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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한시(漢詩)의 문학성(文學性)과 그 시대적 의미
The literariness of Kim Taeg-young(金澤榮)` poems and the meaning of his days
박수천 ( Soo Cheon Park )
석당논총 vol. 64 103-130(28pages)
UCI I410-ECN-0102-2017-910-000111486

滄江 金澤榮은 우리나라 한문학사의 마지막 시기 문인이었다. 그가 살았던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전후는 조선의 국권이 침탈당해 결국 일제 치하에 놓이게 되는 심각한 국난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甲午改革과 함께 한문 문학이 급속히 쇠퇴를 하고 국문에 의한 新文學이 문단의 전면으로 상승하던 때이기도 했다. 김택영의 시문학은 그의 평생 삶의 기록이며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었다. 그는 이미 국문 중심의 문학으로 전환이 된 시기에도 끝내 한문학을 고수했으며, 그의 삶에서 지녀야 했던 갈등과 회한, 그리고 울분과 강개로 점철된 내면의 모습을 작품으로 나타내었다. 김택영이 지향한 한시 작품의 중심적 문학성은 神韻이라 평가되어 왔다. 김택영은 과거 급제에 이르는 동안 시를 배우고 익히면서 神韻의 문학성을 스스로 깨우쳐 나갔다. 神韻을 지향했던 그의 시작품에는 당연히 唐風의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자연스러움과 함축의 여운을 추구하는 唐風 작품의 문학성이 바로 神韻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택영은 시를 정밀하고 공교롭게 짓자면 심혈을 기울여 애써 생각해 만들 수 있겠지만, 神韻은 그렇게 애써 생각을 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했다. 이러한 神韻의 경지는 부단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自得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光武 9년(1905)에 대한제국은 治安警察權까지 일본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國運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고 김택영은 스스로 일본의 종이 될 수 없다고 결심을 해 망명을 단행하였다. 김택영이 중국 上海로 건너간 후 고국은 끝내 일본의 강압에 의해 乙巳勒約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김택영은 극도의 비감한 심회를 시작품에 드러내었다. 이 시기에는 辭語를 다듬거나 성률의 효과를 고려하는 작품을 쓰기 어려웠다. 이즈음 서정의 작품에서는 구절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분을 直敍的으로 토로했다. 김택영의 망명 이후 한시에는 感憤과 悽楚의 정서가 주조를 이루었다고 하는 평가가 이 시기 작품에서 나타나 보인다. 중국 망명 시절에 김택영은 그의 시문학론을 「雜言」의 기록으로 피력해 놓았다. 이른 시기부터 그가 추구해 왔던 神韻을 여기서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함축에 의한 天然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였다. 그가 「雜言」에서 神韻의 문학을 논의했지만 그것도 독자적이거나 새로운 관점은 아니었다. 한문학이 종말을 고한 시점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펼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쓸모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김택영의 神韻 지향 문학론은 처음부터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던 것이라 여겨진다.

Kim Taeg-young(金澤榮) was a famous writer during the last period of Sino-Korean literature. His poem works were some recording of his whole life and the literary respondence on the sudden change era. He sticked to Sino-Korean literature although literary circle changed pure Korean literature already. And he represented his inner side on his poem works such as discord, regret, resentment, deploring. The main literariness of Kim Taeg-young(金澤榮)` poems were Shinoon(神韻). Following the literariness of Shinoon(神韻), his poem works showed T`ang style(唐風) frequently. T`ang style(唐風) which want to make natural and implication is close to the literariness of Shinoon(神韻). The literariness of Shinoon(神韻) is possible by the sejf-recognizing(自得) with endless effort. The Korea Empire was such as a candle front of wind around 1905, Kim Taeg-young(金澤榮) did`nt want to be a Japan`s slave, so he exiled himself finally. After he went to Sanghai China, the Korea Empire contracted the Eulsa treaty(乙巳條約) by Japan`s enforcement. During this period, there was no meaning writing poems with any ornament and sound euphony. So he wrote several poems containing with emotion of resentment(感憤) directly. He discussed the literariness of Shinoon(神韻) on the 「Jabeon(雜言)」, but that was not his original thought. At that time, there was no meaning on the discussion about Sino-Korean literature. Because of that, Kim Taeg-young(金澤榮)`s literary theory of Shinoon(神韻) had limitation from the beginning.

Ⅰ. 서언
Ⅱ. 甲午改革 이전 漢詩의 문학성
Ⅲ. 中國 亡命 前後 漢詩의 비분과 좌절
Ⅳ. 결언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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