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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정조대 척사론자들의 활동과 후대의 평가
Activities of Cheoksaron members in the King Jeongjo’s reign and the later assessment
최우혁 ( Choi Woo-hyouk )
조선시대사학보 102권 181-210(30pages)
DOI 10.21568/2022.09.102.181
UCI I410-ECN-0102-2023-900-000975612

정조대 斥邪論者들의 척사 활동을 평가한 후대 인물들은 그러한 평가를 통해 선대 인물들의 학문·정치·사회적 명분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나아가 그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척사의 기치를 더욱 높이고자 하였다. 近畿南人 학자이자, 星湖學派의 핵심 인물인 安鼎福과 李森煥에 대해서는 문인 黃德吉과 손자 李是鉷이 행장을 작성하여 그들의 척사 활동을 평가하였다. 황덕길과 이시홍은 안정복과 이삼환이 척사 논저를 저술하여 天主敎의 교리를 철저히 비판하였음을 부각시켰다. 척사 활동이 해당 인물의 학문적 태도를 설명하는 하나의 주요한 기준이자 근거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老論 洛論의 趙有善을 포증할 때에도 그의 척사 활동이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다. 유생들은 조유선을 포증해야 하는 근거로 그의 척사 활동을 들었고, 洪直弼이 작성한 조유선의 묘지명에서도 조유선이 척사를 주장한 행적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의 포증을 청할 때에는 언제나 이러한 행적이 기억되고 활용되었다. 관료 혹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평가하는 데에도 척사 활동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攻西派 근기남인의 대표적인 인물인 姜浚欽은 신도비명을 통해 그의 정치적 동료인 睦萬中의 척사 활동을 부각시켰다. 공서파 근기남인의 경우에는 천주교를 가까이한 親西派 근기남인과 달리 앞으로의 정치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한 정치 명분에 혐의가 될 것이 없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론 時派 尹行恁의 행적에서도 척사 활동이 언급된다. 辛酉迫害 당시 僻派는 윤행임이 친서파 근기남인을 극력 비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척사의 분위기에 매우 배치되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아들 尹定鉉은 윤행임이 결코 천주교와 친서파 근기남인을 비호한 적이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사회적으로 척사 활동을 전개한 인물로는 趙常本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宋秉璿이 조상본의 묘표를 작성하였는데, 송병선은 조상본이 사학을 배척하고 정학을 지킨 것에는 발본색원하는 힘과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면서 조상본의 행적을 부각시켰다. 이는 19세기에 들어와 천주교가 더욱 번성하게 된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송병선은 천주교가 더욱 확산되고 있던 19세기의 현실 속에서 조상본의 척사 활동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척사의 모범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Later people who assessed the Cheoksa activities of Cheoksaron members(斥邪論者) in King Jeongjo’s reign, tried to strengthen the academic, political, social justifications of previous people. Furthermore, in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when they were active, they tried to further raise the banner of Cheoksa. As for Ahn Jeong-bok(安鼎福) and Lee Sam-hwan(李森煥), who are scholars of Geunginamin(近畿南人) and key figures of the Seongho school(星湖學派), disciple Hwang Deok-gil(黃德吉) and grandson Lee Shi-hong(李是鉷) assessed their Cheoksa activities. Hwang Deok-gil and Lee Shi-hong emphasized that Ahn Jeong-bok and Lee Sam-hwan thoroughly criticized Catholic doctrines by writing a Cheoksa thesis. The Cheoksa activity was being used as a major criterion and basis for explaining the person’s academic attitude. When requesting the official post of Cho Yu-seon(趙有善), who Noron(老論) Nakron(洛論) scholar, his Cheoksa activity was presented as the main basis. The Confucian scholars suggested Cho Yu-seon’s Cheoksa activities as a basis for giving Cho Yu-seon a official post, and Hong Jik-pil(洪直弼) also praised Cho Yu-seon’s Cheoksa activities. In this way, when requesting his official post, these activities were always remembered and utilized. Cheoksa activities were also actively used to assess politicians or those involved in political events. Kang Jun-heum(姜浚欽), a leading person in the Gongseo line(攻西派) Geunginamin, highlighted the activities of his political colleague Mok Man-jung(睦萬中). Because in the case of the Gongseo line Geunginamin, unlike the Chinseo line(親西派) Geunginamin, which is close to Catholicism(天主敎), it was necessary to prove that there was no suspicion in the political justification to continue future political activities. Cheoksa activity is also mentioned in Yoon Haeng-im(尹行恁)’s trace, which belongs to the Noron Shipa(時派). During the Shinyubakhae(辛酉迫害), the Byeokpa(僻派) claimed that Yoon Haeng-im protected the Chinseo line Geunginamin with all his might. This was so contrary to the Cheoksa atmosphere that his son Yoon Jeong-hyeon(尹定鉉) made it clear that Yoon Haeng-im had never defended the Catholicism and the Chinseo line Geunginamin. Cho Sang-bon(趙常本) is a person who has developed Cheoksa activities socially. Song Byeong-seon(宋秉璿), who was active in the late 19th century, highlighted Cho Sang-bon’s trace of excluding Sahak and protecting Jeonghak. This is also related to the situation in which Catholicism became more prosperous in the 19th century. In the reality of the 19th century, when Catholicism was spreading further, Song Byeong-seon regarded Cho Sang-bon as an example of Cheoksa by emphasizing Cho Sang-bon’s Cheoksa activities.

Ⅰ. 머리말
Ⅱ. 학문적 활동 평가
Ⅲ. 정치적 활동 평가
Ⅳ. 사회적 활동 평가
Ⅴ. 맺음말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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