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財目錄이나 買物注文이라고 하는 리스트류를 통해서 상층 무사집안이나 귀족 및 寺院의 의식주를 고찰하여 거기서 서민의 생활 실태를 유추해 보았다. 이중에서 언급한 若狹國 어촌의 유지 등은 계층으로서는 서민이지만 그 집에 딸린 雜物注文을 보면 天目茶碗·具足胄·활 등이 열거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世帶의 道具數를 모름"이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甲裵國(山梨縣) 지방호족인 八田집안의 慶長11년(1606) 家財目錄의 경우에는 더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수의 물품이 日常什器에서부터 차솥, 무기류까지 늘어놓고 있다. 이와 같이 중세에서 근세로 상층의 서민에게 점차로 부가 축적되어 가고 있다는 상황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서민의 家財에 대한 역사적 변천을 한층 더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하층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家財의 종류는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이번 보고에서 고찰한 것은 안정된 일상생활이지만, 그것이 지속한다면 최저한의 의식주의 생활도구만 있으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중세의 대부분의 시기에 있어서 안정된 생활이 가끔 붕괴되어서 기근 등에 일상적으로 계속 노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측면 또한 포함해서 중세서민의 생활실태를 다양한 자료를 구사하여 총체적으로 탐구해 갈 필요가 있다.
家財目錄や買物注文といったリスト類から、上層武家や公家·寺院の衣·食·住を考察し、そこから庶民の生活實態を類推してきた。このなかで言及した若狹國の漁村有力者などは、階層としては庶民であろうが、その家付雜物注文をみると、天目茶碗·具足胄·弓などが列擧されており、最後に「世帶道具數を知らず」と書かれている。さらに甲斐國(山梨縣)の土豪八田家の慶長11年(1606)家財目錄(八田家文書)になると、まさにその數を知らずというほど多數の物品が、日常什器から茶釜·武具類まで書き連ねられている。このように中世から近世へと、上層庶民に次第に富が蓄積されるようになっていく狀況がわかる。このように、庶民の家財の歷史的變遷をさらに考え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えよう。だが、特に下層においては、基本的に近代に至るまで、家財の種類はそれほど增加し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今回の報告で考察したのは安定した日常生活だが、それが持屬するなら、最低限の衣食住の生活具があればよかったともいえる。むしろ問題なのは、中世の大部分の時期において、安定した生活がしばしば崩れ、飢饉などに日常的にさらされ屬けていたことである。こうした闇の側面も含め、中世庶民の生活實態を、多樣な資料を驅使して總體的に探求していく必要がある。