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 · 일 관계는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의 두 개의 ‘기둥’을 토대로 삼아 갈등과 마찰을 억제하고 관리해왔다. 안보와 경제의 두 기둥이 양국의 대립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한 · 일 간의 경제적 격차가 축소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안보와 경제의 기둥은 더 이상 대립의 억제장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한 · 일 관계에서 갈등과 마찰이 빈번하게 분출되며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는 현상은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 · 일 관계에서 대립과 마찰을 억제해 주는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통일을 위한 협력’이다. 여기서 ‘통일을 위한 협력’이란 단순히 통일 그 자체를 위한 협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 · 북 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폭넓게 포괄하는 의미로서 통일이라는 상징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한국은 불편한 과거사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과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냉전구도를 해체하고 평화공존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한국 국민들은 기꺼이 일본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를 누르고 실용적인 협조관계를 우선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은 억지력의 강화를 통한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현상개선의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국도 ‘통일을 위한 협력’을 새로운 틀로 삼아 한 · 일 관계에서 마찰을 억제하고 협조를 확대해 나가는 실용적 외교를 구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