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代의 군주와 칭제한 十國의 군주가 자신의 정통을 주장하는 방법에는 五德終始說에 입각해서 오덕을 내세우는 것과 前王朝와의 계승 관계를 내세우는 것이 있었다. 後梁, 前蜀, 吳는 당의 계승을 표방하며 金德을 내세웠다. 이때에는 당의 계승을 주장하는 세 나라가 공존하였다. 後唐과 南唐은 당의 중흥을 표방하며 당의 오덕인 土德을 내세웠다. 후당 이후 後晉, 後漢, 後周는 순차적으로 金德, 水德, 木德을 내세워 전왕조를 계승했음을 나타내었다. 후량 태조와 후주 태조는 선양의 방식을 통해서 제위를 양위 받았음을 표방하였으며, 후당 장종은 당의 중흥을 명분으로 후량 자체를 부정하고 관계를 단절하였다. 후진 고조, 후한 고조는 제위를 양위 받을 존재가 부재하였지만 후당과 후진의 황제를 제사 지내며 전왕조를 계승했음을 나타내었다. 前蜀과 吳는 선양 받을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사실에서 자신들의 존립 명분을 찾았다. 전국 7웅처럼 천하가 혼란하면 한 지역에서 패도를 이루는 것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南唐은 당의 중흥을 주장한 후당이 이미 없어진 상황에서 당의 중흥을 자신의 존립 명분으로 삼았다. 오대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은 後梁 太祖 때부터 나타나지만 실현되지 못하였다. 後唐 莊宗은 당의 중흥을 기치로 후량을 멸하고, 전촉을 멸하여 통일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환관과 영관을 중용하고 정사를 멀리하여 기회를 놓쳤다. 후진과 후한을 지나 후주 世宗에 이르면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가 나타난다. 십국에서는 남당 烈祖가 통일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나라 안의 안정을 우선시하여 적극적으로 통일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열조를 이은 元宗은 나라 안의 안정보다 초와 민을 점령하는 등 대외 확장에 관심을 가졌지만 후주 세종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통일에 대한 의지를 더 이상 펼치지 못하였다. 오대와 십국의 군주가 통일을 추진하는 데는 군주의 자질과 나라 안의 안정과 통일에 대한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오대와 십국의 군주는 동일하게 통일을 완수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다만 후주 세종이 통일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중원 왕조라는 이점 보다는 ‘眞主’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후주 세종은 병으로 죽어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였지만 송나라 태조가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그 역시 ‘眞主’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眞主’의 면모를 갖춘 이는 중원 지역이든 다른 지역이든 상관없이 통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五代の君主と稱帝ある十國の君主が自身の正統を主張する方法には五德終始說に立脚して五德を主張するのと前王朝の繼承關係を主張することがあった。後梁、前蜀、吳は唐の繼承を標榜して金德を主張した。この時には唐の繼承を主張する三ヶ國が共存した。後唐と南唐は唐の中興を標榜して唐の五德である土德を主張した。後唐以後後晉、後漢、後周は次次と金德、水德、木德を主張して前王朝を繼承したことを現わした。後梁太祖と後周太朝は禪讓の方式を通じて帝位を讓位受けたことを標榜してであり、後唐莊宗は唐の中興を名分で後梁自體を否定して關係を斷絶した。後晉高朝、後漢高朝は帝位を讓位受ける存在が不在下だったが後唐と後晉の皇帝を祭事を行って前王朝を繼承したことを現わした。前蜀と吳は禪讓受ける存在がなかったために旣存の事實で自分たちの存立名分を探した。戰國7雄のように天下が混亂すればある地域で覇道を成し遂げるのは一般的というものだ。南唐は唐の中興を主張した後唐がすでになくなった狀況で唐の中興を自身の存立名分とした。五代で統一に對する關心は後梁太祖時から現れるが實現さ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後唐莊宗は唐の中興を旗じるしで後梁を滅ぼして、前蜀を滅ぼして統一の可能性を開いたが宦官と伶官を重用と政事を遠ざけて機會をのがした。後晉と後漢を經て後周世宗時になれば統一のための本格的な行步が現れる。十國では南唐烈祖が統一に對する意志を明らかにしたが國內の安定を優先視して積極的に統一戰爭を遂行しなかった。烈祖を續く元宗は國內の安定より楚と민を占領するなど對外擴張に關心を持ったが後周世宗との戰爭で敗れた後統一に對する意志を廣げ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五代と十國の君主が統一を推進するには君主の資質と國內の安定と統一に對する意志が何よりも重要だった。五代と十國の君主は同一に統一を完遂できる名分と機會を持つことができた。ただし後周世宗が統一戰爭を敢行できたことは中原王朝という利点よりは‘眞主’としての面目を保ったためだった。後周世宗は病氣で死んで統一を完遂できなかった。ただし宋國太祖が統一の基盤を用意できたことは彼も‘眞主’としての面目を保ったためだった。‘眞主’の面目を保った人は中原地域でも他の地域でも關係なく統一を成しとげることができ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