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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
Aristoteles uber die moralische Tugend
한석환 ( Hahn Seok-whan )
인문학연구 27권 343-369(27pages)
UCI I410-ECN-0101-2019-000-001007188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적 물음을 최초로 제기한 철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윤리학에 독자적인 위치를 부여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는 윤리학이 탐구 대상과 목표에서 다른 부문들과 다르다고 보았다. 우선 윤리학은 자연철학 같은 것과는 달리, ‘원인’이 자기 자신 속에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의 결단에 놓여 있는 것들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윤리학의 관심사는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윤리학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식이 아니라 실로 행하는 것이다. 그저 덕(德)이란 무엇인가를 깨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우리가 유덕(有德)하게 되는 데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도덕철학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행동(praxis)이란 무엇인가? 그것은,첫째로, 동물들의 몸놀림과는 달리 사태를 머리로 헤아려 본 다음 단안을 내린 것이다. 즉 인간의 행동에 는 합리적 선택의 계기가 들어 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칭찬이나 책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음으로 행동은 제작(poirsis)이라는 인간의 몸놀림하고도 다르다. 우리가 제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것에 의존하며,또 그것을 통해 설명된다. 그러나 윤리학이 다루는 행동은 그 자체 때문에 수행되는 것들이자 그 자체 때문에 평가되는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문제의식은 인간이 구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삶(eudaimonia)은 어떤 삶인가에 집약되어 있다. 일련의 논의 끝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놓는 답안은 실천적 지혜와 도덕적 덕(ethike arete)을 드러내 보여 주는 행동의 삶이 곧 그런 삶이라는 것이다. (도덕적) 덕은 무엇보다도 정념(pathos)과 고리 지어져 있다. 분노,공표 연민 같은 정념과 관련하여 잘잘못이 문제 되잖는가 말이다. 그러나 정념 그 자체가 덕이 있고 없는 것은 아니다. 덕이 있고 없음은 정념이 어떤 식으로든 현실로 표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로 덕은 위에 시사되어 있다시피 활성태에서 문제되는 것이지 능력의 차원에서 가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능력의 속성은 동일한 것이 서로 대립하는 것들을 다 함께 수용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덕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덕과 악덕은 서로 배타적이다. 끝으로 덕은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버릇과 습관(ethos)의 문제이다. 인간은 어떤 방향으로 길들여지느냐에 따라 좋은 성품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고 나쁜 성품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좋다는 것은 중용(中庸)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고,나쁘다는 것은 양극단을 말한다. 우리의 정념이나 느낌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칭찬감이 되기도 하지만 도(度)를 넘거나 도에 못 미침으로써 꾸지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덕은 중용에 터잡혀 있는 성품의 상태이다.’ 그러나 중용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대와 장소와 시간과 사안 들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심지어 ‘극단’이,즉 전부 또는 전무가 적도(適度)가 되는 특수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중용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몫이다. 실천적 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개개의 정황 속에서 어떤 것이 공정한 것이고 어떤 것이 친절한 것이며 또 어떤 것이 너그러운 것인가를, 한마디로 말해서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은 어떤 것인가를 헤아려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I. Die Fragen der Aristotelischen Ethik
Ⅱ. Aristoteles “Psychologie” und die Ethik
Ⅲ. Die Handlungen, mit denen sich die Ethik befaβt
Ⅳ. Moralische Tugend und praktische Weisheit
Literatur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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