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1940년대 초등교육에 종사하였던 교원들의 회고록을 주요 사료로 활용하여 식민 통치 말기부터 해방과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격동기 속에서 교육 이념의 전환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기존 연구들이 주로 교원 양성 시스템이나 자격체계 등 제도적 조건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글에서는 교원들의 구체적인 현장 경험과 인식을 통해 국가의 정책적 요구가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내면화되고 굴절·변용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1940년대 조선총독부는 황국신민 양성을 목표로 황민화 교육을 강행함과 동시에, 이에 부응하기 위한 교육 확충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는 교원 수급의 불균형과 단기 양성 교원의 급증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초래하였다. 전시체제기 사범학교의 교육과정은 사실상 형해화되었고,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채 단기 강습을 통해 현장에 투입된 교원들은 기본적인 교과 지도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그 결과 황민화 교육은 교육이라기보다는 신사참배나 궁성요배 등 수행적 의례를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의 교육 이념으로 ‘민주주의 교육’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일본인 교원의 퇴출과 극심한 경제적 혼란은 교육 현장에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왔다. 식민지 교육의 관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적 인맥을 통한 무자격 교원의 임용, 생활고로 인한 기존 교원의 이탈은 교육의 전문성을 더욱 저해하였다. 그 결과 ‘민주주의 교육’을 보급하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교육 현장에서 수행되기에는 더욱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했다. 결국 1940년대 한국의 교육 현장은 국가 정책이 ‘준비되지 않은 교원’이라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면서 굴절되고 형해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는 이후 한국 정부가 의무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했다.
This study explores the transformation of primary teacher training and school practices in 1940s Korea, from the late colonial period to postliberation, using teachers’ memoirs as primary sources. It examines how state policies were refracted through teachers in the educational field. In the 1940s, Hwangminhwa (Imperialization) education and wartime mobilization led to a shortage of qualified teachers and a weakened curriculum, hindering effective instruction. After liberation, the introduction of “democratic education” faced serious challenges, including the abrupt departure of Japanese teachers and severe economic instability. The persistence of colonial legacies and reliance on underqualified staff further hindered its implementation.
Ultimately, the decade was marked by a gap between national educational ideals and the realities of an underprepared teaching force, posing a major challenge to the establishment of a modern compulsory education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