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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군항사 연구(대한제국기~일제 강점기)
A Study on the History of Jinhae as a Naval Port during 1897~1945
고경석 ( Ko Kyong-sok ) , 이기현 ( Lee Ki-hyun )
해양과학기술 45권 389-419(31pages)
* 발행 기관의 요청으로 무료로 이용 가능한 자료입니다.

진해(鎭海) 군항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여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건설되었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군항으로 계속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진해 군항의 건설 배경 및 과정에 대한 연구는 대한민국 해군의 전사(前史)를 파악하는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진해 군항은 근대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한반도를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두려는 정치적 역관계 속에서 탄생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관계는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속에서 전개되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부산절영도에 저탄소 설치를 추진하였고, 마산포에 군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독립협회를 비롯한 한국인의 반발과 일본의 교묘한 방해 공작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진해가 군항으로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러일전쟁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와중에 진해만 지역이 일본의 함대 훈련지로 지정되어 거제도 송진포에 임시 군사기지가 건설되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는 진해만에서의 훈련을 바탕으로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한해협에서 격멸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권한을 차지하게 되자, 일본은 한반도 지역을 관할할 군항 후보지로서 진해만을 선택하였다. 1906년부터 진해 군항을 건설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진해 군항은 최초에는 진수부(鎭守府)가 있는 ‘군항(軍港)’의 위상으로서 계획되었으나, 이후 국제 군축회담의 영향과 국방비 부담으로 인하여 ‘요항(要港)’의 수준으로 격하되어 건립되었다. 진해 군항은 일본 함대의 훈련장으로서의 기능과 한반도 해안을 경비하는 임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임무에 걸맞은 조직과 시설을 갖추며 계획도시로서 건설되었다. 주요 시설로는 진해방비대, 진해요항사령부, 진해요새사령부를 비롯하여 각종 건물과 지원 시설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중일전쟁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과정에서 진해 해군항공대와 제51해군항공창이 건립되고 해군지원병훈련소가 설치되는 등, 일제강점기 전 시기 동안 진해는 군항도시로서의 기능이 계속 유지되었다.

Ⅰ. 서론
Ⅱ. 진해 군항 건설의 역사적 배경
Ⅲ. 진해 군항 건설
Ⅳ. 결론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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