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大覺國師義天(서기 10551101년)은 한국불교사에서 한 시대를 긋는 뛰어난 분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과 한국의 종교문화교류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高麗宣宗2년(宋哲宗元豊8년,서기 1085년),義天은 正法을 구하기 위하여 大弟겸 僧統의 신분으로 형벌을 무릅쓰고 위험한 장도에 올랐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며 거센 파도를 헤치고(輕萬死於涉長波)1) 서해를 건너 宋에 들어갔다. 일년 남짓되는 구법 활동 중에 의천은 宋조정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으며, 고승들을 두루 만나고 질문하며 의심을 풀었다. 華嚴·天台·唯識·禪·律등의 諸宗에 대한 학문을 두루 습득하였으며,2) 귀국 후에 의천은 더욱더 학문의 전수와 선양에 노력하며 교리를 펼치니, 이는 고려불교의 번영과 발전에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의천은 여러 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주의할 만한 것은 한국의 천태종을 처음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천에게는 이론적인 저술이 남아 있는 것이 없고, 현존하는《大覺國師文集》에 겨우 序·講辭·表·狀·書·詩등이 약간 남아 있을 뿐으로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천태교학의 사상적 전모를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어쩌면 우리는 관련된 원시사료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흔적을 따라 大覺國師義天의 천태 교학의 특징을 추구해 볼 수 있지도 않을까· 분명 이러한 탐구는 의천의 천태 교학에 대한 사상적인 완전한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탐구를 통하여 어쩌면 의천의 천태 교학사상의 대체적인 윤곽은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高麗大覺國師義天(西元1055-1101年), 不僅是韓國佛敎史上具有劃時代意義的一代佛敎領袖, 而且也是中韓宗敎文化交流史上的一位重要人物. 高麗宣宗二年(宋哲宗元豊八年, 西元1085年), 義天爲求正法, 以大弟兼僧統的身分, 甘冒刑律之責, 不?路途艱危, “輕万死于涉長波”1), 西越海而入于宋. 在爲期一年多的求法過程中, 義天受到大宋朝廷的熱情款待, 遍參高僧, 問津決疑, 諸凡華嚴, 天台, 唯識, ?, 律諸宗, 无不兼學幷蓄, 身體力行.2) 回國之後, 義天更是兼傳幷擧, 大振敎綱, 爲高麗佛敎之繁榮發展開闢了一個新的歷史時代.
大覺義天的成就是多方面的, 其中尤其値得注意者, 乃在於創立了韓國的天台宗. 然而, 由於義天幷沒有理論著作留傳于世, 現存的《大覺國師文集》僅收?其書序, 講辭, 表, 狀, 書, 詩等, 且亦殘缺不全, 因此, 要想確切地了解其天台佛學思想的全貌, 實有著相當大的困難. 或許我們只能循著相關原始史料中所透露的一些蛛絲馬迹, 來追索大覺義天的天台佛學思想特徵. 顯然, 這樣的探究幷不奢望能勾准確地描?出義天天台佛學思想的完整畵卷; 但是通過這樣的探究, 或許能勾勾勒出義天天台佛學思想的一個大致的輪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