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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 등재
파우스트 그리고 파우스트적인 것 -어느 논쟁의 실제 측면들
Faust und das Faustische: Aktuelle Aspekte einer Debatte
요헨골츠 ( Jo Chen Golz )
괴테연구 27권 297-314(18pages)
UCI I410-ECN-0102-2015-800-002074390

슈베르테의 저서 『파우스트 그리고 파우스트적인 것』(1962)에 따르면, 파우스트적이라는 단어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에 속하는 것을 칭하는 말로 본래 중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7세기와 18세기 초에 나온 파우스트버전들에서 파우스트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공포를 주는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파우스트적인 것 역시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였다. 그러나 괴테의 『파우스트』가 출판되면서 이러한 경향에 변화가 생겼다. 파우스트를 인류의 대표상으로 보는 쪽과 파우스트의 죄를 강조하는 쪽이 공존하면서, 파우스트적이라는 단어는 어떨 때는 긍정적인 맥락에서, 또 어떨 때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1870/71년 독일제국이 세워지면서 파우스트적인 것은 오직 긍정적인 의미를 담지하게 된다. 전설적 영웅 지크프리트와 유사하게, 파우스트는 게르만적 인간이자 행동하는 인간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빌헬름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새로운 관점이 나타났다. 『서구의 몰락』(1919)에서 슈펭글러는 파우스트적인 것을 독일적 정서 및 내면과 관련시켜 정의될 수 있는 표현이라 보았다. 빌헬름시대의 관점과 슈펭글러의 관점은 각각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행동하는 인간으로 볼 것인가 혹은 성찰하며 학문적 욕구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학자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이후 뵘은 1933년에 나온 저서에서 파우스트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호문쿨루스라고 주장하였으나 그의 주장은 곧 나치의 지배하에 묻혀버렸고, 파우스트는 위대한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비록 파우스트의 노력은 여전히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독일민족적인 것은 더 이상 강조되지 않았다. 동독 초기에도 파우스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루카치는 파우스트에게서 자본주의적 비인간성과 생산적인 삶의 활동성이 변증법적으로 구현된다고 해석하였다. 1956년 이후 동독에서는 특히 『파우스트 제2부』의 결말에 유토피아적 잠재력이 담지되어 있다고 보았고, 이 유토피아적 잠재력은 현실 사회주의 속에서 실제로 실현가능하다고 주장되었다. 1981년에는 하이제와 슐라퍼 사이에 이른바 파우스트논쟁이 있었다. 파우스트가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살해한 것을 하이제는 역사적 진보에 대한 대가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슐라퍼는 이를 범죄로 간주하였고, 바로 여기에서 괴테가 현대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있음이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1998년의 저서에서 야스퍼는 파우스트적인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나치의 야만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였고, 파우스트라는 인물과 작가인 괴테가 서로 같은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보일은 파우스트적인 것을 독일교양시민계급에 속하는 파우스트의 병리학적 측면으로 이해하였는데, 보일의 견해에 따르면 작가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닌 것으로 파악된다. 파우스트 그리고 파우스트적인 것에 관하여 벌어지는 논쟁들 중 어떤 의견이 본질을 덧칠하여 수정하고, 어떤 의견이 텍스트와 연관된 해석인지, 그 경계를 분명히 정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에 대해서는 괴테 자신의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가 때때로 다시 쓰여야만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늘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다시 쓰여야만 하는 필연성은 많은 사건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자에게는 과거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통찰하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관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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