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문학에 꽃핀 중세적인 특징은 일찌기 르네상스기에 싹트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세론은 르네상스기의 인본주의적 이성론에 반하여 감정과 영혼의 자유로운 표현을 갈구하는데서 싹텄으며 튜도왕조에 일어난 국가주의와 크롬웰민란때에 발생한 역사가들의 전통적 유물에 관한 관심속에 성장하게 되었다. 이런 지적, 사회적 영향속에서 발전한 중세론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Gothicism Victoria조 시대에는 feudalism 의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Gothicism은 우선 Gothic 건물을 복원하고 고대유물을 수집하고자 하는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나아가서 문인들에게 까지 번졌다. 문인들은 고익 건물이나 Gothic motives를 접하므로서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할려고 했으며, 아울러 자신들의 작품에 중세적인 기괴한 사물과 image 를 묘사하고 도입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주 할려했다. 이러한 지적인 움직임은 종교적으로는 광란적인 감정의 폭발을 유발할 만큼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무절제한 감정폭발에 반하여 질서와 절제속에 영혼의 자유를 외친이가 Willaim Wordsworth 이다. wordsworth 는 The Prelude 에서 마지막 중세 봉건군주 정치체제의 몰락을 기도한 프랑스혁명에 많은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는 혁명이 압박받는 영혼과 가난속의 민간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Wordsworth는 ‘‘Preface to Lyrical Ballads"와 The Excursion 에서도 중세기대의 질서와 균형속에 영혼의 자유를 찾고자 했던것으로 나타나있다.
중세의 봉건적정치질서를 갈망한 이로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Victoria 조에 활약한 Thomas Carlyle 이다. Carlyle 의 영웅주의 는 중세의 기사도정신에 크게 기인하며 Carlyle은 실제로 이런 영웅주의로써 당대 산업사회의 병폐가 치료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19세기 중세론은 당대에 성행한 어느 이념보다 더 강력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