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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孝昭王의 출생 시기 관련 기록 검토
An Investigation on the Records of King Hyoso’s Date of Birth
徐禎穆 ( Suh Chung-mok )
진단학회 2014.12
진단학보 122권 25-48(24pages)
UCI I410-ECN-0102-2023-900-000805228

효소왕은 『삼국유사』 권 제2 「기이2」의 「효소왕대 죽지랑」 조의 ‘익선의 죽지 장군 모욕 사건’을 관장한 왕이다. 이 사건은 「모죽지랑가」와 「찬기파랑가」 창작의 정치적 배경과 시기를 구명하는 데에 핵심적인 사건이다. 이를 다스린 효소왕의 출생 연대와 사연은 이 노래들의 정치적 배경이 되는 ‘金欽突의 모반’의 근본 원인을 보여 준다. 『삼국유사』 권 제3 「탑상」의 「대산 오만 진신」 조는 효소왕이 16살인 임진년[692년]에 즉위하여 임인년[702년]에 26살로 승하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기록은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논저에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것은 30여 년 전 한 연구자가 『삼국사기』의 기록을 잘못 읽어 효소왕이 6살에 즉위하여 16살에 승하한 것처럼 파악하고, 22살에 즉위한 성덕왕이 효소왕의 이복형이라고 주장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함으로써 생긴 일이다. 『구당서』, 『신당서』의 「열전」 「동이전」 「신라」 조는 ‘성덕왕이 효소왕의 아우’라고 명시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자치통감』 「측천후」 장안 3년[703년] 조에는 신라왕 金理洪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그 아우 金崇基가 권좌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삼국사기』도 김흠돌의 딸은 태자비 시절 無子하였으며, 성덕왕이 효소왕의 同母弟라고 말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683년에 신문왕이 신목왕후와 혼인하고, 687년에 元子가 출생하였으며, 691년에 王子 理洪을 太子로 책봉하고, 692년에 태자 이홍이 즉위하여 효소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잘못 읽으면, 687년생 원자가 왕자 이홍이고, 692년에 즉위하여 효소왕이 되었으니, 그가 6살에 즉위하여 702년 16살에 승하한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그 오해 위에 성덕왕이 『삼국유사』처럼 22살에 즉위하였다고 보면 성덕왕이 효소왕의 형이 된다. 그리하여 성덕왕은 681년에 폐비된 김흠돌의 딸의 아들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지 않고 702년에 즉위한 성덕왕이 효소왕의 아우라면 12살 정도에 즉위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추론에는 元子가 王子 理洪과 동일인이라는 誤讀이 들어 있다. 687년에 태어난 원자는 왕자 이홍이 아니다. 효소왕은 692년에 16살이었으니 그로부터 환산하면 그는 677년생이다. 성덕왕은 702년에 22살이니 681년생이다. 이들은 신목왕후 소생으로 동모형제이다. 그런데 신목왕후는 683년에 신문왕과 혼인하였다. 그러므로 이 두 왕은 부모가 혼인하기 전에 태어난 아들들이다. 이것이 ‘김흠돌의 모반’의 근본적 원인이다. 『삼국유사』 권 제2 「기이2」 「만파식적」 조에 등장하는 태자[효소왕], 권 제5 「신주」의 「혜통항룡」 조에 등장하는 효소왕과 그의 王女, 권 제3 「탑상」의 「백률사」 조의 효소왕도 모두 그가 6세에 즉위하여 16세에 승하한 어린 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King Hyoso succeeded the throne when he was 16 years old and died when he was 26 years old as was told evidently in ‘Daesan Oman Jinsin,’ Samkukyusa. All the Chinese literatures of history about Shilla, such as Kutangseo, Shintangseo and Chachitonggam, say that King Seongdeok is a younger brother of King Hyoso. Samkuksagi recorded that King Shinmun's wonja was born in 687 A.D., and wangja I-hong was nominated for the crown prince in 691 A.D. and succeeded the throne in 692 A.D. From this records, most of scholars inferred that this wonja was the same person as wangja I-hong, and that King Hyoso succeeded the throne in 692 A.D., when he was 6 years old. However, in this inference there is a serious misunderstanding that this wonja and the wangja I-hong refer to the identical person. The wonja who was born in 687 A.D. is not the wangja I-hong. Wangja I-hong, who became King Hyoso was not born in 687 A.D. He was born in 677 A.D. The crown prince in ‘Manpasikjeok’ [682 A.D.], Samkukyusa is not the wonja born in 687 A.D., but the wangja I-hong born in 677 A.D. King Hyoso in ‘Hyetong Hangryong’ [692 A.D.], Samkukyusa is a youthful 16-year-old King who has a princess, not a boyish 6-year-old King. The story of Buryerang's being kidnapped and renaming ‘Manpasikjeok' as ‘Manmanpapasikjeok’ in ‘Baekyulsa,’ Samkukyusa is said very logically, and King Hyoso who dealt the event was not a 7-year-old boy but a 17-year-old youth.

Ⅰ. 서론
Ⅱ.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의 증언
Ⅲ. 『삼국사기』의 기록
Ⅳ. 『삼국유사』의 설화
Ⅴ. 결론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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