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1) 중국정부는 북한의 남한침공계획을 1949년 초부터 알았고, 동조, 관여했는가?
1장-2) 1950년 6월 25일이 한국전쟁의 “유일한” 분기점(開戰의 날)인가?
1장-3) ‘6·25’를 주도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2장-1)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대한 중국의 초기 반응과 대응
2장-2)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중국의 판단과 對美 군사전략
3장-1) 군사관찰조의 북한 파견
3장-2) 東北邊防軍의 창설과 임무
4장-1) 對 베트남·대만 및 티베트의 전략 조정
5장-1) 9월 출병구상과 그것의 연기
5장-2) 미군의 인천상륙의 예측
5장-3) 3단계 병력배치 계획
6장-1) 미군의 인천상륙 후 상황정보의 交換不實에 관한 북한, 소련에 대한 불만
6장-2) 참전준비의 가속화
7장-1과 2) 지원병 출병결정 과정에서의 논란과 모택동의 승리
8장-1) 政治國擴大會議에서의 早期參戰결정 후 취한 군령 및 외교적 조치
8장-2) 「출병명령」日과 “一時中止”日 間 군내 불만과 중국의 對蘇, 북한 관계
9장-1) “주은래·스탈린 비밀회담”의 내용과 결과
10장-1) 지원군 출병의 재결정
10장-2) 지원군 주력부대들의 압록강 도하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