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미롱에 있어서 퀘벡은 그의 시가 태어나고, 부정되고 다시 시작되어 완성되거나 혹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되는 땅이다. 미롱이 1950년대 쓴 초기 시 「나라와 바람」이 1963년 문예지 자유 지에 발간될 때 제목이 「슬픔이여, 오 나의 연민이여, 나의 나라여」로 바뀌었고 1970년도에 나온 미롱의 시집 『꿰맨 인간』에는 「슬픔의 유산」이란 제하의 시로 들어있다. 서로 다른 이 판본들은 자신의 나라에 대한 미롱의 글쓰기의 변천을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 말하자면, 1950년대 퀘벡 땅의 토착적 상황에서 태어난 시편들이 1960년대에는 퀘벡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현실 참여적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시적 진실의 탐구과정이 퀘벡을 어떻게 시적 언어로 드러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 나라는 참으로 무기력하다”라고 미롱은 외친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이런 한탄은 에메 세제르의 『귀향수첩』을 떠올리게 한다.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사회문제에 국한되었던 미롱의 시는 점차 탈식민화 시편들로 바뀌면서 퀘벡 독립의 도정에 요구되는 언어의 힘으로 작동된다. 영국지배의 이 백년 간의 역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미롱은 그의 나라 퀘벡 땅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그의 시가 뿌리내리는 땅을 잊지 않은 채, 보다 보편적인 요소를 불러내고자 하였다.
미롱의 시는, 메쇼닉이 잘 지적한 것처럼, 서사시와 서정주의에 대한 구분이 없으며 새로운 현실참여적 서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퀘벡 땅에 뿌리내릴 “구름 걷힌 미래”로 그의 나라 퀘벡이 나아갈 길은 가스통 미롱은 「아메리카의 친구」라는 시편에서 제시하고 있다. 미롱의 나라는 그의 시의 영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