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에서 주자를 존경하는 학풍에 영합하여 주자의 고향에 있는 호병문은 가학을 계승하고 주자역학을 고양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주자역학의 본의를 탐색하는 것을 취지로 하는 역학을 형성하였다. 그가 저술한 『주역본의통석(周易本義通釋)』 은 『주역본의』 의 고유하고 진실한 의미를 재현하고 천명하며, 당시에 주자역학에 대한 오독을 바로잡고 동시대 역학자들과 함께 주자역학의 학술적과 정치적 합리 위치를 확립하였다. 다산은 독특한 역학 시각으로 호병문 역학을 반성하고 검토했으며 호씨의 역학에 대해 비교적 이성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편으로는 주자역학을 전승하는 데 호씨역학의 역할과 지위를 인정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역학 입장에서 호씨 역학의 시비에 대해 판단을 내렸다. 이로써 다산 역학의 형성은 호병문 역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호씨가 괘변, 호체, 괘상을 논하였고, 다산도 괘변, 호체, 괘상을 논하였으니 호씨의 흔적을 뚜렷이 띠고 있다. 호씨가 다산의 역학에 미친 영향은 주자역학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다산이 처한 시대에는 대부분 역학자들은 주자역학을 존경하거나 주자 역학을 해석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는데 호씨는 “주자의 적전(嫡傳)”으로 그의 『주역본의통석』 은 다산 등의 특별한 관심을 받아 역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다산이 호병문의 일부 역학 관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는데 이는 다산의 역학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산이 호병문의 역학 관점을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가 있는 것인데 원인은 다음과 같다. 주희, 호병문 이외에 다산은 한나라 역학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역학 사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추이, 호체, 물상, 변효라는 사강목의 상수역학 체계를 구축했다. 이 때문에 다산 역학과 호병문의 주자역학 해석을 취지로 삼는 역학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호병문 역학이 다산 역학에 미친 영향만으로 다산 역학 사상의 연원과 형성을 밝히는데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