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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李廷龜)와 원굉도(袁宏道)의『유기비교연구(遊記比較硏究)』
A Comparative Study of Travelogues by Lee Jeong-gu and Won Goeng-do
李明熙 ( Myoung Hee Lee )
한국한문학연구 vol. 50 274-304(31pages)
UCI I410-ECN-0102-2013-720-001973908

본 논문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이정구의 유기와 만명 시대의 탁월한 문인이었던 원굉도의 유기를 비교하여 이들의 공통적 특성과 그 의의를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두 사람의 유기는 산수에 대한 혹호, 탈구속적인 사유, 자유로운 형식의 추구, 유머와 흥취의 대화체 사용이라는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공통적 특성은 영향 관계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이정구와 원굉도의 직접적인 교류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다른 측면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명대 전후칠자의 복고주의는 공안파의 출현을 불러왔다. 조선 중기의 문단 역시 복 고주의적 문풍이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 바로 신흠의 ‘視古修辭’와 이정구의 ‘隨意抒寫’이다. 원굉도와 이정구의 유기에 유사한 성향이 보이는 것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정구가 공안파의 일원인 구탄과 교류한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교류 이전인 1604년 부터 이정구의 유기는 창작되었으며, 이미 그 시기의 작품에 두 사람에 보이는 공통적 특성들이 나타나 있었다. 따라서 구탄과 이정구와의 지속적인 교류가 문학적 요소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조선 중기의 복고적 문풍의 형성이 전후칠자의 수용을 계기로만 촉발된 것이 아니라문단 내부의 자각과 요구에 진행되었다는 근간의 연구 성과를 감안하면 이정구의 유기에 보이는 문학적인 성취도 내재적 발전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당대를 대표하는 두 문인은 산수벽이라고 칭할 만큼 산수자연에 대한 애호가 깊었으며 이를 즐기기 위해 유람에 대한 남다른 갈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유람을 실천하였고 그 결과를 유기로 남겼다. 이들은 전대의 유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바탕에는 사상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그들만의 자유로운 창작 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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