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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후리앤(胡璉)과 누차오(怒潮)의 빛과 그림자 -저우야촨(周雅川)과 쉬쑹전(徐松珍)의 고사(故事)-
胡璉與怒潮的時代光影 -周雅川與徐松珍的故事-
정지앤위안 , 치우롱쥐
중국사연구 104권 311-350(40pages)
UCI I410-ECN-0102-2017-910-000578732

중화민국 37년(1948년), 중화민국 정부와 중국공산당의 강화가 실패하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국적으로 진군하여 가는 곳마다 파죽지세를 보였다. 이 때 오히려 후리앤(胡璉)은 강서지역에서 부병제(府兵制)를 실시하여 신군 10만과 학생 1500을 얻어서 제12병단과 누차오(怒潮)학교가 여기서 비롯되어 외로운 고신비자(孤臣?子)의 마음으로 강서 선현 문천상(文天祥)이 보인 정기를 본받아 일로전진(一路轉進)하여 길을 열어 타이완(臺灣)으로 향하였다. 제12병단은 중국 대륙을 떠나 금문도(金門島)와 주산열도(舟山列島)방어전에 투입되어 대승을 거두었고, 타이완 해역의 형세를 안정시키고 양안분치(兩岸分治)의 국면을 확정하였다. 후리앤은 장기간 금문도에 주둔하다가 민국47년(1958년) 8·23포격전에서 재차 승리를 거두어 국방전선을 든든히 하여 비로소 타이완의 안정과 번영을 얻게 하였다. 누차오학생은 병단의 보호하에 신죽현(新竹縣) 신포진(新?鎭)에서 새로운 황포(黃?)를 자임하면서 명맥을 이어가며 훈련과 학습을 전개하다가 1년후 금문도로 옮겼다. 이들 문무를 겸비한 청년들이 바로 육군군관학교의 타이완에서의 복교 전까지 후리앤이 전란중 국가 재건을 위해 양성된 군사적 정치적 간부 인재들이었다. 본고는 노조학생 저우야촨과 병단 전사 쉬쑹전 두 사람의 종군 이 야기를 통해 후리앤병단과 누차오학교가 국난 속에서의 보인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떠돌이 생활ㆍ헤어짐ㆍ희생과 고난은 타이완 국가 기억 속에서 마땅히 영원히 기념되고 칭송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

Ⅰ. 前言
Ⅱ. 胡璉再起, 重建兵團
Ⅲ. 少年從軍, 怒潮澎湃
Ⅳ. 周雅川和徐松珍
Ⅴ. 結語: 臺灣史新視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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