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세기말~10세기 초 자료인 최치원의 四山碑銘 등에 보이는 夾註와 四山碑銘 碑銘詩의 押韻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드러나는 신라어 내지 신라한자음을 중심으로 고대 한국한자음에 대한 고찰을 이어가고자 한 것이다.
2장에서는 「雙谿寺 眞鑑禪師塔碑」(887년)에서의 “阿𡝡 [方言謂母]”, 「聖住寺朗慧和尙塔碑」(890년 이후)에서의 “阿孩[方言謂兒, 與華无異]”, “䚷![方言許諾]”, “我有末尼上珎”, 「初月山 崇福寺碑」(896년 경)에서의 “酬稻穀合二千苫[斞除一斗爲苫], 「法藏和尙傳」(904년)에서의 卄[音入]” 등의 협주나 본문 표기에 대하여 신라어로서의 고유성 여부와 이를 통한 신라한자음의 재구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하여 詳論을 펼쳤다.
3장에서는 사산비명의 비명시 압운을 살펴본 결과, 「聖住寺 朗慧和尙塔碑」(890년 이후)와 「初月山 崇福寺碑」(896년 경)에서 上去 通押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上去相混(또는 無別)의 한국한자음적 특징이 심화된 결과로 보았다.
4장에서는 논의 결과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①협주에서 확인된 신라 어휘:
‘R예’[許諾], ‘L셤’[石]<고유어>
‘L아L미’(阿㜷)[母], ‘L아L□’(阿孩)[兒], ‘末尼=摩尼’(
②협주를 통해서 본 신라한자음:
「阿」 L아, 「卄」=「入」 H□, 「孩」 L□< OSK=MSK >
「㜷」 *L미, 「苫」 *L~R셤, 「䚷」 *R예< OSK≓MSK >
③비명시의 上去通押: 上去相混(또는 無別) 현상의 심화
本文通過對崔致遠的四山碑銘等(9世紀末~10世紀初資料)中所看到的夾註和四山碑銘碑銘詩的押韻分析, 幷以所顯現的新羅語乃至新羅漢字音爲例, 繼續探討古代韓國漢字音的相關問題。
在第二章中, 對《雙谿寺 眞鑑禪師塔碑》(887年)上的“阿𡝡 [方言謂母]”, 《聖住寺朗慧和尙塔碑》(890年以後)上的“阿孩[方言謂□兒,與華无異]”, “䚷![方言許諾]”, “我有末尼上珎”,《初月山 崇福寺碑》(896年左右)上的“酬稻穀合二千苫[斞除一斗爲苫],《法藏和尙傳》(904年)上的卄[音入]”等夾註或原文標記是否具有作爲新羅語的代表性, 以及通過這些資料對新羅漢字音擬構的貢獻展開了詳細的討論。
在第三章中, 對四山碑銘碑銘詩押韻考察的結果顯示, 在《聖住寺 朗慧和尙塔碑》(890年以後)和《初月山 崇福寺碑》(896年左右)上可以發現上去通押的事例, 這是從以前延續下來的上去相混(或無差別)的韓國漢字音特徵深化的結果。
在第四章中,討論的結果總結如下。
①在夾註中所確認的新羅語彙:
‘R예’[許諾], ‘L셤’[石]<固有語>,
‘L아L미’(阿㜷)[母], ‘L아L□’(阿孩), ‘末尼=摩尼’(
②通過夾註看新羅漢字音:
「阿」 L아, 「卄」=「入」 H□, 「孩」 L□< OSK=MSK >,
「㜷」 *L미, 「苫」 *L~R셤, 「䚷」 *R예< OSK≓MSK >
③碑銘詩的上去通押: 上去相混(或無差別)現象的加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