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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을 형성하는 것(2) -『심경부주』의 사적지위-
退溪學を形成するもの(2) -『心經附註』の史的地位-
모치츠키고메이
퇴계학논총 vol. 16 95-121(27pages)
UCI I410-ECN-0102-2012-150-002844568

본 논문은 『퇴계학논총』 제 14집에 실린 같은 제목의 논문에 이어지는 원고다. 14집에 실은 논문은 그 부제(副題)가 보여주다시피 이퇴계의 학문을형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모멘트로서 명나라의 정황돈(程篁墩)의 저술인 『심경부주』에 주목하려 하였다. 그러나 앞의 논문에서는 「심경후론」에 밀착하면서 약간의 다른 자료를 혼잡하여 집필을 하였다. 하지만 그 서술은 지금까지 중도적인 것에 머물러, 「심경후론」이 더욱더 많은 편폭을 소비하고 있는 중심적인 논제에 관한 고찰이 결여되어 불완전함을 면할 수 없었다. 필자는 이전에 게재한 논문의 말미에서 "이 상면의 해명이 소론의 주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흥미진진한 문제 해명을 우리는 다른 원고에양도하는 것으로 한다." 라고 하여, 그 해명을 나중에 하기로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그 책무를 완성하려는 것이다.본 논문에서 제출한 제시적인 서술로 막말 유신기(幕末維新期)의 양명학자인 이케다 소안(池田草庵, 18131~1878)의 말을 되새겨 보기로 하였다. 이케다 소안(池田草庵)과 동일한 시기의 주자학자인 쿠스모토 세키스이(楠本碩水, 18331~1916)는 정황돈(程篁墩)의 『심경부주』를 읽고 이 책이 「존덕성」의 일면에서 얻은바가 적지 않다고 독서 후감을 강우(講友)인 이케다 소안에게 보내 그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이케다 소안은 회답서에서 「정황돈의심경부주에 관한 서신을 받았으므로 적당한 시기에 회신한다」는 의사와 함께 예를 다하여 『심경부주』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음도 고백하고 얼마 후「다만 최초에 ``심경``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어쩐지 불면백서가 아닌가 의심을 갖게 된 것 뿐입니다. 유학자의 학문은 원래 心術에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심경부(心經부)라 부제함은 어쩐지 일면에 치우침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라고 예를 갖추어 회답하였다. 그 회답은진실로 엄격한 것이었다. 이케다 소안(池田草庵)의 상술문에는 두 분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그 어떠한 확고한 인식이 밑받침 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유학자의 학문은 원래 심술(心術)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라는말에서 이미 이 이상을 바라고 얻을 수 없는 송명 유학사상의 저온(底蘊)이갈파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심술이라는 두 글자에 압축되어있는 것은 송학이 불교와 심학의 장점을 부정적으로 매개하면서 개착(開鑿)한 형이상학의 차원으로서 한당(漢唐)의 훈고유학이나 동일한 시대에 일정한 세력을 갖고 있던 사공(事功) 사상과 자기의 입장을 명확히 준별한 표징(表徵)이다. 그런데, 소안(草庵)의 비판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기묘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을 쿠스모토 세키스이(楠本碩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본래 「심술에 기초로한다」는 송명 유학사상의 고원(高遠)한 사색을, 그 명맥골수라고도 할 생명으로부터 분리하여 번잡한 고증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현실 세력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그것은 아마도 평생 송명유학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은근히 자부심일지도 모른다. 본 논문에서는 양명학자인 이케다 소안과 주자학자인 쿠스모토 세키스이의 『심경부주』론을 중심으로 퇴계가 에도시대 사상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였다.

本稿は囊に『退溪學論叢』第14輯に揭載された同題の小論の續稿である。小論はその副題が示しているように、李退溪の學を形成する一つのモメントとして、明の人程篁墩の『心經附註』に注目しようとした。中でも退溪の「心經後論」は、彼の『心經附註』觀というものを思想的象面において最もよく表している資料である。なお、小論では「心經後論」に忠實に依據しながら、他の若幹の資料を交えつつ執筆を進める方針を取った。もっとも、その敍述はいまだ中途的なものに止まって、「心經後論」が最も多くの紙幅を費している中心的な論題についての考察を缺いていて、不完全なのを免れない。私は前稿の末尾で「この象面の解明が小論の主題を成すものでなくてはならない。だが、この興味ある問題の解明をわれわれは他の稿に讓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述べて、その解明を將來に約束した。本稿はいわばその責を塞ごうとするものである。なお、ついでに小論の方法論上の問題について附言しておくとしよう。上述したごとく、小論の敍述の形式は旣に「心經後論」に忠實に依據し引用するという方法を取っている。そして、かかる敍述形式はその方法的な制約から、往往にして關連する資料を博涉して實證的な記述に終始するか、退溪やその思想について傳記的に、あるいは形成史的に記述するというのを免れない。しかし、小論は形式的にはかかる敍述方法を取っていても、著者の意識においては飽くまで問題提示的な敍述に徹しようと心懸けた。それでは、言うところの問題提示的な敍述とは、どういうことだろうか。かく言った場合、私は反射的にわが國の幕末維新期の陽明學者池田草庵(1813~1878)の言葉を想起する。草庵と同時代の朱子學者楠本碩水(1833~1916)は、篁墩の『心經附註』を讀んで、同書が「尊德性」の一路において益を得るところが少くないと、その讀後感を講友の草庵に報じて、彼の意見を求めている。草庵はその復書で一應は「程篁墩ノ心經附註ノ事禦申越し被下辱存申候。拙も尙又折ヲ以て一見いたし度奉存候」と禮意を表して、同書を寓目していないことを告白している。しかし、その後に續けて「只最初心經と申題目ヲ一度聞クと何とナク不面白書やと疑ひ申候丈ケ也。儒者之學問元來心術ニ本ツキ候ハシレタル事也。ソレヲコトコトシク心經부と題し候ハ、どふか偏ナ樣ニ存じ申候也」(『 幕末維新朱子學者書簡集』二六四頁)という一찰をもって應じている。その批判の一찰は誠に手嚴しいもので、例えていえば人の咽喉上に刀を著けるような槪があるであろう。草庵の上の文には兩者がともに共有しているある牢乎とした認識が前提せられている。そして、われわれは「儒者之學問元來心術ニ本ヅキ候ハシレタル事也」という一語において、もはやこれ以上を望み得ないような簡潔な表現でもって宋明儒學思想の底蘊が喝破せられているのを見るであろう。そして、この「心術」という二文字に壓縮して表現せられているところのものこそ、宋學が佛敎心學の長所を否定的に媒介しながら開鑿したところの形而上的次元であって、從前の漢唐の訓詰儒學や同時代に一定の勢力を保った事功思想と、自己の立場とを峻別する徵メルク表マ―ルであった。ところで、草庵の批判の一찰は、誰に向けられたものであろうか。奇矯な言辭を弄するようであるが、それは碩水に向けられたものとは見なし難い。むしろ、それは本來「心術ニ本ツ」くところの宋明儒學思想の高遠な思索を、その命脈骨髓ともいうべき性命から切り離して煩쇄な考證的次元に引き降ろそうとする滔滔たる現實の勢力に對してではないだろうか。それはひょっとしたら、平生宋明の儒學思想を硏究しているなどと心中秘かに自負している(?)私自身に向けられたものかも知れないのである。私もまたこうして退溪の學について何程かのことを論じようとする以上、草庵の批判に堪え得るような思索をもって應答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なお、前稿の後を承ける本稿は、當然のことではあるが、その結論を前提にして敍述を進める。本論文では、江戶時代の陽明學者である池田草庵と朱子學者である楠本碩水の『心經附註』論を中心に退溪が江戶思想に與えた影響を考察した。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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