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의학을 구성하는 철학적 전통이 현지의 의학적 전통(예컨대 한의학)과경쟁적 공존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의학철학과 현지의 문화는 종종 대립과 충돌의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본 연구는 집단 무의식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속담을 매개로 한국과 프랑스 사회가 질병과 의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상하고 있는지를 비교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질병에 대한 접근 방식과 관련하여 동서양의 의학적 전통은 문화적?철학적 차원에서 서로 다른 경향을 나타낸다. 즉, 동양에서는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기반 하에 질병을 내인성으로 간주하면서 전체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동양의 자연철학과 공통된 바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을 외인성으로 보고, 그에 대해 환원주의적이며, 생리학적,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질병에 대한 두 세계의 접근 방식이 이처럼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속담에 나타나는 집단 무의식 속에서는 질병의 수용과 사회적 영향, 그리고 의사의 이미지 표상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편으로 동서양에 공통된 자연철학의 토대가 속담에 반영된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 17세기 서양 의학철학에서 발생한 혁신적 관점, 즉 의학에서 종교의 영역을 배제하고 질병을 생리학적이고 외인성으로 보는 관점이 프랑스의 속담에 반영되지 않은 것을 뜻한다. 한편 의사의 이미지 표상과 관련하여 양국의 속담에서, 특히 프랑스어 속담에서 의사들이 놀림과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속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던 이들이 주로 시골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대부분 의학에 문외한이었던 관계로 의사로부터 사기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많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의학이 어떤 경우에도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속담에 나타난 질병과 의사에 대한 표상을 비교 분석한 결과 ``철학적-의학적-문화적`` 차원에서 전적인 충돌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질병과 의사에 대한 인식과 표상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