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반도 안보위기가 평화적으로 해소되는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과 관련하여 남북협력의 문제가 주요의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고, 보다 궁극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구현의 완성인 남북통일의 문제가 관심사로 부각될 때가 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한이 각기 평화적인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것을 천명한 연합제와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연합의 과정을 거쳐 통일에 도달하자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 6월의 「6·15 남·북 공동선언」은 제2항에서 남한의 연합제 통일방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성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국가연합이란 주권 국가간 조약에 의해 창설되는 것으로, 참여국가들이 기본적으로 주권을 보유하면서도 주권의 일부를 공동의 상설협력기구에 이양하는 두 개 이상 국가들의 결합체이다.
국가연합은 ‘초국가적인’ 공동기구를 설치 운영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정한 상황과 조건이 구비되면 연방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통상의 정부간 협의기구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한편 국가연합과 달리, 연방은 복수의 국가가 공통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연방결성에 관한 조약 또는 연방헌법에 의해 기초하여 설립된 조직적 권력통일체로서 국제법상의 단일 주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닌다. 연방국가는 중앙정부가 국제법상의 완전한 지위와 권한을 보유하고, 자체의 정부기관과 조직을 갖고 구성국가 및 구성국 주민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한다. 또한 연방국가는 국내문제에 관해서는 구성국 정부와 관할권을 나누어 행사하지만, 군사권 및 외교권은 중앙정부가 배타적으로 행사한다.
이상과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국가연합과 연방 간에는 일정한 공통점과 친화성도 존재한다. 우선 국가연합과 연방제는 모두 두 개 이상의 국가들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며, 국가연합에 참여한 국가들이 교류와 협력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호 신뢰가 쌓이고 또 공동의 필요를 느끼게 되어 외교 또는 국방 등 분야에서 주권의 중요부분을 초국가적인 공동기구에 이양하게 되면 연방제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연합 형태의 통일방안을 토대로 통일을 추구하려 한다면, 최종적인 통일국가의 형태로 연방제 형태로의 통일이 보다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남과 북의 통일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형식으로 닥쳐올 가능성도 잠재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경우들에도 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과 북이 연합을 형성, 공동의 기구를 운영하면서 교류와 협력 및 상호 신뢰와 이해를 확대해 나가고, 남과 북의 합의를 토대로 궁극적으로 연방으로 이행하는 방식의 통일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통일을 21세기의 국제사회 현실에 잘 부합하는 정치공동체의 창출문제로 파악한다면, 지구화 현상 속에서 국제적으로 평화공존에 적합한 연합과 연방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방제는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가능한 보편적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방제 성공의 보편적인 구조적 조건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경험적 연구결과들이 존재한다.
우선 연방국가 체제에서 구성 지역정부가 단지 2개인 경우 안정적이지 못하며, 심지어 3개인 경우에서도 거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리고 연방 정부는 물론 연방을 구성하는 지역정부 공히 자족적이고 정부경영 능력을 지닐 때 안정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다연방제의 통일국가를 형성하려 하는 경우, 구성 지역정부들이 자족적인 동시에 정부경영역량을 구비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요컨대, 연방제 국가로 통일하려는 경우, 단지 남과 북 두 개의 지역정부로 구성되는 연방제보다는 적어도 4개 이상의 지역정부로 구성되는 다연방제를, 그리고 단기간이 아니라 과도적 협력체제를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가면서 중·장기적인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남한 및 북한의 통일방안은 공히 민족의 공동기구를 구성함에 있어서 남북의 동등성을 지향하고 있다. 즉 양 방안은 남과 북으로부터 같은 수의 대표가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바, 이는 남과 북의 인구수나 경제력 등 국력과는 무관한 국가간 조정기구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한의 국가연합제 통일방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공히 통일과 관련하여 ‘다음 단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물론 다음 단계에 대해서는 남과 북이 각기 나름의 상이한 내용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최종적 통일의 형태는 민족적 과제로 남겨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