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시적 출발은 극단적인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의 첫 시집 『화사』에서 보여주는 병적 낭만주의와 서구적 상징주의의 경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절대 부정은 역설적으로 자기 긍정의 계기성으로 작동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의 본령에 해당하는 토속적인 전통지향성의 추구가 본격화된다.
한편, 그의 이러한 시적 전환의 외적 계기는 김범부의 ‘동방르네상스’의 사상적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범부의 사상은 화랑정신의 현재적 계승을 통한 민족적 미래의 구현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의 동양적 가치를 제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김범부의 사상적 성향은 서정주의 『귀촉도』, 『서정주시선』을 거쳐 『신라초』, 『동천』으로 이어지는 토속적인 전통지향성 및 ‘신라정신’을 통한 민족적 근원 탐색과 ‘영생적’ 개안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미당은 자신의 전통지향성을 민족적 특수성과 당대적 현실성에 대한 탄력적 대응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추상적인 보편주의와 영원성으로 치닫는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일본의 초국가적 전체주의 지배 논리에 해당하는 ‘대동아공영권’과 쉽게 조우하는 배경이 된다. 그는 대동아 공영권의 외면적인 문화적 논리에만 치중했을 뿐 정치적 파시즘의 본질적 지배 논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체부의 군속 지망」(『조광』, 1943, 소설), 『헌시(獻詩)』(『매일신보』, 1943, 시), 「보도행」(『조광』, 1943, 수필), 「무제」(『국민문학』, 1943, 시), 「오장 마쓰이 송가」 (『매일신보』, 1944, 시) 등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우리 시사의 가장 신성한 성채에 해당하는 그의 시 세계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형성되는 대목이다.
한편, 미당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전기 집필, 전두환 찬양 등의 행적을 노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정은 서정주의 민족적 전통지향성이 현재형과 미래형으로 열리지 못하고 과거형의 신화적 시간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이 결국 그가 친일문학을 하게 된 주된 배경이며 해방이후 지속된 신라정신과 영원성의 시학이 구체적인 경험세계의 모순과 대응력을 확보하지 못한 주된 이유라고 할 것이다.
Poetry departure of Suh Jung-Joo starts from extreme self-denial. "Hwa sa", his the first poetry, shows his abnormal romanticism and western symbolism. However, his such extreme denial works by a chance of self-affirmation. Therefore, pursue of tradition directivity applicable to life characteristic addresses oneself. Virtual change of his poetic conversion is based on ideological impact of 'the East Renaissance' of Kim Bum-boo. But his consciousness about eastern value and the path of tradition directivity have limitation representing universalism and eternity not securing contradictoriness of experience world and detailed strain relationship. This was the background that he encountered with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corresponding to Japan's totalitarianism rule logic beyond 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