變化의 모습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人間으로 하여금 이 多樣無常한 世界에서 認識이 可能케 하고 그에 따라 삶이 이루어지게 한 根據는 로고스(Logos)의 提唱때문이었다. 永遠한 變化를 追求하는 自然(Physis)과 이 變化속에 認識可能根據를 준 로고스와의 關係는 東洋에 있어서 道가 가지는 基本意味와 相通한다. (이 글은 "中國古代哲學에 있어서 道의 槪念"의 獨逸語 내용을 요약한 것임)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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